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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IT 삼국지의 주인공은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CEO로 있는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입니다.  한창 인터넷 이야기가 진행되는 1990년대 후반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왠 스티브 발머? 하시는 분들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1990년대 후반 인터넷 기업들이나 구글, 애플은 워낙 많은 변화들이 있어서 그에 대한 이야기 거리가 많지만, 이 시기 마이크로소프트는 워낙 잘 나가고 있어서 특별한 이슈없이 윈도우와 오피스 제품군이 판올림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세상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고, 시가총액과 매출은 계속 늘어가고, 많은 인물들이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는 등 거대기업의 모습을 보여가고 있었기에 그다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인 스티브 발머에 대해서는 의외로 많은 정보가 없어서 따로 그에 대해 다루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최근의 마이크로소프트가 구글이나 애플에 미래 비젼이나 이슈에서 밀리는 양상을 보이면서 그의 역량에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고, 빌 게이츠 이후의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걱정의 시선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역시도 알려진 것보다 훨씬 대단한 역량을 가진 인물입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외향적 비즈니스맨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보다 한살 어린 1956년 생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였습니다.  그는 공부도 잘했지만, 하버드 대학의 미식축구 팀도 관리하고, 하버드 대학 학교신문인 하버드 크림슨(Harvard Crimson)에서도 일을 하는 등 매우 활발한 학교활동을 하였습니다.  빌 게이츠와는 기숙사에서 가까운 위치에 방을 얻어서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많은 접촉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하게 됩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스티브 발머는 2년간 세계적인 소매업체인 프록터앤갬블(Procter and Gamble, P&G)에서 일을 했는데, 그 당시 같은 사무실을 쓰던 제프리 이멜트(Jeffrey R. Immelt)는 훗날 GE(General Electric)의 CEO가 됩니다.  작은 사무실의 신입 동료들이 훗날 세계 최대의 회사의 CEO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P&G에서 나와 스탠포드 대학에서 MBA 과정을 이수하던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의 낙점을 받고 결국 스탠포드  MBA를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작은 회사에 자신의 미래를 거는 결정을 내립니다.

그를 합류시키기 위해 빌 게이츠는 정말 대단한 정성을 들였다고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빌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를 시애틀 친가에 초대를 해서 부모님들과 소개도 하고, 그를 위한 성대한 만찬을 열었습니다.  또한, 시애틀 관광도 같이하면서 하루종일 설득을 하였는데 빌 게이츠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에 홀딱 빠져들게 됩니다.  1980년 6월 11일, 스티브 발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24번째 직원이 되면서 개발자 위주의 조직인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관리를 전담합니다.  스티브 발머는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데 주식소유를 중시하였습니다.  자신도 입사를 하면서 1981년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의 8%를 소유하였고, 이후 스톡옵션을 고안해서 많은 직원들에게 회사에 헌신하고 동시에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심어주는데 그 결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식공개를 하면서 만 명이 넘는 직원들이 백만장자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철저한 원칙주의자, 그리고 불같은 성격

스티브 발머는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원칙에 맞는 경영을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 사람입니다.  그에 비해 빌 게이츠는 엔지니어이고, 또한 엔지니어 답게 기업의 경영관리적인 측면에서는 허술한 측면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많은 싸움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창기 마이크로소프트가 조금씩 성공의 문을 열어가고 있을 시절, 30명 정도의 직원이 있었을 때 여러 사업기회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빌 게이츠는 빚을 얻기 싫어했고, 동시에 직원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안전지향적인 회사운영을 하려고 하였지만, 스티브 발머는 앞으로 다가올 기회를 본다면 적어도 15~20명 정도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을 하면서 대립각을 세운 사건은 유명합니다.  당시 스티브 발머는 시애틀의 빌 게이츠의 집에서 빌 게이츠의 부모들과 같이 살고 있었는데, 빌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가 회사를 망하게 할 것이라며 엄청나게 화를 내었고, 이에 질세라 스티브 발머는 사직서를 쓰고 짐을 모두 챙겨서 집을 나가기까지 합니다.  이런 갈등을 중재한 사람은 변호사였던 빌 게이츠의 아버지 였습니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가 직접 스티브 발머를 찾아와서 중재와 화해를 시키고 나서야 이들의 갈등은 봉합이 되었는데, 결국 스티브 발머의 의견대로 인원을 늘리면서 회사는 더욱 탄탄대로를 달리게 됩니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이 사건으로 스티브 발머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스티브 발머와 같이 원칙에 충실하고 창업자의 의견에 반기를 강력하게 들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행운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스티브 발머의 또 하나의 커다란 업적은 바로 스톡옵션을 고안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익숙해진 제도지만, 스톡옵션은 직원들에게 싼 값으로 회사의 주식을 살 수 있도록 권리를 주는 것으로 봉급과는 별도로 미래의 회사가치를 위해 더욱 많은 직원들이 열과 성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자, 정말 회사가 성공할 경우에는 다같이 부자가 될 수도 있게 만드는 제도입니다.  이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상장을 했을 때 백만장자로 등극한 직원이 1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앞서 빌 게이츠와의 갈등에서도 드러났듯이 스티브 발머는 대단한 다혈질로 공개석상에서도 화를 참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스티브 발머의 화내는 모습이 일부 동영상으로 유튜브로 퍼지면서 그의 성격이 도마에 오르기도 하였는데, 성격 탓에 자신의 능력에 비해 많은 부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측면도 있는 듯 합니다.  그에 비해 빌 게이츠는 언제나 밝은 표정에 다정다감하고 행동은 어떨지 몰라도 말을 할 때에는 상당히 겸손하게 이야기하는 편이라 세간의 평판이 좋았습니다.


빌 게이츠와의 권력다툼

이렇게 스타일이 달랐기에 회사 내에서도 은근히 빌 게이츠와 의견대립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호시탐탐 1인자의 자리를 노렸습니다.  그리고, 이사회에서도 빌 게이츠가 뛰어난 인물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함이 빌 게이츠에게만 끌려다녀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있었기에 스티브 발머를 통해 균형을 맞추려는 분위기가 많았습니다. 

물론 회사의 공동의 이득을 위해 같이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였지만, 2000년 스티브 발머가 CEO 로 등극하고 빌 게이츠가 2인자로 내려앉는 순간의 일화는 세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은 2008년 관련기사를 통해 2000년 당시 빌 게이츠가 이사회를 통해 자신을 밀어내려는 스티브 발머와 그의 조력자들을 향해 불같이 화를 내고 뛰쳐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스티브 발머가 약간 후회를 하기도 하였지만, 기자에게 인터뷰를 한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나는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게 기본원칙이다" "그를 이용하는 것은 좋지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I'm not going to need him for anything. That's the principle," Ballmer said. "Use him, yes, need him, no."

비록 스티브 발머가 빌 게이츠처럼 비전을 심어주거나,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창조적인 리더는 아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경쟁과 소신있는 발언을 통해 발전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모습을 보면서 기업의 오너에게 거의 전권을 주고 휘둘리며, 직위에 약간의 차이만 있으면 할말 거의 못하고 죽어지내는 우리나라의 커다란 기업의 문화가 대비되어 생각나는 것이 저만은 아니겠지요?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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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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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애틀로 옮긴 이후에 여러 8비트 컴퓨터 회사들의 BASIC 인터프리터를 구현하면서 점차 몸집이 커져갑니다.  그렇지만 엔지니어 위주의 회사가 몸집이 커지다보니 회사의 회계와 기본적인 관리를 포함한 경영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개발자 임금협상과 관련한 문제로 미국 노동중재위원회에 빌 게이츠가 불려가는 일까지 있으면서 전문경영인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 때 빌 게이츠가 선택한 인물이 바로 현재의 마이크로소프트 CEO로 있는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입니다.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보다 한살 어린 1956년 생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스티브 발머는 공부도 잘했지만, 하버드 대학의 미식축구 팀도 관리하고, 하버드 대학 학교신문인 하버드 크림슨(Harvard Crimson)에서도 일을 하는 등 매우 활발한 학교활동을 하였습니다.  빌 게이츠와는 기숙사에서 가까운 위치에 방을 얻어서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많은 접촉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하게 됩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스티브 발머는 2년간 세계적인 소매업체인 프록터앤갬블(Procter and Gamble, P&G)에서 일을 했는데, 그 당시 같은 사무실을 쓰던 제프리 이멜트(Jeffrey R. Immelt)는 훗날 GE(General Electric)의 CEO가 됩니다.  작은 사무실의 신입 동료들이 훗날 세계 최대의 회사의 CEO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P&G에서 나와 스탠포드 대학에서 MBA 과정을 이수하던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의 낙점을 받고 결국 스탠포드  MBA를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작은 회사에 자신의 미래를 거는 결정을 내립니다.

그를 합류시키기 위해 빌 게이츠는 정말 대단한 정성을 들였다고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빌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를 시애틀 친가에 초대를 해서 부모님들과 소개도 하고, 그를 위한 성대한 만찬을 열었습니다.  또한, 시애틀 관광도 같이하면서 하루종일 설득을 하였는데 빌 게이츠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에 홀딱 빠져들게 됩니다.  1980년 6월 11일, 스티브 발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24번째 직원이 되면서 개발자 위주의 조직인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관리를 전담합니다.  스티브 발머는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데 주식소유를 중시하였습니다.  자신도 입사를 하면서 1981년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의 8%를 소유하였고, 이후 스톡옵션을 고안해서 많은 직원들에게 회사에 헌신하고 동시에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심어주는데 그 결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식공개를 하면서 만 명이 넘는 직원들이 백만장자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BASIC 전도사, 엄청난 기회를 잡다.

빌 게이츠가 설립한 마이크로소프트는 Altair 8800 에서의 BASIC 언어 인터프리터를 구현한 것을 시작으로, 애플 II 의 애플소프트(Apple + Microsoft) BASIC 을 포함하여 당시 수많은 8비트 컴퓨터의 BASIC 을 구현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게 됩니다.   BASIC 언어는 익히기도 쉬워서 1970년대 후반 미국 정부에서는 컴퓨터 교육과정을 BASIC 을 중심으로 짜게 됩니다.  국내에서도 처음 8비트 컴퓨터 붐이 일었던 1980년대 초반 대부분의 컴퓨터 교육이 BASIC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거의 모든 컴퓨터에 우수한 BASIC 언어를 탑재해야하는 동력으로 작동하게 되고,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분야에서 최고의 회사로 인정받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의 비즈니스 환경은 결코 소프트웨어 회사들에게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돈은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컴퓨터 회사들이 많이 벌었고, 그렇게 많은 컴퓨터에 BASIC 언어를 구현했지만 1981년 MS-DOS 를 탄생시키기 전까지 마이크로소프트가 벌어들인 돈은 모두 합해서 500만 달러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비록 애플 II 가 가장 대표적인 컴퓨터로 이름을 날리고, 다양한 클론 제품군들이 나오면서 전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당시의 컴퓨터 환경은 글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습니다.  이 시기에 IBM이 1년간의 TFT를 통해 당시 호환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개방형 아키텍처와 호환기종이 쉽게 생겨날 수 있도록 한 정책, 그리고 범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 컨셉을 들고 나오면서 판세는 급격히 IBM으로 기울기 시작합니다.  IBM이 PC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많은 조언을 얻은 사람 중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있었습니다.  특히 CPU를 선정할 때에 인텔 8088 또는 8086 16비트 프로세서를 추천한 것도 빌 게이츠 였는데, 당시 가장 많이 이용되던 모토롤라 등의 CPU를 생각하던 IBM의 직원들을 논리정연한 설명으로 인텔 CPU를 채택해야하는 당위성을 설득시키면서 IBM의 PC 제작팀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드웨어의 구색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자, IBM은 운영체제를 놓고 오랫동안 고민을 하였습니다.  이 때에도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이 바로 빌 게이츠입니다.  빌 게이츠는 CP/M을 만든 게리 킬달이라면 새로운 인텔의 16비트 CPU에 최적화된 운영체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게리 킬달의 디지털 리서치를 소개합니다.  당시 게리 킬달의 CP/M 은 당대 최고의 운영체제로 애플 II 를 제외한 컴퓨터에서 거의 독보적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게리 킬달은 특히 비행기 광이어서 개인용 비행기를 사서 미국 전역을 날아다니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런 성격이 결국 거대한 기회를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주게 됩니다.  IBM과의 미팅약속을 해놓고도 게리 킬달은 자신의 비행기를 몰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고, IBM을 맞은 사람은 그의 아내인 도로시였습니다.  이 때부터 IBM의 감정은 상할데로 상한 상태였지만, CP/M이 워낙 마음에 들었기에 IBM은 디지털 리서치와 의견조율을 통해 CP/M을 IBM-PC에 맞게 개발하도록 대략적인 합의를 합니다.  그런데, 정작 계약은 엉뚱한데서 깨지게 됩니다.  IBM은 자신들의 PC 프로젝트의 기밀유지가 중요했기에 해당 프로젝트와 관련한 비밀준수게약을 디지털 리서치에 요구하는데, 디지털 리서치는 이런 요구가 자신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하고 계약 전체를 거부합니다.

IBM은 이 대목에서 디지털 리서치와 더 이상의 줄다리기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 게이츠를 불러서 혹시 운영체제를 개발해줄 수 없냐는 의사타진을 합니다.  당시의 빌 게이츠는 BASIC 인터프리터는 많이 개발했지만 정작 운영체제를 개발한 경험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면 대단한 모험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을 바꿀 기회가 왔다는 것을 직감한 빌 게이츠는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Seattle Computer Product, SCP)라는 회사가 CP/M을 기반으로 만든 86-DOS 라는 운영체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대담하게 이 제안을 받아 들입니다.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 빌 게이츠에게 넘어가다.

86-DOS는 인텔의 8086 16비트 CPU에 동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CP/M 기반의 운영체제입니다.  SCP는 자신들의 컴퓨터를 디자인하면서 디지털 리서치의 CP/M을 인텔 8086에 맞게 개발된 것이 있다면 채용을 하려고 했지만, 디지털 리서치는 계획만 발표하고 실제로 동작하는 운영체제의 출시를 차일피일 늦추고 있었습니다.  이에 SCP는 24세의 젊은 컴퓨터 천재인 팀 패터슨(Tim Paterson)을 고용하여 16비트 CP/M 운영체제를 개발하라고 합니다.

팀 패터슨은 오래된 CP/M 프로그램과 호환이 되는 API를 가지고 86-DOS를 디자인합니다.  동시에 CP/M을 쓰면서 불편했던 점들 개선하는 방향으로 운영체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CP/M의 파일 시스템 대신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텔 8086 CPU 용으로 개발한 BASIC-86이 가지고 있었던 FAT 파일 시스템을 채용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BASIC과의 호환성을 극대화 하였습니다.

IBM으로부터 일단 전권을 위임받은 빌 게이츠는 SCP와 협상을 통해 1980년 12월 $25,000 달러라는 헐값에 86-DOS에 대한 라이센스를 획득합니다.  1981년 5월 마이크로소프트는 팀 패터슨을 스카웃해서 IBM-PC가 채택한 8088 CPU에서 동작하는 운영체제를 개발하도록 하였습니다.  1981년 7월, IBM-PC가 출시되기 한달 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SCP로부터 86-DOS와 관련한 모든 권리를 $50,000 달러에 사들입니다.  이 때의 계약은 후일 SCP와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디지털 리서치 사이의 법정분쟁에서도 문제가 되는데, 마이크로소프트가 SCP 측과 계약을 할 당시 IBM과 진행하던 프로젝트 내용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IBM이라는 거대한 기업의 운영체제로 사용될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SCP의 사장은 너무나 싼 가격에 모든 권리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겨주게 된 것입니다.  법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의 계약관계를 SCP 측에 알릴 의무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을 숨기고 시장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계약을 한 것에 대한 도의적인 불만은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이 사건은 결국 마이크로소프트가 SCP 측에 100만 달러를 더 주는 수준에서 중재가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86-DOS를 IBM에게 라이센스를 주는 계약을 맺는데,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PC-DOS 1.0 입니다.  여기에 더해 마이크로소프트는 독점사용권과 일시불 계약을 원하던 IBM을 출시시간의 압박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독점도 주지 않고, 로열티 계약을 하는 대단한 성과를 올리게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BM의 개방형 정책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입게 됩니다.  이후 수많은 IBM-PC 호환기종들이 나오게 되는데, 이들에게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의 회사 이니셜을 딴 MS-DOS를 판매합니다.  MS-DOS는 PC-DOS와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운영체제로 오리지널 IBM-PC를 제외한 호환 컴퓨터에서 판매된 운영체제입니다.


디지털 리서치, 뒤늦은 후회와 잘못된 전략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어이없게 마이크로소프트에게 IBM의 운영체제 자리를 빼앗겨버린 디지털 리서치의 게리 킬달은 PC-DOS를 살펴 보다가 PC-DOS가 자신이 개발한 CP/M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그대로 복제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IBM을 지적재산권 침해로 고소하려고 하였으나, 디지털 리서치의 변호사는 IBM과의 송사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IBM과 어떤 형태로든 중재를 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을 권합니다.  이에 게리 킬달은 IBM과의 담판을 통해 자사의 CP/M-86 과 마이크로소프트의 PC-DOS 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데 합의합니다.  이 때만 하더라도 게리 킬달은 CP/M-86 이 안정성과 기능성 모두에서 PC-DOS 를 압도한다고 믿었고 그에 따라 자신의 승리를 자신하면서 가격정책을 결정합니다.

디지털 리서치가 IBM-PC를 구매할 때 옵션으로 CP/M-86 을 선택할 때 제시한 가격은 $240 달러였고, PC-DOS는 $60 달러에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기술적으로 CP/M-86 이 훨씬 나았고 게리 킬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비교가 안되는 운영체제라고 생각했겠지만, 소비자들은 저가의 PC-DOS를 대부분 선택합니다.  이와 함께 IBM 호환기종을 내놓은 업체들 역시 오리지널 IBM-PC 와의 완벽한 호환성을 위해서 대부분 MS-DOS 를 채택하면서 결코 저물지 않을 것 같았던 디지털 리서치의 CP/M 신화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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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난 연초를 뜨겁게 달구는  IT 업계의 큰 행사가 있습니다.  CES와 맥월드가 그것인데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올해에는 IT 업계의 두 거인인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참석하지 않습니다.  관련기사는 광파리님이 올려주신 바가 있는데, 아래에 링크하겠습니다.
스티브 잡스 없는 '맥월드', 빌 게이츠 없는 'CES'…


그렇지만, 언제나 지는 해가 있으면 뜨는 해도 있는 법 ...  두 거인이 퇴장한 자리에 어떤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단은 게이츠의 역할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현 CEO인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와 소니의 회장인 하워드 스트링거(Howard Stringer)가 맡게 되며, 맥월드에서는 애플의 마케팅 수석부사장인 필 쉴러(Phill Schiller)가 나옵니다. 이들 3명 모두 재미있는 프리젠테이션을 하기로 유명한 사람들 입니다만, 아무래도 게이츠와 잡스와 같은 카리스마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요? 

사실 스티브 발머의 경우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권을 장악한 이후,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평이 나올 정도 입니다.  호환성 없는 DRM 플랫폼은 애플의 디티절 음악 시장의 제패를 방관하였고, 이기기 힘든 게임기 콘솔 시장에서는 닌텐도에게 밀리고 있으며, 윈도우 비스타는 사실 상 실패했음을 자인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에서 역시 급속도로 파이어폭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어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테크크런치에서 파기한 엠바고 내용을 보면 올해 CES에서 이런 위기를 반전시킬만한 카드가 별로 보이지를 않는군요 ...  눈에 띄는 것은 소니와 함께 발표하는 새로운 Zune Phone 정도 입니다.  그 밖에는 윈도우 7이나 홈 서버인데 그 다지 기대할 만한 것은 못될 것 같습니다. 




소니의 회장인 스트링거가 키노트에서 발표할 주요 내용 역시 아무래도 Zune Phone에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대규모의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소니는 여전히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평이고, 야심차게 준비했던 PS3가 실패를 하고 있는 와중입니다.  어찌보면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동병상련인데요, 소니의 상황이 더 안좋지요?

애플에서 나올 쉴러의 경우는 상당히 유능한 사람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언제나 잡스를 대신하기 위해 준비된 사람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이니 어느 정도 기대는 됩니다만, 그렇지만 잡스의 카리스마를 대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특히 일부에서는 임기응변에 약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기자들의 질의응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고도 하구요 ...

맥월드에서 애플이 새로 발표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기대들이 많습니다만, 일단 새로운 맥 미니(Mac Mini)가 가장 유력하다고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현지 소식에 따르면 베일에 가려진 플랭카드들이 많다는 것으로 보아서는 커다란 변화보다는 여러가지 신제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되려 CES의 3번째 키노트 스피커로 나서는 포드의 앨런 머랠리(Alan Mulally)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연설은 어찌보면 최근의 자동차 업계의 상황과 연관되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데, 단순히 업계의 변명을 하는 자리가 되지는 않을까 합니다만 ...  일단 2011년 출시할 하이브리드 카와 이 새로운 차종에 탑재될 in-car 인터넷 기술과 도킹 시스템 등의 차량과 인터넷, 그리고 IT 기술을 접목하는 기술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기술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업계의 현실과 관련한 솔직한 이야기 그리고 도덕적인 부분에 대한 언급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 회사들을 대표해서 말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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