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웹 서버 (NeXT) from info.cern.ch



이제 인터넷 역사의 현장은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간다. 유럽에서도 스위스와 프랑스의 접경에 있는 제네바에는 과학의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연구소가 하나 자리를 잡고 있다. 바로 얼마 전 신의 입자로 얼려진 '힉스 입자(Higgs boson)'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했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onseil Européen pour la Recherche Nucléaire, CERN)가 그것이다. 


CERN은 1954년 서부 유럽의 12개 국가가 펀드를 모아서 설립하였다. CERN이라는 이름 자체는 연구소가 설립되기 이전의 위원회를 의미한 것이라서 이제는 맞지 않지만, 이후의 공식명칭을 약자로 했을 때 워낙 읽기가 좋지 않자 당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세계적인 과학자 중의 한 명이 하이젠베르크가 그냥 계속 CERN으로 부르자고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져서 현재는 특별히 의미와 관계없이 CERN으로 표기하고 있다. CERN에서 세계적인 연구가 수행될 수 있었던 것에는 이와 같이 다국적인 과학자들이 모여들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었을 뿐 아니라 엄청난 규모의 실험을 수행할 수 있는 입자가속기가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힉스 입자를 발견하게 만든 입자가속기를 LHC(Large Hadron Collider)라고 부르는데, 빅뱅 당시와 유사한 상황을 재현하기 위해 건설된 이 기기의 크기는 둘레가 무려 27km에 이르는 지하가속기 터널이다.


CERN은 이와 같이 세계적인 물리학자들의 요람으로도 유명하지만,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신화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 이하 웹)이다. 웹은 CERN에서 일하던 물리학자인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1989년에 시작해서 1990년 로버트 까유(Robert Cailliau)가 합류했던 ENQUIRE라는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하였다. ENQUIRE는 앞서 언급한 하이퍼텍스트와 유사한 개념으로 시작되지만, 처음에는 연구자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였다. 첫 번째 웹 사이트는 1991년에 공개되었다. 


팀 버너스-리의 제안서는 하이퍼텍스트의 형태로 인터넷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제는 익숙한 링크를 클릭하고 이로 인해서 새로운 정보를 탐색하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인데, 이는 당시로서는 정말 획기적인 UX였다.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아이폰이 탄생해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터치기반 인터페이스가 탄생한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인터넷이 활성화되고는 있었지만, 물리학자들이 학술정보를 효과적으로 탐색하는 것은 성가시고 까다로운 일이었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팀 버너스-리는 하이퍼텍스트를 적용한 것이었고, 이를 표현하기 위한 언어로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HTML 문법을 디자인하였다. 최초의 웹 서버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이후에 만든 넥스트(NeXT) 컴퓨터가 이용되었는데, 팀 버너스-리와 로버트 까유에 따르면 넥스트 컴퓨터의 하이퍼텍스트를 쉽게 구현할 수 있는 멋진 객체지향 컴퓨팅 환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스티브 잡스 역시 웹의 탄생에 엄청난 기여를 한 셈이다. 팀 버너스-리는 브라우저 편집기를 통해 웹을 정보를 쉽게 공유하고 편집하는 그런 창조적인 공간으로 만들기를 원했다. 처음 만들어진 웹 사이트에는 하이퍼텍스트가 무엇이고, 어떻게 웹 페이지를 만드는지에 대한 기술적인 설명, 그리고 소스코드를 FTP를 통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링크까지 걸려 있었다. 이 웹 사이트는 웹과 관련한 표준을 만들고 운영하는 W3C에 의해 보존이 되고 있는데,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팀 버너스-리가 처음으로 만들어 공개한 세계 최초의 웹 페이지



처음에는 CERN 내부에서 물리학자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연구논문이나 문서를 서로 쉽게 브라우징할 수 있는 용도로 쓰이던 웹 기술을 처음으로 미국에서 사용한 곳은 스탠포드 대학의 SLAC(Stanford Linear Accelerator Center)이었다. SLAC에는 특히 30만 개가 넘는 물리학 관련 문서들을 보관한 데이터베이스가 있었는데, 이는 거의 물리학자들에게는 보물창고와도 같은 역할을 하였다. 스탠포드 대학의 물리학자인 폴 쿤즈(Paul Kunz)는 SLAC의 데이터베이스를 전 세계의 물리학자들에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름의 인스턴트 메시징 데이터베이스 질의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 다음에는 이메일도 활용했는데, 모두들 데이터베이스 질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쓰는데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폴 쿤즈는 1991년 9월 CERN에 방문했다가 팀 버너스-리가 웹을 데모한 것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는데, 이를 이용한다면 전 세계의 물리학자들이 너무나 쉽게 연구논문을 브라우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스탠포드로 돌아오자 C로 만들어진 CERN의 웹 서버 소스코드를 다운로드 받아서 스탠포드 대학의 메인프레임에서 동작하도록 코드를 수정하고 적용해서 1991년 12월에 SLAC의 웹 서버가 가동된다. 1992년 2월 남부 프랑스에서 고에너지 물리학에 대한 워크샵이 열렸는데, 이 워크샵에서 팀 버너스-리가 200여 명의 물리학자들 앞에서 웹에 대해서 발표를 하였다. 그의 강의를 지루하게 듣는 표정이 역력하던 물리학자들은 발표가 끝나기 전 팀 버너스-리가 웹에 대한 데모를 하면서 SLAC 웹 서버에 접속해서 수 많은 논문들을 브라우징하는 것을 보자 모두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보면서 모두가 웹에 열광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최초의 웹의 열광적인 지지자들이 되어 주변으로 전파시켜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인터넷의 역사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혁신으로 일컬어지는 웹 기술 역시 과학자들의 제한없는 공유정신에서 시작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웹의 탄생의 역사에서 언급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웹을 탄생시킨 CERN의 문화이다. CERN에 모인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학문에만 빠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느 누구보다 창조적이고, 열정적이며,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런 문화를 즐기고 널리 퍼뜨릴 줄 알았다. CERN의 환경은 최근 구글 등이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게 음식과 음악, 그리고 놀 수 있는 장소나 이벤트가 계속되는 곳이었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재미있는 시도를 개방된 마음으로 쉽게 받아들인 곳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상징적인 것이 바로 CERN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LHC(Large Hedron Collider)의 약자를 완전히 다르게 풀어서 1990년 결성한 여성 그룹인 또 다른 LHC(Les Horribles Cemettes)의 존재이다. CERN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미셀 드 게나로(Michelle de Gennaro)가 결성을 주도하였는데, 이 그룹은 CERN의 해드로닉 페스티벌(Hadronic Festival)기간 동안 CERN의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충돌자(Collider)"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스타덤에 오른다. 가사의 내용은 고에너지 물리학자의 여자친구로서 외로운 밤을 견뎌내야 하는 아픔(?)을 표현한 것인데, 가사 하나하나가 전문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위트가 있어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이들은 유명세는 국제 물리학회, 세비야에서 열린 1992년 세계 엑스포, 노벨상 수상파티 등과 같은 굵직한 행사에서도 초청공연을 하는 등 하늘을 찔렀고, 주요 언론매체 등에서도 다루면서 이후 장수하는 그룹으로 음악활동을 활발하게 벌였다. 중간중간 멤버의 교체가 있었지만, 이들은 2012년 7월 12일 이들을 탄생시킨 스위스 CERN에서의 해드로닉 페스티벌에서 마지막 공연을 하면서 22년이라는 오랜 활동의 막을 내렸다. 아래 유튜브 영상은 이들의 대표곡 "충돌자(Collider)"의 뮤직비디오이다. 






이처럼 제일 고리타분할 것 같았던 물리학자들의 요람이었던 CERN은 창의적인 발상과 자유, 그리고 서로 나누는 그런 철학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1993년 4월 30일, CERN은 이들의 철학에 맞는 멋진 결정을 또 다시 내리게 되는데, 어찌보면 인터넷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었던 웹 기술을 누구나 쓸 수 있도록 권리를 자유롭게 풀어줌으로써 인터넷은 또 한 번의 커다란 전환기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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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의 등장에 일조한 팀 버너스-리의 NeXTcube 사진 (from Wikipedia)


지난 번 포스팅에서 NeXT 를 다루면서 살짝 언급이 되었습니다만, 이번에는 구글의 영지로 가장 중요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영토의 개척과 관련한 역사를 이야기할까 합니다.


인터넷, 그리고 웹의 시작

1969년 9월 2일, UCLA의 Leonard Kleinrock 교수의 실험실에서는, 몇명의 컴퓨터 과학자 그룹이 몇 비트의 데이터를 한 컴퓨터에서 다른 컴퓨터로 회색의 케이블을 통해 전달하는 실험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데이터가 넘어간다는 것이 확인이 되었는데, 이 실험이 오늘날 전세계를 지배(?)한다고 까지 말할 수 있는 인터넷의 첫번째 태동이 되었습니다.  Kleinrock과 그의 동료들은 이 연구를 바탕으로 정부의 차세대 네트워크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이것이 바로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Network (ARPANET) 입니다.  

일부에서는 인터넷 탄생일을 1969년 10월 29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10월 29일은 Kleinrock이 첫 번째 메시지를 UCLA와 스탠포드를 연결하는 2개의 노드 사이에서 전송하는데 성공한 날입니다.  그 메시지는 "LO." 이었는데, "LOGIN"을 전송하려고 하다가 Kleinrock이 "LO."까지 입력하니 시스템이 다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즉, 9월 2일은 최초의 데이터 비트들이 실험실 내의 컴퓨터들 사이에서, 10월 29일은 외부를 연결하는 컴퓨터 사이에 문자가 전송된 첫번째 날입니다.

그로부터 40년간, 인터넷은 미국의 군용 네트워크에서 전세계를 연결하는 기간 백본으로 성장했습니다.  1970년 대에는 e-mail과 TCP/IP 통신 프로토콜이 정립되었고, 이를 통해 정형화된 인터넷의 주소체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1980년대에는 숫자로 되어있던 주소체계에 이름이 붙으면서 오늘날 누구나 알고 있는 ".com", ".org" 등이 주소의 이름으로 널리 이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인터넷이 실제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사랑받기 시작한 것은 웹이 등장하면서 부터입니다.  영국의 물리학자였던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HTML 언어와 웹을 만들어 내면서, 인터넷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전세계와 우리의 일상생활을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HTML 과 웹 서버를 처음 만들어낸 것이 1989년으로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최초의 웹 서버가 돌아가는 컴퓨터로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NeXT 컴퓨터의 2세대 제품인 NeXTcube 가 이용되었습니다.  

CERN 에서 주로 과학을 중심으로 한 웹 환경을 구축하던 팀 버너스리는 1994년 MIT에 오늘날 웹 표준을 끌고 나가고 있는 World Wide Web Consortium (W3C) 을 설립하고 웹과 관련한 다양한 표준과 권고안 등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인터넷이 품고있는 자유와 비특허, 비로열티 정책은 W3C 의 개방철학에 그 뿌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팀 버너스리의 업적은 앞으로도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마크 앤드리슨과 모자이크의 등장

넷스케이프의 창업자로도 유명한 마크 앤드리슨은 무척 젊은 나이에 세상을 놀라게 했기에 굉장히 오래된 인물로 생각되지만, 1971년 생으로 필자보다도 나이가 어립니다.  그가 일리노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NCSA(National Center for Supercomputing Applications, 미국국립 슈퍼컴퓨터 활용센터)에서 또 하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마크 앤드리슨은 대형컴퓨터가 아니라 일반인들의 컴퓨터에도 설치할 수 있고,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특히, 웹의 가능성을 보고 웹에 있는 다양한 과학정보를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해서 볼 수 있도록 브라우저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NCSA에서 일하던 뛰어난 프로그래머인 에릭 비나(Eric Bina)와 함께 유닉스(Unix)를 기반으로 하는 웹 브라우저를 개발합니다.  이들은 3개월 정도의 작업을 통해 1993년 오늘날 웹 브라우저 역사에 길이 남는 범용 브라우저인 모자이크(Mosaic)를 완성시킵니다.  마우스 만으로 인터넷을 브라우징할 수 있는 클릭앤포인트(Click and Point) 방식을 처음으로 구현한 모자이크는 인터넷이 진정한 정보의 바다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성공합니다.  이들의 성취를 보고 NCSA 에서는 몇 명의 인원을 더 보강해서 PC와 매킨토시를 지원하는 모자이크도 같은 해 11월 발표하게 되는데, 2달 동안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브라우저를 다운로드 받아서 이용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인터넷 웹 시대를 화려하게 여는 장본인이 됩니다.  


이렇게 대단한 업적을 남겼지만, 그가 아르바이트 대학생이었던 탓이었는지 NCSA 에서는 에릭 비나를 포함한 정규 모자이크 개발팀을 중심으로 관리를 하려고 하였고, 마크 앤드리슨을 홀대하였습니다.  그러자, 마크 앤드리슨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NCSA 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실리콘 밸리로 이사를 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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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각으로 오늘(9월 2일, 한국시간은 9월 3일)이 인터넷이 탄생한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라고 합니다.  LA 타임즈에 좋은 기사가 났길래, 뒤도 한번 돌아볼 겸, 위키피디아 자료도 좀 참고해서 인터넷 탄생의 뒷 이야기들을 좀 해볼까 합니다.


인터넷 생일은 1969년 9월 2일? 아니면 1969년 10월 29일?

1969년 9월 2일, UCLA의 Leonard Kleinrock 교수의 실험실에서는, 몇명의 컴퓨터 과학자 그룹이 몇 비트의 데이터를 한 컴퓨터에서 다른 컴퓨터로 회색의 케이블을 통해 전달하는 실험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데이터가 넘어간다는 것이 확인이 되었는데, 이 실험이 오늘날 전세계를 지배(?)한다고 까지 말할 수 있는 인터넷의 첫번째 태동이 되었습니다.  Kleinrock과 그의 동료들은 이 연구를 바탕으로 정부의 차세대 네트워크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이것이 바로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Network (ARPANET) 입니다.  

일부에서는 인터넷 탄생일을 1969년 10월 29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10월 29일은 Kleinrock이 첫 번째 메시지를 UCLA와 스탠포드를 연결하는 2개의 노드 사이에서 전송하는데 성공한 날입니다.  그 메시지는 "LO." 이었는데, "LOGIN"을 전송하려고 하다가 Kleinrock이 "LO."까지 입력하니 시스템이 다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즉, 9월 2일은 최초의 데이터 비트들이 실험실 내의 컴퓨터들 사이에서, 10월 29일은 외부를 연결하는 컴퓨터 사이에 문자가 전송된 첫번째 날입니다.


이메일과 TCP/IP 그리고 WWW 로 진화하는 인터넷

그로부터 40년간, 인터넷은 미국의 군용 네트워크에서 전세계를 연결하는 기간 백본으로 성장했습니다.  1970년 대에는 e-mail과 TCP/IP 통신 프로토콜이 정립되었고, 이를 통해 정형화된 인터넷의 주소체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1980년대에는 숫자로 되어있던 주소체계에 이름이 붙으면서 오늘날 누구나 알고 있는 ".com", ".org" 등이 주소의 이름으로 널리 이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인터넷이 실제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사랑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서 입니다.  영국의 물리학자였던 Tim Berners-Lee가 HTML 언어와 웹을 만들어 내면서, 인터넷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전세계와 우리의 일상생활을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에 접속을 하기 위한 전화선을 제공했던 많은 서비스 업체들이 호황을 누렸던 시대도 1990년대 입니다.

이때부터 인터넷은 황금기를 구가하기 시작합니다.  규제가 없고, 상업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 세상이라는 다소이상향적인 가상세계가 사람들한테 펼쳐졌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자유를 만끽하며 새로운 철학과 미래 그리고 혁신을 논하였습니다.  단적인 예로, Tim Berners-Lee가 유럽의 물리학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었음에도 그는 자신이 개발한 웹을 1990년에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인터넷에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개방적 접근을 통해 셀 수 없는 수많은 서비스들이 꽃을 피웠고, 짧은 시간의 혁신을 통해 전세계 사람들이 현재 얻고 있는 이득은 돈으로 계산하기 힘든 정도의 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인터넷은 성장통을 겪고 있다.

이와 같이 인터넷은 최근까지 지칠줄 모르는 성장을 거듭했고, 앞으로도 그 성장의 속도는 늦춰지지 않을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 인터넷은 성장통으로 여기저기 아픈 곳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스팸과 해킹, 그리고 바이러스 등의 출몰은 자유정신으로 충만했던 인터넷에 강력한 보안과 방화벽과 같은 개념을 도입하게 만들었고, 순식간에 공격과 수비가 이루어지는 사이버 전쟁터도 같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를 빌미로 일부 국가(우리나라 포함)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핑계로 인터넷을 국가의 사이버 공권력을 이용해서 막거나 검열을 하는 등의 일들이 시작되고 있고, 최초의 인터넷 혁명의 정신은 많이 퇴색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어제, 오늘 우리나라에서는 트위터와 인터넷 상의 댓글 모니터링 등과 같은 인터넷 정신과 역행하는 수많은 정책들이 시행준비를 하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와 더욱 마음이 어둡습니다.

또한, 업계에서도 비슷한 뉴스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최근 애플이 아이폰의 앱스토어를 운영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구글의 혁신적인 앱의 등록을 거부한 사건으로, 그 동안 애플의 서슬퍼런 검열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못하던 많은 개발자들이 서서히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애플이 과거 PC 시장에서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차피 개방적인 정책을 펼치는 쪽에서 대안을 내놓기 시작하면, 폐쇄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곳은 이길 수 없습니다.  안드로이드가 시장을 확대하고, 그 자유로움의 특징으로 혁신을 시작한다면, 현재의 아이폰이 가지고 있는 위상은 생각보다 금방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통신, IT 산업도 똑같습니다.  말로만 신성장동력을 찾지 말고, 진정한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개방된 환경 속에서 혁신이 나오고, 당장의 수익을 포기할 때 미래를 선점할 수 있습니다.  국내시장만 보지 말고, 우리나라의 우수한 인력들이 마음대로 혁신을 일으키고,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십시오.  

인터넷 40주년을 맞아서 쓰는 간절한 소망의 글입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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