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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전설적 컴퓨터 모임, 홈브루 컴퓨터 클럽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은 홈브루 컴퓨터 클럽이라는 전자제품 매니아들의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이 클럽은 다양한 전자관련 부품들이나 회로, 그리고 정보를 교류도 하고, 컴퓨터 관련 장비를 직접 조립도 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는데, 고든 프렌치(Gordon French)의 차고에서 1975년 첫 모임을 가지고 비정기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이때의 멤버들은 아직도 정기적인 미팅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지만, 이들의 수준은 정말 당대 최고였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Altair 8800 컴퓨터가 나온 뒤에는 이와 유사한 컴퓨터를 조립하거나, 프로그래밍에 대해서도 논의를 하였으며, 가끔씩 발행하는 뉴스레터는 실리콘 밸리의 문화를 만드는 데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특히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라는 아이디어를 확산시키고 후에 애플 컴퓨터가 출범하게 되는데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를 하였습니다.

이 컴퓨터 클럽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스티브 워즈니액이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하드웨어 디자인, 조립실력과 컴퓨터 프로그래밍 능력으로 클럽 멤버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애플 컴퓨터, 드디어 깃발을 올리다.

이렇게 새로운 컴퓨터 시대를 맞이하여, 스티브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생각에 스티브 워즈니액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서 컴퓨터를 설계하고, 차고에서 컴퓨터를 조립했습니다.  그러면서, 1976년 로널드 웨인(Ronald Wayne)과 함께 3명이서 애플 컴퓨터의 깃발을 올립니다.  로널드 웨인은 아타리에서 스티브 잡스와 일을 했었고, 스티브 워즈니액의 기술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첫번째 애플 로고도 그리고, 애플-1 의 매뉴얼을 작성하는 작업과 각종 계약서를 작성하는 등의 실무를 맡았습니다.  그러면서 애플의 주식 10%를 가졌는데, 2주 뒤에 성공을 확신하지 못하고 $800에 자신의 주식을 매각하고 애플을 떠납니다. 웨인은 당시 상황에서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지만, 현재의 애플이라는 회사의 가치를 생각하면 아마도 마음이 많이 상할 것 같습니다.

스티브 워즈니액은 스티브 잡스의 차고에서 만든 애플 I 퍼스널 컴퓨터 키트를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 처음으로 소개합니다.  애플-1 은 Altair 8800과 비슷한 형태를 가졌는데, 내부에 확장 카드를 꽂을 수 있도록 하였고, $25 정도하였던 MOS 6502 라는 CPU를 가졌으며, 256 바이트의 ROM과 4K~8K 바이트 RAM을 가졌습니다.  디스플레이 컨트롤러는 40열에 24개의 행을 표시할 수 있었는데, 케이스나 파워, 키보드, 디스플레이 등도 없이 보드만 판매하는 형태였습니다.  사실 스티브 워즈니액은 애플 컴퓨터에 Altair 가 사용한 인텔의 8080 칩을 쓰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가격이 무려 $179 달러나 하였기 때문에 포기를 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모토롤라의 6800 을 고려하였지만, 역시 최고로 낮출 수 있는 가격이 $175 달러나 하였습니다.  결국 애플이 이름없는 회사의 기능도 많이 떨어지는 CPU인 6502를 채택한 것에는 월등히 싼 가격이 한 몫을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6502는 6800 CPU와 상당히 기능적으로 비슷하였고, 4KB RAM 에 올라가서 동작하는 BASIC 인터프리터를 만들어서 올리고 판매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실리콘 밸리의 여러 컴퓨터 가게들을 돌아다니면서, 애플 컴퓨터를 보여주고 주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가격은 $666.66 달러로 결정하였는데, 그 의미와 애플의 로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이 연재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제품을 주문한 곳은 바이트(Byte) 라는 가게를 새로 열려고 했던 폴 터렐(Paul Terrell) 이었습니다. $500 달러에 50대의 애플-1을 구매하기로 하였는데, 문제는 애플이 100대를 제작할 수 있는 부품을 구하기 위한 자본금이 하였던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폭스바겐 미니버스를 팔았고, 스티브 워즈니액은 자신이 아끼던 HP의 최고급 공학용 전자계산기까지 팔았지만 돈이 부족했습니다.  그렇지만, 스티브 잡스는 특유의 영업력과 화술로 부품을 공급하는 가게들에게 신용으로 상당부분 부족한 부분을 메꾸었으며, 추가로 은행에서 $5,000 달러의 빚을 얻어서 부품을 구했다고 합니다.

스티브 워즈니액은 뛰어난 기술자였지만, 사람들하고 협상을 하거나 계약을 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였고, 그냥 컴퓨터와 기술이 좋아서 그것만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에 비해, 스티브 잡스는 재능있는 사람과 가능성을 볼 줄 알았고, 처음보거나 잘 모르는 사람도 잘 설득할 수 있는 화술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니아가 아닌, 일반인들을 위한 컴퓨터를 기획하다.

애플-1 은 200대 정도가 제작이 되었고, 약 10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대부분 판매가 됩니다.  애플-1 은 Altair 와 비교했을 때 그래도 사용하기 편리한 편이었지만, 조립이 간단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또한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BASIC을 이용하게 만들려면, ROM에 3K 정도 되는 16진수 바이트 코드를 입력해야 했는데, 적어도 20~30분 정도는 소요가 되는 작업이었고,  스티브 잡스는 이래서는 매니아들을 위한 컴퓨터는 될 수 있어도, 일반인들이 마음대로 쓰는 자신들이 꿈꾸던 세상을 위한 컴퓨터로서의 자격은 없다는 판단을 합니다.

애플-1 을 추가로 생산하기 보다는 사용자가 사용하기 편리한 형태의 컴퓨터 기술들을 스티브 워즈니액과 스티브 잡스는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초기 애플-1 판매에 큰 도움을 준 바이트 샵의 폴 터렐이 소비자 입장에서 원하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여러가지 기능개선이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카세트 테이프에 저장과 불러들이기가 가능하도록 카세트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고, 마더보드에 추가를 하였습니다.  여기에 워즈니액이 만든 BASIC 언어를 담아서 팔기 시작했으며, 폴 터렐은 나무로 만든 박스에 마더보드를 넣어서 애플-1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애플 II 는 처음부터 예쁜 플라스틱 케이스와 키보드가 통합된 형태로 디자인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스티브 워즈니액이 스티브 잡스와 아타리에서 진행했던 벽돌깨기(Breakout) 프로그램을 동작시킬 수 있는 하드웨어를 만들기 위해서 제일 먼저 컬러를 지원하기로 합니다.  이를 위해 라인을 그리고, 컬러를 바꾸는 등의 새로운 BASIC 언어들과 루틴들을 추가하고 동시에 소리를 내기 위한 사운드 작업과 본체에 스피커까지 달게 됩니다. 이처럼 애플 II는 게임을 좋아했고, 벽돌깨기 게임 프로젝트를 사랑했던 스티브 워즈니액에 의해 게임을 즐기기 쉬운 컴퓨터로 재탄생을 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다양한 기능들이 추가되면서 향후 애플 II 용으로 수많은 컴퓨터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애플 II가 PC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추가적으로 RAM 의 증설에도 신경을 썼는데, RAM 의 크기에 따라 다양한 가격의 제품들이 나오게 됩니다.  4KB 부터 최대 48KB 까지 메모리를 설치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무척 우스운 크기이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커다란 메모리 용량이었습니다.  16KB 의 RAM이 1977년 당시 $500 달러에 육박했기 때문에, 가장 커다란 가격의 압박요소가 되었는데, 경쟁사였던 코모도어(Commodore)의 PET나 라디오쉑(Radio Shack) 의 TRS-80 의 경우에는 개방형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스티브 워즈니액은 향후 확장이 가능하도록 마더보드를 제작함으로써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합니다.

스티브 워즈니액은 애플 II 에 8개의 확장 슬롯을 설계해서 마더보드에 통합시켰습니다.  이는 다른 경쟁제품들에 비해 강력한 차별점으로 부각되는데, 수많은 주변기기 제작회사들이 다양한 확장카드들을 만들면서 애플의 전성시기를 열었습니다.  사실 이때에도 스티브 잡스는 프린터와 모뎀을 위한 확장슬롯 2개 정도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불필요하며, 쓸데없이 제작비만 올리게 된다며 반대했지만 워즈니액은 HP 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확장성의 중요성을 강력히 주장하여 8개의 슬롯을 모두 지킬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개인적으로 저 역시 어렸을 때 애플 II 를 이용했는데, 애플의 개방형 아키텍처(Open Architecture)는 정말 강력한 생태계를 구성했고, 애플을 선택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개방형 철학에 대해 처음부터 긍정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럼에도 애플 II가 그렇게 개방적인 컴퓨터가 되었던 것은 스티브 워즈니액의 영향력이 당시에는 더욱 컸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액과는 달리 애플 II 가 정말 다른 컴퓨터들과는 차별화된 다른 모습을 가진 컴퓨터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스케치와 모형을 만들어 가면서, 기존의 각이 진 육면체 형태의 모습을 탈피한 새로운 컴퓨터의 모습을 디자인하는데 역량을 집중하였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전자제품 매니아들처럼 부품을 구해서 조립을 하거나, 케이스가 있어도 상자같은 형태에 나사가 여기저기 보이는 등 예쁘다는 것과는 엄청나게 거리가 먼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비대칭이면서도 날카로워 보이고, 기능성도 겸비한 케이스를 원했고, 나사가 하나도 겉에서 보이지 않는 케이스를 디자인하였습니다.  나사는 모두 바닥에 위치를 시켰고, 또한 누구나 쉽게 보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컴퓨터 케이스 뚜껑을 쉽게 열 수 있도록 하였으며, 확장슬롯에 카드를 새로 꼽는 작업이 간편한 디자인을 멋지게 해냅니다.  또한 키보드의 컬러와 파워, 냉각팬 등에도 대단한 신경을 썼습니다.  아타리에서 같이 일했넌 로드 홀트(Rod Holt)라는 아날로그 회로 전문가를 고영해서 경량의 파워와 냉각팬을 디자인하였는데, 그의 경량 파워 서플라이와 TV와의 인터페이스를 가능하게 만든 디자인은 애플 II의 경쟁력을 한층 높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애플 II 의 디자인은 정말 파격적인 것이었고, 이렇게 멋있어 보이는 외관역시 애플 II의 대성공에 한 몫하게 됩니다.


from Flickr by Marcin Wichary


이렇게 당대 최고의 천재인 스티브 워즈니액과 스티브 잡스가 각자 자신의 장점과 특기를 최대한 발휘하여 완성한 애플 II 컴퓨터는 1977년 4월 일반에 공개가 되면서, 아래와 같은 새로운 애플의 로고와 함께 전세계가 PC 열풍에 빠져들게 만들게 됩니다.




(... 후속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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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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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흥미로운 IT 관련 역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언제나 1등과 남아있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구경할 수 있지만, 정작 역사를 바꾸었던 장본인들이 퇴장하고 잊혀지게 되는 슬픈 이야기는 많이들 찾아보기가 어렵죠?  오늘은 그 중의 대표적인 회사이고 제품인 MITS와 Altair 8800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과거 이 블로그에서는 혁신의 선봉에 섰지만 그에 걸맞는 성공은 이루어내지 못했던 전설적인 연구소 제록스 PARC에 대한 이야기와 오늘날 닌텐도를 있게 한 계기를 마련한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에 대한 글도 비슷한 맥락에서 게재한 적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연관글:

전세계의 역사를 바꾼 잡지의 Cover Story

위의 사진에 보이는 잡지는 Popular Electronics 1975년 Vol 7, Number 1의 커버입니다.  전면에 보이는 컴퓨터가 바로 Altair 8800으로 이 이슈에서 세계 최초의 PC라고도 할 수 있는 Altair 8800이 소개되었습니다(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인텔 8008 기반의 Mark-8을 시초로 보기도 합니다).  원래 Popular Electronics 라는 잡지는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취미를 가진 매니아들을 위해 부품도 팔고 조립법을 알려주는 글을 많이 싣습니다.  Altair 8800도 이런 방식으로 판매가 되었는데, 원래 수백 대 정도가 팔릴 것으로 기대하고 글을 실었는데, 첫해 수천 대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당시로서는 커다란 히트를 기록합니다.

키트에는 인텔의 8080 마이크로프로세서와 256바이트 RAM, 라이트와 스위치, 그리고 철제 케이스와 파워 서플라이를 합쳐서 $397 달러에 판매를 하였고, 조립을 완료한 제품의 경우 $498 달러에 판매가 되었습니다.  

이 컴퓨터는 PC라는 역사를 만들어낸 장본인으로도 유명하지만, 당시 하버드 대학을 다니던 빌 게이츠(Bill Gates)를 대학을 중퇴하고 컴퓨터 소프트웨어 산업에 진출하게 만들어 향후 세계를 바꾸는데 일조를 하게 되었습니다.


MITS의 역사

Altair 8800을 탄생시킨 MITS의 창업자인 Ed Roberts와 Forrest M. Mims 3세는 미국 공군에서 연구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1969년 이들은 로켓을 제작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제작키트를 만들어 판매하려는 목적으로 Stan Cagle과 Rober Zaller와 함께 MITS(Micro Instrumentation and Telemetry Systems)를 창업합니다.  MITS는 뉴멕시코 주의 앨버커키에 본사를 두었습니다.

MITS의 로켓 제작키트는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러한 키트를 제작하는 사업에 흥미를 잃은 Cagle과 Mims는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Ed Roberts는 Electronic Array가 전자계산기를 제작할 수 있는 LSI IC들을 발표하자, 이를 이용하여 계산기를 제작하는 키트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완성된 제품이 MITS 816 계산기 키트였는데, 이 키트는 1971년 Popular Electronics의 커버를 장식하며 상당한 성공을 거둡니다.  뒤이어 1973년에는 MITS 1440 계산기가 소개되었고, 점점 발전된 모델을 다른 잡지에도 소개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잡지사의 권유로 시작한 프로젝트

MITS는 주로 전자계산기 조립 키트를 만들던 회사였기에, 당시 판매와 홍보의 역할을 동시에 담당했던 Radio Electronics나 Popular Electronics와 같은 잡지사와의 관계가 무척 중요했습니다.  이 두 잡지사는 오늘날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ZD(Ziff-Davis)의 잡지계열에 있었는데 (현재는 손정의의 소프트뱅크가 소유를 하고 있지요?), 1972년에 Polular Electronics로 통합이 됩니다.

Popular Electronics의 편집장 이었던 Les Solomon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CPU 였던 인텔 8080을 MITS가 잘 다룬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완성된 제품(현대적 PC의 개념)을 개발하기를 권유합니다.  그는 박스까지 완전하게 제작된 프로페셔널한 제품 키트를 원했고, MITS는 이 권유를 받아들여서 Altair 8800의 설계 및 제작에 착수합니다.

1976년 있었던 Altair Computer Convention에서 Les Solomon은 Altair라는 이름을 자신의 12세된 딸이 스타트렉 에피소드를 보면서 제안한 이름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당시 스타트렉 에피소드는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이 Altair라는 곳을 향해 가는 것이었는데, 미지의 신세계를 간다는 측면에서의 작명이 된 것이죠 ...

Ed Roberts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큰 고심을 한 부분이 바로 CPU를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인텔의 4004나 8008은 그다지 강력하지 않았고, 그 대안으로 고민한 National Semiconductor의 IMP-8이나 IMP-16은 외부 하드웨어를 요구했으며, 모토롤라의 6800은 아직도 개발 중인 단계였습니다.  그래서, 다소 위험 부담을 안고 인텔의 새로운 8비트 CPU인 8080을 선택합니다.  인텔 808은 1974년 4월에 출시가 되었는데, 유닛당 $360 달러라는 가격을 책정했지만, Ed Roberts는 인텔과 성공적인 협상을 통해 $75 달러에 칩을 공급받고 본격적인 컴퓨터 제작에 들어갑니다.


세계 최초의 PC 탄생과 대성공

이렇게 제작된 Altair 8800의 출시는 빌 게이츠를 포함한 전세계의 젊은이들의 마음에 불을 당깁니다.  수백 대 정도의 판매를 생각했지만, 순식간에 제작된 키트와 완성품들이 동이 났습니다.

Altair 8800의 완성품 from Wikipedia

1975년 8월이 되기 전에 이미 5,000대가 넘는 컴퓨터가 팔렸고, MITS는 직원을 20명에서 90명까지 늘려야 했습니다.  1975년 전반기 까지만 하더라도 시장에는 아무런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4K 메모리드에 이용된 다이너믹 RAM에는 일부 디자인 문제가 있었고, 이로 인해 공급이 늦어지면서 다른 경쟁자들이 진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고 말았습니다.


빌 게이츠와 Altair Basic의 탄생

Altair 8800이 신나게 판매가 되고 있는 도중, Ed Roberts는 시애틀에 있는 한 회사에서 BASIC 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구매할 의사가 없는지를 묻는 편지를 받게 됩니다.  당시 BASIC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던 Ed는 회사에 전화도 해보고, 주소에 찾아도 가보지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 편지는 보스턴에 있었던 빌 게이츠와 폴 알렌에 보낸 것으로 그 때까지 BASIC을 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Ed Roberts가 BASIC과 같은 것에 관심이 있었는지를 알기 원했던 것입니다.  

일단 관심이 있다는 것이 확인이 되자, 빌 게이츠는 폴 알렌과 함께 BASIC 인터프리터를 PDP-10 미니컴퓨터의 8080 시뮬레이터를 이용해서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완성된 프로그램을 종이 테이프에 펀칭을 해서 앨버커키까지 날아간 폴 알렌은 Altair 8800에서 실행을 시켰지만, 화면에 일단 "Altair Basic" 이라는 표시만 남기고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첫번째 작업이 실패했지만, 이 사건은 일단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를 주는 것에는 성공을 하였고, 지속적인 작업을 통해 프로그램을 완성합니다.  여기에서 바로 역사적인 기업 "Micro-Soft"가 탄생하게 됩니다.  BASIC을 시작으로, 포트란 컴파일러와 디스크 운영체제인 MITS-DOS를 개발한 Microsoft는 결국에는 MITS의 품을 떠나 워싱턴 주로 독립을 하면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 나갑니다.


무리한 영업정책과 매각

이렇게 잘 나가던 MITS의 성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여러가지 문제로 공급이 원활하지았지만 Ed Roberts는 새로 설립된 컴퓨터 스토어에서 Altair 8800을 제외한 다른 제품들은 취급할 수 없도록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이런 강압적인 정책은 수많은 컴퓨터 소매점의 외면을 받게 되고, 결국에는 애플과 같은 경쟁업체들과의 싸움에서 밀리게 되면서 1977년 5월 Pertec Computer라는 회사에게 $650만 달러에 회사를 매각하기에 이릅니다.

MITS를 Pertec에 매각을 하고, Microsoft와 Ed Roberts는 모두 앨버커키를 떠납니다.  Roberts는 이후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었는데, 현재도 조지아 주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MITS를 인수한 Pertec은 이런저런 생산기술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량생산체제에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였고, 수많은 제품하자에 시달리다가 결국 1980년 모든 Altair 제품 생산라인을 폐쇄하고 사업을 포기합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혁신적인 기술도 결국 상업화와 대량생산에 들어가서 승리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Altair 8800은 보여주었습니다.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지만, 결국 짧은 생을 마감한 Altair 8800과 MITS는 그래도 Microsoft라는 당대 최고의 회사를 탄생시키는데 일조를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조지아에 가서 MITS를 창업했던 Ed Roberts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과거 이야기와 회사를 매각하고 의학의 길로 접어들게 된 이유와 살아가는 이야기 ...  정말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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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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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보잉에 고전적인 개인용 컴퓨터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웹사이트를 소개했네요.  한 번 들어가 보세요.  저는 옛날의 향수가 밀려와서 감회가 무척이나 새롭네요 ... 

과거 사진 모을 수 있으면 우리나라에 출시되었던 것들 중심으로 블로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 
아마도 청계천표 애플II와 금성의 패미콤(FC-100, FC-30), 삼성의 SPC-1000 시리즈, 그리고 뒤이어 나온 대우전자의 MSX 호환기종이 될 것 같은데, 한 번 사진자료 찾아서 포스팅 해봐야 겠습니다.

개인용 컴퓨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웹사이트 ... 아래를 따라가시죠?  몇 개는 제가 여기 소개하겠습니다.

http://oldcomputers.net/pics.html


개인용 PC의 시초는 1975년의 MITS의 Altair 8800을 드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뭐니뭐니해도 개인용 컴퓨터가 미국을 강타한 해는 1977년도 입니다.  이 해에 애플 II와 현재는 소규모의 전자제품 유통업체로 유명한 라디오쉑(Radio Shack)TRS-80이 등장해서 PC 열풍을 만들어 냈습니다.



제가 너무나 사랑하고, 저를 컴퓨터에 빠지게 만든 장본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애플 II 컴퓨터입니다.   48KB의 메모리를 가진 모델이 당시 $2638불이라는 고가로 판매되었지만 백만 대 이상 팔립니다.  1 MHz의 6502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용했는데, 아직도 6502 어셈블리 언어로 프로그래밍 하던 기억이 납니다.  어큐뮬레이터와 X, Y, 모두 3개의 레지스터 만을 가지고 프로그래밍을 해야 했기에 제약이 무척 많았지만, 카세트 레코더를 이용한 입출력과 8개의 확장 슬롯을 개방형 아키텍처로 지원했기에 확장성이 최고였습니다.  이러한 개방형 정책 덕에 수많은 클론이 등장하게 되고 (싼 가격에), 이후 애플이 개방형 아키텍처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애플  II 만큼은 아니지만 20만대 이상 판매된 베스트 셀러인 Radio Shack의 TRS-80 입니다.  모니터 포함 $599.95에 판매하여 애플 II 보다 훨씬 저렴했습니다.  이후 PC의 대세가 된 자일로그 사의 Z-80A, 1.77 MHz CPU를 사용하였고, 램의 16KB 정도로 작았습니다 (당시에는 메모리 가격이 워낙 비싸서 ...).  TRS-80이라는 이름은 컴퓨터를 개발한 Tandy + Radio Shack + Z-80 의 합성어입니다.




이후 몇몇 개인용 컴퓨터가 더 출시되었지만, 애플과 탠디의 컴퓨터를 능가하는 제품은 1979년까지 나오지 못합니다.  1979년 개인용컴퓨터 역사의 기념비적인 제품의 하나인 Atari-800이 출시됩니다.

$999.95불에 출시된 이 제품은 애플 II와 마찬가지로 6502 CPU (1.8 MHz, 다소 빠릅니다)와 최고 48KB 메모리를 장착했지만, 혁신적인 컬러 그래픽과 사운드를 지원하는 보조 프로세서를 장착했습니다. 여기에 2개의 롬팩 카트리지 슬롯을 지원하여 컴퓨터 게임의 역사를 만든 컴퓨터 입니다.

옆에 카트릿지들에 적혀있는 게임들을 보시면, 게임의 역사가 보이지 않으십니까?  BASIC 언어 패키지 역시 이런 형태의 카트리지로 제공되었고, 전설적인 게임인 맨(PAC-MAN)과 마리오 캐릭터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돈키콩(DONKEY KONG)이 기본 카트리지로 제공되었습니다. 


그 이후, 훨씬 많은 수의 회사들이 다양한 컴퓨터 들을 출시합니다.  대부분 일정 수준의 성공을 거두기는 합니다만, 애플 II와 탠디, 아타리를 넘어서는 제품은 많지 않았습니다.  1982년이 되어서야 또 하나의 히트 제품이 나옵니다.  코모도어(Commodore)Commodore 64가 그것입니다.


이 제품은 출시 후 전세계에 1700만대가 팔린 대형 히트작입니다.  단일 컴퓨터 기종 판매로서는 아직도 이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595불에 출시되었으며, CPU는 6502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수 있는 6510을 사용했습니다.  64KB의 램을 가지고, 컬러 그래픽 지원이 뛰어났으며, 카트리지 포트와 ROM BASIC이 기본 제공되었습니다.  기술적으로도 게임 개발에 있어서 중요한 기술들이 많이 포함되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고해상도 그래픽 모드, 유연한 스크롤 기능, 스프라이트, 비트매핑, 캐릭터 충돌 감지나 매핑, 그리고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사운드 기능 등이 지원되어 게임 개발자들이 편하게 PC용 게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수천 개가 넘는 게임용 소프트웨어가 이 제품을 지원하였고, 대히트를 하게 된 발판이 됩니다.


여기까지가 아무래도 대형 히트작이 포함된 8비트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1981년에 IBM이 인텔의 8088 CPU를 기반으로한 16비트 컴퓨터의 시대를 처음으로 열면서, 이후 급속하게 인텔 + IBM (컴팩 등의 클론 포함) 하드웨어와 마이크로소프트의 DOS 쪽으로 힘이 쏠리게 됩니다만, 한 동안은 춘추전국시대가 지속됩니다. 

옛날 이야기하니, 저도 나이가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  이렇게 과거 기억이 나게 만드는 기사나 관련 글들을 보면 참 반가운 것은 어쩔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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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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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금만 무리를 하면 여기저기 쑤신 곳도 많고,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아직 한창나이지만 젊은 세대는 지나버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빌 게이츠를 보면 참 어려보이는 동안이라는 생각입니다.  빌 게이츠가 1955년 생이니 올해로 만 53세나 되네요.  최근의 급격한 IT 업계의 변화를 보면서, 역시 나이도 문제지만 그 사람이 자라면서 영향을 받은 환경이 제한하는 것들이 참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느낍니다.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것이 1975년으로 20살 청년 때 였습니다.  빌 게이츠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그 때 막 태동을 하기 시작했던 "개인용 컴퓨터"에 감동을 받고 이를 위해 일생을 바치게 된 세대입니다.  1970년대는 대부분의 컴퓨터라는 것이 초대형이었기 때문에 개인이 컴퓨터를 가진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기입니다.  컴퓨터라는 물건은 대학이나 큰 연구소 같은 곳에 있는 것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카드에 펀치를 뚫어서 입력을 했고, 메모리로는 테이프 같은 것을 이용했으며, 출력은 구멍이 숭숭 뚫린 도트 프린터를 이용해서 하던 시절입니다.

그러던 시절이니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 PC) 라는 녀석이 얼마나 신기했겠습니까?  저 역시 PC라는 녀석에 매료가 되어서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 기계어나 어셈블리 코딩을 하면서 보냈는데, 이 시대의 천재인 빌 게이츠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조금은 상상이 갑니다.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기계가 Altair 8800이라는 PC 입니다. 이 기계는 빌 게이츠가 하버드에 들어갔을 시절인 1975년에 세상에 처음 선을 보이게 되었는데, 빌은 이 기계에 미쳐서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BASIC 언어입니다. 



빌 게이츠가 처음으로 BASIC 언어를 개발한 Altair 8800
(Picture from English Wikipedia)


그 때문인지 빌 게이츠의 BASIC 언어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비주얼 베이직은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비즈니스와 관련된 응용 프로그램을 제작하는데 이용되는 언어인데, 거기에는 베이직 언어에 대한 빌 게이츠의 애정이 한 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빌 게이츠의 사고는 언제나 PC의 패러다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물건을 동작시키는 것과 관련된 것들이었지요 ...  PC의 운영체제를 만들고, PC를 이용한 각종 소프트웨어를 제작하고, 또한 영역을 조금 넓힌 것이 X-BOX와 같은 게임기, 그리고 모바일 기기에 대한 운영체제 및 소프트웨어입니다.   다소 장치의 종류가 다양해 졌지만 근본적인 패러다임은 대형 컴퓨터에서 PC로 넘어오는 "개인용 기기 패러다임 변화" 의 틀 안에 여전히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를 보면 당시의 번뜩이던 강력한 힘은 사라진 것 같아 보입니다.  아무래도 또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가 진행되는데 뒤쳐지고 있다는 것은 비단 저만의 느낌은 아닐 것입니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를 가장 크게 위협을 하고 있는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세르게이 브린은 1973년 생으로, 빌 게이츠와는 거의 한 세대의 차이가 납니다.  이들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이미 PC가 많이 보급이 되었기 때문에 개인용 기기에 대한 그런 열광적인 반응은 없었겠지요 ...  대신 이들은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무한대의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엮이고, 동시에 서로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언제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새로운 세계로의 감동을 선사했을 것입니다. 

이들의 세대는 이미 개인화된 기기의 시대가 아니라 개개인이 네트워크로 엮이는 것과 관련된 신세계의 세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이 가져오는 혁명적 변화와 관련된 대처에 있어 언제나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는 구글보다 한 발씩 뒤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워낙 거대한 기업이었기에 이러한 약간의 뒤처짐은 언제라도 극복될 수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사실 2004년 구글에 대해 마이크로소프트가 100억 달러에 인수제안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지요 ...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기업을 매각했겠지만, 구글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옳았지요.  구글이 주식 공개를 하자마자 시가총액은 300억 달러가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1000억 달러를 돌파합니다. 

빌 게이츠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인 개인의 기기의 영역에서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세상으로의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빌 게이츠의 개인능력의 한계라기 보다는 이들이 서로 다른 세대에 살았고, 가치와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이 그 세대의 차이만큼 컸기 때문이 아닐까요? 

젊고 신선한 세대의 에너지를 단지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프레임에 가두어보지 않아야 할텐데, 저 역시도 나이든 세대의 프레임에 갇혀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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