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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국지, 기업을 중심으로 훠이훠이 오다가 보니, 정말 중요한 인물의 등장과 관련한 이야기를 빼놓고 왔습니다.  바로 개방방주라고도 할 수 있는 리차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입니다.  비록 대단한 기업을 만들고, 돈을 많이 벌지도 못했지만 그가 주창한 철학과 실천은 세상의 규칙을 깨부수는 통렬한 시도였고, 무모해보였던 그의 시도가 이제는 모든 산업영역에 파급되고 있는 놀라운 변화를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너무나 과소평가되고 있는 이름, 리차드 스톨만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무난한 학창시절, 대학에서 해커가 되다.

리차드 스톨만은 1953년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처음 컴퓨터를 만난 것은 IBM 의 뉴욕 과학센터(New York Scientific Center)에서 포트란 언어로 수치해석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일을 시작하면서 입니다.  단 몇 주 만에 작업을 마친 그는, 나머지 시간을 텍스트 편집기를 만들면서 보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름방학 기간에는 IBM 의 일과 함께 록펠러 대학의 생물학과에서 실험실 조교로 자원봉사를 하였는데, 당시 그를 지도했던 지도교수는 그가 미래에 훌륭한 생물학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한 리처드 스톨만은 1학년을 마칠 때 이미 수학을 잘하는 학생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소문을 듣고 MIT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연구실에서는 그를 만나 설득해서 인공지능 연구실의 프로그래머가 되도록 만듭니다.  MIT의 인공지능 연구실은 그를 해커의 사회로 이끌게 됩니다.  리차드 스톨만은 해커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컴퓨터 계정이름인 "rms"라는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대신하여 이용했는데,  최초의 해커사전(Hacker's Dictionary)에도 자신을 "Richard Stallman" 이라고 쓰지 말고 'rms'로 불러달라고 합니다.  MIT의 일을 하면서도, 리차드 스톨만은 1974년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합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 역시 물리학으로 MIT로 진학을 한 리차드 스톨만은, 학문과 프로그래밍 모두를 하기 보다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쪽에 집중하기로 하고 MIT에서의 박사학위 과정은 포기합니다.  대신 MIT AI 연구실에서 일하는 것에 집중을 하게 되는데, 이때 발표한 논문 중에는 아직도 인공지능 분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연구 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논문도 있습니다.


해커정신의 전파, 그리고 GNU 탄생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리차드 스톨만이 주도했던 해커 문화는 생각처럼 일반화되지 못했습니다.  그 보다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주요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복사를 방지하고, 동시에 비슷한 소프트웨어가 탄생할 수 없도록 소스코드에 대한 저작권 및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대부분 복사와 재배포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라이센스 정책이 구성되었고, 이런 변화는 일부 소프트웨어 회사의 정책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정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의 변화는 리차드 스톨만과 함께 MIT 에서 많은 일을 같이 했던 Brewster Kahle 이 미국 저작권법 개정에 1976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리차드 스톨만은 "인간성에 대한 범죄(crime against humanity)"라는 강한 표현을 쓰며 사용자의 자유의지를 가로막는 행위라면서 강력히 반발합니다.  또한 MIT AI 연구실 역시 인공지능 언어인 LISP 기반의 새로운 소프트웨어 회사 설립사건과 관련하여 서로 다른 접근방식과 철학의 두 명의 연구자들의 벤처기업 설립으로 파가 갈리면서, 심각한 내분에 휩싸입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리차드 스톨만은 소프트웨어 사용자들의 자유의지와 권리를 중시하고,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이웃들과 공유하고, 또한 사용자가 추가적인 연구나 에너지를 투입해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신념에 입각하여 Free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인 GNU 프로젝트를 1983년 9월 발표합니다.  


GNU, FSF(Free Software Foundation) 그리고 리눅스

1984년 2월 MIT 를 그만 둔 리차드 스톨만은 GNU 프로젝트에 헌신하기로 결심합니다.  1985년 GNU 선언(manifesto)를 통해 유닉스와 호환이 되는 공짜 운영체제인 GNU를 만드는 이유와 철학을 일반에 알리고, 곧 이어 비영리재단인 FSF(Free Software Foundation)를 설립해서 공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을 고용하고 이들의 정신과 활약을 전세계에 퍼뜨리는 역할을 자임하였습니다.  그는 재단으로부터 아무런 월급도 받지 않았으며, 새로운 문화와 철학을 알리기위해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을 펼치면서, 소프트웨어 부분에 적용할 새로운 라이센스인 GNU GPL(General Public License) 등을 발표합니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이후 나타나게 되는 CCL(Creative Commons License)과 같은 다른 산업영역에서의 새로운 라이센스 정책을 포함하여, 공익와 사회적가치에 중점을 둔 새로운 철학 및 정책의 탄생에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됩니다.

또한, 이런 문화적인 운동과 함께 본인이 직접 프로그래머로서 GNU 운영체제를 이루는 텍스트 편집기(Emacs), 컴파일러(GCC), 디버거(gdb), 빌드도구(gmake) 등과 같은 가장 핵심적인 유틸리티들을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그의 이런 노력에 화답을 하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은 의외로 미국이 아닌 핀란드에서 나타납니다.  1991년 핀란드의 대학생이었던 리누스 토발즈(Linus Torvalds)는 GNU 개발도구를 이용해서 운영체제의 핵심인 리눅스 커널을 개발합니다.  그의 커널은 그동안 개발은 되었지만 많은 부분 문제가 있었던 GNU 프로젝트 커널을 대체하면서 실체화가 가능한 운영체제로 거듭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운영체제 계보에 있어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리눅스(Linux) 입니다.  


리눅스는 소프트웨어 산업에 있어 무수한 영향력을 행사한 기념비적인 소프트웨어입니다.  비록 그 자체가 어떠한 비즈니스 모델도 가지지 못했고, 이를 이용해서 직접적인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도 나오지 못했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실제로 이와 연관된 사업규모는 따지지 못할 정도로 큽니다.  IBM 은 리눅스를 주된 운영체제로 채택하면서 거대한 공룡이 완전히 다른 형태의 회사로 변신하는 계기가 되며, 그들의 서버는 최고의 리눅스 서버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오늘날 아이폰과 함께 전세계를 호령하는 모바일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비롯하여, 노키아의 Ovi,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리모(Limo)에 이르기까지 모두 리눅스를 조상으로 하여 다르게 파생되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엄청난 역사변화의 중심에는 해커의 전설로 남아있는 리차드 스톨만이라는 기인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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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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