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의 PC 시장 진출로 위기를 맞게 되는 애플호.  오늘의 삼국지 이야기는 애플호를 구하기 위해 공들여 손수 영입한 사람에게 쫓겨나는 스티브 잡스의 운명에 대한 것입니다.


평생 설탕물만 팔면서 살겁니까?

존 스컬리(John Sculley)는 1939년생으로 스티브 잡스보다 16살이 많습니다. 그는 1970년대 펩시콜라의 부사장으로 코카콜라에 절대적으로 밀리던 브랜드인 펩시콜라를 최고의 브랜드로 키워낸 장본인으로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77년 펩시콜라라는 거대기업의 사장(President)에 오른 최고의 마케터였습니다.  그는 아직도 펩시콜라 사상 최연소 사장으로 오른 사람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선을 보였던 눈을 가리고 시음을 하고 맞추는 장면을 TV 광고로 만들어 내놓은 장본인이기도 하지요 ...

애플의 당시 CEO 는 여전히 공동창업자의 1인인 마이크 마큘라 였습니다.  그는 일선에서 퇴진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괴짜 엔지니어와 언제나 사람들하고 심하게 분쟁을 일으키는 2명의 다른 공동창업자들에게 회사를 맡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애플 II 의 성공이후 야심적으로 준비한 매킨토시의 성공을 위해서는 강력한 마케팅을 이끌어줄 최고의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애플에 있는 누구나가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점찍은 후보가 존 스컬리입니다.  그렇지만, 거액의 연봉과 미국 최고의 기업 중의 하나의 실세로서 애플과 같은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에서 일할 이유가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서부 실리콘 밸리에 있는 애플과 같은 회사들은 비즈니스 맨들에게는 다소 천박하고 가볍게 여겨졌었고, 너무 젊은 사람들이 물정을 모르고 사업을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기에 존 스컬리가 애플로 옮겨간 것 자체가 상당히 큰 뉴스가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마이크 마큘라와 상의를 하기는 했지만 존 스컬리를 애플로 스카웃한 장본인은 바로 스티브 잡스입니다.  존 스컬리가 스티브 잡스의 러브콜을 받아들여 애플로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스티브 잡스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는 것은 매우 유명한 일화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뉴욕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 존 스컬리를 초대하고, 발코니에서 자신보다 훨씬 나이도 많고 경력도 상대가 되지 않는 거물을 상대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평생토록 설탕물만 팔면서 살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꾸고 싶으십니까?

존 스컬리는 이 한마디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상당히 당돌하고 모욕적인 말이었지만,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도전정신을 자극하는 한 마디 ...  존 스컬리는 그렇게 애플이라는 배에 승선을 하게 됩니다.


폭풍우 속의 배를 항해하는 선장의 역할

존 스컬리가 애플에 승선을 한 뒤, 존 스컬리의 마케팅 능력과 스티브 잡스의 창의력이 빛을 발하면서 애플은 한동안 승승장구 합니다.  특히 존 스컬리는 애초에 $1,995 달러로 가격이 책정되었던 매킨토시의 가격과 시장에서의 포지션을 IBM PC 호환기종들과 다르게 가져가도록 수정하기 위해 $2,495 달러로 올면서 수익과 이를 바탕으로 한 프리미엄 마켓을 집중적으로 공격적인 광고 캠페인과 함께 공략합니다. 이 시기에 존 스컬리와 스티브 잡스가 함께 한 작품이 아래 임베딩한, 광고사에 길이 남는 역작인 "1984" 광고입니다.  이 광고는 미국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인 미식축구 슈퍼보울이 열린 1월 17일에 방영됩니다.  이 광고를 존 스컬리와 스티브 잡스는 너무나 만족스러워 했습니다.  그렇지만, 1983년 12월 애플의 이사회에서 이 광고에 대해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혹평을 하고 내보내지 말라는 의견을 피력합니다.  특히 스티브 워즈니액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렇지만, 스티브 잡스의 강력한 이사회 멤버들에 대한 설득으로 이 광고는 집행이 되었고, 커다란 반향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위기는 빨리 찾아왔습니다.  1984년 애플은 $15억 달러의 매출을 올립니다.  이는 1983년에 비해 55%나 늘어났지만, 이를 기점으로 심각한 판매부진과 함께 존폐를 논할 정도의 위기가 닥쳐 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존 스컬리는 비전만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달려 나가는 스티브 잡스를 애플에서 몰아냅니다.  

가장 큰 실책은 매킨토시 판매와 관련하여 과도하게 낙관적으로 판매를 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혁신적인 새로운 매킨토시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지만, 수 만대의 컴퓨터를 미리 생산해서 대기했던 것은 경영상의 큰 실책이었습니다.  8만대를 미리 준비했지만, 결국 1984년 2만대만 팔게 되자 애플은 곧바로 심각한 경영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가장 큰 원인은 매킨토시 제품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던 것에 있었습니다.  제품의 스펙이 경쟁제품을 압도한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과거 애플 II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수많은 소프트웨어의 호환성이 완전히 무시되었기에, 소프트웨어가 절대 부족했습니다.  1985년의 판매 데이터를 보면 아직도 애플 II의 판매에 의한 매출액이 70%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매킨토시에만 집중하는 경영진에 대한 불만으로 수많은 애플 II 디자이너들과 엔지니어들이 회사를 떠나기까지 합니다.  그 중에는 비행기 사고에서 애플을 떠났다가 다시 복귀한 스티브 워즈니액도 있었습니다.

매킨토시의 실적은 1985년 더욱 악화되어 단 2,500대 만을 팔았고, 이러한 부진에 대해 스티브 잡스는 다른 사람들을 심하게 나무라고 불평을 하면서 조직의 위해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매킨토시라는 컴퓨터 자체에 대한 자신의 잘못된 결정은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애플이라는 회사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책임을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에게 전가하려고 하자 결국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 때에는 이미 아무도 스티브 잡스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존 스컬리가 스티브 잡스를 쫓아낸 모양새가 되었으나, 당시의 스티브 잡스는 커다란 기업을 경영하는데 함량미달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스티브 워즈니액과 함께 사실 상의 애플의 전성시절을 같이 열었던 마이크 마큘라(Mike Markkula) 마저 스티브 잡스를 몰아내기로 결정을 하면서, 1985년 5월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이사회에 의해 회사의 주요 보직을 박탈당하고 그해 12월 결국 애플을 떠나게 됩니다.  이 때의 상처가 얼마나 컸던지,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애플의 주식 전부를 팔아버립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새로운 벤처 사업을 시작합니다.


침몰하는 애플의 회복

존 스컬리는 스티브 잡스가 떠난 뒤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합니다.  전체 직원의 20%에 이르는 인원을 해고하고, 여러 사업부로 흩어져있던 사람들을 하나의 통합된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비용을 엄청나게 줄였고, 매출 규모는 작아졌지만 비용구조가 좋아지면서 수익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 애플은 $19억 달러의 매출로 1985년보다 부진한 실적을 내지만, 애플에게 등을 돌렸던 소프트웨어 회사들을 설득해서 매킨토시용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하면서 애플이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데 성공합니다.  존 스컬리는 DTP(Desktop Publishing)라는 새로운 니치마켓에 집중을 했습니다.  매킨토시는 전체 PC 시장의 헤게모니를 쥘 수는 없었지만, 특정 시장에서는 강력한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매킨토시의 매출은 점점 증가하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탄탄하게 다지는데 성공을 하고, IBM에 이은 2위의 자리를 공고히 하면서 안정된 성장을 이룩합니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CEO의 자질이 달랐을 뿐     

존 스컬리는 1993년 애플을 떠나게 됩니다.  존 스컬리는 위기의 회사를 건져 올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거기까지 였습니다.  애플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려고 시작한 여러 프로젝트 들은 현실성이 부족했고, 너무 많은 제품들을 기획하는 등 첨단산업을 이끌고 나가는 것에 전통산업을 관리하고 기획하는 의사결정을 내림으로 인해 애플의 창의성과 독창성 등의 에너지를 폭발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이후 애플은 전통적인 산업에 밝았던 몇 명의 CEO들에 의해서도 죽어가는 공룡의 모습으로 근근히 버텨나가기만 하다가, 스티브 잡스가 돌아오면서 다시 한 번 그들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나던 시절의 그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비젼과 창의성 및 특유의 카리스마 뿐만 아니라 관리방식과 경영, 팀 플레이, 경영 자체에 대한 경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것들을 갖춘 거의 완성된 CEO로 돌아왔기에 애플이 다시 부활의 날개짓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스티브 잡스 대신 존 스컬리가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났다면 오늘의 애플이 있었을까요?  그랬다면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함께 이미 오래전에 실패의 나락으로 빠졌을 것입니다.  존 스컬리가 당시에 애플을 맡아서 사태를 수습하고, 이 과정 속에 스티브 잡스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돌아올 수 있게 되었던 일련의 과정이 오늘날의 애플의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과장일까요?


(후속편에 계속 ...)


참고자료:

John Sculley at Wikipedia
John Sculley and Steve Jobs by Martin Groeger
How John Sculley Saved Apple From Steve Jobs by Rob Beschiz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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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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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쿠아리움 (Macquarium)


애플은 애플 III 의 실패와 함께 Lisa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제프 라스킨(Jef Raskin) 이라는 직원의 쉽고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새로운 PC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과의 품종 이름을 따서 컴퓨터 이름을 짓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매킨토시(Macintosh, 국광) 입니다.  1979년 9월 라스킨은 팀을 구성하기 시작합니다.  초기에는 모토롤라의 6809E 마이크로프로세서로 디자인이 진행되었으나, 이후 Lisa 팀에서 일했던 멤버들이 합류하면서 Lisa와 동일한 68000 으로 전환을 합니다.

이들의 작업은 스티브 잡스의 눈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한눈에 Lisa 보다는 매킨토시가 성공할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1981년 매킨토시 팀에 합류하였습니다.  그러나, 초기 매킨토시 프로젝트의 리더였던 제프 라스킨은 스티브 잡스의 관리방식 및 괴팍한 성격을 견디지 못하고 팀을 떠납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PC에 디자인 철학을 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 한명을 1983년 고용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하르트무트 에슬링거(Hartmut Esslinger) 입니다.


스노우 화이트(Snow White) 디자인의 창시자, 하르트무트 에슬링거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엄청나게 뛰어나 보이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대단한 디자인 혁명을 일으켰던 매킨토시 SE를 디자인한 사람이 바로 하르트무트 에슬링거(Hartmut Esslinger) 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애플의 디자이너로는 조너던 아이브(Jonathan Ive)가 더 유명합니다만, 애플 디자인의 선구자는 에슬링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슬링거는 독일 출신으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25세에 독일에서 대학공부를 마치고 자신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리게 되는데, 이후 이름을 frog design으로 바꿉니다.  회사를 차린 후 처음으로 한 일이 Wega라는 독일의 독특한 가전회사의 플라스틱 컬러 TV와 하이파이 오디오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고, 소니에 스카웃되어 이후 소니의 다양한 제품들을 디자인하였습니다.  Wega 역시 소니와 합병을 하게 되었는데, Sony-Wega의 음악시스템 Concept 51K는 뉴욕의 세계적인 현대미술 박물관인 MOMA (Museum of Modern Art)에 전시되기도 하였습니다.

1976년에는 루이비통(Louis Vuitton)의 디자인까지 담당하였습니다.  그는 루이비통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게 만드는데 한 몫 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잘 나가던 디자이너가 당시로서는 전혀 디자인과 상관없어 보이는 컴퓨터 회사인 애플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어찌보면 대단하다고 하겠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지휘하던 1982년 애플에도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특히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애플의 모든 제품에 적용할 단일개념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유명잡지를 통해 디자인 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백설공주의 일곱난장이들의 이름을 딴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이 과제였는데, 이 대회에서 에슬링거는 당당히 우승을 하고 애플과 파격적인 조건으로 디자인 계약을 맺게 됩니다.

에슬링거와 그의 frogdesign 팀이 만들어낸 개념이 바로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된 "스노우 화이트 (Snow White) 디자인 언어"  입니다.  이 개념에 따라 1984년부터 1990년까지의 애플의 모든 제품이 이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깎아낸 모서리, 사선, 둥근 모서리 등을 현명하게 활용하되 수직선과 수평선을 이용해서 컴퓨터 케이스의 선들을 분할하여 실제보다 작아보이게 하였고, 이때 채택한 연한 베이지 색등은 이후 컴퓨터 산업전반에 걸친 컴퓨터 케이스 디자인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스노우 화이트 디자인으로 에슬링거는 수 많은 산업 디자인 상들을 휩쓸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권좌에서 밀려나자 애플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스티브 잡스를 따라 NeXT로 옮겨간 의리파이기도 하였습니다.  애플과의 인연 이후에도 그는 전세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깁니다.  루프탄자(Lufthansa)의 글로벌 디자인과 브랜드 전략, SAP의 CI 작업 및 소프트웨어 사용자 인터페이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의 브랜드와 인터페이스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서 나왔고 그 밖에도 지멘스, NEC, 올림푸스, HP, 모토롤라, GE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그의 디자인을 사용했습니다.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University of Applied Arts의 교수로 일하고 있는 에슬링거 ...  그의 위대한 디자인은 영원히 애플의 추종자들과 함께 남을 것입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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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열혈 맥 유저가 자신의 맥이 더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자, 그 디자인을 아까워한 나머지 어항으로 개조한 것입니다.  특히 사진의 매킨토시 SE의 경우 이런 맥쿠아리움(MacQuarium)을 만드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하였죠 ...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엄청나게 뛰어나 보이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대단한 디자인 혁명을 일으켰던 매킨토시 SE를 디자인한 사람이 바로 오늘 소개하는 하르트무트 에슬링거(Hartmut Esslinger) 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애플의 디자이너로는 조너던 아이브(Jonathan Ive)가 더 유명합니다만, 애플 디자인의 선구자는 에슬링거입니다.

에슬링거는 독일 출신으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25세에 독일에서 대학공부를 마치고 자신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리게 되는데, 이후 이름을 frog design으로 바꿉니다.  회사를 차린 후 처음으로 한 일이 Wega라는 독일의 독특한 가전회사의 플라스틱 컬러 TV와 하이파이 오디오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고, 소니에 스카웃되어 이후 소니의 다양한 제품들을 디자인하였습니다.  Wega역시 소니와 합병을 하게 되었는데, Sony-Wega의 음악시스템 Concept 51K는 뉴욕의 세계적인 현대미술 박물관인 MOMA (Museum of Modern Art)에 전시되기도 하였습니다.

에슬링거가 1976년에는 루이비통(Louis Vuitton)의 디자인을 했던것을 아시나요?  루이비통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게 만드는데 한 몫 했다고 하는군요 ...

이렇게 잘 나가던 디자이너가 당시로서는 전혀 디자인과 상관없어 보이는 컴퓨터 회사인 애플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어찌보면 대단하다고 하겠습니다.  스티브 잡시는 1982년 애플에도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특히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애플의 모든 제품에 적용할 단일개념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유명잡지를 통해 디자인 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백설공주의 일곱난장이들의 이름을 딴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이 과제였는데, 이 대회에서 에슬링거는 당당히 우승을 하고 애플에 파격적인 조건으로 디자인 계약을 맺게 됩니다.

에슬링거와 그의 frogdesign 팀이 만들어낸 개념이 바로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된 "스노우 화이트 (Snow White) 디자인 언어"  입니다.  이 개념에 따라 1984년부터 1990년까지의 애플의 모든 제품이 이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깎아낸 모서리, 사선, 둥근 모서리 등을 현명하게 활용하되 수직선과 수평선을 이용해서 컴퓨터 케이스의 선들을 분할하여 실제보다 작아보이게 하였고, 이때 채택한 연한 베이지 색등은 이후 컴퓨터 산업전반에 걸친 컴퓨터 케이스 디자인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스노우 화이트 디자인으로 에슬링거는 수 많은 산업 디자인 상들을 휩쓸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권좌에서 밀려나자 애플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스티브 잡스를 따라 NeXT로 옮겨간 의리파이기도 하였습니다.

애플과의 인연 이후에도 그는 전세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깁니다.  루프탄자(Lufthansa)의 글로벌 디자인과 브랜드 전략, SAP의 CI 작업 및 소프트웨어 사용자 인터페이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의 브랜드와 인터페이스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서 나왔고 그 밖에도 지멘스, NEC, 올림푸스, HP, 모토롤라, GE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그의 디자인을 사용했습니다.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University of Applied Arts의 교수로 일하고 있는 에슬링거 ...  그의 위대한 디자인은 영원히 애플의 추종자들과 함께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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