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된 더글라스 엥겔바트 from Wikipedia.org



오늘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마우스의 발명자이자 HCI(Human-Computer Interaction)의 사실 상의 아버지, 모든 데모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더글라스 엥겔바트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비록 세상에는 스티브 잡스의 죽음처럼 떠들썩하게 알려지지는 않겠지만, 그의 유산과 업적은 스티브 잡스를 능가하는 것이기에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연재에서 순서와는 좀 다르지만 오늘은 더글러스 엥겔바트를 소개할까 한다.

더글러스 엥겔바트는 1925년 오레곤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포틀랜드의 시골지역에서 자란 그는 대학도 오레곤주립대학에 들어가는데, 곧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기 때문에 미국 해군에 입대해서 2년간 필리핀 전선에서 레이더 기술자로 복무를 하였다. 군대에 있는 동안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된 글을 하나 읽게 되는데, 그것이 베니바르 부시의 "우리가 생각하는 데로 (As We May Think)" 이다. 그는 메멕스라는 개념을 퍼뜨린 것으로 유명한데, "우리가 생각하는 데로"에서는 하이퍼텍스트와 컴퓨터 네트워크의 출현을 예견하였다. 베니바르 부시에 대해서는 이 연재에서 따로 한 번 다룬 바 있으므로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연관글을 참고하면 된다. 결국 엥겔바트는 베니바르 부시가 예견한 세상을 실제로 구현하는데 일생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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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7 -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3) - 냉전시대의 개막과 서부의 부상



전쟁이 끝나고 오레곤주립대학으로 돌아온 그는 1948년 전자공학으로 학사학위를 받았는데, 이후 냉전시대 서부의 부상을 이끈 나사의 에이미스 연구센터의 전신인 NACA(National Advisory Committee for Aeronautics) 연구실에서 1951년까지 일을 했다. 그는 사람들의 집단지성을 모아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인류의 생활을 발전시킬 것으로 보고 그와 관련한 기술개발에 매진한다. 특히 레이다 기술자로 일하면서 컴퓨터가 분석한 데이터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었기에, 인간과 컴퓨터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면서 서로의 의중을 잘 표현하고 소통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이들을 네트워크로 엮을 것인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고민했고, 이것이 결국 그가 평생을 바친 연구분야가 되었다. 이런 연구를 위해서 NACA의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UC버클리에서 전자공학을 더 공부해서 1955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버클리에서 했던 연구는 캘리포니아 디지털 컴퓨터 프로젝트(California Digital Computer project, CALDIC)을 건설하는 것이었는데, 이 과정을 통해 엥겔바트는 몇몇 특허를 내게 된다. 


1957년 부터는 스탠포드 리서치 연구소(Stanford Research Institute, SRI)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많은 특허를 내면서 컴퓨터의 역사를 바꾸기 시작한다. 1962년에는 자신의 연구내용을 바탕으로 인간지능증강(Augmenting Human Intellect)에 대한 개념적 프레임워크를 설계하고, 이 프로젝트에 대해 ARPA의 연구자금을 받아서 자신의 리서치 센터를 구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ARC(Augmentation Research Center)이다. 이 연구센터에서 탄생한 것이 마우스, 하이퍼텍스트, 비트맵 스크린, 협업도구, 최초의 GUI 인터페이스 등이다. 그의 연구성과는 대형컴퓨터 시대에 만들어졌기에 당시에는 지나치게 미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1970년대 이후 PC의 시대가 열리고도 한참이 지난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야 매킨토시와 윈도우를 통해 꽃을 피우게 되었다. 마우스의 경우 1967년에 특허를 출원했는데, SRI가 해당 특허에 대한 가치를 거의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마우스 특허는 그 가치를 알아본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사들이게 되는데, 이를 위해 지불한 비용은 4만 달러에 불과했다. 


마우스와 함께 엥겔바트 최대의 업적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은 1968년에 있었다. 그는 이 연재에서도 자주 언급한 스튜어트 브랜드와 제록스 파크 연구소와 역사적인 이벤트를 계획하게 되는데, 컴퓨터와 대화를 주고받거나 컴퓨터를 이용해서 여러 사람이 공동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으로 개인이 컴퓨터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멀티미디어를 이용해서 원격으로 데모를 하였다. 스튜어트 브랜드와 엥겔바트가 연출한 이 데모는 미디어를 이용한 현대식 프리젠테이션의 시초가 되었다. 엥겔바트는 청중 앞에 거대한 스크린을 설치하고 컴퓨터로 정보를 투사시켜 발표하는 방식을 처음 선보였는데, 스튜어트 브랜드는 이 데모를 총지휘하였다. 스튜어트 브랜드는 대항문화의 중심인물이었던 작가인 켄 키지와 함께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여 LSD 페스티벌을 기획한 경험을 엥겔바트의 데모에 십분 발휘하였다. 이 역사적인 데모영상은 아래에 임베딩하였다.


연관글:

2013/03/28 -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10) - 해커정신과 아르파넷의 꿈





이후 인터넷의 전신인 ARPANET의 탄생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지만, 그의 말년의 연구는 그다지 순조롭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너무 먼 미래를 보았기 떄문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는 협업과 네트워크, 시분할 컴퓨팅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그러나 PC의 물결이 불면서 그의 젊은 제자들은 그와 다른 입장을 취하면서 의견충돌도 많았고, 결국 대세가 되어 버린 PC 중심의 연구와 상업화된 기업들에 의해서 점점 잊혀져 가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생각했던 미래의 모습은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클라우드의 시대가 오면서 실체화되고 있다. 50년 전에 그가 꾸었던 꿈이 예언과도 같이 현재에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진정한 미래학자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허황된 미래의 모습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런 미래를 만들기 위한 핵심적인 기술들을 만드는데 인생을 바쳤고, 수 많은 사람들이 그런 개념과 기술의 유산을 이용해서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오늘 세상을 등진 컴퓨터와 인간의 상호작용,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세상을 위해 인생을 바쳤던 위인, 더글러스 엥겔바트의 명복을 빌면서 ... 이 글을 바친다.



참고자료:


Douglas Engelbart,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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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erox PARC의 Alto from mac-history.net



스튜어트 브랜드가 대항문화와 사이버네틱스를 연결시키며,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철학을 잘 나타냈지만, 그가 실제로 미국 전역에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것은 1972년 최고의 대중문화 잡지로 명성을 떨친 <롤링스톤(Rolling Stone)>지에 ‘스페이스워(Space War)’라는 분석 기사를 기고하면서 부터다.

스페이스워는 스튜어트 브랜드가 실리콘밸리의 중심이었던 팔로 알토(Palo Alto)에 위치한 스탠스포드 대학교의 인공지능 연구소와 제록스 파크 연구소(Xerox PARC, Palo Alto Research Center)를 방문했을 때 그 곳의 연구자들이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스페이스워라는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목격한 것에 대한 감상을 쓴 글이다. 이전까지 컴퓨터라고 하면 중앙집중 제어방식을 통해 동작하는 거대한 빅 브라더를 연상시켰지만, 네트워크로 연결된 각자의 컴퓨터에서 개인의 창조성을 자극하는 협력형 게임을 보면서 그는 새로운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구경한 제록스 파크 연구소의 스페이스워는 실제로 과거 PC 통신 시절에 텍스트 명령어로 게임을 했던 머드(MUD, Multi-User Dungeon) 게임과 유사한 형태의 게임이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협업과 경쟁을 하면서 컴퓨터를 도구로 활용하는 모습에서 그는 미래의 사회상을 읽은 것이다.


혁신의 중심지, 제록스 파크 연구소

제록스 파크는 Palo Alto Research Center의 약자로, 1970년에 설립되었다. 2002년부터는 독립된 리서치 비즈니스 회사로 PARC라는 이름으로 거듭난다. PARC는 30개가 넘는 회사들의 창업에 관여했고, 수많은 혁신을 창조했는데, 레이저 프린팅, 분산 컴퓨팅, 네트워크의 표준인 이더넷(Ethernet), 애플과 윈도우를 있게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 Graphic User Interface),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그리고 유비퀴토스 컴퓨팅 등이 모두 이곳에서 나왔다. 위에서 언급한 기술 하나하나가 현대의 정보통신 및 컴퓨팅 환경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드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엄청난 기술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모회사였던 제록스는 레이저 프린팅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사업화에 거의 성공하지 못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PARC 연구소는 캘리포니아 실리콘 밸리의 중심이 되고, 스탠포드 대학이 있는 팔로알토(Palo Alto)에 자리를 잡았는데, 제록스의 본사는 뉴욕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본사에서 PARC 연구소에서 수행하는 연구에 대해서는 관여를 거의 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정말 마음껏 수행하였지만, 본사와의 엄청난 거리는 PARC 연구소에서 나온 수 많은 연구자산들이 제때에 상업화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되려 실리콘 밸리 주변에 있는 기업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다. 

스튜어트 브랜드와 제록스 파크 연구소의 인연은 더글라스 엥겔바트(Douglas Carl Engelbart)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68년 엥겔바트가 실시한 컴퓨터 시스템 데모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엥겔바트는 스탠포드 연구소의 증강연구센터(ARC, Augmentation Research Center)에서 인간과 컴퓨터의 협동방식을 연구하던 학자였는데, 마우스의 발명자로도 유명하다. 엥겔바트는 컴퓨터와 대화를 주고받거나 컴퓨터를 이용해서 여러 사람이 공동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상해 보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이 컴퓨터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 도구로 마우스와 같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도구들의 첫 선을 보였던 것이다. 엥겔바트의 데모는 또한 미디어를 이용한 현대식 프리젠테이션의 시초가 되기도 하였고, 오늘날 가장 각광받고 있는 디지털 학문분야인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라는 학문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엥겔바트는 청중 앞에 거대한 스크린을 설치하고 컴퓨터로 정보를 투사시켜 발표하는 방식을 처음 선보였는데, 스튜어트 브랜드는 이 데모를 총지휘하였다. 앞서서도 언급했듯이, 스튜어트 브랜드는 대항문화의 중심인물이었던 작가인 켄 키지와 함께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여 LSD 페스티벌을 기획한 경험을 엥겔바트의 데모에 십분 발휘하였다. 


스튜어트 브랜드의  ‘스페이스워’ 기사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LSD를 이용한 '인식의 확장'이라는 경험이 가까운 미래에 컴퓨터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문화에 이식되면서 새롭게 부상할 것으로 예측한 것이기 때문이다. 1970년부터 LSD는 금지약물로 강력한 규제를 받았지만, 이후에도 그 잔재는 많이 남았는데, 특히 일시적이고 강렬한 환각적 도취상태나 체험 등을 강렬한 예술로 표현하는 사이키델릭 문화는 당시의 문화적 주류를 이루었다. 여기에 스튜어트 브랜드가 중시했던 사이버네틱스는 의미는 다르지만, 음운의 유사성도 있고, 스튜어트 브랜드가 잘 활용하였던 교차적인 의미합성을 유도함으로써 '사이버(cyber)'라는 접두어가 대유행을 하도록 하는 계기를 만든다. 이 때부터 인간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모든 대상을 가리킬 때 '사이버(cyber)'라는 접두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스튜어트 브랜드는 이와 같이 사이버 문화에 대항문화의 혼을 심어넣은 중요한 인물이다. 

사이버라는 주제를 이야기할 때에는 '사이보그(cyborg)'에 대해서도 빼놓으면 안된다. 사이보그는 '사이버네틱 생명체(cybernetic organism)'의 약자로 생물과 인공적인(전자, 기계, 로봇 등) 부품이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1960년 만프레드 클라이네스(Manfred Clynes)와 네이선 클라인(Nathan S. Kline)이 우주에서 혼자서 제어할 수 있는 인간-기계 시스템(human-machine system)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면서 처음 언급되었다. 사이보그는 SF소설과 영화에도 많이 등장하며, 기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많은 성찰의 씨앗을 던졌는데, 인간의 본질과 자유의지, 그리고 감성 등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

(다음 회에 계속 ...)


참고자료:


웹소셜 아메리카, 이케다 준이치, 메디치미디어, 2012

거의 모든 IT의 역사, 정지훈, 메디치미디어, 2010

Spacewar, Stewart Brand, Rolling Stone, Dec 7 1972

Douglas Engelbart,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Cyborg,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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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 기술인문학 이야기. 지금까지 너무 딱딱한 글들만 많았던 것 같아서 이번에는 조금 말랑말랑한 주제로 MIT 미디어랩의 탄생과 관련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ICT 기술의 변신과 관련해서 가장 파격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ICT 기술과 관련한 기념비적인 저술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의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의 산실인 곳이기 때문에 그 탄생비화를 살펴보는 것 만으로 많은 시사점이 있다.


공포의 외인구단

MIT 미디어랩은 휴먼 인터페이스(human interface) 기술과 인공지능 연구를 위한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최초에 구상이 되었다고 한다. 단순히 기술을 연구하기 보다는 정보시스템의 내용이나 소프트웨어에 대한 욕구, 본질적인 예술적 사유를 통해 개념을 다듬어 나간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MIT 미디어랩에서의 연구와 개념들은 방송과 출판, 컴퓨터 산업전반으로 확산되었다. 
 
네그로폰테 교수에 따르면, MIT 미디어랩의 창립교수진은 ‘살롱 데 레퓨제(Salon des Refuse's)’가 되어 자신의 조직을 만들었다고 표현하였다. ‘살롱 데 레퓨제’는 프랑스어로 ‘거절된 것들의 전시(exhibition of rejects)’라는 뜻으로 파리의 살롱에서 거절된 전시품들을 모아서 전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9세기 파리는 모든 종류의 예술가들이 모이는 예술의 수도나 마찬가지였다. 이름을 알리고 싶은 예술가라면 파리의 살롱에서 전시를 해야 했다. 그렇지만, 모든 예술가들의 작품이 살롱에 걸리지는 못했기에 1830년대부터 파리의 아트 갤러리에 작은 스케일이지만 살롱에서 살롱에서 거절된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1863년에는 이 행사가 나폴레옹 3세가 이끄는 프랑스 정부에 의해서 스폰서를 받아서 3,000점이 넘는 작품들이 소개되면서 수많은 비평가들의 조소를 받으면서도 오늘날 최고의 명화로 일컬어지는 작품들이 대중들에 의해 재발견되는 커다란 성과를 거두게 된다. 특히 이 이벤트를 통해 아반가르드가 주목을 받게 되었고, 인상주의 예술가들이 인정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만큼 MIT 미디어랩의 교수진들은 보수적인 대학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지나치게 독특하였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와 제롬 비스너를 제외하고는 영화감독, 그래픽 디자이너, 작곡가, 물리학자, 수학자, 멀티미디어 연구원과 같이 일반적으로 볼 때 MIT 교수의 자격으로 생각할 수 없는 집단으로 구성되었다. MIT 미디어랩은 학문이 아니라 컴퓨터라는 것의 능력으로 과학이나 기술 만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여러 측면을 변화시킨다는 것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시대가 요구한 변화

MIT 미디어랩이 탄생한 시기는 PC의 등장과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중요성이 조금씩 알려지고, 동시에 통신산업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신문, 잡지, 출판, 영화, TV 등과 같은 전통 미디어 업체들과 통신과 디지털로 대표되는 컴퓨터 기술의 접목으로 인한 커다란 변화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이런 변화의 물결을 감지한 거대 미디어 회사들은 미디어랩의 독특함에서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보았고, 이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를 결정하면서 오늘날의 명성을 구축하게 된다. 


MIT 미디어랩의 탄생과 얽힌 뒷이야기를 보면, 현재 시작된 새로운 모바일/소셜, 그리고 융합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에 적합한 학제나 연구실, 또는 산학협력 등과 같은 파격적인 시도를 하는 곳이 다시 나타날 시점이라는 것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분명히 전통적인 대학에서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혁신을 이끌어내는 구심점이 나타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이런 과감하면서도 멀리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고 학문과 연구, 그리고 현실에서의 적용과 혁신을 접목할 수 있는 그런 세계적인 연구 및 교육, 그리고 산학협력 네트워크가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되기를 고대해본다.


참고자료:

“디지털이다(being digital)”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저/백욱인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1995 
위키피디아 영문페이지 - Salon des Refu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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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파시는 실제로 구현가능한 기술일까요?  단지 초능력의 영역으로 분류되었던 이 기술이 앞으로 실체화될 가능성이 열리는 연구결과가 나와서 화제입니다.  이 연구는 영국의 사우스앰턴 대학(University of Southampton)에서 수행을 한 것으로, B2B (brain-to-brain) 연구라고 불립니다.

그동안 뇌의 컴퓨터의 인터페이스를 연구하는 BCI(Brain-Computer Interfacing) 연구는 여러 연구기관에서 수행이 된 적이 있습니다.  BCI 연구는 주로 뇌에서 발생하는 시그널을 캡쳐해서 이를 일종의 명령으로 활용해서 컴퓨터나 로봇, 재활장비 등을 조종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에 비해 B2B 연구는 직접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목표로 합니다.  

아래는 실험 동영상입니다.  





텔레파시를 연구하는 B2B 만큼은 아니지만, 최근 BCI 관련 연구들의 발전도 눈부십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재활의학과의 연계와 관련한 연구들이 특히 각광받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뇌파로 움직이는 휠체어와 같은 이동장치들에 대한 연구가 가장 활발합니다.  아래 비디오는 BCI 연구분야가 비교적 잘 소개된 것으로 한번 쯤 봐둘만한 비디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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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력감지가 가능한 키보드가 나온다면 어떻게 활용을 할 수 있을까요?  아래 비디오에서 보이는 키보드는 8단계의 압력이 감지됩니다.  이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을 것 같은데요 ...

비디오에서는 일단 게임 데모와 글자 크기도 바꾸는 등의 간단한 활용사례를 보여주고 있는데, 사실 가능한 것이 이보다 훨씬 많을 것 같습니다.  타이핑하는 스킬에도 변화를 줄 수 있을 듯하고, 인터페이스 측면에서의 변화가 가능하므로 마우스와의 조합을 통해서도 많은 것이 가능할 것 같은데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데모 비디오와 2009년 Student Innovation 관련 PT 내용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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