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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컴퓨터 하드웨어가 가장 커다란 주목을 받았지만, 누가 뭐래도 컴퓨터를 우리 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잡게 만든 것은 소프트웨어 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무실 환경에서 반드시 필요한 워드프로세서와 스프레드시트, 그리고 데이터베이스 관련 소프트웨어가 사실 상 주류 컴퓨터와 운영체제 환경의 승부를 갈랐다고 말할 수 있을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과거 삼국지 관련 포스트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애플 II 를 그렇게 빅 히트작품으로 만든 킬러 소프트웨어는 다름아닌 비지캘크(VisiCalc)라는 스프레드시트 였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 시장을 마이크로소프트가 완전히 장악하면서 오피스 제품군이 세상을 지배하였고, 여기에 구글이 구글독스를 앞세워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형국이지만, IBM-PC 와 MS-DOS 의 초창기 시절만 하더라도 이러한 오피스 제품 시장을 둘러싼 치열한 전쟁이 있었습니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성공배경에는 엑셀(Excel)과 워드(Word)라는 강력한 오피스 제품의 뒷받침이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제는 만들었지만, 다른 응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는 그렇게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늘과 다음 편은 이제는 경쟁에서 밀려나 명맥만 유지하거나 없어진 소프트웨어이지만, DOS 시절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러 오피스 애플리케이션 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로터스 1-2-3, 비지캘크를 꺾고 스프레드 시트 시장을 장악하다

IBM-PC 가 MS-DOS 와 함께 위세를 떨치던 시절 단연 최고의 킬러 소프트웨어는 비지캘크(VisiCalc) 개발자의 친구로 로터스(Lotus Development Corporation) 사를 설립한 Mitchell Kapor 의 작품이었던 1-2-3 였습니다.  1-2-3 는 1983년 1월 26일 출시가 되었는데, x86 어셈블리 언어로 작성이 되었고, 비디오 디스플레이 하드웨어의 기능을 직접 제어하면서 경쟁자였던 비지캘크에 비해 월등히 빠른 실행속도를 보여주면서 시장을 장악합니다.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IBM의 오리지널 PC 와 동일한 하드웨어 환경이 아니면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소프트웨어는 IBM-PC의 호환기종을 테스트할 때 1-2-3 를 돌려보면 진정한 호환기종인지 알 수 있다는 시금석으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1-2-3 와 함께 이런 용도로 이용되던 소프트웨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Flight Simulator) 였으니, 얼마나 하드웨어 최적화가 많이 되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스프레드 시트의 특성 상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지도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DOS 는 640KB 라는 메모리 용량의 한계가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연장(extended) 또는 확장(expanded) 메모리라는 기술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이 점에서도 1-2-3 는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소프트웨어로 꼽히던 비지캘크를 성능으로 꺾고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 시장의 우위를 차지한 1-2-3 에게도 강력한 라이벌이 나타납니다.  기술력으로 무장한 소프트웨어 회사인 볼랜드(Borland)의 쿼트로 프로(Quattro Pro)가 그것으로 볼랜드는 호환성모드(compatibility mode)라는 이름으로 로터스 1-2-3 를 거의 완전히 흉내낸 메뉴를 제공하였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로터스 1-2-3 의 키보드 매크로(macro)를 실행할 수 있는 기능도 제공하였는데, 여기에 빠른 실행속도를 무기로 로터스 1-2-3 의 강력한 라이벌로 성장하게 됩니다.  


볼랜드와의 치열한 법정소송

볼랜드의 쿼트로 프로가 턱밑까지 쫓아오자, 로터스사는 볼랜드를 상대로 지적재산권 침해소송을 제기합니다.이 소송은 메뉴 구조의 도용에 대한 첫번 째 소송사례가 되었기 때문에 이후의 지적재산권에도 커다란 이정표가 되는 소송이었습니다.  소송이 제기되자, 볼랜드는 로터스 기반의 메뉴 시스템을 일단 제거하고, 매크로에 대한 지원부분만 남겨두지만 여기에도 로터스가 소송을 걸자 볼랜드는 정면대응을 선택하고 미국 소프트웨어 역사상 가장 명승부라고 일컬어지는 소송전이 펼쳐집니다.

처음 지방법원에서는 로터스가 승리하게 되지만, 그 상위법원에서는 반대로 볼랜드가 승리합니다.  결국 마지막 판결은 미국 대법원에까지 올라가게 되는데, 대법원에서도 4-4 동점이 나오는 극적인 상황이 전개됩니다.  그러나 이 때에는 이미 볼랜드가 쿼트로 프로를 노벨(Novell)에 매각을 한 뒤였고, 로터스 역시 쿼트로 프로가 문제가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엑셀(Excel)과의 경쟁이 힘겨웠던 시기라 이들은 다툼은 헛품 팔기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이 판결이 이후 소프트웨어와 관련한 지적재산권 침해와 관련한 재판에 커다란 영향을 행사합니다.  이 재판을 통해 소프트웨어의 구현부분(코드)은 지적재산권의 대상이 되지만, 공용 인터페이스는 상황에 따라 인정될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는 선례를 남깁니다.  예를 들어, 아이콘의 모양 등은 지적재산권 침해에 관련이 되지만, 운용방식이나 기전(메커니즘)과 같이 사용자의 상호작용의 행태와 관련한 것은 지적재산권이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한 소프트웨어인 1-2-3 는 이후 마이크로소프트가 발표한 윈도우에 최적화된 엑셀(Excel)이라는 강력한 도전자에 밀려 결국 사라져 갑니다.  DOS 시절 직접 하드웨어에 접근해서 강력한 성능을 보여주었던 1-2-3 의 강점은 표준 인터페이스와 운영체제의 지배력이 강화된 윈도우 시대에는 되려 성능향상의 걸림돌로 작용하며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로터스는 IBM 에 매각되어 소프트웨어 브랜드로 남게 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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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애플의 대성공은 길게 보면, 초창기 PC 시장을 주도하면서 전세계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애플 II의 역할이 지대합니다.  애플 II의 성공에는 물론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이라는 천재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실제로 PC라는 것의 대성공을 이끈 숨은 장본인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댄 브리클린(Dan Bricklin)입니다.

댄 브리클린과 밥 프랭크스톤(Bob Frankston)이 공동 개발한 비지캘크(VisiCalc)는 컴퓨터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소프트웨어 입니다.  이 소프트웨어 하나로 애플 II는 단순한 가정용 컴퓨터 기기를 너머서 기업에서도 꼭 필요한 컴퓨터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하버드 대학 교수의 실수를 보고 시작된 아이디어

1978년 하버드 MBA 과정에 있던 댄 브리클린은 전통적인 종이 스프레드 쉬트를 이용하여 교수가 강의를 할 때, 교수가 하나의 셀에서 실수를 한 것을 발견했는데 이를 고치기 위해서 모든 셀의 값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서 이를 컴퓨터를 이용한다면 훨씬 생산적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뭐든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실행력이 있어야 하는 법 ...  브리클린은 베테랑 프로그래머인 밥 프랭스턴을 고용합니다.  당시 컴퓨터가 없었던 주변에서 PC를 수소문하는데, 간신히 구할 수 있었던 컴퓨터가 바로 애플 II 였습니다.  애플 II에는 당시 정수베이직(Integer Basic)이 구현되어 있었는데, 밥 프랭스턴은 이 언어를 이용해서 데모 프로그램을 구현합니다.

브리클린에게 애플 II를 빌려준 사람은 Personal Software사의 댄 필스트라(Dan Fylstra) 였습니다.  그 역시 애플 II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그 컴퓨터가 좋아서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에게 자사의 체스 프로그램을 애플 II 용으로 포팅하겠다고 하고 매우 싸게 애플 II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애플 II용으로 개발된 것에는 이렇게 대단한 행운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댄 필스트라는 브리클린과 밥 프랭스턴이 구현한 데모를 보고 즉시 제품개발 계약을 맺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회사가 바로 비지캘크를 발표한 Software Arts 입니다.


소프트웨어 역사의 한획을 긋다.

비지캘크는 소프트웨어 역사에 "최초"라는 수식어를 많이 기록한 제품입니다.  역사상 최초의 "킬러 애플리케이션(Killer Application)"이자 최초의 스프레드 쉬트입니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비지캘크가 정형화한 스프레드 쉬트의 형태는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애플 II는 하드웨어 사양에 있어, 폭으로 글자를 40자(40 컬럼)만 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좌우폭의 한계 때문에, 비지캘크를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애플에서는 이를 80컬럼으로 늘리는 주변장치 카드를 판매하였는데 이 카드의 판매량도 비지캘크로 인해 엄청나게 증가하였습니다. 

비지캘크는 1979년 11월부터 판매에 들어갔는데, 100 달러라는 비교적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판매고를 올립니다.  소프트웨어의 판매가 급성장하자, 애플 II도 번들 전략을 이용해서 같이 성장하였습니다.  수십 만대의 애플 II 컴퓨터들이 단지 비지캘크를 사용하기 위해서 팔리게 됩니다. 


최초의 성공자, 그러나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하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댄 브리클린은 아담 오즈본(Adam Osborne)에게서 White Elephant 상을 수상받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비지캘크의 성공신화는  IBM PC의 등장과 함께 로터스의 1-2-3가 나오면서 저물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더해 동업자였던 Personal Software에서 1983년 법적 분쟁까지 겪으면서 로터스에게 비지캘크를 판매할 수 없게 되었으며, 결국 비지캘크라는 소프트웨어는 그 생명을 다하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소프트웨어 특허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결국 Software Arts는 로터스에 매각이 되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비지캘크는 사무혁명을 일으킨 소프트웨어이자, 기업의 OA(Office Automation)를 일으키는 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컴퓨터를 일종의 기계로 바라보던 관점을 완전히 변화시킨 것도 비지캘크의 공입니다.  애플 II는 당시 난립하고 있던 가정용 PC 시장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쥐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바라본다면, 애플도 대단히 운이 좋다고 하겠습니다.  댄 브리클린이 비지캘크를 개발할 때, 애플 II 컴퓨터가 아닌 TRS-80이나 코머도어같은 당시 애플 II와 경쟁하던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다면 PC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을 테니까요 ...

그럼에도 현재 이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셀이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의 판도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시장을 지배하고 있더라도, 그리고 현재 잘 나가고 있더라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미래를 미리 내다보고, 변화에 대한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매일같이 혁신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래는 긴 성공을 약속하지 않는 법입니다.


참고자료:

위키피디아 - VisiCalc
The First Spreadsheet - VisiCalc - Dan Bricklin and Bob Frankston By Mary Bel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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