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입니다. 저도 어떤 캠프에 직접적으로 조인한 것은 아니지만, 정책을 만들어내고 이를 전달하는 네트워크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제안들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책을 만들고 검토하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정책 하나가 일부의 그룹의 주장에 의해 통과된다고 해서 큰 효과를 가지기는 어렵습니다. 더더욱이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너무나 구조적이어서, 이를 타파하고 변화시키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세세한 각론적인 정책보다는, 국민들이 바라는 미래상과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하여 모두가 합의를 이루어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어느 캠프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니며, 여기에 적는 내용을 바탕으로 다른 캠프에서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활용한다면 더욱 환영합니다. 정책과 공감이라는 것은 소유권을 주장하기 보다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게 만들고, 합의를 통해 발현될 때 사회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기에 사회적 담론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글은 시리즈로 이어지기 때문에 앞선 글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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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9 - 미래를 향한 큰 그림에 대한 합의가 중요하다 (1)



지난 번 글에서 주로 인구구조의 변화와 저출산, 그리고 일부 주택정책에 대한 말씀을 드렸는데, 이번에는 이어지는 주제로 젊은이들에 대한 고등교육 시스템과 지방과 지역사회가 고사하는 현상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일단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인 대학 등록금에 대한 현실부터 보겠습니다. 2006~2007학년도 기준으로 OECD 국가별 국공립대 등록금 수준은 구매력 평가기준 달러 환산을 할 때 우리나라는 4717달러로 5666달러인 미국을 제외한 모든 OECD 국가 중에서 최고입니다. 사립대 등록금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그나마 국공립대 비중도 22%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아서, 고등교육에 들어가는 학비부담이 사실 상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비교대상을 미국으로 한정하면 모를까, 문제가 심각하지요? 괜히 등록금 경감대책을 젊은이들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등록금만 문제가 아닙니다. 국내 대학들은 서열구조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학생들을 입시점수 위주로 줄세우는 경쟁으로 내몰고 있으며, 명문대와 일부 인기학과에 들어가기 위한 것을 최종 목표로 하는 현상이 일반화되면서, 고등학교, 중학교, 이제는 초등학교까지 창의성이나 삶에 대한 생각이나 사회성과 같이 인간으로서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을 익히고, 행복한 삶에 대한 고민을 하기 보다는 입시를 위한 삶에 꿈과 희망을 저당잡히고 있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이슈가 있습니다. 바로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 문제입니다. 매년 수도권으로 유입되는 인구의 60% 이상은 대학진학과 취업을 앞둔 20대가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소위 명문대학들이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에 가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인재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절대로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들이 그대로 수도권에 일자리를 잡아 눌러앉게 되는데, 이런 현상이 수십 년 지속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지방에는 인재들이 씨가 마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방의 발전과 관련한 회의나 자문에 몇 차례 불려간 적이 있었는데, 지방의 가장 큰 문제는 돈이나 시설이 아니라 바로 인재의 부족이었습니다. 지방분권 정책이라고 해서 지방에 아무리 개발을 해 주더라도, 젊은 인재들이 그곳에 있지 않으면 그렇게 선심성으로 퍼부은 예산들은 결국 사라지고 맙니다. 지역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내고, 지역사회의 변신을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를 집행하는 뛰어난 인재들이 있다면, 지역사회가 발전할 수 있고, 이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지방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나라와 대조적으로 지방분권이 잘 이루어져 있고, 지방의 경쟁력이 강한 독일의 윤대 마을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윤데 마을은 150여 가구, 700여 명이 사는 조그만 농촌 마을입니다. 그런데, 이 마을은 독일 정부가 '미래를 준비하는 마을'로 지정하면서 독일 최초의 바이오에너지 마을로 유명해졌고, 매년 5,000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어떻게 시골의 작은 마을이 이렇게 변신할 수 있었을까요? 이 마을의 변신의 비밀에는 대학과 지역사회의 강력한 협업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윤데 마을의 변신과 관련한 기획안은 이 마을에서 가까운 괴팅겐 대학에서 만들었습니다. 경제학, 환경학, 지리학, 사회학 등을 전공한 대학의 연구자들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학제간 연구센터'를 만들어서 여러 마을의 상황을 조사하고, 미래의 지속가능한 생활양식을 구현하기 위한 프로젝트들을 주변 마을 들에 제시하였습니다. 윤데 마을의 주민들은 이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여, 협동조합을 결성하였고, 마을 전체주민의 70%가 조합원이 되어 50만 유로를 출자했습니다. 바이오에너지 마을이 되기 위한 부족한 자금은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에서 150만 유로를 지원받고, 은행에서 350만 유로를 융자하여 메꾼 뒤에 시설을 완공하고 발전소를 운영했습니다. 이를 통해 마을이 완전한 에너지 자립을 이룰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잉여전력을 전력회사에 판매하고 있기에 그 수익금으로 10~20년 내에 모든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역의 혁신주체로서 대학이 역할을 하고, 지역사회 밀착형 융합연구를 수행해서 그것을 지역사회에 구현한 자생적인 지역혁신을 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지역사회가 협력을 하고, 혁신활동의 주체가 되었고, 연방정부와 지방정부는 혁신주체와 지역사회가 상향식으로 추진한 사업을 공공자금으로 지원하고 융자를 알선한 것입니다. 이런 흐름이 최근 EU에서는 많이 보입니다. 최근에는 시민사회 조직(Civil Society  Organization)과 과학기술 조직(Research Organization)의 협력(CSO-RO Partnership)을 통해 시민사회 조직이 과학기술활동에 참여하여 과학기술 조직의 전문성과 시민사회 조직의 현장 경험을 결합하는 프로젝트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고등교육의 양극화 문제와 젊은이들에 대한 과도한 등록금, 그리고 지방분권화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현실의 모순은 단순히 지방의 문제, 대학을 비롯한 고등교육의 문제, 그리고 일자리 문제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과도한 대학의 서열화와 수도권 집중현상, 이들의 경쟁으로 인한 부동산 투자와 고비용 구조, 사립대학 위주의 편성과 그릇된 연구논문 위주의 대학평가 시스템으로 사회문제 해결보다는 학생들을 교수들의 연구 노예로 만드는 현상 및 국공립대학의 위축 등이 모두 경쟁의 선순환이 아닌 악순환의 구조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딘가 연결고리를 먼저 끊어야 합니다. 무엇이 가장 사회적인 비용이 덜 들어가면서도 선순환의 방향으로 교육과 지역사회의 발전, 그리고 일자리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를 마련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고등교육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상대적으로 위축된 국공립 대학이 저렴한 등록금과 함께 지방을 발전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해 주어야 합니다. 등록금 장사로 풍부한 예산을 확보하고 이를 무기로 경쟁하는 사립대학이 이를 바탕으로 서열화를 부추키기 때문에 국공립 대학도 계속 등록금을 올려왔습니다. 만약 국공립 대학에 지원을 확대해서 등록금을 획기적으로 낮추면서도, 경쟁력을 갖추게 한다면 지방의 국공립대학의 경쟁력은 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정부에서 지방의 국공립대학을 지원한다면, 그만큼 요구를 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아집니다. 국공립대학의 교수들과 학생들이 괴팅겐 대학과 같이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인재의 풀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의 발전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원들의 평가에 있어서도 연구 등을 통한 정량적인 연구평가보다 지역사회의 사회적 지표를 높아지게 만드는데 기여하는 정도를 정성적/정량적으로 평가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이를 연구자금의 지원에도 연계시킬 수 있다면 어떨까요? 지역사회의 문제를 대학들이 해결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와 지방은 상대적으로 발전하고, 이에 따라 지역의 경제상황과 일자리도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굳이 지방에서 서울까지 비싼 등록금 부담에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에 따른 커다란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지역사회 발전에 필요한 우수한 인재들이 지방에 남아있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여러 기업들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향이 정착되고, 지방 별로 어느 정도의 특성화를 할 수 있게 된다면, 해당 산업에 중요한 대기업들은 비용도 저렴하면서도 인재들도 확보할 수 있는 지방으로 이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됩니다.


강제로 뭔가를 이전하고, 움직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비용을 발생시키지만, 지역사회에 기존에 있던 곳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다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에 큰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그것이 인재와 사람에 대한 투자라면 더욱 효과는 클 것입니다. 토건개발 사업으로 번듯한 건물들과 도로를 만들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 같지만, 그런 사고방식은 우리나라에 사회간접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박정희 시대에나 어울리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놀랍게도 중앙정부는 물론, 아직도 지방자치단체에서 토건개발 사업에 대한 집착이 놀라울 정도로 강합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입니다. 대학과 지역사회가 협업을 하고, 인재에 대한 투자를 하며, 젊은이들이 지나친 경쟁에 자신의 청춘을 바쳐야 하는 체제에 들어오기 보다, 안정적이면서도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지역사회를 창출하는데 매력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우리나라 전체가 바뀌기 시작할 것입니다.


다음 번에는 이 주제와 연계하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기술이 큰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과 대학이라는 것의 역할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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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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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18세기 까지만 하더라도 명실공히 세계를 지배하던 나라였습니다.  영토를 모두 관할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미국처럼 언어와 문화, 정치와 경제 모든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국가였습니다.  그러던, 영국의 위세가 19세기부터 조금씩 꺾이더니 20세기에는 미국에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국가의 지위를 넘겨주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물론 전세계를 놓고 패권대결을 벌이던 상황에서의 여러 차례의 전쟁이 물론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860년대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과 러시아는 1815년 비인회의(Congress of Wien) 이후 세계의 양대 최강국으로서 세계 곳곳에서 패권 대결을 벌였습니다.  러시아는 어떻게든 남하하려 하고 영국은 그때마다 이를 극력 저지하는 현상이 발칸반도․중앙아시아 등에서 전개되었지요.  크림전쟁(Crimean War, 1853~1856) 당시 러시아와의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영국은 국면전환을 위해 1854년 8월 29일 프랑스를 끌어 들여 오호츠크해와 베링해 사이에 있는 캄차카반도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를 기습하였고, 이로 인해 영․러간의 세계적 대결이 동아시아로까지 확대됩니다.  그런데 태평천국운동(1851~1864)을 통해 중국 민중의 거대한 파워를 확인한 영국과 러시아는 1860년대부터 동아시아에서의 상호 대결을 자제하였고, 이로 인해 동아시아에서는 ‘힘의 공백’ 상태가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당대 최강국들인 영국-러시아가 상호 대결을 자제하는 틈을 타서 일본․프랑스․독일․미국․중국 등이 동아시아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개시하였는데, 프랑스가 병인양요(1866)를 일으킨 것도, 미국이 신미양요를 일으킨 것도(1871), 일본이 운요호사건(1875)을 도발하고 오키나와를 합병(1878)한 것도, 청나라와 일본이 임오군란(1882)에 개입한 것도, 프랑스가 베트남을 장악(1885)한 것도 모두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른 힘의 공백기에 가장 빠르게 성장한 미국이 2차례의 세계대전의 막판에 결정적인 승기를 잡는 역할을 하면서 세계패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해석이 일종의 외부적 요인에 따른 이유라는 시각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시각이 바로 미국과 유럽국가들의 기술자들에 대한 대우와 사회적 지위에 대한 차이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가 그의 저서 "Next Society"에서도 간단하게 기술한 적이 있습니다.

19세기 후반은 산업혁명에 의한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가 급속도로 세계를 재편하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1850년 정도가 되면서 영국은 미국과 독일에 강대국으로서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영국이 이렇게 뒤쳐지기 시작한 이유는 경제적인 것도 기술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영국은 1차 세계대전까지 강대국의 지위를 지켰으며, 기술적으로도 19세기 동안 우월적 위치를 지켰습니다.  합성연료나 증기터빈과 같이 세계적인 발명품도 여전히 영국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사회적으로 기술자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으며 기술자들은 결코 신사(gentleman)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영국인들은 인도에 최고의 산업기술과 관련한 학교를 세웠지만, 정작 영국에는 그렇게 좋은 학교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물리학이나 화학과 같은 기초과학에 대해서는 입장이 달랐습니다.  순수학문을 숭배하고, 이를 연구하는 사람들과 기술자들을 차별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쉽게 시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영국에서 기술자라는 것은 단지 이론적 기초를 주물럭거려서 돈이나 버는 '장사꾼'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장사꾼'으로 비즈니스맨을 폄하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자체가 더 문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국은 벤처 캐피털리스트를 양성하지도 않았습니다.  증명이 안된 사업에 투자할 자본도 없고, 이를 집행할 자본가들도 없었기 때문에 후퇴만 거듭하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J. P. 모건이 벤처 캐피털리스트를 제도화하고,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데 큰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과 대조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지요 ...

이러한 영국의 사회적 분위기와 행보가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영국의 지위를 끌어내린 것입니다. 

이제는 지식혁명과 인터넷 혁명이 산업혁명의 뒤를 이어 세계를 변혁하는 견인차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 영국에서와 같이 과거의 경험에 매몰되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행보를 보인다면 21세기를 주도하는 힘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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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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