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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IT 삼국지의 주인공은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CEO로 있는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입니다.  한창 인터넷 이야기가 진행되는 1990년대 후반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왠 스티브 발머? 하시는 분들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1990년대 후반 인터넷 기업들이나 구글, 애플은 워낙 많은 변화들이 있어서 그에 대한 이야기 거리가 많지만, 이 시기 마이크로소프트는 워낙 잘 나가고 있어서 특별한 이슈없이 윈도우와 오피스 제품군이 판올림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세상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고, 시가총액과 매출은 계속 늘어가고, 많은 인물들이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는 등 거대기업의 모습을 보여가고 있었기에 그다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인 스티브 발머에 대해서는 의외로 많은 정보가 없어서 따로 그에 대해 다루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최근의 마이크로소프트가 구글이나 애플에 미래 비젼이나 이슈에서 밀리는 양상을 보이면서 그의 역량에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고, 빌 게이츠 이후의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걱정의 시선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역시도 알려진 것보다 훨씬 대단한 역량을 가진 인물입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외향적 비즈니스맨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보다 한살 어린 1956년 생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였습니다.  그는 공부도 잘했지만, 하버드 대학의 미식축구 팀도 관리하고, 하버드 대학 학교신문인 하버드 크림슨(Harvard Crimson)에서도 일을 하는 등 매우 활발한 학교활동을 하였습니다.  빌 게이츠와는 기숙사에서 가까운 위치에 방을 얻어서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많은 접촉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하게 됩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스티브 발머는 2년간 세계적인 소매업체인 프록터앤갬블(Procter and Gamble, P&G)에서 일을 했는데, 그 당시 같은 사무실을 쓰던 제프리 이멜트(Jeffrey R. Immelt)는 훗날 GE(General Electric)의 CEO가 됩니다.  작은 사무실의 신입 동료들이 훗날 세계 최대의 회사의 CEO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P&G에서 나와 스탠포드 대학에서 MBA 과정을 이수하던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의 낙점을 받고 결국 스탠포드  MBA를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작은 회사에 자신의 미래를 거는 결정을 내립니다.

그를 합류시키기 위해 빌 게이츠는 정말 대단한 정성을 들였다고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빌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를 시애틀 친가에 초대를 해서 부모님들과 소개도 하고, 그를 위한 성대한 만찬을 열었습니다.  또한, 시애틀 관광도 같이하면서 하루종일 설득을 하였는데 빌 게이츠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에 홀딱 빠져들게 됩니다.  1980년 6월 11일, 스티브 발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24번째 직원이 되면서 개발자 위주의 조직인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관리를 전담합니다.  스티브 발머는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데 주식소유를 중시하였습니다.  자신도 입사를 하면서 1981년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의 8%를 소유하였고, 이후 스톡옵션을 고안해서 많은 직원들에게 회사에 헌신하고 동시에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심어주는데 그 결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식공개를 하면서 만 명이 넘는 직원들이 백만장자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철저한 원칙주의자, 그리고 불같은 성격

스티브 발머는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원칙에 맞는 경영을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 사람입니다.  그에 비해 빌 게이츠는 엔지니어이고, 또한 엔지니어 답게 기업의 경영관리적인 측면에서는 허술한 측면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많은 싸움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창기 마이크로소프트가 조금씩 성공의 문을 열어가고 있을 시절, 30명 정도의 직원이 있었을 때 여러 사업기회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빌 게이츠는 빚을 얻기 싫어했고, 동시에 직원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안전지향적인 회사운영을 하려고 하였지만, 스티브 발머는 앞으로 다가올 기회를 본다면 적어도 15~20명 정도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을 하면서 대립각을 세운 사건은 유명합니다.  당시 스티브 발머는 시애틀의 빌 게이츠의 집에서 빌 게이츠의 부모들과 같이 살고 있었는데, 빌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가 회사를 망하게 할 것이라며 엄청나게 화를 내었고, 이에 질세라 스티브 발머는 사직서를 쓰고 짐을 모두 챙겨서 집을 나가기까지 합니다.  이런 갈등을 중재한 사람은 변호사였던 빌 게이츠의 아버지 였습니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가 직접 스티브 발머를 찾아와서 중재와 화해를 시키고 나서야 이들의 갈등은 봉합이 되었는데, 결국 스티브 발머의 의견대로 인원을 늘리면서 회사는 더욱 탄탄대로를 달리게 됩니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이 사건으로 스티브 발머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스티브 발머와 같이 원칙에 충실하고 창업자의 의견에 반기를 강력하게 들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행운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스티브 발머의 또 하나의 커다란 업적은 바로 스톡옵션을 고안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익숙해진 제도지만, 스톡옵션은 직원들에게 싼 값으로 회사의 주식을 살 수 있도록 권리를 주는 것으로 봉급과는 별도로 미래의 회사가치를 위해 더욱 많은 직원들이 열과 성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자, 정말 회사가 성공할 경우에는 다같이 부자가 될 수도 있게 만드는 제도입니다.  이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상장을 했을 때 백만장자로 등극한 직원이 1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앞서 빌 게이츠와의 갈등에서도 드러났듯이 스티브 발머는 대단한 다혈질로 공개석상에서도 화를 참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스티브 발머의 화내는 모습이 일부 동영상으로 유튜브로 퍼지면서 그의 성격이 도마에 오르기도 하였는데, 성격 탓에 자신의 능력에 비해 많은 부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측면도 있는 듯 합니다.  그에 비해 빌 게이츠는 언제나 밝은 표정에 다정다감하고 행동은 어떨지 몰라도 말을 할 때에는 상당히 겸손하게 이야기하는 편이라 세간의 평판이 좋았습니다.


빌 게이츠와의 권력다툼

이렇게 스타일이 달랐기에 회사 내에서도 은근히 빌 게이츠와 의견대립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호시탐탐 1인자의 자리를 노렸습니다.  그리고, 이사회에서도 빌 게이츠가 뛰어난 인물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함이 빌 게이츠에게만 끌려다녀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있었기에 스티브 발머를 통해 균형을 맞추려는 분위기가 많았습니다. 

물론 회사의 공동의 이득을 위해 같이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였지만, 2000년 스티브 발머가 CEO 로 등극하고 빌 게이츠가 2인자로 내려앉는 순간의 일화는 세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은 2008년 관련기사를 통해 2000년 당시 빌 게이츠가 이사회를 통해 자신을 밀어내려는 스티브 발머와 그의 조력자들을 향해 불같이 화를 내고 뛰쳐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스티브 발머가 약간 후회를 하기도 하였지만, 기자에게 인터뷰를 한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나는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게 기본원칙이다" "그를 이용하는 것은 좋지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I'm not going to need him for anything. That's the principle," Ballmer said. "Use him, yes, need him, no."

비록 스티브 발머가 빌 게이츠처럼 비전을 심어주거나,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창조적인 리더는 아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경쟁과 소신있는 발언을 통해 발전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모습을 보면서 기업의 오너에게 거의 전권을 주고 휘둘리며, 직위에 약간의 차이만 있으면 할말 거의 못하고 죽어지내는 우리나라의 커다란 기업의 문화가 대비되어 생각나는 것이 저만은 아니겠지요?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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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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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애틀로 옮긴 이후에 여러 8비트 컴퓨터 회사들의 BASIC 인터프리터를 구현하면서 점차 몸집이 커져갑니다.  그렇지만 엔지니어 위주의 회사가 몸집이 커지다보니 회사의 회계와 기본적인 관리를 포함한 경영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개발자 임금협상과 관련한 문제로 미국 노동중재위원회에 빌 게이츠가 불려가는 일까지 있으면서 전문경영인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 때 빌 게이츠가 선택한 인물이 바로 현재의 마이크로소프트 CEO로 있는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입니다.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보다 한살 어린 1956년 생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스티브 발머는 공부도 잘했지만, 하버드 대학의 미식축구 팀도 관리하고, 하버드 대학 학교신문인 하버드 크림슨(Harvard Crimson)에서도 일을 하는 등 매우 활발한 학교활동을 하였습니다.  빌 게이츠와는 기숙사에서 가까운 위치에 방을 얻어서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많은 접촉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하게 됩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스티브 발머는 2년간 세계적인 소매업체인 프록터앤갬블(Procter and Gamble, P&G)에서 일을 했는데, 그 당시 같은 사무실을 쓰던 제프리 이멜트(Jeffrey R. Immelt)는 훗날 GE(General Electric)의 CEO가 됩니다.  작은 사무실의 신입 동료들이 훗날 세계 최대의 회사의 CEO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P&G에서 나와 스탠포드 대학에서 MBA 과정을 이수하던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의 낙점을 받고 결국 스탠포드  MBA를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작은 회사에 자신의 미래를 거는 결정을 내립니다.

그를 합류시키기 위해 빌 게이츠는 정말 대단한 정성을 들였다고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빌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를 시애틀 친가에 초대를 해서 부모님들과 소개도 하고, 그를 위한 성대한 만찬을 열었습니다.  또한, 시애틀 관광도 같이하면서 하루종일 설득을 하였는데 빌 게이츠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에 홀딱 빠져들게 됩니다.  1980년 6월 11일, 스티브 발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24번째 직원이 되면서 개발자 위주의 조직인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관리를 전담합니다.  스티브 발머는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데 주식소유를 중시하였습니다.  자신도 입사를 하면서 1981년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의 8%를 소유하였고, 이후 스톡옵션을 고안해서 많은 직원들에게 회사에 헌신하고 동시에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심어주는데 그 결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식공개를 하면서 만 명이 넘는 직원들이 백만장자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BASIC 전도사, 엄청난 기회를 잡다.

빌 게이츠가 설립한 마이크로소프트는 Altair 8800 에서의 BASIC 언어 인터프리터를 구현한 것을 시작으로, 애플 II 의 애플소프트(Apple + Microsoft) BASIC 을 포함하여 당시 수많은 8비트 컴퓨터의 BASIC 을 구현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게 됩니다.   BASIC 언어는 익히기도 쉬워서 1970년대 후반 미국 정부에서는 컴퓨터 교육과정을 BASIC 을 중심으로 짜게 됩니다.  국내에서도 처음 8비트 컴퓨터 붐이 일었던 1980년대 초반 대부분의 컴퓨터 교육이 BASIC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거의 모든 컴퓨터에 우수한 BASIC 언어를 탑재해야하는 동력으로 작동하게 되고,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분야에서 최고의 회사로 인정받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의 비즈니스 환경은 결코 소프트웨어 회사들에게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돈은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컴퓨터 회사들이 많이 벌었고, 그렇게 많은 컴퓨터에 BASIC 언어를 구현했지만 1981년 MS-DOS 를 탄생시키기 전까지 마이크로소프트가 벌어들인 돈은 모두 합해서 500만 달러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비록 애플 II 가 가장 대표적인 컴퓨터로 이름을 날리고, 다양한 클론 제품군들이 나오면서 전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당시의 컴퓨터 환경은 글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습니다.  이 시기에 IBM이 1년간의 TFT를 통해 당시 호환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개방형 아키텍처와 호환기종이 쉽게 생겨날 수 있도록 한 정책, 그리고 범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 컨셉을 들고 나오면서 판세는 급격히 IBM으로 기울기 시작합니다.  IBM이 PC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많은 조언을 얻은 사람 중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있었습니다.  특히 CPU를 선정할 때에 인텔 8088 또는 8086 16비트 프로세서를 추천한 것도 빌 게이츠 였는데, 당시 가장 많이 이용되던 모토롤라 등의 CPU를 생각하던 IBM의 직원들을 논리정연한 설명으로 인텔 CPU를 채택해야하는 당위성을 설득시키면서 IBM의 PC 제작팀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드웨어의 구색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자, IBM은 운영체제를 놓고 오랫동안 고민을 하였습니다.  이 때에도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이 바로 빌 게이츠입니다.  빌 게이츠는 CP/M을 만든 게리 킬달이라면 새로운 인텔의 16비트 CPU에 최적화된 운영체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게리 킬달의 디지털 리서치를 소개합니다.  당시 게리 킬달의 CP/M 은 당대 최고의 운영체제로 애플 II 를 제외한 컴퓨터에서 거의 독보적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게리 킬달은 특히 비행기 광이어서 개인용 비행기를 사서 미국 전역을 날아다니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런 성격이 결국 거대한 기회를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주게 됩니다.  IBM과의 미팅약속을 해놓고도 게리 킬달은 자신의 비행기를 몰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고, IBM을 맞은 사람은 그의 아내인 도로시였습니다.  이 때부터 IBM의 감정은 상할데로 상한 상태였지만, CP/M이 워낙 마음에 들었기에 IBM은 디지털 리서치와 의견조율을 통해 CP/M을 IBM-PC에 맞게 개발하도록 대략적인 합의를 합니다.  그런데, 정작 계약은 엉뚱한데서 깨지게 됩니다.  IBM은 자신들의 PC 프로젝트의 기밀유지가 중요했기에 해당 프로젝트와 관련한 비밀준수게약을 디지털 리서치에 요구하는데, 디지털 리서치는 이런 요구가 자신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하고 계약 전체를 거부합니다.

IBM은 이 대목에서 디지털 리서치와 더 이상의 줄다리기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 게이츠를 불러서 혹시 운영체제를 개발해줄 수 없냐는 의사타진을 합니다.  당시의 빌 게이츠는 BASIC 인터프리터는 많이 개발했지만 정작 운영체제를 개발한 경험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면 대단한 모험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을 바꿀 기회가 왔다는 것을 직감한 빌 게이츠는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Seattle Computer Product, SCP)라는 회사가 CP/M을 기반으로 만든 86-DOS 라는 운영체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대담하게 이 제안을 받아 들입니다.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 빌 게이츠에게 넘어가다.

86-DOS는 인텔의 8086 16비트 CPU에 동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CP/M 기반의 운영체제입니다.  SCP는 자신들의 컴퓨터를 디자인하면서 디지털 리서치의 CP/M을 인텔 8086에 맞게 개발된 것이 있다면 채용을 하려고 했지만, 디지털 리서치는 계획만 발표하고 실제로 동작하는 운영체제의 출시를 차일피일 늦추고 있었습니다.  이에 SCP는 24세의 젊은 컴퓨터 천재인 팀 패터슨(Tim Paterson)을 고용하여 16비트 CP/M 운영체제를 개발하라고 합니다.

팀 패터슨은 오래된 CP/M 프로그램과 호환이 되는 API를 가지고 86-DOS를 디자인합니다.  동시에 CP/M을 쓰면서 불편했던 점들 개선하는 방향으로 운영체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CP/M의 파일 시스템 대신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텔 8086 CPU 용으로 개발한 BASIC-86이 가지고 있었던 FAT 파일 시스템을 채용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BASIC과의 호환성을 극대화 하였습니다.

IBM으로부터 일단 전권을 위임받은 빌 게이츠는 SCP와 협상을 통해 1980년 12월 $25,000 달러라는 헐값에 86-DOS에 대한 라이센스를 획득합니다.  1981년 5월 마이크로소프트는 팀 패터슨을 스카웃해서 IBM-PC가 채택한 8088 CPU에서 동작하는 운영체제를 개발하도록 하였습니다.  1981년 7월, IBM-PC가 출시되기 한달 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SCP로부터 86-DOS와 관련한 모든 권리를 $50,000 달러에 사들입니다.  이 때의 계약은 후일 SCP와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디지털 리서치 사이의 법정분쟁에서도 문제가 되는데, 마이크로소프트가 SCP 측과 계약을 할 당시 IBM과 진행하던 프로젝트 내용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IBM이라는 거대한 기업의 운영체제로 사용될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SCP의 사장은 너무나 싼 가격에 모든 권리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겨주게 된 것입니다.  법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의 계약관계를 SCP 측에 알릴 의무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을 숨기고 시장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계약을 한 것에 대한 도의적인 불만은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이 사건은 결국 마이크로소프트가 SCP 측에 100만 달러를 더 주는 수준에서 중재가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86-DOS를 IBM에게 라이센스를 주는 계약을 맺는데,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PC-DOS 1.0 입니다.  여기에 더해 마이크로소프트는 독점사용권과 일시불 계약을 원하던 IBM을 출시시간의 압박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독점도 주지 않고, 로열티 계약을 하는 대단한 성과를 올리게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BM의 개방형 정책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입게 됩니다.  이후 수많은 IBM-PC 호환기종들이 나오게 되는데, 이들에게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의 회사 이니셜을 딴 MS-DOS를 판매합니다.  MS-DOS는 PC-DOS와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운영체제로 오리지널 IBM-PC를 제외한 호환 컴퓨터에서 판매된 운영체제입니다.


디지털 리서치, 뒤늦은 후회와 잘못된 전략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어이없게 마이크로소프트에게 IBM의 운영체제 자리를 빼앗겨버린 디지털 리서치의 게리 킬달은 PC-DOS를 살펴 보다가 PC-DOS가 자신이 개발한 CP/M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그대로 복제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IBM을 지적재산권 침해로 고소하려고 하였으나, 디지털 리서치의 변호사는 IBM과의 송사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IBM과 어떤 형태로든 중재를 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을 권합니다.  이에 게리 킬달은 IBM과의 담판을 통해 자사의 CP/M-86 과 마이크로소프트의 PC-DOS 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데 합의합니다.  이 때만 하더라도 게리 킬달은 CP/M-86 이 안정성과 기능성 모두에서 PC-DOS 를 압도한다고 믿었고 그에 따라 자신의 승리를 자신하면서 가격정책을 결정합니다.

디지털 리서치가 IBM-PC를 구매할 때 옵션으로 CP/M-86 을 선택할 때 제시한 가격은 $240 달러였고, PC-DOS는 $60 달러에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기술적으로 CP/M-86 이 훨씬 나았고 게리 킬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비교가 안되는 운영체제라고 생각했겠지만, 소비자들은 저가의 PC-DOS를 대부분 선택합니다.  이와 함께 IBM 호환기종을 내놓은 업체들 역시 오리지널 IBM-PC 와의 완벽한 호환성을 위해서 대부분 MS-DOS 를 채택하면서 결코 저물지 않을 것 같았던 디지털 리서치의 CP/M 신화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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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하다.

1977년 애플 II 가 출시될 당시, PC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본 소프트웨어는 BASIC 언어를 해석해서 실행을 해주는 인터프리터였습니다.  애플 II 에는 스티브 워즈니액인 만든 정수 BASIC (Integer BASIC) 이라는 인터프리터가 탑재되어 있었는데, 이 BASIC 언어는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실수에 대한 처리와 일부 문자열 처리를 하는데에 문제가 있어서 비즈니스용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7~1979년 6월까지 정수 BASIC 은 애플 II 에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BASIC 인터프리터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앞에서 언급한 문제들로 인하여 애플은 문제를 해결한 새로운 BASIC 인터프리터를 제공하기를 원했는데, 그 파트너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선택합니다.

앞선 연재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마이크로소프트는 1975년 이후 BASIC 인터프리터 개발과 관련해서는 당대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1976년 중반 마이크로소프트의 첫번째 직원인 마크 맥도널드(Marc McDonald)는 6502 마이크로프로세서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당시로서는 6502 를 이용한 PC는 애플-1 밖에 없었고 애플 II 가 출시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스티브 잡스에게 전화를 해서 혹시 새로운 BASIC에 관심이 없는지 의사를 타진합니다.  그렇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스티브 워즈니액이 만든 정수 BASIC 이 있었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는 자신들은 이미 BASIC을 가지고 있다면서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렇지만 맥도널드는 6502용 BASIC을 그냥 만들기 시작합니다.   애플은 애플 II 를 출시하면서 탑재한 정수 BASIC의 성능에 대한 불만족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수정요구가 많아 졌지만, 혼자서 BASIC 을 개발한 스티브 워즈니액은 새로운 DISK II 라는 인터페이스 카드를 디자인하느라 BASIC을 손볼 수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1976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제안했던 내용을 기억하고 새로운 BASIC을 만들어 줄 수 없냐고 1977년 8월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접촉합니다.  1977년 8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10년간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6502 BASIC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수정하는 권한을 애플이 가지는 것으로 $10,500 달러짜리 개발계약을 맺게 되는데, 마이크로소프트는 1976년 10월 코모도어의 PET에 탑재되는 ROM BASIC을 개발하는데 역량을 많이 썼음에도, 하드웨어 제작 및 판매가 지연되면서 일시적인 자금의 경색이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하드웨어 판매당 로열티 방식으로 하던 계약을 고집하지 않고 일반 개발계약에 동의합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새로 만드는 BASIC이 기존에 만들어둔 BASIC을 약간만 손을 보면 되는 수준으로 쉽게 만들 수 있었고, 애플에서 그 이후의 수정개발을 랜디 위긴턴과 같은 자사의 엔지니어를 통해서 책임지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는 이점이 있기는 했지만, 이 계약은 협상의 귀재인 빌 게이츠 답지 않게 애플 II의 대성공의 과실을 같이 많이 누릴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BASIC의 이름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름을 따서 애플소프트 BASIC(Applesoft BASIC)으로 결정되고, 1977년 11월 카세트 테이프에 담겨져서 처음으로 출시됩니다.

이처럼 처음으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벌였던 줄다리기(?)와 협력에서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판정승을 거둡니다.  일반적인 로열티 계약 대신에 자사의 엔지니어를 투입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10년간 마음대로 고쳐쓸 수 있는 계약을 이끌어낸 스티브 잡스도 대단하지만, 천하의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도 회사 초창기 돈이 궁하던 시절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인간적(?)인 면도 보인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애플소프트 BASIC II와 애플 II+ 출시

초창기 애플소프트 BASIC에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테이프로 로드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프로그램을 돌리더라도 컴퓨터를 껐다켜면 BASIC을 다시 로드하고 프로그램을 다시 돌려야 했습니다.  또한, 애플 II의 고해상도 그래픽을 쓰기 위한 메모리 영역을 침범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래픽 언어를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처리할 수 있는 BASIC은 애플소프트 BASIC 밖에 없었기에 비즈니스용 어플리케이션 개발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1978년 봄, 랜디 위긴턴과 애플의 동료들은 애플소프트 BASIC을 업그레이드 합니다.  버그도 고치고, 애플 II의 고해상도 그래픽을 쉽게 쓸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도 하면서 "애플소프트 BASIC II"를 출시합니다.  이 BASIC은 카세트 테이프와 RAM, 펌웨어 카드 ROM, 언어카드 ROM과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출시가 되는데, 언어 자체에 대한 반응도 좋았고, 특히 ROM 으로 출시한 것에 대한 평판이 좋아지면서 소비자들은 애플소프트 BASIC을 본체에 내장해줄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마침내 애플 II의 메인보드에 기본으로 탑재하도록 결정하는데, 이것이 바로 애플 II+ 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애플 II+ 는 애플 II와 큰 차이는 없지만 무엇보다 애플소프트 BASIC이 메인보드에 ROM으로 기본탑재가 되었고, RAM의 가격이 다소 떨어졌기 때문에 기본 메모리를 48KB로 늘립니다.  또한, 일부 문제가 있었던 버그를 고치고, 메인보드의 디자인도 업그레이드한 뒤에 1979년 6월 애플 II+를 출시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수많은 애플 컴퓨터 복제회사들이 원형으로 삼은 것은 바로 이 애플 II+ 입니다.  일부 컴퓨터는 16KB의 RAM을 더 탑재해서 64KB 로 내놓기도 했지만, 크게 바뀐 것은 없었습니다.  저 역시 1983년 애플 II 호환기종을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구입했는데, 이 역시 16KB RAM이 확장된 애플 II+ 호환기종이었습니다.


애플 II, 마이크 마큘라 그리고 레지스 매키너

애플 II의 탄생에는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과 함께 마이크 마큘라(Mike Makkula)와 레지스 매키너(Regis MacKenna)의 공이 컸습니다.  애플-1에서 약간의 성공을 했지만, 하드웨어 사업을 위해서 돈이 필요했던 스티브 잡스는 자금을 지원해줄 사람을 찾아다니기 위해 동분서주 하였습니다.  먼저 전 직장인 아타리의 사장 놀란 부쉬넬을 찾아가 투자를 부탁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잘 나가던 아타리와는 거리가 멀어지면서 자금난을 겪고 있었기에 놀란 부쉬넬은 아타리의 투자자인 돈 밸런타인(Donald Valentine)을 소개합니다.  돈 밸런타인은 실리콘 밸리의 영향력있는 벤처 캐피탈의 할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유명한 인물로 아직도 최고의 벤처 캐피탈 중의 하나로 꼽히는 세코이어 캐피탈(Sequoia Capital)을 1972년에 설립한 사람입니다.  돈 밸런타인은 편집증 환자에 전혀 격식이라고는 없었던 스티브 잡스를 굉장히 싫어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럼에도 스티브 잡스가 끈질기게 찾아가자 돈 밸런타인은 인텔에서 큰 돈을 벌고 젊은 나이에 은퇴를 한 마이크 마큘라(Mike Makkula)에게 일을 떠 넘깁니다.  

돈 밸런타인의 부탁을 받은 마이크 마큘라는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스티브 잡스를 따라서 애플의 본거지였던 스티브 잡스의 차고를 찾아갔다가 스티브 워즈니액이 개발 중이던 애플 II를 보고서 바로 성공을 직감합니다.  그는 즉시  $25만 달러의 투자를 결정하는데, $8만 달러로 애플주식의 1/3을 사들이고, 나머지 $17만 달러는 싼 이자로 대출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애플의 3번째 직원이 되기를 자청하였습니다.  인텔이라는 성공적인 벤처 회사의 마케터로 일했던 그는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을 도와 애플을 제대로 돌아가는 회사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첫번째 사장으로 내셔널 세미컨덕터에서 마이클 스캇(Michael Scott)을 앉히고, 그 밖에 여러 인재들을 합류시켰으며, 동시에 돈 밸런타인을 포함한 여러 투자자들까지 설득해서 애플의 재정이 문제가 없도록 하였습니다.

레지스 매키너는 실리콘 밸리에서 1970~80년대 최고의 홍보전문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애플 II의 성공을 위해 레지스 매키너와 같은 홍보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스티브 잡스는 돈 밸런타인을 찾아갔을 때처럼 끊임없이 구애를 하면서 레지스 매키너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합니다.  애플 II와 함께 나온 애플 II를 대표한 6색 사과 로고가 바로 그의 첫번째 작품으로 컴퓨터에 컬러를 제공한다는 느낌과 함께 베어먹은 금단의 사과의 느낌이 나는 디자인을 선택했는데, 스티브 잡스가 처음에는 이 디자인을 거부했다고 전해지지만 결국에는 그 뒤로 수십 년간 애플을 대표하는 로고가 됩니다.

이처럼 애플의 초창기 성공에는 스티브 잡스의 끈질긴 집념과 마이크 마큘라와 같이 성공할 것을 직감적으로 파악하고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하는 엔젤 투자자들, 그리고 회사의 약점을 메꾸어 주었던 뛰어난 관리인력들이 함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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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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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에 태어난 또 한명의 거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1955년에 태어난 동갑나기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IT 삼국지의 남은 하나의 제국인 구글을 현재 이끌고 있는 CEO 에릭 슈미트(Eric Schmidt) 역시 1955년 생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현재 전세계를 움직이는 세 회사의 총수들이 모두 한 해에 태어났다는 것은 어찌보면 역사의 필연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구글의 창업자들은 그보다 훨씬 어리지만 말이죠 ...

에릭 슈미트는 1955년 4월 27일, 버지니아주 폴스처치(Falls Church)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워싱턴 DC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살기좋은 도시로 그의 아버지 윌슨 슈미트는 존스 홉킨스 대학의 국제경제학 교수였고, 닉슨 대통령 시절 미국 재무부에서 일을 했으며, 어머니인 엘리너는 심리학 석사 출신으로 전업주부로 가정에 충실한 전형적인 엘리트 집안입니다.  

에릭 슈미트 역시 중고등학교 다닐 때 대형 컴퓨터를 이용한 프로그래밍에 푹 빠져 살았다고 합니다.  천공카드로 구멍을 뚫어서 시간을 나누어 써야 했던 컴퓨터였지만, 그 역시 컴퓨터와의 운명적인 사랑은 외면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어렸을 때부터 창업의 길을 걷지는 않았습니다.  공부도 잘했지만, 운동역시 잘했던 에릭 슈미트는 특히 장거리 육상에 소질이 있어서 최고의 육상선수이기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에릭 슈미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 프린스턴 대학의 건축학과에 입학합니다.  그렇지만, 워낙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좋아했던 그는 전기공학과로 전과를 합니다.  특히 대학의 컴퓨터가 밤만 되면 빨라졌기 때문에, 거의 밤마다 잠을 자지 않고 프로그래밍을 하였으며, 여름이 되면 당대 최고의 연구소의 하나였던 벨 연구소에서 일을 했는데, 벨 연구소는 1969년에 현재까지도 가장 위대한 운영체제의 하나이자 수많은 다른 운영체제의 원형이 된 Unix 운영체제가 탄생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에릭 슈미트는 대학생 신분으로 역사에 남을 프로그램을 하나 완성시키는데, 그것이 바로 컴파일러를 만들 때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도구인 lex 라는 소프트웨어 입니다 (lexical analyzer, 구문해석기).  1979년 프린스턴 대학 전기공학 학사학위를 취득한 에릭 슈미트는 같은 해 캘리포니아로 떠납니다.  보다 깊은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버클리를 선택한 그는 여름이면 제록스 파크(Xerox PARC) 연구소에서 다양한 연구를 경험하며 컴퓨터 공학의 이론과 실제를 꾸준히 공부하고 수련하면서 착실히 내실을 다져나갑니다.  그는 1982년 버클리에서 대학졸업 3년만에 초고속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데, 그 기간동안 바로 옆동네인 실리콘 밸리에서는 동갑나기 천재인 스티브 잡스가 이끄는 애플이 그리고 시애틀에서는 빌 게이츠가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신생회사가 세상을 바꾸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소처럼 꾸준하게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커리어를 쌓아나가던 에릭 슈미트는 결국 두명의 천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회사의 CEO 자리에 오르면서 현재 가장 뛰어난 미래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소프트웨어의 한 길을 걸어가는 마이크로소프트

대담하게 세계 최초의 PC 인 Altair 8800 에 공급할 BASIC 언어 인터프리터(이하 BASIC으로 표기)를 개발하겠다며 MITS를 졸랐던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은 가능성을 인정받고 약속한 8주만에 BASIC을 하버드 대학에서 완성을 하고 뉴멕시코 앨버커리로 날아갔습니다.  이들이 개발한 BASIC은 완벽하게 동작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앨버커키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합니다.

빌 게이츠는 아버지의 도움도 받고, 과거 레이크 사이드 고등학교 시절에 함께 했던 동료들을 속속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시키며 회사를 키워나갑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BASIC은 이용하기도 쉽고,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에 컴퓨터 매니아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습니다.  또한 당시만 해도 전문 소프트웨어 회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실력을 신뢰한 여러 하드웨어 회사들이 많은 일을 의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창업하자마자 1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고, 그 다음해에도 성장가도를 달렸지만, 이제는 MITS가 걸림돌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직접 판매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에 딸려나가면서 로열티를 받는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MITS 라는 회사의 하드웨어 생산능력과 판매량에 따라 회사의 성장성이 제한받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더구나 독점적 계약을 미끼로 다른 회사의 하드웨어에는 BASIC을 탑재하지 못하도록 했던 MITS 의 정책을 참을 수 없었던 빌 게이츠는 1년 뒤인 1977년 결국 MITS 와의 계약을 파기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계약파기에 불복한 MITS는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게 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MITS 측이 자사의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맞상대를 합니다.  법원은 빌 게이츠의 손을 들어주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들이 개발한 BASIC 을 다른 회사에도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하면서 때마침 불어닥친 PC 시대와 함께 회사가 급성장을 하게 됩니다. 

1978년 11월에는 일본의 하드웨어 업체들에게 BASIC 을 공급하기 위해 ASCII Microsoft 라는 법인을 일본에 설립하게 되는데, 이 회사는 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일본지사가 되며 일본을 중심으로 결성하게 되는 MSX 컴퓨터 연합을 이끄는 중심이 됩니다.  전 세계의 PC 하드웨어 업체들을 고객으로 맞게 된 빌 게이츠는 뉴멕시코를 떠나 자신의 고향인 워싱턴주 시애틀 인근의 벨뷰(Bellevue)로 회사를 옮기는데, 이 때가 1979년 1월 1일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애틀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1979년 동부에 있었던 에릭 슈미트는 캘리포니아로 넘어오게 되고, 1977년 애플 II를 발표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1979년 전 세계를 애플 II 로 호령하면서 떵떵거리기 시작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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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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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빌 게이츠가 폴 알렌과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설립했던 "TRAF-O-DATA" 라는 벤처회사는 당시 최신 마이크로프로세서 였던 인텔의 8008(후에 8080 을 거쳐, 8088 이 IBM PC에 채택됩니다) CPU를 이용해서 교통상황을 점검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빌 게이츠는 이를 바탕으로 1973년 초에는 미국 하원의회를 위해 일을하기도 합니다.

빌 게이츠는 197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 입학합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빌 게이츠는 현재의 마이크로소프트의 CEO를 맡고 있는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를 만납니다.  하버드 대학에서도 학업보다는 컴퓨터에만 심취했던 빌 게이츠는 폴 알렌과 계속 연락을 취했고, 1974년 여름에는 하니웰(Honeywell)에서 같이 일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빌 게이츠는 고등학교 시절 컴퓨터와 관련한 사업을 하면서도, 하버드 대학에 여유있게 들어갈 정도로 공부도 잘했던 천재였습니다.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벌레처럼 공부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컴퓨터를 향한 그의 사랑과 열정은 학교라는 울타리는 그에게 족쇄처럼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세계 최초의 PC, Altair 8800

세게 최초의 PC로 일컬어지는 Altair 8800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인텔 8008 기반의 Mark-8을 시초로 보기도 합니다)을 탄생시킨 MITS의 창업자인 에드 로버츠(Ed Roberts)와 포레스트 밈스(Forrest M. Mims) 3세는 미국 공군에서 연구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1969년 이들은 로켓을 제작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제작키트를 만들어 판매하려는 목적으로 스탠 케이글(Stan Cagle)과 로버 잴러(Rober Zaller)와 함께 MITS(Micro Instrumentation and Telemetry Systems)를 창업합니다.  MITS의 로켓 제작키트는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러한 키트를 제작하는 사업에 흥미를 잃은 케이글과 밈스는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에드 로버츠 Electronic Array가 전자계산기를 제작할 수 있는 LSI IC들을 발표하자, 이를 이용하여 계산기를 제작하는 키트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를 통해 완성된 제품이 MITS 816 계산기 키트였습니다.  이 키트는 1971년 Popular Electronics의 커버를 장식하며 상당한 성공을 거둡니다.  뒤이어 1973년에는 MITS 1440 계산기가 소개되었고, 점점 발전된 모델을 다른 잡지에도 소개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선 포스트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HP에 입사했던 스티브 워즈니액도 틈틈히 스티브 잡스와 아타리의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가 맡았던 역할이 바로 전자계산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공학용 전자계산기를 만드는 기술이 발전해서 PC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MITS는 주로 전자계산기 조립 키트를 만들던 회사였기에, 당시 판매와 홍보의 역할을 동시에 담당했던 Radio Electronics나 Popular Electronics와 같은 잡지사와의 관계가 무척 중요했습니다.  이 두 잡지사는 오늘날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ZD(Ziff-Davis)의 잡지계열에 있었는데 (현재는 손정의의 소프트뱅크가 소유를 하고 있지요?), 1972년에 Polular Electronics로 통합이 됩니다.  Popular Electronics의 편집장 이었던 Les Solomon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CPU 였던 인텔 8080을 MITS가 잘 다룬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완성된 제품(현대적 PC의 개념)을 개발하기를 권유합니다.  그는 박스까지 완전하게 제작된 프로페셔널한 제품 키트를 원했고, MITS는 이 권유를 받아들여서 Altair 8800의 설계 및 제작에 착수합니다.

1976년 있었던 Altair Computer Convention에서 Les Solomon은 Altair라는 이름을 자신의 12세된 딸이 스타트렉 에피소드를 보면서 제안한 이름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당시 스타트렉 에피소드는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이 Altair라는 곳을 향해 가는 것이었는데, 미지의 신세계를 간다는 측면에서의 작명이 된 것이죠 ...  에드 로버츠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큰 고심을 한 부분이 바로 CPU를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인텔의 4004나 8008은 그다지 강력하지 않았고, 그 대안으로 고민한 National Semiconductor의 IMP-8이나 IMP-16은 외부 하드웨어를 요구했으며, 모토롤라의 6800은 아직도 개발 중인 단계였습니다.  그래서, 다소 위험 부담을 안고 인텔의 새로운 8비트 CPU인 8080을 선택합니다.  인텔 8080은 1974년 4월에 출시가 되었는데, 유닛당 $360 달러라는 가격을 책정했지만, 에드 로버츠는 인텔과 성공적인 협상을 통해 $75 달러에 칩을 공급받고 본격적인 컴퓨터 제작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제작된 Altair 8800의 출시는 빌 게이츠를 포함한 전세계의 젊은이들의 마음에 불을 당깁니다.  수백 대 정도의 판매를 생각했지만, 순식간에 제작된 키트와 완성품들이 동이 났습니다.


Altair 8800의 완성품 from Wikipedia


1975년 8월이 되기 전에 이미 5,000대가 넘는 컴퓨터가 팔렸고, MITS는 직원을 20명에서 90명까지 늘려야 했습니다.  1975년 전반기 까지만 하더라도 시장에는 아무런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4K 메모리에 이용된 다이너믹 RAM에는 일부 디자인 문제가 있었고, 이로 인해 공급이 늦어지면서 다른 경쟁자들이 진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고 말았습니다.


빌 게이츠, 폴 알렌 하버드 대학을 뛰쳐 나오다.

이 포스트 제일 위에 보이는 사진은 Popular Electronics 1975년 Vol 7, Number 1의 커버입니다.  원래 Popular Electronics 라는 잡지는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취미를 가진 매니아들을 위해 부품도 팔고 조립법을 알려주는 글을 많이 싣습니다.  잡지의 조립키트에는 인텔의 8080 마이크로프로세서와 256바이트 RAM, 라이트와 스위치, 그리고 철제 케이스와 파워 서플라이를 합쳐서 $397 달러에 판매를 하였고, 조립을 완료한 제품의 경우 $498 달러에 판매가 되었습니다.  

가판대에서 이 잡지의 표지를 본 폴 알렌은 언제나 자신들이 이야기하던 자신만의 컴퓨터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잡지를 사서 바로 빌 게이츠에게 달려갑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운명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대학 캠퍼스를 나와서 사업에 뛰어듭니다.

Altair 8800이 신나게 판매가 되고 있는 도중, 에드 로버츠는 시애틀에 있는 한 회사에서 BASIC 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구매할 의사가 없는지를 묻는 편지를 받게 됩니다.  당시 BASIC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던 Ed는 회사에 전화도 해보고, 주소에 찾아도 가보지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 편지는 보스턴에 있었던 빌 게이츠와 폴 알렌에 보낸 것으로 그 때까지 BASIC을 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에드 로버츠가 BASIC과 같은 것에 관심이 있었는지를 알기 원했던 것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사업을 통해 어른들이 어린 학생들의 말보다는 기업체의 공신력이 있는 편지를 더 신뢰하고, 에드 로버츠가 그 편지를 읽어보게 만들기 위해 머리를 썼던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해프닝을 거쳐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은 에드 로버츠와 접촉을 하게 됩니다.  어린 학생들이 당돌하기는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에드 로버츠는 한번 만들어서 가져와 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에드 로버츠가 일단 관심이 있다는 것이 확인이 되자, 빌 게이츠는 폴 알렌과 함께 BASIC 인터프리터를 PDP-10 미니컴퓨터의 8080 시뮬레이터를 이용해서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완성된 프로그램을 종이 테이프에 펀칭을 해서 MITS가 있는 뉴멕시코주의 앨버커키까지 날아간 폴 알렌은 Altair 8800에서 실행을 시켰지만, 화면에 일단 "Altair Basic" 이라는 표시만 남기고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첫번째 작업이 실패했지만, 이 사건은 일단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를 에드 로버츠에게 주는 것에는 성공을 하였고, 지속적인 작업을 통해 프로그램을 완성합니다.  여기에서 바로 역사적인 기업 "Micro-Soft"가 탄생합니다.  BASIC을 시작으로, 포트란 컴파일러와 디스크 운영체제인 MITS-DOS를 개발한 Microsoft는 결국에는 MITS의 품을 떠나 워싱턴 주로 독립을 하면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 나갑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가 BASIC을 그토록 사랑하는데에는 이와 같은 역사가 있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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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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