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의 10화에서도 간단히 언급한 바 있는 제록스 파크 연구소의 앨런 케이(Alan Kay)도 재조명이 필요한 중요한 인물이다. 앨런 케이는 제록스 파크에서 스튜어트 브랜드와 엥겔바트의 데모에서 컴퓨터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얻은 이후, 개인용 컴퓨터를 구상하기 시작해서 제록스 알토(Xerox Alto)를 탄생시켰고, 컴퓨터를 미디어로 소비기기로 취급한 최초의 태블릿 PC인 다이나북(Dynabook)도 구상하였다.


다재다능한 천재, 교육에 빠지다.

1940년 생인 앨런 케이는 보울더(Boulder) 콜로라도 주립대학에서 수학과 분자생물학을 복수로 전공하였다. MIT의 노버트 위너도 그렇고, 오픈소스 문화의 전파자인 리차드 스톨만도 그렇지만 이렇게 위대한 컴퓨터 과학자들 중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재미있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나 다르게 생각하는 두 학문 사이에 생각보다 커다란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터넷과 우리의 뇌가 닮아있다는 개념도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의 미래에 있어서도 무척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앨런 케이는 또 한 가지 중요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대학을 다니기 전부터 프로 재즈 기타리스트로 활동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1966년 부터는 유타주립대학교 공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데, 스케치패드(Sketchpad)를 비롯하여 그래픽 프로그램을 선구적으로 만들었던 이반 서덜랜드(Ivan Sutherland)와 함께 일하면서 컴퓨터를 단순한 계산과 프로그래밍 언어와의 연결이 아닌 물체와 멀티미디어와 연결체로 보는 시각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1968년에는 세이머 페퍼트(Seymour Papert)를 만나서 로고(Logo)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웠는데, 인공지능 언어로 알려졌던 Lisp를 교육용으로 최적화해서 간단하게 컴퓨터가 그림을 그려내도록 하는 것을 보면서 이후 인생에 있어 교육과 관련하여 자신의 재능을 쏟아붓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후 그는 쟝 피아제(Jean Piaget),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 등과 같은 구성주의 학습(constructive learning)의 대가들의 교육방법에 주목하여 실제로 무엇인가를 같이 만들어가면서 배우는 교육을 가능하게 만드는데 일생을 바친다.

앨런 케이는 1970년 제록스 파크 연구소에 조인하면서 위대한 역사의 현장에 함께하게 된다.1970년 대에는 제록스 알토를 같이 만들었는데, 이것이 결국 애플의 리사(Lisa)와 매킨토시 컴퓨터의 원형이 되었다. 또한, 그는 물체의 개념과 프로그래밍 언어를 연결하는 객체지향 프로그래밍(object-oriented programming)도 처음으로 개념정립한 인물 중의 하나이다. 또한, 오늘날 누구나 사용하는 중첩되는 윈도우라는 개념도 처음으로 만들어냈다. 그런 측면에서 앨런 케이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그리고 현대적 프로그래밍 언어에 이르는 거의 모든 ICT 산업 영역에서 막대한 영향을 준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의 업적 중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이후 노트북과 태블릿, 전자책 등의 원형이 되는 다이나북(Dynabook) 개념을 처음으로 실현한 것이다. 다이나북은 교육 플랫폼으로 처음 고안되었고, 그는 세계 최초의 모바일 학습에 대한 연구자로도 불리운다.


전 세계의 아이들의 교육에 남은 인생을 바치다

제록스 파크 연구소에서의 화려한 연구경력 이후에도 그는 애플과 디즈니 등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렇지만, 그의 최근의 행보는 더욱 존경스럽다. 2001년 그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 첨단 소프트웨어의 개발을 위해 뷰포인츠 연구소(Viewpoints Research Institute)라는 비영리재단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70세가 넘은 현재도 뉴욕대학에서 ICT 기술을 이용한 교육과 관련한 강의를 열정적으로 수행하면서, 그가 꿈꿔온 새로운 방식의 교육을 접목시킬 수 있는 많은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2005년에는 절친한 친구인 MIT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와 함께 전세계 아이들을 위한 저렴한 $100 노트북 프로젝트를 공개하는데, 이를 OLPC(One Laptop Per Child)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OLPC의 원형인 XO-1 컴퓨터는 그가 무려 40년 전에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었던 다이나북을 본래의 의도에 맞게 완벽한 교육용 컴퓨터로 진화시킨 것이었다. 특히 OLPC에 탑재된 Squeak와 Etoys의 교육용 소프트웨어는 그의 평생동안의 연구업적이 녹아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고 직관적이다. OLPC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에 수백 만대의 저렴한 교육용 노트북 컴퓨터가 현재 공급되고 있으며, 이 연구와 사업의 성과는 앞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의 미래에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앨런 케이가 이렇게 직관적이고 훌륭한 개념의 컴퓨터를 계속 고안하고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프레임을 가지고,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른과 달리 기존의 사회적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컴퓨터를 이용한다고 생각했고,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인간 본성에 더 가까운 컴퓨터 이용 방법이나 인터페이스 방식의 힌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2008년 TED에서 있었던 그의 강연을 보면서, 그가 생각한 새로운 유형의 교육과 $100 OLPC에 탑재된 멋지고도 직관적인 교육용 소프트웨어의 시연을 감상해 보도록 하자.




(다음 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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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닉스와 UC 버클리, 그리고 MIT에서 일을 했던 리처드 스톨만, 그리고 리눅스로 이어지는 역사에 공통적으로 연상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해커(Hacker)이다. 페이스북이 기업공개를 하면서, CEO인 마크 주커버그가 주주들에게 남겼던 편지에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 되었던 것이 또 "해커정신(Hacker Way)"이다. 

마크 주커버그가 언급한 해커정신은 백마디 말과 계획을 세우기보다 바로 실행해보고 혁신을 하는 문화이다. 실패를 하더라도 빨리 실패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어서 더 나은 서비스와 경험을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그가 남긴 편지의 내용을 일부 인용한다.


페이스북은 원래 기업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세상을 더 열린 공간과 서로 연결된 곳으로 만드는 사회적 임무를 성취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 새로운 생각을 나누고, 세상을 이해하며, 궁극적이고 장기적인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해커문화와 해커정신은 어떻게 탄생한 것인가? 그리고, 인터넷의 시작은 이러한 해커문화와 무슨 관련성이 있는 것일까?



해커문화의 탄생과 해커정신

해커라는 용어는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스튜어트 브랜드가 롤링스톤에 기고한 "스페이스워(Spacewar)" 기고문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스튜어트 브랜드는 매사에 세밀하게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사람이 ‘플래너(Planner)’라면 이와 반대로 즐거움에 이끌려 임의적으로 새로운 혁신을 하거나 발명하는 사람을 ‘해커(Hacker)’라 불렀다.


제록스 파크 연구소의 해커들은 PDP-7 컴퓨터를 이용해서 우주전쟁을 테마로 한 텍스트 게임인 스페이스워 게임을 개발하고 즐기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기 위해 네트워크가 필요했고, 이때 이용했던 네트워크가 오늘날 인터넷의 효시인 아르파넷(ARPANET)이 되었다. 이와 같이 컴퓨터는 대항문화와 연관이 되었고, 컴퓨터 게임과 해커들의 문화,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데 필요한 초기 인터넷까지 제록스 파크 연구소에서 실연이 되었는데, 이는 오늘날의 웹 문화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스튜어트 브랜드의 스페이스워 기고문에 등장하는 파크 연구원 중에는 최초로 태블릿 컴퓨터를 구상했던 앨런 케이(Alan Kay)도 등장한다. 앨런 케이는 스튜어트 브랜드와 엥겔바트의 데모에서 컴퓨터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이전까지 컴퓨터를 계산과 시뮬레이션 등의 용도로 생각했다가 이 때부터 개인용 컴퓨터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앨런 케이가 구상한 개인용 컴퓨터는 제록스 알토(Xerox Alto)로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스티브 잡스도 제록스 알토에서 영감을 얻어 매킨토시를 개발하였다. 앨런 케이는 개인용 컴퓨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컴퓨터를 미디어로 소비기기로 취급한 최초의 태블릿 PC인 다이나북(Dynabook)도 구상했다. 다이나북은 태블릿의 형태이면서, 터치패널 입력도 구현하였는데, 이것이 1968년의 일이니 무려 40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아이패드라는 태블릿으로 꽃을 피우게 된다.



냉전의 산물에서 인터넷의 효시가 된 아르파넷

제록스 파크에서 스페이스워를 즐겼던 해커들이 이용한 아르파넷은 오늘날 인터넷의 전신이 된 컴퓨터 네트워크이다. 아르파라는 이름은 미국의 고등연구계획국(DARPA,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의 약자에서 따온 것으로 1969년에 개발되었다. DARPA는 미국이 1957년 소련(구 러시아)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자, 그 다음 해인 1958년 첨단기술 연구를 위해 설립한 곳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활약했던 군과 대학을 포함한 민간연구기관의 협력체제를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미국 전역의 유수의 연구기관들의 연구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교환하는 인프라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동시에 냉전 당시에 가장 위협적인 시나리오였던 핵 공격이 있을 경우에 통신기능이 파괴되지 않도록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네트워크 기술이 필요하였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전화망과 같이 각각의 지점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형태보다는 효율성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우회를 통해서 연결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분산형 네트워크 구조가 필요하였다. 그리고, 네트워크의 가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잘게 잘라서 복수의 경로를 통해서 보내더라도 수신 측에서 이를 재구성이 가능하도록 패킷(packet)을 활용하도록 설계하였다. 또한, 네트워크 일부가 파손되어도 쉽게 복구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 간의 통신 규칙인 프로토콜을 정해서, 프로토콜만 준수하면 손쉽게 새로운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르파넷은 미국 고등연구계획국이 연구비를 투자한 여러 연구기관을 연결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최초의 노드간의 상호연결은 1969년 10월 29일 UCLA와 SRI(Stanford Research Institute) 연구소간에 연결되었다. 그래서, 10월 29일을 인터넷의 탄생일로 간주하기도 한다.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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