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애플이 디자인의 혁명을 일으킨 기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그 자리에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조너던 아이브(Jonathan Ive)가 있습니다.  오늘의 IT 삼국지는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 최고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세기의 디자이너, 조너던 아이브가 주인공입니다.   


애플의 디자인 심장, 아이맥을 탄생시키다.

조너던 아이브는 1967년생으로 아직도 절정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가 만들어갈 디자인의 혁신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도구와 재질, 그리고 제작 프로세스를 과감하게 시도하면서 혁신적인 디자인들을 내놓았고 성공을 시켜 왔습니다.  1998년의 아이맥이라는 컴퓨터 디자인의 역사적인 제품을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아이북과 파워북 G4, 아이팟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히트작들을 성공시키면서 전세계 산업 디자이너들의 모법이 되고 있습니다.

조너던 아이브는 1967년 런던에서 태어나, 뉴캐슬 폴리테크닉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그 뒤에 탠저린(Tangerine)이라는 회사를 공동으로 설립해서 파워 툴부터 텔레비전에 이르는 다양한 디자인 컨설팅을 하기 시작했는데, 1992년에 그의 고객이었던 애플이 그를 스카웃하게 되면서 애플과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가 애플에서 일을 시작할 때에는 그렇게 큰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양한 제품개발팀에 들어가서 일을 했지만, 뉴톤(Newton)과 같이 성공하지 못한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었고, 기본적으로 애플이 당시에 쇠락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재능을 펼쳐볼 기회를 잘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애플을 재건하기 위해 스티브 잡스가 다시 복귀하면서 부터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조너던 아이브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보고, 애플의 부활을 이끌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였던 아이맥 디자인의 전권을 그에게 맡깁니다.  스티브 잡스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서 얼마나 그가 조너던 아이브를 신뢰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이맥이 전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아이맥을 디자인한 조너던 아이브는 단숨에 전세계 디자이너들을 찬사를 한 몸에 받게 됩니다.




조너던 아이브와 그의 디자이너팀은 언제나 위계질서보다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문화 속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탄생시켰습니다.  조너던 아이브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에 흥미가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물건들이나 여러 종류의 제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동작하는지, 그리고 어떤 재질로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아서 항상 그림으로 그리고, 그린 것을 실제로 만드는 작업을 즐겼습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결국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쉽지 않았던 애플이라는 회사에 대한 적응

조너던 아이브가 애플에 입사하게 된데에는, 또 하나의 전설인 하르트무트 에슬링거의 맥(Mac) 디자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거의 컴맹 수준으로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했는데, 대학을 다닐 때 맥을 발견하고 엄청난 감화를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결국 세기의 디자이너들이 맥을 사이에 두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교감을 나눈 것이지요.  그 장면이 눈에 선하지 않습니까?   그 뒤로 조너던 아이브는 애플에 대해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차에 애플에서 입사하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으니 만사를 제쳐놓고 애플로 들어간 것입니다.


조너던 아이브의 아이맥에 이은 히트작, G4 Cube (2000)


그렇지만, 조너던 아이브의 애플 적응은 그다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원래가 자유로운 디자이너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디자인 컨설팅을 하던 그가 갑자기 심오한 제품기획과 풀타임으로 회사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특히, 기술적으로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자유로운 디자인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나 그가 애플에 입사했을 당시, 애플은 사세가 기울고 있었습니다.  초창기 애플의 정체성과 목표를 잃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난파선과도 같은 신세였지요 ...   

그러다가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면서 상황은 극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애플의 정체성과 핵심가치를 먼저 확립하는 작업을 시작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다른 회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접근방법을 통해 디자인과 혁신을 바탕으로 회사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조너던 아이브의 재능도 빛을 발합니다.


자신의 팀과 파트너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디자이너들이 회사를 자주 옮기는 데에 비해, 조너던 아이브는 상당히 오랜 시간 애플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애플하고만 일을 하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애플의 디자인팀 뿐만 아니라 개발, 마케팅, 영업팀까지도 같은 문제를 풀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는 문화에 의해 자신의 디자인이 탄생하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디자인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애플의 일부로서 자신의 디자인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조너던 아이브는 애플의 디자인 팀이 거의 하늘에서 내린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할 정도로 강한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핵심 디자인팀을 작게 유지하면서 첨단 도구와 프로세스에 많은 투자를 함으로써 협업의 강도를 높이는 전략을 쓰고 있는데, 커다란 스튜디오에 강력한 사운드 시스템으로 디자인 영역을 지원한다고 하니 상당히 독특합니다.  거의 개인 공간을 주지않고, 큰 공간을 공동으로 쓰면서 끊임없이 토론과 회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식으로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2002년형 아이맥


조너던 아이브는 애플의 디자인에 있어서 새로운 재질과 프로세스, 그리고 제품 아키텍처의 혁신이 핵심에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폴리머 기술이 발전하자, 이를 이용한 다양한 기능성을 갖춘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아이맥입니다.  그리고, 프로세스에서 트윈슈팅(Twin shooting) 기법이 나와서 서로 다른 플라스틱을 동시에 사출할 수 있게 되자, 이 기술을 도입해서 만든 디자인이 바로 아이팟(iPod)입니다.  최근에는 레이저를 이용한 접합과 혁신적인 접착제 등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언제나 새로운 재료와 재질, 그리고 프로세스 및 기술의 발달을 끊임없이 도입하고 테스트하면서 탄생한 애플의 디자인은 단순한 미술적 디자인이 아닌 기술과 디자인의 총체적으로 만나 만들어진 결정체인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 이후의 후계 구도를 따질 때, 조너던 아이브(Jonathan Ive)가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것은 바로 이런 그의 카리스마와 창의성 때문입니다.  비록 스티브 잡스와 같은 강렬한 카리스마나 커다란 흐름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이지만, 그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애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애플의 정체성을 확립하였고,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은 가지고 있지 못한 최고의 차별적 존재가 바로 조너던 아이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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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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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애플이 디자인의 혁명을 일으킨 기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그 자리에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조너던 아이브(Jonathan Ive)가 있습니다.   조너던 아이브는 1967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올해 43세입니다.   아직도 절정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가 만들어갈 디자인의 혁신이 더욱 기대가 됩니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도구와 재질, 그리고 제작 프로세스를 과감하게 시도하면서 혁신적인 디자인들을 내놓았고 성공을 시켜 왔습니다.  1998년의 아이맥이라는 컴퓨터 디자인의 역사적인 제품을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아이북과 파워북 G4, 아이팟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히트작들을 성공시키면서 전세계 산업 디자이너들의 모법이 되고 있습니다.

조너던 아이브는 1967년 런던에서 태어나, 뉴캐슬 폴리테크닉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그 뒤에 탠저린(Tangerine)이라는 회사를 공동으로 설립해서 파워 툴부터 텔레비전에 이르는 다양한 디자인 컨설팅을 하기 시작했는데, 1992년에 그의 고객이었던 애플이 그를 스카웃하게 되면서 애플과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가 애플에서 일을 시작할 때에는 그렇게 큰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양한 제품개발팀에 들어가서 일을 했지만, 뉴턴(Newton)과 같이 성공하지 못한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었고, 기본적으로 애플이 당시에 쇠락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재능을 펼쳐볼 기회를 잘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애플을 재건하기 위해 스티브 잡스가 다시 복귀하면서 부터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조너던 아이브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보고, 애플의 부활을 이끌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였던 아이맥 디자인의 전권을 그에게 맡깁니다.  스티브 잡스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서 얼마나 그가 조너던 아이브를 신뢰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이맥이 전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아이맥을 디자인한 조너던 아이브는 단숨에 전세계 디자이너들을 찬사를 한 몸에 받게 됩니다.




조너던 아이브와 그의 디자이너팀은 언제나 위계질서보다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문화 속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탄생시켰습니다.  조너던 아이브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에 흥미가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물건들이나 여러 종류의 제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동작하는지, 그리고 어떤 재질로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아서 항상 그림으로 그리고, 그린 것을 실제로 만드는 작업을 즐겼습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결국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조너던 아이브가 애플에 입사하게 된데에는, 또 하나의 전설인 하르트무트 에슬링거의 맥(Mac) 디자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거의 컴맹 수준으로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했는데, 대학을 다닐 때 맥을 발견하고 엄청난 감화를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결국 세기의 디자이너들이 맥을 사이에 두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교감을 나눈 것이지요.  그 장면이 눈에 선하지 않습니까?   그 뒤로 조너던 아이브는 애플에 대해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차에 애플에서 입사하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으니 만사를 제쳐놓고 애플로 들어간 것입니다.


조너던 아이브의 아이맥에 이은 히트작, G4 Cube (2000)


그렇지만, 조너던 아이브의 애플 적응은 그다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원래가 자유로운 디자이너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디자인 컨설팅을 하던 그가 갑자기 심오한 제품기획과 풀타임으로 회사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특히, 기술적으로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자유로운 디자인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나 그가 애플에 입사했을 당시, 애플은 사세가 기울고 있었습니다.  초창기 애플의 정체성과 목표를 잃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난파선과도 같은 신세였지요 ...  

그러다가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면서 상황은 극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애플의 정체성과 핵심가치를 먼저 확립하는 작업을 시작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다른 회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접근방법을 통해 디자인과 혁신을 바탕으로 회사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조너던 아이브의 재능도 빛을 발합니다.

조너던 아이브는 아직도 애플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애플하고만 일을 하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애플의 디자인팀 뿐만 아니라 개발, 마케팅, 영업팀까지도 같은 문제를 풀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는 문화에 의해 자신의 디자인이 탄생하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디자인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애플의 일부로서 자신의 디자인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죠 ...



Cinema Display (1999)와 iPod (2001)


조너던 아이브는 애플의 디자인 팀이 거의 하늘에서 내린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할 정도로 강한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핵심 디자인팀을 작게 유지하면서 첨단 도구와 프로세스에 많은 투자를 함으로써 협업의 강도를 높이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커다란 스튜디오에 강력한 사운드 시스템으로 디자인 영역을 지원한다고 하니 상당히 독특합니다.  거의 개인 공간을 주지않고, 큰 공간을 공동으로 쓰면서 끊임없이 토론과 회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식으로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2002년형 아이맥


조너던 아이브는 애플의 디자인에 있어서 새로운 재질과 프로세스, 그리고 제품 아키텍처의 혁신이 핵심에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폴리머 기술이 발전하자, 이를 이용한 다양한 기능성을 갖춘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아이맥입니다.  그리고, 프로세스에서 트윈슈팅(Twin shooting) 기법이 나와서 서로 다른 플라스틱을 동시에 사출할 수 있게 되자, 이 기술을 도입해서 만든 디자인이 바로 아이팟(iPod)입니다.  최근에는 레이저를 이용한 접합과 혁신적인 접착제 등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언제나 새로운 재료와 재질, 그리고 프로세스 및 기술의 발달을 끊임없이 도입하고 테스트하면서 탄생한 애플의 디자인은 단순한 미술적 디자인이 아닌 기술과 디자인의 총체적으로 만나 만들어진 결정체인 것입니다.


신개념 데스크탑 디자인, 맥미니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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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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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애플의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이어갈까 합니다.  지난 번에는 애플의 디자인 혁신을 처음으로 일군 세기의 디자이너인 하르트무트 에슬링거에 대해 포스팅을 했습니다.

2009/03/06 - [하이터치 디자인의 시대] - 애플 디자인 시대의 선구자, 하르트무트 에슬링거


오늘 포스팅의 주제는 쓰러져가는 애플을 되살리려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복귀한 뒤 찾아낸 보석과 같은 인재 조너던 아이브(Jonathan Ive)의 첫 번째 걸작이자 애플의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아이맥(iMac)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애플이 아이맥을 처음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8월 15일입니다.  아이맥은 단순히 애플의 부활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인터넷 컴퓨터의 시대를 열었고, 동시에 컴퓨터 디자인의 새로운 혁신을 보여준 시대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맥은 본격적인 판매에 앞서,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맥월드 엑스포를 통해 1998년 1월 6일 처음으로 선을 보이게 됩니다.  아이맥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하자마자 애플의 사운을 걸고 개발한 역작입니다.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혁신적인 디자인을 가진 이 제품은 당시 대부분의 애플 직원들도 발표할 때까지도 몰랐을 정도의 극비 프로젝트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이맥은 개발단계부터 디자인의 혁신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 막중한 책임이 지금은 세계최고의 산업디자이너가 된 조너던 아이브에게 지워졌습니다.  사실 조너던 아이브가 애플에 입사한 것은 1992년 9월로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면서 폐기된 PDA의 전설적인 기기인 뉴턴(Newton)의 디자인을 담당했습니다.  보통이라면 뉴턴 프로젝트가 날아가면서 같이 정리가 되었을 수도 있었지만, 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챈 스티브 잡스가 그에게 애플을 되살릴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긴 것입니다.

CRT 모니터와 메인보드를 투명하면서도 사탕과도 같은 색상과 파격적인 둥그런 디자인의 박스에 집어넣고, 거기에 손잡이까지 달려있는 아이맥이 디자인은 전세계의 컴퓨터 매니아들을 깜짝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용자는 아이맥 박스와 키보드, 마우스만 연결하면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 것은 기본입니다.

사실 일체형 케이스에 작은 크기, 그리고 최소한의 연결과 같은 디자인 요소들은 이전에 포스팅한 에슬링거의 매킨토시 디자인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맥은 기존의 스노우 화이트 컨셉을 과감하게 집어던지고, 투명하면서도 푸르스름한 플라스틱 케이스를 채택하였습니다.  처음으로 컴퓨터 내부가 들여다 보이면서도 기존의 디자인의 선입관을 철저히 부수는 이 디자인은 케이블과 키보드, 동그랗게 마치 아이스하키 퍽(puck)처럼 생긴 마우스와 같은 작은 주변기기 요소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세세한 부분의 디자인에도 신경을 쓴 흔적이 많이 보이는데, 포트나 FCC 인증과 같은 여러 종류의 라벨 역시 홀로그램 스티커를 이용을 하여 고급스러운 느낌이 납니다.





Image Credit:  Macworld, October 1998


아이맥의 디자인 혁명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이맥은 오늘날 전세계 애플 사용자들이 처음으로 제품을 구입한 후 경쟁적으로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올리는 "포장뜯기(unpackaging)" 행사를 만들어낸 첫번째 제품이기도 합니다. 

아이맥의 포장의 철학은 이후 델(Dell)과 같은 컴퓨터 업계 뿐만 아니라 휴대전화 제조업체들까지도 따라하게 되는 대단한 문화적 파급효과를 일으킵니다.  조너던 아이브는 아이맥의 액세서리, 키보드, 매뉴얼을 모두 받침대로 이용할 수 있는 하나의 스티로폼 틀에 포장을 하였습니다.  첫번째 스티로폼 조각을 꺼내면 손잡이가 바로 보이는데, 누구나 이 손잡이를 꺼내서 책상 위에 놓아서 아이맥과 처음으로 대면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액세서리 박스를 열면 전원, 인터넷, 키보드용 케이블 3개가 보이는데 이 케이블들의 순서는 본체에 연결하는 순서와 그대로 일치합니다. 

아이맥은 글자 그대로 컴퓨터 업계의 대히트 상품이 되었습니다.  아이맥은 출시가 되기 이전에 이미 15만대의 예약주문이 들어와 있었고, 6주만에 27만 8천대를 선적하게 됩니다.  그중에서 29.4%는 처음으로 컴퓨터를 사는 사람들 이었고, 12.5%는 과거에 윈도우 운영체제를 쓰던 사용자들이었으니 아이맥이 얼마나 대단한 히트를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애플은 1998년에만 80만대의 아이맥을 팔았는데, 이듬해까지 200만대를 판매하면서 애플의 부활을 전세계에 알리게 됩니다. 

며칠 전에 2009년형 새로운 아이맥이 출시되었습니다.  해외 웹사이트에는 벌써 새로운 아이맥을 받아서 해체도 해보고 하는 사진들이 어제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네요.  짬이 나는대로 새로운 아이맥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겠습니다.  마지막으로 1998년 맥월드 사진 하나 올리면서 포스팅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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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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