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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Marissa Mayer from Flickr by mikeabundo


IT 삼국지, 오늘은 구글 초창기 인재들이 몰려들던 시기를 배경으로 구글의 오늘날을 이끌어 낸 사람들을 몇 명과 초기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금발의 컴퓨터 우등생, 그리고 구글을 사랑한 무료봉사 학생

1999년초 팔로알토 근처로 구글이 이사를 한 이후, 탁구대와 마사지, 그리고 다양한 간식과 음료수들로 가득한 구글의 사무실에 금발의 미녀가 한명 찾아옵니다.  바로 현재 구글의 검색과 UX 부분의 부사장을 맡고 있는 마리사 마이어(Marissa Mayer) 입니다.  그녀는 당시 스탠포드의 컴퓨터과학과 석사 졸업반으로 구글의 엄격한 인터뷰를 통과하고 초기 구글의 20명의 직원들 중에서 첫번째 여성이 됩니다.  

마리사 마이어는 뛰어난 컴퓨터 과학자이자, 동시에 여성 특유의 꼼꼼함과 철저한 관리능력을 갖춘 인물이었기에 구글의 가장 중요한 검색과 관련한 책임을 떠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뛰어난 미모로 구글의 창업자 중의 한 명인 래리 페이지와 사랑에 빠져서 3년 정도 공개적으로 데이트도 하는 사이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현재는 헤어져서 각자의 삶을 잘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구글 내에서 가장 인정받고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이며, 특히 2명의 창업자와 CEO 인 에릭 슈미츠를 제외하면 구글 내에서 가장 주요 언론매체에 많이 노출되고, 커버 스토리에도 오르는 등 스타성까지 갖춘 인물입니다.

엔지니어들은 차고 넘쳤지만, 기술위주의 문화를 가진 구글이라는 회사에게 있어 경영부분은 정말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습니다.  초기 엔젤 투자자인 람 슈리람이 가끔씩 챙겨주기는 했지만, 두 명의 창업자들은 사업계획서가 뭔지도 모를 정도로 경영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때, 스탠포드 대학에서 생물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살라르 카만가르(Salar Kamangar)가 무료로 구글에 봉사하겠다며 찾아옵니다.  람 슈리람은 카만가르에게 사업계획 초안을 만들도록 지도를 하였는데, 그는 특히 "다른 회사들과 구글의 검색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멋지게 정리를 해내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신임을 얻게 되고, 결국 구글의 정식직원이 됩니다.  살라르 카만가르는 현재도 구글에서 제품관리(Product Management)의 부사장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경험있는 영업 부사장의 영입, 넷스케이프와의 협력

비록 살라르 카만가르가 사업계획은 작성했지만, 그도 역시나 학생이었고, 구글이라는 회사의 직원들은 너무나 어린 풋내기들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람 슈리람은 구글에 경험이 있는 전략가이면서 동시에 영업을 담당해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1998년 말 넷스케이프가 AOL에 매각되면서 넷스케이프에 있던 유능한 인재들 중에서 회사를 옮기려고 생각하던 오미드 코르데스타니(Omid Kordestani)가 람 슈리람의 레이다에 걸립니다.  오미드 코르데스타니는 넷스케이프의 사업개발 담당 부사장을 지냈고, 인터넷 사업의 영업에도 경험이 많았기에 구글의 영업담당 부사장으로서 적임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람 슈리람은 그를 두 명의 창업자에게 소개하지만 구글의 엔지니어를 우대하고, 경영자들을 우습게 보던 당시의 구글의 문화에서 오미드 코르데스타니는 면접을 치르면서 정말 많은 고초를 겪었다고 합니다.

5시간이 넘는 면접을 통해 이미 지칠대로 지치고, 2주가 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었기에 오미드 코르데스타니는 구글의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을무렵 구글에서 연락이 옵니다.  거기에 회사의 스톡옵션도 2%나 받으면서, 이후까지를 모두 감안하더라도 2명의 창업자와 CEO가 되는 에릭 슈미트를 제외하면 구글 전직원 중에서 가장 많은 주식을 가지게 되면서 구글의 IPO와 함께 억만장자 대열에 오릅니다.  그의 합류와 함께 구글의 형편없던 사업계획서는 제대로된 형태를 갖추게 되며, 이후 검색광고의 수익모델화가 진행되면서 수많은 광고주들을 유치하는 활약을 하면서 구글의 기술을 실제 수익과 연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는, 현재 구글 창업자들의 고문으로 활약하면서 아직도 구글의 경영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1999년 6월,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KPCB와 세콰이어 캐피탈의 투자유치 소식과 함께, 구글은 또 하나의 중요한 계약을 하게 됩니다.  바로 이렇게 어렵게 영입한 넷스케이프 출신의 오미드 코르데스타니가 당시 최고의 웹 브라우저의 하나였던 넷스케이프 브라우저의 기본 검색엔진으로 구글이 탑재될 수 있도록 AOL과 계약을 이끌어 낸 것입니다.  이를 통해 구글은 하루 3백만 건이 넘는 검색 건수를 기록하며,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지면서 급속도로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요리사 경진대회를 통한 전속 요리사의 채용

자금도 넉넉하고, 뛰어난 인재들을 채용하다보니 더 이상 팔로알토의 사무실은 비좁아서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미래를 감안하여 팔로알토를 떠나 마운틴 뷰(Mountain View)의 대로변에 있는 큰 건물을 하나 임대합니다.  문제는 번화가인 팔로알토의 사무실과는 달리, 마운틴 뷰의 새로운 캠퍼스에는 근처에 식당이 없어서 직원들이 차를 타고 식사를 하러 나가거나, 피자 등을 배달시켜 먹는 부실한 식사환경 이었습니다.

이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회사 내에 요리를 할 수 있는 전속 요리사를 두고, 직원들에게 최상의 요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곧바로 요리사 오디션 주간 아이디어가 실행에 옮겨지게 되는데, 입사를 희망하는 요리사들을 불러서 매일 몇 명의 요리사들이 자신들이 준비한 요리들로 직원들의 평가를 받고, 이를 바탕으로 전속 요리사를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엄격한 과정을 거쳐 선발된 구글의 1호 요리사는 바로 찰리 에이어스(Charlie Ayers) 입니다.  구글에 입사하기 이전 힐튼 호텔에서 요리를 배우고, 요리를 전공으로 대학을 다닌 이후, 캘리포니아에서 유명한 식당이었던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의 주방장이기도 하였던 그는, 구글의 매력에 빠져 어찌보면 모험일수도 있는 도전에 나서서 결국 커다란 성공을 이룹니다.  2006년 구글을 떠나기까지, 찰리 에이어스는 5명의 주방장과 150명의 요리사들을 지휘하는데, 구글 캠퍼스에 산재한 10개의 카페에서 매일 4,000 식이 넘는 음식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독립하여 자신만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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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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