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포스팅을 하고자 합니다. 일이 오늘 손에 잡히지가 않네요.

스티브 잡스가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왠만한 나라의 대통령이 갑자기 물러나도 이렇게 커다란 뉴스가 되지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그만큼 그가 우리 인류에게 미쳤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경쟁사에 계신 분들도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고, 그가 이룩했던 많은 자산들은 이미 전설이 되어 버렸습니다. 

1977년 애플 II를 발표하면서 세계 최초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개인용 컴퓨터, PC의 시대를 열면서 약관 23세의 나이로 세계를 호령했으며, IBM의 PC 시장 참전과 그들의 공격적인 개방형 전략에 밀리면서 1986년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던 1기와 픽사와 넥스트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면서, 디즈니와 합병을 통해 미디어와 콘텐츠 업계에서도 이 시대 최고의 전설적인 기업의 개인 최대주주의 자리에도 올랐던 2기. 그리고, 다시 애플에 복귀하여 망해가는 애플을 PC중심의 업체에서 아이팟과 아이폰 등을 위시로 개인의 생활을 지배하는 최고의 기기와 이를 지원하는 생태계를 디자인하고 구현하여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부활시킨 3기에 이르기까지 그가 이룩한 업적은 하나의 글로 옮기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그의 사망을 두고, 구글의 두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도 구글+에 직접 올린 글에서 스티브 잡스가 이룩한 업적과 그의 비전과 리더십이 자신들에게도 커다란 형향을 미쳤다고 글을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단순히 컴퓨터를 전문가나 몇몇 산업에서나 사용하는 특별한 기계가 아닌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대를 창조하였고, 전화기가 단순한 통신용도의 기기가 아니라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범용기기인 스마트폰으로 자리잡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컨텐츠 제작과 유통에 있어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면서 더 이상 IT기기와 산업이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으로 거듭날 수 있는 토대와 융합을 이끌어내는 방향성을 제시하였죠.

스티브 잡스는 뛰어난 경영자이자 꿈을 창조하는 비저너리, 현실에 기반한 강력한 실행주의자, 최고의 아이콘이면서 동시에 사상과 개념을 전파하는 에반젤리스트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거인의 명복을 빕니다.

Rest In Peace ... Steve Jobs. He was i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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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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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사와 관련한 포스팅은 잘 하지 않는데, 오늘도 도저히 글을 올릴 수 없는 사건이 있었네요. 최근 잘 아는 IT 기자분이 IT 기자가 아니라 사회부 기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납니다.

스티브 잡스가 공식적으로 애플의 CEO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왠만한 나라의 대통령이 갑자기 물러나도 이렇게 커다란 뉴스가 되지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그만큼 그가 우리 인류에게 미쳤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경쟁사에 계신 분들도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고, 그가 이룩했던 많은 자산들은 이미 전설이 되어 버렸습니다. 

1977년 애플 II를 발표하면서 세계 최초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개인용 컴퓨터, PC의 시대를 열면서 약관 26세의 나이로 세계를 호령했으며, IBM의 PC 시장 참전과 그들의 공격적인 개방형 전략에 밀리면서 1986년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던 1기와 픽사와 넥스트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면서, 디즈니와 합병을 통해 미디어와 콘텐츠 업계에서도 이 시대 최고의 전설적인 기업의 개인 최대주주의 자리에도 올랐던 2기. 그리고, 다시 애플에 복귀하여 망해가는 애플을 PC중심의 업체에서 아이팟과 아이폰 등을 위시로 개인의 생활을 지배하는 최고의 기기와 이를 지원하는 생태계를 디자인하고 구현하여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부활시킨 3기에 이르기까지 그가 이룩한 업적은 하나의 글로 옮기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그가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애플의 차세대를 뒤에서 조언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ZDNet에서 그가 CEO로 활약했던 시기를 셋으로 구분을 하면서 제작한 비디오입니다. 비록 자막은 없지만, 영상만으로도 그의 업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군가 자막작업을 해 주시면 좋겠네요.




 
그의 뒤를 이어 애플의 선장을 맡을 주인공은 그동안 애플의 COO를 맡았던 팀 쿡입니다. 팀 쿡은 알라바마 출신으로 1960년생이나 스티브 잡스보다 5살 아래입니다. 남부의 명문인 듀크대학 MBA 출신으로 12년간 IBM의 PC 부분에서 일을 했고, 그 후에는 세계적인 PC 제조업체인 컴팩에서 재료부분의 부사장을 맡고 있다가, 스티브 잡스에 의해 스카웃되어 애플에 입성하였습니다.

팀 쿡이 애플에 입사해서 맡은 일이 바로 SCM(Supply Chain Management) 이었습니다. 팀 쿡이 입사해서 애플의 공급체계를 확인하니 무려 100개가 넘는 업체에서 부품을 구매하고 있었습니다. 팀 쿡은 이를 정리해서 대부분의 부품을 아일랜드와 중국,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가져오고 조립은 중국 본토에서 하도록 일원화하면서 부품 공급업체의 수를 20여개로 줄였습니다. 그리고, 부품 공급업체와 애플의 조립공장이 지리적으로도 매우 가깝게 위치하도록 해서 부품이 들어오면 거의 바로 조립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조의 효율화를 이루어냅니다.  이런 개혁조치를 통해 애플이 가지고 있던 70일치가 넘던 재고물량이 팀 쿡이 입사한지 2년 만에 10일 이하로 줄어들었는데, 이 때 확립된 체계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2007년 시장조사 기관이 AMR 리서치는 노키아에 이어 애플의 SCM 관리 및 활용능력을 세계 2위로 평가했습니다. 당시 세계최고의 PC 제조업체로 애플의 라이벌로 여겨졌던 델은 리스트에도 오르지 못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효과적인 애플의 제조생산 능력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뛰어난 관리능력을 가진 팀 쿡을 언제나 자신을 대신할 예비 CEO로서 준비시키고 있었고, 그가 건강에 문제로 애플을 떠날 때마다 그에게 CEO 역할을 맡기면서 꾸준히 후계를 맡을 준비를 시켜왔습니다.

쿡와 잡스가 여러 모로 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 역시 잡스만큼이나 자기 일에 대한 고집이 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CNN Money의 팀 쿡에 대한 글에 따르면 애플의 형편없는 생산, 유통, 공급 상태를 해결하기 위한 회의에서 팀 쿡이 아시아에 특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상황이 정말 안좋아요. 누군가 중국에 가줘야 겠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회의가 30분 정도 진행되고 있었는데, 팀 쿡은 갑자기 주요한 임원 중의 한 명이었던 사빈 칸(Sabih Khan)을 돌아보면서, "아니 당신 왜 아직까지 여기 있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칸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으로 달려가고, 옷도 안바꿔 입은 채, 돌아올 날짜도 정해지지 않은 중국행 표를 예약하고 떠났다고 합니다. 이것이 감정을 잘 드러내지는 않지만, 만만치 않은 쿡의 진면목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조용하지만 무서운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인물입니다.

2005년 스티브 잡스는 팀 쿡을 COO에 임명합니다.  현재 그는 기존의 관리와 SCM 및 운영에 대한 부분 뿐만 아니라, 51개국에 걸친 통신사들과의 협상 및 아이폰의 판매와 운영까지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국내 회사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고, 우리나라도 자주 방문하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앞으로 한국 회사들과는 좀더 대화를 하는데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있지만, COO로서 SCM을 담당했을 때와 CEO로서 회사를 끌고나갈 때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애플의 변화에 대해서는 좀더 두고봐야 될 것 같습니다.

운동중독자이기도 한 그는 팀원들에게 새벽 4:30에 이메일을 돌리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할 때도 있으며, 국제전화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걸려오고, 일요일 저녁 회의까지 주재할 정도라고 합니다. 평생 독신으로 산 그는 아직도 팔로알토에 있는 임대 주택에 살고 있으며, 휴가를 얻어도 캘리포니아의 국립공원 같은 곳에 하이킹을 하러 떠나고, 부자티를 전혀 내지 않게 검소하며, 사무실에는 제일 먼저 출근해서 제일 늦게 나간다고 합니다. 해외출장 일정도 거의 슈퍼맨 수준으로 잡고,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헬스클럽을 들르거나 하이킹을 합니다. 주변에서 보면 무슨 재미로 살까? 싶을 정도이지요 ...  어찌보면 가장 나쁜 상사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팀 쿡의 시대가 되더라도 이미 애플에서는 스티브 잡스 이후를 상정하여 많은 준비가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애플은 앞으로 몇 년 정도는 충분히 현재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많은 라인업과 로드맵이 있으며, 스티브 잡스가 비전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이사회 의장으로서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위상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팀 쿡이 자신의 스티브 잡스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 만의 색깔을 애플이라는 회사에 입히기에는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애플의 미래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이 시대의 거인의 퇴장에 박수를 보내는데 좀더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뛰어난 경영자이자 꿈을 창조하는 비저너리, 현실에 기반한 강력한 실행주의자, 최고의 아이콘이면서 동시에 사상과 개념을 전파하는 에반젤리스트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거인의 퇴진에 경의를 표합니다.


참고자료

The genius behind Steve from CNN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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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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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IT의 역사'에 왠 월트 디즈니와 픽사(Pixar)? 하실지 모르겠지만, 픽사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이후에 그를 부활시킨 가장 중요한 회사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의 미디어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를 주도하는 회사들과의 친분이 픽사를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픽사라는 회사와 애플의 관계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어보여도 매우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픽사와 디즈니의 갈등

스티브 잡스는 애플로 복귀한 이후에도 픽사에 대해서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물론 다양한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를 직접 지휘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최소한 외부와의 관계에서 만큼은 적극적인 행보를 보입니다.  픽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파트너는 디즈니 였습니다.  픽사의 오늘날을 있게 만든 토이스토리(Toy Story) 역시 디즈니를 통해 배급이 되었고, 그 뒤에도 여러 작품들이 디즈니를 통해서 소개됩니다.  그런데, 토이스토리 2를 제작한 이후에 이들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었습니다.  원래 토이스토리 2는 극장 개봉용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제작하는 중간에 극장용으로 전환된 경우인데, 이렇게 변한 상황에 대해 픽사는 새로운 계약을 요구했지만 디즈니가 이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디즈니와 픽사는 2004년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위한 접촉을 가졌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픽사의 위상이 올라갔기 때문에, 픽사는 제작전반을 컨트롤하고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영화에 대한 지적재산권이 자신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영화 수익에 대해 50:50 으로 분배하였지만, 소유권은 디즈니가 가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픽사는 제작비를 자신들이 직접 파이낸싱해서 충당할 것이고 전체 매출액 중의 10~15% 정도의 유통비용을 디즈니에게 제작하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여기에 과거에 제작한 영화들에 대한 권리까지 요구하자 디즈니의 입장에서는 과도한 요구라며 난색을 표합니다.

이런 협상의 한 가운데 있었던 것이 바로 스티브 잡스와 당시 디즈니의 회장이자 CEO 였던 마이클 아이스너(Michael Eisner) 입니다.  후문에 의하면 회사들 사이의 문제도 있지만, 스티브 잡스와 마이클 아이스너가 개인적으로도 무척이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하며, 이런저런 이유로 2004년 중반 픽사와 디즈니는 결별을 선언합니다.  이들의 관계는 2005년 마이클 아이스너가 디즈니를 떠나면서 극적으로 복구됩니다. 새로운 디즈니의 CEO 인 로버트 아이거(Robert Iger)와 스티브 잡스는 정말 통인 큰 구도로 일을 진척시키면서, 급기야는 이들이 합병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세부적인 협상에 들어갑니다.  협상을 진척시키면서, 동시에 새로운 애니메이션 필름을 제작하고 출시하게 되는데, 이때 제작된 애니메이션이 라따뚜이(Ratatouille) 입니다.


디즈니와 한 배를 타고 디즈니까지 장악한 스티브 잡스

2006년 1월 24일, 놀라운 뉴스가 날라듭니다.  디즈니가 픽사를 $74억 달러라는 엄청난 가격으로 주식을 전량인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픽사 주주들의 승인이 떨어진 뒤 2006년 5월 5일 이 합병이 완료가 되는데, 이 거래를 통해 픽사의 주식 50.1%를 가지고 있었던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 주식의 7%를 소유하게 되면서 사실 상 디즈니의 최대주주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또한, 이를 통해 이사회에 이름을 올리고 디즈니의 경영에 관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형식은 픽사를 디즈니가 인수를 한 것이지만, 사실 상 디즈니가 스티브 잡스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간 것입니다.  

픽사의 공동창업자인 존 래스터(John Lasseter)는 디즈니의 CCO(Chief Creative Officer)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부여받게 되는데, 디즈니와 픽사 뿐만 아니라 디즈니의 모든 테마파크를 디자인하고 이를 관장하는 디즈니 이메지니어링(Disney Imagineering)의 수석 크리에이티브 자문역도 맡으면서 디즈니의 경영전반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됩니다.  애드 캣멀 역시 픽사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사장 자리를 유지하면서 로버트 아이거와 협업을 하게 되었으며, 스티브 잡스는 픽사의 회장과 CEO 자리에서는 물러나지만 디즈니의 이사회에 참여하게 되어 사실 상 픽사가 디즈니를 장악하게 됩니다.

이런 엄청난 구도의 변화를 끌어낸 장본인인 로버트 아이거는 콘텐츠 사업자로서의 디즈니의 아집을 버리고, 디즈니가 스티브 잡스가 추구한 '디지털', '사용자 우선'이라는 관점과 철학을 받아들이면서 미래를 위한 기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런 변화를 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음반업계가 그랬듯이 미디어 기업의 미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로버트 아이거는 합병을 결행하기 이전에 애플과의 관계에서도 다른 회사들과는 차별적인 행동을 보여주었습니다.  디즈니가 가지고 있는 미국 최대의 방송국 중의 하나인 ABC를 포함하여 디즈니의 콘텐츠들을 처음으로 애플의 아이튠즈를 통해 판매하는 모험을 감행하는데, 이 때 ABC 방송국 경영진들과 파트너 영화관들이 엄청나게 반발하였지만, 이를 결행에 옮기는 뚝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이튠즈에서 디즈니의 콘텐츠가 거래된 이후, 첫 해에 1억 건이 넘는 다운로드가 이루어지면서 커다란 성공의 전조를 보여주더니, 2006년에는 매출액이 4400만 달러에 이르렀고,  2008년 3월에는 4백만 번째 디지털 영화의 판매(금액으로는 $1억 2300만 달러)를 기록하게 되는 등 디지털 콘텐츠 판매시장이 있다는 것을 증명시킵니다.


로버트 아이거는 현재까지도 디즈니의 CEO 로 일하면서 올드 미디어가 어떻게 하면 미래를 향해 변신할 수 있을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디즈니라는 거함을 이끌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도 필요하겠지만, 우리나라에도 로버트 아이거와 같은 인물이 있어야 콘텐츠 시장이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변신하는데 가속도가 붙게 될 것입니다.  미래를 보는 혜안과 뚝심, 그리고 과감한 실행력을 갖춘 새로운 미디어 업계의 스타가 나타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후속편에 계속 ...)



P.S. 이 시리즈는 이미 완결되어 출간이 되었으며, 전체 내용을 일괄적으로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광고된 도서를 구입하시면 보다 충실하고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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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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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IT의 역사, 2004년 애플도 구글만큼 엄청난 뉴스를 전 직원과 투자자들,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전합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스티브 잡스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피상적으로 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오늘의 주제입니다.


2004년 여름, 잡스가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

2004년 8월, 스티브 잡스는 한 통의 이메일을 자신의 직원들에게 보냅니다.  내용은 자신이 췌장암(pancreatic cancer)에 걸렸고, 치료를 위해 입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췌장암은 일반적으로는 평균적으로 1년 정도 밖에 살지 못하는 대단히 무서운 암이기 때문에, 많은 직원들이 우려할 것을 걱정해서인지 친절하게 암의 종류가 그리 나쁘지 않으며, 수술만 받으면 된다고 안심을 시킵니다.  그리고 수술을 잘 받았으며, 자신이 없는 동안 영업과 운영을 담당하는 부사장인 팀 쿡(Tim Cook)이 자신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애플의 직원들에게 전달된 이메일 입니다.  원문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한글/영문 병기를 해 보았습니다.

Team, (팀, 애플 직원들을 하나의 팀으로 부르네요)

I have some personal news that I need to share with you, and I wanted you to hear it directly from me. (여러분들과 공유할 필요가 있는 개인적인 뉴스가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직접 저에게서 듣기를 원했습니다)

This weekend I underwent a successful surgery to remove a cancerous tumor from my pancreas. I had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called an islet cell neuroendocrine tumor, which represents about 1 percent of the total cases of pancreatic cancer diagnosed each year, and can be cured by surgical removal if diagnosed in time (mine was). I will not require any chemotherapy or radiation treatments. (이번 주말, 저는 제 췌장에서 암을 떼어내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습니다.  저의 췌장암은 전체 췌장암의 1% 밖에 되지 않는 희귀한 종류로 적당한 시기에 수술만 받으면 치유가 되는 종류입니다 (저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저는 어떤 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도 받지 않아도 됩니다)

The far more common form of pancreatic cancer is called adenocarcinoma, which is currently not curable and usually carries a life expectancy of around one year after diagnosis. I mention this because when one hears "pancreatic cancer" (or Googles it), one immediately encounters this far more common and deadly form, which, thank God, is not what I had. (훨씬 흔한 종류인 선암은 완치가 현재 불가능하고, 보통 1년 남짓 산다고 하는데, 이를 언급하는 것은 저의 췌장암에 대한 정보를 구글 등을 통해 알아보고 혹시라도 잘못 오해할 것을 우려한 것으로, 신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이 저의 암은 그 종류가 아닙니다)

I will be recuperating during the month of August, and expect to return to work in September. While I'm out, I've asked Tim Cook to be responsible for Apple's day to day operations, so we shouldn't miss a beat. I'm sure I'll be calling some of you way too much in August, and I look forward to seeing you in September. (저는 8월에는 요양을 해야할 것 같고, 9월에는 돌아갈 것입니다.  제가 없는 동안 팀 쿡에게 애플의 매일매일의 운영을 맡겼습니다.  그러니, 한 순간도 쉬지 말고 열심히 일해 주세요.  어쩌면 여러분 중에 일부에게는 굉장히 자주 전화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9월에 보기를 기대합니다)

Steve

PS: I'm sending this from my hospital bed using my 17-inch PowerBook and an Airport Express.  (추신: 저는 이 글을 17인치 파워북으로 에어포트 익스프레스 네트워크를 통해 병원 침대에서 보냅니다)



죽음을 마주하고 이를 극복한 이후

스티브 잡스가 걸린 섬세포 종양(islet cell tumor)는 정말 드문 종류입니다.  미국 전체에서 1년에 단 2,500 증례 정도만 보고되고 있는데, 췌장의 신경내분비 세포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느리게 자라며 수술 만으로 완치가 가능합니다.  심지어는 전이가 있는 경우에도 수술을 해서 낫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정상적인 췌장에서 섬세포들은 우리 몸과 관련한 다양한 호르몬 들을 만들어 내는데, 그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들이 혈당을 조절하거나, 위산분비 조절 등과 같은 기능에 영향을 미칩니다.  스티브 잡스는 아마도 췌장암 수술로 가장 많이 하는 위플(Whipple) 수술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췌장의 머리부분과 십이지장을 같이 떼어내고, 소장과 위를 연결하는 수술로 큰 수술이지만, 암의 종류가 나쁘지 않았기에 좋은 예후를 보이는 듯 합니다.

2004년에 수술을 받고, 이미 6년을 넘었기 때문에 재발을 하지 않았다면 거의 완치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우려는 2009년 간 이식을 받으면서 6개월 정도의 공백기를 가졌는데, 이 때 간 이식을 받은 이유가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췌장에서 간으로 전이가 잘 되는 편인데, 간으로 전이된 것이 발견되어 간 이식을 받은 것이 아닐까?하는 추정도 있습니다.  어쨌든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이라는 엄청난 병마와 싸워 이겨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수술 자체가 크고, 수술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은 종류라서 현재도 그의 체중이 옛날처럼 회복되고 있지는 않지만 비교적 건강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과 아이패드와 같은 다른 곳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제품들을 만들어내는 것에는 그의 이런 죽음에 직면했던 경험이 더욱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암을 극복한 2005년,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은 그의 이런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명연설로 유명합니다.  다같이 그의 연설을 한번 들어보실까요?





(후속편에 계속 ...)


P.S. 이 시리즈는 이미 완결되어 출간이 되었으며, 전체 내용을 일괄적으로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광고된 도서를 구입하시면 보다 충실하고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실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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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애플이 디자인의 혁명을 일으킨 기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그 자리에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조너던 아이브(Jonathan Ive)가 있습니다.  오늘의 IT 삼국지는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 최고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세기의 디자이너, 조너던 아이브가 주인공입니다.   


애플의 디자인 심장, 아이맥을 탄생시키다.

조너던 아이브는 1967년생으로 아직도 절정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가 만들어갈 디자인의 혁신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도구와 재질, 그리고 제작 프로세스를 과감하게 시도하면서 혁신적인 디자인들을 내놓았고 성공을 시켜 왔습니다.  1998년의 아이맥이라는 컴퓨터 디자인의 역사적인 제품을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아이북과 파워북 G4, 아이팟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히트작들을 성공시키면서 전세계 산업 디자이너들의 모법이 되고 있습니다.

조너던 아이브는 1967년 런던에서 태어나, 뉴캐슬 폴리테크닉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그 뒤에 탠저린(Tangerine)이라는 회사를 공동으로 설립해서 파워 툴부터 텔레비전에 이르는 다양한 디자인 컨설팅을 하기 시작했는데, 1992년에 그의 고객이었던 애플이 그를 스카웃하게 되면서 애플과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가 애플에서 일을 시작할 때에는 그렇게 큰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양한 제품개발팀에 들어가서 일을 했지만, 뉴톤(Newton)과 같이 성공하지 못한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었고, 기본적으로 애플이 당시에 쇠락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재능을 펼쳐볼 기회를 잘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애플을 재건하기 위해 스티브 잡스가 다시 복귀하면서 부터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조너던 아이브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보고, 애플의 부활을 이끌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였던 아이맥 디자인의 전권을 그에게 맡깁니다.  스티브 잡스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서 얼마나 그가 조너던 아이브를 신뢰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이맥이 전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아이맥을 디자인한 조너던 아이브는 단숨에 전세계 디자이너들을 찬사를 한 몸에 받게 됩니다.




조너던 아이브와 그의 디자이너팀은 언제나 위계질서보다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문화 속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탄생시켰습니다.  조너던 아이브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에 흥미가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물건들이나 여러 종류의 제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동작하는지, 그리고 어떤 재질로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아서 항상 그림으로 그리고, 그린 것을 실제로 만드는 작업을 즐겼습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결국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쉽지 않았던 애플이라는 회사에 대한 적응

조너던 아이브가 애플에 입사하게 된데에는, 또 하나의 전설인 하르트무트 에슬링거의 맥(Mac) 디자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거의 컴맹 수준으로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했는데, 대학을 다닐 때 맥을 발견하고 엄청난 감화를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결국 세기의 디자이너들이 맥을 사이에 두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교감을 나눈 것이지요.  그 장면이 눈에 선하지 않습니까?   그 뒤로 조너던 아이브는 애플에 대해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차에 애플에서 입사하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으니 만사를 제쳐놓고 애플로 들어간 것입니다.


조너던 아이브의 아이맥에 이은 히트작, G4 Cube (2000)


그렇지만, 조너던 아이브의 애플 적응은 그다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원래가 자유로운 디자이너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디자인 컨설팅을 하던 그가 갑자기 심오한 제품기획과 풀타임으로 회사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특히, 기술적으로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자유로운 디자인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나 그가 애플에 입사했을 당시, 애플은 사세가 기울고 있었습니다.  초창기 애플의 정체성과 목표를 잃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난파선과도 같은 신세였지요 ...   

그러다가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면서 상황은 극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애플의 정체성과 핵심가치를 먼저 확립하는 작업을 시작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다른 회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접근방법을 통해 디자인과 혁신을 바탕으로 회사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조너던 아이브의 재능도 빛을 발합니다.


자신의 팀과 파트너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디자이너들이 회사를 자주 옮기는 데에 비해, 조너던 아이브는 상당히 오랜 시간 애플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애플하고만 일을 하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애플의 디자인팀 뿐만 아니라 개발, 마케팅, 영업팀까지도 같은 문제를 풀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는 문화에 의해 자신의 디자인이 탄생하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디자인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애플의 일부로서 자신의 디자인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조너던 아이브는 애플의 디자인 팀이 거의 하늘에서 내린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할 정도로 강한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핵심 디자인팀을 작게 유지하면서 첨단 도구와 프로세스에 많은 투자를 함으로써 협업의 강도를 높이는 전략을 쓰고 있는데, 커다란 스튜디오에 강력한 사운드 시스템으로 디자인 영역을 지원한다고 하니 상당히 독특합니다.  거의 개인 공간을 주지않고, 큰 공간을 공동으로 쓰면서 끊임없이 토론과 회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식으로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2002년형 아이맥


조너던 아이브는 애플의 디자인에 있어서 새로운 재질과 프로세스, 그리고 제품 아키텍처의 혁신이 핵심에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폴리머 기술이 발전하자, 이를 이용한 다양한 기능성을 갖춘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아이맥입니다.  그리고, 프로세스에서 트윈슈팅(Twin shooting) 기법이 나와서 서로 다른 플라스틱을 동시에 사출할 수 있게 되자, 이 기술을 도입해서 만든 디자인이 바로 아이팟(iPod)입니다.  최근에는 레이저를 이용한 접합과 혁신적인 접착제 등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언제나 새로운 재료와 재질, 그리고 프로세스 및 기술의 발달을 끊임없이 도입하고 테스트하면서 탄생한 애플의 디자인은 단순한 미술적 디자인이 아닌 기술과 디자인의 총체적으로 만나 만들어진 결정체인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 이후의 후계 구도를 따질 때, 조너던 아이브(Jonathan Ive)가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것은 바로 이런 그의 카리스마와 창의성 때문입니다.  비록 스티브 잡스와 같은 강렬한 카리스마나 커다란 흐름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이지만, 그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애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애플의 정체성을 확립하였고,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은 가지고 있지 못한 최고의 차별적 존재가 바로 조너던 아이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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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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