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현재는 과거의 위세를 잃고, 오라클(Oracle)에 인수되는 신세가 되었지만, 썬 마이크로시스템스(Sun Microsystems)는 한동안 구글의 CEO로 맹활약했고, 현재도 구글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에릭 슈미트(Eric Schmidt)가 CTO로서 일했던 실리콘 밸리를 대표했던 기술기업이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탄생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첫 번째 유닉스 워크스테이션인 Sun-1 은 앤디 벡톨샤임(Andy Bechtolsheim)이 스탠포드 대학의 대학원 학생이던 시절에 처음 디자인하였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3M(1 MIPS 속도, 1 MB 메모리, 1 메가픽셀 해상도) 개념을 현실화한 컴퓨터로 유닉스의 가상 메모리를 지원할 수 있는 메모리 관리유닛(MMU, Memory Management Unit)을 가진 모토롤라의 68000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 프로토타입을 바탕으로 1982년 2월 24일, 앤디와 함께 비노드 코슬라(Vinod Khosla), 스캇 맥닐리(Scott McNealy)가 공동으로 회사를 설립하였다. 뒤를 이어 BSD 유닉스의 메인 개발자였던 버클리 대학의 빌 조이(Bill Joy)가 합류하면서 늦었지만 공동창업자의 일원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SUN 이라는 이름은 Stanford University Network 이라는 문구의 이니셜을 딴 것으로 그만큼 이들은 스탠포드 대학에 대한 애착이 컸다. 


뒤를 이어 1983년에는 이후 구글의 CEO 가 되는 에릭 슈미트가 입사를 한다. 그는 초기 썬의 워크스테이션부터 시작해서, 자바 개발과 관련한 프로젝트들을 많이 주도하면서 CTO(Chief Technology Officer)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는데, 1997년 노벨(Novell)의 CEO로 자리를 옮긴다. 썬은 SPARC (Scalable Processor Architecture) 라고 불렸던 고성능의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ing) 라는 CPU를 1986년에 발표하면서, 이를 이용한 첨단 워크스테이션으로 당시 대형서버와 PC 사이에 존재했던 워크스테이션 시장을 장악하며 승승장구하였다. SPARC CPU는 당시 PC 에서 많이 이용되던 인텔의 286/386 등의 CISC(Complex Instruction Set Computing) 계열 CPU 보다 훨씬 빠른 성능을 보였으며, 썬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유닉스 계열인 솔라리스(Solaris)라는 운영체제와 함께 이용될 경우 성능의 격차가 훨씬 커졌기 때문에 고가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대학이나 연구소를 중심으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워크스테이션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자바, 인터넷을 만나 꽃을 피우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는 솔라리스라는 운영체제를 탑재한 워크스테이션과 서버를 팔아서 수익을 올리는 하드웨어 회사였지만, 오늘날 가장 많은 개발자들이 이용하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자바(Java)를 처음 만들어낸 회사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자바는 제임스 고슬링(James Gosling)이 1991년 시작한 프로그래밍 언어 프로젝트로 원래는 제임스 고슬링이 많은 셋탑박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운영체제와 관계없이 한 번만 코딩을 하면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환경과 언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진행을 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제임스 고슬링의 사무실에서 보이는 참나무(oak)에서 영감을 받아 Oak 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이 이미 상표등록이 되어있다는 것을 안 뒤에 동료들과 여러 이름들을 자바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찾는 과정에서 커피의 산지를 이름으로 정했다고 한다. 


제임스 고슬링은 하드웨어와 관계없이 동작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어떤 하드웨어나 운영체제에서도 동작할 수 있는 가상머신(virtual machine)을 만들고, 이 위에서 동작하게 만들면 한 번만 만들어서 여러 곳에서 쓸 수 있다는(Writing Once, Run Anywhere) 개념을 중요시하였고, 또한 당시 가장 많이 사용하던 C/C++ 프로그래밍 언어와 문법이 비슷하지만 골치거리인 메모리 관리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언어를 디자인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자바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를 통해 1995년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후 여러 부침이 있었지만, 자바는 전세계 프로그래머들이 가장 사랑하는 언어로 그 자리를 공고하게 지켰다. 당대 최고의 컴퓨터 관련 기업이었던 IBM 역시 자바에 대해 강력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특히 강력한 웹 지원기능과 서버환경에 적합한 도구 및 기능을 제공하면서 WAS(Web Application Server) 소프트웨어들이 대세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썬 마이크로시스템스가 닷컴 버블 시절에 가장 많은 서버 장비를 판매하는 회사 중의 하나로 자리잡게 만드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또한, 오늘날 아이폰과 함께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역시 자바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자바의 영향력은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에 있다고 하겠다. 


이후 구글의 CEO가 된 에릭 슈미트는 이런 부분에 주목을 하였고, 자바의 활용과 관련한 많은 정책과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CTO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닷컴버블 기간인 1995~2000년 사이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는 정말 대단한 성장을 하였다. 수요가 많았기에, 투자도 많이 하였고 온통 장미빛 전망에 휩싸였기에 지출도 그만큼 늘어나면서 비약적으로 회사의 규모가 커졌다. 이런 성장에는 닷컴버블기간 자금이 풍부했던 벤처회사들이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적절한 서버에 투자를 하기보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와 같은 회사의 고가의 서버에 과감히 투자하는 사례가 늘어난 측면도 많았기에,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도 x86 계열의 저가 서버에 시장의 주도권을 내주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자바스크립트의 탄생

자바스크립트는 이름은 자바와 비슷하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른 뿌리를 가졌다. 자바스크립트는 넷스케이프사의 브렌단 아이크(Brendan Eich)에 의해 개발된다. 그가 넷스케이프에 취직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최고의 브라우저 자리는 모자이크(Mosaic)가 쥐고 있었다. 브렌단 아이크는 모자이크를 잡기 위해서는 웹에 프로그래밍의 힘을 부여할 수 있는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웹 디자이너들이 HTML을 이용해서 홈 페이지를 만들면서 웹 페이지에 직접 삽입이 가능한 간단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고안하기로 하였다. 당시 가장 유명한 프로그래밍 언어는 C/C++ 였지만,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 발표한 자바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었기에 복잡한 언어를 새로 고안하기 보다는 자바의 문법을 일부 빌어와서 스크립트 언어를 정의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자바스크립트이다. 자바스크립트는 컴파일러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쓸 수 있어야 했고, 쉽게 이용해야 했지만 자바와 이름이 혼동되었기 때문에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허락을 얻어야 했는데, 당시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를 이끌던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하나인 빌 조이(Bill Joy)가 쉬운 스크립트 언어의 문법에 자바의 요소가 일부 들어가고 널리 확산시킬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좋아했기에 별다른 무리없이 자바스크립트라는 이름을 쓸 수 있었다.

자바스크립트를 디자인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쉽게 카피/페이스트해서 기능을 그대로 옮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특히 디자이너들이 내부에서 프로그램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이, 비주얼한 효과를 보고서 해당 코드 블록을 복사해다가 삽입하면 그대로 동작하는 그런 편리한 활용성이 가장 중시했고, 이런 편리함 때문에 실제로 많은 웹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비주얼 효과를 가진 자바스크립트를 사용하면서 크게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초창기의 브라우저 전쟁에서는 자바스크립트의 강렬한 비주얼 효과때문에 되려 지나치게 화려하고 귀찮은 페이지들도 많이 등장했고, 이에 따른 사용자들의 불만이 폭주했을 뿐만 아니라, 브라우저들 사이의 호환성 문제도 발생하면서 문제점도 적지않게 나타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후 웹 기반의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브라우저가 고도화되면 될수록 자바스크립트의 활용성은 점점 높아져서, 이제는 자바스크립트를 빼놓고는 인터넷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자바와 함께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스크립트 언어의 자리를 공고히하게 되었다. 


... (다음 편에 계속) 


참고자료:

IEEE Brendan Eich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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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NCSA의 모자이크(Mosaic)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이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마크 앤드리센(Marc Andreessen)은 아르바이트 학생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주력 개발팀으로 뽑아주지도 않자, 시카고를 떠나 실리콘 밸리로 갈 것을 결심한다. 그가 실리콘 밸리에서 처음 자리를 잡은 회사는 Enterprise Integration Technologies 라는 회사였는데, 이 회사는 주로 보안과 관련한 일을 하는 회사로 인터넷 브라우저와는 거리가 먼 사업이었다. 어쩌면 당시의 그에게 웹 브라우저라는 것은 쳐다보기도 싫은 존재였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는 이 회사에 재직하던 시절에 일생일대의 귀인이 되는 짐 클라크(Jim Clark)를 만나게 된다. 짐 클라크는 쥬라기 공원을 탄생시킨 3D 컴퓨터 워크스테이션을 개발한 실리콘 그래픽스(Silicon Graphics, sgi)를 공동창업한 인물이기도 하다. 짐 클라크는 텍사스 출신으로 결손가정에 학교에서는 문제만 일으켰던 문제아로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퇴학을 당하는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생계를 위해 선택한 해군입대를 통해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이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쓸만한 군인을 만들기 위해 수학을 가르쳤던 해군선생님들은 오래지 않아 짐 클라크에게 해군들의 수학강의를 맡길 정도로 신뢰를 하게 되었고, 해군의 적극적인 권유로 야간대학에 진학을 하면서 만학도의 꿈을 키운다. 그는 물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유타대학에서 컴퓨터 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79년에는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의 뛰어난 수학적 재능과 컴퓨터 과학에 대한 이해는 특히 3D 그래픽 부분에서 빛을 발하게 되는데, 학생들과 함께 3D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 그래픽 전용칩을 개발하고, 개발한 칩을 판매하기 위해 IBM이나 HP와 같은 회사들을 접촉하였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새로운 미래에 대해 보수적인 전망만 하는 대기업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하고 결국 창업을 결심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1982년 실리콘밸리에 탄생한 된 회사가 바로 3D 그래픽 전용 워크스테이션으로 명성을 높였던 실리콘 그래픽스이다. 


초기 실리콘 그래픽스는 2년 가까운 개발기간을 거쳐 처음으로 1984년에 워크스테이션을 내놓게 되는데, 컴퓨터의 가격이 7만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고가였고 범용 소프트웨어가 부족했기 때문이 시장의 냉대를 받는다. 회사를 운영하기 위한 개발비로 대부분의 창업자금을 소진하고 회사의 존폐를 걱정할 무렵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스타워즈의 아버지 조지 루카스의 눈에 띈 것이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와 같은 SF 영화를 제작하면서, 특수효과의 중요성을 깨닿고 이를 위한 특수효과팀인 ILM 을 운영했다. 특히, 영화에 3D 그래픽을 입혀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실감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었던 그에게 마이클 크라이튼 원작의 쥬라기공원(Jurassic Park) 영화화는 최고의 3D 그래픽 기술을 가진 컴퓨터를 요구하였고, 당시 최고의 3D 그래픽 전용 워크스테이션으로 개발된 실리콘 그래픽스의 컴퓨터는 사실 상 유일한 대안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지 루카스의 결단과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최고의 감독, 그리고 실리콘 그래픽스 컴퓨터의 컴퓨팅 파워가 어우러진 3D 특수효과는 쥬라기 공원을 세계적인 히트작으로 만드는데 성공하면서 실리콘 그래픽스 역시 안정된 성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회사창업 초기 2년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벤처투자자에게 너무나 많은 지분을 양도했던 짐 클라크는 실리콘 그래픽스를 실권을 쥐고 가기 어려웠고, 그 역시도 그 회사를 운영하는 것보다는 가지고 있는 돈을 활용해서 새로운 투자를 하는 일을 더 매력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마크 앤드리센과 짐 클라크의 만남은 실리콘 그래픽스의 동료였던 빌 포스(Bill Foss)가 주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짐 클라크는 처음 만남에서 바로 미래의 컴퓨터 환경이 웹과 웹 브라우저 기반의 산업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마크 앤드리센에게 모든 창업자금을 댈테니 창업을 하라는 제안을 하였다. 이에 용기를 얻은 마크 앤드리센은 짐 클라크에게 440만 달러의 자금을 받아서 실리콘 밸리의 마운틴뷰에 모자이크 커뮤니케이션(Mosaic Communication Corporation)을 설립한다. 창업을 한 마크 앤드리센은 과거 모자이크를 같이 만들었던 NCSA 의 동료들을 불러들여서 새로운 웹 브라우저 개발에 들어간다. 그렇지만, 모자이크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과 개발인원을 데려간 것, 그리고 이에 따른 특허침해에 대해 모교인 일리노이 대학과 NCSA 의 항의를 받게 되자, 회사 이름을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스(Netscape Communications)라고 바꾸게 되고, 합의금으로 300만 달러에 이르는 돈을 지불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한다. 이 회사가 바로 초기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는 조타수의 역할을 해준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Netscape Navigator)를 탄생시켰다. 


회사를 창업하고 개발에 매진할 결과,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 첫 버전이 1994년 10월에 공개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그해 10~12월까지 3개월이 안되는 기간 동안 200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급격하게 AOL(America Online)이라는 전화접속서비스 등으로 다양한 PC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던 시장을 인터넷 위주의 시장으로 재편시키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네비게이터가 나오기 전까지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화접속 서비스를 제공하던 케텔(KETEL, KT에 인수되어 이후 하이텔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 피시서브(PC-Serve, 이후 천리안으로 통합) 등의 PC 통신 서비스를 이용하였다. 네비게이터의 탄생과 웹 서버의 대중화로 인한 인터넷의 폭발적 성장에 의해 가장 커다란 직격탄을 맞은 곳들이 바로 이러한 PC 통신 서비스 업체들이었다. 


오늘날 인터넷의 성공은 사실상 네비게이터의 성공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 인터넷에 접소할 수 있게 만들었고, 컴퓨터의 용도가 업무용에서 인터넷을 서핑(surfing)하기 위한 것으로 변화된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95년 8월, 짐 클라크는 아무런 수익도 없었던 넷스케이프사를 IPO(기업공개)하는 모험을 시도하는데, 당시 "인터넷=네비게이터"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펼쳐내고 있었던 시절이라 '미래의 가치'라는 단 하나의 무기로 나스닥(NASDAQ)에 상장을 도전하였다. 주간사들이 비교적 낙관적으로 '미래의 가치'를 계산해서 주당 28달러에 상장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것도 처음에는 14달러 정도가 적정하다고 조언을 하였지만, 마지막 순간에 2배인 28달러로 결정해서 올린 것이었다. 이제 일반인들이 이 가치를 믿고 사줄 것인가?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려있는 1995년 8월 9일, 넷스케이프사의 주식은 첫날 무려 75달러까지 치솟게 된다. 물론 장이 끝나는 시점에는 58달러 정도로 다시 낮아지기는 했지만, 넷스케이프의 주식공개는 인터넷에 대한 미래와 사람들의 기대감을 표현한 첫 번째 신호탄이었고, 달리 말하면 이날이 바로 '닷컴버블(dotcom bubble)'의 시작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날로 24세의 젊은 청년 마크 앤드리센은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하면서,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고 빌 게이츠와 쌍벽을 이루는 아이콘으로 부상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빌 게이츠에 의해 넷스케이프가 처절하게 실패를 하게 되는 운명을 맞게 될 줄은 이 때만 하더라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후속편에 계속 ...)



참고자료


넷스케이프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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