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이 되면서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방과 학술, 금융과 같은 산업에 주로 엄청난 비용의 대형 컴퓨터들이 보급되면서 컴퓨터를 이용해서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복잡한 일을 해내는 등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애플 II 를 위시로 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열리면서 사무자동화(Office Automation)라는 용어가 유행을 하게 되었고, 적용되는 산업의 영역이 중소기업까지 확대가 되면서, 컴퓨터를 이용한 새로운 정보화 사회라는 시대인식이 이후 IBM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끄는 1980~90년대까지 가장 주된 시각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런데, 이를 잘 뜯어보면,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결국 기존의 산업에 대한 생명주기(life-cycle) 전반에 걸쳐서 적용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산업 자체를 바꾸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생산성의 차이를 가져왔기 때문에, 정보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생산성 혁신을 이룬 곳은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지만 과거의 방식으로 혁신을 하지 못하고 생산성에서 밀리는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고 사라져 갔다. 과거보다 영속하는 기업의 수는 줄고, 글로벌 산업화까지 진행이 되면서 훨씬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자본의 측면에서는 과거에는 도저히 컨트롤할 수 없었던 복잡한 계산이 가능해 지면서, 자본은 거대화를 하게 되고, 일부 다국적 금융세력들의 경우에는 그 덩치를 계속 키워갈 수 있었다. 

정보화 사회와 정보화 기술은 기업이 거대해지면, 내부의 모순이 강화되어 무너지는 경영 상의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기업이 보다 쉽게 거대화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였고, 지식경영까지 도입되면서 각 개인의 지식으로 남아있었던 암묵지를 기업의 자산으로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형식지로 전환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구성원인 종업원들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막강한 경영정보 시스템을 활용한 내부모순의 감소는 '규모의 경제'에 의한 외부효과의 상대적인 이득에 비해 훨씬 크기가 작았기 때문에, 일부기업은 그 덩치를 계속 키워 나갔고, 경쟁에서 승리를 하면서 현재의 다국적 대기업 지배체제를 잉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지배체제에서는 특화되고, 전문가적인 작은 기업들 또는 집단은 거대한 기업들에 의존적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대기업 체제에 반하는 형태의 혁신은 저해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다시 말해, 정보시스템과 정보화 혁신이 중앙집중화를 가속화 시킨 주범이 된 것이다. 누가 정보와 네트워크의 접근을 통제하며, 어떻게 관리할까? 누가 정보의 종류를 제어하고, 법적으로 소유할까? 기업에서의 개인의 활동과 통제를 통한 인간소외 현상은 더욱 심화된 것은 아닐까?   



소셜 웹 사회, 주도권이 개인으로 넘어온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구글+ 더 나아가서는 카카오톡과 라인 등과 같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인터넷의 화두라고 할 수 있는 소셜 웹이 이끌어내는 혁신은 무엇이 다를까?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기본 인프라가 바뀌지는 않았다. 바뀐 것은 정보화가 회사 단위나 비즈니스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개개인의 네트워크와 관계, 그리고 관심사 등을 바탕으로 회사와 비즈니스의 경계를 넘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셜 웹 사회에서의 준거집단과 집단행동은 회사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판단에 의해 휴먼 에너지가 모이는 양상에 따라 이루어진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카카오톡과 라인 등은 이런 소셜 웹 네트워킹을 전 세계 수준에서 완전히 개방된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였고, 스마트 폰은 컴퓨팅 환경의 개인화로 이어지면서 이를 가속화하였다. 이런 변화는 결국 회사와 집단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밖에 없고, 개인의 네트워크를 통한 혁신사례가 많이 나오면서 회사가 가지고 있는 내부모순이 부각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런 변화는 산업혁명 이후 소위 말하는 '회사'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개인'으로 넘어오는 초석이 되고 있으며, 이것은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고 표현할 수 있는 사회 전체의 중대한 변화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개인의 힘이 집단의 힘보다 강한 것은 아니다. 다만 '회사'로 표현되는 폐쇄형 집단보다는, 개인이 자신의 휴먼 에너지를 바탕으로 동적으로 결합하는 개방형 집단의 힘이 더욱 강하게 발현될 가능성이 많아진 것이다. 이런 개방형 집단의 힘은 결국 개개인의 힘에서 나오게 되며, 각 개인이 역량을 강화하고 창의적인 혁신을 많이 일으키는 집단이 훨씬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것이다. 소셜 웹 중심의 혁신이 수십 년간의 정보화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이런 것이다. 기존의 회사들도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고, 회사 조직원들이 그들의 창의력과 혁신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열린 집단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이런 혁신을 일으키는 다른 혁신 조직들에 의해 결국 경쟁에 의해 도태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엄청난 시대의 변화의 시작점에 와 있다. 

(다음 편에 계속 ...)


P.S. 이 시리즈는 메디치미디어의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라는 책으로 출간이 되었습니다. 전체 내용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책을 구매하셔서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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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개방을 품다

페이스북은 비교적 최근에 급부상한 기업이지만, 오늘날 구글, 아마존 등과 함께 인터넷의 역사를 진보시키는데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업이 되었다. 비록 인터넷을 페이스북 내부에 모두 가둔다는 비판을 들으면서, '인터넷 파괴자'라는 비난을 듣고 있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것도 하나의 커다란 흐름인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페이스북이 진행하는 다양한 오픈 프로젝트들은 그들의 개방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여러 가지 개방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11년 4월에 발표되어 여러 기업들과 개인들의 협업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오픈 컴퓨트 프로젝트(OCP, Open Compute Project)이다. 페이스북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거대한 서비스를 구축하면서 얻은 소중한 노하우들을 무료로 개방하고, 많은 개인과 기업들이 쉽게 채택할 수 있도록 알리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페이스북은 개방적이면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HW 및 SW 자원들을 이용해서 거대한 웹 스케일의 인프라를 구축한다. 구글이 거의 대부분의 기술을 개방하고,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중요시한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의 원천인 데이터 센터 내부 HW 구조 등에 대해서 철저히 비밀에 붙이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움직임이다. 앞으로는 클라우드 전쟁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거대한 서버군을 어떻게 구축하고 관리하며, 전력을 아끼면서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거나, 문제가 발생해도 쉽게 회복시킬 수 있는 노하우가 IT기업의 가장 중요한 핵심역량으로 자리잡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페이스북의 데이터 센터에 대한 기술을 모두 공유하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업그레이드하고 알게된 노하우를 다시 수용하는 개방형 혁신 전략을 클라우드 서버 기술에 적용한 이런 결정이 매우 파격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이미 페이스북도 많은 개방형 혁신의 수혜를 누리기 시작했다.  초기보다 에너지 효율은 38% 좋아졌고,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는 단위비용도 24% 감소했다고 한다. 이런 페이스북의 진심이 통했는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벤더들은 ASUS, 델, 랙스페이스, 넷플릭스, 골드만 삭스, 레드햇, 중국의 화웨이, 마이크로소프트 등 내놓으라 하는 IT기업들과 서비스 인프라 기업들이 망라되어 있다. 

비록 페이스북이 주도하고, 먼저 시작했지만 지금의 OCP는 이미 새로운 오픈 하드웨어 운동의 모범사례로서 과거 SW 분야에서의 리눅스와도 같은 위상을 차지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이다. 이미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는 많은 고객들이 과거 리눅스의 장점을 이야기할 때와 마찬가지로 OCP 구조를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런 움직임은 HW 벤더들이나 SW 벤더 및 서비스, 솔루션 제공자들의 동참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런 움직임은 그 동안 오라클 등이 주도한 폐쇄적인 시스템을 중심으로 고객들이 대부분의 시스템을 구축했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움직임이다. 오라클은 구글과의 특허 분쟁을 통해 이미 오픈소스와 개방이라는 지위를 획득했던 자바 프로그래밍 언어마저도 소유권 행사를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다가 미국 법원에서 실리는 하나도 챙기지 못하는 판결을 받아들었고, 재판이 진행되면서 수 많은 개발자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는 등의 명분까지 크게 잃고 말았다. 이제는 특정 벤더의 HW나 SW를 바탕으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들에게 의존하는 그런 구도를 용납하는 고객들은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제 개방형 철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페이스북은 단순히 전 세계를 연결하는 SNS 시스템을 구축한 것 이상의 역할을 전 세계에 하려고 한다. 이런 점은 단지 시장만 바라보고, 언제나 경쟁을 중심으로 비즈니스에만 천착하는 우리나라 기업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비록 페이스북이 인정받은 가치가 한 때의 거품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일으키고 있는 또다른 철학과 혁신의 씨앗은 앞으로 우리사회에 중장기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아래 임베딩한 영상은 2011년 10월 27일 있었던 Open Compute Summit 에서의 페이스북 발표 영상이다.




페이스북의 해커웨이, 그리고 진정성


페이스북은 미래의 미디어와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진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렇게 사람들이 연결된 플랫폼에서 사람들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돈을 벌고 경쟁이나 유도하며 상업화된 플랫폼으로 진화시켜 나갈 것인지는 앞으로 페이스북이 내놓을 다양한 서비스와 제품들이 상당부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페이스북이 단순히 비즈니스 플랫폼이 아니라 이미 사회적 플랫폼이라는 의미이다. 물론 기업공개를 했기 때문에, 주주들의 눈치와 월스트릿의 압박에 시달리겠지만, 그들의 압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페이스북의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마크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정신을 "해커웨이(Hacker Way)"라고 밝혔다. 해커웨이는 백마디 말과 계획을 세우기보다 바로 실행해보고 혁신을 하는 문화이다. 실패를 하더라도 빨리 실패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어서 더 나은 서비스와 경험을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는 불충분하다.


그는 기업공개와 함께 투자자들과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래와 같이 언급하기도 하였다. 


페이스북은 원래 기업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세상을 더 열린 공간과 서로 연결된 곳으로 만드는 사회적 임무를 성취하기 위해 구축됐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 새로운 생각을 나누고, 세상을 이해하며, 궁극적이고 장기적인 행복을 추구한다


여기에 또 다른 그의 진정성이 있다고 믿고 싶다. 단순히 고객의 경험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서, 지역사회와 전 세계의 사람들이 연결되어서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구글은 기술을 이용해서 나름의 역할을 하였다. 전 세계의 정보를 복사하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였고, 최첨단 기술이 동원된 상상력과 뛰어난 기술자들이 창조한 알고리즘과 운영체제 등을 이용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세상을 개발자와 엔지니어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것이 구글이 소셜의 세계에서 생각보다 잘하고 있지 못한 이유이다. 그들의 DNA는 엔지니어 DNA이기에 ...


페이스북은 다르다. 그들의 인프라 플랫폼은 역시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을 활용해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들의 가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페이스북은 이런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훨씬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글과 같은 기술회사로서의 위상보다는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기업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인문학과 사회학, 그리고 기술이 공존하는 새로운 리딩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런 사명을 인식하고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회를 쉽게 찾아내고, 서로가 연결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을 쉽게 나누면서 인류가 가진 가능성을 증폭시키는 플랫폼으로 거듭난다면 그들이 과대평가되었다는 항간의 이야기는 그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참고자료:


Open Compute Project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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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소셜 웹 서비스의 태동


타임지는 주커버그를 2008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의 하나로 선정하였다. 1984년 생으로 당시 만 23세에 불과했던 이 청년은 포브스에서 선정하는 400명의 갑부에도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로 불리웠던 그는 뉴욕 인근의 치과의사 아버지와 정신과 의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컴퓨터에 미쳐서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고등학교를 다닐 때 Phillips Exeter Academy에서 이후 페이스북에서 CTO(Chief Technology Officer)로 일하게 되는 애덤 단젤로(Adam D'Angelo)와 함께 우리에게도 익숙한 윈앰프(Winamp)의 플러그-인을 제작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만든 플러그-인을 보고, AOL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큰 회사에서 일자리를 제안했지만, 이들은 대학에 진학을 하기로 결심했다. 단짝인 단젤로는 칼텍(Caltech)에 진학하면서 캘리포니아로 떠났고, 주커버그는 하버드 대학에 입학을 하였다.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서 페이스북의 전신이 되는 인맥 사이트를 만들면서 그는 일약 기숙사의 스타가 되었다. 그렇지만, 일찍 가지게 된 아이도 길러야 했고 또한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주커버그는 과감히 하버드를 중퇴하고 비즈니스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가 본격적인 비즈니스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페이스북은 세계최대의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하게 되었다. 



하버드 대학의 문제아 


페이스북의 시작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다른 학교들과 달리 학생들의 기본적인 정보와 사진 등이 들어있는 디렉토리(이를 보통 페이스북이라고 한다)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에 주커버그는 하버드 대학에 페이스북을 만들기를 원했지만, 대학 측에서는 사생활 정보를 모으는 것을 반대하면서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마크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는데, 이는 그가 3년의 시간을 보낸 Phillips Exeter Academy에서 전교생들을 위한 페이스북의 제작에도 관여했고, 이러한 학생들 디렉토리와 소셜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 오프라인에서부터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호락호락 넘길 주커버그가 아니었다. 주커버그는 대담하게도 어느날 밤 하버드 대학의 전산시스템을 해킹해서 학생들의 기록을 빼낸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페이스매쉬(Facemash)라는 간단한 사이트를 제작하고서 학부 학생들의 사진들을 쌍으로 올리면서,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 지를 고르게 하였다. 불과 4시간 만에 450명이 이 사이트를 방문했고, 22,000 번이나 사진들이 사람들에게 노출되었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이 사태를 뒤늦게 파악하고, 주커버그의 인터넷 접속을 차단했다. 이 사건으로 주커버그는 학교당국과 동료 학생들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하였지만, 마음 속으로는 자신이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특히, 하버드 측의 학생정보에 대한 비공개 정책은 어떤 방식으로든 깨뜨리고 싶어하였다. 그의 이러한 정보공개의 열정과 해커 정신이 녹아든 작품이 바로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2004년 2월 공식적으로 오픈을 한 뒤, 하버드 대학의 인맥을 중심으로 그 세를 여러 대학들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늘린 뒤, 2005년 실리콘 밸리에 입성하면서 거침없는 성장을 지속하였다. 



10억달러의 매수 제안을 거절하다. 


2007년말 테크크런츠(TechCrunch)에서는 야후에서 페이스북을 평가한 자료를 공개한 적이 있다. 여기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2010년에 매출 9억 7천만 달러, 그리고 4800만명의 사용자를 가질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는 매출규모는 비슷하게 예측했지만, 사용자 수는 10배 이상 뛰어넘었다. 2010년 6월, 페이스북은 전세계 회원 수 5억 명을 돌파했다). 당시 뉴욕 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이 추정치를 바탕으로 야후가 페이스북에 10억 달러에 이르는 매수 제안을 했다고 한다. 10억 달러는 명실공히 억만장자(billionaire) 클럽에 들어가는 액수로, 이때 이미 주커버그는 억만장자로 인정받게 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엄청난 제안을 받고도 그는 야후의 제안을 거절했다. 물론 현재 페이스북은 당시 야후의 제안을 훌쩍 뛰어넘는 가치로 평가되고 있으며, 독자적으로 기업공개를 하고 계속 성정해 나가고 있기에 결과적으로는 당시의 결정이 옳은 결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의 결정은 단순히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페이스북 이전의 최고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유명한 마이스페이스는 뉴스코퍼레이션의 5억 8천말 달러의 매수 제안을 받아들였고, 유튜브 역시 구글에 15억 달러에 팔렸다. 보통의 기업가라면 이 정도 액수의 오퍼가 들어온다면 거의 틀림없이 받아들이지만, 약관의 대학생같은 사업가는 과감하게 이러한 제안을 거절하였다. 사실 이는 대단히 위험할 수도 있는 도박이다. 페이스북 이전의 유명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였던 프렌드스터(Friendster)는 2002년 구글이 제시한 3억 달러의 매수제안을 거절하였는데, 이는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0억 달러에 이르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제안을 거부한 프렌드스터는 인터넷 환경의 역동적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실상 그 가치가 엄청나게 하락하고 말았다. 사실 페이스북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법이 없었다. 당시 시스코는 소셜 네트워킹 플랫폼을 기업고객들에게 판매하는 Five Across라는 회사를 인수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왈롭(Wallop)이라는 서비스를, 로이터는 펀드매니저와 트레이더들을 위한 자신들만의 페이스북과 같은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더욱 많고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이 없었고, 아직 초창기로 볼 수 있는 회사에게는 얼마든지 더욱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주커버그의 이러한 결정은 단순히 페이스북을 더욱 비싸게 팔기를 바란 것일까? 주커버그에 따르면 그의 비전이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했다고 한다. 장기간의 계획을 가지고 구축하고 있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은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은 공동창업자들과 함께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고, 동시에 오픈 마인드와 협업정신, 정보의 공유를 생명으로 하는 소셜 네트워크가 세계를 훨씬 살만한 곳으로 만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기업이었다. 아직 젊고 이상을 좇는 그들에게는 야후에서 제시한 엄청난 돈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이후 페이스북은 성장을 거듭하여, 구글의 가장 잘 나가는 인재들이 들어오면서 다른 창업자들의 입지는 축소가 되었지만 당시 페이스북과 마크 주커버그의 머리 속에는 그다지 돈이 중요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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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싹튼 소셜 웹 서비스들


1999년 인터넷 세계에 또 다른 커다란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소셜 웹이 대한민국에서 동이 트려고 하고 있었다. 한 때 대한민국을 동창찾기의 광풍에 몰아넣었던 아이러브 스쿨은 학연을 중심으로 과거에 잊혀졌던 친구들을 모은다는 컨셉으로 1999년 10월에 시작한 일종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다. 이후 소셜 웹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페이스북 역시 하버드 대학의 동창들을 모으는 것에서 시작했고, 친구의 친구를 부른다는 기본적인 내용은 아직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아이러브스쿨은 서비스가 시작되자마자 회원이 1만명이 되더니, 2000년에는 하루 5만명에 이르는 신규 가입자가 늘어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면서 총 회원이 천만 명에 이르는 대성공을 하였으며, 2001년에는 야후에서 거액의 인수제안을 받을 정도로 국민서비스가 되었지만, 지속성이나 재미를 주는 형태로 서비스를 발전시키지 못하면서 초기의 성공을 이어가지 못하고 뒤이어 나온 싸이월드라는 개인 중심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었고, 현재는 과거의 성공은 추억으로만 남은 수준의 서비스가 되어 버렸다.


싸이월드는 1998년, 서울 홍릉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의 이동형, 형용준 등 석박사과정 6명이 결성한 창업동아리 EBIZ클럽에서 창업의 싹이 텄다. 1999년 창업 당시에는 클럽 서비스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나 프리챌, 아이러브스쿨, 다음 카페 등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시기를 지나게 된다. 2000년에는 개인 PIMS 등을 포함한 커뮤니티 포털 형식을 도입했지만 이 역시도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였다. 그러다가 2001년 미니홈피 프로젝트를 통해서 기존의 클럽중심 서비스가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로 변화하면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 이후 미니미, 미니룸, 도토리와 같은 현재의 싸이월드 서비스들이 줄줄이 시작되고, 비즈니스 모델까지 갖추게 되면서 아이러브 스쿨에 이은 성공적인 서비스가 되었다. 싸이월드는 일촌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관계지향 서비스로서의 소셜 웹을 처음으로 상용화한 곳이며, 도토리라는 개념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까지 열게 되었는데, 이후 전세계 글로벌 서비스들이 싸이월드의 여러가지 모델 들을 벤치마킹 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친 서비스이다. 싸이월드는 아이러브스쿨의 서비스에 불만족한 사용자들과 당시 최대의 경쟁자였던 프리챌의 미숙한 유료화 선언 및 회원관리에 따른 이탈자들을 흡수하는 행운까지 겹치면서 최고의 소셜 웹 서비스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고, 2004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이후 페이스북 등의 글로벌 소셜 웹 서비스와의 경쟁에서 조금씩 밀리기 시작하면서 SK커뮤니케이션스의 품을 떠나 다시 독립된 벤처로 분사되는 것으로 결정되는 등 마이스페이스와 유사한 궤적을 걷고 있다.



마이스페이스의 탄생 


마이스페이스에 앞서서 미국에서 처음으로 소셜 웹 서비스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프렌드스터(Friendster)이다. 조나단 아브람스(Jonathan Abrams)와 크리스 엠마뉴얼(Cris Emmanuel)인 2002년 서비스를 시작하고, 2003년에 KPCB 등의 자금을 지원받아 설립한 이 회사는 새로운 사람들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로 서비스를 기획하고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자신의 프로파일을 올리면, 이를 브라우즈 하거나 찾아서 연결할 수 있게 하는데, 그 중에서도 친구의 친구를 연결하는 방식을 이용하면서 친구 네트워크가 급속도로 성장하도록 하는 모델이 잘 먹혀들었다. 2003년 3월 실제 서비스가 시작되자 몇 달만에 3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가입을 하면서 친구 네트워크 전파의 위력을 보여주었는데, 이 때 타임, 에스콰이어 등의 유수 잡지와 US 위클리, 토크쇼 등에 소개가 되면서 커다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 서비스를 유심히 지켜보던 구글은 2003년 프렌드스터 경영진에게 3억 달러의 인수제안을 하지만 프렌드스터의 경영진들은 이 제안을 거부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프렌드스터는 마이스페이스가 등장하면서 미국 시장에서는 경쟁에서 밀리면서 급격하게 퇴조를 하게 되는데, 주로 아시아 시장에 주력하면서 결국 2009년 12월 말레이지아 회사인 MOL 에 인수합병되었다. 현재는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한 소셜 웹 서비스 비즈니스를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2003년 8월에는 마이스페이스(MySpace)가 첫 선을 보였다. 이 프로젝트는 eUniverse 라는 기존의 회사에서 프렌드스터의 서비스를 써보던 사람들에 의해서 기획이 되었는데, eUniverse 창업자이자 CEO인 브래드 그린스펀(Brad Greenspan)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크리스 디울프(Chris DeWolfe), 톰 앤더슨(Tom Anderson), 조시 버만(Josh Berman) 등이 자회사로 설립한 뒤에 eUniverse 의 프로그래머들과 자원들을 활용해서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최초의 마이스페이스 사용자들은 대부분 eUniverse 의 직원들이었다. 직원들이 최초의 씨앗이 되어, 자신들의 친구들을 불러오고, 친구의 친구를 불러오는 방식으로 시작한 서비스는 곧이어 eUniverse 가 가진 2천 만명에 이르는 자사의 서비스 사용자들과 이메일 마케팅을 이용해서 적극적으로 서비스를 프로모션한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프렌드스터를 따돌리고 미국 최대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로 등극하는데 성공했다. 



뉴스코퍼레이션, 마이스페이스를 합병 


마이스페이스는 특히 인디 음악가들이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친구들 사이에 음악을 돌려듣는 서비스 크게 인기를 끌면서 확산속도가 커졌다. 기존의 냅스터 등의 서비스가 음반저작권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데 비해, 마이스페이스는 음악 저작권을 가진 가수들이나 음반제작사, 그리고 매니지먼트 회사 등에서 자발적으로 팬들을 늘리기 위해서 음악과 뮤직비디오 등을 마이스페이스 플러그-인에 결합시켜 배포하는 모델을 이용했기 때문에 이들과 공생과 상호협조 관계가 만들어지면서 음악가들에게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될 서비스가 되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2005년, 전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인수합병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디어의 황제 루퍼트 머독(Rupert Mordoch)이 이끄는 뉴스코퍼레이션이 마이스페이스와 eUniverse를 5억 8천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액을 들여서 인수한 것이다. 


마이스페이스의 M&A 스토리는 당시 협상을 담당했던 톰 앤더슨이 구글+에 상세한 이야기를 해서 잘 알려져 있다. 2006년 마이스페이스의 M&A를 원래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곳은 마이크로소프트였다고 한다. 상대편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담당자는 현재는 구글로 넘어와서 구글+를 지휘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젊은 리더로서 명성을 날리던 빅 군도트라(Vic Gundotra)였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상이 끝나고, 이제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톰 앤더슨은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바로 구글의 투자자이자 가장 중요한 이사회 멤버 중의 하나이고, 최고의 벤처 캐피탈리스트로 불리는 KPCB의 존 도어(John Doerr)였다. 그에게 마이스페이스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상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를 하자마자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구글은 헬리콥터를 띄워서 뉴스코퍼레이션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뉴스코퍼레이션에게 마이스페이스를 인수하고 서비스를 하면 구글이 실적에 따라 9억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의 광고를 줄 수 있다는 제안을 한다. 워낙 커다란 베팅이었기에 뉴스코퍼레이션은 이 계약을 받아들이고, 마이스페이스에게 거액의  M&A를 제안할 수 있게 되었다. 

2003년 첫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2005년 1월 마이스페이스는 월 방문자 1,600만 명에 이르렀고, 뉴스코퍼레이션이 인수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2006년에는 월방문자 6,000만 명을 돌파하였다. 그러나, 마이스페이스는 더욱 뻣어나가지 못하고 정체되면서 페이스북의 급성장에 덜미를 잡히게 되고, 결국 최근에는 음악과 관련한 서비스만 강화하는 반쪽 서비스 업체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마이스페이스의 쇠락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마이스페이스를 합병한 뉴스코퍼레이션이 상장회사였다는 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상장회사는 3개월에 한번 실적보고를 하고, 이것이 회사의 주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데, 이런 이유로 루퍼트 머독은 마이스페이스가 제대로된 시스템 확장이나 준비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수익모델에 대한 지나친 압박을 가하게 되었다. 수익을 위해 여기저기에 광고를 도배하고, 사용자들이 광고를 보지 않으면 제대로 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는 상황들이 연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마이스페이스에 실망하게 되었으며, 뒤따라 나온 페이스북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났다. 결정적으로 2006년 8월에 있었던 구글과의 초대형 계약은 이들에게 결정적인 독이 되어 돌아온다. 그 계약자체는 마이스페이스 입장에서 엄청난 매출을 기록한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구글에게 돈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검색 페이지뷰를 기록해야만 하였다. 이 조건을 지키기위해 마이스페이스는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마는데, 바로 사용자들을 속여서 검색 페이지뷰를 늘리는 시도를 한 것이다. 사용자들의 경험은 뒷전으로 하고 구글이 제시한 페이지뷰를 맞추기 위한 편법적인 행태가 계속되는데, 예를 들어 팝업광고가 음악을 듣는 동안 플레이리스트를 가로막아서 이를 클릭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과 같은 사용자들의 불편을 가중시키되 페이지뷰만 늘리는 등의 시도를 하였다. 사용자들의 경험을 뒷전으로 하고, 비즈니스와 돈만 밝히는 시도를 하면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실패를 경험하는 사례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음악산업이 결국에는 디지털화를 빨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만 고집하다가 망하게 되어버린 회사들 역시 자신들의 돈벌이만 생각하고, 사용자들이 느끼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배려를 하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 되었다. 


톰 앤더슨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마이스페이스에 제시했던 계약은 비록 액수는 그보다 작았지만 조건이 훨씬 유연하고 마이스페이스가 많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었기에, 마이크로소프트와 계약을 했다면 마이스페이스의 미래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후의 운명들이다. 결국 이 계약이 성사가 되지 않으면서 빅 군도트라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서 1년 뒤에 구글에 합류를 했는데, 그의 손에서 크롬과 구글+ 라는 구글의 검색 이후 최고의 프로젝트 들이 탄생했다. 구글은 엄청난 인재를 얻게 되었고, 톰 앤더슨은 빅 군도트라와 함께 구글+ 를 지원하는 우군이 되었다. 

톰 앤더슨이 존 도어를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첫 만남에 단 한 시간동안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계약의 물고가 바뀌었던 것이다. 만약 마이크로소프트와 마이스페이스가 계약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이후 페이스북이 투자를 받으려고 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을 것이고, 반대로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이기기 위해서 과감한 베팅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지고 있는 페이스북의 지분은 구글의 차지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고, 페이스북과 구글이 연합을 하는 엄청난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마이스페이스의 상황도 현재와는 달랐을 것이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하는데, 역사에 있어서도 한 순간의 거래가 당장의 판도를 바꾸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만, 길게 보았을 때에는 반대의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은 듯하다.


무엇이 마이스페이스와 페이스북의 운명을 가른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많은 지적을 하는 것은 바로 개방형 혁신과 서비스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서드파티(third party)’로 불리는 외부의 참여자들에 대해 마이스페이스는 자신의 서비스를 개방하지 않았다. 유튜브를 비롯하여 다양한 콘텐츠 제공업체들이 마이스페이스와의 연계를 원했지만, 이들을 받아들이기는 커녕 이들의 콘텐츠에 타격을 입힐 수있는 콘텐츠와 서비스를 직접 개발하면서 협력할 수 없는 구도를 만들었다. 마이스페이스는 콘텐츠 서비스 업체들이 마이스페이스의 유통 네트워크를 타고 커지고 나면, 이들에게 자신이 끌려가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시각은 전통적인 미디어 재벌이었던 뉴스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가 흔히 가질 수 있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에 비해, 페이스북은 개방과 협력 모델을 이용하였다. 누구나 페이스북에 적합한 응용 프로그램, 서비스나 콘텐츠 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였고, 수익이 나오면 이를 개발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수익의 공유를 실현하였다. 그 결과, 많은 협력업체들이 개발한 서비스들과 애플리케이션은 페이스북의 가치를 올려주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페이스북이 플랫폼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또한 외부업체가 음악이나 책과 같은 제품을 판매하거나 관련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있는 모델도 개발하였는데, 이를 통해 역시 수익을 공유하고, 광고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진화를 시키는데 성공했다. 


마이스페이스의 실패와 페이스북의 성공은, 과거와 같이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자신만의 세계에서 외부와의 협업보다는 돈만 달라고하는 회사는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네트워크의 세상에서 모든 서비스를 혼자서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며, 소비자 중심의 사고가 아니다. 결국 페이스북의 성공에서 새로운 시대의 모델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뒤늦게 페이스북을 따라하게 되지만, 이미 너무 큰 격차로 벌어진 이후라서 과거와 같은 영화는 찾을 수 없었다. 



참고자료

Tom Anderson 의 Google+ 프로필 페이지



P.S. 이 시리즈는 메디치미디어의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라는 책으로 출간이 되었습니다. 전체 내용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책을 구매하셔서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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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8일 페이스북이 기업공개를 하면서 페이스북. 비록 IPO 이후에 주가가 급락을 하면서 거품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지만, 페이스북이 당분간 ICT 업계를 리딩하는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현재 ICT 산업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회사는 MS와 애플, 구글, 아마존 그리고 제조부분에서는 삼성전자도 이름을 올릴 수 있을 듯하다. 이들은 모두 각각 다른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사회문화의 측면에서의 영향력까지 감안한다면 개방과 참여의 문화를 널리 확산시킨 구글의 리더십이 돋보인다.  그렇지만, 페이스북은 사람들을 연결하면서 구글과는 또 다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페이스북에게 구글과는 다른 리딩 기업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페이스북은 미래의 미디어와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진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렇게 사람들이 연결된 플랫폼에서 사람들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돈을 벌고 경쟁이나 유도하며 상업화된 플랫폼으로 진화시켜 나갈 것인지는 앞으로 페이스북이 내놓을 다양한 서비스와 제품들이 상당부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페이스북이 단순히 비즈니스 플랫폼이 아니라 이미 사회적 플랫폼이라는 의미이다. 물론 IPO를 했기 때문에,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주주들의 눈치와 월스트릿의 압박에 시달리겠지만, 그들의 압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페이스북의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마크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정신을 "해커웨이(Hacker Way)"라고 밝혔다. 해커웨이는 백마디 말과 계획을 세우기보다 바로 실행해보고 혁신을 하는 문화이다. 실패를 하더라도 빨리 실패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어서 더 나은 서비스와 경험을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는 불충분하다.


그는 IPO와 함께 투자자들과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래와 같이 언급하기도 하였다. 


페이스북은 원래 기업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세상을 더 열린 공간과 서로 연결된 곳으로 만드는 사회적 임무를 성취하기 위해 구축됐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 새로운 생각을 나누고, 세상을 이해하며, 궁극적이고 장기적인 행복을 추구한다


여기에 또다른 그의 진정성이 있다고 믿고 싶다. 단순히 고객의 경험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서, 지역사회와 전 세계의 사람들이 연결되어서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구글은 기술을 이용해서 나름의 역할을 하였다. 전 세계의 정보를 복사하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였고, 최첨단 기술이 동원된 상상력과 뛰어난 기술자들이 창조한 알고리즘과 운영체제 등을 이용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세상을 개발자와 엔지니어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것이 구글이 소셜의 세계에서 생각보다 잘하고 있지 못한 이유이다. 그들의 DNA는 엔지니어 DNA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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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은 다르다. 그들의 인프라 플랫폼은 역시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을 활용해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들의 가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페이스북은 이런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훨씬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글과 같은 기술회사로서의 위상보다는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기업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인문학과 사회학, 그리고 기술이 공존하는 새로운 리딩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런 사명을 인식하고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회를 쉽게 찾아내고, 서로가 연결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을 쉽게 나누면서 인류가 가진 가능성을 증폭시키는 플랫폼으로 거듭난다면 그들이 과대평가되었다는 항간의 이야기는 그 힘을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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