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이후 IBM-PC 호환기종과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가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하고, 워드 프로세서와 스프레드 시트 등의 킬러 소프트웨어 역시 이들 플랫폼을 중심으로 경쟁하기 시작하면서, 애플은 특화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니치 마켓을 노리는 전략으로 선회하게 됩니다. 


어도비와 애플, 인쇄혁명을 일으키다.

이 과정에서 1985년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이사회의 결정에 의해 애플에서 쫓겨나게 되고, 애플의 실권은 존 스컬리가 잡게 되었습니다.  존 스컬리는 마케팅 전략의 측면에서 회사의 포지션을 확실한 우위가 있는 부위를 중심으로 재편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협력자가 나타나게 되는데, 그 회사가 바로 최근 스티브 잡스와 플래시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는 어도비(Adobe) 입니다.

어도비는 세계 최초의 GUI 를 구현하였고, 애플의 리사와 매킨토시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이후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애플 매킨토시 등과 GUI 에 대한 지적재산권 침해소송을 다투게 되는 Xerox PARC 출신의 존 워녹(John Warnock)과 찰스 게치케(Charles Geschke)가 팔로알토 인근의 차고 창업을 한 회사입니다. 두 사람은 포스트스크립트(PostScript)라는 인쇄용 언어를 개발하고 판매하였는데, 서체에 관심이 많았던 스티브 잡스는 이 기술을 라이센스해서 1985년 레이저라이터(LaserWriter)에 구현을 합니다.  같은 해 스티브 잡스는 존 스컬리에 의해 애플에서 쫓겨 나지만, 이것이 매킨토시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라는 것을 느낀 존 스컬리는 DTP(DeskTop Publishing) 를 킬러 소프트웨어로 하여 매킨토시를 인쇄 업종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계로 포지셔닝하면서 소위 말하는 디지털 인쇄혁명을 주도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들의 동반자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포스트스크립트가 레이저 프린터와 같은 인쇄 혁명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하지만, 그 뒤를 이어 어도비가 개발한 Type 1 이라는 디지털 폰트 포맷은 애플이 뒤를 이어 개발한 TrueType 과 경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애플은 이 기술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라이센스를 하면서 사실 상의 폰트 표준을 주도합니다.  어도비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Type 1 규격을 공개하고, Adobe Type Manager 라는 소프트웨어도 발매하지만, 이미 TrueType 에게 승기를 빼앗긴 이후였습니다.  Type 1 은 여전히 그래픽/인쇄 분야에서는 표준으로 남았지만, 나머지 비즈니스 분야는 TrueType 이 장악을 하는데 성공합니다.  어도비와 애플과의 애증관계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결국 1996년 어도비는 트루타입의 라이센스 권리를 가진 마이크로소프트와 OpenType 이라는 통합 개방형 폰트 포맷에 합의를 합니다.


애플과 어도비의 찰떡궁합

TrueType 때문에 다소 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어도비와 애플은 정말 환상의 짝꿍과도 같은 동반자 관계를 유지합니다.  포스트스크립트와 DTP로 확실한 니치마켓 선점에 성공한데 이어, 어도비는 1980년대 중반에는 벡터 기반 드로잉 소프트웨어인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를 발표하면서, 포스트스크립트 기반의 레이저 프린터와 함께 그래픽 및 출판업계 시장을 확고하게 차지 하였습니다.  뒤를 이어, 1990년 2월 오늘날까지도 전설적인 소프트웨어의 하나로 평가받는 포토샵(Photoshop)을 발표하면서, 매킨토시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가 넘볼 수 없는 아성을 구축하였습니다.

매킨토시의 DTP 시장에서의 선전과 함께, 애플의 부활을 이끈 또 하나의 공신은 바로 1991년 출시된 파워북(PowerBook)입니다.  노트북 컴퓨터의 현대적인 형태와 인체공학적인 레이아웃을 확립시킨 것으로도 유명한 이 제품은 발매 첫해에 매출액 $10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애플의 중흥기를 이끌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후 애플은 다시 내리막을 탑니다.  야심차게 시작한 디지털 카메라, 포터블 CD  오디오 플레이어와 스피커 사업, 비디오 콘솔과 TV 주변기기 등과 같은 수많은 하드웨어 제품사업들을 새롭게 시작하지만 대부분 실패를 거듭하였고, 특히 엄청난 돈을 들여서 개발하기 시작한 최초의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인 뉴턴(Newton)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결국 존 스컬리의 시대가 저물게 됩니다.


존 스컬리의 시대가 저물다.

애플에서 스컬리의 시대를 정의한다면, 지금의 삼성전자처럼 다양한 제품 라인업으로 니치마켓을 뚫고 나가려는 전략을 펼쳤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모델들은 일단 홈, 교육, 비즈니스와 같은 커다란 시장 특성으로 분류가 되고, 그 다음으로 각각 다양한 변종과 업그레이드 모델이 존재하는 상당히 복잡한 형태를 가졌습니다.  그렇다고, 현대적인 주문형 컴퓨터인 델(Dell)과 같이 완전히 소비자 중심적인 조립체계를 가진 것도 아니어서 관리부담이 증가하였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모델 계층이 상존하는 상황에서는 가장 중요한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 한다는 것이 정말 엄청난 부담이 되었습니다.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수많은 모델 들에 대한 호환성 문제가 발생하였고, 이는 결국 애플 운영체제가 초기의 혁신성을 잃고 윈도우 운영체제에게 따라잡히는 빌미를 제공합니다.

또한 존 스컬리가 저지른 가장 큰 실책은 엔지니어 그룹을 휘어잡고 전체적인 비전을 가지고 끌고 나가는 힘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물론 존 스컬리가 기술을 잘 모르는 마케터 출신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주변에 강력한 기술부분을 통제할 만한 2인자를 키우지 않았다는 것은 CEO로서 잘못된 경영판단 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1990년대 상반기 애플의 중간관리자들은 결코 이룰 수 없었던 허황된 프로젝트들로 회사의 혁신역량을 낭비하였고, 수많은 프로젝트가 싹도 틔우지 못하고 사라져 갔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잘못된 판단 중의 하나로 새로운 마이크로프로세서인 PowerPC 사업에 뛰어들면서, 운영체제를 이식하기로 하였던 결정을 들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애플은 회복할 수 없을 수준의 타격을 입게 됩니다.  


추락하는 애플을 구하기 위해 애플의 이사회는 존 스컬리를 해임하고, 그동안 COO(Chief Operating Officer)로 일하던 마이클 스핀들러(Michael Spindler)를 1993년 CEO로 선임하고 새로운 미래에 대비하기로 결정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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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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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의 PC 시장 진출로 위기를 맞게 되는 애플호.  오늘의 삼국지 이야기는 애플호를 구하기 위해 공들여 손수 영입한 사람에게 쫓겨나는 스티브 잡스의 운명에 대한 것입니다.


평생 설탕물만 팔면서 살겁니까?

존 스컬리(John Sculley)는 1939년생으로 스티브 잡스보다 16살이 많습니다. 그는 1970년대 펩시콜라의 부사장으로 코카콜라에 절대적으로 밀리던 브랜드인 펩시콜라를 최고의 브랜드로 키워낸 장본인으로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77년 펩시콜라라는 거대기업의 사장(President)에 오른 최고의 마케터였습니다.  그는 아직도 펩시콜라 사상 최연소 사장으로 오른 사람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선을 보였던 눈을 가리고 시음을 하고 맞추는 장면을 TV 광고로 만들어 내놓은 장본인이기도 하지요 ...

애플의 당시 CEO 는 여전히 공동창업자의 1인인 마이크 마큘라 였습니다.  그는 일선에서 퇴진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괴짜 엔지니어와 언제나 사람들하고 심하게 분쟁을 일으키는 2명의 다른 공동창업자들에게 회사를 맡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애플 II 의 성공이후 야심적으로 준비한 매킨토시의 성공을 위해서는 강력한 마케팅을 이끌어줄 최고의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애플에 있는 누구나가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점찍은 후보가 존 스컬리입니다.  그렇지만, 거액의 연봉과 미국 최고의 기업 중의 하나의 실세로서 애플과 같은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에서 일할 이유가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서부 실리콘 밸리에 있는 애플과 같은 회사들은 비즈니스 맨들에게는 다소 천박하고 가볍게 여겨졌었고, 너무 젊은 사람들이 물정을 모르고 사업을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기에 존 스컬리가 애플로 옮겨간 것 자체가 상당히 큰 뉴스가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마이크 마큘라와 상의를 하기는 했지만 존 스컬리를 애플로 스카웃한 장본인은 바로 스티브 잡스입니다.  존 스컬리가 스티브 잡스의 러브콜을 받아들여 애플로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스티브 잡스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는 것은 매우 유명한 일화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뉴욕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 존 스컬리를 초대하고, 발코니에서 자신보다 훨씬 나이도 많고 경력도 상대가 되지 않는 거물을 상대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평생토록 설탕물만 팔면서 살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꾸고 싶으십니까?

존 스컬리는 이 한마디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상당히 당돌하고 모욕적인 말이었지만,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도전정신을 자극하는 한 마디 ...  존 스컬리는 그렇게 애플이라는 배에 승선을 하게 됩니다.


폭풍우 속의 배를 항해하는 선장의 역할

존 스컬리가 애플에 승선을 한 뒤, 존 스컬리의 마케팅 능력과 스티브 잡스의 창의력이 빛을 발하면서 애플은 한동안 승승장구 합니다.  특히 존 스컬리는 애초에 $1,995 달러로 가격이 책정되었던 매킨토시의 가격과 시장에서의 포지션을 IBM PC 호환기종들과 다르게 가져가도록 수정하기 위해 $2,495 달러로 올면서 수익과 이를 바탕으로 한 프리미엄 마켓을 집중적으로 공격적인 광고 캠페인과 함께 공략합니다. 이 시기에 존 스컬리와 스티브 잡스가 함께 한 작품이 아래 임베딩한, 광고사에 길이 남는 역작인 "1984" 광고입니다.  이 광고는 미국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인 미식축구 슈퍼보울이 열린 1월 17일에 방영됩니다.  이 광고를 존 스컬리와 스티브 잡스는 너무나 만족스러워 했습니다.  그렇지만, 1983년 12월 애플의 이사회에서 이 광고에 대해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혹평을 하고 내보내지 말라는 의견을 피력합니다.  특히 스티브 워즈니액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렇지만, 스티브 잡스의 강력한 이사회 멤버들에 대한 설득으로 이 광고는 집행이 되었고, 커다란 반향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위기는 빨리 찾아왔습니다.  1984년 애플은 $15억 달러의 매출을 올립니다.  이는 1983년에 비해 55%나 늘어났지만, 이를 기점으로 심각한 판매부진과 함께 존폐를 논할 정도의 위기가 닥쳐 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존 스컬리는 비전만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달려 나가는 스티브 잡스를 애플에서 몰아냅니다.  

가장 큰 실책은 매킨토시 판매와 관련하여 과도하게 낙관적으로 판매를 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혁신적인 새로운 매킨토시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지만, 수 만대의 컴퓨터를 미리 생산해서 대기했던 것은 경영상의 큰 실책이었습니다.  8만대를 미리 준비했지만, 결국 1984년 2만대만 팔게 되자 애플은 곧바로 심각한 경영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가장 큰 원인은 매킨토시 제품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던 것에 있었습니다.  제품의 스펙이 경쟁제품을 압도한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과거 애플 II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수많은 소프트웨어의 호환성이 완전히 무시되었기에, 소프트웨어가 절대 부족했습니다.  1985년의 판매 데이터를 보면 아직도 애플 II의 판매에 의한 매출액이 70%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매킨토시에만 집중하는 경영진에 대한 불만으로 수많은 애플 II 디자이너들과 엔지니어들이 회사를 떠나기까지 합니다.  그 중에는 비행기 사고에서 애플을 떠났다가 다시 복귀한 스티브 워즈니액도 있었습니다.

매킨토시의 실적은 1985년 더욱 악화되어 단 2,500대 만을 팔았고, 이러한 부진에 대해 스티브 잡스는 다른 사람들을 심하게 나무라고 불평을 하면서 조직의 위해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매킨토시라는 컴퓨터 자체에 대한 자신의 잘못된 결정은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애플이라는 회사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책임을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에게 전가하려고 하자 결국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 때에는 이미 아무도 스티브 잡스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존 스컬리가 스티브 잡스를 쫓아낸 모양새가 되었으나, 당시의 스티브 잡스는 커다란 기업을 경영하는데 함량미달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스티브 워즈니액과 함께 사실 상의 애플의 전성시절을 같이 열었던 마이크 마큘라(Mike Markkula) 마저 스티브 잡스를 몰아내기로 결정을 하면서, 1985년 5월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이사회에 의해 회사의 주요 보직을 박탈당하고 그해 12월 결국 애플을 떠나게 됩니다.  이 때의 상처가 얼마나 컸던지,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애플의 주식 전부를 팔아버립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새로운 벤처 사업을 시작합니다.


침몰하는 애플의 회복

존 스컬리는 스티브 잡스가 떠난 뒤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합니다.  전체 직원의 20%에 이르는 인원을 해고하고, 여러 사업부로 흩어져있던 사람들을 하나의 통합된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비용을 엄청나게 줄였고, 매출 규모는 작아졌지만 비용구조가 좋아지면서 수익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 애플은 $19억 달러의 매출로 1985년보다 부진한 실적을 내지만, 애플에게 등을 돌렸던 소프트웨어 회사들을 설득해서 매킨토시용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하면서 애플이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데 성공합니다.  존 스컬리는 DTP(Desktop Publishing)라는 새로운 니치마켓에 집중을 했습니다.  매킨토시는 전체 PC 시장의 헤게모니를 쥘 수는 없었지만, 특정 시장에서는 강력한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매킨토시의 매출은 점점 증가하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탄탄하게 다지는데 성공을 하고, IBM에 이은 2위의 자리를 공고히 하면서 안정된 성장을 이룩합니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CEO의 자질이 달랐을 뿐     

존 스컬리는 1993년 애플을 떠나게 됩니다.  존 스컬리는 위기의 회사를 건져 올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거기까지 였습니다.  애플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려고 시작한 여러 프로젝트 들은 현실성이 부족했고, 너무 많은 제품들을 기획하는 등 첨단산업을 이끌고 나가는 것에 전통산업을 관리하고 기획하는 의사결정을 내림으로 인해 애플의 창의성과 독창성 등의 에너지를 폭발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이후 애플은 전통적인 산업에 밝았던 몇 명의 CEO들에 의해서도 죽어가는 공룡의 모습으로 근근히 버텨나가기만 하다가, 스티브 잡스가 돌아오면서 다시 한 번 그들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나던 시절의 그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비젼과 창의성 및 특유의 카리스마 뿐만 아니라 관리방식과 경영, 팀 플레이, 경영 자체에 대한 경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것들을 갖춘 거의 완성된 CEO로 돌아왔기에 애플이 다시 부활의 날개짓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스티브 잡스 대신 존 스컬리가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났다면 오늘의 애플이 있었을까요?  그랬다면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함께 이미 오래전에 실패의 나락으로 빠졌을 것입니다.  존 스컬리가 당시에 애플을 맡아서 사태를 수습하고, 이 과정 속에 스티브 잡스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돌아올 수 있게 되었던 일련의 과정이 오늘날의 애플의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과장일까요?


(후속편에 계속 ...)


참고자료:

John Sculley at Wikipedia
John Sculley and Steve Jobs by Martin Groeger
How John Sculley Saved Apple From Steve Jobs by Rob Beschiz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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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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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애플이 다시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회사가 되면서, 애플이라는 회사와 스티브 잡스(Steve Jobs)에 대해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더구나 애플이 스티브 잡스가 복귀한 이후에 이렇게 큰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었기에 더욱 이야기 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스티브 잡스를 애플에서 쫓아낸 존 스컬리(John Sculley)의 경우, 극단적인 사람들은 애플이라는 기업은 최고의 CEO와 최악의 CEO를 동시에 배출하였다고 하면서 애플을 망친 장본인으로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연 존 스컬리가 이렇게까지 능력도 없고, 애플을 망쳐버린 장본인이었을까요? 


평생 설탕물만 팔면서 살겁니까?

존 스컬리는 펩시 콜라의 부사장으로 코카콜라에 절대적으로 밀리던 브랜드인 펩시콜라를 최고의 브랜드로 키워낸 장본인으로 거액의 연봉과 미국 최고의 기업 중의 하나의 실세로서 애플과 같은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에서 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서부 실리콘 밸리에 있는 애플과 같은 회사들은 비즈니스 맨들에게는 다소 천박하고 가볍게 여겨졌었고, 너무 젊은 사람들이 물정을 모르고 사업을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기에 존 스컬리가 애플로 옮겨간 것 자체가 상당히 큰 뉴스가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존 스컬리가 스티브 잡스의 러브콜을 받아들여 애플로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스티브 잡스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는 것은 매우 유명한 일화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뉴욕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 존 스컬리를 초대하고, 발코니에서 자신보다 훨씬 나이도 많고 경력도 상대가 되지 않는 거물을 상대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평생토록 설탕물만 팔면서 살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꾸고 싶으십니까?

존 스컬리는 이 한마디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상당히 당돌하고 모욕적인 말이었지만,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도전정신을 자극하는 한 마디 ...  존 스컬리는 그렇게 애플이라는 배에 승선을 하게 됩니다.


폭풍우 속의 배를 항해하는 선장의 역할

존 스컬리가 애플에 승선을 한 뒤, 존 스컬리의 마케팅 능력과 스티브 잡스의 창의력이 빛을 발하면서 애플은 한동안 승승장구 합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위기는 빨리 찾아왔습니다.  1984년 애플은 $15억 달러의 매출을 올립니다.  이는 1983년에 비해 55%나 늘어났지만, 이를 기점으로 심각한 판매부진과 함께 존폐를 논할 정도의 위기가 닥쳐 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존 스컬리는 비전만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달려 나가는 스티브 잡스를 애플에서 몰아냅니다. 

가장 큰 실책은 매킨토시 판매와 관련하여 과도하게 낙관적으로 판매를 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혁신적인 새로운 매킨토시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지만, 수 만대의 컴퓨터를 미리 생산해서 대기했던 것은 경영상의 큰 실책이었습니다.  8만대를 미리 준비했지만, 결국 1984년 2만대만 팔게 되자 애플은 곧바로 심각한 경영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가장 큰 원인은 매킨토시 제품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던 것에 있었습니다.  제품의 스펙이 경쟁제품을 압도한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과거 애플 II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수많은 소프트웨어의 호환성이 완전히 무시되었기에, 소프트웨어가 절대 부족했습니다.  1985년의 판매 데이터를 보면 아직도 애플 II의 판매에 의한 매출액이 70%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매킨토시에만 집중하는 경영진에 대해 수 많은 애플 II 디자이너들과 엔지니어들이 회사를 떠나기까지 합니다.

매킨토시의 실적은 1985년 더욱 악화되어 단 2,500대 만을 팔 수 있었고, 이러한 부진에 대해 스티브 잡스는 다른 사람들을 심하게 나무라고, 불평을 하면서 조직의 위해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매킨토시라는 컴퓨터 자체에 대한 자신의 잘못된 결정은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애플이라는 회사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책임을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에게 전가하려고 하자 결국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 때에는 이미 아무도 스티브 잡스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존 스컬리가 스티브 잡스를 쫓아낸 모양새가 되었으나, 당시의 스티브 잡스는 커다란 기업을 경영하는데 함량미달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스티브 워즈니액과 함께 사실 상의 애플의 전성시절을 같이 열었던 마이크 마큘라(Mike Markkula) 마저 스티브 잡스를 몰아내기로 결정을 하면서, 1985년 5월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이사회에 의해 회사의 주요 보직을 박탈당하고 그해 12월 결국 애플을 떠나게 됩니다.  이 때의 상처가 얼마나 컸던지,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애플의 주식 전부를 팔아버립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새로운 벤처 사업을 시작합니다.


침몰하는 애플의 회복

존 스컬리는 스티브 잡스가 떠난 뒤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합니다.  전체 직원의 20%에 이르는 인원을 해고하고, 여러 사업부로 흩어져있던 사람들을 하나의 통합된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비용을 엄청나게 줄였고, 매출 규모는 작아졌지만 비용구조가 좋아지면서 수익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 애플은 $19억 달러의 매출로 1985년보다 부진한 실적을 내지만, 애플에게 등을 돌렸던 소프트웨어 회사들을 설득해서 매킨토시용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하면서 애플이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데 성공합니다.  존 스컬리는 DTP(Desktop Publishing)라는 새로운 니치마켓에 집중을 했습니다.  매킨토시는 전체 PC 시장의 헤게모니를 쥘 수는 없었지만, 특정 시장에서는 강력한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매킨토시의 매출은 점점 증가하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탄탄하게 다지는데 성공을 하고, IBM에 이은 2위의 자리를 공고히 하면서 안정된 성장을 이룩합니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CEO의 자질이 달랐을 뿐    

존 스컬리는 1993년 애플을 떠나게 됩니다.  존 스컬리는 위기의 회사를 건져 올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거기까지 였습니다.  애플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려고 시작한 여러 프로젝트 들은 현실성이 부족했고, 너무 많은 제품들을 기획하는 등 첨단산업을 이끌고 나가는 것에 전통산업을 관리하고 기획하는 의사결정을 내림으로 인해 애플의 창의성과 독창성 등의 에너지를 폭발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이후 애플은 전통적인 산업에 밝았던 몇 명의 CEO들에 의해서도 죽어가는 공룡의 모습으로 근근히 버텨나가기만 하다가, 스티브 잡스가 돌아오면서 다시 한 번 그들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나던 시절의 그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비젼과 창의성 및 특유의 카리스마 뿐만 아니라 관리방식과 경영, 팀 플레이, 경영 자체에 대한 경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것들을 갖춘 거의 완성된 CEO로 돌아왔기에 애플이 다시 부활의 날개짓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스티브 잡스 대신 존 스컬리가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났다면 오늘의 애플이 있었을까요?  그랬다면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함께 이미 오래전에 실패의 나락으로 빠졌을 것입니다.  존 스컬리가 당시에 애플을 맡아서 사태를 수습하고, 이 과정 속에 스티브 잡스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돌아올 수 있게 되었던 일련의 과정이 오늘날의 애플의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과장일까요?


참고자료:

John Sculley at Wikipedia
John Sculley and Steve Jobs by Martin Groeger
How John Sculley Saved Apple From Steve Jobs by Rob Beschiz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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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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