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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IT의 역사, 2006년의 사건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오늘날의 소셜 웹을 평정하고 있는 2개의 서비스 중의 하나인 트위터의 탄생입니다.  이미 시리즈를 통해 Blogger.com 을 창업했던 에반 윌리암스(Evan Williams)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가볍게 언급한 바 있지만, 오늘은 그 탄생과 성장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블로그의 대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다.

트위터의 전신이 되는 회사는 Odeo 라는 회사입니다.  그리고, 이 회사의 공동창업자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에반 윌리엄스, 비즈스톤(Biz Stone), 그리고 잭 도시(Jack Dorsey) 입니다.  에반 윌리엄스는 블로그를 일반인들에게 알린 가장 중요한 플랫폼 서비스인 Blogger.com 을 시작한 Pyra 라는 회사를 창업해서 2003년 구글에 매각을 하면서 2년간 구글에서 일을 합니다.  Blogger.com 은 이후 승승장구하면서 블로그 서비스의 대명사가 되는데, 에반 윌리엄스와 Blogger.com 의 주 개발자였던 Meg Hourihan 과 Paul Bausch는 블로그의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4년 PC 매거진 선정 "올해의 인물" 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창업자의 피가 끓는 에반 윌리엄스가 구글과 같은 커다란 회사의 직원으로 남아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2004년 구글과의 옵션계약기간이 끝나자, 에반 윌리엄스는 미련없이 구글을 떠나 Odeo 라는 트위터의 전신이 되는 회사를 설립하는데, 2006년 이 회사를 현재 트위터의 공동창업자인 비즈스톤(Biz Stone)과 함께 Obvious Corp. 라는 회사에 흡수합병 시킵니다.  Odeo는 원래 팟캐스트(podcast) 서비스를 하는 회사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이 조기에 되면서 팟캐스트 시장 자체가 그다지 성숙하지 못했지만, 미국에서는 아이팟의 보급과 생방송 스트리밍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네트워크 인프라도 되지 못했던 탓에 동영상을 파일 단위로 다운로드 받고, 이를 거래하는 서비스인 팟캐스트가 시장이 될 것이라고 판단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사업은 잘되지 않았습니다.  Blogger.com 을 시작할 때에도 원래는 개인의 프로젝트 관리와 관련한 웹 서비스를 하려고 했다가, 노트와 관련한 부분을 특화시킨 Blogger.com 만 살아남고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문을 닫았는데, Odeo  역시 초창기 계획이 난항을 겪으면서 3명의 창업자들은 사기가 점점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트위터의 탄생

처음 시작할 때와 같은 열정도 없어지고, 심지어는 창업한 본인들 조차도 자신들이 만든 팟캐스트 서비스를 잘 사용하게 되지 않으면서 위기를 겪을 즈음,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이들은 보다 자유로운 생각과 시간을 가지자는 것에 합의를 합니다.  이때 잭 도시와 비즈 스톤은 2주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뭔가 다른 것을 만들어서 데모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트위터의 시작입니다.  

일단 서비스는 간단하게 만들었는데 트위터 프로젝트가 잘 진행될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카페트 청소를 하고 있던 비즈스톤의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이 울렸는데, 에반 윌리엄스가 자기가 지금 피노누아(pinot noir, 포도주의 일종)를 마시고 있다는 트윗이었습니다.  비즈스톤은 그 때 이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처음 느꼈다고 합니다.  

서비스 초기에 어떤 사람들이 트위터가 재미있기는 한데, 전혀 유용하지 않고 쓸데가 없기 때문에 성공하기는 힘들겠다는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에반 윌리엄스가 하는 대답은 '아이스크림도 별로 유용하지는 않아요'라고 한다고 하는데, 이 대답은 꽤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트위터가 처음 가능성을 보여 준 사건은 SXSW 2007 이라는 미국 서부/남부 지역 중심의 꽤 중요한 소프트웨어 관련한 행사였다고 합니다.  몇몇 사람들이 좋은 세션의 내용을 요약해서 트위팅을 하고, 그에 대한 반응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이 도구가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함을 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초기의 트위터는 SMS에 많이 초점을 맞추어 디자인 되었습니다. 140자로 제한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고, 단지 간단한 입력창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서비스를 런칭하면서 버락 오바마가 분명 이용하게 될 것이고, 2년만 지나면 오프라 윈프리쇼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을 했다고 합니다.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규모를 키우는 것과 관련한 결정들 이었는데,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몇몇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초창기 조직이 그다지 역할분담 등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10명 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업데이트와 관련한 여러가지 사안들에 대해 서로 이해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소통의 부재에 따라 엉뚱한 방향의 업데이트나 기술적인 변경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트위터라는 막강한 소통의 서비스를 만드는 조직에서 소통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가 없지요?  현재는 많이 문제가 해소되었다고 합니다만, 조직의 소통 문제는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사업계획에 시장예측은 없다.

사업계획을 세우는데 있어서 재미있는 것은 시장과 관련한 예측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이용한 예측방식은 구글도 과거에 했던 이야기인데, 어떤 것일까요?

“This thing is huge, and we’re going to kick ass at it”.

한마디로 얼마가 될지는 몰라도 시장은 무지무지 크고, 결국 이 시장을 정복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입니다.  또 한가지 에반 윌리엄즈의 느낌은  "This might be a thing if we pull this off” 이었다고 합니다.  즉, 이거 우리가 제대로 할 수만 있으면 대박이다! 라는 것인데, 그가 구글에 매각한 Blogger 서비스를 처음 개발했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장크기를 묻는 질문에는 언제나 잘 모르겠다고만 한다고 합니다.  단지 이 서비스가 무지하게 좋은 것이라는 것만 안다는 것입니다.  에반 윌리엄스가 처음 블로거 서비스를 개발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이렇게 쓸데없는 것들을 인터넷에 올린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현재 트위터에 있어 두 창업자들이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플랫폼으로서의 트위터를 확장하는데 있습니다.  이를 통해 생태계를 더욱 키우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 플랫폼 팀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습니다.   트위터의 성공에 API 의 역할은 정말 지대했습니다.  처음 독일에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은 SMS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마치 메신저처럼 이용할 수 없겠느냐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트위터에서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개발하기 보다는 이를 위한 API를 공개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맥용 앱으로 Twitterific 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켰습니다.  처음에는 트윗이 웹에서 포스팅 된 것인지, 아니면 SMS를 이용한 것인지에 따라 "via web" 또는 "via sms" 만 표시가 되었는데, 그 때부터 "via twitterific" 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제는 트위터의 API 를 이용하는 앱이나 서비스의 수가 등록된 것만 16만 개가 넘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였습니다.


트위터의 창업과 성장, 그리고 성공의 키 포인트에는 창업자들의 정신과 철학이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역시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고, 그에 대해 꾸준히 정진하는 사람이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트위터의 창업자들이 알려주는 교훈입니다.

(후속편에 계속 ...)


P.S. 이 시리즈는 이미 완결되어 출간이 되었으며, 전체 내용을 일괄적으로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광고된 도서를 구입하시면 보다 충실하고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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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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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국지, 오늘의 주인공은 트위터의 창업자로 요즘에는 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가장 유명한 블로그 플랫폼 중의 하나인 Blogger.com 을 만들고, 이를 구글에 매각하고 구글에서도 일을 했던 에반 윌리암스(Evan Williams)와 블로그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블로그의 대두, Blogger.com 의 부상

블로그는 웹로그(Weblog)를 달리 부른 것으로, 개인에 최적화된 홈페이지로 댓글관리와 일정, 그리고 트랙백과 같이 블로그를 연결할 수 있는 방법과 구독 등의 기술들이 들어간 오늘날 소셜 미디어의 시작을 알린 기술입니다.  웹로그라는 말은 Jon Barger 가 1997년 12월 처음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짧게 말한 블로그라는 말은 Peter Merholz 가 1999년 자신의 블로그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용어가 널리 퍼지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트위터의 창업자이기도한 에반 윌리암스입니다.  에반 윌리암스는 1999년 블로그와 같은 개인 홈페이지를 잘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플랫폼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Pyra Labs 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회사의 플랫폼인 Blogger.com 을 서비스하기 시작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서비스는 가장 대표적인 블로그 서비스로 급부상합니다.

에반 윌리암스는 타고난 창업자입니다.  1972년 생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플로리다와 텍사스, 네브라스카 등지에서 다양한 기술관련 일과 스타트업 회사에 몸을 담았던 그는 1996년 캘리포니아로 입성합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은 "웹 2.0" 과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기술관련한 컨퍼런스와 책 출판 등을 선도한 오레일리 미디어(O'Reilly Media) 였습니다.  오레일리에서 처음에는 마케팅을 담당했지만, 오래지 않아 독립계약자로서 코딩도 하고, 동시에 프리랜서로 인텔이나 HP와 같은 유수의 회사에서 일을 맡아서 수행하던 그는
멕 휴리한(Meg Hourihan)과 함께 Pyra Labs 를 설립하였습니다.  


사이드 프로젝트가 주류가 되다.

처음 Pyra Labs 를 설립할 때 두 창업자가 생각했던 사업은 웹에서 동작하는 프로젝트 관리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기업에 서비스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서비스의 이름이 Pyra 였는데, 솔루션을 개발하다가 보니 개인들의 노트를 관리하기 위한 기능들을 추가하다가, 이것이 개인 미디어 서비스로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본 프로젝트에서 떼어내서 Blogger.com 이라는 웹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냅니다.

Blogger.com 은 전세계 최초의 블로그 작성과 발행 및 관리가 가능한 웹 애플리케이션이었는데, 에반 윌리암스에 따르면 그가 Blogger 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당시 조금씩 블로그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하길래 엉겁결에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Blogger.com 은 1999년 8월에 일반에 공개가 되는데, 초기에는 완전히 공짜 서비스로 전혀 수익모델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회사의 자금은 바닥이 나고, 직원들의 급여는 계속 밀리기 시작합니다.  이에 결국 공동창업자인 Meg Hourihan 을 포함한 모든 직원들이 살 길을 찾아서 회사를 떠나게 되고, Blogger.com 은 에반 윌리엄스가 혼자서 운영하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 에반 윌리엄스에게 투자를 한 곳이 바로 Trelix 라는 곳으로, 창업자인 댄 브리클린(Dan Bricklin)이 Blogger.com 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과감한 투자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광고모델이 가능한 Blogspot 과 좀더 다양한 기능과 저장공간 등을 제공하는 Blogger Pro 모델이 나오면서 수익창출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003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구글이 Pyra 를 합병합니다.  그리고, Blogger.com 을 만들어낸 에반 윌리암스를 포함한 직원들을 구글에 고용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구글은 텍스트큐브를 만든 태터앤컴퍼니를 인수하면서 창업자들을 포함한 주요 엔지니어들을 고용한 바 있는데, 비슷한 방법을 취했던 것입니다.  Blogger.com 인 이후 승승장구하면서 에반 윌리엄스와 Blogger.com 의 주 개발자였던 Meg Hourihan 과 Paul Bausch는 블로그의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4년 PC 매거진 선정 "올해의 인물" 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창업자의 피가 끓는 에반 윌리엄스가 구글과 같은 커다란 회사의 직원으로 남아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2004년 구글과의 옵션계약기간이 끝나자, 에반 윌리엄스는 미련없이 구글을 떠나 Odeo 라는 트위터의 전신이 되는 회사를 설립하는데, 2006년 이 회사를 현재 트위터의 공동창업자인 비즈스톤(Biz Stone)과 함께 Obvious Corp. 라는 회사에 흡수합병 시킵니다.  원래 Odeo 는 팟캐스팅(Podcasting) 관련 플랫폼을 만들던 회사였으나, 본 사업은 제대로 되지 않았고 되려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한 트위터가 오늘날과 같은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트위터에 관련한 비화는 더욱 자세히 다루게 되겠지만, 트위터 역시도 굉장히 우연한 탄생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반 윌리엄스는 전형적인 창업자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프로젝트를 고집하지도 않았습니다.  Blogger.com 도 그렇고, 트위터도 그렇지만 원래 회사를 설립할 때 하려고 했던 프로젝트가 아니라, 중간에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한 것들이 성공을 하였는데, 이런 과정은 오늘날 창업을 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많은 스타트업 회사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봅니다.  고객중심적인 사고를 하면서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가지는 것이 기술을 축적하는 것에 앞서는 첫 번째 덕목이 아닐까요?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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