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글로벌 경제와 관련한 글을 올리네요.  오늘은 지난 번 저축대부조합 사건에 의한 경제위기와 함께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야기할 대 가장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Long Term Capital Management)의 파산 사건을 다루어 볼까 합니다.

1994년 당시 월 스트리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채권투자자였던 존 메리웨더(John Meriwether)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및 저명한 석학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월 스트리트에서 가장 잘 나가는 투자자들을 하나로 묶어서 LTCM을 창업합니다.  심지어는 당시의 FRB 부의장이었던 데이비드 뮬린스(David Mullins)가 이 헤지펀드에 참여하기 위해 부의장직을 사퇴까지 했으니 그 위세가 어땠을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최고의 경제 석학들과 월 스트리트의 최고 투자자가 조합을 했기에 모두들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자기자본을 엄청나게 뛰어넘어 지나치게 높은 레버리지를 이용한 투자를 과감하게 한 것에 의해 몰락하게 됩니다.  자기자본은 47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자산 규모는 약 1,250억 달러에 달했고, 파생금융상품 포지션은 약 1조2천5백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1998년 8월 러시아가 일부 국채에 대한 지불유예(모라토리엄)을 선언하자 LTCM의 손실을 우려한 투자자들의 이탈로 유동성 문제에 봉착을 하게 되고 거의 파산직전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경우 이 회사를 파산시켰으면 좋았겠지만, 당시 너무 많은 투자은행들이 LTCM에 투자를 했기 때문에 금융위기의 파급을 우려한 미국 정부가 구제책을 집행하게 되지요 ...

사실 자본금 47억 달러 정도의 회사가 하나 망한다고 생각하면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이 경우 금융자산 1,250억 달러는 그대로 날라가게 되고, 여기에 꼬리를 물고 돈을 많이 빌려준 체이스, 시티그룹, 골드먼삭스, 베어스턴스, 모건 스탠리, 메릴린치 등이 모두 심각한 문제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  LTCM의 파생금융상품 포지션까지 생각을 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1조2천5백억 달러에 달하는 LTCM의 포지션이 시장에서 정리되면 완전히 미국 금융시장 자체가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를 막기 위해서 FRB는 무조건적인 LTCM의 회생을 시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과도한 레버리지를 이용한 지나치게 과감한 투자였습니다.  그 만큼 위기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지요.  동시에 유동성 위기로 인한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현재의 위기상황과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결국 뉴욕 연방은행 빌 맥도너의 주도로 16개 대형 은행들이 36.5억 달러에 이르는 추가적인 자금지원을 하고, FRB의 금리인하, 그리고 감독권을 강화하는 일련의 조치들을 통해 금융시장을 정상화시키고 채권금융기관들의 채권이 회수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됩니다.  그 해법이 현재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LTCM은 1994년 4월에 출범한 이후, 기록적인 수익률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던 회사 였습니다.  1995년과 1996년에는 각각 59%와 57%라는 엄청난 수익률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1997년에 올린 수익률 25%가 적게 보일 정도였으니 당시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1998년 4월 이후 내리막을 걷게 됩니다.  이 회사가 절정에서 붕괴위기까지 처하는데 걸린 시간은 단 5개월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 회사는 가히 천재들의 집합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사람들이 모인 회사였습니다.  메리웨더는 살로먼 브러더스 부사장 출신으로 차액거래의 귀재로 불리던 월 스트리트의 마디어드의 손이었고, 1997년 파생금융상품 가격결정이론인 블랙-숄즈이론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던 MIT 교수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 하버드대 교수인 로버트 머튼(Robert C Merton), 그리고 데이비드 멀린스 FRB 부의장까지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들이 수익을 내는데 이용한 방법은 생각보다는 단순합니다.  장기채권과 단기채권의 이자율 격차를 이용한 투자방법인데, 보통 이자율이 단기채권에 비해 장기채권이 높으므로 장기채권을 나중에 되사는 조건으로 공매도를 한 뒤에 단기채권을 매입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장기채권은 이자율이 떨어지므로 여기에 따른 이익을 남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장기채권과 단기채권의 이자율 격차(스프레드)가 줄어드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  사실 이 격차는 1%도 되지 않기 때문에 보통은 엄청난 이득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를 고수익으로 연결하는 비법이 바로 레버리지에 있습니다.  이런 파생상품 거래는 액면가보다 훨씬 작은 자금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동시에 비교적 안전하게 보이는 자금의 운용특성상(주식투자 등에 비해 그 자체는 안전해 보이지요?) 자기자본의 수십 배를 은행에서 차입을 해서 운용을 하면 수 백배의 뻥튀기가 가능한 것입니다.  투자은행들의 경우 이러한 안전하게 보이는(?) 파생상품을 당대 최고의 금융천재들이 운용을 한다고 하니 믿고서 엄청난 돈을 맡긴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경제라는 것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놓친 것이 이들의 패착입니다.  일반적인 시장기능이 작동한다면 장기채권과 단기채권의 이자율 격차는 점점 줄어들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자 각종 스프레드가 크게 벌어지면서 갑작스러운 손실을 입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증가하자 장기채권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장기채권 금리가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

어쨌든 이 때에도 결과적으로는 미국의 투자은행들이 서로 협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데 성공합니다.  어찌보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하나의 은행이라도 LTCM의 채권을 회수하면서 채권의 가격이 떨어지고, 다른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채권매각을 했더라면 막대한 파생금융상품 시장이 날아가면서 엄청난 금융공황이 닥쳤을 것입니다.  이번 미국의 은행들에 대한 지원도 상당부분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 번에는 전세계가 같이 한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이번 금융위기의 가장 큰 소득아닌 소득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찌보면 이 사건은 전통적인 경제학의 수학이론이 얼마나 큰 맹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시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경제학 수학이론 들은 과거의 모델을 바탕으로 회귀분석이나 기타 여러 종류의 계산식을 통해 만들어 갑니다.  그런데, 원래 컴퓨터 용어에도 "Garbage-in-Garbage-out"이라고 들어가는 것이 쓰레기면 나오는 것도 쓰레기라는 말이 있지요?  이 이론에 들어간 데이터가 초장기 호황을 누리던 시기의 데이터가 들어갔기 때문에, 미래를 지속적으로 낙관적으로 예측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경제 석학들이 만들어 놓은 컴퓨터 같은 이론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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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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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대공황 이후, 금융시스템이 순식간에 와해되는 것에 대한 무서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현재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힘을 모아서 최소한 완전히 붕괴되는 것은 막고 있는 형국입니다.

1980년대 이후 금융위기는 생각보다 자주 찾아 왔습니다.  지난 포스트에서 1982년의 국제 금융위기에 대해서는 다룬 바 있으므로, 오늘은 원인적인 측면에서 작금의 경제위기 상황과 가장 유사하다고 하는 1986년 저축대부조합 사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저축대부조합(S&I, Savings & Loans Association)사태는 1986년에 있었습니다.  사실 이 사건과 1998년 LTCM 사태를 두고는 원인과 해법의 측면에서 거시경제적의 교과서적인 사례로 다루어 지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저축대부조합사태는 지급불능(insolvency)에 따른 '디폴트'가 원인이 되었고, LTCM의 경우 유동성 문제(illiquidity) 로 인한 '모라토리엄'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LTCM 사건에 대해서 다룰 때 더 자세히 건드려 보겠습니다.

1986년 저축대부조합 사태의 경우 금리 리스크의 관리 실패 및 감독 당국의 부적절한 대응, 그리고 1980년대 부동산 경기의 급랭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모기지 대출의 증가, 금리상승 및 주택경기의 둔화에 의한 모기지 대출의 부실이 원인인 현재의 서브 프라임 사태와 원인적인 측면에서 유사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 미국 정부에서 부실자산 처리를 위한 RTC를 신설하고 감독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태를 정리합니다.  현재 미국 정부에서 취하고 있는 정책의 상당부분이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 약 5000억 달러 정도의 비용이 들어갔으며, 미국 경제 전반이 일시적인 침체의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저축대부조합은 저축계좌의 운영과 모기지 대출을 주로하는 금융기관입니다. 19세기 초 미국의 은행들이 비교적 재정이 탄탄한 자본가에 의해서 운영이 되었던 것에 비해, 이러한 저축대부조합은 많은 사람들이 집단의 힘으로 저축을 해서 자본을 모이고 또한, 모인 자본을 운용하고 같이 대출을 하는 형태의 금융기관으로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국내의 상호신용금고와 비슷). 

저축대부조합은 20세기 초반에 모기지 대출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활황을 맞게 됩니다.  1946년 상영된 영화인 "아름다운 인생 (It's a Wonderful Life)"라는 영화에서도 저축대부조합이 멋지게 그려집니다.  모기지(mortgage) 대출은 일반적인 상상과는 달리 은행이 아닌, 보험회사에서 제일 처음 실시하였습니다.  당시의 방식은 현대의 모기지 대출방식과는 상당히 달라서 비교적 짧은 대출기간에 대부분 초기에는 이자 수준의 작은 돈만 내다가 마지막에 원금 전부를 갚는 것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이 경우 초기 진입이 쉽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집을 살 때마다 이를 이용하였는데, 마지막에 지불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집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 하엿습니다.

이런 부작용을 방지하고자 미국 의회가 1932년 연방주택대출은행법(Federal Home Loan Bank Act)를 1932년 대공황 기간 동안에 제정을 하게 됩니다.  이 법에 의해 연방주택대출은행(Federal Home Loan Bank, FHLB)가 설립이 되고, 이 은행을 관장하는 연방주택대출은행 이사회(Federal Home Loan Bank Board)가 다른 은행들에게 장기간의 대출을 장려하기 위한 펀드를 제공하기 시작합니다. 기본적으로 보험회사 보다는 은행들이 집을 사는데 필요한 장기대출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서민들이 집을 장만하기 쉽고, 지급불능에 빠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였지요 ...

연방주택대출은행이 모기지 대출을 위한 펀드를 제공하면서, 미국 내에 수많은 저축대부조합이 생기게 됩니다.  쉽게 연방은행으로부터 큰 돈을 받아서 모기지 대출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상업은행에 비해 저축대부조합은 저축과 대출 양쪽에 모두 약간 높은 금리를 적용합니다.  이를 통해 일반인으로부터의 저축을 많이 유도하고, 여기서 모은 자금을 바탕으로 보다 공격적인 모기지 대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저축계좌만 가능하고 미국인들이 모두 이용하는 당좌계좌(checking account)에는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규모가 커지는 데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 의회는 1980년에 저축대부조합에 당좌계좌를 통한 대출 및 신용카드의 발급, 상업적 부동산 대출 등이 모두 가능한 법안을 통과시킵니다. 이를 통해 저축대부조합이 급격히 활성화되는 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86년의 저축대부조합의 위기가 닥칩니다.  1986년부터 1995년까지 10년간 저축대부조합의 수가 3,234개에서 1,645개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게 되고 많은 수의 조합이 파산하거나 합병을 당하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부적절한 묻지마 대출이었던 것은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합니다.

1980년대의 저축대부조합의 활황으로 미국 경제는 거품에 들어가게 되고, 과도한 건축 및 상업형 부동산의 건축이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국제 원유가격이 떨어지자 에너지에 의한 수입이 많았던 주(텍사스, 루이지애나, 오클라호마)에서 부터 수입이 줄어들자 갑자기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초기에 위기가 닥치자, 이런 종류의 위기관리의 경험이 없었던 조합들은 단기적인 수익성의 악화만을 우려한 나머지 신용평가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대출 방법을 이용하지 않고, 보다 위험부담이 높지만 수익성이 높은 대출에 뛰어들게 되면서 몰락을 자초합니다. 

결국 1989년 FIRREA(Financial Institutions Reform, Recovery and Enforcement Act)라는 법을 통해 연방의 규제를 강화하면서 사태가 수습 국면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법의 대표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연방주택대출은행이사회(FHLBB)와 연방저축대출보험회사(FSLIC, Federal Savings and Loan Insurance Corporation)의 퇴출
  2. 재무부 소속 저축기관에 대한 감독을 위한 저축기관감독청(Office of Thrift Supervision)의 신설
  3. FDIC가 관리하는 저축조합보험기금(Savings Association Insurance Fund)의 신설로 예금자 보호
  4. 정리신탁공사(RTC, Resolution Trust Corporation)의 설립으로 부실화된 저축대부조합의 정리

이를 위해 1986년부터 1995년까지 10년간 5190억 달러에 달하는 공적자금이 투입 됩니다.  이 사태가 완전히 정리되는데는 꼬박 10년이 걸렸네요.  또한, 예측도 잘못되고 초기에 들어가서 정리해야 되는 자금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으면서 사태의 장기화를 끌어낸 교훈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글을 읽으신 분들은 느끼시겠지만, 현재의 경제위기가 저축대부조합 사태와 원인적으로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현재의 위기는 여기에 더불어 전개과정에서 투자은행의 유동성 위기와 손실증가를 통해 신용의 위기로 파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다음에는 유동성 위기의 예로 살펴볼 수 있는 LTCM 사태를 한 번 되짚어 보고자 합니다.  참고로 저축대부조합 사건의 종결 후 이에 대한 FDIC의 리뷰 리포트를 링크합니다.

http://www.fdic.gov/bank/analytical/banking/2000dec/brv13n2_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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