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h MacFarlane'에 해당하는 글 1건


from BoingBoing.com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드디어 부활했다. 개인적으로 1980년에 이 TV시리즈가 방영할 때 과학에 푹 빠져들었으니, 34년 만에 느끼는 감동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첫 화를 밤 늦게 본방사수를 했고, 역시나 큰 아이가 옛날 시리즈까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칼 세이건은 필자에게 롤 모델이 된 사람이다. 그가 있기 전에, 누구도 TV에서 우주를 그렇게 멋지게 설명한 사람이 없었다. 단순히 설명만 잘한 것이 아니라, 연출과 외모, 그리고 목소리까지 멀티미디어 매체인 TV를 완벽하게 이해를 하고 녹아든 당시로서는 최고의 마스터피스가 코스모스였다. 

칼 세이건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코넬대학의 천문학 교수였고, 많은 책을 쓴 저자였으며, 나사의 로봇 미션을 수행한 뛰어난 과학자였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그를 우리에게 각인시킨 것은 바로 TV카메라 앞에서의 존재감이다. 그는 코스모스를 진행하면서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메시지와 감동을 선사했고, 그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다시 부활한 코스모스 역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엄청난 감동을 받았던 꼬마였던 세스 맥팔레인(Seth MacFarlane)의 노력으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새로운 시리즈의 진행을 맡은 닐 타이슨(Neil Tyson)도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에서 일하는 천문학자로 역시 칼 세이건과의 만남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결국 마치 박세리를 동경했던 세리 키드들이 LPGA를 점령하기 시작한 것처럼, 그의 영향을 받았던 아이들이 코스모스를 부활시킨 것이다.

칼 세이건은 과학자로서도 유명하지만 외계문명과의 접촉에 대해서도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1997년의 영화 콘택트(Contact)는 칼 세이건의 동명의 소설에 기반을 둔 영화였다. 그러고 보니, 그는 SF소설 작가이기도 하였다. 비록 콘택트 한 권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그 밖에도 이 블로그를 통해서도 소개한 바 있는 기인이면서도 해커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와의 인연도 유명하다. 이 둘의 인연에 대해 최근 스미소니언(Smithonian) 잡지 온라인 판에 자세한 이야기가 소개되기도 하였다.



연관글:

2013/01/24 -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4) - 대항문화의 탄생과 LSD



칼 세이건과 캘리포니아 바카빌(Vacaville) 교도소의 의무시설에 있었던 티모시 리어리는 1974년 2월과 3월에 편지를 주고 받았고, 이 편지들의 내용은 티모시 리어리의 아카이브에 공개되었다. 이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서로에게 열정적이었다. 이들은 아이디어가 풍부했고, 동시에 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바깥으로 표출하고, 소통하는 데에도 천재적이었다. 티모시 리어리는 사이키델릭(psychedelic) 이벤트와 멀티미디어 강의투어를 통해서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만들었고,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 TV시리즈와 나사 프로젝트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쳤다. 티모시 리어리가 주로 인간의 내면의 우주와 뇌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면, 칼 세이건은 인간 외부의 코스모스에 대한 글과 미디어 활동을 하였다. 


이후 칼 세이건은 은하계의 지적생명체를 만날 확률을 계산한 드레이크 방정식(Drake Equation)으로도 유명한 프랭크 드레이크와 함께 티모시 리어리가 수감되었던 교도소를 직접 방문하였다. 티모시 리어리는 우주를 항해하는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교도소를 방문한 칼 세이건과 프랭크 드레이크에게 하면서 어떤 별에 가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하였는데, 칼 세이건과 프랭크 드레이크는 티모시 리어리에게 우리에게는 기술이 없고, 별들은 너무 멀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티모시 리어리가 아니었다. 티모시 리어리는 이후 칼 세이건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었다.


우리에게는 핵융합 추진장치와 수명을 늘리는 약, 그리고 외부로 정신을 확대하고 신경정치적 영감(neuropolitical inspiration)이 필요합니다. 저는 당신의 결론에 감명을 받지 않았어요. 저는 당신의 신경회로가 막혀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대 최고의 유명한 과학자에 대해 어쩌면 상당히 모욕적으로도 느낄 수 있는 언사가 아닌가? 그렇지만, 그의 편지의 영향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칼 세이건과 프랭크 드레이크는 이후 외계생명체와의 소통을 위한 작업을 하는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를 설립한다. SETI의 활동을 통해 외계생명체와의 만남을 그린 소설이 바로 콘택트다. 


티모시 리어리 역시 이들과의 만남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였는데, 1973년 코후텍 혜성(Comet Kohoutek)의 접근을 소재로 한 테라 II(Terra II)라는 책을 웨인 베너(Wayne Benner)와 함께 교도소에서 집필하기도 하였다. 그는 인류가 죽어가는 행성인 지구를 탈출하고 우주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300명의 이야기를 그려냈는데, 교도소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 투영되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코스모스의 새로운 시리즈에 대한 집필과 제작을 주도한 앤 드루얀(Ann Druyan)은 서로를 “소울메이트”라고 부르며, 연구도 저술도 함께 했던 동료이자 부부였다. 이들 부부의 이야기도 마치 영화와도 같은데, 한 파티에서 칼 세이건 부부와 약혼자와 처음 만난 앤 드루얀은 2년 가까이 커플끼리 우정을 쌓다가 칼 세이건의 제안으로 NASA의 보이저호 프로젝트에 참가하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앤 드루얀이 맡은 일은 외계에 존재하는 생명체에게 보낼 금제 음반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음반에는 115개의 그림과 파도, 바람, 천둥, 새와 고래의 노래와 같은 자연적인 소리, 서로 다른 문화와 시대의 음악, 55개의 언어로 된 인삿말 등이 담겼다. 그러다가, 결국 결혼을 하였고, 칼 세이건의 사후에도 그의 작업을 이어받아서 영화 콘택트도 완성시키고 2014년 새로운 코스모스도 제작하게 된 것이다.


1980년의 코스모스의 첫 장면은 칼 세이건이 캘리포니아 바닷가에 앉아서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주는 모든 현재이고, 과거이자, 미래입니다 (The cosmos is all that is or ever was or ever will be.)


마땅한 번역조차 어려운 멋진 말이 아닌가? 그러면서 그는 상상의 배(ship of imagination)에 올라타고 우주를 여행하면서 동시에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으로 시간여행을 한다. 코스모스는 단순히 우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달과 혜성, 천문학과 과학, 그리고 각종 미신들과 인간의 뇌, 외계생명체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면서 접근한다. 단순한 과학적인 사실들을 나열하는 다큐멘터리였다면 코스모스가 그렇게까지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점이 필자가 칼 세이건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는 최고의 과학자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최고의 SF소설가도 아니었으며, 미디어 전문가도, 예술가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는 과학과 상상력, 이야기와 미디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코스모스라는 마스터피스를 만들어 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최고의 융합 아티스트였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WRITTEN BY
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받은 트랙백이 없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