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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바르 부시의 메멕스(MEMEX)



20세기 초반에는 1편과 2편에서 보듯이 모든 것을 동부가 주도하였다. 미국 동부는 오랫동안 미국 공업의 심장부의 역할을 하였고, 미국 북동부 기업의 대다수는 20세기 초반 자유경쟁에서 승리하면서 거대기업으로서의 강력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들은 국가의 핵심 산업의 행방을 좌우하였고, 제3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가와 혼연일체가 되는 경험도 하게 된다. 정보산업에서는 IBM, AT&T, 제록스 등이 크게 부상하였고, 자동차산업에서는 GM, 포드, 크라이슬러라는 거대 기업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거대한 관료제를 바탕으로 하는 조직을 구성하였고, 마치 정부와도 같은 강력한 관리문화를 확산시키며 번영을 누렸다. 어떤 측면에서는 현재의 우리나라의 대기업 중심의 문화가 20세기 초중반의 미국 동부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배니바르 부시와 메멕스


배니바르 부시[Vannevar Bush]는 1편에서도 언급한 MIT의 노버트 위너의 동료로 1946년에 발표한 메멕스(MEMEX, MEMory EXtender)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인간이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한 방대한 지식을 빠르게 검색하고 이용하게 되면 인류의 정신적 능력이 크게 발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인간이 생산한 정보와 지식을 저장하여 빠르게 검색할 수 있는 소형 컴퓨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그것이 메멕스다. 메멕스는 그 개념의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인용 컴퓨터와 웹을 탄생시킨 배경이 된다. 


배니바르 부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루스벨트 정권의 과학자문으로 활약했는데, 정계에 투신하여 미국과학연구개발국 국장을 지냈다. 그는 미국 최고의 과학자 6,000 여 명을 모아서 전쟁에 승리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지휘하는데, 이것이 바로 1편에서도 언급한 맨해튼 프로젝트이다.


이처럼 배니바르 부시는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행정과 정치를 모두 알고 있는 인물이었기에 사회가 복잡해지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문적이고 고도화된 지식을 어떻게 다루느냐 달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와 개인의 정보처리능력 향상이 중요하다는 것에 매달리게 되는데, 여기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메멕스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컴퓨터는 군사기술에나 활용되던 것이기에, 민간에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생각은 인간과 컴퓨터가 협력할 수 있다는 철학을 퍼뜨리게 되고, 이것이 개인용 컴퓨터 개발로 이어진다. 


그는 이후 전미과학재단(NSF, National Science Foundation)의 설립에도 관여하는데, 연방정부와 과학자의 전시협동 체제를 평시에도 국가를 위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초기 인터넷 개발에도 참여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배니바르 부시는 오늘날 웹의 기반을 닦은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냉전시대의 개막과 스탠포드 대학


오늘날의 스탠포드 대학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손꼽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났을 당시의 스탠포드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지역대학에 불과하였다. 187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릴랜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는 란초 샌프란시스코(Rancho San Francisco) 지역의 650 에이커의 토지를 매입하여, 이곳에 팔로알토 말 목장 (Palo Alto Stock Farm)을 설립하였고, 곧이어 인근에 있는 8000 에이커의 토지를 더 매입하여 캘리포니아에서는 가장 거대한 말 목장을 운영하였는데, 훗날 이 거대한 말 목장이 오늘날의 스탠포드 대학교의 캠퍼스이다. 린랜드 스탠포드의 외아들인 릴랜드 스탠포드 주니어(Leland Stanford, Jr.)는 1884년 16세가 되기 전에 장티푸스로 사망했는데, 릴랜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와 그의 부인은 아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처음에는 하버드 대학에 거액의 기부를 하겠다고 제안하며, 자신의 아들 이름을 딴 시설이나 학교를 만들어 달라고 하였으나 하버드 대학이 거절하자, "캘리포니아의 젊은이들을 우리의 자녀로 삼자" 부인을 설득하여 1891년 스탠포드 대학교로 개교를 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당시의 스탠포드 대학은 연방정부의 연구예산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연구형 대학으로 변모를 꾀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시대가 되자, 태평양 연안의 지정학적 의미가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캘리포니아 주 남서부에 공군기지가 창설되면서 많은 항공우주산업과 관련한 주요 기업과 연구기관이 태평양 연안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NASA의 연구기관인 에이미즈 연구센터(Ames Research Center)를 시작으로, 대규모 군사 예산이 이 지역에 투자되었고, 그 자금의 일부는 정부기관, 기업, 대학연구소 등으로 흘러들었다. 당시 날씨는 좋았지만, 대형 민간기업이 별로 없었던 캘리포니아는 비행기나 로켓의 항로 제어기술을 중심으로 항공우주산업을 지원하는 형태로 연구자금을 받았고, 마침 인근의 실리콘 밸리에서 반도체 산업이 기지개를 켜면서 스탠포드 대학은 당대 최고의 대학으로 웅비할 차비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게임이론, 냉전과 함께 서부에서 각광받다


존 폰 노이먼의 게임이론 역시도 냉전과 함께 또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게임이론은 원래 경제적인 이득과 관련한 부분이 연구의 주된 초점이었지만, 게임행동의 전략성에 초점을 맞추면 군사행동 시뮬레이션에도 접목이 가능하다. 여기에 주목한 인물이 바로 허만 칸(Herman Kahn)이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랜드(RAND)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근무하였는데, 랜드 연구소는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 중의 하나로 미국의 방위산업 재벌인 맥도널 더글러스(McDonnel Douglas)의 전신인 더글러스 항공이 1948년에 설립한 연구소이다. 랜드연구소는 냉전시대와 함께 군 예산을 투자받아서 전략적으로 육성된 곳으로 허만 칸의 게임이론 연구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개발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후 세계적인 미래학자로도 이름을 떨치게 된 허만 칸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1961년 랜드연구소를 그만두고 자신이 직접 허드슨 연구소(Hudson Institute)를 설립하여 회장직을 맡는다. 그때부터 그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자주 비밀스럽게 방문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박정희 전대통령의 수출주도 전략이나 새마을 운동, 경제개발 5개년 개발계획 등의 아이디어를 처음 제공했다는 비사가 전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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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 계속)


참고자료:


Memex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배니바르 부시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스탠포드 대학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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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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