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의 환경에서는 협업이 가능한 작은 기업들의 영향력도 커질 수 밖에 없다. 작은 기업들은 큰 기업들보다 변화의 적응속도가 빠르며, 혁신의 힘도 강한 경향이 있다. 이들의 역량을 쉽게 받아들여서 같이 커져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협업체계를 갖춘 대기업-중소기업-소비자 그룹은 또 다른 대기업-중소기업-소비자 그룹과 경쟁하는 일종의 컨소시엄 대결구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많으며, 결국 이들의 경쟁은 컨소시엄의 혁신성과 협업의 역량총합에 따라 승패가 갈리게 될 것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볼 수 있는 "애플 + 독립 컨텐츠 사업자 + 강력한 지지 소비자군 vs. 구글 연합군"의 구도로 결국 이들의 총체적인 협업의 힘과 시스템의 효율에 의한 경쟁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내부역량의 강화와 이러한 경영변화를 끌어나갈 수 있는 개방형 리더십(open leadership), 소비자 중심의 경영기획전략 디자인 방법 등도 필요하다.  


대량생산 체제의 붕괴
 
미래사회의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가 바로 기존의 대량생산 체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정해진 품목에 대해 대량생산을 하고, 이로 인한 원가절감과 가격경쟁력이 중요했다.  현재도 이러한 패러다임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지만, 미래는 점점 다품종 소량생산 및 롱테일(Long Tail)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수요에 입각한 비즈니스가 더욱 활성화 될 것이다. 이러한 탈대량화 현상은 과거에 중요시되었던 공정과 부품, 근로조건 및 임금 등에 이르는 전반적인 사회현상의 규격화의 중요성도 무너뜨리고 있다. 각각의 생산라인과 자신의 역할에 따라 일을 수행하는 분업과 전문화의 철칙도 무너지고 있다. 과거에는 깨기 어려워 보였던 프로페셔널리즘도 붕괴되고 있다. 인터넷의 개방성과 검색 등을 통해 비전문가로 여겨졌던 사람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블로그를 통해 철저히 직업적인 기자들의 영역으로 생각되었던 저널리즘과 미디어에 아마추어 블로거들의 참여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프로페셔널리즘의 붕괴는 한두 가지 직업군에 국한되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유명한 개방형 플랫폼(open platform) 지지자 중의 한 명인 조너선 지트렌(Jonathan Zittrain)은 인터넷과 웹의 창조적인 힘은 결국 개방형 플랫폼에서 나오며, 누구에게 허락을 받거나 통제를 받지 않고 어떠한 형태의 아이디어나 생각 또는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으며, 국경이 없는 인터넷의 개방성의 힘에 대한 강의로 유명하다. 이와 같은 개방 지상주의가 최근 인터넷의 주류적인 사상이라는 것은 모두들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전체적인 변화에 제동을 걸고 있는 회사가 일으키는 실험이 모두에게 다시 한 번 새로운 고민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 그 회사가 바로 애플이다.  


통제가 개방을 이긴다?

애플의 앱 스토어는 역사상 가장 통제가 강력한 소프트웨어 플랫폼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모든 애플리케이션들이 판매에 앞서 애플이라는 회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구매행위 역시도 애플이 제공하는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이제는 개발도구 제한까지 있으니, 개발하는 방법까지도 애플이 통제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통제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플랫폼이 역사상 최고의 성공적인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미 수십 만개의 앱들이 수년 정도의 기간 동안 쏟아져 나왔고, 아이폰은 전화기라는 틀을 넘어서 전자책 리더이자 여러 가지 기계들에 대한 컨트롤러, 전자음악 악기, 게임기 등의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글자 그대로 대박신화를 계속 써가고 있다. 여기에 과거라면 마땅히 비난받아야 할 통제적인 정책에 대해서도 수많은 개인 및 소규모 기업들의 개발자들은 별다른 저항없이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막연히 개방형 플랫폼(open platform)이 우수하고, 통제하는 방식은 결국 창조성과 혁신에 방해가 된다는 기존의 믿음과는 반대되는 결과이다. 어쩌면 적당한 통제와 갇힌 구조가 되려 창조성과 혁신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앱 스토어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올까요? 현재까지의 성공을 바탕으로 "통제가 개방을 이긴다"고 말하는 것은 더욱 잘못된 판단을 이끌어낼 수 있다.  특히나 우리나라 대기업들처럼 통제에 익숙한 곳들에게 통제가 좋다는 잘못된 오해를 하게 만들어서는 더욱 문제일 수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앱 스토어의 경쟁력은 인간의 심리구조상 복잡함을 싫어하고, 단순한 결정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에 핵심이 있다고 본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단일 지불구조를 채택한 애플 아이튠즈를 통해서 한 번의 터치와 패스워드 입력만으로 앱을 구매할 수 있으며, 특히나 가격이 비싸지 않은 $3 달러 이내의 앱들 같은 경우에 사람들이 쉽게 구매를 결정하여 크게 부담되지 않게 이용하다가 버리기도 하고, 다시 생각나면 추가적인 비용 없이 재설치 할 수 있는 과정이 크게 어필을 한다. 또한, 앱 스토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랭킹 및 선택의 고민을 줄여주는 요소를 도입했는데, 여기에 베스트셀러만 많이 팔리는 히트 구조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짧은 주기의 실시간 랭킹 변화와 다양한 카테고리 도입을 통해 판매가 되는 앱의 수를 다변화시킬 수 있도록 함으로써 중소규모 개발회사 및 개발자들에게도 앱 스토어 활성화의 과실을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눈에 띈다. 다시 말해, 원 터치로 싼 앱을 실시간으로 간단하게 다운받아서 쓸 수 있도록 하고, 중소 개발사들이 쉽게 이익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 세심한 배려가 잘 나가는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싼 가격의 신기한 앱이 눈에 보이면, 쉽게 사서 테스트할 수 있는 믿음이 앱 스토어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애플의 검열를 통해 아마도 바이러스나 사용자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이상한 앱들이 올라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으며, 최소한 시스템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하드웨어 플랫폼이 아니라 하나의 하드웨어 플랫폼과 개발방법을 적용하면 된다는 것도 비용 측면에서 큰 이익이 된다. 그렇지만, 앱의 승인 과정이나 매출 등에 대한 분배과정, 그리고 개방형 혁신을 쉽게 적용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통제 자체를 좋아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분명히 개방에 의한 혁신 가능성이 차단된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또한, 애플이라는 회사의 이익에 반하거나 상당히 정치적인 이유가 통제에 악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깔아놓은 안정된 시장과 구조에 있어 개발자나 소비자 모두  통제된 플랫폼이라도 애플의 품을 벗어나서 그를 뛰어넘는 편익이 없다고 판단되는 동안에는 애플의 정책은 별로 바뀌지도 않을 것이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개방형 플랫폼의 철학은 여전히 강력하다고 믿고 있다. 아무리 애플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를 한 회사가 장악할 수 있을 만큼 세상이 우습지는 않다. 모든 것을 통제된 환경에서 만들고, 유통시키는 한 애플의 성장성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안드로이드가 설치된 스마트 폰과 태블릿들이 점점 시장에 많이 나오고 있다. 현재 애플의 앱 스토어에 참여하고 있는 개발사들이나 개발자들이 지나치게 많아진다면 그만큼 나눠먹을 파이는 적어질 수 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2차 마켓을 노리는 개발자들이 늘어날 수 밖에 없고 현재도 그 수는 증가하고 있다. 또한, 개방형 플랫폼 특유의 개방형 혁신을 일으키는 기업이나 소프트웨어 등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고, 하드웨어 제조사들 중에서도 정말 뛰어난 회사가 나올 수 있다.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장수들의 출현을 기대하며 ...

"거의 모든 IT의 역사"에 등장한 많은 기업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결국에는 이러한 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먼저 깨닫고, 여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서 고객과 사회적 가치를 많이 만들어내는 기업들이 승리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의 구도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예측하기가 힘들다. 또한, 앞으로 어떤 기업들이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게 될 것인지도 무척 궁금하다. 그러나, 사회의 발전방향이나 미래로의 변화양상은 비교적 명확하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 10년 정도 뒤에는 우리나라의 기업 중에서 완전한 주인공은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변방에라도 출현해서 칼을 휘두르는 장수와 나라를 언급할 수 있는 수준의 철학을 보여주는 곳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현재의 제조업 기반의 따라잡기와 원가절감의 패러다임으로는 어렵다. 이제는 이런 분야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에 와있지 않은가? 우리도 새로운 철학과 패러다임을 만들고, 이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은 이미 쌓았다. 매출액이 어마어마하고 덩치가 커졌다는 뉴스보다는, 세상을 바꿀만한 패러다임을 내놓는 그런 기업이 국내에서도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P.S. 100편 까지의 연재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이 연재는 단행본으로 출판이 되었습니다. 블로그 연재를 보셔도 좋지만, 처음부터 모든 내용을 보시고 싶은 분들은 책이나, 전자책, 그리고 아이폰 앱북 등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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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받은 트랙백이 없고 ,

웹 기반의 운영체제, 클라우드 컴퓨팅의 기본개념은 이미 10년전 NC(Network Computer)라는 개념으로 소개되었던 적이 있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접근 방법이다.  특히 구글의 전 CEO인 에릭 슈미트가 과거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CTO 시절에 이를 처음으로 주창했던 사람이라는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에는 많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10년 전과 지금이 무엇이 달라졌을까? 바로 네트워크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스마트 폰이 들어오면서 유무선 네트워크, 심지어는 3G/4G로 일컬어지는 음성/데이터 통신 네트워크 통합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국내 스마트 폰들도 무선 인터넷 뿐만 아니라, 와이브로, 3G 네트워크를 마음대로 선택해서 연결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고 있으며, 그 가격도 무척 저렴해지고 있다. 스마트 폰은 기본적으로 무조건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 연결이 안되면 쓸 수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태블릿이나 넷북 역시 마찬가지이다. 주변에 Wi-Fi가 있으면 이를 자동으로 잡아 쓰고, 와이브로 지역에서는 와이브로를, 아니면 3G/4G 네트워크를 잡아쓰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터넷 불통지역이 없어지는 것이고, 통합요금제가 활성화되면서 이런 환경이 자연스럽게 구축될 것이다.


구글이 바라보는 웹 운영체제의 미래

구글은 이러한 환경변화를 염두에 두고, 5~10년 뒤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패러다임 변화를 이끄는 운영체제와 새로운 디지털 컨버전스 기기들을 이끌어가는 선봉의 역할을 하기 위해 운영체제 및 클라우드를 만들고 있다. 초기 1~2년 간 아마도 실망스러운 모습도 많이 보이게 될 것이고, 클라우드에 있는 웹 앱들의 완성도도 떨어져 보일 것이다. 하지만 HTML5를 구현한 브라우저 기술들이 점점 발전하고, 개방형 웹 앱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하게 될 3~4년 후의 환경을 지금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래는 도도한 흐름을 읽고 이를 준비하는 자에게 돌아간다. 구글이 유튜브를 거액에 인수하고, 수년 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감내하고 추가적인 투자를 할 때, 주변에서는 구글이 정말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고 하면서 수근거렸다. 그렇지만, 결국 콘텐츠의 중심이 동영상으로 옮겨가고 있다. 2011년 유튜브는 드디어 흑자를 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2009년 에릭 슈미트는 향후 5년 간을 전망하면서 유튜브가 구글의 가장 중요한 수익원이 될 것이라고 밝힌 적도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혁신의 키워드는 "쉽고 싼 혁신 (Cheap and Easy Innovation)" 이다.  구글이 노리는 혁신도 역시 "쉽고 싼 혁신"이 중심이 될 것이다. 앞으로 다양한 태블릿들이 $150 달러가 안 되는 가격으로 출시될 것이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이 정도 가격에 인터넷이 가능한 7인치 이상의 크기를 가진 기기를 쓰게 되리라 상상해 보았는가?  이런 것이 현실화 되면서 이를 응용한 다양한 디지털 컨버전스 기기들이 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구글이 일으키는 혁신의 방향은 애플이 취하고 있는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10년 아니, 5년 뒤 정도만 바라보자.  구글의 전략에는 도도한 흐름이 있다.  이러한 세상의 흐름에 맞추어 클라우드 컴퓨팅과 관련한 모든 것들을 준비해온 회사이다. 이들의 도전은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고, 그 결과는 5년 뒤가 되면 나타날 것이다. 이제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도 전체의 흐름을 읽고 하나의 전쟁에서 맞서 있다.  여기에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 인프라를 이끄는 회사들도 있다. 이들 중에서 단기간의 성공에 눈이 어두워서 이런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혁신을 하지 않으면, 과거 무너져간 거대한 공룡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될 것이다. 

구글은 어쩌면 이렇게 원대한 꿈을 실현에 옮기면서 모든 것을 공짜로 제공하는 모델을 이용했기 때문에, 언젠가 현재의 광고수익 모델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가 급격하게 위험에 빠질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구축한 클라우드 클러스터와 서비스들, 그리고 혁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구글이라는 회사가 망할 수는 있어도, 이들의 혁신은 결국 IT 역사의 발전에 있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정보화 사회, 결국 주권은 바뀌지 않았다.

20세기 중반이 되면서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방과 학술, 금융과 같은 산업에 주로 엄청난 비용의 대형 컴퓨터들이 보급되면서 컴퓨터를 이용해서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복잡한 일을 해내는 등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애플 II 를 위시로 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열리면서 사무자동화(Office Automation)라는 용어가 유행을 하게 되었고, 적용되는 산업의 영역이 중소기업까지 확대가 되면서, 컴퓨터를 이용한 새로운 정보화 사회라는 시대인식이 이후 IBM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끄는 1980~90년대까지 가장 주된 시각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런데, 이를 잘 뜯어보면,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결국 기존의 산업에 대한 생명주기(life-cycle) 전반에 걸쳐서 적용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산업 자체를 바꾸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생산성의 차이를 가져왔기 때문에, 정보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생산성 혁신을 이룬 곳은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지만 과거의 방식으로 혁신을 하지 못하고 생산성에서 밀리는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고 사라져 갔다.  과거보다 영속하는 기업의 수는 줄고, 글로벌 산업화까지 진행이 되면서 훨씬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자본의 측면에서는 과거에는 도저히 컨트롤할 수 없었던 복잡한 계산이 가능해 지면서, 자본은 거대화를 하게 되고, 일부 다국적 금융세력들의 경우에는 그 덩치를 계속 키워갈 수 있었다.

정보화 사회와 정보화 기술은 기업이 거대해지면, 내부의 모순이 강화되어 무너지는 경영 상의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기업이 보다 쉽게 거대화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였고, 지식경영까지 도입되면서 각 개인의 지식으로 남아있었던 암묵지를 기업의 자산으로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형식지로 전환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구성원인 종업원들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막강한 경영정보 시스템을 활용한 내부모순의 감소는 '규모의 경제'에 의한 외부효과의 상대적인 이득에 비해 훨씬 크기가 작았기 때문에, 일부기업은 그 덩치를 계속 키워 나갔고, 경쟁에서 승리를 하면서 현재의 다국적 대기업 지배체제를 잉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지배체제에서는 특화되고, 전문가적인 작은 기업들 또는 집단은 거대한 기업들에 의존적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대기업 체제에 반하는 형태의 혁신은 저해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다시 말해, 정보시스템과 정보화 혁신이 중앙집중화를 가속화 시킨 주범이 된 것이다.  누가 정보와 네트워크의 접근을 통제하며, 어떻게 관리할까?  누가 정보의 종류를 제어하고, 법적으로 소유할까?  기업에서의 개인의 활동과 통제를 통한 인간소외 현상은 더욱 심화된 것은 아닐까?


소셜 웹 사회, 주도권이 개인으로 넘어온다.

소셜 웹 혁신은 무엇이 다를까?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기본 인프라가 바뀌지는 않았다.  바뀐 것은 정보화가 회사 단위나 비즈니스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개개인의 네트워크와 관계, 그리고 관심사 등을 바탕으로 회사와 비즈니스의 경계를 넘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셜 웹 사회에서의 준거집단과 집단행동은 회사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판단에 의해 휴먼 에너지가 모이는 양상에 따라 이루어진다.  트위터와 페이스 북은 이런 소셜 웹 네트워킹을 전 세계 수준에서 완전히 개방된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였고, 스마트 폰은 컴퓨팅 환경의 개인화로 이어지면서 이를 가속화하였다.  이런 변화는 결국 회사와 집단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밖에 없고, 개인의 네트워크를 통한 혁신사례가 많이 나오면서 회사가 가지고 있는 내부모순이 부각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런 변화는 산업혁명 이후 소위 말하는 '회사'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개인'으로 넘어오는 초석이 되고 있으며, 이것은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고 표현할 수 있는 사회 전체의 중대한 변화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개인의 힘이 집단의 힘보다 강한 것은 아니다.  다만 '회사'로 표현되는 폐쇄형 집단보다는, 개인이 자신의 휴먼 에너지를 바탕으로 동적으로 결합하는 개방형 집단의 힘이 더욱 강하게 발현될 가능성이 많아진 것이다.  이런 개방형 집단의 힘은 결국 개개인의 힘에서 나오게 되며, 각 개인이 역량을 강화하고 창의적인 혁신을 많이 일으키는 집단이 훨씬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것이다.

소셜 웹 중심의 혁신이 수십 년간의 정보화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이런 것이다.  기존의 회사들도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고, 회사 조직원들이 그들의 창의력과 혁신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열린 집단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이런 혁신을 일으키는 다른 혁신 조직들에 의해 결국 경쟁에 의해 도태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엄청난 시대의 변화의 시작점에 와 있다.


(다음 편에 계속 ...)

P.S. 이 시리즈는 이미 완결되어 출간이 되었으며, 전체 내용을 일괄적으로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광고된 도서를 구입하시면 보다 충실하고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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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빌 게이츠가 폴 알렌과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설립했던 "TRAF-O-DATA" 라는 벤처회사는 당시 최신 마이크로프로세서 였던 인텔의 8008(후에 8080 을 거쳐, 8088 이 IBM PC에 채택됩니다) CPU를 이용해서 교통상황을 점검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빌 게이츠는 이를 바탕으로 1973년 초에는 미국 하원의회를 위해 일을하기도 합니다.

빌 게이츠는 197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 입학합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빌 게이츠는 현재의 마이크로소프트의 CEO를 맡고 있는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를 만납니다.  하버드 대학에서도 학업보다는 컴퓨터에만 심취했던 빌 게이츠는 폴 알렌과 계속 연락을 취했고, 1974년 여름에는 하니웰(Honeywell)에서 같이 일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빌 게이츠는 고등학교 시절 컴퓨터와 관련한 사업을 하면서도, 하버드 대학에 여유있게 들어갈 정도로 공부도 잘했던 천재였습니다.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벌레처럼 공부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컴퓨터를 향한 그의 사랑과 열정은 학교라는 울타리는 그에게 족쇄처럼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세계 최초의 PC, Altair 8800

세게 최초의 PC로 일컬어지는 Altair 8800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인텔 8008 기반의 Mark-8을 시초로 보기도 합니다)을 탄생시킨 MITS의 창업자인 에드 로버츠(Ed Roberts)와 포레스트 밈스(Forrest M. Mims) 3세는 미국 공군에서 연구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1969년 이들은 로켓을 제작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제작키트를 만들어 판매하려는 목적으로 스탠 케이글(Stan Cagle)과 로버 잴러(Rober Zaller)와 함께 MITS(Micro Instrumentation and Telemetry Systems)를 창업합니다.  MITS의 로켓 제작키트는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러한 키트를 제작하는 사업에 흥미를 잃은 케이글과 밈스는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에드 로버츠 Electronic Array가 전자계산기를 제작할 수 있는 LSI IC들을 발표하자, 이를 이용하여 계산기를 제작하는 키트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를 통해 완성된 제품이 MITS 816 계산기 키트였습니다.  이 키트는 1971년 Popular Electronics의 커버를 장식하며 상당한 성공을 거둡니다.  뒤이어 1973년에는 MITS 1440 계산기가 소개되었고, 점점 발전된 모델을 다른 잡지에도 소개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선 포스트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HP에 입사했던 스티브 워즈니액도 틈틈히 스티브 잡스와 아타리의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가 맡았던 역할이 바로 전자계산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공학용 전자계산기를 만드는 기술이 발전해서 PC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MITS는 주로 전자계산기 조립 키트를 만들던 회사였기에, 당시 판매와 홍보의 역할을 동시에 담당했던 Radio Electronics나 Popular Electronics와 같은 잡지사와의 관계가 무척 중요했습니다.  이 두 잡지사는 오늘날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ZD(Ziff-Davis)의 잡지계열에 있었는데 (현재는 손정의의 소프트뱅크가 소유를 하고 있지요?), 1972년에 Polular Electronics로 통합이 됩니다.  Popular Electronics의 편집장 이었던 Les Solomon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CPU 였던 인텔 8080을 MITS가 잘 다룬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완성된 제품(현대적 PC의 개념)을 개발하기를 권유합니다.  그는 박스까지 완전하게 제작된 프로페셔널한 제품 키트를 원했고, MITS는 이 권유를 받아들여서 Altair 8800의 설계 및 제작에 착수합니다.

1976년 있었던 Altair Computer Convention에서 Les Solomon은 Altair라는 이름을 자신의 12세된 딸이 스타트렉 에피소드를 보면서 제안한 이름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당시 스타트렉 에피소드는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이 Altair라는 곳을 향해 가는 것이었는데, 미지의 신세계를 간다는 측면에서의 작명이 된 것이죠 ...  에드 로버츠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큰 고심을 한 부분이 바로 CPU를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인텔의 4004나 8008은 그다지 강력하지 않았고, 그 대안으로 고민한 National Semiconductor의 IMP-8이나 IMP-16은 외부 하드웨어를 요구했으며, 모토롤라의 6800은 아직도 개발 중인 단계였습니다.  그래서, 다소 위험 부담을 안고 인텔의 새로운 8비트 CPU인 8080을 선택합니다.  인텔 8080은 1974년 4월에 출시가 되었는데, 유닛당 $360 달러라는 가격을 책정했지만, 에드 로버츠는 인텔과 성공적인 협상을 통해 $75 달러에 칩을 공급받고 본격적인 컴퓨터 제작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제작된 Altair 8800의 출시는 빌 게이츠를 포함한 전세계의 젊은이들의 마음에 불을 당깁니다.  수백 대 정도의 판매를 생각했지만, 순식간에 제작된 키트와 완성품들이 동이 났습니다.


Altair 8800의 완성품 from Wikipedia


1975년 8월이 되기 전에 이미 5,000대가 넘는 컴퓨터가 팔렸고, MITS는 직원을 20명에서 90명까지 늘려야 했습니다.  1975년 전반기 까지만 하더라도 시장에는 아무런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4K 메모리에 이용된 다이너믹 RAM에는 일부 디자인 문제가 있었고, 이로 인해 공급이 늦어지면서 다른 경쟁자들이 진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고 말았습니다.


빌 게이츠, 폴 알렌 하버드 대학을 뛰쳐 나오다.

이 포스트 제일 위에 보이는 사진은 Popular Electronics 1975년 Vol 7, Number 1의 커버입니다.  원래 Popular Electronics 라는 잡지는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취미를 가진 매니아들을 위해 부품도 팔고 조립법을 알려주는 글을 많이 싣습니다.  잡지의 조립키트에는 인텔의 8080 마이크로프로세서와 256바이트 RAM, 라이트와 스위치, 그리고 철제 케이스와 파워 서플라이를 합쳐서 $397 달러에 판매를 하였고, 조립을 완료한 제품의 경우 $498 달러에 판매가 되었습니다.  

가판대에서 이 잡지의 표지를 본 폴 알렌은 언제나 자신들이 이야기하던 자신만의 컴퓨터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잡지를 사서 바로 빌 게이츠에게 달려갑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운명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대학 캠퍼스를 나와서 사업에 뛰어듭니다.

Altair 8800이 신나게 판매가 되고 있는 도중, 에드 로버츠는 시애틀에 있는 한 회사에서 BASIC 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구매할 의사가 없는지를 묻는 편지를 받게 됩니다.  당시 BASIC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던 Ed는 회사에 전화도 해보고, 주소에 찾아도 가보지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 편지는 보스턴에 있었던 빌 게이츠와 폴 알렌에 보낸 것으로 그 때까지 BASIC을 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에드 로버츠가 BASIC과 같은 것에 관심이 있었는지를 알기 원했던 것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사업을 통해 어른들이 어린 학생들의 말보다는 기업체의 공신력이 있는 편지를 더 신뢰하고, 에드 로버츠가 그 편지를 읽어보게 만들기 위해 머리를 썼던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해프닝을 거쳐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은 에드 로버츠와 접촉을 하게 됩니다.  어린 학생들이 당돌하기는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에드 로버츠는 한번 만들어서 가져와 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에드 로버츠가 일단 관심이 있다는 것이 확인이 되자, 빌 게이츠는 폴 알렌과 함께 BASIC 인터프리터를 PDP-10 미니컴퓨터의 8080 시뮬레이터를 이용해서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완성된 프로그램을 종이 테이프에 펀칭을 해서 MITS가 있는 뉴멕시코주의 앨버커키까지 날아간 폴 알렌은 Altair 8800에서 실행을 시켰지만, 화면에 일단 "Altair Basic" 이라는 표시만 남기고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첫번째 작업이 실패했지만, 이 사건은 일단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를 에드 로버츠에게 주는 것에는 성공을 하였고, 지속적인 작업을 통해 프로그램을 완성합니다.  여기에서 바로 역사적인 기업 "Micro-Soft"가 탄생합니다.  BASIC을 시작으로, 포트란 컴파일러와 디스크 운영체제인 MITS-DOS를 개발한 Microsoft는 결국에는 MITS의 품을 떠나 워싱턴 주로 독립을 하면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 나갑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가 BASIC을 그토록 사랑하는데에는 이와 같은 역사가 있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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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동거 중인 대학원생 부모에게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시리아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온 가난한 대학원생들로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었던 이 젊은이들은 아이가 태어난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입양기관에 아이를 넘깁니다.  아이는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터전을 둔 한 기계공 부부에게 입양이 되는데, 그가 바로 스티브 잡스(Steve Jobs) 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가족은 그가 5살 때 마운틴 뷰(Mountain View, 오늘날 구글 등의 본사가 위치한 실리콘 밸리의 중심으로 급부상한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 여기에서 오늘날의 애플이 탄생하게 됩니다.


과수원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도시가 되는 환경속에 자라다.

캘리포니아의 북부 샌프란시스코만의 남부에 위치한 실리콘 밸리는 스탠포드 대학을 중심으로 주변의 라디오와 TV, 그리고 군에 납품을 하던 여러 전자부품 회사들을 중심으로 초창기 성장을 하였습니다.  1940~50년대 스탠포드 대학의 공대 학장이었던 프레데릭 터만(Frederick Terman)은 교수들과 학생들의 창업을 장려하는데, 이런 정책 속에 성장한 대표적인 회사가 HP(Hewlett-Packard) 입니다. 

그 뒤를 이어 수많은 반도체와 전기/전자 관련한 하이테크 회사들이 나타나면서 오늘날까지도 세계를 대표하는 기술 중심지가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벨 연구소를 1953년에 떠난 쇼클리(Shockley)가 1956년 창업한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Shockley Semiconductor Laboratory)를 통해 당시 트랜지스터를 게르마늄보다 실리콘으로 만드는 것이 낫다는 확신 속에 여러 연구를 진행하였으나 자신의 회사에서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이 회사의 엔지니어 8명이 창업한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 그리고 그 중에서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창업한 인텔로 뿌리가 이어지면서 실리콘 밸리의 신화가 가속화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는 행운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학창시절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였다고 한다.  학교도 다니기 싫어해서 결석을 많이 하였는데, 그는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이 자신을 돈과 사탕으로 구슬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열정을 불러일으키게 된 사건이 있었으니 ...  그것은 히스키트(Heathkit)라는 아마추어용 전자공학 키트였습니다.  그의 양아버지도 기계공학을 했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가 5~6세 일때 이미 그에게 작은 워크벤치와 도구들을 주면서 언제라도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여기에 HP에 다니던 동네 아저씨가 건네 준 히스키트와 마이크, 스피커와 같은 다양한 재미있는 기계들에 대한 설명과 경험은 오늘날의 스티브 잡스를 만들게 한 열정과 자신감을 선사하게 된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DNA를 이끌고 있는 멋지고 창의적인 하드웨어에 대한 열정은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시애틀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동갑나기 라이벌

스티브 잡스와 평생의 라이벌이 되는 빌 게이츠는 1955년 시애틀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유력한 은행들의 이사진으로 일했다고 합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네셔널뱅크(national bank)의 총재였으니, 태어날 때부터 빌 게이츠는 법과 경제라는 현재의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시스템에 대해 익숙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다소 평범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스티브 잡스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실리콘 밸리 한 가운데에서 자라면서 신기한 물건들과 기계들을 접하면서 자랐는데에 비해, 빌 게이츠는 13살이 되어 레이크사이드 스쿨(중/고등학교 통합 사립학교)에 들어가서 컴퓨터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하면서 세상을 바꾸게 되는 열정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의 컴퓨터와의 만남은 처음부터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것이었고, 이것이 마이크로소프트의 DNA가 되었습니다.

(후속편으로 이어집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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