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 마피아 멤버들. 비노드 코슬라, 빌 조이, 앤디 벡톨샤임, 스캇 맥닐리 from liveandventure.com



앞선 편에서 언급한 자바를 만들어낸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는 2009년 오라클에 인수되며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회사가 되었지만,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초창기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요 인물들은 실리콘 밸리의 역사전반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막강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향후 구글의 CEO가 되는 에릭 슈미트가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CTO 출신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천재 프로그래머 빌 조이에 대해서는 이 연재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다. 이들을 제외하고도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막강한 멤버들의 영향력을 감안해서 실리콘 밸리의 한국계 벤처투자가이기도 한 Phil Yoon 님은 자신의 블로그 Live & Venture를 통해 이들을 "썬 마피아"로 표현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한 글이 있다. 이번 편에서는 Live & Venture 블로그에서 소개된 썬 마피아 멤버들 중 일부를 소개한다. 원문은 아래 참고자료에 링크된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연관글:


앤디 벡톨샤임 (Andy Bechtolsheim), 비노드 코슬라 (Vinod Khosla) 그리고 존 도어 (John Doerr)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 창업자는 모두 4명이지만, 앤디 벡톨샤임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는 독일태생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공부하다가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SUN이라는 워크스테이션 컴퓨터를 디자인하였는데, 이것을 이용해서 창업을 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1982년 시작된 회사가 바로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이다. 그는 1995년까지 썬에서 일을 하였는데, 하드웨어 디자인을 총괄하였다. 썬을 떠난 이후에는 세계 최고의 네트워크 장비회사인 시스코(Cisco)의 부사장으로 일하면서 동시에 엔젤투자자로도 활동하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투자가 바로 절친이었던 스탠포드 대학의 데이비드 체리턴(David Cheriton) 교수의  제자였던 두 명의 박사과정 학생의 회사에 대한 투자이다. 앤디 벡톨샤임은 한 눈에 이 학생들의 서비스의 가치를 알아보고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즉석에서 끊어주었는데, 이 투자가 전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고 자신에게도 수십 억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부로 돌아오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회사가 바로 구글이다. 앤드 벡톨샤임의 구글에 대한 이 투자는 벤터 투자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자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비노드 코슬라는 인도의 IIT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서 의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스탠포드 대학에서 MBA 공부를 마친 재원이었다. 그는 데이지시스템이라는 반도체 디자인 소프트웨어 회사를 다니던 중 앤디 벡톨샤임을 만나 썬 마이크로시스템스 창업에 동참하였다. 그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초창기인 1982년부터 CEO로 일을 하였는데, ICT 회사의 경영보다는 역시 벤처투자가 적성에 맞았는지 2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벤처투자자의 길을 걷게 된다. 1986년 그는 실리콘 밸리 최고의 벤처캐피탈인 KPCB에 합류하였고, 여기에서 성공적인 투자경력을 쌓았으며, 명쾌한 강의와 활발한 외부활동을 통해 자신의 개인 브랜드도 쌓아서 2004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코슬라 벤처스(Khosla Ventures)라는 벤처캐피탈을 설립하였다. 코슬라 벤처스는 주로 ICT와 환경과 관련한 기업에 투자를 많이 하는 곳으로 실리콘 밸리의 주요 벤처캐피탈로 그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으며, 여전히 활발한 외부활동을 하면서 많은 창업가와 투자자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고 있는 인물이다. 

존 도어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 직접 일을 한 인물은 아니지만,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에 직접 투자를 하면서 커다란 성공을 한 인물이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스가 아니더라도 그는 벤처투자 업계에서 전설적인 투자자로 명성을 쌓았다. 그가 투자해서 성공한 회사는 일일히 열거하기가 힘든 정도인데, 그 중에서 크게 성공한 회사의 일부만 나열하면 썬 마이크로시스템스, 넷스케이프, 아마존, 구글 등을 꼽을 수 있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투자가 그 중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있었기 때문인지, 이후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멤버들인 비노드 코슬라와 빌 조이를 자신이 있는 KPCB로 영입하기도 했는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노드 코슬라는 벤처투자자로서도 크게 성공하였다. 


에릭 슈미트 (Eric Schmidt)와 캐롤 바츠 (Carol Bartz)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의 경력 이후 앤디 벡톨샤임과 비노드 코슬라 등이 투자자로서 유명해졌다면, 에릭 슈미트와 캐롤 바츠는 경영자로서의 실리콘 밸리의 성공신화를 이어갔다. 에릭 슈미트는 앞선 연재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자신의 커리어를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 처음 성공적으로 그려 나갔다. 에릭 슈미트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창업자 중의 한 명이자 최고의 개발자였던 빌 조이와 대학원에서 친구라는 인연으로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이후 자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CTO 자리까지 올랐고, 노벨의 CEO를 거쳐 구글의 CEO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에릭 슈미트가 구글의 CEO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에는 KPCB의 존 도어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던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에릭 슈미트와 구글의 성공에도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간접적인 영향력이 매우 컸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에릭 슈미트와 함께 썬 마이크로시스템스 출신으로 성공적인 경영자 경력을 쌓은 인물이자, 실리콘 밸리의 여성 CEO 파워를 이야기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캐롤 바츠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초창기부터 일을 시작해서 세계총괄 영업/기술지원을 총괄하는 부사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캐롤 바츠의 커리어가 가장 빛난 것은 1992년 CEO로 자리를 옮긴 오토데스크(Autodesk)에서였다. 그녀는 오토데스크의 CEO로서 일한 14년간 회사의 매출을 3억 달러에서 15억 달러로 5배나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다. 그녀와 관련한 일화도 실리콘 밸리에서 여러 개 전해지는데, 여성으로서 매우 거친 입담의 소유자로 다양한 이야기들도 알려져 있지만 무엇보다 오토데스크 CEO로 부임하기 며칠 전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 후 힘든 함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오토데스크에서 풀타임 하면서 암을 이겨낸 이야기는 전설적으로 전해진다. 그렇지만, 많은 기대를 안고 선임된 야후!에서의 CEO 경력은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서 그녀의 CEO 경력에 오점을 남겼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에는 그 밖에도 공동창업자이면서 동시에 CEO로 22년을 재직하면서 대표적인 얼굴로 자리매김한 스캇 맥닐리, 천재 프로그래머이자 BSD 유닉스의 개발자로 이 연재에서도 몇 차례 언급한 빌 조이 등 오늘날 실리콘 밸리를 뒤흔드는 페이팔 마피아와 비교하더라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인물들을 배출한 회사이다. 비록 이제는 오라클에 인수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이름은 썬 마피아들의 이름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언급될 듯하다.


참고자료:



P.S. 이 시리즈는 이제 책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총 60편으로 진행될 연재가 모두 끝나고, 일부 내용의 윤문과 색인작업까지 마친 책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는 국내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대부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책을 보시면 더욱 좋겠구요. 여력이 안되는 학생들이나 여유롭게 블로그를 읽는 것이 더 좋으신 분들은 1주일에 1차례 정도 앞으로도 계속 업데이트를 할 예정이니, 블로그를 구독하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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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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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IT의 역사, 지난 포스팅에서 안드로이드의 공식적인 발표와 함께 구글과 애플의 밀월관계가 깨지기 시작하였다는 언급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구글과 애플이 밀월관계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부터 깨지기까지의 과정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2006년 스티브 잡스의 집에서 로맨스가 시작되다.

구글과 애플의 로맨스는 스티브 잡스가 에릭 슈미트를 2006년 자신의 집에 초대하면서 시작됩니다.  두 명의 거물 CEO 는 스티브 잡스의 집 거실 테이블에서 바닐라 컵케이크와 차를 같이 하면서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2007년 출시할 예정인 아이폰의 성공을 위해 구글의 강력한 서비스들이 필요하였고, 구글은 차후 일전을 치르게 될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클라우드 서비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협력에 합의한 두 회사는 아이폰의 성공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을 경주하기 시작합니다.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될 때에 맞추어 아이폰 전용으로 만든 구글지도(Google Maps), 검색, 메일 등의 앱들을 제공하는 것으로 협력이 시작됩니다.  구글은 여러 인력을 투입하여 구글 최고의 서비스들을 아이폰에 이식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고, 애플은 아이폰의 가장 중요한 앱으로 구글의 서비스들을 낙점하는 배려를 하면서 협력은 순항을 합니다.  유튜브도 아이폰에 올라가도록 애플이 신경을 써주자, 구글은 유튜브에 애플의 퀵타임이 쉽게 올라올 수 있도록 모든 비디오를 플래시가 아닌 H.264 표준으로 동작할 수 있도록 하였고 심지어 모든 웹 앱들이 애플 아이폰에 최적화가 되도록 추가적인 작업까지 수행하였습니다.

아이폰은 애플의 뛰어난 운영체제와 하드웨어, 그리고 앱 스토어도 빛났지만, 구글이 제공한 최고의 킬러 웹 서비스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최고의 성공을 만들어 내었고, 서로가 가지지 못한 영역을 메꾸어주는 파트너로서 외부에서 보기에도 최고의 찰떡궁합으로 보였습니다.


아이폰의 대성공, 구글의 고민

아이폰의 대성공은 PC 중심의 컴퓨팅 환경이 드디어 모바일 중심으로 옮겨가면서 소비자 중심의 컴퓨팅이라는 구글이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환경으로의 변화를 앞당기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구글의 고민은 이런 대성공과 함께 커져갑니다.  구글은 모바일 컴퓨팅의 시대가 되면 가장 적합한 광고를 찾아서 전달하는 서비스의 중심이 되고 싶었지만, 아이폰이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면 구글의 이러한 계획은 결국 애플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야만 한다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구글은 이미 2005년 안드로이드를 인수하면서 그와 관련한 작업을 진행할 인력과 자원을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아이폰의 성공을 보면서, 구글은 비밀리에 안드로이드 프로젝트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더 이상 아이폰이 세상을 장악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가는 안된다는 판단이 섰던 것입니다.  구글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지배하는 세상보다는 모바일 환경에서도 웹이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 자신들을 위해서 낫다고 판단했고, 애플은 가능하면 아이폰을 포함한 디바이스 수준에서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2007년 11월, 구글은 안드로이드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발표합니다.  그것도 오픈소스이고, 휴대폰 제조업체나 이동통신사들이 마음대로 변형을 할 수 있는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에게 있어서는 정말 과거 매킨토시와 윈도우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데 충분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때 구글에 대해 "배신감"을 느겼다고 표현하였고, 실제로 구글이 프로젝트를 발표하는데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로맨스는 끝나고 최고의 경쟁자로 돌아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쟁의 심화

이때부터, 스티브 잡스는 구글과 안드로이드를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구글의 모토인 "사악해지지 말자 (Don't Be Evil)" 은 정말로 "x같은 소리(It's bullshit)"라는 강도높은 말을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면서 구글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도 애플의 이사회에는 에릭 슈미트가 앉아 있었고, 에릭 슈미트는 점점 고립이 되었습니다.  에릭 슈미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애플과 구글은 둘다 세콰이어 캐피탈이라는 실리콘 밸리 최고의 벤쳐 캐피탈이 대주주로 있었고, 정말 형제처럼 이사회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구글의 안드로이드 프로젝트가 회사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기 시작하자 더 이상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으며, 애플이든 구글이든 선택을 해야하는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 슈미트는 2009년 8월까지 애플 이사회의 멤버 자리를 유지합니다.  에릭 슈미트에 따르면 그 때까지도 애플의 발전에 자신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였다고 하였고, 실제로 아이폰 최고의 앱과 서비스들은 구글이 제공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구글이 애플이 거의 인수할 뻔했던 최대의 모바일 광고회사인 애드몹(AdMob)을 중간에 가로채듯이 인수하면서 완전히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넙니다.  에릭 슈미트는 애플 이사회에서 사임을 하였고, 애플은 애드몹을 뺏긴 것이 분했지만 2위 업체인 쿼트로 와이어리스(Quattro Wireless)를 인수하면서 일전을 준비합니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눈독을 들이고 인수하려고 작업을 하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라라(Lala)를 전격적으로 인수하면서 애드몹을 빼앗긴 사건에 대한 복수(?)를 하게 됩니다.  또한, 구글의 성장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고, 실제로 초창기 에릭 슈미트가 구글에 안착을 하고 창업자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끌어가는데 최고의 공헌을 했던 '코치' 캠벨을 반대로 구글과의 관계를 정리합니다.  이유는 형제와 다름 없었던 스티브 잡스가 있는 애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구글과 애플의 싸움은 앞으로 계속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아이폰 최고의 서비스 중의 하나인 구글 지도 역시 애플의 입장에서는 눈의 가시로 여겨지고 있어, 애플이 지도회사를 인수하고 독자적인 지도 서비스를 내놓는 순간 퇴출의 길을 걸어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아이폰 4 부터는 검색을 구글에서 공동의 적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빙(Bing)으로 교체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들의 적대의식이 얼마나 심화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애플은 아이폰을 구글에게서 완전히 독립시키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마치 구글이 아이폰에게서 그랬던 것처럼 ...


(후속편에 계속 ...)


참고자료



P.S. 이 시리즈는 이미 완결되어 출간이 되었으며, 전체 내용을 일괄적으로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광고된 도서를 구입하시면 보다 충실하고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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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국지, 오늘은 최고의 검색엔진에 등극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날이 갈수록 수익구조는 악화되었던 구글의 수익모델을 찾기 위한 노력과 CEO 선임이 이루어진 2000년 전후의 이야기 입니다.  


AdWords 의 탄생, 그리고 CEO를 찾아라

세계 최고의 트래픽을 몰고다니는 서비스가 되었지만, 구글에게는 이제 이런 트래픽을 비즈니스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글의 공동 창업자들은 구글 검색에 과도한 비즈니스적인 요소를 연결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들의 이런 생각은 가장 커다란 투자자인 세콰이어 캐피탈과 KPCB의 마이클 모리츠와 존 도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으며 꼭 두 창업자를 끌어줄 수 있는 CEO 를 외부에서 영입해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하였습니다.

구글은 2000년 10월, 첫 번째 광고 프로그램인 애드워즈(AdWords)를 테스트 합니다.  350개의 광고업체만 받아서 그들이 선택한 키워드가 검색어로 들어오면 검색결과 옆에 작은 광고가 보이도록 하였습니다.  광고주들은 해당 키워드를 몇 번이나 사용자들이 이용했는지 알 수 있었는데, 분석도구도 엉성했고 생각처럼 쉽게 성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애드워즈는 광고주들이 광고가 화면에 몇번 노출되는지를 기준으로 비용책정을 했는데, 이런 모델은 기존 배너광고에서 이용되는 CPM(Cost-Per-Mille, 1000번 노출당 단가) 방식의 변형이었고 GoTo.com 이 이미 CPC(Cost-Per-Click, 클릭당 단가) 방식의 검색광고를 시작한 상태였고, 그 반응도 좋았기 때문에 기존의 CPM 방식을 채용한 애드워즈는 그렇게 큰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 밖에 다양한 형태의 광고방식이 제안되었지만, 거의 대부분 구글의 창업자들에 의해 광고가 검색과 확실한 연관성을 가지지 않는다면 집어넣을 수 없다는 고집스러운 철학에 가로막혔습니다.  존 도어와 마이클 모리츠는 이대로는 구글의 미래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판단하에, 투자를 했던 당시의 약속인 '새로운 CEO를 영입하라'는 말을 지키라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압력을 가했습니다.  두 공동창업자들은 약속을 지켜야 했기에 마지못해 여러 명의 CEO 후보자들과 미팅을 가지지만, 대부분 장난스러운 인터뷰를 하다가 '기술을 모른다'는 핑게로 대부분 거절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퇴짜를 놓은 CEO 후보들이 15명이 넘어가자, 존 도어와 마이클 모리츠는 이 두 사람이 CEO 를 선임하지 않으려고 그냥 무조건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 한 해가 이런 식으로 CEO 선임을 위한 작업으로 저물어 갔지만, 결국 CEO 는 뽑을 수 없었고, 전문경영인도 없었으며, 회사의 관리체계는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야심차게(?) 내놓은 애드워즈는 그다지 커다란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고, 비용을 수반하는 쓸데없는 트래픽만 자꾸 늘어나면서 과연 구글이라는 회사가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비관론마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나마 해를 넘겨 2001년 1월에 애플, 썬 마이크로시스템스 등에서 운영 부사장으로 일했던 웨인 로징(Wayne Rosing)을 뽑으면서 엔지니어의 문화를 존중하지만 관리가 가능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중책을 맡게 됩니다. 


에릭 슈미트와의 인터뷰, CEO 를 찾아내다.

구글이라는 회사의 CEO 를 찾는 작업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지만, KPCB 의 존 도어에게는 구글의 CEO 로 적임자로 떠오른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존 도어의 절친한 친구였던 에릭 슈미트(Eric Schmidt) 입니다.  에릭 슈미트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가 한창 잘 나가던 시절 CTO 로 일하다가, 더욱 큰 꿈을 안고 노벨(Novell)의 CEO 로 적을 옮기게 되는데,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와는 달리 노벨에서는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가 합류했을 때 노벨의 4분기 매출은 목표액에 1,460만 달러나 적었고, 경영진들은 이를 분식회계로 메꾸는 방법을 제안하지만, 에릭 슈미티는 그대로 발표하기로 하고 노벨의 주가는 곤두박질치면서 회사가 바로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큰 꿈을 안고 들어간 회사가 입사하자마자 위기상태에 들어간 것입니다.

존 도어의 추천과 함께 웨인 로징에 대한 평판을 알기 위해 세르게이 브린이 에릭 슈미트에게 전화를 해서 장시간 통화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구글에 잠시 들르기로 합니다.  2000년 12월, 에릭 슈미트는 약속대로 구글을 방문합니다.  2000년 당시 구글이 사용하던 건물은 마운틴 뷰의 빌딩21 이었는데, 이 건물은 에릭 슈미트가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에 재직하던 시절에 썬의 건물로서 일하던 건물이었기 때문에 회사는 달랐지만 장소라는 측면에서는 고향을 방문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CEO 인터뷰를 위해 일부러 만든 자리는 아니었지만, 에릭 슈미트는 존 도어에게 언질을 받은 상태였고, 또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역시 에릭 슈미트가 과연 구글 CEO 가 될만한 사람인지 알고 싶었기에, 이 때의 만남은 서로의 기싸움이 되는 중요한 미팅이었습니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에릭 슈미트를 만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그가 노벨에서 내린 결정에 대한 기술적 비판을 합니다.  노벨이 전략적으로 인터넷 속도를 높이기 위해 개발한 프록시 캐시(proxy cache)라는 기술이 결국 초고속 인터넷이 늘어나게 되면 무용지물이 될텐데 쓸데없는 곳에 투자를 해서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이 아니냐는 날선 비판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에릭 슈미트는 자신의 논거를 앞세워 거세게 반론을 하였는데, 이런 논쟁이 무려 1시간 30분 가까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보통의 인터뷰였다면 완전히 실패했을 이런 논쟁이, 결국은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에릭 슈미트라는 사람을 구글의 CEO 적임자로 인정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에릭 슈미트 역시 구글의 이런 문화가 싫지 않았습니다.  2001년 2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에릭 슈미트에게 정식으로 구글의 CEO 자리를 제안하였고, 에릭 슈미트는 노벨의 합병을 마무리하고 구글의 CEO 를 맡는 대신 3월 부터 일단 회장의 자리에 취임을 합니다.  그해 8월 에릭 슈미트는 구글의 CEO 자리에 오르면서, 세루게이 브린이 기술부문 사장을 맡고 래리 페이지가 제품부문 사장을 맡는 구글의 3두체제가 완성됩니다.  이때 정해진 연봉과 함께, 에릭 슈미트는 1500만 주에 육박하는 엄청난 주식을 스톡옵션으로 받으면서 구글의 명실상부한 공동책임자가 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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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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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IT 삼국지 주인공은 워크스테이션과 자바(Java)로 한 시대를 풍미한 썬 마이크로시스템스(Sun Microsystems) 입니다.   비록 현재는 과거의 위세를 잃고, 오라클(Oracle)에 인수되는 신세가 되었지만,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는 현재 구글의 CEO 인 에릭 슈미트(Eric Schmidt)가 CTO 로서 일했던 실리콘 밸리를 대표했던 기술기업입니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탄생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첫번 째 유닉스 워크스테이션인 Sun-1 은 앤디 벡톨샤임(Andy Bechtolsheim)이 스탠포드 대학의 대학원 학생이던 시절에 처음 디자인하였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3M(1 MIPS 속도, 1 MB 메모리, 1 메가픽셀 해상도) 개념을 현실화한 컴퓨터로 유닉스의 가상 메모리를 지원할 수 있는 메모리 관리유닛(MMU, Memory Management Unit)을 가진 모토롤라의 68000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기반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이 프로토타입을 바탕으로 1982년 2월 24일, 앤디와 함께 비노드 코슬라(Vinod Khosla), 스캇 맥닐리(Scott McNealy)가 공동으로 회사를 설립합니다.  뒤를 이어 BSD 유닉스의 메인 개발자였던 버클리 대학의 빌 조이(Bill Joy)가 합류하면서 늦었지만 공동창업자의 일원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였습니다.  SUN 이라는 이름은 Stanford University Network 이라는 문구의 이니셜을 딴 것으로 그만큼 이들은 스탠포드 대학에 대한 애착이 컸습니다.

뒤를 이어 1983년에는 이후 구글의 CEO 가 되는 에릭 슈미트가 입사를 합니다.  그는 초기 썬의 워크스테이션부터 시작해서, 자바 개발과 관련한 프로젝트들을 많이 주도하면서 CTO (Chief Technology Officer)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지만, 1997년 노벨(Novell)의 CEO로 자리를 옮깁니다.

썬은 SPARC (Scalable Processor Architecture) 라고 불렸던 고성능의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ing) 라는 CPU 를 1986년에 발표하면서, 이를 이용한 첨단 워크스테이션으로 당시 대형서버와 PC 사이에 존재했던 워크스테이션 시장을 장악하면서 승승장구 하였습니다.  SPARC CPU는 당시 PC 에서 많이 이용되던 인텔의 286/386 등의 CISC(Complex Instruction Set Computing) 계열 CPU 보다 훨씬 빠른 성능을 보였으며, 썬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유닉스 계열인 솔라리스(Solaris)라는 운영체제와 함께 이용될 경우 성능의 격차가 훨씬 커졌기 때문에 고가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대학이나 연구소를 중심으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워크스테이션으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자바, 인터넷을 만나 꽃을 피우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는 솔라리스라는 운영체제를 탑재한 워크스테이션과 서버를 팔아서 수익을 올리는 하드웨어 회사였지만, IT 역사의 측면에서 바라볼 때 매우 중요한 회사로 여겨지는 것은 오늘날 가장 많은 개발자들이 이용하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자바(Java)를 처음 만들어낸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자바는 제임스 고슬링(James Gosling)이 1991년 시작한 프로그래밍 언어 프로젝트로 원래는 많은 셋탑박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운영체제와 관계없이 한 번만 코딩을 하면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환경과 언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진행을 하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제임스 고슬링의 사무실에서 보이는 참나무(oak)에서 영감을 받아 Oak 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동료들이 붙으면서 여러 이름들 중에서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Java 로 바뀌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제임스 고슬링은 하드웨어와 관계없이 동작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어떤 하드웨어나 운영체제에서도 동작할 수 있는 가상머신(virtual machine)을 만들고, 이 위에서 동작하게 만들면 한 번만 만들어서 여러 곳에서 쓸 수 있다는(Writing Once, Run Anywhere) 개념을 중요시하였고, 또한 당시 가장 많이 사용하던 C/C++ 프로그래밍 언어와 문법이 비슷하지만 골치거리인 메모리 관리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언어를 디자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자바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를 통해 1995년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후 여러 부침이 있었지만, 자바는 전세계 프로그래머들이 가장 사랑하는 언어로 그 자리를 공고하게 지킵니다.  IBM 역시 자바에 대해 강력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특히 강력한 웹 지원기능과 서버환경에 적합한 도구 및 기능을 제공하면서 WAS(Web Application Server) 소프트웨어들이 대세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썬 마이크로시스템스가 닷컴 버블 시절에 가장 많은 서버 장비를 판매하는 회사 중의 하나로 자리잡게 만드는 일등공신이 됩니다.  또한, 오늘날 아이폰과 함께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역시 자바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자바의 영향력은 정말 계산하기 어려운 수준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구글의 CEO 가 된 에릭 슈미트는 이런 부분에 주목을 하였고, 자바의 활용과 관련한 많은 정책과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CTO의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닷컴버블 기간인 1995~2000년 사이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는 정말 대단한 성장을 합니다.  수요가 많았기에, 투자도 많이 하였고 온통 장미빛 전망에 휩싸였기에 지출도 그만큼 늘어나면서 비약적으로 회사의 규모가 커졌습니다.  이런 성장에는 닷컴버블기간 자금이 풍부했던 벤처회사들이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적절한 서버에 투자를 하기 보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와 같은 회사의 고가의 서버에 과감히 투자하는 사례가 늘어난 측면도 많았기에,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도 x86 계열의 저가 서버에 시장의 주도권을 내주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1997년 에릭 슈미트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가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노벨(Novell)의 CEO로 자리를 옮깁니다.  개인적으로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선택이 없었다면 아마도 오늘날 구글 CEO 로 화려하게 컴백하는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니 어찌보면 새옹지마라고 하겠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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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에 태어난 또 한명의 거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1955년에 태어난 동갑나기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IT 삼국지의 남은 하나의 제국인 구글을 현재 이끌고 있는 CEO 에릭 슈미트(Eric Schmidt) 역시 1955년 생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현재 전세계를 움직이는 세 회사의 총수들이 모두 한 해에 태어났다는 것은 어찌보면 역사의 필연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구글의 창업자들은 그보다 훨씬 어리지만 말이죠 ...

에릭 슈미트는 1955년 4월 27일, 버지니아주 폴스처치(Falls Church)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워싱턴 DC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살기좋은 도시로 그의 아버지 윌슨 슈미트는 존스 홉킨스 대학의 국제경제학 교수였고, 닉슨 대통령 시절 미국 재무부에서 일을 했으며, 어머니인 엘리너는 심리학 석사 출신으로 전업주부로 가정에 충실한 전형적인 엘리트 집안입니다.  

에릭 슈미트 역시 중고등학교 다닐 때 대형 컴퓨터를 이용한 프로그래밍에 푹 빠져 살았다고 합니다.  천공카드로 구멍을 뚫어서 시간을 나누어 써야 했던 컴퓨터였지만, 그 역시 컴퓨터와의 운명적인 사랑은 외면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어렸을 때부터 창업의 길을 걷지는 않았습니다.  공부도 잘했지만, 운동역시 잘했던 에릭 슈미트는 특히 장거리 육상에 소질이 있어서 최고의 육상선수이기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에릭 슈미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 프린스턴 대학의 건축학과에 입학합니다.  그렇지만, 워낙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좋아했던 그는 전기공학과로 전과를 합니다.  특히 대학의 컴퓨터가 밤만 되면 빨라졌기 때문에, 거의 밤마다 잠을 자지 않고 프로그래밍을 하였으며, 여름이 되면 당대 최고의 연구소의 하나였던 벨 연구소에서 일을 했는데, 벨 연구소는 1969년에 현재까지도 가장 위대한 운영체제의 하나이자 수많은 다른 운영체제의 원형이 된 Unix 운영체제가 탄생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에릭 슈미트는 대학생 신분으로 역사에 남을 프로그램을 하나 완성시키는데, 그것이 바로 컴파일러를 만들 때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도구인 lex 라는 소프트웨어 입니다 (lexical analyzer, 구문해석기).  1979년 프린스턴 대학 전기공학 학사학위를 취득한 에릭 슈미트는 같은 해 캘리포니아로 떠납니다.  보다 깊은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버클리를 선택한 그는 여름이면 제록스 파크(Xerox PARC) 연구소에서 다양한 연구를 경험하며 컴퓨터 공학의 이론과 실제를 꾸준히 공부하고 수련하면서 착실히 내실을 다져나갑니다.  그는 1982년 버클리에서 대학졸업 3년만에 초고속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데, 그 기간동안 바로 옆동네인 실리콘 밸리에서는 동갑나기 천재인 스티브 잡스가 이끄는 애플이 그리고 시애틀에서는 빌 게이츠가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신생회사가 세상을 바꾸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소처럼 꾸준하게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커리어를 쌓아나가던 에릭 슈미트는 결국 두명의 천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회사의 CEO 자리에 오르면서 현재 가장 뛰어난 미래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소프트웨어의 한 길을 걸어가는 마이크로소프트

대담하게 세계 최초의 PC 인 Altair 8800 에 공급할 BASIC 언어 인터프리터(이하 BASIC으로 표기)를 개발하겠다며 MITS를 졸랐던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은 가능성을 인정받고 약속한 8주만에 BASIC을 하버드 대학에서 완성을 하고 뉴멕시코 앨버커리로 날아갔습니다.  이들이 개발한 BASIC은 완벽하게 동작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앨버커키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합니다.

빌 게이츠는 아버지의 도움도 받고, 과거 레이크 사이드 고등학교 시절에 함께 했던 동료들을 속속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시키며 회사를 키워나갑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BASIC은 이용하기도 쉽고,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에 컴퓨터 매니아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습니다.  또한 당시만 해도 전문 소프트웨어 회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실력을 신뢰한 여러 하드웨어 회사들이 많은 일을 의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창업하자마자 1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고, 그 다음해에도 성장가도를 달렸지만, 이제는 MITS가 걸림돌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직접 판매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에 딸려나가면서 로열티를 받는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MITS 라는 회사의 하드웨어 생산능력과 판매량에 따라 회사의 성장성이 제한받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더구나 독점적 계약을 미끼로 다른 회사의 하드웨어에는 BASIC을 탑재하지 못하도록 했던 MITS 의 정책을 참을 수 없었던 빌 게이츠는 1년 뒤인 1977년 결국 MITS 와의 계약을 파기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계약파기에 불복한 MITS는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게 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MITS 측이 자사의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맞상대를 합니다.  법원은 빌 게이츠의 손을 들어주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들이 개발한 BASIC 을 다른 회사에도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하면서 때마침 불어닥친 PC 시대와 함께 회사가 급성장을 하게 됩니다. 

1978년 11월에는 일본의 하드웨어 업체들에게 BASIC 을 공급하기 위해 ASCII Microsoft 라는 법인을 일본에 설립하게 되는데, 이 회사는 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일본지사가 되며 일본을 중심으로 결성하게 되는 MSX 컴퓨터 연합을 이끄는 중심이 됩니다.  전 세계의 PC 하드웨어 업체들을 고객으로 맞게 된 빌 게이츠는 뉴멕시코를 떠나 자신의 고향인 워싱턴주 시애틀 인근의 벨뷰(Bellevue)로 회사를 옮기는데, 이 때가 1979년 1월 1일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애틀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1979년 동부에 있었던 에릭 슈미트는 캘리포니아로 넘어오게 되고, 1977년 애플 II를 발표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1979년 전 세계를 애플 II 로 호령하면서 떵떵거리기 시작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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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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