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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IT 삼국지는 역동의 2001년, 구글의 CEO 자리에 오른 에릭 슈미트가 구글이라는 황당한 조직문화에서 좌충우돌하면서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많이 헤치지 않으면서도 관리체계를 잡아가던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CEO의 첫 출근 책상은 다른 사람 차지?

2001년 8월 구글의 CEO 자리에 오른 에릭 슈미트는 늘 입던 정장을 벗어 던지고, 구글의 문화에 맞추어 검은색 구글 로고가 새겨진 골프 티셔츠를 입고 첫 출근을 하였습니다.  에릭 슈미트의 사무실에는 2개의 책상이 놓여 있었는데, 한 엔지니어가 빈 사무실을 보고 먼저 자리를 잡아 버리는 바람에 그 엔지니어의 옆에 앉아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지만, 구글은 그런 회사였습니다.  한 눈에 구글이라는 회사의 상태를 파악한 에릭 슈미트는 그 엔지니어를 쫓아내지 않고, 조용히 옆자리에 앉아서 사무실 동료가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에릭 슈미트는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휘어잡기 보다는 장점은 최대한 수용하고, 단점이 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조금씩 점진적으로 바꾸어 나가기로 한 것입니다.  

구글이라는 조직은 두 명의 창업자의 지휘아래 기술과 상품에 집중을 하였고, 관료주의는 혐오하는 그런 회사가 되었고, 이런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자유로운 엔지니어와 관료주의가 자리잡지 못하면서도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투명한 회사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관리시스템의 정착이 처음 CEO 로 취임한 에릭 슈미트가 맡은 일이었습니다.  특히 언제나 톡톡 튀고, 실현가능성이 없는 계획까지 해보자고 말을 던지는 두 명의 창업자들을 컨트롤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였습니다.  

두 명의 창업자들은 회사의 재무를 분석하거나 기자를 만나서 회사의 이야기를 하거나, 여러 산업과 정부 등과의 협력관계 등과 같은 여러가지 일들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들은 온전히 에릭 슈미트의 차지였고, 회사의 입장에서도 정말 중요한 일들 이었는데, 에릭 슈미트는 무난하게 이런 문제들을 경륜을 가지고 해결해 나갑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경계하다.

당시 구글은 검색 부분에서 1위에 올라선 이후에 알타비스타나 야후, 오버추어 등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에릭 슈미트는 두 창업자들에게 결국 구글이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면 마이크로소프트가 검색시장에 뛰어들 것이라는 경고를 합니다.  당시 무서운 것이 없었던 구글이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여간 신경쓰이는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비교할 수 있는 회사가 아니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통해서 가장 잘 나가고 선발주자로 입지를 다져온 넷스케이프를 물리치고 브라우저 경쟁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가 검색에 뛰어들 수도 있다는 에릭 슈미트의 경고는 구글에게 보다 신중한 대비를 하도록 경종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에릭 슈미트의 경고를 바탕으로 두 창업자와 구글은 혹시라도 마이크로소프트가 뛰어들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자체 응용 프로그램과 브라우저까지 만들고, 이를 통한 독립성을 확보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런 결정과 노력을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구글 독스(Google Docs) 서비스와 크롬(Chrome) 브라우저 입니다.


야후의 인수제안, 그리고 오버추어 갈등의 시작

에릭 슈미트가 CEO 로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글 3인방은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회사의 몰락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제리 양을 대신하여 야후의 CEO 로 등극한 테리 세멀(Terry Semel)의 연락을 받습니다.  테리 세멀은 인터넷 기업이나 IT 기술 전문가가 아닌, 세계적인 미디어 회사인 워너 브라더스의 공동 CEO 로 24년을 재직한 콘텐츠와 미디어 산업 전문가입니다.  그런 그가 야후라는 당시 가장 커다란 인터넷 대표기업의 CEO 로 선임된 것에 대해서 기대도 있었지만, 주변의 우려도 많았습니다.  거기에 야후는 한 때 시가총액 1,270억 달러에 육박했었던 시절을 뒤로 하고, 닷컴 버블의 붕괴와 함께 회사가치가 1/10로 떨어지는 위기상황을 겪고 있었기에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낼 반전의 카드가 필요했습니다.

테리 세멀이 처음 신경을 쓴 것은 야후가 외부의 콘텐츠만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게 되기를 원했고, 미디어 회사처럼 광고도 더 많이 판매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합니다.  그러나, 그가 야후에 합류한 후 닷컴 버블 붕괴의 여파로 회사는 9,800만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하였습니다.  테리 세멀은 야후가 구글의 주식을 일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주식은 야후의 검색엔진으로 구글을 이용하게 되면서 현물로 받은 것)을 알게된 이후 구글 3인방을 만나서 구글을 아예 인수할 수 있을지 의중을 떠보기로 했습니다.  내부적으로 약 10억 달러 정도를 투자할 생각을 가지고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해 보았지만 3명 모두 전혀 그럴 의사가 없다는 것만 확인하였습니다.

이 미팅 이후, 오버추어의 빌 그로스가 테리 세멀을 찾아옵니다.  빌 그로스는 자신들의 특허기술을 이용해서 야후의 광고를 더욱 많이 판매해 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테리 세멀은 빌 그로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오버추어와 검색광고 계약을 맺고 광고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단 1년 만에 2억 달러라는 엄청난 수익을 올립니다.  이 과정에서 야후에 검색엔진을 공급하던 구글은 야후의 결정에 반발을 했지만, 결국 테리 세멀은 많은 실적을 내주고 있는 오버추어와 잉크토미(Inktomi)를 인수하기로 결정합니다.  2002년 검색엔진을 제공하는 잉크토미를 $2억 3500만 달러에, 2003년 7월 오버추어를 $16.3억 달러에 인수한 야후는 구글과의 검색계약도 파기합니다.  이와 함께 2002년 4월에 오버추어가 구글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도 그대로 인수합니다.  이는 야후가 잉크토미를 새로운 검색엔진으로, 그리고 오버추어를 통한 검색광고 사업을 중요한 성장엔진으로 삼은 것인데, 이 결정은 야후의 검색의 품질을 떨어뜨리면서 결국 구글에 비교가 되지 않는 검색엔진 2위로 떨어지게 만들게 됩니다.  비록 당장의 광고수익은 더 많이 올릴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 결정은 야후가 회복할 수 없는 검색점유율 하락을 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실책이 되면서 결국 최고의 인터넷 기업의 자리를 구글에게 내놓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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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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