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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애틀로 옮긴 이후에 여러 8비트 컴퓨터 회사들의 BASIC 인터프리터를 구현하면서 점차 몸집이 커져갑니다.  그렇지만 엔지니어 위주의 회사가 몸집이 커지다보니 회사의 회계와 기본적인 관리를 포함한 경영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개발자 임금협상과 관련한 문제로 미국 노동중재위원회에 빌 게이츠가 불려가는 일까지 있으면서 전문경영인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 때 빌 게이츠가 선택한 인물이 바로 현재의 마이크로소프트 CEO로 있는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입니다.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보다 한살 어린 1956년 생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스티브 발머는 공부도 잘했지만, 하버드 대학의 미식축구 팀도 관리하고, 하버드 대학 학교신문인 하버드 크림슨(Harvard Crimson)에서도 일을 하는 등 매우 활발한 학교활동을 하였습니다.  빌 게이츠와는 기숙사에서 가까운 위치에 방을 얻어서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많은 접촉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하게 됩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스티브 발머는 2년간 세계적인 소매업체인 프록터앤갬블(Procter and Gamble, P&G)에서 일을 했는데, 그 당시 같은 사무실을 쓰던 제프리 이멜트(Jeffrey R. Immelt)는 훗날 GE(General Electric)의 CEO가 됩니다.  작은 사무실의 신입 동료들이 훗날 세계 최대의 회사의 CEO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P&G에서 나와 스탠포드 대학에서 MBA 과정을 이수하던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의 낙점을 받고 결국 스탠포드  MBA를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작은 회사에 자신의 미래를 거는 결정을 내립니다.

그를 합류시키기 위해 빌 게이츠는 정말 대단한 정성을 들였다고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빌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를 시애틀 친가에 초대를 해서 부모님들과 소개도 하고, 그를 위한 성대한 만찬을 열었습니다.  또한, 시애틀 관광도 같이하면서 하루종일 설득을 하였는데 빌 게이츠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에 홀딱 빠져들게 됩니다.  1980년 6월 11일, 스티브 발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24번째 직원이 되면서 개발자 위주의 조직인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관리를 전담합니다.  스티브 발머는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데 주식소유를 중시하였습니다.  자신도 입사를 하면서 1981년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의 8%를 소유하였고, 이후 스톡옵션을 고안해서 많은 직원들에게 회사에 헌신하고 동시에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심어주는데 그 결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식공개를 하면서 만 명이 넘는 직원들이 백만장자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BASIC 전도사, 엄청난 기회를 잡다.

빌 게이츠가 설립한 마이크로소프트는 Altair 8800 에서의 BASIC 언어 인터프리터를 구현한 것을 시작으로, 애플 II 의 애플소프트(Apple + Microsoft) BASIC 을 포함하여 당시 수많은 8비트 컴퓨터의 BASIC 을 구현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게 됩니다.   BASIC 언어는 익히기도 쉬워서 1970년대 후반 미국 정부에서는 컴퓨터 교육과정을 BASIC 을 중심으로 짜게 됩니다.  국내에서도 처음 8비트 컴퓨터 붐이 일었던 1980년대 초반 대부분의 컴퓨터 교육이 BASIC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거의 모든 컴퓨터에 우수한 BASIC 언어를 탑재해야하는 동력으로 작동하게 되고,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분야에서 최고의 회사로 인정받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의 비즈니스 환경은 결코 소프트웨어 회사들에게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돈은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컴퓨터 회사들이 많이 벌었고, 그렇게 많은 컴퓨터에 BASIC 언어를 구현했지만 1981년 MS-DOS 를 탄생시키기 전까지 마이크로소프트가 벌어들인 돈은 모두 합해서 500만 달러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비록 애플 II 가 가장 대표적인 컴퓨터로 이름을 날리고, 다양한 클론 제품군들이 나오면서 전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당시의 컴퓨터 환경은 글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습니다.  이 시기에 IBM이 1년간의 TFT를 통해 당시 호환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개방형 아키텍처와 호환기종이 쉽게 생겨날 수 있도록 한 정책, 그리고 범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 컨셉을 들고 나오면서 판세는 급격히 IBM으로 기울기 시작합니다.  IBM이 PC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많은 조언을 얻은 사람 중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있었습니다.  특히 CPU를 선정할 때에 인텔 8088 또는 8086 16비트 프로세서를 추천한 것도 빌 게이츠 였는데, 당시 가장 많이 이용되던 모토롤라 등의 CPU를 생각하던 IBM의 직원들을 논리정연한 설명으로 인텔 CPU를 채택해야하는 당위성을 설득시키면서 IBM의 PC 제작팀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드웨어의 구색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자, IBM은 운영체제를 놓고 오랫동안 고민을 하였습니다.  이 때에도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이 바로 빌 게이츠입니다.  빌 게이츠는 CP/M을 만든 게리 킬달이라면 새로운 인텔의 16비트 CPU에 최적화된 운영체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게리 킬달의 디지털 리서치를 소개합니다.  당시 게리 킬달의 CP/M 은 당대 최고의 운영체제로 애플 II 를 제외한 컴퓨터에서 거의 독보적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게리 킬달은 특히 비행기 광이어서 개인용 비행기를 사서 미국 전역을 날아다니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런 성격이 결국 거대한 기회를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주게 됩니다.  IBM과의 미팅약속을 해놓고도 게리 킬달은 자신의 비행기를 몰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고, IBM을 맞은 사람은 그의 아내인 도로시였습니다.  이 때부터 IBM의 감정은 상할데로 상한 상태였지만, CP/M이 워낙 마음에 들었기에 IBM은 디지털 리서치와 의견조율을 통해 CP/M을 IBM-PC에 맞게 개발하도록 대략적인 합의를 합니다.  그런데, 정작 계약은 엉뚱한데서 깨지게 됩니다.  IBM은 자신들의 PC 프로젝트의 기밀유지가 중요했기에 해당 프로젝트와 관련한 비밀준수게약을 디지털 리서치에 요구하는데, 디지털 리서치는 이런 요구가 자신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하고 계약 전체를 거부합니다.

IBM은 이 대목에서 디지털 리서치와 더 이상의 줄다리기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 게이츠를 불러서 혹시 운영체제를 개발해줄 수 없냐는 의사타진을 합니다.  당시의 빌 게이츠는 BASIC 인터프리터는 많이 개발했지만 정작 운영체제를 개발한 경험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면 대단한 모험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을 바꿀 기회가 왔다는 것을 직감한 빌 게이츠는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Seattle Computer Product, SCP)라는 회사가 CP/M을 기반으로 만든 86-DOS 라는 운영체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대담하게 이 제안을 받아 들입니다.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 빌 게이츠에게 넘어가다.

86-DOS는 인텔의 8086 16비트 CPU에 동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CP/M 기반의 운영체제입니다.  SCP는 자신들의 컴퓨터를 디자인하면서 디지털 리서치의 CP/M을 인텔 8086에 맞게 개발된 것이 있다면 채용을 하려고 했지만, 디지털 리서치는 계획만 발표하고 실제로 동작하는 운영체제의 출시를 차일피일 늦추고 있었습니다.  이에 SCP는 24세의 젊은 컴퓨터 천재인 팀 패터슨(Tim Paterson)을 고용하여 16비트 CP/M 운영체제를 개발하라고 합니다.

팀 패터슨은 오래된 CP/M 프로그램과 호환이 되는 API를 가지고 86-DOS를 디자인합니다.  동시에 CP/M을 쓰면서 불편했던 점들 개선하는 방향으로 운영체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CP/M의 파일 시스템 대신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텔 8086 CPU 용으로 개발한 BASIC-86이 가지고 있었던 FAT 파일 시스템을 채용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BASIC과의 호환성을 극대화 하였습니다.

IBM으로부터 일단 전권을 위임받은 빌 게이츠는 SCP와 협상을 통해 1980년 12월 $25,000 달러라는 헐값에 86-DOS에 대한 라이센스를 획득합니다.  1981년 5월 마이크로소프트는 팀 패터슨을 스카웃해서 IBM-PC가 채택한 8088 CPU에서 동작하는 운영체제를 개발하도록 하였습니다.  1981년 7월, IBM-PC가 출시되기 한달 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SCP로부터 86-DOS와 관련한 모든 권리를 $50,000 달러에 사들입니다.  이 때의 계약은 후일 SCP와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디지털 리서치 사이의 법정분쟁에서도 문제가 되는데, 마이크로소프트가 SCP 측과 계약을 할 당시 IBM과 진행하던 프로젝트 내용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IBM이라는 거대한 기업의 운영체제로 사용될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SCP의 사장은 너무나 싼 가격에 모든 권리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겨주게 된 것입니다.  법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의 계약관계를 SCP 측에 알릴 의무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을 숨기고 시장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계약을 한 것에 대한 도의적인 불만은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이 사건은 결국 마이크로소프트가 SCP 측에 100만 달러를 더 주는 수준에서 중재가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86-DOS를 IBM에게 라이센스를 주는 계약을 맺는데,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PC-DOS 1.0 입니다.  여기에 더해 마이크로소프트는 독점사용권과 일시불 계약을 원하던 IBM을 출시시간의 압박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독점도 주지 않고, 로열티 계약을 하는 대단한 성과를 올리게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BM의 개방형 정책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입게 됩니다.  이후 수많은 IBM-PC 호환기종들이 나오게 되는데, 이들에게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의 회사 이니셜을 딴 MS-DOS를 판매합니다.  MS-DOS는 PC-DOS와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운영체제로 오리지널 IBM-PC를 제외한 호환 컴퓨터에서 판매된 운영체제입니다.


디지털 리서치, 뒤늦은 후회와 잘못된 전략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어이없게 마이크로소프트에게 IBM의 운영체제 자리를 빼앗겨버린 디지털 리서치의 게리 킬달은 PC-DOS를 살펴 보다가 PC-DOS가 자신이 개발한 CP/M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그대로 복제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IBM을 지적재산권 침해로 고소하려고 하였으나, 디지털 리서치의 변호사는 IBM과의 송사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IBM과 어떤 형태로든 중재를 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을 권합니다.  이에 게리 킬달은 IBM과의 담판을 통해 자사의 CP/M-86 과 마이크로소프트의 PC-DOS 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데 합의합니다.  이 때만 하더라도 게리 킬달은 CP/M-86 이 안정성과 기능성 모두에서 PC-DOS 를 압도한다고 믿었고 그에 따라 자신의 승리를 자신하면서 가격정책을 결정합니다.

디지털 리서치가 IBM-PC를 구매할 때 옵션으로 CP/M-86 을 선택할 때 제시한 가격은 $240 달러였고, PC-DOS는 $60 달러에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기술적으로 CP/M-86 이 훨씬 나았고 게리 킬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비교가 안되는 운영체제라고 생각했겠지만, 소비자들은 저가의 PC-DOS를 대부분 선택합니다.  이와 함께 IBM 호환기종을 내놓은 업체들 역시 오리지널 IBM-PC 와의 완벽한 호환성을 위해서 대부분 MS-DOS 를 채택하면서 결코 저물지 않을 것 같았던 디지털 리서치의 CP/M 신화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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