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대중화를 이끈 NCSA 모자이크 from Wikipedia.org



1993년까지 기대와는 달리 고퍼와의 싸움에서 열세를 보이던 웹이 결정적인 승기를 만드는 사건은 과거 인터넷의 공유정신과 관련하여 수퍼컴퓨터 센터를 들여오고, NSFNET의 탄생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시카고의 NCSA에서 다시 한번 나타나게 된다.


1993년 컴퓨터 시장은 이미 IBM PC가 대세를 장악하고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컴퓨터의 성능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초창기 DOS를 중심으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PC는 점점 속도가 빨라지고, 메모리와 HDD의 용량도 커지면서 조금씩 복잡한 것들을 잘 처리하기 시작했다. 특히 PARC 연구소에서 개발한 GUI(Graphic User Interfac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애플에서는 이에 특화된 PC인 매킨토시를 발표하였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DOS에서 동작하기 때문에 다소 느리기는 하지만 매킨토시의 GUI를 벤치마킹한 윈도우라는 소프트웨어를 내놓으면서 이에 대응을 하였다. 전통적인 컴퓨터 운영체제인 유닉스(Unix) 계열의 운영체제에서도 X 윈도우라는 소프트웨어가 등장하면서 GUI를 도입하는 추세는 대세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양한 운영체제와 GUI가 등장하였지만, 인터넷에서 사진을 비롯한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웹 기술은 거의 보급되지 못한 넥스트 컴퓨터와 넥스트스텝이라는 운영체제 밖에 지원되지 않아서 고퍼에 크게 밀리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 때, 일리노이 대학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NCSA에서 일하던 마크 앤드리센(Marc Andreessen)은 웹과 같은 좋은 기술이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웹을 이용하면서 웹에 있는 다양한 과학정보를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해서 볼 수 있도록 하는 브라우저가 그 핵심이라는 생각에, NCSA에서 일하던 뛰어난 프로그래머인 에릭 비나(Eric Bina)와 함께 유닉스(Unix)의 X 윈도우를 지원하는 웹 브라우저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3개월 정도의 작업을 통해 1993년 오늘날 웹 브라우저 역사에 길이 남는 범용 브라우저인 모자이크(Mosaic)를 완성한다. 마우스 만으로 인터넷을 브라우징할 수 있는 클릭앤포인트(Click and Point) 방식을 처음으로 구현한 모자이크는 인터넷이 진정한 정보의 바다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성공하였다. 이들의 성취를 보고 NCSA 에서는 몇 명의 인원을 더 보강해서 윈도와 매킨토시를 지원하는 모자이크도 같은 해 11월 발표하게 되는데, 이 브라우저는 2달 동안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운로드 받아 이용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웹의 세상을 열었다.


모자이크는 당시 일반인들이 보유한 PC 주요 운영체제인 윈도, 매킨토시, 유닉스를 모두 지원한 최초의 오픈소스 브라우저였으며, 이를 통해 일반인들도 웹의 세상에 뛰어들 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모자이크를 탄생시킨 NCSA는 초기에는 인터넷을 통해 웹과 같은 기술보다는 운영체제에 상관없이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는 동기화된 협업 기술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이런 목적으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NCSA 콜라쥬(collage)였는데,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유닉스의 X 윈도우, 매킨토시, 윈도우를 모두 지원할 수 있어야 해서  여기에 대비하던 것이 아르바이트 학생과 한 명의 프로그래머가 일으킨 예상 밖의 혁신을 확대재생산할 수 있게 만들었다. 


모자이크는 인터넷이 대학이나 연구소 밖으로 급속도로 팽창하던 때, 제한된 정보 서비스만  존재하던 인터넷 환경에 매끄러운 멀티미디어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최초의 프로그램이었다. 이렇게 멋진 기능을 제공했지만 모자이크도 상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서는 관대한 라이선스를 채택했다. 모든 버전에서 비상업적 목적의 사용은 일정한 제한을 제외하고는 자유로웠으며, 유닉스 X 윈도우 시스템 버전의 경우 소스코드도 공개배포 되었다. 다른 운영체제 버전의 경우에도 동의만 얻으면 소스코드가 제공되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 대학생으로 혁혁한 성과를 남긴 마크 앤드리센에 대해 NCSA에서는 에릭 비나를 포함한 정규 모자이크 개발팀을 중심으로 관리를 하려고 하였고, 마크 앤드리센을 홀대하였다. 그러자, 마크 앤드리센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NCSA 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실리콘 밸리로 이사를 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다음 편에 계속 ...)



참고자료:


모자이크 브라우저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NCSA 모자이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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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Good.is



태양광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가장 문제는 초기에 들어가는 설비에 대한 투자비용이다.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이 없다면 사실 태양광 설비를 하고 전기요금을 절약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그렇고, 전 세계에 다양한 대출지원이나 보조금 등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초기 비용의 일부는 본인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그냥 마음먹고 설비를 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그리 간단치는 않다.


최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소금융(microfinance)을 이용하거나, P2P 대출 등을 활용하는 사례가 일부 외국에서 알려지고 있는데, 특히 학교나 비영리 단체의 소규모 태양광 시설에 이런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오클랜드에 기반을 둔 모자이크(Mosaic)라는 회사의 성과가 눈부시다. 이 회사는 개인 투자자들이 태양광 설비 설치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크라우드 펀딩(crowdfunding) 서비스이다. 1인당 $100를 부담해서 하나의 '타일'을 획득해서 학교 등에 투자하는 것인데, 현재까지 10개가 넘는 프로젝트가 제시되어 100% 펀딩에 성공을 했고, 200만 달러가 넘는 자금이 많은 사람들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투자되었다. 초기에는 오클랜드 주변의 시설들이 투자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애리조나주나 뉴저지, 콜로라도주 등의 프로젝트도 성공적으로 펀딩이 이루어지고 있다.  


태양광 에너지는 결국 중앙집중적인 에너지 생산과 보급 시스템을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게 만드는 분산된 에너지 주권이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중앙집중적인 은행의 힘이 아니라 십시일반 사람들의 힘을 모아서 만드는 크라우드 펀딩 역시 이런 분산의 철학과 잘 어울린다. 투자자들은 에너지의 절약분을 모아서 천천히 투자금을 회수하게 되며, 동시에 지구의 탄소배출도 억제하는 1석 2조의 효과를 누리게 된다. 보통 투자금은 12~36개월 사이에 회수가 된다고 하니 금융상품으로도 그리 나쁘지 않은 셈이다. 


이처럼 최근에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프로젝트 진행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의 협업을 유도하며, 이것이 다시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면서 선순환의 고리를 통해 새로운 사업이 시작되고, 혁신이 활성화되는 사례를 많이 본다. 제조업에서도 킥스타터(KickStarter)라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 소규모 혁신제조업의 숨통을 틔웠고,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메이저 제조업체로 올라서는 사례를 요즘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어쩌면 인터넷으로 촉발된 커뮤니케이션 혁명과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거쳐서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는 다양한 시도를 가능하게 만드는 마지막 열쇠는 이와 같이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크라우드 펀딩인지도 모르겠다. 지구를 새롭게 변신시키는 태양광과 풍력발전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의 활성화에 대해 언제나 문제점으로 제기되었던 경제성과 예산문제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해결되고 있는 이런 사례는 그래서 더욱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참고자료:


How Communities Can Invest in Solar Power

MOSAIC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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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의 등장에 일조한 팀 버너스-리의 NeXTcube 사진 (from Wikipedia)


지난 번 포스팅에서 NeXT 를 다루면서 살짝 언급이 되었습니다만, 이번에는 구글의 영지로 가장 중요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영토의 개척과 관련한 역사를 이야기할까 합니다.


인터넷, 그리고 웹의 시작

1969년 9월 2일, UCLA의 Leonard Kleinrock 교수의 실험실에서는, 몇명의 컴퓨터 과학자 그룹이 몇 비트의 데이터를 한 컴퓨터에서 다른 컴퓨터로 회색의 케이블을 통해 전달하는 실험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데이터가 넘어간다는 것이 확인이 되었는데, 이 실험이 오늘날 전세계를 지배(?)한다고 까지 말할 수 있는 인터넷의 첫번째 태동이 되었습니다.  Kleinrock과 그의 동료들은 이 연구를 바탕으로 정부의 차세대 네트워크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이것이 바로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Network (ARPANET) 입니다.  

일부에서는 인터넷 탄생일을 1969년 10월 29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10월 29일은 Kleinrock이 첫 번째 메시지를 UCLA와 스탠포드를 연결하는 2개의 노드 사이에서 전송하는데 성공한 날입니다.  그 메시지는 "LO." 이었는데, "LOGIN"을 전송하려고 하다가 Kleinrock이 "LO."까지 입력하니 시스템이 다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즉, 9월 2일은 최초의 데이터 비트들이 실험실 내의 컴퓨터들 사이에서, 10월 29일은 외부를 연결하는 컴퓨터 사이에 문자가 전송된 첫번째 날입니다.

그로부터 40년간, 인터넷은 미국의 군용 네트워크에서 전세계를 연결하는 기간 백본으로 성장했습니다.  1970년 대에는 e-mail과 TCP/IP 통신 프로토콜이 정립되었고, 이를 통해 정형화된 인터넷의 주소체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1980년대에는 숫자로 되어있던 주소체계에 이름이 붙으면서 오늘날 누구나 알고 있는 ".com", ".org" 등이 주소의 이름으로 널리 이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인터넷이 실제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사랑받기 시작한 것은 웹이 등장하면서 부터입니다.  영국의 물리학자였던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HTML 언어와 웹을 만들어 내면서, 인터넷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전세계와 우리의 일상생활을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HTML 과 웹 서버를 처음 만들어낸 것이 1989년으로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최초의 웹 서버가 돌아가는 컴퓨터로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NeXT 컴퓨터의 2세대 제품인 NeXTcube 가 이용되었습니다.  

CERN 에서 주로 과학을 중심으로 한 웹 환경을 구축하던 팀 버너스리는 1994년 MIT에 오늘날 웹 표준을 끌고 나가고 있는 World Wide Web Consortium (W3C) 을 설립하고 웹과 관련한 다양한 표준과 권고안 등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인터넷이 품고있는 자유와 비특허, 비로열티 정책은 W3C 의 개방철학에 그 뿌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팀 버너스리의 업적은 앞으로도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마크 앤드리슨과 모자이크의 등장

넷스케이프의 창업자로도 유명한 마크 앤드리슨은 무척 젊은 나이에 세상을 놀라게 했기에 굉장히 오래된 인물로 생각되지만, 1971년 생으로 필자보다도 나이가 어립니다.  그가 일리노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NCSA(National Center for Supercomputing Applications, 미국국립 슈퍼컴퓨터 활용센터)에서 또 하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마크 앤드리슨은 대형컴퓨터가 아니라 일반인들의 컴퓨터에도 설치할 수 있고,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특히, 웹의 가능성을 보고 웹에 있는 다양한 과학정보를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해서 볼 수 있도록 브라우저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NCSA에서 일하던 뛰어난 프로그래머인 에릭 비나(Eric Bina)와 함께 유닉스(Unix)를 기반으로 하는 웹 브라우저를 개발합니다.  이들은 3개월 정도의 작업을 통해 1993년 오늘날 웹 브라우저 역사에 길이 남는 범용 브라우저인 모자이크(Mosaic)를 완성시킵니다.  마우스 만으로 인터넷을 브라우징할 수 있는 클릭앤포인트(Click and Point) 방식을 처음으로 구현한 모자이크는 인터넷이 진정한 정보의 바다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성공합니다.  이들의 성취를 보고 NCSA 에서는 몇 명의 인원을 더 보강해서 PC와 매킨토시를 지원하는 모자이크도 같은 해 11월 발표하게 되는데, 2달 동안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브라우저를 다운로드 받아서 이용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인터넷 웹 시대를 화려하게 여는 장본인이 됩니다.  


이렇게 대단한 업적을 남겼지만, 그가 아르바이트 대학생이었던 탓이었는지 NCSA 에서는 에릭 비나를 포함한 정규 모자이크 개발팀을 중심으로 관리를 하려고 하였고, 마크 앤드리슨을 홀대하였습니다.  그러자, 마크 앤드리슨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NCSA 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실리콘 밸리로 이사를 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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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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