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Wikipedia (애플의 LISA)


거함 IBM이 PC 시장에 참전을 시작한 1981년, 초기에는 애플의 우세가 지속되었습니다.  애플 II 는 1981년에도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지만, 개방형 아키텍처를 적용한 IBM PC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동시에 저가의 호환기종들이 선을 보이면서 애플의 위세는 꺽이기 시작합니다.


IBM을 두려워한 무리한 시도, 그리고 뼈아픈 실패작 애플 III

IBM이 PC를 내놓을 것이라는 움직임을 간파한 애플은 애플 II 의 성공을 이어서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려는 열망이 매우 강했습니다.  물론 애플 II 가 II+, IIe, IIc 와 같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기도 하였지만, 본질적인 업그레이드는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신모델의 출시는 불가피 하였습니다.

애플 내부에서는 애플 II 의 후속작이 2가지 방안으로 진행 되었습니다.  하나는 애플 II 에 대한 직접적인 후속모델이라는 의미의 애플 III 였고, 나머지 하나는 제록스 PARC 연구소의 GUI(Graphic User Interface) 개념을 도입한 새로운 컴퓨터의 혁신을 추구한 LISA 프로젝트 입니다.  둘다 1978년에 프로젝트가 태동하였습니다.  애플 III 프로젝트는 애플의 Dr. Wendell Sander 가 주도를 하였는데, 내부적으로는 Sander 의 딸 이름을 따서 "Sara" 라는 코드명으로 불리웠다고 합니다.  애플 III 는 1980년 5월 19일에 출시가 되는데, 이는 다분히 IBM 이 당시 개발하고 있었던 PC를 의식한 면이 강합니다.

그러나, 애플 III 는 서둘러 내놓은 탓에 하드웨어 설계에 결정적인 결함이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발열과 관련한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또한, 가격 역시 $4,340 ~ $7,800 달러로 결정되었는데 이는 애플 II는 물론 당시에 판매되는 CP/M 기반의 컴퓨터 들에 비해 훨씬 비싼 가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IBM 처럼 16비트 CPU를 채택한 것도 아니었으며, 애플 II 와의 호환성을 강조하였지만 상당 수의 프로그램들은 호환조차 되지 않는 등 수많은 문제점을 부각시키면서 초기에 판매된 14,000 대의 컴퓨터를 모두 리콜하고 새로 교체를 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소비자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결국 총 65,000 대 정도만을 판매하는데 그치면서 1984년 4월 24일 단종되는 운명에 처합니다.  

애플 III 의 실패에 대해서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액은 애플 III가 엔지니어가 아닌 마케팅 부서에서 부실하게 기획된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당분간 애플은 애플 II 라인업을 버릴 수 없었고, 애플 III 에 적용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들은 그 뒤에 출시된 애플 II 컴퓨터의 상위기종들에 조금씩 적용이 되었습니다.


가정용 컴퓨터의 혁신을 일으켰으나 실패한 Lisa

Lisa 프로젝트 역시 1978년에 시작되었습니다.  Lisa 는 앞선 포스팅에서 언급한 제록스 PARC 연구소에 들렀던 스티브 잡스가 그들의 Alto 컴퓨터에 매료되어 시작된 프로젝트로 최초로 GUI 를 상용화하여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표로 진행되었습니다.  1978년 스티브 잡스는 첫번째 딸을 얻게 되는데, 딸의 이름이 Lisa 였고 이를 컴퓨터의 이름으로 정하게 된 것입니다.  애플에서는 공식적으로 Lisa 가 Local Integrated Software Architecture 의 약자라고 발표했지만, 이는 스티브 잡스가 작명을 한 이후에 소위 역공학을 통해 만들어진 컴퓨터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스티브 잡스가 프로젝트 매니저로 직접 참가를 했지만, 지나치게 화를 많이 내고 감정적이어서 팀원들에게서 쫓겨나는 신세가 됩니다.  스티브 잡스는 대신 1979년 LISA 보다 저렴한 GUI 를 구현한 컴퓨터 프로젝트인 매킨토시(Macintosh)를 맡게 됩니다.  매킨토시 개발과 관련해서는 후속편에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Lisa 는 발매당시 당대 최고의 컴퓨터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보호메모리(protected memory), 협업 멀티태스킹(cooperative multitasking), 우수한 하드디스크 기반의 운영체제, 내장형 스크린 세이버, 2MB까지 확장가능한 RAM, 확장 슬롯, 숫자 키패드, 가상 파일명,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등과 같이 그 이후에도 한동안 나타나지 못했던 무수한 기술들의 집합체였습니다.  심지어 혹자는 많은 기능들이 Mac OS X 가 되어서야 구현이 된 것들이 이미 Lisa 에 구현되어 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Lisa 는 이런 화려한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5 MHz 모토롤라 68000 마이크로프로세서를 CPU로 이용했기에 전반적으로 느린 느낌을 주었고,  무엇보다 1983년 1월 19일 발매하면서 무려 $9,995 달러라는 엄청난 가격으로 발매한 것이 커다란 무리수가 되었습니다.  기술자들과 평론가들이 열광했지만, 이 정도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소비자는 거의 없었고, 또한 뒤이어 나온 매킨토시와의 중복문제까지 겹치면서 애플 III 에 이은 또 하나의 실패로 기록되고 맙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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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국지, PC 시장을 열면서 승승장구하던 애플의 가장 커다란 적으로 나타난 IBM, 그리고 IBM 과 IBM 호환기종 PC에 MS-DOS 라는 운영체제를 공급하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기 시작한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항하기 위해 애플은 GUI 라는 새로운 개념을 무기로 한 혁신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이 혁신의 발상지는 어디일까요?  오늘의 삼국지의 주인공은 바로 기술의 발상지로는 최고의 업적을 남긴 제록스 PARC 연구소입니다.


정보통신 분야 세계최고의 연구소, 제록스 PARC

제록스 파크는 Palo Alto Research Center 의 약자로, 1970년에 설립된 연구소 입니다.  2002년부터는 독립된 리서치 비즈니스 회사로서 PARC 라는 이름으로 거듭났습니다.  PARC는 현재까지 30개가 넘는 회사들의 창업에 관여했고, 수많은 혁신을 창조했는데, 레이저 프린팅, 분산 컴퓨팅, 네트워크의 표준인 이더넷(Ethernet), 애플과 윈도우를 있게 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 Graphic User Interface),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그리고 유비퀴토스 컴퓨팅 등이 모두 이곳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언급한 기술 하나하나가 현대의 정보통신 및 컴퓨팅 환경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드리지 않아도 될 것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모회사였던 제록스는 레이저 프린팅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사업화에 거의 성공하지 못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PARC 연구소는 1970년 스탠포드 대학이 있는 팔로알토(Palo Alto)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록스의 본사는 뉴욕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본사에서 PARC 연구소에서 수행하는 연구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환경은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정말 마음껏 수행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였고, 이런 분위기에서 끊임없는 혁신적 연구결과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거리는 PARC 연구소에서 나온 수많은 연구자산들이 제때에 상업화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실리콘 밸리 주변에 있는 기업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를 보면, 멀리 있는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훨씬 가깝다는 노래가사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전설적인 컴퓨터 Alto, 그리고 애플과의 만남

이렇게 수많은 혁신적인 연구성과를 낸 연구소이지만, 그 중에서도 Alto 라는 컴퓨터는 컴퓨터 업계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이 컴퓨터는 SRI (Stanford Research Institute, 스탠포드 연구소)에서 처음 개발한 마우스를 이용해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구현한 세계최초의 컴퓨터 였습니다.  마우스를 개발한 더글러스 엥겔바트(Douglas Engelbart)가 1963년 빌 잉글리쉬(Bill English)와 함께 프로토타입을 내놓았지만, 이들은 결국 아무런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는 없었습니다.  너무 특허가 일찍 나온 탓에 실제로 마우스가 상업적으로 널리 쓰이게 된 시점에는 특허의 시효가 만료되었던 것입니다.  기술의 특허가 지나치게 시대에 앞서 등록되는 것도 그다지 큰 효용성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빌 잉슬리쉬는 초기 마우스를 개발하고 제록스 PARC 연구소에 입사해서 1972년에 처음으로 향후 마우스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를 이루는 기계식 볼 마우스(Ball Mouse)를 1972년에 발명합니다.  가운데 볼이 굴러가면서 포인팅의 위치를 변경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Alto 와 결합을 하면서 최초의 GUI 구현의 불을 당깁니다.  현재리가 알고있는 대부분의 GUI 들이 Alto의 인터페이스로부터 유래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이를 PUI(파크 유저 인터페이스)라고도 부릅니다.  PUI에는 윈도우, 메뉴, 아이콘, 라디오단추, 체크박스 등의 그래픽 요소를 사용하며 마우스와 키보드를 함께 사용하였습니다.  이 컴퓨터가 개발된 것이 1973년인데, 애플 II 가 발표된 시기가 1977년 임을 감안하면 이들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PARC의 Alto 는 이렇게 혁신적인 컴퓨터였지만, 상업화에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 컴퓨터는 후에 제록스에 의해 Xerox Star 라는 컴퓨터로 발매되지만 25,000대 정도가 팔리는데 그칩니다.  PARC의 GUI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를 통해 꽃을 피우게 되는데, 스티브 잡스의 눈에 띈 PUI 는 PARC 의 래리 테슬러(Larry Tesler)가 애플에 입사하여 리사(Lisa) 프로젝트와 매킨토시를 통해 꽃을 피우면서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합니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다음의 후속편에서 좀더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매킨토시의 GUI는 빌 게이츠에 의해 윈도우로 재창조되고, 전세계를 호령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제록스와 애플 사이에도 특허소송이 진행되었지만 특허를 내놓고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권리를 찾으려 했기 때문에 제록스가 별다른 소득은 얻지 못하게 됩니다.


전설적인 연구소로 남다.

2002년 독립된 연구기관이면서 지식 공장의 형태로 독립한 PARC는 이후 제록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는 상업적 연구전문기업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제록스 뿐만 아니라 후지쓰나 샌디에고에 위치한 세계적인 병원인 스크립스 클리닉 등과 함께 의생명과학, 재생 및 클린 에너지 연구 등에도 힘을 쓰고 있는 PARC는 여전히 세계적인 연구소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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