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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국지, 오늘은 애플의 반격이 시작되는 1999년 아이맥과 2000년 맥 OS X 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파격적인 디자인, 컴퓨터의 개념을 바꾸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맡은 뒤, 많은 프로젝트를 정리하면서도 찾아낸 보석과도 같은 인재 조너던 아이브에게 애플 회생의 중책을 맡은 아이맥(iMac) 프로젝트 디자인 명령이 떨어집니다.  조너던 아이브는 기존의 컴퓨터 디자인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는 일체형 모니터/본체케이스와 키보드, 그리고 매우 단순하면서도 쉬운 인터넷 연결, 동그란 하키팩처럼 보이는 마우스 등 완전히 새로운 컴퓨터 디자인을 내놓습니다.

아이맥(iMac)의 'i' 는 원래 '인터넷(internet)'을 의미하기도 하고, 동시에 개인 (I, individual) 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매우 간편하게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었고, 과감하게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빼면서 USB 를 채용하고, CD-ROM 을 디폴트로 넣는 등의 혁신을 감행한 하드웨어 입니다.  

아이맥의 대성공은 이후 애플의 제품 라인업 작명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아이북(iBook), 아이팟(iPod), 아이폰(iPhone), 아이TV(iTV), 아이패드(iPad) 에 이르기까지 많은 제품의 이름에 'i'가 붙기 시작하였고, 아이맥은 이런 성공의 시발점이 되는 위대한 제품입니다.  


차새대 운영체제 선을 보이다.

아이맥이 하드웨어 부분에서 애플의 회생을 견인한 제품이었다면, 추락하는 애플이 날아오를 수 있는 장기적인 토대를 제공하는 날개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바로 맥 OS X 입니다.  길 아멜리오가 스티브 잡스의 NeXT 를 인수하면서 차세대 운영체제를 확보한다면 언젠가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었던 것이나, 스티브 잡스가 iCEO 로 등극하고 마이클 델에게 '파산할 회사'라는 독설을 들으면서도 꿋꿋이 축소경영과 내실을 다지면서 준비한 작품이 바로 애플의 미래를 책임진 OS X 였습니다.

1998년 빌 게이츠를 만나서 당시의 애플의 지지자들에게는 굴욕적인 협상을 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을 지원해줄 것을 호소하고, 투자를 받아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한 것도 모두 OS X 라는 미래의 희망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벌기 였는지도 모릅니다.  

2000년 1월, 스티브 잡스는 맥월드 엑스포에서 OS X 의 베일을 벗깁니다.  NeXT 를 인수한 뒤, 2년 6개월에 걸치는 시간 동안 1,000 여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피땀을 흘려 완성한 애플의 운영체제입니다.  이 운영체제의 근간은 오늘날 우리를 열광하게 하는 아이폰 OS 와 아이패드 OS 에도 그대로 적용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역대 최고의 운영체제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탄탄한 내부구조 뿐만 아니라 투명한 메뉴나 그림자, 애니메이션과 같은 실시간 그래픽 효과까지 포함한 아름다운 운영체제이기도 하였습니다.  

OS X 는 기본적으로 마하커널(Mach kernel) 이라는 기술에 기반을 두고 개발된 NeXT 의 NeXTstep 운영체제를 계승하였습니다.  NeXTstep 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개념의 객체지향 운영체제(object-oriented operating system)라는 개념으로 설계된 운영체제로 스티브 잡스와 NeXT 의 동료들이 1985년부터 개발한 역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동적인 애플 CEO 로의 복귀와 전통적 파트너들의 외면

2000년 1월 맥월드에서 OS X 를 발표하던 날, 애플을 좋아하는 사용자들에게는 또다른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바로 스티브 잡스가 자신이 iCEO (interim, 임시 CEO) 라는 타이틀에서 'i'를 떼어 버리고 정식으로 CEO 로 복귀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날 그동안의 애플이 얼마나 고생을 하였는지를 아는 많은 청중들이 그의 복귀선언에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또한, 애플에 복귀할 당시만 하더라도 애플을 회생시킬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없었던 스티브 잡스 역시 아이맥의 성공과 함께 OS X 를 정식으로 출시할 수 있게 되면서, 2000년의 맥월드 발표회 날은 애플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운영체제를 개발해서 발표한다는 것은 과거의 잘 나가던 소프트웨어와의 호환성을 상당수 포기한다는 커다란 위험요소를 끌어안고 있기에 외부 소프트웨어 협력사들의 협력이 꼭 필요합니다.  아무리 OS X 가 훌륭하고, 프로그래밍 도구가 좋다고 해도 외부 소프트웨어 업체 입장에서는 커다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여기에 반발이 따라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애플로서는 그 중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Adobe), 매크로미디어(Macromedia)를 어떻게든 설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98년 스티브 잡스가 빌 게이츠를 찾아와서, 적어도 5년간 새로운 매킨토시를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을 약속했기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어도비와 매크로미디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장 포토샵(PhotoShop)과 드림위버(DreamWeaver)와 같은 베스트셀러 소프트웨어의 포팅이 출시 때까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애플의 간곡한 요청에도 성실하게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긴밀한 협력과 다툼을 지속해온 애플과 어도비의 사이는 이 때부터 급속히 악화됩니다.  물론 시간이 흐른 뒤에 포토샵과 드림위버를 OS X 용으로 출시하기는 했지만, 결국 일반 소비자용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술지원을 하지 않았으며, OS X 의 좋은 기능을 전혀 활용하지 않음으로써 되려 윈도우 운영체제에서 동작하는 소프트웨어가 더 많은 기능과 성능을 보여주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이에 애플은 하는 수 없이 포토샵과 드림위버와 같은 디자인, 멀티미디어 기능을 강력하게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직접 제작하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의 이런 결정이 이후 아이튠즈와 아이팟, 아이폰의 탄생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게 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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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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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이후 IBM-PC 호환기종과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가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하고, 워드 프로세서와 스프레드 시트 등의 킬러 소프트웨어 역시 이들 플랫폼을 중심으로 경쟁하기 시작하면서, 애플은 특화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니치 마켓을 노리는 전략으로 선회하게 됩니다. 


어도비와 애플, 인쇄혁명을 일으키다.

이 과정에서 1985년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이사회의 결정에 의해 애플에서 쫓겨나게 되고, 애플의 실권은 존 스컬리가 잡게 되었습니다.  존 스컬리는 마케팅 전략의 측면에서 회사의 포지션을 확실한 우위가 있는 부위를 중심으로 재편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협력자가 나타나게 되는데, 그 회사가 바로 최근 스티브 잡스와 플래시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는 어도비(Adobe) 입니다.

어도비는 세계 최초의 GUI 를 구현하였고, 애플의 리사와 매킨토시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이후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애플 매킨토시 등과 GUI 에 대한 지적재산권 침해소송을 다투게 되는 Xerox PARC 출신의 존 워녹(John Warnock)과 찰스 게치케(Charles Geschke)가 팔로알토 인근의 차고 창업을 한 회사입니다. 두 사람은 포스트스크립트(PostScript)라는 인쇄용 언어를 개발하고 판매하였는데, 서체에 관심이 많았던 스티브 잡스는 이 기술을 라이센스해서 1985년 레이저라이터(LaserWriter)에 구현을 합니다.  같은 해 스티브 잡스는 존 스컬리에 의해 애플에서 쫓겨 나지만, 이것이 매킨토시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라는 것을 느낀 존 스컬리는 DTP(DeskTop Publishing) 를 킬러 소프트웨어로 하여 매킨토시를 인쇄 업종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계로 포지셔닝하면서 소위 말하는 디지털 인쇄혁명을 주도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들의 동반자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포스트스크립트가 레이저 프린터와 같은 인쇄 혁명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하지만, 그 뒤를 이어 어도비가 개발한 Type 1 이라는 디지털 폰트 포맷은 애플이 뒤를 이어 개발한 TrueType 과 경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애플은 이 기술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라이센스를 하면서 사실 상의 폰트 표준을 주도합니다.  어도비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Type 1 규격을 공개하고, Adobe Type Manager 라는 소프트웨어도 발매하지만, 이미 TrueType 에게 승기를 빼앗긴 이후였습니다.  Type 1 은 여전히 그래픽/인쇄 분야에서는 표준으로 남았지만, 나머지 비즈니스 분야는 TrueType 이 장악을 하는데 성공합니다.  어도비와 애플과의 애증관계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결국 1996년 어도비는 트루타입의 라이센스 권리를 가진 마이크로소프트와 OpenType 이라는 통합 개방형 폰트 포맷에 합의를 합니다.


애플과 어도비의 찰떡궁합

TrueType 때문에 다소 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어도비와 애플은 정말 환상의 짝꿍과도 같은 동반자 관계를 유지합니다.  포스트스크립트와 DTP로 확실한 니치마켓 선점에 성공한데 이어, 어도비는 1980년대 중반에는 벡터 기반 드로잉 소프트웨어인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를 발표하면서, 포스트스크립트 기반의 레이저 프린터와 함께 그래픽 및 출판업계 시장을 확고하게 차지 하였습니다.  뒤를 이어, 1990년 2월 오늘날까지도 전설적인 소프트웨어의 하나로 평가받는 포토샵(Photoshop)을 발표하면서, 매킨토시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가 넘볼 수 없는 아성을 구축하였습니다.

매킨토시의 DTP 시장에서의 선전과 함께, 애플의 부활을 이끈 또 하나의 공신은 바로 1991년 출시된 파워북(PowerBook)입니다.  노트북 컴퓨터의 현대적인 형태와 인체공학적인 레이아웃을 확립시킨 것으로도 유명한 이 제품은 발매 첫해에 매출액 $10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애플의 중흥기를 이끌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후 애플은 다시 내리막을 탑니다.  야심차게 시작한 디지털 카메라, 포터블 CD  오디오 플레이어와 스피커 사업, 비디오 콘솔과 TV 주변기기 등과 같은 수많은 하드웨어 제품사업들을 새롭게 시작하지만 대부분 실패를 거듭하였고, 특히 엄청난 돈을 들여서 개발하기 시작한 최초의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인 뉴턴(Newton)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결국 존 스컬리의 시대가 저물게 됩니다.


존 스컬리의 시대가 저물다.

애플에서 스컬리의 시대를 정의한다면, 지금의 삼성전자처럼 다양한 제품 라인업으로 니치마켓을 뚫고 나가려는 전략을 펼쳤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모델들은 일단 홈, 교육, 비즈니스와 같은 커다란 시장 특성으로 분류가 되고, 그 다음으로 각각 다양한 변종과 업그레이드 모델이 존재하는 상당히 복잡한 형태를 가졌습니다.  그렇다고, 현대적인 주문형 컴퓨터인 델(Dell)과 같이 완전히 소비자 중심적인 조립체계를 가진 것도 아니어서 관리부담이 증가하였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모델 계층이 상존하는 상황에서는 가장 중요한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 한다는 것이 정말 엄청난 부담이 되었습니다.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수많은 모델 들에 대한 호환성 문제가 발생하였고, 이는 결국 애플 운영체제가 초기의 혁신성을 잃고 윈도우 운영체제에게 따라잡히는 빌미를 제공합니다.

또한 존 스컬리가 저지른 가장 큰 실책은 엔지니어 그룹을 휘어잡고 전체적인 비전을 가지고 끌고 나가는 힘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물론 존 스컬리가 기술을 잘 모르는 마케터 출신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주변에 강력한 기술부분을 통제할 만한 2인자를 키우지 않았다는 것은 CEO로서 잘못된 경영판단 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1990년대 상반기 애플의 중간관리자들은 결코 이룰 수 없었던 허황된 프로젝트들로 회사의 혁신역량을 낭비하였고, 수많은 프로젝트가 싹도 틔우지 못하고 사라져 갔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잘못된 판단 중의 하나로 새로운 마이크로프로세서인 PowerPC 사업에 뛰어들면서, 운영체제를 이식하기로 하였던 결정을 들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애플은 회복할 수 없을 수준의 타격을 입게 됩니다.  


추락하는 애플을 구하기 위해 애플의 이사회는 존 스컬리를 해임하고, 그동안 COO(Chief Operating Officer)로 일하던 마이클 스핀들러(Michael Spindler)를 1993년 CEO로 선임하고 새로운 미래에 대비하기로 결정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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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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