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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많은 열린 마음의 선지자들에 의해 발전된 인터넷은 사실 그 정의조차도 모호하게 이용되고 있었다. 가장 일반적으로는 TCP/IP 프로토콜을 이용한 네트워크를 모두 인터넷으로 칭하였지만, 기본적으로 ARPANET과의 관계가 있었기에 소유와 운영, 관리 등에 있어 혼선이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과 기업들, 기관들이 이용을 하면서 뭔가 제대로 인터넷을 정의하고, 단순한 국가에서 이용하는 학술적인 연구 네트워크 이상의 가치와 철학을 가지기 시작한 이 네트워크에 대한 운영과 관리를 보다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결국 1995년 인터넷은 새로운 정의를 가지게 된다.


ARPANET과 MILNET의 분리

다시 역사를 뒤돌아보자. 어찌보면 인터넷의 전신인 ARPANET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의 산물이다. 소련의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발사에 자극받은 미국이 만든 ARPA의 설립과 이들이 2차 세계대전 때의 효과적인 대학과 연구소, 그리고 군의 성공적이었던 네트워크의 위용을 전시가 아닌 평시에도 구축하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가 바로 ARPANET이다. 그러나, TCP/IP를 만든 연구자들의 개방적인 성향과 수 많은 사람들과 기업들이 인터넷의 엄청난 효용성을 알게 된 이상, 처음의 의도와 같이 그냥 군사적인 목적의 학술 네트워크로 유지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제일 먼저 1983년 ARPANET을 일반인들을 위한 ARPANET과 군사용의 MILNET으로 분리하여, 이 연구의 성과가 민간에서 활용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고, 1986년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NSFNET이 가세하면서 전체적인 인터넷의 근간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메일과 팀-버너스 리가 발표한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 WWW)이 폭발적으로 일반인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뭔가 명확하게 변화된 위상이 인터넷에게 필요하게 되었다.


새로운 인터넷의 정의 

1995년 10월 24일, 미국 연방네트워킹위원회(Federal Networking Council, FNC)는 만장일치로 인터넷(internet)이라는 용어에 대한 정의를 통과시켰다.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인터넷(Internet)"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 글로벌 정보 시스템을 일컫는다.


  1. 인터넷 프로토콜(Internet Protocol, IP) 또는 IP의 확장이나 후속 프로토콜에 기반을 둔 글로벌하게 유일한 주소공간에 의해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2. TCP/IP 프로토콜 또는 이의 확장이나 후속 프로토콜, 그리고 다른 IP와 호환되는 프로토콜을 이용한 통신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3. 위에 언급한 인프라구조나 통신 계층 위의 공공 또는 사적으로 고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사용, 접근이 가능하다.

이로써 인터넷은 그 모습을 드러낸지 20년 만에 중대한 전환기를 맞게 된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컴퓨팅 환경은 중대형 컴퓨터를 시간을 나누어 활용하였기에 그런 환경에 맞추어 학술적인 네트워크를 잘 이용한다는 취지에서 인터넷이 발전하였지만, 80년대 이후 개인용 컴퓨터가 급속히 보급되면서 클라이언트-서버나 P2P(peer-to-peer, 컴퓨터간 동등한 수준의 연결) 네트워크 기술이 발달하고, 새로운 통신 네트워크 기술로 ATM이나 프레임 스위치 서비스 등이 나타나면서 초창기의 인터넷과는 그 용도가 달라지고 있었다.

초창기 인터넷은 주로 파일을 공유하고, 원격지에서 컴퓨터에 로그인을 하며, 막강한 중대형 컴퓨터의 자원을 어떻게 적절하게 공유하고 협업을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90년 대 이후에는 이메일의 활용과, 혜성같이 등장한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 WWW) 등을 이용하는 것이 인터넷의 주된 용도가 되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이 이제는 소수의 연구자들이 이용하던 네트워크가 아니라, 매년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지는 상업적인 산업의 영역에 들어서기 시작했고, 전화와 TV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통신 네트워크 인프라와는 완전히 다른 컴퓨터 중심의 통신 네트워크 시대를 여는 가장 중요한 인프라로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다음 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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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UC NCSA의 전경 from Wikipedia.org



래리 스마르의 주장으로 UIUC의 8명의 교수들이 모여서 작성한 블랙 제안서(제안서의 표지가 검은 색이어서 그렇게 불리웠다고 한다)는 제안서가 채택이 된다면 어떤 것들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간략히 적은 것으로 1983년 NSF에 제출되었다. 짧지만 과학계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이 담겨 있었기에 NSF에서는 이 제안서에 흥분을 하게 되고, 1984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인 과학컴퓨팅국(Office of Scientific Computing)이 창설된다.


NCSA의 탄생과 웹의 개념

NSF의 과학컴퓨팅국은 강력한 국회에서의 지원을 바탕으로 블랙 제안서에 기초한 수퍼컴퓨터 센터를 유치할 대학들을 미국 전국에서 모집하게 되는데, 치열한 경쟁을 통해 4군데 대학이 선정되었다. 블랙 제안서를 제출하며 담론을 리드했던 UIUC를 비록하여, 코넬과 프린스턴, 그리고 샌디에고가 그 주인공이 되었으며 이후에 피츠버그에 하나의 센터가 더 설립되었다. 1985년 이 계획에 따라 NCSA 재단이 만들어졌고, 1985년부터 5년 간 총 4274만 달러의 투자를 통해 강력한 인프라와 그 과학적 응용에 대한 사례들이 구축되기 시작했으며, 이 컴퓨팅 자원을 세계의 대학에서 쉽게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NSFNET에 대한 요구가 더욱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NCSA의 탄생의 기초가 된 10페이지의 블랙 제안서에는 미래의 생산적인 과학자들의 협업과 보편적인 컴퓨터 접근에 대한 개념이 포함되었다. 기술적인 제한점보다는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담았는데, 특히 컴퓨터의 미래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담았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컸다. 현재에는 그 내용이 대단하지 않게 여겨질 수 있지만 어떻게 멋지게 시각화를 시킬 것인가? 워크스테이션 개념, 초고속 I/O 시스템과 데이터 저장기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다양한 커뮤니티의 동시적인 협업과 같은 당시로서는 정말 파격적인 내용들이 기술되었다. 

오늘날의 컴퓨터는 매우 쓰기 쉽고, 웹이 기본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으며 최고의 전문가들만 간신히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컴퓨터와 네트워크였다. 또한, 이런 컴퓨터 기술에 대한 접근도 운좋게 어떤 곳의 직원이면 계정을 부여받기 때문에 가능하고, 그러지 않으면 접근할 기회도 가지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보편적이면서도 누구나 쉽게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과학자들의 생각은 결국 이후 인터넷의 역사에서 큰 전환을 일으키는 웹 브라우저인 모자이크(Mosaic)가 NCSA에서 탄생할 수 있는 기틀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NCSA의 수퍼컴퓨터가 처음으로 온라인에 개방된 것은 1986년 1월이었다. 이 컴퓨터에 대한 접근권을 텔넷(Telnet) 프로토콜을 이용해서 전 세계의 과학 커뮤니티에 개방을 한 것을 시작으로, NCSA는 전 세계 과학 커뮤니티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는데, 여기에서 인터넷이 가지고 있었던 국가의 경계를 넘고, 인류의 공통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을 하는 철학을 또 다시 발견할 수 있다. 이후 수 많은 도구들이 소개되면서 NCSA는 그 유명세를 떨쳤는데, 뭐니뭐니해도 1993년 모자이크를 발표한 것이 가장 중요한 업적이다. 모자잌와 관련해서는 이후에 다시 다루게 된다.


NSFNET, 인터넷 탄생의 견인차가 되다.

NSFNET과 DARPA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앞선 이야기들에서 다룬 바 있지만, 이번에는 NCSA와 과학계의 시각에서 다시 한번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1985년 NSF가 NCSA와 같은 수퍼컴퓨팅 센터에 펀딩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였던 전 세계의 과학자들을 엮어내고 이들이 협업을 통해 과학의 발전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인프라의 구축이 필수적인 요구사항이었다. NSF에서 펀딩한 5군데 수퍼컴퓨팅 센터들은 UIUC의 NCSA 이외에 프린스턴의 폰 노이만 컴퓨팅 센터, UCSD의 샌디에고 수퍼컴퓨터 센터(San Diego Supercomputer Center, SDSC), 코넬 대학의 코넬 이론센터(Cornell Theory Center), 그리고 카네기 멜론 대학과 피츠버그 대학이 함께 했던 피츠버그 수퍼컴퓨팅 센터(Pittsburgh Supercomputing Center, PSC) 이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보편적인 접근이 가능한 과학연구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 NSFNET의 목표였는데, 여기에 ARPANET과 동일한 TCP/IP 프로토콜을 이용하기로 결정하면서 각각의 네트워크가 연결되지 않고, 여러 가지 그룹으로 구성되었던 네트워크 세상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NSFNET은 1986년 처음으로 TCP/IP를 이용한 운영에 들어갔는데, 처음의 6군데 백본 사이트는 56-kbit/s 전용선을 이용하였다. 이 속도는 초고속 인터넷 기술이 도입되기 이전 전화선 모뎀에서 구현되었던 최고 속도 정도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트래픽 문제로 몸살을 앓게 된다. 1987년 문제가 심각해지자 NSF는 NSFNET를 1.5Mbit/s 의 속도를 가진 T1 백본을 기초로 한 업그레이드 및 확장을 하기로 결정하고 자금을 투입하였는데, 이 때 이런 기술을 제안한 미시건 주립대학교의 메리트 네트워크(Merit Network)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 1988년 7월 T1 기반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되었다. 당시 컨소시엄에는 IBM과 MCI라는 컴퓨터와 통신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참가하였고, 운영을 하였다. 그러나, 네트워크의 수요가 빠르게 늘고 확장이 급속하게 진행되자 NSF는 운영과 접속에 대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지역적으로 분산시킬 수 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기업들이 관여하게 되면서, 일반인들의 인터넷 접속도 확대되었으며, 더 이상 NSFNET라는 학술적 네트워크의 성격으로만 유지시키기 어려워지는 상황에 직면하였고, 이것이 인터넷과 관련한 다양한 결정을 내리는 지배구조를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다음 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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