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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화에서도 언급했지만, 빈트 서프와 밥 멧칼프는 인터넷의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들로 꼽힌다. 인터넷의 근간을 이루는 TCP/IP 프로토콜을 개발한 빈트 서프는 밥 칸과 함께 공식적으로 '인터넷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인터넷을 네트워크간의 네트워크라는 개념에서 바라본 것으로 이 프로토콜을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가 즐기고 있는 다양한 인터넷의 세상이 열렸으므로 빈트 서프와 밥 칸을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해도 지나침은 없다.


인터넷의 아버지, 빈트 서프

빈트 서프는 2005년 10월 구글에 입사하여 현재는 부사장겸 인터넷 전도의 책임을 맡고 있다. 그는 인터넷 기반의 다양한 첨단기술이 접목된 제품과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구글에 합류하기 전에는 MCI(현재의 월드콤)의 기술전략담당 부사장으로 재직했다. 스탠포드에서 DARPA와 함께 TCP/IP를 고안한 빈트 서프는 1976년 DARPA에 합류해서 인터넷과 인터넷 기반의 패킷 데이터와 보안과 관련한 다양한 기술개발을 주도했는데, 1982년 DARPA를 떠나 MCI의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다음에는 MCI 메일이라는 인터넷에 연결된 세계 최초의 상업용 이메일 서비스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빈트 서프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1965년 수학을 전공하고, IBM에서 2년 동안 일을 한 뒤에 UCLA에서 컴퓨터 과학으로 1972년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는데, 어쩌면 억세게 운이 좋은 경우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내막은 다음과 같다.


1962년 MIT의 J.C.R. 리크리더(Licklider)는 '은하네트워크(Galactic Network)'라는 메모를 발표했는데, 이것이 모든 컴퓨터를 엮는 글로벌 네트워크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이다. 같은 해 리크리더는 DARPA의 초대 컴퓨터 연구단의 책임자로 임명된다. 1965년에는 MIT의 연구자였던 로렌스 로버츠(Lawrence Roberts)와 토마스 메릴(Thomas Merrill)이 전화선에서 데이터의 패킷으로 컴퓨터간에 주의 경계를 넘어서 통신하는 실험에 성공하는데, 로렌스 로버츠는 이후 DARPA에 합류하여 리크리더의 꿈을 실현하는 역할을 맡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1967년 탄생한 프로젝트가 ARPANET 프로젝트이다. 로렌스 로버츠가 실험했던 방식은 1961년 당시 MIT의 대학원생이었던 레오나드 클라인락(Leonard Kleinrock)의 데이터 패킷을 이용한 스위칭 이론과 관련한 논문에 바탕을 두었는데, 레오나드 클라인락은 박사학위를 마치고 UCLA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는 밥 칸과 함께 DARPA의 원대한 꿈을 같이 이끌어나가기로 합의하고 UCLA의 실험실이 ARPANET의 첫 번째 노드가 되도록 하였다. ARPANET의 두 번째 노드로는 SRI가 선정되었고 1969년 이 두 노드 사이의 역사적인 첫 번째 데이터 통신이 시도된다. 이 때 실무를 담당한 것이 바로 빈트 서프였다. 그는 이 두 호스트 사이의 통신 프로토콜이었던 NCP를 구현하였다. 1972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빈트 서프는 스탠포드로 자리를 옮기는데, NCP의 개선이 ARPANET 프로젝트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밥 칸이 1973년 빈트 서프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들의 세계를 바꾼 프로토콜의 발명이 시작되었다.


그는 또한 국제활동도 활발하게 한 인물이다. 향후에 좀더 자세하게 언급하겠지만, 인터넷을 편리하고 쉽게 이용하게 하기 위해  문자로 된 주소체계가 만들어지자 이런 주소를 관리하는 조직이 필요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 ICANN(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이라는 민간단체가 설립되는데, 빈트 서프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 8년 간 이 단체의 의장을 맡아서 인터넷의 대표적인 얼굴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인터넷과 관련한 가장 중요한 결사체인 인터넷 소사이어티(Internet Society)를 1992년 공동으로 창립하였다. 그 밖에도 청력장애인과 관련한 많은 국제 단체의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로컬 네트워크의 아버지, 밥 멧칼프


밥 칸과 빈트 서프를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밥 멧칼프는 '로컬 네트워크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멧칼프는 1946년 뉴욕 브루클린 출신으로 MIT에서 전자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하였다.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응용수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컴퓨터 과학으로 박사학위 공부를 하면서 MIT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었는데, 그 일자리가 바로 ARPANET 프로젝트에서 MIT에 의뢰한 하드웨어를 만드는 것이었다.


1972년 ARPANET 컨퍼런스에서 그는 ARPANET을 이용한 19가지 시나리오를 담은 팸플릿과 데모를 하였다. 이 때 AT&T에서 온 10명의 전문가들 앞에서 기술과 시나리오를 실제로 시연하였는데, 팸플릿에 적은 것처럼 동작하지 못하고 시스템이 죽어버렸다. 당시로서는 기술이 완벽한 것이 아니었고, 데모 프로그램에도 문제가 있었던 탓이었겠지만, 멧칼프에 따르면 이 때의 데모 실패가 당시 통신을 독점하고 있었던 AT&T에게는 패킷을 이용한 데이터 통신 방식이 전화에서 이용되는 회선전환 방식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어쨌든 ARPANET 프로젝트는 멧칼프의 인생을 바꾸어놓게 되는데,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버드 대학에서 그의 논문이 '충분히 이론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학위논문으로 인정하지 않자, 이에 분노하여 반발하였다. 대학 측에서는 그를 진정시키기 보다는 되려 더욱 권위적으로 그를 압박하였고, 하버드 대학과 멧칼프는 크게 사이가 나빠지게 되었다. 이 때 그의 탁월한 능력을 알아본 제록스 PARC 연구소에서 그에게 일자리를 제안했고,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PARC 연구소에 입사하였다.


그의 새로운 박사학위 논문의 아이디어는 하와이 대학에서 연구되던 ALOHA 네트워크에 대한 논문에서 나오게 되는데, 이 네트워크는 데이터 전송을 위해 전화선을 이용하지 않고 전파를 이용하였다. 그런데, 전파는 동시에 데이터 패킷이 두 군데에서 같은 채널을 통해 전송될 경우 서로가 간섭을 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와이 대학에서는 컴퓨터가 전송할 데이터가 있을 때 언제든 데이터를 전송하도록 허용하고, 목적지 컴퓨터에서 패킷이 도착했다고 알려줄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을 이용하였디. 패킷이 충돌하거나 도착알림이 없으면 기다리는 시간을 매우 짧게 랜덤으로 기다리게 한 뒤에 이를 넘을 경우 재전송을 하게 했는데, 이를 통해 같은 데이터가 계속 충돌하지 않도록 하였다. 이를 랜덤접근(random access) 방법이라고 한다. 멧칼프는 이 방식의 문제점을 파악했는데, 잘못하면 지나치게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점을 개선하여 데이터 트래픽에 따라 기다리는 시간을 역시 랜덤이기는 하지만 조절하여 데이터 전송효율을 매우 높였다. 그제서야 그의 학문적 성취를 인정한 하버드 대학에서 멧칼프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제록스 PARC에서 그는 개인용 PC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하드웨어와 통신방식을 고안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전 세계에 LAN 열풍을 일으킨 이더넷(Ethernet) 기술이다. 이더넷은 제록스 PARC의 기념비적인 컴퓨터인 알토(Alto)에 구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게 되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앞선 연재를 통해 수 차례 언급한 바 있으므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그는 이더넷을 단순히 개인이나 특정 연구소의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연결하는 기술로 널리 보급되기를 원했고, 이를 위해 오늘날까지 전 세계 네트워크 기술을 대표하는 회사인 3Com(Computers, Communications, Compatibility - 컴퓨터, 통신, 호환성을 의미)을 1979년 공동창업하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는 그의 기술을 한 회사에 종속시키지 않고, 산업계 표준으로 공개하면서 여러 회사들이 제품을 저렴하게 내놓고 네트워크의 잇점을 수 많은 사람들에게 누릴 수 있게 한 점이다. 그의 의도대로 1980년대 들어 LAN(Local Area Network)이 널리 보급되었으며, 대학이나 기업 등에 도입되면서 인터넷의 중요성을 높이는 동시에, 기술의 판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멧칼프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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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멧칼프는 이더넷을 만들고, 3Com 이라는 회사를 창업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무어의 법칙(Moore's law), 코즈의 정리(Coase theorem)와 함께 인터넷 경제의 3원칙으로 불리는 멧칼프의 법칙(Metcalfe's law)으로 더욱 많이 알려졌다. 그가 처음 이야기한 것은 통신에서의 네트워크 효용성에 대한 것으로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던 전화나 팩스에 비해, 이더넷을 이용한 네트워크의 효용성이 훨씬 크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현재는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더 나아가서는 경제와 비즈니스 경영 등의 영역에도 널리 활용되는 일반적인 법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인용하고 있다.


내용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그는 '하나의 네트워크의 효용성은 그 네트워크 사용자 숫자의 제곱' 이라고 하였다. 예를 들어 하나의 전화는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러나 두 개가 연결되면 유용하며, 백만 개가 연결되었다면 그 효용성이나 가치는 백만의 제곱이라는 것이다. 이 법칙은 네트워크의 노드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가능한 연결의 갯수를 수학적으로 계산한 것에서 도출되었는데, 정확하게는 수학에서의 조합으로 보아야 하므로  노드의 수를 n으로 보았을 때 2개의 노드의 연결의 수는 'n(n-1)/2'로 표현할 수 있다.


멧칼프의 법칙은 많은 함의를 가지고 있다. 사용자 수의 제곱에 의해 네트워크 효과가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것은 네트워크가 누군가의 소유로 있을 때보다 널리 이용되어 사용자가 늘어날 때 효용성이 급격히 증가하는 사회적인 특징을 가진다는 것이고, 멧칼프는 이런 교훈을 자신의 비즈니스에도 충실하게 접목해서 기술을 개방하고 네트워크를 설치한 PC의 수가 늘어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3Com을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시켰다. 인터넷이 저렴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될 때 그 가치가 급격히 늘어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저렴한 초고속인터넷 통신망의 보급에서도 증명된 바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어떤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면 그 가치가 크게 늘어난다는 것을 이제는 더 이상 의심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다음 회에 계속 ...)



참고자료:


Vinton Cerf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Vinton Cerf ICANN 소개

MIT Inventor of the Week Archive: Vinton Cerf

Robert Metcalfe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Internet Pioneers: Bob Metcalfe

Metcalfe's law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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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독립적인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크들을 엮어내겠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인터넷의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ARPANET은 이를 위해서 기존의 전화망 이외에 위성을 이용한 통신망이나, 지상의 무선 네트워크 등도 포괄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 대세를 이루던 전화망 스타일의 서킷(circuit)기반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데이터의 패킷을 중심으로 하는 네트워크 이론과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또한, 여러 네트워크 기술들과 구조를 포괄해야 하기 때문에, 오픈 아키텍처(open architecture)를 통해서 미래로의 확장성도 확보하고, 어느 한쪽이 송신을 하고 다른 편이 수신을 하는 역할을 분담하는 시나리오보다는 각 네트워크의 말단이 독립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각자의 소통이 가능한 P2P(Peer-to-Peer, 각각의 말단이 대등하게 주고받는 형태) 시나리오를 지원해야 했다. 오픈 아키텍처 네트워크에서는 각각의 독립적인 네트워크가 자신들만의 인터페이스를 통해 서비스를 사용자들에게 제공하고, 이들 간의 네트워크를 다시 구성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데, 여기에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 Internet Service Provider) 개념이 나오게 된다. 



인터넷 통신의 핵심, TCP/IP 프로토콜의 탄생


이처럼 혁명적인 오픈 아키텍처 네트워크 개념은 DARPA의 밥 칸(Bob Kahn)에 의해 1972년 처음으로 소개되었는데, 이런 개념이 실질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신뢰성 있는 네트워크 단말 사이의 통신 프로토콜(Protocol)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였다. 그 이유는 데이터 중심의 통신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형태의 전파나 전기간섭, 방해 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하는 환경을 가정할 경우에도 터널을 지나거나, 통신 인프라가 열악한 산간지역 등에서 통신이 끊어지는 것 등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밥 칸이 처음 고안한 것은 다양한 통신 네트워크를 지원하기 보다는 주로 지상에서의 무선통신 환경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토콜이었는데, 이것이 NCP(Network Control Protocol)이다. 초기의 ARPANET 프로젝트에는 NCP가 활용되었는데, 1969년 IMP(Interface Message Processor)라는 장치를 이용하여 4개의 노드인 UCLA,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SRI(Stanford Research Institute), 유타주립대학을 연결했던 역사적 사건에도 NCP가 호스트간 통신을 담당했다. 그런데, NCP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NCP는 컴퓨터와 같은 기계 단말의 고정된 목적지를 제외한 주소를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일단 구성된 ARPANET에 등록된 기계 이외에는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가 없기에 자율적인 확장을 생각했던 인터넷의 개념과는 맞지 않았다. 또한 에러 처리가 불완전해서 중간에 패킷이 소실되면 멈추는 일도 많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밥 칸은 오픈 아키텍처 네트워크 환경에 잘 맞는 새로운 버전의 프로토콜을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초기의 NCP는 IMP라는 기계를 위한 일종의 하드웨어 드라이버와 유사한 형태였는데, 오픈 아키텍처 네트워크를 위해서는 통신 프로토콜의 형태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각각의 네트워크는 독립적으로 유지되면서도, 네트워크 간의 네트워크인 인터넷에 접속될 때 특별한 변화나 조작이 없어야 했다. 데이터 덩어리인 패킷이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는 일이 있으면, 멈추기 보다는 시간이 지나면 원래 발신한 곳에서 재전송이 일어나야 했으며, 네트워크들 사이를 연결하는 어떤 보편적인 블랙박스 같은 것이 필요했다. 이렇게 네트워크 사이를 연결하는 장치는 이후에 게이트웨이(gateway)와 라우터(router)라고 부르게 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슈는 주소와 관련된 것이다. 사라지는 패킷을 처리하고, 재전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패킷에 어디로 어떻게 가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어야 했다. 게이트웨이가 패킷을 벗겨서 네트워크가 흘러가는 길의 정보(루트, route)와 인터페이스 처리, 필요하다면 데이터 패킷을 잘게 자르는 등의 정보를 해석할 수 있어야 했는데, 이런 정보를 IP(Internet Protocol) 헤더에 담도록 하였다. 또한, 에러 등의 이유로 순서를 가리지 않고 들어오는 데이터 패킷을 나중에 재조합을 하고, 잘 전송되었는지 모르고 다시 전송한 데이터와 같은 중복처리도 해야하므로 체크섬을 계산하도록 했다. 또한, 호스트 사이의 흐름도 제어하고, 전체적인 시스템의 완결성을 위해서는 주소체계도 필요하였다. 이렇게 해야할 일이 많아지자, 밥 칸은 1973년 빈트 서프(Vint Cerf)에게 상세한 디자인과 관련한 도움을 요청한다. 


빈트 서프는 오리지널 NCP 디자인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당시 운영되던 다양한 컴퓨터 운영체제에 어떻게 이런 내용을 인터페이스로 연결시킬 것인지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기에 최고의 조력자가 될 수 있었다. 밥 칸의 뛰어난 아키텍처 개념에 빈트 서프의 NCP 및 운영체제에 대한 지식이 합쳐지자 결국 성과가 나오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인터넷 기기들의 소통언어라고 할 수 있는 TCP/IP(Transmission Control Protocl / Internet Protocol) 프로토콜이다. TCP/IP는 1973년 9월 서섹스(Sussex) 대학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조직된 INWG(International Network Working Group)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으며, 빈트 서프는 이 그룹의 의장으로 초대되어 TCP/IP로 전 세계를 엮어나가는 역사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더넷의 등장


TCP/IP 프로토콜과는 별도로 제록스 파크 연구소에서는 이더넷(Eternet)이라는 새로운 네트워크 기술이 연구되고 있었다. 이더넷은 원래 제록스 파크에서 1973년 로버트 멧칼프(Robert Metcalfe)가 박사 학위를 위해 연구하던 ALOHAnet의 아이디어에서 메모를 하나 적은 것이 발단이 되었다. 이를 좀더 체계화를 해서 1975년 제록스 파크 연구소에서는 특허를 출원하고, 1976년에 로버트 멧칼프와 데이비드 복스(David Boggs)가 <이더넷: 분산 패킷교환 로컬 컴퓨터 네트워크(Ethernet: Distributed Packet-Switching For Local Computer Networks)>라는 책을 통해 정체를 공개했다. 멧칼프는 개인용 컴퓨터와 당시 급부상하던 가정과 사무실 등에서의 LAN (Local Area Network)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1979년에 제록스를 떠나 3Com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 DEC, 인텔과 제록스 등을 설득하여 1980년 이더넷 표준을 채택하도록 하였고, 실제로 이더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LAN의 시대가 열리고, 사무실에서 PC를 활발하게 쓰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3Com은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하였다. 무선의 시대로 넘어오기는 했지만, 아직도 이더넷 시장은 여전히 커지고 있어서 2010년에는 160억 달러를 넘었다.


어쨌든 이더넷이 개발되고 있을 당시의 제록스 파크에서는 이렇게 LAN이 금방 활성화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는 인터넷과 관련한 프로토콜을 디자인한 빈트 서프나 밥 칸도 별로 다르지 않아서, 가능한 주소의 수가 32비트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현재와 같은 4바이트의 32비트 IP 주소체계가 세워지게 되는데, 이제는 주소가 완전히 포화가 되어 IPv6라고 불리는 128비트 주소체계로 전환되고 있으니 기술과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음 회에 계속 ...)



참고자료:


Brief History of the Internet

Ethernet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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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과학기술, 특히 정보통신 부분에 있어 가장 큰 업적을 남긴 곳이 어디일까요?  물론 IBM,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커다란 기업들이 제일 먼저 연상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단연 제록스 파크(Xerox PARC)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동의하는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제록스 파크는 정말 하나만 해도 전세계를 바꾸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만한 최고의 기술을 여럿 연구하고 개발한 곳입니다만, 이들의 연구성과는 결국에는 다른 회사들에 의해 꽃을 피우고 전세계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제록스라는 회사처럼 성공의 기회를 많이 놓친 회사도 없을 듯 합니다.

제록스 파크는 Palo Alto Research Center의 약자로, 1970년에 설립되었습니다.  2002년부터는 독립된 리서치 비즈니스 회사로 PARC라는 이름으로 거듭났습니다.  PARC는 30개가 넘는 회사들의 창업에 관여했고, 수많은 혁신을 창조했는데, 레이저 프린팅, 분산 컴퓨팅, 네트워크의 표준인 이더넷(Ethernet), 애플과 윈도우를 있게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 Graphic User Interface),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그리고 유비퀴토스 컴퓨팅 등이 모두 이곳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언급한 기술 하나하나가 현대의 정보통신 및 컴퓨팅 환경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드리지 않아도 될 것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모회사였던 제록스는 레이저 프린팅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사업화에 거의 성공하지 못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구소의 위치와 연구분위기 그리고 상업화

PARC 연구소는 이후 캘리포니아 실리콘 밸리의 중심이 되고, 스탠포드 대학이 있는 팔로알토(Palo Alto)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록스의 본사는 뉴욕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본사에서 PARC 연구소에서 수행하는 연구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정말 마음껏 수행하였지요 ...  그런데, 이러한 엄청난 거리는 PARC 연구소에서 나온 수많은 연구자산들이 제때에 상업화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실리콘 밸리 주변에 있는 기업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를 보면, 멀리 있는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훨씬 가깝다는 노래가사가 떠오르지요?


전설적인 컴퓨터 Alto

이렇게 수많은 혁신적인 연구성과를 낸 연구소이지만, 그 중에서도 Alto라는 컴퓨터는 컴퓨터 업계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이 컴퓨터는 SRI 처음 개발한 마우스를 이용해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구현한 세계최초의 컴퓨터 였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GUI들이 Alto의 인터페이스로부터 유래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이를 PUI(파크 유저 인터페이스)라고도 부릅니다.  PUI에는 윈도우, 메뉴, 아이콘, 라디오단추, 체크박스 등의 그래픽 요소를 사용하며,  포인팅 장치인 마우스와 키보드를 함께 사용하였습니다.

PARC의 Alto가 이렇게 혁신적인 컴퓨터였지만, 상업화에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 컴퓨터는 후에 제록스에 의해 Xerox Star라는 컴퓨터로 발매되지만 25,000대 정도가 팔리는데 그칩니다.  PARC의 GUI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를 통해 꽃을 피우게 되는데, 스티브 잡스의 눈에 띈 PUI는 PARC의 래리 테슬러(Larry Tesler)가 애플에 입사하여 리사(Lisa) 프로젝트와 매킨토시를 통해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합니다. 

이후 매킨토시의 GUI는 빌 게이츠에 의해 윈도우로 재창조되고, 전세계를 호령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제록스와 애플 사이에도 특허소송이 진행되었지만 특허를 내놓고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권리를 찾으려 했기 때문에 제록스가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전설적인 연구소로 남다.

2002년 독립된 연구기관이면서 지식 공장의 형태로 독립한 PARC는 이후 제록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는 상업적 연구전문기업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제록스 뿐만 아니라 후지쓰나 샌디에고에 위치한 세계적인 병원인 스크립스 클리닉 등과 함께 의생명과학, 재생 및 클린 에너지 연구 등에도 힘을 쓰고 있는 PARC는 여전히 세계적인 연구소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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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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