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는 여러가지 면에서 공통점이 참 많습니다.  두 회사를 지휘했던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55년생 동갑나기였으며, 각각 2명의 공동창업자들과 함께 회사를 커다랗게 키워나갑니다.  비록 앞의 2명의 창업자들만큼 전세계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들 못지않게 두 회사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 2명의 다른 공동창업자인 폴 알렌과 스티브 워즈니액이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떠난 이야기가 오늘과 다음 편의 주제입니다.


빌 게이츠의 영원한 형님, 폴 알렌

폴 알렌은 1953년 생으로 빌 게이츠의 레이크사이드 스쿨 선배로서 학교 컴퓨터 클럽을 같이 하면서 여러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였고, 빌 게이츠가 하버드 대학에 진학했을 때 PC 의 등장을 보고 빌 게이츠를 꼬셔서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는 현재 세계에서 37번째로 돈이 많은 부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기도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폴 알렌은 워싱턴 주립대학으로 진학을 했다가, 보스톤의 허니웰(Honeywell)에서 일을 하기 위해 대학을 그만 둡니다.  그렇지만, 그가 허니웰로 간 진짜 이유는 하버드에 빌 게이츠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폴 알렌은 빌 게이츠가 하버드 대학을 그만두게 만들고 같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였고,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처음부터 키워갔습니다.  특히 그는 1981년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의 QDOS 의 권리를 사들여서 MS-DOS를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고, 이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가 될 수 있는 초석을 다졌습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로 나아가던 1983년 그는 혈액암의 일종인 호지킨병(Hodgkin's Disease, 임파종의 일종)으로 진단을 받고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납니다.  그는 수 차례에 걸친 방사선 치료와 골수이식을 통해 완쾌가 되지만, 그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로 복귀하지는 않습니다.  가끔씩 이사회에 참석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정도로 마이크로소프트 경영에 관여를 했지만, 2000년 11월에는 이사회에서도 공식 사임을 하였습니다.  2009년 11월에는 또 다른 비호지킨 임파종 진단을 받았고, 현재도 암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폴 알렌은 호지킨 병으로 치료를 받은 후 인생관에 많은 변화를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 이후의 인생을 다양한 자선활동을 펼치면서 보내게 되는데, 특히 의료와 인간,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기관들에게 기부도 하고 자신의 역량도 활용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1986년 자신의 가족들의 이름을 딴 폴 알렌 가족재단(Paul G. Allen Family Foundation)을 설립하고, 이 재단을 통해 매년 약 3천만달러 정도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는데, 특히 자신이 살고 있는 시애틀과 워싱턴 주에 60%를 그리고 12% 정도를 인접한 오레곤 주의 대표적인 도시인 포틀랜드에 사용하고, 나머지도 역시 미국 북서부 태평양 연안 도시들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등 지방의 발전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폴 알렌이 또 한가지 유명한 것이 그의 벤처자선(venture philanthropy)이라고 이름 붙여진 프로젝트 들입니다.  여러 가지 활동이 있지만, 음악경험 프로젝트(Experience Music Project), SF 박물관과 명예의 전당(Science Fiction Museum and Hall of Fame), 비행유물 컬렉션(Flying Heritage Collection) 그리고 UC 버클리/SETI 와 함께 한 알렌망원경배열(Allen Telescope Array, ATA) 프로젝트 등이 있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대학, 특히 의과대학에서 진행하는 의학연구에 많은 돈을 기부하였습니다.

이렇게 오랜  NGO 활동과 기부로 폴 알렌은 국내에서는 빌 게이츠에 비해 훨씬 덜 알려져 있고,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만, 미국 사회에서는 대단히 존경받는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서북부 프로스포츠의 대부

폴 알렌은 또한 많은 프로스포츠 팀의 구단주이기도 합니다.  그가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개인적인 관심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오레곤과 워싱턴 주의 프로스포츠 팀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못해서 시작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고향과 인근 지역에 공헌하기 위한 방법을 언제나 고민해온 사람입니다.  1988년 그는 오레곤 주를 대표하는 NBA 농구팀인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를 $7천만 달러에 사들입니다.   그 이후에도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는 포틀랜드를 위해 아낌없이 돈을 투자하고는 했는데, 포틀랜드 시장은 언제나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그에 화답해서 그는 2007년 4월 2일에 있었던 포틀랜드 로즈가든(Rose Garden)의 매입완료를 선언할 때에는 자신의 노력이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가 앞으로 오랜 시간 지역주민들의 걱정없이 스포츠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건강하게 만드는 초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1997년에는 NFL 팀인 시애틀 시호크스(Seattle Seahawks)를 사들입니다.  이는 전임 구단주였던 켄 베링(Ken Behring)이 연고를 시애틀에서 LA를 목표로 한 남부 캘리포니아로 옮기려고 하는 시도를 막기 위했던 것으로 역시 시애틀 지역의 많은 주민들을 위한 투자였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시호크스의 새로운 경기장인 퀘스트 필드(Qwest Field)를 신축하는데에도 커다란 기여를 합니다.  그 이후에는 시애틀 지역의 MLS 축구팀인 시애틀 사운더스 FC(Seattle Sounders FC)의 구단주가 되어 명실상부한 미국 서북부 프로스포츠의 대부로 등극하였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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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빌 게이츠가 폴 알렌과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설립했던 "TRAF-O-DATA" 라는 벤처회사는 당시 최신 마이크로프로세서 였던 인텔의 8008(후에 8080 을 거쳐, 8088 이 IBM PC에 채택됩니다) CPU를 이용해서 교통상황을 점검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빌 게이츠는 이를 바탕으로 1973년 초에는 미국 하원의회를 위해 일을하기도 합니다.

빌 게이츠는 197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 입학합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빌 게이츠는 현재의 마이크로소프트의 CEO를 맡고 있는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를 만납니다.  하버드 대학에서도 학업보다는 컴퓨터에만 심취했던 빌 게이츠는 폴 알렌과 계속 연락을 취했고, 1974년 여름에는 하니웰(Honeywell)에서 같이 일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빌 게이츠는 고등학교 시절 컴퓨터와 관련한 사업을 하면서도, 하버드 대학에 여유있게 들어갈 정도로 공부도 잘했던 천재였습니다.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벌레처럼 공부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컴퓨터를 향한 그의 사랑과 열정은 학교라는 울타리는 그에게 족쇄처럼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세계 최초의 PC, Altair 8800

세게 최초의 PC로 일컬어지는 Altair 8800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인텔 8008 기반의 Mark-8을 시초로 보기도 합니다)을 탄생시킨 MITS의 창업자인 에드 로버츠(Ed Roberts)와 포레스트 밈스(Forrest M. Mims) 3세는 미국 공군에서 연구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1969년 이들은 로켓을 제작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제작키트를 만들어 판매하려는 목적으로 스탠 케이글(Stan Cagle)과 로버 잴러(Rober Zaller)와 함께 MITS(Micro Instrumentation and Telemetry Systems)를 창업합니다.  MITS의 로켓 제작키트는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러한 키트를 제작하는 사업에 흥미를 잃은 케이글과 밈스는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에드 로버츠 Electronic Array가 전자계산기를 제작할 수 있는 LSI IC들을 발표하자, 이를 이용하여 계산기를 제작하는 키트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를 통해 완성된 제품이 MITS 816 계산기 키트였습니다.  이 키트는 1971년 Popular Electronics의 커버를 장식하며 상당한 성공을 거둡니다.  뒤이어 1973년에는 MITS 1440 계산기가 소개되었고, 점점 발전된 모델을 다른 잡지에도 소개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선 포스트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HP에 입사했던 스티브 워즈니액도 틈틈히 스티브 잡스와 아타리의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가 맡았던 역할이 바로 전자계산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공학용 전자계산기를 만드는 기술이 발전해서 PC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MITS는 주로 전자계산기 조립 키트를 만들던 회사였기에, 당시 판매와 홍보의 역할을 동시에 담당했던 Radio Electronics나 Popular Electronics와 같은 잡지사와의 관계가 무척 중요했습니다.  이 두 잡지사는 오늘날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ZD(Ziff-Davis)의 잡지계열에 있었는데 (현재는 손정의의 소프트뱅크가 소유를 하고 있지요?), 1972년에 Polular Electronics로 통합이 됩니다.  Popular Electronics의 편집장 이었던 Les Solomon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CPU 였던 인텔 8080을 MITS가 잘 다룬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완성된 제품(현대적 PC의 개념)을 개발하기를 권유합니다.  그는 박스까지 완전하게 제작된 프로페셔널한 제품 키트를 원했고, MITS는 이 권유를 받아들여서 Altair 8800의 설계 및 제작에 착수합니다.

1976년 있었던 Altair Computer Convention에서 Les Solomon은 Altair라는 이름을 자신의 12세된 딸이 스타트렉 에피소드를 보면서 제안한 이름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당시 스타트렉 에피소드는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이 Altair라는 곳을 향해 가는 것이었는데, 미지의 신세계를 간다는 측면에서의 작명이 된 것이죠 ...  에드 로버츠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큰 고심을 한 부분이 바로 CPU를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인텔의 4004나 8008은 그다지 강력하지 않았고, 그 대안으로 고민한 National Semiconductor의 IMP-8이나 IMP-16은 외부 하드웨어를 요구했으며, 모토롤라의 6800은 아직도 개발 중인 단계였습니다.  그래서, 다소 위험 부담을 안고 인텔의 새로운 8비트 CPU인 8080을 선택합니다.  인텔 8080은 1974년 4월에 출시가 되었는데, 유닛당 $360 달러라는 가격을 책정했지만, 에드 로버츠는 인텔과 성공적인 협상을 통해 $75 달러에 칩을 공급받고 본격적인 컴퓨터 제작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제작된 Altair 8800의 출시는 빌 게이츠를 포함한 전세계의 젊은이들의 마음에 불을 당깁니다.  수백 대 정도의 판매를 생각했지만, 순식간에 제작된 키트와 완성품들이 동이 났습니다.


Altair 8800의 완성품 from Wikipedia


1975년 8월이 되기 전에 이미 5,000대가 넘는 컴퓨터가 팔렸고, MITS는 직원을 20명에서 90명까지 늘려야 했습니다.  1975년 전반기 까지만 하더라도 시장에는 아무런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4K 메모리에 이용된 다이너믹 RAM에는 일부 디자인 문제가 있었고, 이로 인해 공급이 늦어지면서 다른 경쟁자들이 진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고 말았습니다.


빌 게이츠, 폴 알렌 하버드 대학을 뛰쳐 나오다.

이 포스트 제일 위에 보이는 사진은 Popular Electronics 1975년 Vol 7, Number 1의 커버입니다.  원래 Popular Electronics 라는 잡지는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취미를 가진 매니아들을 위해 부품도 팔고 조립법을 알려주는 글을 많이 싣습니다.  잡지의 조립키트에는 인텔의 8080 마이크로프로세서와 256바이트 RAM, 라이트와 스위치, 그리고 철제 케이스와 파워 서플라이를 합쳐서 $397 달러에 판매를 하였고, 조립을 완료한 제품의 경우 $498 달러에 판매가 되었습니다.  

가판대에서 이 잡지의 표지를 본 폴 알렌은 언제나 자신들이 이야기하던 자신만의 컴퓨터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잡지를 사서 바로 빌 게이츠에게 달려갑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운명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대학 캠퍼스를 나와서 사업에 뛰어듭니다.

Altair 8800이 신나게 판매가 되고 있는 도중, 에드 로버츠는 시애틀에 있는 한 회사에서 BASIC 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구매할 의사가 없는지를 묻는 편지를 받게 됩니다.  당시 BASIC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던 Ed는 회사에 전화도 해보고, 주소에 찾아도 가보지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 편지는 보스턴에 있었던 빌 게이츠와 폴 알렌에 보낸 것으로 그 때까지 BASIC을 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에드 로버츠가 BASIC과 같은 것에 관심이 있었는지를 알기 원했던 것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사업을 통해 어른들이 어린 학생들의 말보다는 기업체의 공신력이 있는 편지를 더 신뢰하고, 에드 로버츠가 그 편지를 읽어보게 만들기 위해 머리를 썼던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해프닝을 거쳐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은 에드 로버츠와 접촉을 하게 됩니다.  어린 학생들이 당돌하기는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에드 로버츠는 한번 만들어서 가져와 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에드 로버츠가 일단 관심이 있다는 것이 확인이 되자, 빌 게이츠는 폴 알렌과 함께 BASIC 인터프리터를 PDP-10 미니컴퓨터의 8080 시뮬레이터를 이용해서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완성된 프로그램을 종이 테이프에 펀칭을 해서 MITS가 있는 뉴멕시코주의 앨버커키까지 날아간 폴 알렌은 Altair 8800에서 실행을 시켰지만, 화면에 일단 "Altair Basic" 이라는 표시만 남기고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첫번째 작업이 실패했지만, 이 사건은 일단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를 에드 로버츠에게 주는 것에는 성공을 하였고, 지속적인 작업을 통해 프로그램을 완성합니다.  여기에서 바로 역사적인 기업 "Micro-Soft"가 탄생합니다.  BASIC을 시작으로, 포트란 컴파일러와 디스크 운영체제인 MITS-DOS를 개발한 Microsoft는 결국에는 MITS의 품을 떠나 워싱턴 주로 독립을 하면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 나갑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가 BASIC을 그토록 사랑하는데에는 이와 같은 역사가 있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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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 학교와 HP, 그리고 운명적 동지와의 만남

초등학교 시절 좋은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학교공부에 재미를 붙인 스티브 잡스는 6학년 때에는 한 해를 월반을 해서 바로 중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현재의 애플의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에 위치한 쿠퍼티노 중학교(Cup)와 홈스테드 고등학교(Homestead High School)을 다녔습니다.  그렇게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것은 아니지만, 실리콘 밸리라는 환경은 그에게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가 10살 때 컴퓨터라는 것을 처음보게 되는데, 그것은 NASA가 실리콘 밸리에 만들어 놓은 연구센터에 놓였있던 터미널입니다.  터미널은 독자적으로 동작하지 않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컴퓨터라고 할 수 없겠지만, 어차피 유선으로 메인프레임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컴퓨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것을 보자 마자 그의 표현에 따르면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이는 빌 게이츠도 마찬가지이니 정말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렇게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는 안되나 봅니다.  

어린 학생이지만, 이미 히스키트를 통해 전자부품들과 조립, 그리고 기계들의 동작원리를 깨우친 그는 약간 떨어진 팔로알토에 위치한 HP(휴렛 패커드, Hewlett-Packard)에서 주최하는 방과후 강의에 짬이 나는대로 참여를 합니다.  특히 전자제품 조립에 취미가 많았던 그는 어렸을 때부터 배짱이 있었는데, 심지어는 HP 창업자인 휴렛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수십 분간의 설득을 통해 원하는 부품을 얻을 정도였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되는 위대한 엔지니어를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스티브 워즈니액(Steve Wozniak) 입니다.  방과후 강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어린 학생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당시 HP와 같은 벤처회사라면 당연했을지도 모릅니다.  HP에서는 스티브 잡스에게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일을 하는 방학인턴을 제의하고, 스티브 잡스는 이를 받아들여서 방학 때 HP에서 실제로 일을 시작합니다. 

스티브 워즈니액은 1950년 생으로 스티브 잡스보다 5살이 많습니다.  정말 희대의 독특한 괴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흔히 "워즈(Woz)"라는 애칭으로 불립니다.  현재도 세계적인 방위산업체로 이름이 높은 록히드 마틴 사에서 미사일을 개발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장난감과 희한한 기계들을 만드는 것에 통달하였다고 합니다.  UC 버클리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다가 평생동안 엔지니어로서 기계를 만들고 싶다는 일념에 휴학을 하고 HP에 취직을 합니다.  HP와 동네에서, 그리고 고등학교 선배로서 워낙 기계를 좋아하는 독특한 괴짜들이 둘이 만났으니 이들이 금방 친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을 것입니다.  


희대의 장난꾸러기들 교황청을 노리다.

1971년 스티브 워즈니액은 'Blue Box' 라는 장치를 만듭니다.  전화회사 시스템의 특성을 분석한 뒤에, 전화선에 접속해서 돈 한푼 없이 전화를 걸 수 있도록 만든 것인데, 스티브 워즈니액은 워낙 장난기가 심한 사람이라 이 장치를 이용해서 여기저기 장난전화를 걸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고등학생 스티브 잡스는 직감적으로 돈이 된다는 판단을 하고 부품을 $40 달러 정도에 사서 스티브 워즈니액에게 더 만들어 달라고 한 뒤에 이를 스티브 워즈니액이 다니던 UC 버클리 학생들에게 $150 달러에 판매를 합니다.  

특히 판매를 하기 위해 데모를 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장난전화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압권인 것은 스티브 워즈니액이 당시의 미국 국무부 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를 흉내내면서 바티칸 시티에 전화를 해서 교황과 통화를 시도한 사건입니다.  교황이 잠을 자고 있었기에 통화는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이렇게 강심장이었던 워즈니액이었지만 바티칸에서 이를 믿고 교황을 깨우겠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겁이 덜컥나서 먼저 끊었다고 합니다.  


from Flickr by ekai


똑똑한 천재소년과 컴퓨터의 운명적 조우

스티브 잡스에 비해 빌 게이츠는 시애틀의 유복한 가정환경 속에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워낙 머리가 좋아서 한번 본 것은 모조리 외워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백과사전이나 성경책 등을 통째로 외우고 암송할 정도였습니다.  

빌 게이츠는 11살이 되던 해에 레이크사이드 스쿨에 입학합니다.  중고등학교가 합쳐진 학교로 시애틀의 유명한 사립학교인데 동부의 명문대학의 등록금보다도 비싼 학비를 내야하는 학교이고 그만큼 시설도 좋았습니다.  학교의 교육방식도 굉장히 엄격했는데, 이런 환경에 빌 게이츠는 잘 적응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반항적인 행동이 많아서 결국에는 아동심리치료까지 받게 되는데, 다행히 심리치료사에게 마음의 안정을 얻고 학업에 복귀해서 잘 적응을 하게 됩니다.  특히 그에게서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으라는 말을 듣고서 엄청난 양의 독서가로 변신합니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초등학교 때의 선생님이 있었다면, 빌 게이츠에게는 심리치료사가 있었습니다.

1968년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만남이 있게 됩니다.  레이크사이드 스쿨의 부모회에서 주최한 바자회의 수익금으로 컴퓨터 단말기를 들여놓게 되는데, GE사의 ASR-33 이라는 것입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컴퓨터가 매우 드물었고, 시애틀에서는 레이크사이드가 최초로 컴퓨터를 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게 된 것입니다.  이 때에는  PC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메인 프레임이라고 부르는 커다란 컴퓨터가 외부에 있고, 이 컴퓨터에 연결이 가능한 터미널을 들여 놓은 것입니다.  이들 간의 연결은 전화선으로 되어 있었고,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추가로 내야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시간 당 40달러나 되는 요금을 감당할 수 있었던 학교의 환경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빌 게이츠는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빌 게이츠는 폴 알렌이라는 친구와 함께 이 컴퓨터 단말 앞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후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고, 평생을 친구로 지내게 됩니다.  컴퓨터 단말기 앞에서 선생님보다도 뛰어난 실력을 닦게 된 그들에게 약간의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과도한 컴퓨터 사용량으로 인해 초기에 확보한 예산이 단 몇 주만에 동이 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학교에서의 컴퓨터 사용이 금지되었는데, 이미 컴퓨터를 잘 다루게 된 이들에게는 컴퓨터를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실력들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A young Bill Gates and Paul Allen by SplaTT.
from Flickr by SplaTT


빌 게이츠는 폴 알렌과 몇 명의 친구들을 더 모아서 레이크사이드 프로그래밍 그룹이라는 것을 만듭니다.  이들은 메인프레임 컴퓨터 임대와 판매를 하는 인근 회사에 찾아가서 프로그래밍과 프로그램에서 버그를 찾는 일을 하는 대신 컴퓨터를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는데, 야간에 쓸 수 있는 허락을 얻어내어 컴퓨터를 마음대로 쓰게 됩니다.  그런데, 이 회사도 망하게 되자, 이번에는 폴 알렌의 아버지의 주선으로 시애틀의 명문대학인 워싱턴 주립대학교(UW,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워낙 뛰어난 실력을 가졌기 때문에, 비록 고등학생들이지만 일거리를 주는 곳들이 생겨납니다.  특히 인포메이션 서비스라는 회사를 통해 만든 급여관리 프로그램의 경우 빌 게이츠가 프로젝트 관리를 하면서 3개월간의 작업을 통해 1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거액의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이 때의 성공을 발판으로 사업에 눈을 뜬 빌 게이츠는 정식으로 창업을 합니다.  이 때에는 아버지가 직접 도와주게 되는데, 회사의 이름은 "TRAF-O-DATA" 입니다.  외부에서 용역을 받은 일로도 돈을 벌고, 학교에서도 다양한 관리 프로그램의 제작을 하는 등 종횡무진 활약을 한 빌 게이츠는 1973년 하버드 대학에 입학을 하면서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으로 둘러싸여 지내던 고등학교 생활을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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