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e Wozniak'에 해당하는 글 2건




영원한 괴짜 스티브 워즈니액

애플 II의 아버지인 스티브 워즈니액은 사실 상 애플 II의 모든 것을 창조한 슈퍼 엔지니어입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과 게임 등 모든 면을 거의 혼자서 다 해치우던 그의 능력은 아직까지도 어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경지에 있었습니다.  그만큼 전설적인 인물이었지만, 다른 모든 사회생활과 관련한 부분은 글자그대로 '괴짜' 인생입니다.  

최근에도 매일같이 세그웨이(Segway)라는 외발 전동차를 타고서 실리콘 밸리 주변에서 출몰하며, 얼마전 아이패드가 출시되는 날에도 이것을 타고 줄을 서서 아이패드를 사가지고 떠나는 그의 모습이 언론에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어찌보면 그처럼 즐겁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애플 II 의 대성공과 함께 1980년 애플의 기업공개로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은 그동안 같이 일을 해온 동료들에게 매우 다른 행동을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스톡옵션을 애플의 다른 직원들과 나누기를 거부하였지만, 워즈니액은 "The Woz Plan" 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스톡옵션의 상당한 양을 거의 공짜에 가까운 수준으로 직원들에게 나누어줍니다.  그만큼 그는 어찌보면 돈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습니다.

1981년 2월, 스티브 워즈니액은 자신의 비행기를 몰고 산타크루즈 스카이파크에서 이륙하는 순간 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사실 스티브 워즈니액은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는 법적인 면허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비행기 조종에 익숙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이 사고는 자신이 자초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사고로 스티브 워즈니액은 병원신세를 지게 되는데, 특히 특이한 형태의 기억상실증을 한동안 앓게 됩니다.  특히 비행을 했던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고, 사고상황도 기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심지어는 자신이 병원에서 머물던 시기의 일도 한동안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단기기억의 문제가 심각해서, 어딘가로 이동한 뒤에 자기가 왜 그곳에 왔는지를 자꾸 잊어버리고, 날짜 감각도 없어졌습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스티브 워즈니액을 극진히 도와주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캔디스 클락(Candice Clark)이라고 하며 애플 창업시절 회계를 맡았던 여직원입니다.  그녀의 정성으로 애플 II 컴퓨터 게임과 과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티브 워즈니액은 결국 기억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두 커플은 그해 연말 결혼에 골인합니다.  그렇지만, 스티브 워즈니액은 캔디스 클락과 결혼하기 전에 이미 한 차례 결혼한 전력이 있으며, 그 이후에도 여러차례 결혼을 합니다.  워낙 성격이 한 여자와 오랫동안 같이 살기는 어려웠던 듯 합니다.


스티브 워즈니액, 애플을 떠나다.

비행기 사고 이후, 스티브 워즈니액은 바로 애플로 복귀하지 않고 UC 버클리로 돌아가서 못 끝낸 학업을 계속합니다.  이 때에도 그의 장난기는 여전해서, 학교에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대신 "Rocky Raccoon Clark" 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씁니다.  여기에서 Rocky 는 그가 기르던 개의 이름이고, Clark 은 부인의 과거 성입니다.  그는 결국 1986년 UC 버클리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합니다.  학교를 2년 정도 다니다가, 다시 애플에 1983년 복귀하면서 학교생활과 병행을 하기로 결심하는데, 애플로 돌아온 뒤에는 더 이상 자신이 엔지니어로서 애플에 별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스티브 잡스가 진행하면서 기존의 애플 II 팀과 라인업에 대한 지나친 공격과 애플 II와 함께 했던 많은 동료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애플에 대한 마음을 슬슬 접기 시작하였습니다.

스티브 워즈니액은 1987년 2월 6일, 12년 동안의 애플에서의 상근 지위를 벗어 던집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는 애플의 파트타임 고용자로 남아있으며, 가장 중요한 주주이기도 합니다.  또한, 스티브 잡스와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자주 만나고 있으며, 후방에서 애플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사람입니다.


괴짜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다.

애플을 떠난 스티브 워즈니액은 CL 9 이라는 벤처회사를 설립합니다.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유니버설 리모트 컨트롤러를 1987년에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그와 함께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2001년에는 Wheels of Zeus(WoZ) 라는 회사를 설립해서 무선 GPS 기술을 개발하였으며, 2002년에는 Ripcord Networks 라는 통신관련 벤처회사의 이사회에 참여하는등 독특한 벤처회사들의 경영에 참여를 많이 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전재산을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교육과 관련한 사업에 기부합니다.  이를 통해, 이들 학교에 기술과 관련한 교육과정을 만들었고, 자신이 직접 가르치는 일에도 뛰어들었습니다.  또한, Un.U.Son. (Unite Us In Song) 이라는 기구를 발족하여 2개의 축제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이름을 딴 Stephen G. Wozniak Achievement Awards (흔히 Wozzie Award 라고 합니다) 를 만들어서, 컴퓨터를 이용해서 비즈니스나 예술, 음악 등에 혁신을 일으킨 샌프란시스코 연안 지역 6개 고등학교와 대학교 학생들에게 상을 주고 있습니다.  산호세에는 Children's Discovery Museum 이 있는데, 그는 이 박물관의 주된 기부자이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린아이와도 같은 그의 기행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운 기억을 안겨주고는 했습니다.  테트리스와 같은 종류의 게임을 하면 언제나 세계 랭킹 1위에 올랐으며, 하도 그런 경우가 많아서 가명을 많이 쓰기로도 유명했고, 얼마 전에는 "Dancing with Stars" 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멋진 춤실력을 뽐내기도 하였던 스티브 워즈니액, 그는 영원히 역대 최고의 엔지니어로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입니다.

(후속편에 계속 ...)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WRITTEN BY
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받은 트랙백이 없고 ,

from Wikipedia


천재들의 전설적 컴퓨터 모임, 홈브루 컴퓨터 클럽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은 홈브루 컴퓨터 클럽이라는 전자제품 매니아들의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이 클럽은 다양한 전자관련 부품들이나 회로, 그리고 정보를 교류도 하고, 컴퓨터 관련 장비를 직접 조립도 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는데, 고든 프렌치(Gordon French)의 차고에서 1975년 첫 모임을 가지고 비정기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이때의 멤버들은 아직도 정기적인 미팅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지만, 이들의 수준은 정말 당대 최고였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Altair 8800 컴퓨터가 나온 뒤에는 이와 유사한 컴퓨터를 조립하거나, 프로그래밍에 대해서도 논의를 하였으며, 가끔씩 발행하는 뉴스레터는 실리콘 밸리의 문화를 만드는 데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특히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라는 아이디어를 확산시키고 후에 애플 컴퓨터가 출범하게 되는데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를 하였습니다.

이 컴퓨터 클럽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스티브 워즈니액이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하드웨어 디자인, 조립실력과 컴퓨터 프로그래밍 능력으로 클럽 멤버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애플 컴퓨터, 드디어 깃발을 올리다.

이렇게 새로운 컴퓨터 시대를 맞이하여, 스티브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생각에 스티브 워즈니액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서 컴퓨터를 설계하고, 차고에서 컴퓨터를 조립했습니다.  그러면서, 1976년 로널드 웨인(Ronald Wayne)과 함께 3명이서 애플 컴퓨터의 깃발을 올립니다.  로널드 웨인은 아타리에서 스티브 잡스와 일을 했었고, 스티브 워즈니액의 기술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첫번째 애플 로고도 그리고, 애플-1 의 매뉴얼을 작성하는 작업과 각종 계약서를 작성하는 등의 실무를 맡았습니다.  그러면서 애플의 주식 10%를 가졌는데, 2주 뒤에 성공을 확신하지 못하고 $800에 자신의 주식을 매각하고 애플을 떠납니다. 웨인은 당시 상황에서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지만, 현재의 애플이라는 회사의 가치를 생각하면 아마도 마음이 많이 상할 것 같습니다.

스티브 워즈니액은 스티브 잡스의 차고에서 만든 애플 I 퍼스널 컴퓨터 키트를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 처음으로 소개합니다.  애플-1 은 Altair 8800과 비슷한 형태를 가졌는데, 내부에 확장 카드를 꽂을 수 있도록 하였고, $25 정도하였던 MOS 6502 라는 CPU를 가졌으며, 256 바이트의 ROM과 4K~8K 바이트 RAM을 가졌습니다.  디스플레이 컨트롤러는 40열에 24개의 행을 표시할 수 있었는데, 케이스나 파워, 키보드, 디스플레이 등도 없이 보드만 판매하는 형태였습니다.  사실 스티브 워즈니액은 애플 컴퓨터에 Altair 가 사용한 인텔의 8080 칩을 쓰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가격이 무려 $179 달러나 하였기 때문에 포기를 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모토롤라의 6800 을 고려하였지만, 역시 최고로 낮출 수 있는 가격이 $175 달러나 하였습니다.  결국 애플이 이름없는 회사의 기능도 많이 떨어지는 CPU인 6502를 채택한 것에는 월등히 싼 가격이 한 몫을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6502는 6800 CPU와 상당히 기능적으로 비슷하였고, 4KB RAM 에 올라가서 동작하는 BASIC 인터프리터를 만들어서 올리고 판매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실리콘 밸리의 여러 컴퓨터 가게들을 돌아다니면서, 애플 컴퓨터를 보여주고 주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가격은 $666.66 달러로 결정하였는데, 그 의미와 애플의 로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이 연재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제품을 주문한 곳은 바이트(Byte) 라는 가게를 새로 열려고 했던 폴 터렐(Paul Terrell) 이었습니다. $500 달러에 50대의 애플-1을 구매하기로 하였는데, 문제는 애플이 100대를 제작할 수 있는 부품을 구하기 위한 자본금이 하였던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폭스바겐 미니버스를 팔았고, 스티브 워즈니액은 자신이 아끼던 HP의 최고급 공학용 전자계산기까지 팔았지만 돈이 부족했습니다.  그렇지만, 스티브 잡스는 특유의 영업력과 화술로 부품을 공급하는 가게들에게 신용으로 상당부분 부족한 부분을 메꾸었으며, 추가로 은행에서 $5,000 달러의 빚을 얻어서 부품을 구했다고 합니다.

스티브 워즈니액은 뛰어난 기술자였지만, 사람들하고 협상을 하거나 계약을 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였고, 그냥 컴퓨터와 기술이 좋아서 그것만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에 비해, 스티브 잡스는 재능있는 사람과 가능성을 볼 줄 알았고, 처음보거나 잘 모르는 사람도 잘 설득할 수 있는 화술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니아가 아닌, 일반인들을 위한 컴퓨터를 기획하다.

애플-1 은 200대 정도가 제작이 되었고, 약 10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대부분 판매가 됩니다.  애플-1 은 Altair 와 비교했을 때 그래도 사용하기 편리한 편이었지만, 조립이 간단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또한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BASIC을 이용하게 만들려면, ROM에 3K 정도 되는 16진수 바이트 코드를 입력해야 했는데, 적어도 20~30분 정도는 소요가 되는 작업이었고,  스티브 잡스는 이래서는 매니아들을 위한 컴퓨터는 될 수 있어도, 일반인들이 마음대로 쓰는 자신들이 꿈꾸던 세상을 위한 컴퓨터로서의 자격은 없다는 판단을 합니다.

애플-1 을 추가로 생산하기 보다는 사용자가 사용하기 편리한 형태의 컴퓨터 기술들을 스티브 워즈니액과 스티브 잡스는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초기 애플-1 판매에 큰 도움을 준 바이트 샵의 폴 터렐이 소비자 입장에서 원하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여러가지 기능개선이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카세트 테이프에 저장과 불러들이기가 가능하도록 카세트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고, 마더보드에 추가를 하였습니다.  여기에 워즈니액이 만든 BASIC 언어를 담아서 팔기 시작했으며, 폴 터렐은 나무로 만든 박스에 마더보드를 넣어서 애플-1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애플 II 는 처음부터 예쁜 플라스틱 케이스와 키보드가 통합된 형태로 디자인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스티브 워즈니액이 스티브 잡스와 아타리에서 진행했던 벽돌깨기(Breakout) 프로그램을 동작시킬 수 있는 하드웨어를 만들기 위해서 제일 먼저 컬러를 지원하기로 합니다.  이를 위해 라인을 그리고, 컬러를 바꾸는 등의 새로운 BASIC 언어들과 루틴들을 추가하고 동시에 소리를 내기 위한 사운드 작업과 본체에 스피커까지 달게 됩니다. 이처럼 애플 II는 게임을 좋아했고, 벽돌깨기 게임 프로젝트를 사랑했던 스티브 워즈니액에 의해 게임을 즐기기 쉬운 컴퓨터로 재탄생을 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다양한 기능들이 추가되면서 향후 애플 II 용으로 수많은 컴퓨터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애플 II가 PC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추가적으로 RAM 의 증설에도 신경을 썼는데, RAM 의 크기에 따라 다양한 가격의 제품들이 나오게 됩니다.  4KB 부터 최대 48KB 까지 메모리를 설치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무척 우스운 크기이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커다란 메모리 용량이었습니다.  16KB 의 RAM이 1977년 당시 $500 달러에 육박했기 때문에, 가장 커다란 가격의 압박요소가 되었는데, 경쟁사였던 코모도어(Commodore)의 PET나 라디오쉑(Radio Shack) 의 TRS-80 의 경우에는 개방형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스티브 워즈니액은 향후 확장이 가능하도록 마더보드를 제작함으로써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합니다.

스티브 워즈니액은 애플 II 에 8개의 확장 슬롯을 설계해서 마더보드에 통합시켰습니다.  이는 다른 경쟁제품들에 비해 강력한 차별점으로 부각되는데, 수많은 주변기기 제작회사들이 다양한 확장카드들을 만들면서 애플의 전성시기를 열었습니다.  사실 이때에도 스티브 잡스는 프린터와 모뎀을 위한 확장슬롯 2개 정도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불필요하며, 쓸데없이 제작비만 올리게 된다며 반대했지만 워즈니액은 HP 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확장성의 중요성을 강력히 주장하여 8개의 슬롯을 모두 지킬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개인적으로 저 역시 어렸을 때 애플 II 를 이용했는데, 애플의 개방형 아키텍처(Open Architecture)는 정말 강력한 생태계를 구성했고, 애플을 선택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개방형 철학에 대해 처음부터 긍정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럼에도 애플 II가 그렇게 개방적인 컴퓨터가 되었던 것은 스티브 워즈니액의 영향력이 당시에는 더욱 컸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액과는 달리 애플 II 가 정말 다른 컴퓨터들과는 차별화된 다른 모습을 가진 컴퓨터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스케치와 모형을 만들어 가면서, 기존의 각이 진 육면체 형태의 모습을 탈피한 새로운 컴퓨터의 모습을 디자인하는데 역량을 집중하였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전자제품 매니아들처럼 부품을 구해서 조립을 하거나, 케이스가 있어도 상자같은 형태에 나사가 여기저기 보이는 등 예쁘다는 것과는 엄청나게 거리가 먼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비대칭이면서도 날카로워 보이고, 기능성도 겸비한 케이스를 원했고, 나사가 하나도 겉에서 보이지 않는 케이스를 디자인하였습니다.  나사는 모두 바닥에 위치를 시켰고, 또한 누구나 쉽게 보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컴퓨터 케이스 뚜껑을 쉽게 열 수 있도록 하였으며, 확장슬롯에 카드를 새로 꼽는 작업이 간편한 디자인을 멋지게 해냅니다.  또한 키보드의 컬러와 파워, 냉각팬 등에도 대단한 신경을 썼습니다.  아타리에서 같이 일했넌 로드 홀트(Rod Holt)라는 아날로그 회로 전문가를 고영해서 경량의 파워와 냉각팬을 디자인하였는데, 그의 경량 파워 서플라이와 TV와의 인터페이스를 가능하게 만든 디자인은 애플 II의 경쟁력을 한층 높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애플 II 의 디자인은 정말 파격적인 것이었고, 이렇게 멋있어 보이는 외관역시 애플 II의 대성공에 한 몫하게 됩니다.


from Flickr by Marcin Wichary


이렇게 당대 최고의 천재인 스티브 워즈니액과 스티브 잡스가 각자 자신의 장점과 특기를 최대한 발휘하여 완성한 애플 II 컴퓨터는 1977년 4월 일반에 공개가 되면서, 아래와 같은 새로운 애플의 로고와 함께 전세계가 PC 열풍에 빠져들게 만들게 됩니다.




(... 후속편에 계속)


참고자료

Wikipedia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WRITTEN BY
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받은 트랙백이 없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