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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IT 삼국지는 역동의 2001년, 구글의 CEO 자리에 오른 에릭 슈미트가 구글이라는 황당한 조직문화에서 좌충우돌하면서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많이 헤치지 않으면서도 관리체계를 잡아가던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CEO의 첫 출근 책상은 다른 사람 차지?

2001년 8월 구글의 CEO 자리에 오른 에릭 슈미트는 늘 입던 정장을 벗어 던지고, 구글의 문화에 맞추어 검은색 구글 로고가 새겨진 골프 티셔츠를 입고 첫 출근을 하였습니다.  에릭 슈미트의 사무실에는 2개의 책상이 놓여 있었는데, 한 엔지니어가 빈 사무실을 보고 먼저 자리를 잡아 버리는 바람에 그 엔지니어의 옆에 앉아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지만, 구글은 그런 회사였습니다.  한 눈에 구글이라는 회사의 상태를 파악한 에릭 슈미트는 그 엔지니어를 쫓아내지 않고, 조용히 옆자리에 앉아서 사무실 동료가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에릭 슈미트는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휘어잡기 보다는 장점은 최대한 수용하고, 단점이 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조금씩 점진적으로 바꾸어 나가기로 한 것입니다.  

구글이라는 조직은 두 명의 창업자의 지휘아래 기술과 상품에 집중을 하였고, 관료주의는 혐오하는 그런 회사가 되었고, 이런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자유로운 엔지니어와 관료주의가 자리잡지 못하면서도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투명한 회사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관리시스템의 정착이 처음 CEO 로 취임한 에릭 슈미트가 맡은 일이었습니다.  특히 언제나 톡톡 튀고, 실현가능성이 없는 계획까지 해보자고 말을 던지는 두 명의 창업자들을 컨트롤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였습니다.  

두 명의 창업자들은 회사의 재무를 분석하거나 기자를 만나서 회사의 이야기를 하거나, 여러 산업과 정부 등과의 협력관계 등과 같은 여러가지 일들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들은 온전히 에릭 슈미트의 차지였고, 회사의 입장에서도 정말 중요한 일들 이었는데, 에릭 슈미트는 무난하게 이런 문제들을 경륜을 가지고 해결해 나갑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경계하다.

당시 구글은 검색 부분에서 1위에 올라선 이후에 알타비스타나 야후, 오버추어 등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에릭 슈미트는 두 창업자들에게 결국 구글이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면 마이크로소프트가 검색시장에 뛰어들 것이라는 경고를 합니다.  당시 무서운 것이 없었던 구글이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여간 신경쓰이는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비교할 수 있는 회사가 아니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통해서 가장 잘 나가고 선발주자로 입지를 다져온 넷스케이프를 물리치고 브라우저 경쟁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가 검색에 뛰어들 수도 있다는 에릭 슈미트의 경고는 구글에게 보다 신중한 대비를 하도록 경종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에릭 슈미트의 경고를 바탕으로 두 창업자와 구글은 혹시라도 마이크로소프트가 뛰어들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자체 응용 프로그램과 브라우저까지 만들고, 이를 통한 독립성을 확보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런 결정과 노력을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구글 독스(Google Docs) 서비스와 크롬(Chrome) 브라우저 입니다.


야후의 인수제안, 그리고 오버추어 갈등의 시작

에릭 슈미트가 CEO 로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글 3인방은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회사의 몰락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제리 양을 대신하여 야후의 CEO 로 등극한 테리 세멀(Terry Semel)의 연락을 받습니다.  테리 세멀은 인터넷 기업이나 IT 기술 전문가가 아닌, 세계적인 미디어 회사인 워너 브라더스의 공동 CEO 로 24년을 재직한 콘텐츠와 미디어 산업 전문가입니다.  그런 그가 야후라는 당시 가장 커다란 인터넷 대표기업의 CEO 로 선임된 것에 대해서 기대도 있었지만, 주변의 우려도 많았습니다.  거기에 야후는 한 때 시가총액 1,270억 달러에 육박했었던 시절을 뒤로 하고, 닷컴 버블의 붕괴와 함께 회사가치가 1/10로 떨어지는 위기상황을 겪고 있었기에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낼 반전의 카드가 필요했습니다.

테리 세멀이 처음 신경을 쓴 것은 야후가 외부의 콘텐츠만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게 되기를 원했고, 미디어 회사처럼 광고도 더 많이 판매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합니다.  그러나, 그가 야후에 합류한 후 닷컴 버블 붕괴의 여파로 회사는 9,800만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하였습니다.  테리 세멀은 야후가 구글의 주식을 일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주식은 야후의 검색엔진으로 구글을 이용하게 되면서 현물로 받은 것)을 알게된 이후 구글 3인방을 만나서 구글을 아예 인수할 수 있을지 의중을 떠보기로 했습니다.  내부적으로 약 10억 달러 정도를 투자할 생각을 가지고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해 보았지만 3명 모두 전혀 그럴 의사가 없다는 것만 확인하였습니다.

이 미팅 이후, 오버추어의 빌 그로스가 테리 세멀을 찾아옵니다.  빌 그로스는 자신들의 특허기술을 이용해서 야후의 광고를 더욱 많이 판매해 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테리 세멀은 빌 그로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오버추어와 검색광고 계약을 맺고 광고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단 1년 만에 2억 달러라는 엄청난 수익을 올립니다.  이 과정에서 야후에 검색엔진을 공급하던 구글은 야후의 결정에 반발을 했지만, 결국 테리 세멀은 많은 실적을 내주고 있는 오버추어와 잉크토미(Inktomi)를 인수하기로 결정합니다.  2002년 검색엔진을 제공하는 잉크토미를 $2억 3500만 달러에, 2003년 7월 오버추어를 $16.3억 달러에 인수한 야후는 구글과의 검색계약도 파기합니다.  이와 함께 2002년 4월에 오버추어가 구글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도 그대로 인수합니다.  이는 야후가 잉크토미를 새로운 검색엔진으로, 그리고 오버추어를 통한 검색광고 사업을 중요한 성장엔진으로 삼은 것인데, 이 결정은 야후의 검색의 품질을 떨어뜨리면서 결국 구글에 비교가 되지 않는 검색엔진 2위로 떨어지게 만들게 됩니다.  비록 당장의 광고수익은 더 많이 올릴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 결정은 야후가 회복할 수 없는 검색점유율 하락을 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실책이 되면서 결국 최고의 인터넷 기업의 자리를 구글에게 내놓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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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국지, 오늘은 애플이 매킨토시 OS X 를 발표하던 2000년, 실리콘 밸리는 닷컴 붕괴라는 최악의 대란이 덥치게 되고, 이런 와중에도 독야청청 엄청나게 손해를 보면서도 잘 나가던 구글의 분전과 관련한 이야기 입니다.


닷컴 버블의 붕괴, 그리고 수익모델의 부재

1999년 엄청난 액수의 투자를 받은 구글은 본격적으로 검색 시장을 장악해 나갑니다.  1999년 초만 하더라도 구글의 하루 검색 건수는 약 50만 건 정도였는데, 2000년이 되자 하루 평균 700만 건이 넘어갑니다.  그런 만큼 지속적으로 검색과 관련한 서버와 네트워크 등을 확보하면서 지출도 많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때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잘 나가던 실리콘 밸리의 닷컴 기업들이 수익구조를 찾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과 함께 주가가 엄청나게 폭락하기 시작합니다.  2000년 3월~10월까지 있었던 이 시기를 '닷컴 버블의 붕괴'라고 표현하며, 이 때의 충격은 미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에 밀어닥치게 됩니다.  대표적인 기업이었던 야후의 경우, 잘 나갈 때에는 최고 주당 $119 달러에 이르기도 하였지만, 버블의 붕괴와 함께 주가가 $4 달러까지 떨어지는 날개없는 추락을 하였고, 그 밖에 여러 기업들의 사정도 많이 다르지 않아서 나스닥 주가가 전체적으로 78% 정도나 하락합니다.  

구글은 당시 비공개 기업이었기 때문에 이런 위기를 비켜갈 수 있었고, 되려 닷컴 버블의 붕괴와 함께 쏟아져 나온 많은 인재들 중에서 선별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을 채용하는 행운까지 얻게 됩니다.  문제는 검색이 늘어나면서 같이 늘어나는 손실이었습니다.  2000년 구글의 손실은 $1,470만 달러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은 1999년의 2배에 이르는 금액이었습니다.  물론 1999년과는 달리 기업용 검색 서비스 시장이 커지면서 매출액을 $1,910만 달러를 기록하였지만 늘어나는 손해액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창업자는 야후와 같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광고모델을 검색과 연계하는 것을 계속 반대하였고, 이것은 구글의 수익모델에 대한 논쟁에 불을 붙이면서 투자자인 세콰이어 캐피탈의 마이클 모리츠와 KPCB의 존 도어가 빨리 새로운 CEO 를 물색해야 한다는 압력을 행사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됩니다.


빌 그로스와의 만남, 그리고 오버츄어

이 시기, 구글의 두 창업자는 이후 자신들의 비즈니스에 있어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의 일부를 제공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오버추어(overture)를 창업하고 야후에 이 회사를 매각한 빌 그로스(Bill Gross) 입니다.  

빌 그로스는 1958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비즈니스맨으로, 칼텍(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을 졸업하고 작은 회사를 창업했다가 이를 매각하는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하였습니다.  1996년 그는 아이디어랩(Idealab)을 창업하는데, 검색광고(sponsored search)라는 모델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GoTo.com 이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검색엔진을 기반으로 검색광고를 붙여주고, 이 검색광고를 클릭하면 클릭단가를 정해서 광고비를 광고주에게 받는 방식을 구현한 것인데, 이후 이름을 오버추어(Overture)로 변경하고 2003년 야후에 $16.3억 달러에 회사를 매각합니다.  오버추어는 오늘날 구글과 함께 전세계 검색광고를 주름잡고 있는 양대산맥 중의 하나로, 국내에서도 다음과 네이버의 검색광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둔 회사입니다.

빌 그로스는 이렇게 창의성이 넘치는 사람으로, 이후에도 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회사들을 설립하는데, 2004년에는 하이퍼링크 프리뷰를 보여주는 SNAP, 2010년에는 트위터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트위터러를 찾아주는 검색엔진인 TweetUp 등과 같은 회사를 창업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에너지 회사에도 관심이 많아서 태양광 발전과 관련한 Energy Innovations, eSolar 등의 회사를 창업하였는데, 이 회사가 구글 본사의 지붕에 있는 태양광 발전패널을 2006년 설치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빌 그로스는 구글의 두 창업자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설립한 GoTo.com 의 아이디어를 설명하였는데, 전화번호부의 광고에서 처음 아이디어를 가져왔고 검색을 광고와 결합할 경우에 큰 비즈니스 기회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였습니다.  존 버텔이라는 사람이 쓴 <검색> 이라는 책에서는 이들의 만남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올라와 있는데, 당시 GoTo.com 은 8,000 곳이 넘는 광고주 네트워크를 이미 구성을 하였고, 클릭당 광고비를 받으면서 검색결과를 변경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빌 그로스는 이 자리에서 구글과 GoTo.com 이 합병한다면 정말 대단할 것이라는 제안을 했지만, 당시 구글의 두 창업자들을 빌 그로스의 이런 접근방법이 검색을 지저분하게 만들 것이라며 옳지 않은 방법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빌 그로스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글은 결국 2000년 AdWords 프로그램을 통해 빌 그로스가 가졌던 아이디어의 일부를 변경해서 적용한 검색광고 모델을 내놓게 되며, 오버추어는 2002년 구글을 특허침해로 고소를 하면서 법정다툼을 벌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 싸움은 오버추어를 2003년 인수한 야후가 구글의 주식 270만 주를 받는 것으로 종결처리가 되는데, 결과적으로는 빌 그로스의 아이디어를 구글이 가져갔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 되었습니다.


야후! 구글의 검색엔진을 도입하다.

닷컴 버블이 붕괴되면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었던 야후는 더 이상 검색엔진 경쟁에서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구글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2000년 6월 야후는 구글을 야후 포탈 서비스의 공식 검색엔진으로 계약을 합니다.  야후의 모든 검색을 구글에게 넘겨주는 댓가로 야후는 구글의 주식 370만 주를 얻게 되며, 야후의 검색에 구글 로고를 표시하지 않음으로써 기존의 사용자들은 구글의 검색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모르게 만들었습니다.  이 협력으로 인해 구글의 검색건수는 2배로 뛰게 되며, 2000년 말이 되자 하루 검색이 1억 건에 달하면서, 전세계 검색 건수의 40%를 점유하게 되어 사실상 검색엔진 전쟁의 승자는 구글로 귀결되었다는 것에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동의를 하게 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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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대를 처음으로 열어젖힌 것이 넷스케이프와 마크 앤드리센과 짐 클라크라면, 그 뒤를 이어 커다란 대박을 터뜨린 첫번 째 기업은 바로 야후! 일 것입니다.  오늘은 야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야후!의 탄생

스탠포드 대학의 전자공학과 대학원을 다니던 제리 양(Jerry Yang)과 데이빗 파일로(David Filo)는 1994년 초 모자이크를 이용해서 전세계 웹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정보를 얻는 것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얻은 정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는 생각에 수많은 웹 사이트들을 종류에 따라 분류해서 목록을 만들게 되는데, 이 목록을 하이퍼링크의 형태로 웹에 공개를 합니다.  이것이 훗날 야후!가 되는 "Jerry and David's Guide to the World Wide Web" 입니다.  같은 해 4월 이들은 이 웹사이트를 "Yahoo!"로 개명하면서 처음으로 인터넷 포탈 사업을 시작하게 되며, 1995년 1월 18일 역사적인 "yahoo.com" 도메인을 획득합니다.  1995년 3월 1일 정식으로 회사를 창업한 이들은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정보를 찾는 사람들의 처음 기착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글자 그대로 인터넷으로 들어가기 위한 포탈(portal, 문)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자, 인터넷 접속량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이때 구원의 손을 처음 내민 사람이 바로 넷스케이프의 마크 앤드리센입니다.  1994년 투자를 받아 자금의 여유도 있었고,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인터넷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넷스케이프 입장에서는 야후!와 같이 인터넷 자체를 번성시켜줄 서비스 사업자가 필요하였고, 야후! 역시 늘어나는 인터넷 접속량을 넷스케이프 본사의 대형서버가 직접 담당해 주면서 한숨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동거관계도 금방 깨지게 됩니다.  그 이유는 야후! 가 1995년 4월 5일 최고의 벤처 캐피탈 중의 하나였던 세코야 캐피탈(Sequoia Capital)에게서 거액의 투자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투자를 담당했던 사람이 유명한 벤처 캐피탈리스트인 마이클 모리츠(Michael Moritz)입니다.  그에 비해 넷스케이프에 투자를 한 회사는 클라이너 퍼킨스(Kleiner Perkins)로 세코야 캐피탈과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 벤처 캐피탈로, 이들의 라이벌 의식은 정말로 대단해서, 절대로 상대방이 투자한 회사에게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물론 이 불문율을 깨는 회사가 나옵니다).  세코야의 투자를 받은 야후! 는 넷스케이프와의 협력관 계를 정리하고, 독자적인 서비스에 나섭니다.  뒤를 이어, 소프트뱅크의 손정의가 1250만 달러를 투자하면서, 1.7%의 주식을 취득하는 등 급속도로 회사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닷컴 버블의 시작

야후! 는 창업한지 1년 만인 1996년 4월 12일, 아무런 수익모델도 없이 나스닥 상장을 시도합니다.  물론 그전에 짐 클라크가 넷스케이프를 통해 1995년에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인터넷 기업에 대한 기대치가 상한가를 치고 있었기에 이 시도는 성공을 하게 됩니다.  단숨에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야후의 창업자들은  "웹 포탈(web portal) = 야후!" 라는 이미지를 심으면서, 부침이 심했던 다른 포탈 또는 검색 서비스들과의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그 입지를 공고히 하게 됩니다.

그러나, 닷컴 열풍의 원조였던 넷스케이프가 인터넷 익스플로러와의 대결에서 참패를 하면서 급격하게 회사의 가치가 하락하고, 닷컴 회사들의 수익모델이 없다는 비판과 함께 비관적인 미래를 점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회사의 주가가 하락하는 등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후!는 다른 회사들과는 달리 적극적인 브랜딩 전략이 먹혀들면서 배너를 중심으로한 광고모델로 인터넷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성공합니다.  1999년 6천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면서, 닷컴 회사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닷컴 회사의 마지막 자존심으로서의 역할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2000년 들어 닷컴 회사 대부분의 가치에 대한 회의론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급작스럽게 닷컴 버블이 빠지기 시작하고, 야후! 의 광고주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이들의 퇴장으로 야후! 역시 심각한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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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Bing이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StatCounter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6월 4일자로 야후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섰네요.  야후의 점유율이 빠지고 있는 상황은 아니고, 구글의 점유율이 빠진 것으로 봐서는 구글에서 Bing으로 옮겨오는 사람들이 상당수가 되는 것 같습니다.  6월 4일 결과로는 미국에서 15.6% 점유율을 기록했네요.  미국에 비해서 아직 전세계 점유율은 그에 못 미치지만, 여기서도 야후를 앞섰습니다 (5.56%).  아마도 미국에서의 점유율 약진이 세계 점유율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됩니다.

미국에서 선전하게된 배경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워낙 엄청난 돈을 광고에 쏟아부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뉴스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Bing의 광고비로 $8천만 달러를 집행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점유율 상승세가 앞으로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더 지켜봐야 할듯 합니다.

만약 이런 점유율 상승세가 지속된다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야후의 검색엔진 부분을 인수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이들의 전반적인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야후의 입장에서는 설상가상의 상황이 벌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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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웹 2.0의 기저에 깔려있는 중대한 철학적 화두를 하나 던져볼까 합니다. 

웹 2.0은 오픈소스, 참여, 공유라는 키워드로 대별됩니다.  특히 참여와 공유에 있어서 여기에 참여하는 수많은 일반 대중들은 특별한 금전적 보상이 없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창작한 자료가 인기가 있어, 그곳에 게시한 광고를 바탕으로 수익을 취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금전적 보상이 없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찌되었든 웹 2.0 기업에 참여하는 대중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온라인의 정체성을 통해 방대한 정보를 서로 만들어내고 소비하는 프로슈머의 행태를 보이면서 거대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특별한 계약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 주고받는 금전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가 만들어 낸 것과 소비하는 것 사이에 약간의 불평등이나 불균형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은 이를 무척 관대하게 받아들이지요 ...

이를 두고 플리커의 공동 창업자인 카테리나 페이크(Caterina Fake)와 같은 사람은 인터넷의 중추는 관대함의 문화라고도 합니다.  웹 2.0 기업들이 일으키는 혁신에는 대부분 참여자들이 비금전적인 가치로 모여듭니다.  위키피디아나 오픈소스 프로젝트, 플리커 등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는 금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웹 2.0 기업을 만든 사람들은 이러한 관대함의 문화를 최대한 활용하여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도 듭니다.  대표적으로 플리커와 딜리셔스(del.icio.us)는 모두 야후에 수천만 달러를 받고 인수되었습니다.  창업자들은 명실공히 웹 2.0의 리더로 불리던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거액을 손에 쥐고 유유자적의 인생을 살게 되었지요 ....  구글 역시 오픈소스 현상과 웹 2.0 철학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자사의 광고이익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결국 웹 2.0에 내재하는 수많은 대중들의 관대함을 조금씩 뜯어서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다시 말하자면, 웹 2.0 기업들의 성공과 이익은 일반 대중들의 자발적 착취당함이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참여자들이 웹 2.0 기업들이 성공하게 된다면, 참여자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이익을 공유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익, 그리고 전체적인 이익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집단적인 대중 아웃소싱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  그렇지만, 어쨌든 이익의 비대칭 분배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이들이 이익을 과연 잘 나누어 가지려 할까요?

착취라고 할 것 까지는 없지만. 그렇기에 거대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이익을 참여자들에게 투명한 방법으로 나누어주려고 하는 시도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과거 네이버에서 수 많은 참여자들이 쌓아올린 것을 이용해서 막대한 이익을 추구하고, 참여자들에게는 아무런 분배를 해주지 않았던 시스템에 대한 블로거들의 반란, 그리고 이런 분위기의 변화(착취가 지나치면 혁명이 일어나겠죠?)를 눈치챈 네이버가 오픈 캐스트를 준비하면서 패러다임 변화에 적응할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입니다.  너무 소설같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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