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용컴퓨터'에 해당하는 글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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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흥미로운 IT 관련 역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언제나 1등과 남아있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구경할 수 있지만, 정작 역사를 바꾸었던 장본인들이 퇴장하고 잊혀지게 되는 슬픈 이야기는 많이들 찾아보기가 어렵죠?  오늘은 그 중의 대표적인 회사이고 제품인 MITS와 Altair 8800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과거 이 블로그에서는 혁신의 선봉에 섰지만 그에 걸맞는 성공은 이루어내지 못했던 전설적인 연구소 제록스 PARC에 대한 이야기와 오늘날 닌텐도를 있게 한 계기를 마련한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에 대한 글도 비슷한 맥락에서 게재한 적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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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의 역사를 바꾼 잡지의 Cover Story

위의 사진에 보이는 잡지는 Popular Electronics 1975년 Vol 7, Number 1의 커버입니다.  전면에 보이는 컴퓨터가 바로 Altair 8800으로 이 이슈에서 세계 최초의 PC라고도 할 수 있는 Altair 8800이 소개되었습니다(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인텔 8008 기반의 Mark-8을 시초로 보기도 합니다).  원래 Popular Electronics 라는 잡지는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취미를 가진 매니아들을 위해 부품도 팔고 조립법을 알려주는 글을 많이 싣습니다.  Altair 8800도 이런 방식으로 판매가 되었는데, 원래 수백 대 정도가 팔릴 것으로 기대하고 글을 실었는데, 첫해 수천 대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당시로서는 커다란 히트를 기록합니다.

키트에는 인텔의 8080 마이크로프로세서와 256바이트 RAM, 라이트와 스위치, 그리고 철제 케이스와 파워 서플라이를 합쳐서 $397 달러에 판매를 하였고, 조립을 완료한 제품의 경우 $498 달러에 판매가 되었습니다.  

이 컴퓨터는 PC라는 역사를 만들어낸 장본인으로도 유명하지만, 당시 하버드 대학을 다니던 빌 게이츠(Bill Gates)를 대학을 중퇴하고 컴퓨터 소프트웨어 산업에 진출하게 만들어 향후 세계를 바꾸는데 일조를 하게 되었습니다.


MITS의 역사

Altair 8800을 탄생시킨 MITS의 창업자인 Ed Roberts와 Forrest M. Mims 3세는 미국 공군에서 연구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1969년 이들은 로켓을 제작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제작키트를 만들어 판매하려는 목적으로 Stan Cagle과 Rober Zaller와 함께 MITS(Micro Instrumentation and Telemetry Systems)를 창업합니다.  MITS는 뉴멕시코 주의 앨버커키에 본사를 두었습니다.

MITS의 로켓 제작키트는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러한 키트를 제작하는 사업에 흥미를 잃은 Cagle과 Mims는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Ed Roberts는 Electronic Array가 전자계산기를 제작할 수 있는 LSI IC들을 발표하자, 이를 이용하여 계산기를 제작하는 키트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완성된 제품이 MITS 816 계산기 키트였는데, 이 키트는 1971년 Popular Electronics의 커버를 장식하며 상당한 성공을 거둡니다.  뒤이어 1973년에는 MITS 1440 계산기가 소개되었고, 점점 발전된 모델을 다른 잡지에도 소개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잡지사의 권유로 시작한 프로젝트

MITS는 주로 전자계산기 조립 키트를 만들던 회사였기에, 당시 판매와 홍보의 역할을 동시에 담당했던 Radio Electronics나 Popular Electronics와 같은 잡지사와의 관계가 무척 중요했습니다.  이 두 잡지사는 오늘날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ZD(Ziff-Davis)의 잡지계열에 있었는데 (현재는 손정의의 소프트뱅크가 소유를 하고 있지요?), 1972년에 Polular Electronics로 통합이 됩니다.

Popular Electronics의 편집장 이었던 Les Solomon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CPU 였던 인텔 8080을 MITS가 잘 다룬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완성된 제품(현대적 PC의 개념)을 개발하기를 권유합니다.  그는 박스까지 완전하게 제작된 프로페셔널한 제품 키트를 원했고, MITS는 이 권유를 받아들여서 Altair 8800의 설계 및 제작에 착수합니다.

1976년 있었던 Altair Computer Convention에서 Les Solomon은 Altair라는 이름을 자신의 12세된 딸이 스타트렉 에피소드를 보면서 제안한 이름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당시 스타트렉 에피소드는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이 Altair라는 곳을 향해 가는 것이었는데, 미지의 신세계를 간다는 측면에서의 작명이 된 것이죠 ...

Ed Roberts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큰 고심을 한 부분이 바로 CPU를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인텔의 4004나 8008은 그다지 강력하지 않았고, 그 대안으로 고민한 National Semiconductor의 IMP-8이나 IMP-16은 외부 하드웨어를 요구했으며, 모토롤라의 6800은 아직도 개발 중인 단계였습니다.  그래서, 다소 위험 부담을 안고 인텔의 새로운 8비트 CPU인 8080을 선택합니다.  인텔 808은 1974년 4월에 출시가 되었는데, 유닛당 $360 달러라는 가격을 책정했지만, Ed Roberts는 인텔과 성공적인 협상을 통해 $75 달러에 칩을 공급받고 본격적인 컴퓨터 제작에 들어갑니다.


세계 최초의 PC 탄생과 대성공

이렇게 제작된 Altair 8800의 출시는 빌 게이츠를 포함한 전세계의 젊은이들의 마음에 불을 당깁니다.  수백 대 정도의 판매를 생각했지만, 순식간에 제작된 키트와 완성품들이 동이 났습니다.

Altair 8800의 완성품 from Wikipedia

1975년 8월이 되기 전에 이미 5,000대가 넘는 컴퓨터가 팔렸고, MITS는 직원을 20명에서 90명까지 늘려야 했습니다.  1975년 전반기 까지만 하더라도 시장에는 아무런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4K 메모리드에 이용된 다이너믹 RAM에는 일부 디자인 문제가 있었고, 이로 인해 공급이 늦어지면서 다른 경쟁자들이 진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고 말았습니다.


빌 게이츠와 Altair Basic의 탄생

Altair 8800이 신나게 판매가 되고 있는 도중, Ed Roberts는 시애틀에 있는 한 회사에서 BASIC 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구매할 의사가 없는지를 묻는 편지를 받게 됩니다.  당시 BASIC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던 Ed는 회사에 전화도 해보고, 주소에 찾아도 가보지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 편지는 보스턴에 있었던 빌 게이츠와 폴 알렌에 보낸 것으로 그 때까지 BASIC을 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Ed Roberts가 BASIC과 같은 것에 관심이 있었는지를 알기 원했던 것입니다.  

일단 관심이 있다는 것이 확인이 되자, 빌 게이츠는 폴 알렌과 함께 BASIC 인터프리터를 PDP-10 미니컴퓨터의 8080 시뮬레이터를 이용해서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완성된 프로그램을 종이 테이프에 펀칭을 해서 앨버커키까지 날아간 폴 알렌은 Altair 8800에서 실행을 시켰지만, 화면에 일단 "Altair Basic" 이라는 표시만 남기고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첫번째 작업이 실패했지만, 이 사건은 일단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를 주는 것에는 성공을 하였고, 지속적인 작업을 통해 프로그램을 완성합니다.  여기에서 바로 역사적인 기업 "Micro-Soft"가 탄생하게 됩니다.  BASIC을 시작으로, 포트란 컴파일러와 디스크 운영체제인 MITS-DOS를 개발한 Microsoft는 결국에는 MITS의 품을 떠나 워싱턴 주로 독립을 하면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 나갑니다.


무리한 영업정책과 매각

이렇게 잘 나가던 MITS의 성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여러가지 문제로 공급이 원활하지았지만 Ed Roberts는 새로 설립된 컴퓨터 스토어에서 Altair 8800을 제외한 다른 제품들은 취급할 수 없도록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이런 강압적인 정책은 수많은 컴퓨터 소매점의 외면을 받게 되고, 결국에는 애플과 같은 경쟁업체들과의 싸움에서 밀리게 되면서 1977년 5월 Pertec Computer라는 회사에게 $650만 달러에 회사를 매각하기에 이릅니다.

MITS를 Pertec에 매각을 하고, Microsoft와 Ed Roberts는 모두 앨버커키를 떠납니다.  Roberts는 이후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었는데, 현재도 조지아 주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MITS를 인수한 Pertec은 이런저런 생산기술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량생산체제에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였고, 수많은 제품하자에 시달리다가 결국 1980년 모든 Altair 제품 생산라인을 폐쇄하고 사업을 포기합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혁신적인 기술도 결국 상업화와 대량생산에 들어가서 승리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Altair 8800은 보여주었습니다.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지만, 결국 짧은 생을 마감한 Altair 8800과 MITS는 그래도 Microsoft라는 당대 최고의 회사를 탄생시키는데 일조를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조지아에 가서 MITS를 창업했던 Ed Roberts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과거 이야기와 회사를 매각하고 의학의 길로 접어들게 된 이유와 살아가는 이야기 ...  정말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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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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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보잉에 고전적인 개인용 컴퓨터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웹사이트를 소개했네요.  한 번 들어가 보세요.  저는 옛날의 향수가 밀려와서 감회가 무척이나 새롭네요 ... 

과거 사진 모을 수 있으면 우리나라에 출시되었던 것들 중심으로 블로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 
아마도 청계천표 애플II와 금성의 패미콤(FC-100, FC-30), 삼성의 SPC-1000 시리즈, 그리고 뒤이어 나온 대우전자의 MSX 호환기종이 될 것 같은데, 한 번 사진자료 찾아서 포스팅 해봐야 겠습니다.

개인용 컴퓨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웹사이트 ... 아래를 따라가시죠?  몇 개는 제가 여기 소개하겠습니다.

http://oldcomputers.net/pics.html


개인용 PC의 시초는 1975년의 MITS의 Altair 8800을 드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뭐니뭐니해도 개인용 컴퓨터가 미국을 강타한 해는 1977년도 입니다.  이 해에 애플 II와 현재는 소규모의 전자제품 유통업체로 유명한 라디오쉑(Radio Shack)TRS-80이 등장해서 PC 열풍을 만들어 냈습니다.



제가 너무나 사랑하고, 저를 컴퓨터에 빠지게 만든 장본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애플 II 컴퓨터입니다.   48KB의 메모리를 가진 모델이 당시 $2638불이라는 고가로 판매되었지만 백만 대 이상 팔립니다.  1 MHz의 6502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용했는데, 아직도 6502 어셈블리 언어로 프로그래밍 하던 기억이 납니다.  어큐뮬레이터와 X, Y, 모두 3개의 레지스터 만을 가지고 프로그래밍을 해야 했기에 제약이 무척 많았지만, 카세트 레코더를 이용한 입출력과 8개의 확장 슬롯을 개방형 아키텍처로 지원했기에 확장성이 최고였습니다.  이러한 개방형 정책 덕에 수많은 클론이 등장하게 되고 (싼 가격에), 이후 애플이 개방형 아키텍처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애플  II 만큼은 아니지만 20만대 이상 판매된 베스트 셀러인 Radio Shack의 TRS-80 입니다.  모니터 포함 $599.95에 판매하여 애플 II 보다 훨씬 저렴했습니다.  이후 PC의 대세가 된 자일로그 사의 Z-80A, 1.77 MHz CPU를 사용하였고, 램의 16KB 정도로 작았습니다 (당시에는 메모리 가격이 워낙 비싸서 ...).  TRS-80이라는 이름은 컴퓨터를 개발한 Tandy + Radio Shack + Z-80 의 합성어입니다.




이후 몇몇 개인용 컴퓨터가 더 출시되었지만, 애플과 탠디의 컴퓨터를 능가하는 제품은 1979년까지 나오지 못합니다.  1979년 개인용컴퓨터 역사의 기념비적인 제품의 하나인 Atari-800이 출시됩니다.

$999.95불에 출시된 이 제품은 애플 II와 마찬가지로 6502 CPU (1.8 MHz, 다소 빠릅니다)와 최고 48KB 메모리를 장착했지만, 혁신적인 컬러 그래픽과 사운드를 지원하는 보조 프로세서를 장착했습니다. 여기에 2개의 롬팩 카트리지 슬롯을 지원하여 컴퓨터 게임의 역사를 만든 컴퓨터 입니다.

옆에 카트릿지들에 적혀있는 게임들을 보시면, 게임의 역사가 보이지 않으십니까?  BASIC 언어 패키지 역시 이런 형태의 카트리지로 제공되었고, 전설적인 게임인 맨(PAC-MAN)과 마리오 캐릭터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돈키콩(DONKEY KONG)이 기본 카트리지로 제공되었습니다. 


그 이후, 훨씬 많은 수의 회사들이 다양한 컴퓨터 들을 출시합니다.  대부분 일정 수준의 성공을 거두기는 합니다만, 애플 II와 탠디, 아타리를 넘어서는 제품은 많지 않았습니다.  1982년이 되어서야 또 하나의 히트 제품이 나옵니다.  코모도어(Commodore)Commodore 64가 그것입니다.


이 제품은 출시 후 전세계에 1700만대가 팔린 대형 히트작입니다.  단일 컴퓨터 기종 판매로서는 아직도 이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595불에 출시되었으며, CPU는 6502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수 있는 6510을 사용했습니다.  64KB의 램을 가지고, 컬러 그래픽 지원이 뛰어났으며, 카트리지 포트와 ROM BASIC이 기본 제공되었습니다.  기술적으로도 게임 개발에 있어서 중요한 기술들이 많이 포함되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고해상도 그래픽 모드, 유연한 스크롤 기능, 스프라이트, 비트매핑, 캐릭터 충돌 감지나 매핑, 그리고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사운드 기능 등이 지원되어 게임 개발자들이 편하게 PC용 게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수천 개가 넘는 게임용 소프트웨어가 이 제품을 지원하였고, 대히트를 하게 된 발판이 됩니다.


여기까지가 아무래도 대형 히트작이 포함된 8비트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1981년에 IBM이 인텔의 8088 CPU를 기반으로한 16비트 컴퓨터의 시대를 처음으로 열면서, 이후 급속하게 인텔 + IBM (컴팩 등의 클론 포함) 하드웨어와 마이크로소프트의 DOS 쪽으로 힘이 쏠리게 됩니다만, 한 동안은 춘추전국시대가 지속됩니다. 

옛날 이야기하니, 저도 나이가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  이렇게 과거 기억이 나게 만드는 기사나 관련 글들을 보면 참 반가운 것은 어쩔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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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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