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라는 회사와 두 명의 창업자의 비전을 믿고 선뜻 투자를 했던 초기 투자자 네 명에게 받은 100만 달러와 일부 소액 투자자 등에게서 조달한 돈이 있었지만, 구글이라는 회사는 수익이 거의 없었다. 최초의 수익은 당시 공짜 오픈소스 운영체제로 유명했던 리눅스(Linux)를 배포하는 레드햇(RedHat)에게 검색결과를 제공하기로 계약하고 한달에 2천 달러를 받기로 한 것과 일부 사이트에 구글 검색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매우 적은 사용료를 받은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인터넷의 확장속도는 상상을 초월하였고, 매일 검색 수는 수만 건에 달하면서 네트워크 트래픽과 서버비용이 모두 크게 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더해, 구글의 장점이었던 빠른 검색 역시 트래픽과 정보량의 증가로 인해 3~4초씩 걸리는 등 그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엔지니어들과 투자가 필요했는데, 처음 창업했던 대학원의 친한 동료였던 수전 워지츠키의 차고는 비좁아서 더 이상 이들이 머무를 수가 없었다. 


1999년 구글은 팔로알토(Palo Alto) 도심에 있는 2층 건물로 옮겨서 엔지니어를 고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 누구나 새벽까지 먹을 수 있는 각종 간식과 회의실에서 마사지 서비스를 하고, 회의탁자를 겸해서 녹색 탁구대를 구매하는 등 회사를 거의 놀이터화하기 시작하였고, 직원들이 먹고, 놀고, 마시면서 일을 하는 현재의 구글의 원시적인 캠퍼스 형태가 탄생한다.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 구글이었지만, 그들의 비즈니스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것이었고, 인터넷은 너무 빨리 커지고 있었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의 수혈이 필요했다. 이 작업을 위해 총대를 맨 것은 초기 투자자인 람 슈리람이었다. 슈리람은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캐피탈인 세콰이어 캐피탈과 KPCB(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를 연결하였다. KPCB 는 인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 컴팩, 넷스케이프, 아마존 등에 투자를 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세콰이어 캐피탈은 시스코, EA, 오라클, 야후, 그리고 애플에 투자한 회사이다. 두 회사 모두 투자자금을 모을 때부터 아주 한정된 사람들이 아니면 돈을 낼 기회조차 주지않을 정도로 커다란 명성을 가진 곳들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두 회사의 스타일은 매우 달랐다. KPCB가 건물도 화려하고, 급진적이며 세련된 이미지를 준다면, 세콰이어 캐피탈은 오래된 빌딩에서 매우 보수적인 올드보이 분위기를 풍긴다. 그래서인지, KPCB는 미래가치를 높이보는 편으로 위험이 있더라도 향후 높은 가치를 돌려줄 수 있는 회사에 투자하는 경향이 있고, 세콰이어 캐피탈은 보다 현실적이고 사업내용이나 계획, 그리고 경영자 등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경향이 있다. 


구글의 상대를 맡은 사람은 KPCB의 존 도어(John Doerr)와 세콰이어 캐피탈의 마이클 모리츠(Michael Moritz) 였다. 존 도어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 로터스, 컴팩, 넷스케이프 등의 투자를 결정하면서 업계 최고의 평가를 받는 자리에 올라선 사람이고, 마이클 모리츠는 옥스포드 출신으로 <타임>지의 기자 출신이다. 마이클 모리츠의 경우 애플의 취재를 담당했다가 스티브 잡스의 독선적인 스타일을 비판하는 기사를 써서 스티브 잡스가 실제로 눈물을 흘리면서 엄청나게 화를 내게 만든 장본인으로도 유명하다. 마이클 모리츠는 야후와 페이팔(PayPal)에 대한 성공적인 투자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들은 구글의 두 창업자와의 미팅을 통해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그들의 비전에 홀딱 반하게 되고, 투자를 하겠다고 결정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바로 KPCB와 세콰이어 캐피탈은 서로 상대방이 투자한 회사에게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투자만 받으라고 구글의 두 창업자들을 설득하지만, 이들은 둘 모두에게 받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런데, 구글의 현재 평가액을 1억 달러로 두 벤처캐피탈이 공히 계산을 한 것이 돌파구를 찾아주었다.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제3의 벤처캐피탈이 1.5억 달러로 평가를 해준다면서, 둘 다 투자하지 않는다면 다른 곳으로 가겠다는 세르게이 브린의 으름장이 먹혀들면서 양쪽이 사상 처음으로 동시에 투자를 하게 된 것이다. 1999년 6월 7일, 실리콘밸리의 양대 벤처캐피탈이 구글이라는 신생회사에게 각각 1250만 달러 씩 25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지분을 25% 확보했다는 뉴스가 세상에 나오면서, 스타 벤처기업으로서의 길을 구글이 열어가게 되었다.


(후속편에 계속 ...)



P.S. 이 시리즈는 메디치미디어의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라는 책으로 출간이 되었습니다. 전체 내용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책을 구매하셔서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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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리 페이지(좌)와 세르게이 브린(우)



넷스케이프와 야후!로 대별되는 인터넷 업계에서 닷컴 버블이 몰락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와중에도 새롭게 세상을 바꿀 기업은 인터넷 상에서 새롭게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현재까지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는 기업인 구글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매릴랜드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과 수학을 전공하며 수석으로 졸업을 한 세르게이 브린은 1993년 미국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스탠포드 대학의 컴퓨터 과학 대학원으로 진학을 하였다. 활달한 성격과 천재적인 두뇌로 많은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는 리더로 자리잡고 있었던 세르게이 브린에게 1995년 미시건 대학의 또 다른 천재가 스탠포드 대학에 나타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래리 페이지이다. 언제나 남들 앞에 나서서 리딩을 하는 외향적인 세르게이 브린에 비해, 래리 페이지는 내성적이고 조용하지만 매우 치열하고 토론을 할 때에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런 래리 페이지에게 세르게이 브린은 다른 친구들이나 선후배와는 다른 라이벌 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들은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전공과목 뿐만 아니라 사회와 정치, 철학과 문화 등에 이르는 다방면의 지식에 대한 토론을 날을 지새기 일쑤였다. 둘이서 격론을 시작하면, 주위의 동료들은 이들을 피해다닐 정도로 강렬한 열기를 뿜어내었고, 이런 토론과 다툼을 지속하면서 두 사람은 어느 새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영혼의 동반자(soul-mate)로 느껴질 정도의 관계로 발전하였다. 

많은 대학원들과 마찬가지로 스탠포드 대학에도 조를 짜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목들이 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서로 다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래리 페이지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웹 사이트를 서버에 긁어모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였고, 세르게이 브린은 영화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평가를 하는 알고리즘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래리 페이지의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예상보다 인터넷의 크기가 급속도로 확장되면서 금방 끝날 줄 알았던 프로젝트가 1년이 넘게 진행되었다. 래리 페이지는 좋은 논문은 인용이 많이 되는 논문이라는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을 웹 페이지의 랭킹을 매기는 데 이용하고자 하였는데, 이를 위해서 특정 사이트가 다른 사이트로 연결되는 백링크(BackLinks)를 조사하여, 각각의 웹 페이지가 얼마나 많은 사이트에 링크되었는지를 알아내고, 이것을 기본으로 랭킹을 매기자는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시작했다. 래리 페이지는 이 프로젝트를 웹 사이트의 링크를 역으로 추적한다는 의미의 백럽(BackRub)이라고 명명하였는데, 이 아이디어에 대해 세르게이 브린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래리 페이지가 구현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세르게이 브린이 도움을 주면서 프로젝트에 조금씩 관여를 하다보니, 어느 덧 둘이서 공동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되었던 것이다. 이들의 가능성을 알아본 테리 위노그래드 교수와 라지브 모트와니 교수 등의 지원으로 프로젝트는 순탄하게 진행되었고, 1996년부터는 스탠포드 대학교 네트워크를 통해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금새 이 서비스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대학원의 학생으로서 많은 비용을 들일 수 없었던 그들은 효율적인 분산처리를 위해 CPU와 메인보드 등을 구해서 간단히 인터넷 서버를 구축하고, 운영체제도 무료인 리눅스를 선택하는 등의 고육지책을 선택하였다. 초창기 백럽(BackRub) 검색엔진 기술 중에서 가장 중요한 페이지랭크(PageRank) 알고리즘은 이들이 논문을 내기로 합의한 1998년 1월 이전까지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BackRub 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 대신에 새로운 이름을 이용하기로 결심하는데, 동료 중의 하나가 10의 100제곱을 뜻하는 구골(GooGol) 이라는 이름으로 방대한 데이터 검색을 한다는 이미지를 주자는 제안을 하였는데, 아쉽게도 이 이름은 도메인이 선점된 상태였다. 그래서, 대신 구글(Google)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는데, 구골보다 발음하기도 쉽고, 창조적인 느낌도 나는 이름이었기에 모두들 구글이라는 이름을 좋아하였고, 서비스도 점점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다. 

구글 서비스는 스탠포드 대학교의 도메인을 이용하여, http://google.stanford.edu 를 통해 접속하도록 하였는데, 하루 접속횟수가 1만 건을 넘어가면서 학교의 네트워크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학교 네트워크 전체를 마비시키는 일까지 발생하자, 더 이상 학교에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한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이 검색 서비스를 외부에 팔아넘기기로 합의하고 원매자를 찾아 나선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에 따르면, 당시만 하더라도 100만 달러 정도면 구글 서비스를 팔려고 했었다고 한다. 당시 검색엔진 부분에서 최고의 명성을 가졌던 알타비스타(altavista)와 야후도 접촉했지만, 이들이 개발한 서비스를 인수하려는 기업은 없었다. 그 밖에도 검색에 관심을 가질만한 많은 인터넷 기업들을 접촉했으나 번번히 거절의 쓴 맛을 보았다. 그렇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지도교수인 데이비드 체리턴(David Cheriton)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들이 만든 서비스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데이비드 체리턴은 이들의 창업을 도와주기로 하고,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자금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하였다. 

데이비드 체리턴이 소개한 사람 중에서 앤디 벡톨샤임(Andy Bechtolsheim)은 한 눈에 이들의 서비스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아직 설립도 되지 않은 회사인 구글에게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즉석에서 끊어 주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는 자신감을 불러넣어 주었고, 자신에게도 엄청난 부를 가져오게 만든다. 벡톨샤임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를 공동창업한 인물로 이미 대단한 성공을 이룬 사람이었고, 구글에 투자할 당시에는 세계 최고의 네트워크 장비회사인 시스코(Cisco)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의 뛰어난 직관은 검색이란 서비스를 하고 있으면서 자신들이 전문가라고 자처했던 야후나 알타비스타의 전문가들이나 경영진들보다 훨씬 나았다. 앤디의 10만 달러 수표를 받아든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스탠포드 대학교 인근의 한 차고를 사무실로 빌려서 사업을 시작한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기업, 구글은 이렇게 세상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렇지만 10만 달러라는 돈은 사실 이들이 사업을 전개하기에 턱없이 부족하였기에 얼마 지나지않아 바닥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고, 이들에게는 또다른 투자자가 필요하였다. 이 때 도움을 준 사람이 역시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인 제프리 울만의 소개로 만난 엔젤투자자 람 슈리람(Ram Shriram)이다. 그는 넷스케이프에 투자를 해서 상당한 돈을 벌었고, 구글의 두 창업자를 만나 검색엔진을 시험해 보고난 뒤에 자신이 당시 최고의 검색엔진 회사인 야후, 인포시크, 익사이트 등에 매각을 해보겠다고 제안을 한다. 그들이 자신의 회사를 사지 않을 것이라고 두 명의 창업자들은 알고 있었지만, 람 슈리람에게 한 번 시도를 해보라고 맡기고 몇 개월을 기다렸다. 람 슈리람은 구글의 검색엔진을 당시 최고로 잘 나가는 인터넷 기업인 야후의 제리 양과 데이빗 파일로에게 소개를 하였는데, 이들은 구글의 검색엔진의 성능에 탄복을 하였지만 생각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검색엔진의 성능이 너무 좋아서, 검색결과의 연관성이 높기 때문에 이런 검색엔진을 채용할 경우 야후 사이트에서 너무 빨리 벗어날 수 있어서 되려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여러 페이지를 보면서 사이트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아야 페이지 뷰가 올라가게 되고, 이렇게 올라간 페이지 뷰가 사이트에 달린 광고단가를 올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들의 판단은 당시 기준으로는 틀리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야후의 두 창업자의 반응을 듣고서 람 슈리람은 되려 구글이라는 회사가 진정한 투자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이 미팅에서 돌아온 슈리람은 구글의 회사설립 작업에 관여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직접 25만 달러의 자금을 투자하여 앤디 벡톨샤임에 이은 두 번째 구글의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어떤 경우에는 현재의 수익모델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커다란 기회를 날려버리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구글의 세 번째 투자자는 앤디 벡톨샤임을 두 창업자에게 소개한 데이비드 체리턴 교수이다. 그리고, 네 번째 투자자는 바로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Jeff Bezos)이다. 람 슈리람과 아마존의 일로 잘 알고 지내던 제프 베조스는 구글의 두 창업자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바로 소개를 해 달라고 해서 만난 뒤에 즉시 수표에 서명을 하고 구글의 투자자가 되었다. 제프 베조스에 따르면 구글의 두 창업자들의 고객에 초점을 둔 비전에 반했고, 이들의 비전을 믿고 주저없이 투자를 한 것이라고 한다. 제프 베조스에게도 이런 무모한 도전을 하는 젊은이들의 비전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던 것이다.


참고자료:

거의 모든 IT의 역사, 정지훈저, 메디치미디어,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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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블로그에 최신 뉴스에 대한 논평이나 분석은 싣지 않고 있었는데, 오늘은 워낙 대형 사건이 터졌기에 글을 하나 써 봅니다.

구글이 모토롤라를 인수한 뉴스로 오늘 IT세상은 하루 종일 정신이 없을 듯 합니다. 근래 있었던 사건 중에서 최대의 뉴스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이 뉴스를 Google+ 에서는 CEO인 +Larry Page 가 직접 전했습니다. 외부에 공식적으로 알린 것은 특허와 관련한 이슈가 중요했고, 안드로이드 전체 생태계에 안정화를 위해 꼭 필요했다고 했지만, 파트너 회사들을 자극할 수 있는 제조업체를 인수한 것은 상당히 큰 결단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이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제조+SW+서비스 통합과 관련한 합종연횡이 이루어질수도 있을 듯 합니다. 구글이 래리 페이지 체제로 바뀌면서 과거보다 훨씬 공격적이 된 느낌입니다. 그리고, 지금 바로 치고 나가지 않는다면 현재와 같은 융합의 시대에 바로 뒤떨어질 수 밖에 없음을 느끼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젊은 30대 리더의 힘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특허 문제와 함께 언급된 것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시너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더 방점을 찍고 싶습니다. 새로운 UX와 입출력 장치 등의 하드웨어 요소는 애플의 멀티 터치에서 보듯이 전체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커다란 무기입니다. 단순히 운영체제와 일부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를 공급하는 로드맵 자체가 변화할 수 있는 큰 변화이고, 구글처럼 미래를 대비하는 회사라면 더욱 미래의 하드웨어 기술을 미리 적용하고 투자하며, 여기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동시에 준비해서 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유명 저널리스트 +Jeff Jarvis 는 결국 미래로 향한 혁신을 가로막는 특허 시스템의 전면재조정을 초점으로 두고 있습니다. 올해에만 창업과 혁신 및 성장에 들어가야 할 $18B 이라는 막대한 돈이 결국 특허 분쟁으로 소진되었다고 하네요. 구글은 모토롤라의 특허를 가져 옴으로써, 자신들의 파트너들의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하고, 모토롤라가 독립적으로 크게 놔둘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물론 이 부분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바뀌었는데, 변호사들과 거대 기업의 기득권만 보호하는 특허체계 전반에 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파트너들은 "특허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생태계가 좋아져서 기쁘다?" 고 언급했습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특허 로열티 부분에 손해가 줄어들겁니다. 그리고, 지금 마땅히 구글 이외에 대안이 없는 상황이고, 구글 측에서는 오픈 플랫폼을 유지하면서 파트너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HW-SW 시너지가 커진 단말 및 하드웨어 제품들은 어찌되었든 모토롤라를 통해 가장 먼저 나올 가능성이 많고, 그곳에서 혁신이 시작될텐데 아무리 구글이 개방을 외쳐도 모토롤라에 다른 파트너들이 시장을 많이 뻇길 것은 당연하겠지요? 중장기적으로는 동요할 수 밖에 없고, 다른 협력의 여지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덕분에 WebOS를 가진 HP나 노키아/MS 연합, 그리고 RIM 등의 움직임이 주목받게 되었군요. 이런 거대한 판짜기에 언제나 들러리만 서는 한국 기업들이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과연 어떻게 될지요? 
시대의 변화를 일으키는 격랑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IBM과 아마존은 어떻게 대응하게 될까요? 당분간은 탑레벨 경영진의 능력과 리더십, 미래를 보는 혜안에 의해 앞으로 1~2년 동안 향후 10년의 판이 다시 짜여질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HP와 RIM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등도 사활을 걸고 M&A 카드를 포함한 이들과의 협상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업분할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새로운 판짜기에 소외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할 것입니다. 구글이 모토롤라를 합병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올해 초에 모토롤라가 기업분할을 통해 모바일 부분을 따로 모토롤라 모빌리티(Motorola Mobility)로 분리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입니다. 지금처럼 급변하는 시대에 공룡으로 산다는 것이 좋을까요? 공룡이라도 구글처럼 혁신이 가능한 공룡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요. 지금은 제품 몇 개 내놓는 것이 중요한 시국이 아닙니다.


P.S. 

구글-모토롤라 합병에 대한 컨퍼런스 콜 내용이 모두 공개되었습니다. 대부분 알려진 바와 같은데, 특이사항은 IP-셋탑박스 포함 홈디바이스 관련 언급이 있습니다.


단지 휴대폰 뿐만 아니라 새로운 클래스의 하드웨어 사업도 중요한 고려사항이 될 듯 하지요? TV를 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 그리고 다양한 셋탑박스를 생산하는 국내 중소기업들까지 모두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네요.


참고자료:

Live Blog: The Google/Motorola Acquisition Conference C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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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안드로이드를 통해 스마트 기반의 운영체제 시장에 뛰어들어서 애플의 아이폰과 함께 양강구도를 성사시킨 구글은 브라우저 기반의 OS 시대를 열기 위한 작업도 가속화하고 있다개인적으로 브라우저 기반의 OS 출현은 시대가 요구하는 필연이라는 생각이다기존의 텍스트 기반의 운영체제에서 스티브 잡스가 제록스 PARC 연구소에서 GUI 바탕으로 리사와 매킨토시를 개발하면서 운영체제가 차례 혁신을 하였고, 맥을 게이츠가 윈도우를 개발하면서 GUI 기반의 운영체제가 대세가 되어버린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당연히 운영체제는 텍스트 기반이어야 한다는 선입관을 깨버린 것이다.  

이제 한번의 선입관을 버릴 때가 되었다는 것이 구글의 주장이다당연히 운영체제의 중심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컴퓨터에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운영체제가 하드웨어 보다는 개인이 사용하는 서비스의 조합, 그리고 이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와 관련한 개인 패턴에 중심을 기반 운영체제가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웹을 중심으로 하는 운영체제는 기술의 중심이 자신이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것에서, 이를 네트워크 상에서 공유한다는 개념의 변화를 수반한다지금까지 무수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던 회사들은 이제부터는 클라우드를 이용한 다양한 기반의 애플리케이션들을 개발해서 서비스하게 것이다지금까지의 운영체제의 개발과 발전방향을 보면, 지속적으로 컴퓨팅의 파워는 높아지고 운영체제가 건드리는 내용과 분량은 계속 많아지고 있다이전 운영체제와의 호환을 위해서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그럼에도 새로운 UI 진화 등을 따라잡기 위해서 프레임워크는 점점 거대해지고 느려졌다이것이 윈도 비스타의 실패한 이유가 되었음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사례에서도 충분히 이야기 하였으며,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이를 인지하고 윈도 7 이어 최근 클라우드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많은 애플리케이션들이 등장하고 이것만을 이용해도 일상생활 컴퓨팅 환경을 영유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들을 소비자들이 자각하기 시작했다복잡하고 커다란 컴퓨터를 가지고 있어봐야 유지할 것만 많아지고, 불편해지기 시작한다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작고 가볍고 빠른 넷북이 각광을 받게 되고, 아이폰을 시작으로 스마트 폰에 이어 아이패드와 태블릿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기기들이 대세를 장악해 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여전히 중심에는 PC 있다그렇지만, 대세가 기반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이제 수백 만원짜리 고성능 노트북에 복잡한 운영체제를 깔고, 수많은 데이터를 직접 관리하기 위해서 끙끙대기 보다는 가볍고 바이러스 감염 등에 대한 걱정이 없이 원하는 서비스를 모두 이용할 있는 새로운 인터넷 디바이스의 장점이 점점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안드로이드에 이어 구글이 주력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자사의 브라우저인 크롬(Chrome) 중심으로 구축한 운영체제인 크롬OS이다구글 크롬 브라우저가 리눅스 커널 위에서 새로운 윈도우 시스템을 돌리는 것이 골자인데, 가장 많이 이용되는 x86 ARM 계열의 CPU 모두 지원한다구글이 일관되게 밝히고 있는 크롬 OS 모습은 속도와 단순함이다바로 이메일 서비스를 이용할 있고, 부팅 시간이라는 것이 거의 없으며 브라우저를 띄울 필요도 없는 운영체제이다.


구글 크롬 OS는 거대한 구글 운영체제의 마지막 남은 조각

구글의 크롬 OS는 이미 구글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클라우드 컴퓨팅 전략에 대한 일환으로 이해해야 한다.  다른 모든 서비스들이 이미 상당부분 클라우드에서 동작이 되고 있고, 여기에 단순히 자신들의 역량만을 강조하지 않고  철저히 개방형 전략을 취함으로써 외부의 다른 업체들의 매시업이나 뛰어난 서비스들도 쉽게 이용될 수 있도록 하였다.

구글이라는 회사는 이미 거대한 운영체제를 개발해왔고, 이제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구글 클러스터라는 엄청나게 커다란 분산 컴퓨터가 하나 있고, 이 거대한 클러스터를 마치 하나의 서버 컴퓨터를 운영하듯이 톱니바퀴처럼 운영할 수 있는 잘 조직화된 운영체제가 이미 개발되어 블랙박스처럼 동작을 하고 있다.  이렇게 개발된 구글의 클러스터 운영체제에 전세계의 사용자들은 자신의 계정을 이미 하나씩 만들었거나, 오늘도 G메일이나 구글 독스(Google Docs) 등을 통해 계정을 열고 있는 셈이다.  안드로이드 스마트 폰을 쓰는 사람들도 구글 클라우드에 자동접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미 우리들은 거대한 구글의 클러스터 운영체제에 접속하여 계정을 열고, 해당 서버 컴퓨터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구글의 클러스터 컴퓨터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점점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클러스터 컴퓨터의 사용자인 우리들은 서버의 무한 확장에 아무런 제약사항 없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미 구글의 클러스터 운영체제는 안정성 측면이나 확장성, 그리고 사용자들에 대한 24x7 서비스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안정된 클러스터 운영체제를 구축한 구글은 뒤를 이어 웹 환경에 적합하면서, 자신의 클러스터 운영체제를 이용하는 사용자들을 위한 거대 웹 서비스를 개발해서 오픈하였다.  이것이 바로 G메일과 구글 독스로 대표되는 서비스 들이다.  처음에는 베타의 꼬리표를 달고 등장했고, 서비스 자체나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았지만, 이제는 상당히 쓸 만한 수준이 되었다.  이제 클러스터 운영체제에 클라우드 애플리케이션 들이 원활하게 동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이 거대한 클러스터 컴퓨터는 세계 최고로 꼽히는 검색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오피스 클라우드 애플리케이션 뿐만 아니라 쇼핑 가격 비교 엔진, 그리고 각종 지도와 전화번호부, 도서관 엔진, 여기에 동영상 서비스와 같은 수많은 서비스 들을 공짜로 사용자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컴퓨터이자 가장 앞선 운영체제인지도 모른다.

구글의 크롬 OS는 이러한 커다란 구글 운영체제 완성의 마지막 남은 조각이다.  지금까지는 마지막 조각에 대한 민감성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나 파이어폭스 등의 브라우저에 역할을 맡겼지만, 이제는 크롬을 통해서 웹 브라우저 기술 확보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다른 운영체제에 맡기지 않고 하드웨어가 바로 네트워크 및 인터넷 기기로 전환하도록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크롬 OS가 가지게 될 역할은 명확하다.  상당부분의 거대 운영체제의 구성요소가 클라우드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다시 만들 이유가 전혀 없다.  브라우저가 처음 시동을 할 때 클라이언트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잘 매칭이 되도록 하는 부분과 디스플레이를 최적화하는 것, 그리고 간혹 있게 될 오프라인 상태에서의 지속성(Persistence) 관리를 위한 로컬 파일 관리 및 동기화, 그리고 완벽한 실시간 업데이트 및 보안 등을 완성하는 것이 크롬OS의 숙제이다.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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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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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좌)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우)


애플은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휴대폰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구글은 더블클릭을 인수하고 여러 종류의 서비스들을 내놓으면서 저만치 앞서가던 마이크로소프트를 따라붙고 있던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가 대형 투자를 성공시키면서 미래의 전쟁에 대비한 최대의 원군을 확보하는데 성공합니다.  오늘은 마이크로소프트와 페이스북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소셜 웹에 접속하다.

2007년 10월 24일, 페이스북과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2억 4,000만달러를 페이스북에 투자하고, 그 대가로 페이스북의 지분 1.6퍼센트를 취득하기로 합의합니다.  2004년 2월에 시작한 신생 서비스가 3년 반 만에 $150억 달러의 가치를 가진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와 함께 두 회사는 현재의 광고 파트너쉽을 확장하고, 전략적 동맹관계를 체결하여 마이크로소프트가 페이스북의 독점적 광고 플랫폼 파트너로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사업권을 취득하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페이스북 플랫폼에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는 서드파티들도 마이크로소프트 애드센터 네트웍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페이스북은 투자를 유치함에 있어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긴장관계를 최대한 이용하였고, 구글의 더블클릭 인수로 미래의 서비스 시장의 성장동력을 빼앗겼다고 판단한 마이크로소프트로 하여금 최대한의 베팅을 끌어내면서 향후 미래의 인터넷 주도권 경쟁에서 구글과 맞설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출 수 있는 현금자산을 확보하였습니다.  페이스북의 투자유치 소식에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야후가 적극적으로 대시하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의지가 워낙 강했고 이번에는 구글도 손을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도 당시 페이스북의 가치를 $150억 달러를 인정한 것에 대해 과도하다는 말들이 많았지만, 결국 현재 전세계 5억 명의 사용자 인프라를 바탕으로 구글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이미 확보하였고, 앞으로의 소셜 인터넷 운영체제(social internet operating system)로서 가장 중요한 인프라를 제공하는 회사와 협력하게 되어, 당시의 판단이 탁월하였음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랫폼/서비스 부분 사장이었던 케빈 존슨은 페이스북에 대한 투자를 놓고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습니다.

이번 투자와 파트너쉽 확장은 마이크로소프트와 페이스북을 세계 광고 시장에서 보다 나은 기회를 가지도록 포지셔닝 할 것이며, 두 기업만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의 사용자들과 광고주들에게도 훌륭한 승리입니다. 우리는 지난 기간동안 성공적으로 협력하였고 미래에 흥미진진한 일들을 함께 수행하길 기대합니다. 광고 파트너로서의 더 심도 깊은 협업 기회는 주식 취득을 결정한 중요 이유이고, 이번 파트너쉽의 장기적 경제성에 대한 자신감의 강력한 표현입니다.

이로서 검색을 포함한 온라인과 인터넷 분야에서 항상 구글에 뒤쳐졌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소셜 웹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 미래의 삼국지 대전에 참여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를 얻었습니다.  


긴박했던 투자전쟁, 소셜 네트워크로 소문나다.

페이스북의 잠재력을 인지하고 있었던, 구글도 이 싸움에서 지고싶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세계 최고의 회사 2군데에서 이런 경쟁을 유도할 수 있었던 페이스북도 정말 대단한 회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긴박했던 투자전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 대부분의 언론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특급기밀이 외부로 새어나갈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공식발표가 있기 전에 소셜 네트워크로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의도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셜 웹 시대에 걸맞는 변화였다고 봅니다.  두 기업이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 조금 전에 페이스북의 PR 담당인 브랜디 바커(Brandee Barker)가 마이크로소프트의 글로벌 세일즈 및 마케팅 담당인 아담 손(Adam Sohn)을 친구로 추가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승리가 확실하다는 예측이 공식 보도자료보다 훨씬 빠르게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구글은 정보검색을 중심으로 인터넷을 장악했지만, 페이스북의 현재 위치는 소셜 인터넷 운영체제를 지원하는 회사로 볼 수 있으며, 이를 지원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운영체제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을 잡은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소유한 1.6% 라는 지분은 투자한 금액에 비해 매우 적은 것이기 때문에, 사실 상 경영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고 있지 못할 듯 합니다.  그렇지만, 내부지분을 제외하고는 가장 커다란 외부지분을 가지게 되었으며, 실제로 이 돈이 있었기에 이후 프렌드피드(FriendFeed)라는 구글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만든 기술중심의 회사를 인수하면서 실시간과 관련한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윈도우와 오피스, 그리고 XBox 에 이르는 성공신화를 써오던 마이크로소프트이지만, 미래의 가장 중요한 서비스 전쟁을 앞두고 번번히 구글이라는 회사에게 밀렸고, 아이폰의 인기와 구글 안드로이드의 약진으로 오랫동안 공을 들여오던 PC 이외의 장비시장에서의 운영체제의 헤게모니를 빼앗기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있어 페이스북에 대한 투자는 미래의 먹거리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 확실합니다.  이것마저 구글에게 빼앗겼다면 미래의 삼국지에는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하였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자리가 없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후속편에 계속 ...)


P.S. 이 시리즈는 이미 완결되어 출간이 되었으며, 전체 내용을 일괄적으로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광고된 도서를 구입하시면 보다 충실하고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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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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