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디지털 허브 전략의 중심, iTunes from Wikipedia.org
 

IT 삼국지, 지난 포스팅에서는 아이팟 하드웨어 탄생의 주역 존 루빈스타인을 집중조명한데 이어, 오늘의 주제 역시 애플의 중흥을 이끈 제품인 아이팟과 아이튠즈와 관련한 애플의 전략 및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디지털 음악 시대의 개막

2001년 1월 맥월드에서 '디지털 허브(Digital Hub)' 라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애플의 미래전략을 발표한 스티브 잡스에게는 그 해가 가기 전에 이를 실천하고 성공적으로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멋진 제품과 서비스가 필요하였습니다.

아이맥이나 새로운 매킨토시 제품이 디지털 허브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 하였습니다.  아이맥부터 이미 애플에서는 당시 비디오 캠코더 대부분이 채용하고 있었던 파이어와이어(FireWire) 단자를 내장하고, 이를 편집할 수 있는 우수한 소프트웨어인 iMovie 를 공급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아이폰 4 를 발표하면서 소개한 iMovie 역시 이미 10년 전에 애플에서 제작한 iMovie 의 기술력이 기초가 되었음은 쉽게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10년 전에는 iMovie와 아이맥을 활용한 비디오 편집과 디지털 비디오 사용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우수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멋진 미래형 전략에도 불구하고 비디오를 중심으로한 애플의 디지털 허브 전략은 그다지 커다란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MP3 를 중심으로 한 음악산업의 디지털화는 커다란 물결을 이루면서 사회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특히 대학의 기숙사 등을 중심으로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는 CD 를 컴퓨터를 이용해 MP3 로 변환을 하고, 이를 인터넷을 통해 공유하는 문화가 급속히 확산되었고, 특히 냅스터(Napster) 라는 음악파일 공유 서비스가 절정의 인기를 누리면서 그 파급효과는 음악산업 전반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2001년 초만 하더라도 이런 급변하는 환경에 애플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생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CD 음원추출 프로그램이 없는 애플의 아이맥은 인기를 잃기 시작했고, 되려 HP 같은 회사에서는 자사의 PC 에 CD 음원추출 프로그램을 넣어서 판매하는 등의 발빠른 대응을 하기 시작합니다.  


애플, 아이튠즈의 창시자 제프 로빈을 얻다.

한발 뒤쳐지기는 했지만, 스티브 잡스가 그 움직임을 감지한 이후에는 빠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일 먼저 인기있는 음악재생기 사운드잼 MP (SoundJam MP) 라는 프로그램의 라이센스를 매입합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개발한 가장 중요한 인재였던 제프 로빈(Jeff Robin)을 애플로 영입합니다.  제프 로빈은 수 개월에 걸친 작업을 통해 사운드잼을 애플의 디지털 허브 전략의 핵심을 장악하는 소프트웨어로 변신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아이튠즈(iTunes) 입니다.  그는 현재 애플의 소비자 애플리케이션 부분 부사장이 되었고, 아직도 아이튠즈의 업그레이드를 총괄지휘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프 로빈은 원래 애플에서 일하던 인재였습니다.  시스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결국 실패하게 되는 코플랜드(Copland)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스티브 잡스가 떠난 애플에서 새로운 운영체제 개발을 위해 매진을 하였지만, 코플랜드 프로젝트가 결국 중단되면서 애플을 떠났습니다.  애플을 떠난 뒤에도 주로 애플 매킨토시를 위한 여러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애플과의 인연을 이어가는데, 사운드잼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것으로 스티브 잡스의 눈에 띄면서 애플로 복귀한 것입니다.

아이튠즈를 개발한 뒤에 존 루빈스타인, 토니 파델(Tony Fadell) 등과 아이팟 팀에 합류하여 아이팟 펌웨어도 같이 개발한 제프 로빈은 2001년 애플과 스티브 잡스가 얻은 최고의 인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재능이 워낙 출중해서 였을까요?  그의 업적은 스티브 잡스를 제외하고는 각종 잡지와 기사에 가장 많이 실리기 시작하는데, 2005년 10월 16일 타임지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제프 로빈에 대해 이름이 나오지 않도록 압력을 행사했다고 전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내의 경쟁자의 부상을 막고 있다'는 논조의 기사를 싣기도 하였습니다.


완전한 비밀 프로젝트로 진행된 아이팟

존 루빈스타인과 토니 파델, 제프 로빈이 주도한 아이팟 프로젝트는 애플 사내에서도 최고의 기밀사항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애플 본사의 직원이 7,000명에 이르렀는데, 이 프로젝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100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존 루빈스타인은 프로젝트를 빨리 가시화하기 위해, 당시 실리콘 밸리의 포털 플레이어(Portal Player)라는 회사의 하드웨어 설계를 이용하기로 하고 개발속도를 가속화하였고, 애플 사내의 관련 전문가들도 팀과 부서를 넘나들면서 최대한 활용하는 기민함을 보였습니다.

다음으로 문제가 된 것은 운영체제 였습니다.  초기 아이팟은 기존의 컴퓨터 사업에 비해 훨씬 단순한 운영체제를 필요로 했는데, 이를 지원하기 위해서 픽소(Pixo)라는 회사의 운영체제 라이센스를 매입합니다.  픽소는 당시 휴대폰용 운영체제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과거 애플의 프로젝트였던 뉴턴(Newton)에 참여했던 폴 머서(Paul Mercer) 가 창업한 회사입니다.  결국 제프 로빈과 폴 머서와 같은 전직 애플 엔지니어의 힘이 아이팟의 탄생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아이팟의 상징이나 다름이 없는 스크롤 휠은 재미있게도 현재 애플의 마케팅 담당 부사장이된 필 실러(Phil Schiller)의 아이디어 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다른 회사라면 이렇게 자유로운 아이디어가 유입이 되어 멋진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아이팟이 주목한 MP3 플레이어의 경우, 우리나라 기업인 새한 정보시스템이 1997년 MP맨이라는 제품을 내놓은 것이 세계적으로도 최초의 제품이었고, 뒤를 이어 아이리버와 같은 회사에서 제품을 출시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시장을 선도하였습니다.  그 이후 컴팩을 비롯한 여러 회사에서 제품들이 나오면서 당시 휴대용 카세트및 CD 플레이어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시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비록 이런 제품들이 더 효율적이고 강력한 성능을 제공했지만, 사람들에게 "가지고 다니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기"라는 기본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는 차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제품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형태나 크기, 스타일 더 나아가서는 인터페이스까지도 휴대용 카세트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소니의 워크맨 혹은 디스크맨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아이팟은 그에 비해 MP3 라는 디지털 음원이 줄 수 있는 또다른 경험을 선사하는데 초점을 맞추는데, 아이튠즈 소프트웨어와 아이튠즈 스토어, 그리고 아이팟으로 연결되는 통합적인 음악경험 서비스를 애플이라는 브랜드와 함께하도록 함으로써 "사용자들에게 음악을 즐기는 새로운 통합시스템을 서비스"한다는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고, 이것이 결국 커다란 성공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아이팟이라는 이름의 탄생설화

제품의 완성이 다가오자, 제품의 진짜 이름을 놓고 여러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비니 치에코(Vinnie Chieco)라는 프리랜서 카피라이터가 중책을 맡게 됩니다.  비니 치에코의 팀은 비록 애플의 직원은 아니지만, 아이팟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며 긴밀히 협조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스티브 잡스가 이들에게 건네준 캐치 프레이즈는 '노래 1,000곡을 호주머니 속에 ...' 였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와의 미팅에서 그는 언제나 디지털 허브를 이야기 하였고, 맥이 모든 기기의 중심이 되는 허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비니 치에코는 허브에 대한 의미를 가장 많이 고민을 하였는데, 그는 허브를 우주선으로 상상했습니다.  작은 비행선을 의미하는 Pod 를 타고 우주선을 떠날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모선 우주선으로 돌아와서 연료공급도 받고, 식량도 얻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즉, 맥이 모선이 되고, 현재 개발되는 음악재생기는 Pod 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드웨어 제품을 보자마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연상되었다는 그는 'iPod' 라는 이름이 강렬하게 끌렸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름을 정하는 회의가 시작되자, 비니 치에코의 팀은 수십 가지 이름의 후보들을 나열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일단 후보와 탈락시킬 이름들을 골라내었는데, 실망스럽게도 스티브 잡스는 'iPod'는 탈락시키는 이름으로 분류하였습니다.  회의 막바지가 되자, 스티브 잡스는 팀원들의 개인적인 의사를 물었습니다.  이때 비니 치에코는 탈락시킨 이름으로 분류된 'iPod'를 다시 끄집어내어 스티브 잡스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확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생각해 보겠다는 말과 함께 회의실을 떠났는데 머지 않아 아이팟으로 새 제품의 이름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애플이 제품명을 상표로 등록하려고 알아보니 2000년 7월 24일에 이미 'iPod' 이라는 상표를 등록한 것이 알려집니다. 이 때에는 인터넷 키오스크 프로젝트를 위해 등록했던 것인데, 스티브 잡스도 몰랐고, 비니 치에코도 몰랐던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아이팟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그동안 PC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혈전으로 지쳐있던 애플에게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가 되면서 새로운 사용자들, 그리고 그들의 생활을 디자인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시작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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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iPod 모델 from Wikipedia.org


IT 삼국지, 오늘은 2001년 애플의 중흥을 이끌게 되는 제품 아이팟(iPod)의 탄생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아이팟 프로젝트를 총지휘 하였지만 2인자로 남고 싶지 않았고 팜의 회장을 거쳐 현재는 HP에서 중요한 요직을 맡고 있는 애플 출신의 장수 존 루빈스타인(Jon Rubistein)을 소개합니다.


존 루빈스타인, 애플의 중흥을 책임지다.

2001년 1월 애플은 $1억 9,500만 달러의 손실을 발표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CEO로 복귀한 뒤 기록한 기록적인 손실이었습니다.  아이맥의 성공으로 애플이 다시 PC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전체적인 대세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이 때 스티브 잡스가 선택한 것은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MP3 기기 산업으로 진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산업은 애플보다 되려 우리나라의 아이리버나 미국에서도 작은 벤처기업들이 먼저 시작한 분야입니다.  애플은 MP3 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사운드잼 MP라는 음악재생기의 라이센스를 획득하고, 이 기기의 프로그래밍을 담당했던 제프 로빈(Jeff Robin)이라는 엔지니어를 영입합니다.  제프 로빈의 활약으로 음악과 관련한 애플의 플랫폼이 되는 아이튠즈(iTunes)를 2001년 1월 맥월드 엑스포에서 발표하고 뒤를 이어 하드웨어 개발에 착수합니다.   

이 사업의 책임자로 임명된 것이 바로 10년 이상 애플의 하드웨어 사업을 이끌었던 존 루빈스타인(Jon Rubinstein)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얼마나 새로운 음악재생기 사업을 중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존 루빈스타인은 잡스가 애플을 떠나 설립했던 넥스트(NeXT)에서 하드웨어를 담당했던 사람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를 하면서 존 루빈스타인도 자연스럽게 애플에 합류를 하면서 애플 하드웨어 개발의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2004년이 되면서 애플은 아이팟 부문과 매킨토시 부문을 분리하게 되는데, 존 루빈스타인은 아이팟 부분의 총책임자가 됩니다.  


애플 하드웨어 개발 프로세스를 장악한 카리스마

1997년 애플에 합류하자 마자 루빈스타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제품 라인과 하드웨어 개발 프로세스를 장악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애플은 15가지가 넘는 제품들을 각각의 독립적인 개발 프로세스와 생산라인을 통해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복수의 개발팀은 제대로 소통을 하지 않았고, 각각의 부품들은 공통적인 요소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루빈스타인은 이렇게 중구난방이었던 개발 프로세스와 제품생산과 관련한 프로세스를 완전히 정리합니다.  제품의 연구개발과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거의 절반 가까이 절감합니다.  

1998년에는 애플의 최대 히트작 중의 하나인 아이맥이 선을 보입니다.  루빈스타인은 아이맥 하드웨어 부분을 총괄하면서 11개월 만에 출시할 수 있는 제품개발 완료를 하는 괴력을 보입니다.  이는 과거의 애플 개발진으로서는 엄두도 못낼 엄청난 속도였다고 합니다.  단순히 몇 개의 옵션이나 주변기기를 추가한 것이 아니라 USB를 중심으로한 주변기기 표준의 변경, 플로피 디스크를 없애는 등의 굵직한 혁신을 만들어낸 제품인 아이맥은 조너던 아이브와 존 루빈스타인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이팟 성공의 열쇠가 된 초소형 HDD와 스크롤 휠

아이팟의 하드웨어를 고민하던 존 루빈스타인이 "빙고"를 외치게 된 사건은 일본에서 벌어집니다.  2001년 2월 도쿄에서 열린 맥월드 엑스포에 참가하던 그는 매킨토시 HDD를 공급하는 업체인 도시바(Toshiba)를 방문했다가 1.8인치 HDD를 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노트북에 집어넣은 HDD도 2.5인치 정도면 충분했기 때문에, 도시바 조차도 이렇게 작은 HDD를 어디에 쓸지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존 루빈스타인은 이를 보는 순간 바로 새로운 아이팟에 대한 감을 잡았다고 합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바로 스티브 잡스에게 보고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팟의 하드웨어 디자인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드웨어 디자인을 위해 필립스와 제너럴 매직의 휴대용 기기 제작으로 유명한 엔지니어인 토니 파델(Tony Fadell)을 고용하고, 아이팟 팀을 구성했는데 이 팀은 철저히 비밀리에 작업을 수행하였습니다.

초소형 HDD가 기본을 제공했다면, 아이팟을 다른 제품과 차별화시킨 스크롤 휠은 의외로 애플의 마케팅 책임자인 필 실러가 제안한 것입니다.  사실 단순해 보이지만 참신한 인상을 준 이 스크롤 휠 아이디어는 아이팟 성공의 가장 큰 효자가 되었습니다.  

루빈스타인은 단순히 아이팟을 단일기기로 성공시키게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곧 이어 아이팟에 의한 2차시장과 그 생태계의 중요성을 파악한 루빈스타인은 스피커, 충전기, 각종 도킹 포트, 그리고 백업 배터리 등과 같은 수많은 액세서리 마켓을 집중 공략합니다.  이를 통해 구성된 아이팟 생태계는 매년 $10억 달러이상의 매출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아이팟 제외하고).


영원한 2인자로 있을 것인가?  

이렇게 승승장구했던 존 루빈스타인이 어째서 애플을 떠났을까요?  넥스트에서부터 스티브 잡스와 함께 했고, 그를 따라 애플을 최고의 기업으로 성공시킨 사나이가 애플을 떠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아이폰(iPhone)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이폰의 개발과정에도 깊이 관여하던 존 루빈스타인은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 제품의 개념 정립에서부터 세세한 제품개발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스티브 잡스의 간섭을 참지 못했습니다.  존 루빈스타인은 아이폰을 자신의 개념에 맞추어 새로운 미래를 여는 스마트 폰의 형태로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일부 비전이 스티브 잡스와 달랐습니다.  

사실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보지 않는 이상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아이폰 개발을 하면서 루빈스타인이 더 이상 잡스의 그늘에서 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애플이라는 선망의 대상 기업에서 1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상을 누릴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스타일로 세상을 호령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팜(Palm)의 중흥을 책임지다.

존 루빈스타인은 아이팟의 대성공을 뒤로 하고 2007년 애플의 가장 큰 경쟁자가 될지도 몰랐던 팜(Palm)의 회장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는 자신의 역량을 총 동원하여 2008년 월스트리트 최고의 벤처 캐피탈 중의 하나인 엘리베이션 파트너에서 $3억 2500만 달러의 투자를 결정하게 만듭니다. 

2009년 CES에서 내놓은 팜프리(Palm Pre)는 그의 이러한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 역작이었지만, 아이폰의 아성을 뚫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개발한 WebOS 의 가능성과 팜이라는 회사가 가지고 있는 무수한 특허를 무기로 앞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 양쪽에서 애플과 구글의 아성을 위협할수도 있는 HP가 팜을 인수하면서, 동시에 존 루빈스타인을 중용하고 있기에 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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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최근에 있었던 애플의 신제품 발표에서 아이팟 나노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유심히 보지 않았다.  아래 사진과 같이 기껏해야 아이콘 4개 정도가 표시될 수 있는 터치 스크린에 iOS(iOS와 유사한 운영체제. 공식적으로는 iOS가 아니라고 발표)를 설치하고,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과다하는 느낌을 받았고, 그렇게 작은 화면에 무엇을 할 수 있으랴?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Captured from Apple.com


그런데, 제일 위 사진에서의 손목밴드 악세서리를 포함한 소위 iWatch(?)를 구현한 것을 보고는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제품은 또다른 스크린 간 연계 플레이와 매우 작은 손목시계 디스플레이 크기를 통한 또다른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이 시계를 보면서 여러가지 상상을 하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가능성들이 금방 떠오르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의 상상에서 나온 것이 이 정도이니 여러 사람들이 시간을 가지고 고민하게 되면 과연 우리들이 어떤 새로운 경험을 가질 수 있을까?  


아이팟 나노는 단순한 음악용 기기가 아닌 새로운 휴대용 인터넷 기기

아이팟 나노는 아이폰, 아이팟 터치와 같은 iOS (고급 터치기반 운영체제)가 설치되어 있으며, 기본적인 MP3 플레이 뿐만 아니라 나이키+ 와 같이 운동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들어가 있다.  당연히 멀티터치도 지원된다.  현재는 블루투스나 WiFi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있지만, 2세대에 무선 환경을 지원하기 시작하면 정말 별별 악세서리나 응용사례가 나올 듯 싶다.

일단 다양한 손목밴드 악세서리 시장이 커질 수 있다.  또한 종별로 다양한 시계의 스킨이나 앱들이 개발되어 유통될 것으로 보이는데, 시계의 기능도 굉장히 독특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질 수 있을 것이다.  손목밴드는 패션형도 있겠지만, 기능적으로도 다양한 것들을 개발할 수 있을 듯 하다.  예를 들어, 배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손목밴드 배터리겸 시계줄의 역할을 하는 것이 나올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앞서 언급한 블루투스나 WiFi 등의 기능을 보강하고, 마이크가 탑재된 손목밴드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iWatch 는 아주 간단한 예를 보여준 것 뿐이다.


아이폰, 아이패드 등과의 연계 플레이

이런 무선 기능과 마이크가 탑재가 된다면, 주머니 속에 아이폰을 가지고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테더링이 될 수도 있고, 마이크를 통해 아이폰에게 명령을 내릴 수도 있게 된다.  손목시계처럼 들어올려서 명령을 내리고, 이를 전달하면 자연스럽게 아이폰이 명령을 수행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들은 같은 운영체제에서 같은 방식으로 개발할 수 있으므로, 두 군데에 설치해서 연계하는 종류의 시나리오는 정말 셀 수 없이 많이 나올 수도 있다.  아래 그림과 같이 자이언트 로보의 쿠사마 다이사쿠가 로보를 움직이기 위해 손목시계에 명령을 외치는 것이 꿈이 아닐지도 모르는 것이다.




물론 소설같은 이야기이고, 이렇게 진행되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악세서리 시장과 이런 앱들을 창조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가능한 스토리이다.  하지만, 앞으로 추가적인 2~3세대가 나오고 실제로 구현될 가능성은 개인적으로 꽤나 높다고 생각한다.  아이팟 나노도 나름 커다란 혁신적인 경험을 끌어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애플 측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개발도구 지원 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결국 애플의 노력보다는 이런 가능성을 보고 뛰어드는 개발자들과 주변기기를 만들어내는 곳들에게 달렸지만, iWatch 를 보면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혁신의 바람이 나타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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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nhart from Flickr


애플 태블릿의 출시 루머가 점점 구체화되고 강해지고 있습니다.  Wired와 Financial Times에서 자세히 다루기 시작했네요.  특히 파이낸셜 타임즈에서는 9월 출시 확정이라는 보도를 냈습니다.  매년 9월에 발표하는 새로운 아이팟 출시에 맞추어 나올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원문 기사는 아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10인치 스크린에 전화기능은 없습니다.  뮤직 앨범 기능이 포함되고, 전자책 시장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FT에 따르면 현재 출판업계와 애플이 협상 중에 있다고 합니다.  가장 문제가 될 가능성이 많은 배터리 부분에 있어 애플이 많은 신경을 쓰고 있으며, 킨들에 비해 월등한 컬러와 고해상도 스크린을 가지고 현재의 킨들 독주 체제를 끝낼 유력한 후보로 보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최대 출판업체인 반즈앤노블(Barns and Noble) 역시 자체적으로 출시할 플라스틱 로직의 eReader와 함께 애플의 파트너가 될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컬러화면과 무선 인터넷 기능이 복합된다면, 단순히 전자책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볼 때에도 끝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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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있었던 라스베가스 CES 미팅 최대의 화제작인 팜프리의 발표와 뒤를 이은 아이폰과의 특허분쟁으로 애플과 팜의 자존심 및 감정싸움이 극에 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는데요 ...  여기에는 애플 아이팟 프로젝트 부분의 총책임자였고 애플의 모든 하드웨어 관련 기술을 책임졌으며, 현재는 팜(Palm)의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존 루빈스타인(Jon Rubinstein)에 대한 애플의 불편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오늘은 아이팟을 대성공 시키고 아이폰이 탄생할 수 있었던 토양을 마련한 장본인이지만, 지금은 최대의 경쟁사에서 애플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존 루빈스타인에 대한 글을 써볼까 합니다.

관련글: 2009/01/23 - 점입가경의 아이폰과 팜프리의 전쟁, 특허분쟁으로 번지나?
         2009/01/22 - 미국 현지에서 팜프리의 돌풍이 심상치 않습니다.


베테랑 애플 하드웨어 책임자가 아이팟을 책임지다.

2001년 1월 애플은 1억 9,500만 달러의 손실을 발표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CEO로 복귀한 뒤 기록한 기록적인 손실이었습니다.  아이맥의 성공으로 애플이 다시 PC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전체적인 대세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이 때 스티브 잡스가 선택한 것은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MP3 기기 산업으로 진출하는 것 이었습니다.

이 산업은 애플보다 되려 우리나라의 아이리버나 미국에서도 작은 벤처기업들이 먼저 시작한 분야입니다.  애플은 MP3 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사운드잼 MP라는 음악재생기의 라이센스를 획득하고, 이 기기의 프로그래밍을 담당했던 제프 로빈(Jeff Robin)이라는 엔지니어를 영입합니다.  제프 로빈의 활약으로 음악과 관련한 애플의 플랫폼이 되는 아이튠즈(iTunes)를 2001년 1월 맥월드 엑스포에서 발표하고 뒤를 이어 하드웨어 개발에 착수합니다.  

이 사업의 책임자로 임명된 것이 바로 10년 이상 애플의 하드웨어 사업을 이끌었던 존 루빈스타인(Jon Rubinstein)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얼마나 새로운 음악재생기 사업을 중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존 루빈스타인은 잡스가 애플을 떠나 설립했던 넥스트(NeXT)에서 하드웨어를 담당했던 사람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를 하면서 존 루빈스타인도 자연스럽게 애플에 합류를 하면서 애플 하드웨어 개발의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2004년이 되면서 애플은 아이팟 부문과 매킨토시 부문을 분리하게 되는데, 존 루빈스타인은 아이팟 부분의 총책임자가 됩니다. 


애플 하드웨어 개발 프로세스를 장악한 카리스마

1997년 애플에 합류하자 마자 루빈스타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제품 라인과 하드웨어 개발 프로세스를 장악하는 것 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애플은 15가지가 넘는 제품들을 각각의 독립적인 개발 프로세스와 생산라인을 통해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복수의 개발팀은 제대로 소통을 하지 않았고, 각각의 부품들은 공통적인 요소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루빈스타인은 이렇게 중구난방이었던 개발 프로세스와 제품생산과 관련한 프로세스를 완전히 정리합니다.  제품의 연구개발과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거의 절반 가까이 절감합니다. 

1998년에는 애플의 최대 히트작 중의 하나인 아이맥이 선을 보입니다.  루빈스타인은 아이맥 하드웨어 부분을 총괄하면서 11개월 만에 출시할 수 있는 제품개발 완료를 하는 괴력을 보입니다.  이는 과거의 애플 개발진으로서는 엄두도 못낼 엄청난 속도였다고 합니다.  단순히 몇 개의 옵션이나 주변기기를 추가한 것이 아니라 USB를 중심으로한 주변기기 표준의 변경, 플로피 디스크를 없애는 등의 굵직한 혁신을 만들어낸 제품인 아이맥은 조너던 아이브와 존 루빈스타인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이팟 성공의 열쇠가 된 초소형 HDD와 스크롤 휠

아이팟의 하드웨어를 고민하던 존 루빈스타인이 "빙고"를 외치게 된 사건은 일본에서 벌어집니다.  2001년 2월 도쿄에서 열린 맥월드 엑스포에 참가하던 그는 매킨토시 HDD를 공급하는 업체인 도시바(Toshiba)를 방문했다가 1.8인치 HDD를 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노트북에 집어넣은 HDD도 2.5인치 정도면 충분했기 때문에, 도시바 조차도 이렇게 작은 HDD를 어디에 쓸지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존 루빈스타인은 이를 보는 순간 바로 새로운 아이팟에 대한 감을 잡았다고 합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바로 스티브 잡스에게 보고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팟의 하드웨어 디자인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드웨어 디자인을 위해 필립스와 제너럴 매직의 휴대용 기기 제작으로 유명한 엔지니어인 토니 파델(Tony Fadell)을 고용하고, 아이팟 팀을 구성했는데 이 팀은 철저히 비밀리에 작업을 수행하였습니다.

초소형 HDD가 기본을 제공했다면, 아이팟을 다른 제품과 차별화시킨 스크롤 휠은 의외로 애플의 마케팅 책임자인 필 실러가 제안한 것입니다.  사실 단순해 보이지만 참신한 인상을 준 이 스크롤 휠 아이디어는 아이팟 성공의 가장 큰 효자가 되었습니다. 

루빈스타인은 단순히 아이팟을 단일기기로 성공시키게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곧 이어 아이팟에 의한 2차시장과 그 생태계의 중요성을 파악한 루빈스타인은 스피커, 충전기, 각종 도킹 포트, 그리고 백업 배터리 등과 같은 수많은 액세서리 마켓을 집중 공략합니다.  이를 통해 구성된 아이팟 생태계는 매년 $10억 달러이상의 매출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아이팟 제외하고).


영원한 2인자로 있을 것인가? 

이렇게 승승장구했던 존 루빈스타인이 어째서 애플을 떠났을까요?  넥스트에서부터 스티브 잡스와 함께 했고, 그를 따라 애플을 최고의 기업으로 성공시킨 사나이가 애플을 떠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아이폰(iPhone)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이폰의 개발과정에도 깊이 관여하던 존 루빈스타인은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 제품의 개념 정립에서부터 세세한 제품개발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스티브 잡스의 간섭을 참지 못했습니다.  존 루빈스타인은 아이폰을 자신의 개념에 맞추어 새로운 미래를 여는 스마트 폰의 형태로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일부 비전이 스티브 잡스와 달랐습니다. 

사실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보지 않는 이상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아이폰 개발을 하면서 루빈스타인이 더 이상 잡스의 그늘에서 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애플이라는 선망의 대상 기업에서 1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상을 누릴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스타일로 세상을 호령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팜(Palm)의 중흥을 책임지다.

존 루빈스타인은 아이팟의 대성공을 뒤로 하고 2007년 향후 애플의 가장 큰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는 팜(Palm)의 회장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는 자신의 역량을 총 동원하여 2008년 월스트리트 최고의 벤처 캐피탈 중의 하나인 엘리베이션 파트너에서 $3억 2500만 달러의 투자를 결정하게 만듭니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엘리베이션 파트너는 팜 프리의 성공을 확신하고 최근 추가로 $1억 달러의 투자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애플에서 특허와 관련한 커다란 송사를 치루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미 철저히 대비를 해 놓은 상태이기도 하고, 어쩌면 이미 팜에서는 특허분쟁을 통해 애플에게 지불해야할 라이센스 비용을 계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09년 CES에서 내놓은 팜프리(Palm Pre)는 그의 이러한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 역작입니다.  팜이 자랑으로 여기던 운영체제도 리눅스 기반으로 완전히 뜯어고치고, 아이폰 이상의 인터페이스를 선보인 팜프리는 아마도 올해 스마트 폰 전쟁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다크호스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벤처캐피탈에게서 최고의 성공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아직까지 소비자들로부터 선택을 받은 것은 아니기에 그의 성공을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그가 애플에서 이룩했던 수 많은 전과를 고려할 때 과거 팜이 누렸던 영화를 되찾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입니다.  많은 이들의 우상인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경쟁자가 되어 버렸기에 만인의 공적이 되어버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루빈스타인이 꼭 성공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과 같은 난세에는 새로운 성공신화를 이룩하는 영웅이 하나라도 더 나와야 하니까요 ...

마지막으로 CES에 공개되었던 팜 프리의 데모 동영상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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