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성곽길은 종로구 일대의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다. 지하철 경복궁역에서 내려 사직공원을 통과하는 방법이 가장 간단하고, 지하철 독립문역과 무악재역을 이용해도 된다.

오늘은 사직터널 위쪽에 있는 행촌동 골목길을 택한다. 가파른 동네를 조금 헤맬지 모르지만, 골목 사이사이 계단길이나 옹기종기 자리 잡은 구멍가게들은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또 막다른 골목 끝에서 450년이 된 은행나무와 세월에 빛이 바랜 저택도 만날 수 있다.





막다른 골목에서 몇 번을 헤맸을까. 양의문 교회를 지나자 인왕산 역사탐방길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권율 장군의 은행나무가 있다는 그 오래된 저택은 어디에 있는 걸까.  구멍가게 앞 할머니께 여쭈니 ‘바로 저기 뒤에 있는 터를 지나가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어. 거기에 빨간 이층벽돌집도 있고.’ 하신다.  돌아선 걸음을 향해서도 몇 번을 일러주신다.  도무지 길로 보이지 않는 뜰을 지나고 좁은 문을 지나니 정말 하늘을 뒤덮은 은행나무와 벽돌로 지어진 이층집이 비밀처럼 펼쳐졌다.



‘Dilkusha 1923, P.S.ALM CⅩⅩⅤⅡ-Ⅰ’ 머릿돌에 이 건물의 의문을 풀어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당초 이 건물은 대한매일신보사의 사옥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 건물의 소유자 브루스 테일러 씨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진실이 밝혀졌다.

테일러 집안은 한국과 100년의 인연을 맺어왔다. 할아버지 조지 알렉산더 테일러씨는 일찍이 평북 운산의 금광 기사였고, 아버지 앨버트 테일러 씨는 3·1운동 당시 UPI통신 특파원 당시 독립선언서 일부를 전 세계에 알린 장본인이다.  이 건물은 앨버트 테일러 씨가 1923년 지은 것으로 1942년 일제에 의해서 추방될 때까지 아내와 함께 이곳에서 거주했다고 한다.  딜쿠샤(Dilkusha)는 힌두어로 ‘이상향’라는 뜻이다.



조심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서다가 아저씨 한분과 마주쳐 깜짝 놀란다.  현재 이 건물에는 17세대의 주민들이 나눠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실내는 어둡고 모든 방문은 굳게 잠겨 있다.  딜쿠샤는 현재 뒤늦게 문화재 등록이 추진되고 있다고 하지만 너무 오래 동안 방치된 흔적이 역력해 아쉬움이 남았다.



 
왔던 길을 다시 나와 성곽길을 따라 오른다. 오래된 주택가 위에 작은 도로를 따라 성벽이 이어진다. 조금 걸어가다 보면 교남체육공원으로 가는 오솔길과 주택가 길로 갈라진다. 교남체육공원 방향은 성벽이 왼쪽으로 휘어 돌기 때문에 멀리 인왕산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인왕산 산책길을 가려면 주택가 골목을 지나 무악현대아파트 뒤로 돌아 오르는 것이 편리하다.

달동네 철거와 함께 우뚝 자리를 차지한 무악현대아파트는 아직 재건축 안 된 무허가 집들과 어색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옛날 가난한 달동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인왕산길은 왕복2차선 자동차 전용도로로 인왕산 기슭을 돌아 북악산 뒤 북악스카이웨이로 이어진다.  도로에서 만난 초소병이 사진촬영을 자제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한다. 

도로를 따라 함께 이어지는 산책로는 곧 도로와 헤어져 숲길로 이어진다.  개울이 흐르는 청명한 소리를 듣고 걸으면 마치 아무도 모르는 비경을 혼자서 누리는 듯한 기분을 주기도 한다.



조금 더 가면 숲 가운데 오래된 옥인아파트 앞에서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오른쪽으로 난 청운약수터 쪽으로 가서 산림욕을 해도 좋고 내쳐 정상으로 향해도 좋을 것 같다.  벌써 늦은 오후라 오늘은 옥인아파트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아직 못 가본 길을 남겨두고 09번 마을버스가 출발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글/사진 : 박지선 (우리들 C&R)

-----------------------------------------------------

이 내용은 우리들 웹진을 통해서도 발간된 바 있습니다. 

우리들 웹진으로 바로가기 ...



WRITTEN BY
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트랙백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