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 최고의 히트작, 윈도 95 from Wikipedia.org


IT 삼국지, 오늘은 마이크소프트의 자랑이자 오늘날까지도 전설적인 소프트웨어로 자리잡고 있는 윈도 3.1, 윈도 95,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제품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의 탄생과 윈도 3.1

역대 최고의 킬러 소프트웨어는 무엇일까요?  이런저런 의견들이 많겠지만,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워드(Word)와 엑셀(Excel)이라는 소프트웨어가 포함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Microsoft Office)일 것입니다. IBM-PC가 세상을 장악할 초창기만 하더라도 MS-DOS 라는 운영체제만 공급했을뿐, 워드퍼펙과 로터스 1-2-3 가 막강한 위세를 떨치던 이 분야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를 발표하면서 대세를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는 1989년 처음으로 워드와 엑셀, 파워포인트 3종 세트를 묶어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스위트(suite)로 내놓게 됩니다.  이 소프트웨어 제품군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때마침 업그레이드된 윈도 3.0(1990), 윈도 3.1(1992)의 세계적인 히트와 함께 꾸준한 업그레이드를 단행하면서 단숨에 경쟁제품들을 제치고 최고의 소프트웨어로 사람들에게 선택되기 시작했습니다.

윈도의 경우에도 윈도 1.0 과 2.0 가 그다지 큰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윈도 3.1 에 이르러서는 가상메모리와 가상 디바이스 드라이버의 기능향상을 바탕으로 제대로된 멀티태스킹(multitasking,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수행하는 윈도의 핵심 기능)을 지원하면서 MS-DOS 가 가지고 있었던 근본적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이 팔리고 또한 성능을 향상을 가져온 윈도 3.1 이었지만, 결국에는 MS-DOS 위에서 돌아가는 응용 소프트웨어에 불과하였고, MS-DOS 자체의 문제로 인해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빌 게이츠는 과감히 MS-DOS 를 완전히 버리고, 윈도 중심의 운영체제 개발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1992년 윈도 95(Windows 95)에 대한 디자인과 계획을 수립 후 집중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최대의 히트작, 윈도 95의 탄생

윈도 3.1 을 출시한 직후,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서는 차세대 운영체제로 생각하고 개발을 진행시켰던 윈도 NT 3.1(코드명 카이로)의 미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대두됩니다.  기본적으로 워크스테이션급 이상에서 운용할 수 있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개념들이 많이 들어간 운영체제였지만, 1994년까지는 개발완료되기 어렵다는 지적들이 많이 나왔고, 실제로도 이 프로젝트는 1996년 7월이 되어서야 윈도 NT 4.0 이라는 이름으로 그나마도 혁신적인 개념이었던 객체지향 파일시스템은 제거하고 출시가 되었습니다.  

또한, 윈도 3.1 을 출시할 당시에 IBM 에서는 OS/2 2.0 을 발표하였고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는 32비트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하면서도, 윈도 그 자체가 직접적인 운영체제가 되서 MS-DOS 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동시에 비교적 저사양의 컴퓨터에서도 동작시킬 수 있는 운영체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코드명 시카고(Chicago)라는 프로젝트 팀을 발족하게 되었는데, 1993년 말 출시를 목표로 작업에 들어갑니다.  동시에 MS-DOS 7.0 을 같이 제공함으로써, 하위 호환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비록 원래 예정되었던 출시시기보다는 늦었지만, 윈도 95는 롤링스톤즈의 1981년 싱글히트곡인 "Start Me Up" 이라는 음악과 함께 대대적인 광고, 캠페인 운동과 함께 그 모습을 1995년 드러냅니다.  이 음악은 윈도 95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던 "시작(Start)" 버튼을 상징하였으며, 완전히 새로운 운영체제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대에 부응하듯, 윈도 95는 전세계적 히트상품이 됩니다.  윈도 3.1 까지만 하더라도 윈도는 MS-DOS 의 제약을 받는 반쪽짜리 절름발이라는 놀림을 받았고, 비록 MS-DOS 기반의 IBM-PC가 세계적인 히트를 했어도 일본에서는 NEC 라는 회사의 PC 에 밀려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윈도 95 는 일본시장에서의 NEC 의 아성마저 깨뜨리면서 명실상부한 운영체제 세계정복을 당성하게 됩니다.  뒤를 이어 윈도 95 만큼은 아니지만, 윈도 98 도 히트를 하면서 전세계 운영체제 시장의 95% 이상을 장악하였습니다.


비록 지나치게 독점적인 시장장악력과 오피스 뿐만 아니라, 윈도라는 운영체제의 힘을 빌어 이후 인터넷 익스플로러 끼워팔기 등으로 미래산업 전체를 과도하게 불공정하게 끌어간 탓에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가 많은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윈도 95의 개발과 그 성공의 이면에는 회사의 끊임없는 혁신과 대단한 노력이 들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윈도 95는 어찌보면 컴퓨터 관련 수많은 하드웨어들의 표준을 제시한 셈이며, 이렇게 많은 기기들을 표준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동작시킬 수 있었고, 우수한 개발도구를 활용한 멋진 소프트웨어들이 나올 수 있는 기초토양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우리 인류의 컴퓨터와 관련한 발전을 한단계 전진시킨 커다란 이정표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듯 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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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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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PC AT

애플 II 와 IBM-PC 의 출시, 그리고 1984년 1월 매킨토시의 등장까지 숨가쁘게 이어지던 애플과 IBM의 대결, 그리고 IBM과 IBM 호환기종의 성장과 함께 급부상하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대결은 1984년 이후 IBM 진영의 완승으로 귀결이 되면서 전세계 컴퓨팅 환경이 마이크로소프트와 IBM 호환기종 하드웨어 및 강력한 주변기기 회사들이 약진하게 됩니다.  오늘은 그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IBM-PC 의 진화, AT 의 등장과 MS-DOS 3.0

IBM-PC가 등장하면서 초기에는 상당한 고전을 합니다.  기존의 8비트 시장의 강자들이 많았고, 아직은 IBM이 파고들어갈 여지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XT 로 명명된 인텔 8088 CPU 를 기반으로한 컴퓨터와 호환기종들이 대규모 마케팅을 무기로 시장에 안착을 하면서 점점 IBM-PC 호환기종들이 컴퓨터 세상을 장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IBM-PC 계열이 다른 컴퓨터들을 제치고 독주체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84년 출시된 AT(Advanced Technology) 컴퓨터 부터입니다.  연초에 매킨토시가 출시되고, 초반 판매에 호조를 보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AT가 출시되면서 승부의 추는 기울기 시작합니다.

AT 컴퓨터에는 인텔의 차세대 CPU 인 6MHz 80286 CPU가 장착되었고, 1MB의 메모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AT 컴퓨터를 지원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MS-DOS 의 3.0 버전을 내놓게 되는데, 이 때부터 MS-DOS 도 안정성이나 기능성 측면에서 많은 진보를 한 것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5.25 인치 1.2MB 플로피 디스켓을 이용할 수 있었고, 20MB 하드디스크를 지원하였습니다.  같은 해 업그레이드 된 MS-DOS 3.1 은 네트워크 환경을 지원하였고, 1986년 발표된 MS-DOS 3.2는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지원하기 시작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출시

그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GUI 를 보고 그대로 흉내를 낸 윈도우즈 1.0 을 1985년 선을 보였습니다.  윈도우즈 1.0은 글자 그대로 마우스를 지원하는 초보적인 포인팅과 클릭만을 지원하는 수준으로 매킨토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 였습니다.  MS-DOS 3.0 위에서 동작하는 일종의 응용 소프트웨어의 형태였으며, 시장에서는 느리고, 무겁고, 버그가 많다는 혹평을 받으며 별다른 반응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의 역사의 시작은 1981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의 프로젝트 이름은 "Interface Manager" 라고 했다가, 1983년 11월 10일 외부에 해당 프로젝트를 공개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Microsoft Windows)"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했는데, 당시 내놓은 형태는 정말 매킨토시와 거의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이런 이유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가 예상보다 늦게 시장에 나온 원인이 되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에 대한 마이너 업그레이드를 계속 진행을 하면서, 시장의 반응을 떠보다가 1987년 2.0 버전을 내놓습니다.  윈도우즈는 멀티 태스킹을 지원하지만, 윈도우즈에서 동작하는 새로운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이 얼마나 만들어지느냐가 중요한 소프트웨어 였습니다.  그래서, 기존 DOS 용으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를 모두 재작성해야 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용되지 않았기에 초기 시장에서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과거 MS-DOS 시절에 프로그래밍을 할 때에는 MS-DOS 가 비디오나 그래픽 부분을 지원하는 것이 빈약했기 때문에, 보통 직접 비디오 메모리에 접근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마우스나 키보드 등의 주변기기도 직접 접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와 관련한 노우하우가 중요했고, 중요한 소프트웨어 기술이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윈도우에서는 자체적인 디바이스 드라이버를 이용해서 비디오 카드나 마우스, 키보드 등의 주변기기를 제어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더욱 편리한 프로그래밍 환경이라고 할 수 있지만, 워낙 느린 성능 때문에 초반에는 많은 엔지니어들에게 외면을 받았습니다.  


HP, 잉크젯과 레어저 프린터의 깃발을 올리다.

1984년 또 하나의 혁신은 HP가 일으킵니다.  당시의 컴퓨팅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프린터는 주로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가 주를 이루고 있었고, EPSON 과 같은 회사가 가장 큰 시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HP가 처음으로 잉크젯 방식의 프린터를 상용화하면서 프린터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잉크젯 프린터 기술자체는 1970년대에 개발되었는데, 상용화는 매우 늦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이 잉크를 분사하는 기술과 잉크 노즐 등과 같은 미세한 기술들이 불량이 많아서 실용화에 애를 먹었던 것인데 HP가 이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면서 프린터 시장의 혁신을 가져옵니다.  동시에 레이저 프린터도 내놓으면서 최고의 프린터 회사로 급부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레이저 프린터의 경우도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복사기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했던 제록스가 우위에 있었지만, 언제나와 같이 PC 시장의 선수를 HP에게 빼앗기면서 결국 기술의 우위를 지키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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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애틀로 옮긴 이후에 여러 8비트 컴퓨터 회사들의 BASIC 인터프리터를 구현하면서 점차 몸집이 커져갑니다.  그렇지만 엔지니어 위주의 회사가 몸집이 커지다보니 회사의 회계와 기본적인 관리를 포함한 경영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개발자 임금협상과 관련한 문제로 미국 노동중재위원회에 빌 게이츠가 불려가는 일까지 있으면서 전문경영인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 때 빌 게이츠가 선택한 인물이 바로 현재의 마이크로소프트 CEO로 있는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입니다.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보다 한살 어린 1956년 생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스티브 발머는 공부도 잘했지만, 하버드 대학의 미식축구 팀도 관리하고, 하버드 대학 학교신문인 하버드 크림슨(Harvard Crimson)에서도 일을 하는 등 매우 활발한 학교활동을 하였습니다.  빌 게이츠와는 기숙사에서 가까운 위치에 방을 얻어서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많은 접촉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하게 됩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스티브 발머는 2년간 세계적인 소매업체인 프록터앤갬블(Procter and Gamble, P&G)에서 일을 했는데, 그 당시 같은 사무실을 쓰던 제프리 이멜트(Jeffrey R. Immelt)는 훗날 GE(General Electric)의 CEO가 됩니다.  작은 사무실의 신입 동료들이 훗날 세계 최대의 회사의 CEO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P&G에서 나와 스탠포드 대학에서 MBA 과정을 이수하던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의 낙점을 받고 결국 스탠포드  MBA를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작은 회사에 자신의 미래를 거는 결정을 내립니다.

그를 합류시키기 위해 빌 게이츠는 정말 대단한 정성을 들였다고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빌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를 시애틀 친가에 초대를 해서 부모님들과 소개도 하고, 그를 위한 성대한 만찬을 열었습니다.  또한, 시애틀 관광도 같이하면서 하루종일 설득을 하였는데 빌 게이츠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에 홀딱 빠져들게 됩니다.  1980년 6월 11일, 스티브 발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24번째 직원이 되면서 개발자 위주의 조직인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관리를 전담합니다.  스티브 발머는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데 주식소유를 중시하였습니다.  자신도 입사를 하면서 1981년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의 8%를 소유하였고, 이후 스톡옵션을 고안해서 많은 직원들에게 회사에 헌신하고 동시에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심어주는데 그 결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식공개를 하면서 만 명이 넘는 직원들이 백만장자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BASIC 전도사, 엄청난 기회를 잡다.

빌 게이츠가 설립한 마이크로소프트는 Altair 8800 에서의 BASIC 언어 인터프리터를 구현한 것을 시작으로, 애플 II 의 애플소프트(Apple + Microsoft) BASIC 을 포함하여 당시 수많은 8비트 컴퓨터의 BASIC 을 구현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게 됩니다.   BASIC 언어는 익히기도 쉬워서 1970년대 후반 미국 정부에서는 컴퓨터 교육과정을 BASIC 을 중심으로 짜게 됩니다.  국내에서도 처음 8비트 컴퓨터 붐이 일었던 1980년대 초반 대부분의 컴퓨터 교육이 BASIC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거의 모든 컴퓨터에 우수한 BASIC 언어를 탑재해야하는 동력으로 작동하게 되고,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분야에서 최고의 회사로 인정받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의 비즈니스 환경은 결코 소프트웨어 회사들에게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돈은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컴퓨터 회사들이 많이 벌었고, 그렇게 많은 컴퓨터에 BASIC 언어를 구현했지만 1981년 MS-DOS 를 탄생시키기 전까지 마이크로소프트가 벌어들인 돈은 모두 합해서 500만 달러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비록 애플 II 가 가장 대표적인 컴퓨터로 이름을 날리고, 다양한 클론 제품군들이 나오면서 전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당시의 컴퓨터 환경은 글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습니다.  이 시기에 IBM이 1년간의 TFT를 통해 당시 호환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개방형 아키텍처와 호환기종이 쉽게 생겨날 수 있도록 한 정책, 그리고 범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 컨셉을 들고 나오면서 판세는 급격히 IBM으로 기울기 시작합니다.  IBM이 PC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많은 조언을 얻은 사람 중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있었습니다.  특히 CPU를 선정할 때에 인텔 8088 또는 8086 16비트 프로세서를 추천한 것도 빌 게이츠 였는데, 당시 가장 많이 이용되던 모토롤라 등의 CPU를 생각하던 IBM의 직원들을 논리정연한 설명으로 인텔 CPU를 채택해야하는 당위성을 설득시키면서 IBM의 PC 제작팀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드웨어의 구색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자, IBM은 운영체제를 놓고 오랫동안 고민을 하였습니다.  이 때에도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이 바로 빌 게이츠입니다.  빌 게이츠는 CP/M을 만든 게리 킬달이라면 새로운 인텔의 16비트 CPU에 최적화된 운영체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게리 킬달의 디지털 리서치를 소개합니다.  당시 게리 킬달의 CP/M 은 당대 최고의 운영체제로 애플 II 를 제외한 컴퓨터에서 거의 독보적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게리 킬달은 특히 비행기 광이어서 개인용 비행기를 사서 미국 전역을 날아다니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런 성격이 결국 거대한 기회를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주게 됩니다.  IBM과의 미팅약속을 해놓고도 게리 킬달은 자신의 비행기를 몰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고, IBM을 맞은 사람은 그의 아내인 도로시였습니다.  이 때부터 IBM의 감정은 상할데로 상한 상태였지만, CP/M이 워낙 마음에 들었기에 IBM은 디지털 리서치와 의견조율을 통해 CP/M을 IBM-PC에 맞게 개발하도록 대략적인 합의를 합니다.  그런데, 정작 계약은 엉뚱한데서 깨지게 됩니다.  IBM은 자신들의 PC 프로젝트의 기밀유지가 중요했기에 해당 프로젝트와 관련한 비밀준수게약을 디지털 리서치에 요구하는데, 디지털 리서치는 이런 요구가 자신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하고 계약 전체를 거부합니다.

IBM은 이 대목에서 디지털 리서치와 더 이상의 줄다리기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 게이츠를 불러서 혹시 운영체제를 개발해줄 수 없냐는 의사타진을 합니다.  당시의 빌 게이츠는 BASIC 인터프리터는 많이 개발했지만 정작 운영체제를 개발한 경험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면 대단한 모험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을 바꿀 기회가 왔다는 것을 직감한 빌 게이츠는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Seattle Computer Product, SCP)라는 회사가 CP/M을 기반으로 만든 86-DOS 라는 운영체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대담하게 이 제안을 받아 들입니다.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 빌 게이츠에게 넘어가다.

86-DOS는 인텔의 8086 16비트 CPU에 동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CP/M 기반의 운영체제입니다.  SCP는 자신들의 컴퓨터를 디자인하면서 디지털 리서치의 CP/M을 인텔 8086에 맞게 개발된 것이 있다면 채용을 하려고 했지만, 디지털 리서치는 계획만 발표하고 실제로 동작하는 운영체제의 출시를 차일피일 늦추고 있었습니다.  이에 SCP는 24세의 젊은 컴퓨터 천재인 팀 패터슨(Tim Paterson)을 고용하여 16비트 CP/M 운영체제를 개발하라고 합니다.

팀 패터슨은 오래된 CP/M 프로그램과 호환이 되는 API를 가지고 86-DOS를 디자인합니다.  동시에 CP/M을 쓰면서 불편했던 점들 개선하는 방향으로 운영체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CP/M의 파일 시스템 대신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텔 8086 CPU 용으로 개발한 BASIC-86이 가지고 있었던 FAT 파일 시스템을 채용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BASIC과의 호환성을 극대화 하였습니다.

IBM으로부터 일단 전권을 위임받은 빌 게이츠는 SCP와 협상을 통해 1980년 12월 $25,000 달러라는 헐값에 86-DOS에 대한 라이센스를 획득합니다.  1981년 5월 마이크로소프트는 팀 패터슨을 스카웃해서 IBM-PC가 채택한 8088 CPU에서 동작하는 운영체제를 개발하도록 하였습니다.  1981년 7월, IBM-PC가 출시되기 한달 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SCP로부터 86-DOS와 관련한 모든 권리를 $50,000 달러에 사들입니다.  이 때의 계약은 후일 SCP와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디지털 리서치 사이의 법정분쟁에서도 문제가 되는데, 마이크로소프트가 SCP 측과 계약을 할 당시 IBM과 진행하던 프로젝트 내용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IBM이라는 거대한 기업의 운영체제로 사용될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SCP의 사장은 너무나 싼 가격에 모든 권리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겨주게 된 것입니다.  법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의 계약관계를 SCP 측에 알릴 의무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을 숨기고 시장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계약을 한 것에 대한 도의적인 불만은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이 사건은 결국 마이크로소프트가 SCP 측에 100만 달러를 더 주는 수준에서 중재가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86-DOS를 IBM에게 라이센스를 주는 계약을 맺는데,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PC-DOS 1.0 입니다.  여기에 더해 마이크로소프트는 독점사용권과 일시불 계약을 원하던 IBM을 출시시간의 압박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독점도 주지 않고, 로열티 계약을 하는 대단한 성과를 올리게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BM의 개방형 정책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입게 됩니다.  이후 수많은 IBM-PC 호환기종들이 나오게 되는데, 이들에게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의 회사 이니셜을 딴 MS-DOS를 판매합니다.  MS-DOS는 PC-DOS와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운영체제로 오리지널 IBM-PC를 제외한 호환 컴퓨터에서 판매된 운영체제입니다.


디지털 리서치, 뒤늦은 후회와 잘못된 전략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어이없게 마이크로소프트에게 IBM의 운영체제 자리를 빼앗겨버린 디지털 리서치의 게리 킬달은 PC-DOS를 살펴 보다가 PC-DOS가 자신이 개발한 CP/M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그대로 복제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IBM을 지적재산권 침해로 고소하려고 하였으나, 디지털 리서치의 변호사는 IBM과의 송사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IBM과 어떤 형태로든 중재를 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을 권합니다.  이에 게리 킬달은 IBM과의 담판을 통해 자사의 CP/M-86 과 마이크로소프트의 PC-DOS 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데 합의합니다.  이 때만 하더라도 게리 킬달은 CP/M-86 이 안정성과 기능성 모두에서 PC-DOS 를 압도한다고 믿었고 그에 따라 자신의 승리를 자신하면서 가격정책을 결정합니다.

디지털 리서치가 IBM-PC를 구매할 때 옵션으로 CP/M-86 을 선택할 때 제시한 가격은 $240 달러였고, PC-DOS는 $60 달러에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기술적으로 CP/M-86 이 훨씬 나았고 게리 킬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비교가 안되는 운영체제라고 생각했겠지만, 소비자들은 저가의 PC-DOS를 대부분 선택합니다.  이와 함께 IBM 호환기종을 내놓은 업체들 역시 오리지널 IBM-PC 와의 완벽한 호환성을 위해서 대부분 MS-DOS 를 채택하면서 결코 저물지 않을 것 같았던 디지털 리서치의 CP/M 신화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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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국지 지형에 있어서, 1970년대 후반은 완전히 애플의 독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애플 II 시리즈의 성공은 과거 컴퓨터 제국의 중심에 있었던 IBM과 같은 거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데 충분했습니다.  1980년 12월 애플은 주식을 드디어 공개합니다.  애플이 주식을 공개할 당시 포드 자동차가 1956년에 기업공개를 한 다음으로 많은 자본을 유치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만큼 대단한 미래가치를 인정받았고,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은 엄청난 부와 명성을 손에 넣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처럼 이때부터 애플의 상승세가 꺽이기 시작했습니다.  애플 II 에 이어 1980년 5월에 내놓은 애플 III 는 시장의 반응을 거의 얻지 못하고 완전히 잊혀져 가고 있었으며, 그보다 무서운 것은 자신의 시장을 노리는 정말 무서운 거인의 참전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인, 드디어 움직이다.

애플이 약진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컴퓨터의 원조"라고 할 수 있었던 대표기업은 빅블루(Big Blue)라는 애칭으로도 유명한 IBM 이었습니다.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이 설립한 IBM 은 기술 분야 최초의 대형 기업으로 설립이후 시종일관 업계를 지배했습니다.  흔히 TJ 라고 알려진 토머스 왓슨 1세는 1914년 IBM의 전신인 ‘컴퓨팅-태뷸레이팅-레코딩(C-T-R) 회사’에 입사했다가 입사 11개월 만에 사장이 됩니다. 뛰어난 영업가 였던 TJ 는 용모와 태도가 반듯한 세일즈맨들을 중시했고, 성과 인센티브와 실적경쟁, 그리고 직원 단합대회나 가족동반 야유회 등과 같은 애사심을 고취시키는 전략을 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러한 그의 기업경영 전략은오늘날까지도 많은 기업들에게서 볼 수 있고 실제로 잘 먹히기도 합니다.

1924년 TJ는 회사의 이름을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로 바꾸고, 도표 작성기와 출퇴근 기록기, 타자기에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1930년대의 대공황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전자계산기를 개발했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공장들이 미국 정부 관할아래 폭격조준기나 라이플 총 같은 30여 종의 전쟁관련 물품을 생산했다고 합니다. 1940년대에는 아들인 토마스 왓슨 주니어가 회사의 경영 전면에 나섭니다.  1944년 IBM은 하버드 대학과의 연구성과로 "마크-1" 이라고 하는 자동 수열 제어 계산기(Automatic Sequence Controlled Calculator)를 개발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기억장치를 집어넣어서 전자계산기가 컴퓨터로 진화시키는 데에는 경쟁사인 레밍턴 랜드(Remington Rand)에게 뒤지게 됩니다.  레밍턴 랜드는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인 UNIVAC(Universal Automatic Computer)을 개발하여 IBM을 앞서 나갑니다.  이런 차이는 토마스 왓슨이 연구보다는 영업에 중점을 둔 경영을 하였기 때문인데, 왓슨 2세가 부사장자리에 오르면서 컴퓨터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서 상황을 역저시킵니다.  1952년 IBM은 학술연구와 국방부분에 널리 쓰이게 되는 IBM 701을 발표하면서 컴퓨터 산업을 다시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발표된 후속제품들도 큰 성과를 거두면서 "컴퓨터=IBM" 이라는 등식을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PC를 위시한 소형 컴퓨터의 부상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면서 자신들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컴퓨터 시장에서 애플을 비롯하여, 코모도어, 아타리, 탠디 등의 8비트 PC를 생산하던 업체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맙니다.  IBM이 작은 데스크탑 형태로 최초로 만들었던 컴퓨터는 1975년에 소개되었습니다.  IBM 5100 이라는 제품이었는데, 문제는 가격이었습니다.  무려 $20,000 달러에 이르는 기계였기 때문에 커다란 기업들이나 대학과 같은 곳들 이외에는 시장형성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PC 시장에 참전하기로 결정하면서 IBM의 행보는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IBM-PC의 등장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특성 상 기존의 팀을 운영해서 PC를 개발하기 보다는 새로운 디자인 프로세스와 패러다임에 적응하기 위해 IBM 내에 스페셜 팀이 구성이 됩니다.  이 프로젝트는 "프로젝트 체스(Project Chess)"로 명명되고, 돈 에스트리지(Don Estridge)를 중심으로 12명의 엔지니어와 과학자들로 구성됩니다.  이들은 딱 1년의 기간 내에 PC를 완성하라는 IBM의 지시를 훌륭하게 소화를 합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내놓기 위해서 돈 에스트리지는 모든 것을 직접 만들던 방식에서 벗어나서 기존의 존재하는 부품들을 모아서 생산하고, 외부의 자원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으로 선회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PC용 모니터와 프린터 디자인 등도 OEM을 활용하기 결정하는데, IBM Japan에서 개발했던 모니터와 Epson 의 프린터 모델 등을채용하였습니다. 또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개방형 아키텍처(Open Architecture) 였습니다.  이를 통해 특별한 라이센스 없이 각종 주변기기를 다른 회사에서 쉽게 생산할 수 있도록 하고, 소프트웨어도 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런 개념은 당시의 IBM 으로서는 대단한 혁신이었습니다.  개방형 아키텍처는 애플 II 역시 가지고 있었던 전략인데, IBM은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완전한 회로도와 ROM BIOS 소스코드 등을 포함한 IBM PC 기술 레퍼런스 매뉴얼까지 공개합니다.  이러한 준비과정을 거쳐 IBM은 1981년 8월 12일 역사적인 첫번째 PC를 출시합니다.

당시 IBM 으로서는 역사를 바꿀 수 있었던 몇 차례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최초에 고려되었던 CPU는 IBM이 자체개발한 RISC CPU 였던 801 프로세서였습니다.  이 CPU는 인텔의 16비트 CPU 였던 8088 보다 몇 배는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시간의 압박과 저렴한 가격을 맞추기 위해서 인텔과 손을 잡는 결단을 내립니다.  비슷한 이유로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MS-DOS를 채택하게 되는데, 당시 IBM에는 유닉스에 기반을 둔 MS-DOS 보다 훨씬 앞선 운영체제가 있었음에도 채택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때의 결정은 결국 세상을 크게 바꾸게 됩니다.  만약 이 때 IBM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CPU를 탑재하고, 유닉스 기반의 자체 운영체제를 내장해서 PC를 내놓았더라면 마이크로소프트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와 같은 개방형 정책은 수많은 제조사들이 BIOS를 역공학한 뒤에 IBM-PC와 호환이 되는 수많은 제품들의 탄생을 유도하게 되는데, 컬럼비아 데이터 프로덕트(Columbia Data Products)는 첫 번째 IBM-PC 호환기종을 1982년 6월에 발표하며, 뒤를 이어 컴팩(Compaq)이 11월에 포터블 제품을 발표하였습니다. 

초기 IBM-PC는 대성공을 거둡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성공은 이런 호환 제품군들을 생산하는 많은 회사들과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대한 미래의 소프트웨어 제국을 길러내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는데 그치게 되며, 결국 PC 사업에서 손을 떼는 결과를 낳게 만듭니다.


(후속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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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킬달(Gary Kildall)은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CP/M 이라는 8비트 최강의 운영체제를 만들었고, 동시에 디지털 리서치(Digital Research, Inc.)라는 회사를 설립한 사람입니다.  오늘날의 마이크로소프트를 있게 만든 MS-DOS 역시 CP/M의 아류작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만큼 시대를 앞서간 최고의 컴퓨터 과학자였습니다.


시애틀의 컴퓨터 천재, 세계 최초의 PC용 운영체제를 개발하다.

게리 킬달은 여러모로 빌 게이츠와 비교가 됩니다.  그 역시 시애틀 토박이로 대학 역시 시애틀의 명문인 워싱턴주립대학(University of Washington)을 나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실리콘 밸리 인근 해안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로 유명한 몬터레이의 미국 해군 대학원에서 미해군을 가르치면서 군복무를 대신했습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인텔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4004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개발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구입하여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이것저것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의 프로그래밍 실력을 눈여겨 본 인텔은 일과가 마친 이후에 그가 컨설턴트로 일을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킨달은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UW로 돌아와 1972년 컴퓨터 과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합니다.  그리고, 컴파일러의 최적화화 관련된 데이터 플로우 분석방법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는데, 그의 방식은 아직도 현대의 컴파일러에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인텔과 계속 일을 하면서, 그는 플로프 디스크가 세상을 바꿀 것으로 예측하고 8008과 8080 프로세서를 이용하여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동작할 수 있는 최초의 고수준 프로그래밍 언어를 1973년에 개발하는데 이것이 바로 PL/M 입니다.  같은 해 인텔의 8080 프로세서를 이용해서 플로피 드라이브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범용 디스크 운영체제를 개발하는데, 이것이 바로 8비트 운영체제를 천하통일한 CP/M 입니다. 


진정한 보석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인텔, CP/M의 대성공

게리 킬달은 CP/M을 개발한 뒤, 자신을 컨설턴트로 써준 인텔에 제일 먼저 데모도 하고 중요성도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인텔에서는 CP/M이라는 운영체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신 그가 개발한 PL/M 프로그래밍 언어와 컴파일러의 판매권만을 사서 시장에 내놓는 우를 범합니다.

인텔이 CP/M을 냉대하자, 게리 킬달은 그의 와이프인 도로시와 함께 Intergalactic Digital Research 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이 회사는 이후 Digital Research, Inc.로 이름을 바꾸고 CP/M 운영체제를 컴퓨터나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취미잡지에 광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제일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은 세계 최초의 PC로 간주되기도 하는 Altair 8800을 복제한 IMSAI 8080 이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수 많은 회사들이 서로 다른 컴퓨터에 CP/M을 포팅해주기를 원했는데, 이때 킨달이 정립한 개념이 바로 BIOS(Basic Input/Output System) 입니다.  컴퓨터 하드웨어에 내장된 BIOS만 수정하면 CP/M은 어느 컴퓨터에서나 동작을 하였고, 이러한 강점을 등에 업고 CP/M은 8비트 운영체제로서 거의 독점적 위치를 얻게 됩니다.

CP/M은 놀랄만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디지털 리서치는 무려 3,000개가 넘는 컴퓨터 모델에서 CP/M을 동작시켰고, 매년 수백 만불이 넘는 매출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때 디지털 리서치가 유일하게 정복을 하지 못한 컴퓨터 모델이 있었으니, 그것아 바로 애플입니다.  애플은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애플만의 독자적인 디스크 운영체제를 고수했고, CP/M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Z-80이나 8080과 같은 CPU가 장착된 카드를 사서 확장슬롯에 꽂아야 했습니다.  


IBM PC의 등장과 CP/M, 그리고 MS-DOS 

1980년 주지하는 바와 같이 컴퓨터 업계의 거인 IBM이 PC 사업을 시작하는 결단을 내립니다.  플로피 디스크가 기본으로 내장된 IBM-PC에 있어 가장 중요했던 것 중의 하나가 운영체제를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운영체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빌 게이츠는 IBM 측에 디지털 리서치의 CP/M을 라이센싱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합니다.  이에 따라 IBM은 16비트용 CP/M 운영체제인 CP/M-86을 자사의 기본 운영체제로 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디지털 리서치를 방문합니다.

당시 게리 킬달은 자신의 자가용 비행기를 몰고 소프트웨어를 다른 파트너 회사에게 전달하기 위해 떠나면서, 계약은 그의 아내 도로시에게 일임을 하고 갔습니다.  이는 게리 킬달이 흔히 하던 방식인데, IBM의 실무진들은 디지털 리서치와의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언제나와 같이 비밀준수계약을 하기를 원했는데 도로시는 게리 킬달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비밀준수계약을 거절합니다.

이에 단단히 화가난 IBM은 디지털 리서치와의 계약을 포기하고,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합니다.  시애틀로 돌아온 IBM은 빌 게이츠를 만나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체제를 개발하거나 대안 운영체제를 찾아줄 것을 부탁합니다.  당시 빌 게이츠는 이미 IBM에 BASIC 언어의 인터프리터를 포함한 몇 종류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납품하기로 합의를 한 상태였고, 시애틀에 위치한 한 작은 회사가 CP/M을 복제한 86-DOS라는 운영체제를 개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폴 알렌은 즉시 이 운영체제의 사용권을 단돈 5만 달러에 구매해서 IBM과의 협상에 임합니다.  86-DOS는 IBM의 하드웨어에 성공적으로 포팅이 되고, IBM은 이를 PC-DOS로 명명합니다.

PC-DOS를 본 게리 킬달은 이것이 CP/M을 복제한 것임을 바로 알게 되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컴퓨터 소프트웨어 저작권에 대한 체계가 완비되지 않은 탓에 게리 킬달은 IBM이 협상안으로 제시한 CP/M-86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중재안에 합의를 합니다.  이에 따라 처음 IBM-PC를 출시하면서 IBM은 운영체제를 별도옵션으로 출시합니다.  PC-DOS를 선택하면 $40 달러를 더 내면 되었고, CP/M-86은 $240 달러를더 내야 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PC-DOS라는 이름 대신 MS-DOS라는 이름으로 IBM의 호환기종에게 운영체제를 판매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CP/M-86 역시 다른 호환기종 시장에서 경쟁을 했는데, 오리지널 IBM-PC 모델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MS-DOS의 시장지배력을 당할 수 없었습니다.  MS-DOS의 성능과 기술은 CP/M보다 떨어졌고, 버그도 많았지만 워낙 싼 가격을 내세운 MS-DOS가 승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디지털 리서치의 경영에서 손을 떼다.

IBM과의 협상을 통해 게리와 도로시는 자신들의 불찰과 잘못된 경영적 판단을 반성하고, 회사의 직접 경영에서 영향력을 점차 줄여나갑니다.  그러면서, 다양하고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CP/M을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도록 진화시켰고, BASIC에 대항하기 위해 Logo 프로그래밍 언어를 구현했습니다.  또한, 애플의 Lisa의 데모를 보고난 뒤에는 GEM(Graphical Environment Manager) 데스크탑이라는 GUI도 개발하였습니다.

결국 게리 킬달은 디지털 리서치를 당시 최고의 네트워크 회사였던 노벨(Novell)에 1991년 매각하고, 자신의로를 PC의 트렌드를 전하는 공중파 방송활동과 광학 디스크 기술을 컴퓨터에 적용하는 KnowledgeSet라는 회사, 최초의 컴퓨터 백과사전이었던 Grolier's American Academic Encyclopedia, 가정용 PBX 시스템을 이용한 유선전화와 휴대폰을 통합하는 시스템 등을 개발하는 벤처사업을 하였습니다.


게리 킬달은 언제나 창의적이고 호탕했으며, 모험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비행기 조종, 스포츠 레이싱과 보트를 사랑했고 바다를 사랑하였습니다.  IBM과의 사건 이후에 그는 언제나 빌 게이츠와 비교했으며, 빌 게이츠를 싫어 했다고 합니다.  특히 1992년 자신의 모교인 UW의 컴퓨터 과학 프로그램의 기념일에 초청을 받았는데, 하버드 대학 중퇴 출신인 빌 게이츠가 키노트 강연을 하는 것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디지털 리서치를 노벨에 매각을 하고, 그는 텍사스 오스틴 인근의 West Lake Hills라는 곳에 이주를 해서 그가 사랑한 스포츠 카와 비디오 스튜디오, 그리고 자가용 비행기와 보트를 타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그가 사랑했던 도시인 몬터레이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추락해서 사망합니다.  미확인 정보에 의하면 당시 그는 알콜중독으로 많은 시간 술에 취해 있었고, 사고 역시 음주에 의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습니다.

게리 킬달이 이룩한 컴퓨터 과학에서의 업적은 정말 눈이 부실 지경입니다.  그 중 중요한 것만 나열해도 다음과 같습니다.

  • PC 최초의 디스크 운영체제 개발
  • 선점형 멀티태스킹과 윈도우 기능을 가진 운영체제 개발 및 소개
  • 메뉴기반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발
  • 최초의 디스크 트랙 버퍼링 스키마, Read-ahead 알고리즘, 파일 디렉토리 캐쉬, RAM 디스크 에뮬레이터의 개발자
  • 1980년대 바이너리 리컴파일러를 처음으로 소개
  •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처음으로 동작하는 컴파일러 및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
  • 오늘날 쌍방향 멀티미디어 기술의 기초가 된 최초의 비디오 디스크에 대한 비선형 플레이가 가능한 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 개발
  • 세계 최초의 소비자용 CD-ROM에 대한 파일 시스템 및 데이터 구조 개발
  • 컴퓨터 하드웨어와 운영체제를 개방형으로 만들 수 있는 시스템 아키텍처를 위한 BIOS 개발

그는 진정한 PC의 혁명가였고, 오늘날의 혁명을 있게 한 최고의 과학자였습니다.  비록 신은 그에게 빌 게이츠와 같은 명성과 부를 주지 않았고, 경영능력도 뛰어나지 못했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히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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