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 마피아 멤버들. 비노드 코슬라, 빌 조이, 앤디 벡톨샤임, 스캇 맥닐리 from liveandventure.com



앞선 편에서 언급한 자바를 만들어낸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는 2009년 오라클에 인수되며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회사가 되었지만,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초창기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요 인물들은 실리콘 밸리의 역사전반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막강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향후 구글의 CEO가 되는 에릭 슈미트가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CTO 출신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천재 프로그래머 빌 조이에 대해서는 이 연재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다. 이들을 제외하고도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막강한 멤버들의 영향력을 감안해서 실리콘 밸리의 한국계 벤처투자가이기도 한 Phil Yoon 님은 자신의 블로그 Live & Venture를 통해 이들을 "썬 마피아"로 표현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한 글이 있다. 이번 편에서는 Live & Venture 블로그에서 소개된 썬 마피아 멤버들 중 일부를 소개한다. 원문은 아래 참고자료에 링크된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연관글:


앤디 벡톨샤임 (Andy Bechtolsheim), 비노드 코슬라 (Vinod Khosla) 그리고 존 도어 (John Doerr)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 창업자는 모두 4명이지만, 앤디 벡톨샤임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는 독일태생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공부하다가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SUN이라는 워크스테이션 컴퓨터를 디자인하였는데, 이것을 이용해서 창업을 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1982년 시작된 회사가 바로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이다. 그는 1995년까지 썬에서 일을 하였는데, 하드웨어 디자인을 총괄하였다. 썬을 떠난 이후에는 세계 최고의 네트워크 장비회사인 시스코(Cisco)의 부사장으로 일하면서 동시에 엔젤투자자로도 활동하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투자가 바로 절친이었던 스탠포드 대학의 데이비드 체리턴(David Cheriton) 교수의  제자였던 두 명의 박사과정 학생의 회사에 대한 투자이다. 앤디 벡톨샤임은 한 눈에 이 학생들의 서비스의 가치를 알아보고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즉석에서 끊어주었는데, 이 투자가 전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고 자신에게도 수십 억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부로 돌아오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회사가 바로 구글이다. 앤드 벡톨샤임의 구글에 대한 이 투자는 벤터 투자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자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비노드 코슬라는 인도의 IIT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서 의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스탠포드 대학에서 MBA 공부를 마친 재원이었다. 그는 데이지시스템이라는 반도체 디자인 소프트웨어 회사를 다니던 중 앤디 벡톨샤임을 만나 썬 마이크로시스템스 창업에 동참하였다. 그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초창기인 1982년부터 CEO로 일을 하였는데, ICT 회사의 경영보다는 역시 벤처투자가 적성에 맞았는지 2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벤처투자자의 길을 걷게 된다. 1986년 그는 실리콘 밸리 최고의 벤처캐피탈인 KPCB에 합류하였고, 여기에서 성공적인 투자경력을 쌓았으며, 명쾌한 강의와 활발한 외부활동을 통해 자신의 개인 브랜드도 쌓아서 2004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코슬라 벤처스(Khosla Ventures)라는 벤처캐피탈을 설립하였다. 코슬라 벤처스는 주로 ICT와 환경과 관련한 기업에 투자를 많이 하는 곳으로 실리콘 밸리의 주요 벤처캐피탈로 그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으며, 여전히 활발한 외부활동을 하면서 많은 창업가와 투자자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고 있는 인물이다. 

존 도어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 직접 일을 한 인물은 아니지만,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에 직접 투자를 하면서 커다란 성공을 한 인물이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스가 아니더라도 그는 벤처투자 업계에서 전설적인 투자자로 명성을 쌓았다. 그가 투자해서 성공한 회사는 일일히 열거하기가 힘든 정도인데, 그 중에서 크게 성공한 회사의 일부만 나열하면 썬 마이크로시스템스, 넷스케이프, 아마존, 구글 등을 꼽을 수 있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투자가 그 중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있었기 때문인지, 이후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멤버들인 비노드 코슬라와 빌 조이를 자신이 있는 KPCB로 영입하기도 했는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노드 코슬라는 벤처투자자로서도 크게 성공하였다. 


에릭 슈미트 (Eric Schmidt)와 캐롤 바츠 (Carol Bartz)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의 경력 이후 앤디 벡톨샤임과 비노드 코슬라 등이 투자자로서 유명해졌다면, 에릭 슈미트와 캐롤 바츠는 경영자로서의 실리콘 밸리의 성공신화를 이어갔다. 에릭 슈미트는 앞선 연재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자신의 커리어를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 처음 성공적으로 그려 나갔다. 에릭 슈미트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창업자 중의 한 명이자 최고의 개발자였던 빌 조이와 대학원에서 친구라는 인연으로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이후 자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CTO 자리까지 올랐고, 노벨의 CEO를 거쳐 구글의 CEO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에릭 슈미트가 구글의 CEO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에는 KPCB의 존 도어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던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에릭 슈미트와 구글의 성공에도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간접적인 영향력이 매우 컸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에릭 슈미트와 함께 썬 마이크로시스템스 출신으로 성공적인 경영자 경력을 쌓은 인물이자, 실리콘 밸리의 여성 CEO 파워를 이야기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캐롤 바츠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초창기부터 일을 시작해서 세계총괄 영업/기술지원을 총괄하는 부사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캐롤 바츠의 커리어가 가장 빛난 것은 1992년 CEO로 자리를 옮긴 오토데스크(Autodesk)에서였다. 그녀는 오토데스크의 CEO로서 일한 14년간 회사의 매출을 3억 달러에서 15억 달러로 5배나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다. 그녀와 관련한 일화도 실리콘 밸리에서 여러 개 전해지는데, 여성으로서 매우 거친 입담의 소유자로 다양한 이야기들도 알려져 있지만 무엇보다 오토데스크 CEO로 부임하기 며칠 전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 후 힘든 함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오토데스크에서 풀타임 하면서 암을 이겨낸 이야기는 전설적으로 전해진다. 그렇지만, 많은 기대를 안고 선임된 야후!에서의 CEO 경력은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서 그녀의 CEO 경력에 오점을 남겼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에는 그 밖에도 공동창업자이면서 동시에 CEO로 22년을 재직하면서 대표적인 얼굴로 자리매김한 스캇 맥닐리, 천재 프로그래머이자 BSD 유닉스의 개발자로 이 연재에서도 몇 차례 언급한 빌 조이 등 오늘날 실리콘 밸리를 뒤흔드는 페이팔 마피아와 비교하더라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인물들을 배출한 회사이다. 비록 이제는 오라클에 인수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이름은 썬 마피아들의 이름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언급될 듯하다.


참고자료:



P.S. 이 시리즈는 이제 책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총 60편으로 진행될 연재가 모두 끝나고, 일부 내용의 윤문과 색인작업까지 마친 책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는 국내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대부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책을 보시면 더욱 좋겠구요. 여력이 안되는 학생들이나 여유롭게 블로그를 읽는 것이 더 좋으신 분들은 1주일에 1차례 정도 앞으로도 계속 업데이트를 할 예정이니, 블로그를 구독하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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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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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 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서클에 집어넣은 사람은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라고 하지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현재 Google+ 에서 가장 좋은 글도 올리고, 이 서비스의 재미를 제일 크게 느끼게 해주는 사람은 바로 마이스페이스의 공동창업자인 톰 앤더슨(Tom Anderson)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스페이스에 가입하면 언제나 가장 먼저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서 이런저런 팁을 주는 친구(물론 자동화된 아바타였겠지만)의 역할도 했던 사람이지요.

그의 Google+ 글이 재미있는 것은 딱딱한 뉴스들보다는 자신의 마이스페이스 경영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거 이야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글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종 과거에 있었던 알려지지 않았던 비사나 에피소드 등을 간혹 소개하는데 최근에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마이스페이스와 페이스북과 연관된 매우 중요한 시기의 역사 이야기를 한 것이 있어서 이를 소개할까 합니다.

마이스페이스의 흥망성쇠에 대해서는 제가 출간한 "거의 모든 IT의 역사"에서도 많이 다룬 바 있고, 블로그에도 내용이 공개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글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연관글:
2010/11/29 - 거의 모든 IT의 역사 (73): 마이스페이스 이야기
2010/12/24 - 거의 모든 IT의 역사 (79): 루퍼트 머독, 마이스페이스를 망치다.


위의 글을 보시면 마이스페이스를 몰락으로 이끈 유명한 계약이 하나 언급이 됩니다. 2005년 마이스페이스를 인수한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은 2006년 8월 구글과 $9억 달러 규모의 검색광고 계약을 맺게 되는데, 이 계약의 조건을 지키려고 마이스페이스가 무리를 하게 되고, 그 때문에 수많은 사용자들이 떠나게 되지요. 톰 앤더슨은 이 때의 상황에 대해서 우리들이 알고 있지 못했던 재미있는 비사를 이야기 했습니다.

2006년 계약을 주도했던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는데, 원래의 계약협상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진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협상이 잘 진척이 되어서 거의 성사 직전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 상대편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담당자가 누구였을까요?  그는 바로 현재는 구글로 넘어와서 크롬과 Google+ 라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고, 당시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젊은 리더로서 명성을 날리던 빅 군도트라(Vic Gundotra) 였다고 합니다. 이 때의 협상이 결렬되고 빅 군도트라는 마이크로소프트를 그만두고, 1년 뒤에 구글에 입사를 하게 되지요. 그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의 포스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연관글:
2011/01/21 - 거의 모든 IT의 역사 (85) - 떠나버린 마이크로소프트의 인재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상이 끝나고, 이제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톰 앤더슨은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바로 구글의 투자자이자 가장 중요한 이사회 멤버 중의 하나이고, 최고의 벤처 캐피탈리스트로 불리는 KPCB의 존 도어(John Doerr) 였습니다. 그에게 마이스페이스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상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를 하자마자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구글은 헬리콥터를 띄워서 뉴스코퍼레이션으로 날아갑니다. 그리고, $9억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을 제시하였던 것이죠. 워낙 커다란 액수였기에 뉴스코퍼레이션은 이 계약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 안에 들어있던 조건이 까다로워서 결국 마이스페이스는 이 계약에 매여서 수많은 사용자들이 떠나게 만듭니다.

톰 앤더슨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시했던 계약은 비록 액수는 그보다 작았지만 조건이 훨씬 유연하고 마이스페이스가 많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었기에, 구글대신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계약을 했다면 마이스페이스의 미래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후의 운명들입니다.

결국 이 계약이 성사가 되지 않으면서 빅 군도트라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서 1년 뒤에 구글에 합류를 했는데, 그의 손에서 크롬과 Google+ 라는 구글의 검색 이후 최고의 프로젝트 들이 탄생합니다. 구글은 엄청난 인재를 얻게 되었고, 톰 앤더슨은 빅 군도트라와 함께 Google+ 를 지원하는 큰 우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톰 앤더슨이 존 도어를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첫 만남에 단 한 시간동안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계약의 물고가 바뀌었던 것이지요. 만약 마이크로소프트와 마이스페이스가 계약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이후 페이스북이 투자를 받으려고 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을 것이고, 반대로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이기기 위해서 과감한 베팅을 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지고 있는 페이스북의 지분은 구글의 차지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고, 페이스북과 구글이 연합을 하는 엄청난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마이스페이스의 상황이 현재와는 달랐겠지만 말입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하는데, 역사에 있어서도 한 순간의 거래가 당장의 판도를 바꾸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만, 길게 보았을 때에는 반대의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은 듯 합니다. 재미있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군요.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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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국지, 오늘도 구글의 초기 창업시절 이야기 입니다.


놀이터형 회사의 탄생

초기 구글이라는 회사와 두 명의 창업자의 비전을 믿고 선뜻 투자를 했던 초기 투자자 네 명에게 받은 100만 달러와 일부 소액 투자자 등에게서 조달한 돈이 있었지만 구글이라는 회사는 수익이 거의 없었습니다.  최초의 수익은 당시 공짜 오픈소스 운영체제로 유명했던 리눅스(Linux)를 배포하는 레드햇(RedHat)이라는 회사에게 검색결과를 제공하기로 계약하고 한달에 2천 달러를 받기로 한 것과 일부 사이트에 구글 검색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매우 적은 사용료를 받은 것이 전부 였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의 확장속도는 상상을 초월하였고, 매일 검색 수는 수만 건에 달하면서 네트워크 트래픽과 서버비용이 모두 크게 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구글의 장점이었던 빠른 검색역시 트래픽과 정보량의 증가로 인해 3~4초씩 걸리는 등 그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엔지니어들과 투자가 필요했는데, 차고는 비좁아서 더 이상 이들이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1999년 구글은 차고에서 나와서 팔로알토(Palo Alto) 도심에 있는 2층 건물로 옮겨서 엔지니어를 고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 누구나 새벽까지 먹을 수 있는 각종 간식과 회의실에서 마사지 서비스를 하고, 회의탁자를 겸해서 녹색 탁구대를 구매하는 등 회사를 거의 놀이터화하기 시작하였고, 직원들이 먹고, 놀고, 마시면서 일을 하는 현재의 구글의 원시적인 캠퍼스 형태가 탄생합니다.


미국의 벤처캐피탈, 구글의 진가를 알아보다.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 구글이었지만, 그들의 비즈니스는 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것이었고, 인터넷은 너무 빨리 커지고 있었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의 수혈이 필요했습니다.  이 작업을 위해 총대를 맨 것은 초기 투자자인 람 슈리람이었습니다.   슈리람은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캐피탈이자 IT 삼국지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양대산맥인 세콰이어 캐피탈과 KPCB(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를 연결합니다.  

KPCB 는 인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 컴팩, 넷스케이프, 아마존 등에 투자를 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세콰이어 캐피탈은 시스코, EA, 오라클, 야후, 그리고 애플에 투자한 회사입니다.  두 회사모두 투자자금을 모을 때부터 아주 한정된 사람들이 아니면 돈을 낼 기회조차 주지않을 정도로 커다란 명성을 가진 곳들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두 회사의 스타일은 매우 달랐습니다.  KPCB는 건물도 화려하고, 급진적이며 세련된 이미지를 준다면, 세콰이어 캐피탈은 오래된 빌딩에서 매우 보수적인  올드보이 분위기를 풍깁니다.  그래서인지, KPCB는 미래가치를 높이보는 편으로 위험이 있더라도 향후 높은 가치를 돌려줄 수 있는 회사에 투자하는 경향이 있고, 세콰이어 캐피탈은 보다 현실적이고 사업내용이나 계획, 그리고 경영자 등을 꼼꼼하게 살펴본다고 합니다.

구글의 상대를 맡은 사람은 KPCB의 존 도어(John Doerr)와 세콰이어 캐피탈의 마이클 모리츠(Michael Moritz) 였습니다.  존 도어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 로터스, 컴팩, 넷스케이프 등의 투자를 결정하면서 업계 최고의 평가를 받는 자리에 올라선 사람이고, 마이클 모리츠는 옥스포드 출신으로 <타임>지의 기자 출신입니다. 마이클 모리츠의 경우 애플의 취재를 담당했다가 스티브 잡스의 독선적인 스타일을 비판하는 기사를 써서 스티브 잡스가 실제로 눈물을 흘리면서 엄청나게 화를 내게 만든 장본인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랬던 그가 애플의 가장 중요한 투자자인 세콰이어 캐피탈의 파트너로서 일을 하게 된 것도 재미있는 일화입니다.  마이클 모리츠는 야후와 페이팔(PayPal)에 대한 성공적인 투자로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이들은 구글의 두 창업자와의 미팅을 통해 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그들의 비전에 홀딱 반하게 되고, 투자를 하겠다고 결정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KPCB와 세콰이어 캐피탈은 서로 상대방이 투자한 회사에게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투자만 받으라고 구글의 두 창업자들을 설득하지만, 이들은 둘 모두에게 받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그런데, 구글의 현재 평가액을 $1억 달러로 두 벤처캐피탈이 공히 매긴 것이 돌파구를 찾아줍니다.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제3의 벤처캐피탈이 $1.5억 달러로 평가를 해준다면서, 둘 다 투자하지 않는다면 다른 곳으로 가겠다는 세르게이 브린의 으름짱이 먹혀들면서 양쪽이 사상 처음으로 동시에 투자를 하게 된 것입니다.


1999년 6월 7일, 실리콘밸리의 양대 벤처캐피탈이 구글이라는 신생회사에게 각각 $1250만 달러 씩 $25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지분을 25% 확보했다는 뉴스가 결국 세상에 나오면서, 공동 기자회견도 하는 등 한 순간에 스타 벤처기업으로서의 길을 구글이 열어가게 되었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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