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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확실히 과거에 비해 훨씬 밑으로 부터의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고, 분권화가 되어있다. 애시 당초 미국방부에서 핵공격이 이루어지더라도 네트워크가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아서 통신이 될 수 있도록 디자인 하였기 때문에 분산된 네트워크의 힘은 이미 여러 곳에서 보여준 바 있다. 아이티에서 지진이 나서 모든 통신수단이 두절된 상태에서도 인터넷은 살아남아서 유튜브를 통한 인터뷰로 당시 상황을 전할 수 있었고, 모든 언론을 통제하는 상황에 들어간 이란이나 중동의 여러 나라들도 결국 자신들의 이야기를 외부로 전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인터넷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현재의 인터넷이 과연 그렇게 자유로운 녀석인지. 그리고, 그렇게 만족할 만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인터넷은 여전히 어떤 중앙집중적인 관리 시스템에 의해서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IP 주소로 이름을 변환시켜주는 도메인네임서버(Domain Name Server, DNS)를 포함해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ISP(Internet Service Provider)들을 장악하고 이를 컨트롤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간단히 통제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최근의 여러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위키리크스를 통해 미국의 외교문서가 공개가 되자, 미국 정부에서는 관련한 최고 수준의 도메인을 통째로 막아버리는 조치를 취했으며, 이미 특정 IP 주소들을 선택적으로 필터링하는 것은 가정과 기업에서부터 정부에 이르기까지 매우 간단히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아예 예방적으로 ISP 들을 통해서 문제가 될 여지가 있는 단어나 키워드 등에 대한 검열과 통제가지도 가능하며, 이런 기술들에 매력을 느끼는 많은 나라의 정부나 기업들도 유사한 기술을 개발하거나 도입해서 사용을 하려고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런 상황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현재의 인터넷 근간을 이루고 있는 초고속 통신망이 사실 상 여러 회사들의 소유로 되어 있고, 이들이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창기 인터넷이 시작될 때에는 인터넷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ISP의 역할을 공공을 대변하는 대학이나 미디어 회사들이 담당을 했지만, 이제는 서비스 자체가 상업화되면서 사실상 기업의 사유화가 된지 오래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과의 거래를 통해 자유를 침해당할 수 있는 조항에 부지불식간에 동의를 하고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이 회사의 이익에 따라서, 또는 국가의 명령에 따라서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에 대한 접근을 막거나 포트를 닫아서 공유를 할 수 없게 하거나, 우리가 만들어낸 새로운 애플리케이션 등을 동작시킬 수 없도록 하는 작업이 언제나 가능하다. 근본적으로 인터넷은 전혀 "자유로운 공간"이 아니라 "통제가 가능한 공간"인 것이다. 


여기서 잠시 과거를 둘러 보자. 인터넷 이전에 우리들은 네트워크 통신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일단 떠오르는 것은 소위 PC 통신업체이다. 천리안이나 하이텔 등의 업체들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당시 많은 사람들이 PC 통신에 열광했었다. 그런데, 이들은 현재의 인터넷보다 더욱 통제가 쉬운 체제이다. 그렇지만, 당시 유행을 하던 사설 BBS 들은 어떤가? 호롱불을 위시로 하여 사설로 사람들을 모아서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었던 많은 로컬 서비스들의 경우 자신의 집에 서버를 만들고, 통화중이어도 상관없는 전화번호를 받아서 이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했던 수 많은 사설 BBS 들은 전화망을 통제하기 전에는 자신들만의 서비스를 자신의 판단과 해당 커뮤니티의 판단을 통해서 운영을 했었다. 24시간을 운영하던 것도 있었지만, 주로 밤 시간에 잠깐씩 운영하면서 작은 커뮤니티의 끈끈함을 같이 누렸던 시기가 있다. 실력이 좋은 운영자들은 심지어는 이메일 계정을 주는 곳도 있었다. 그 때의 상황을 회상해 본다면, 네트워크에 대한 접속 서비스와 운영구조 자체가 분산화 될 경우 현재 보다 훨씬 자유로운 형태의 인터넷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기술이 나와야 할까? 어차피 더 이상 유선 네트워크의 시대가 아니다. 과거 아마추어 햄 라디오나 무전기를 쓰듯이 공용주파수를 설정하고, 이들이 서로 서로의 네트워크를 교차하면서 연결할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떨까? 현재의 스마트폰들은 과거의 PC수준을 훨씬 넘는 컴퓨터들이다. 이들이 각자 서버와 클라이언트 역할을 하면서 서로서로 연결한다면 또다른 방식의 인터넷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WiMax 나 WiFi 에서 파생되어 연구되고 있는 다양한 메쉬(mesh) 기술들이 또 하나의 돌파구가 될지 모른다. 이 경우 각각의 노드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개미들과 같은 ISP 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어느 한쪽에 문제가 되더라도 다른 쪽으로 우회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기술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나 소셜 웹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소셜 그래프를 소유하고 이를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 되는데, 어느 한 회사에 모든 것을 빼앗기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그래서 페이스북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비록 아직은 세가 크지 못하고, 그 수준이 형편없지만 다양한 분산된 소셜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는 기술들에 우리들이 보다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 


인류의 미래는 결국 개개인의 힘이 더욱 강해지고,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생산하고, 의식주를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분산된 체계가 강화될 때 국가의 통제와 일본에 몰아닥친 것과 같은 거대한 자연재해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들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 자본의 논리만 생각하지 말고, 힘의 분산을 할 수 있으면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다양한 기술들에 대해서 더욱 많이 관심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P.S. 이 시리즈는 메디치미디어의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라는 책으로 출간이 되었습니다. 전체 내용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책을 구매하셔서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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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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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독립적인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크들을 엮어내겠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인터넷의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ARPANET은 이를 위해서 기존의 전화망 이외에 위성을 이용한 통신망이나, 지상의 무선 네트워크 등도 포괄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 대세를 이루던 전화망 스타일의 서킷(circuit)기반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데이터의 패킷을 중심으로 하는 네트워크 이론과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또한, 여러 네트워크 기술들과 구조를 포괄해야 하기 때문에, 오픈 아키텍처(open architecture)를 통해서 미래로의 확장성도 확보하고, 어느 한쪽이 송신을 하고 다른 편이 수신을 하는 역할을 분담하는 시나리오보다는 각 네트워크의 말단이 독립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각자의 소통이 가능한 P2P(Peer-to-Peer, 각각의 말단이 대등하게 주고받는 형태) 시나리오를 지원해야 했다. 오픈 아키텍처 네트워크에서는 각각의 독립적인 네트워크가 자신들만의 인터페이스를 통해 서비스를 사용자들에게 제공하고, 이들 간의 네트워크를 다시 구성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데, 여기에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 Internet Service Provider) 개념이 나오게 된다. 



인터넷 통신의 핵심, TCP/IP 프로토콜의 탄생


이처럼 혁명적인 오픈 아키텍처 네트워크 개념은 DARPA의 밥 칸(Bob Kahn)에 의해 1972년 처음으로 소개되었는데, 이런 개념이 실질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신뢰성 있는 네트워크 단말 사이의 통신 프로토콜(Protocol)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였다. 그 이유는 데이터 중심의 통신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형태의 전파나 전기간섭, 방해 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하는 환경을 가정할 경우에도 터널을 지나거나, 통신 인프라가 열악한 산간지역 등에서 통신이 끊어지는 것 등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밥 칸이 처음 고안한 것은 다양한 통신 네트워크를 지원하기 보다는 주로 지상에서의 무선통신 환경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토콜이었는데, 이것이 NCP(Network Control Protocol)이다. 초기의 ARPANET 프로젝트에는 NCP가 활용되었는데, 1969년 IMP(Interface Message Processor)라는 장치를 이용하여 4개의 노드인 UCLA,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SRI(Stanford Research Institute), 유타주립대학을 연결했던 역사적 사건에도 NCP가 호스트간 통신을 담당했다. 그런데, NCP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NCP는 컴퓨터와 같은 기계 단말의 고정된 목적지를 제외한 주소를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일단 구성된 ARPANET에 등록된 기계 이외에는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가 없기에 자율적인 확장을 생각했던 인터넷의 개념과는 맞지 않았다. 또한 에러 처리가 불완전해서 중간에 패킷이 소실되면 멈추는 일도 많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밥 칸은 오픈 아키텍처 네트워크 환경에 잘 맞는 새로운 버전의 프로토콜을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초기의 NCP는 IMP라는 기계를 위한 일종의 하드웨어 드라이버와 유사한 형태였는데, 오픈 아키텍처 네트워크를 위해서는 통신 프로토콜의 형태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각각의 네트워크는 독립적으로 유지되면서도, 네트워크 간의 네트워크인 인터넷에 접속될 때 특별한 변화나 조작이 없어야 했다. 데이터 덩어리인 패킷이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는 일이 있으면, 멈추기 보다는 시간이 지나면 원래 발신한 곳에서 재전송이 일어나야 했으며, 네트워크들 사이를 연결하는 어떤 보편적인 블랙박스 같은 것이 필요했다. 이렇게 네트워크 사이를 연결하는 장치는 이후에 게이트웨이(gateway)와 라우터(router)라고 부르게 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슈는 주소와 관련된 것이다. 사라지는 패킷을 처리하고, 재전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패킷에 어디로 어떻게 가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어야 했다. 게이트웨이가 패킷을 벗겨서 네트워크가 흘러가는 길의 정보(루트, route)와 인터페이스 처리, 필요하다면 데이터 패킷을 잘게 자르는 등의 정보를 해석할 수 있어야 했는데, 이런 정보를 IP(Internet Protocol) 헤더에 담도록 하였다. 또한, 에러 등의 이유로 순서를 가리지 않고 들어오는 데이터 패킷을 나중에 재조합을 하고, 잘 전송되었는지 모르고 다시 전송한 데이터와 같은 중복처리도 해야하므로 체크섬을 계산하도록 했다. 또한, 호스트 사이의 흐름도 제어하고, 전체적인 시스템의 완결성을 위해서는 주소체계도 필요하였다. 이렇게 해야할 일이 많아지자, 밥 칸은 1973년 빈트 서프(Vint Cerf)에게 상세한 디자인과 관련한 도움을 요청한다. 


빈트 서프는 오리지널 NCP 디자인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당시 운영되던 다양한 컴퓨터 운영체제에 어떻게 이런 내용을 인터페이스로 연결시킬 것인지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기에 최고의 조력자가 될 수 있었다. 밥 칸의 뛰어난 아키텍처 개념에 빈트 서프의 NCP 및 운영체제에 대한 지식이 합쳐지자 결국 성과가 나오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인터넷 기기들의 소통언어라고 할 수 있는 TCP/IP(Transmission Control Protocl / Internet Protocol) 프로토콜이다. TCP/IP는 1973년 9월 서섹스(Sussex) 대학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조직된 INWG(International Network Working Group)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으며, 빈트 서프는 이 그룹의 의장으로 초대되어 TCP/IP로 전 세계를 엮어나가는 역사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더넷의 등장


TCP/IP 프로토콜과는 별도로 제록스 파크 연구소에서는 이더넷(Eternet)이라는 새로운 네트워크 기술이 연구되고 있었다. 이더넷은 원래 제록스 파크에서 1973년 로버트 멧칼프(Robert Metcalfe)가 박사 학위를 위해 연구하던 ALOHAnet의 아이디어에서 메모를 하나 적은 것이 발단이 되었다. 이를 좀더 체계화를 해서 1975년 제록스 파크 연구소에서는 특허를 출원하고, 1976년에 로버트 멧칼프와 데이비드 복스(David Boggs)가 <이더넷: 분산 패킷교환 로컬 컴퓨터 네트워크(Ethernet: Distributed Packet-Switching For Local Computer Networks)>라는 책을 통해 정체를 공개했다. 멧칼프는 개인용 컴퓨터와 당시 급부상하던 가정과 사무실 등에서의 LAN (Local Area Network)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1979년에 제록스를 떠나 3Com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 DEC, 인텔과 제록스 등을 설득하여 1980년 이더넷 표준을 채택하도록 하였고, 실제로 이더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LAN의 시대가 열리고, 사무실에서 PC를 활발하게 쓰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3Com은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하였다. 무선의 시대로 넘어오기는 했지만, 아직도 이더넷 시장은 여전히 커지고 있어서 2010년에는 160억 달러를 넘었다.


어쨌든 이더넷이 개발되고 있을 당시의 제록스 파크에서는 이렇게 LAN이 금방 활성화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는 인터넷과 관련한 프로토콜을 디자인한 빈트 서프나 밥 칸도 별로 다르지 않아서, 가능한 주소의 수가 32비트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현재와 같은 4바이트의 32비트 IP 주소체계가 세워지게 되는데, 이제는 주소가 완전히 포화가 되어 IPv6라고 불리는 128비트 주소체계로 전환되고 있으니 기술과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음 회에 계속 ...)



참고자료:


Brief History of the Internet

Ethernet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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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인간의 권리인가? 라는 재미있는 주제에 대해서 인터넷 탄생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엔지니어이자, 현재 구글에서도 일하고 있는 전설적인 인물인 빈트 서프(Vint Cerf)가 뉴욕타임즈에서 "그렇지 않다"고 발언을 한 글이 화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기술은 인간의 권리를 가능하게 만들어 줄 수는 있어도, 권리 그 자체는 아니다.

일견하기에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인간의 권리라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으로서 존재하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그런 권리라고 이야기한다면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도 의외로 의견이 분분할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도구의 하나로 그 변화의 양상이 다양하고, 전 세계가 합의한 형태를 가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 인간의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마도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사람들과의 관계"일 것이다.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유의지, 그리고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인 존재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를 권리로 이야기하는 것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여기에서 빈트 서프의 의견에 의문점을 던질 수 있다.  2011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쟈스민 혁명의 과정에서, 인터넷은 그들에게 있어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결사를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전 세계를 연결하는 보편적인 서비스이다.  나라별로, 문화별로 다른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 어떤 제약이 가해지거나, 탄압을 가해서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결사가 이루어질 수 없도록 한다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북유럽의 일부 국가들을 중심으로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인터넷을 국민들의 권리로 선언하고 있는 곳들이 늘고 있다.  아마도 인터넷을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곤란할지 몰라도, 전 세계의 보편타당한 표현의 자유와 연결을 위한 도구로서 최고이자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참고자료:

Internet Access Is Not a Human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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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Latitude Research 에서 "아이들이 바라보는 미래의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한 바램"과 관련한 연구를 수행했고, 그 요약본이 인터넷에 공개되었습니다.  원문은 이 포스트 하단에 링크하였습니다.  이 연구는 12세 이하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래의 인터넷과 컴퓨터 기술에 대해 그림을 그려보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설문지 조사나 인터뷰 방식에 비해 훨씬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개별자료를 많이 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전체적으로 아이들은 앞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이 훨씬 상호작용이 많고, 직접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단순히 컴퓨터나 인터넷 환경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어떤 것과의 연계성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이는 결국 앞으로의 미래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형태의 변형된컴퓨터의 시대에서 우리들의 다양한 신체활동이나 생각, 그리고 사물 들과의 연계성이 더욱 중시되는 소위 "Internet of Things"의 시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일부의 생각들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창작과 창의성에 대한 요구

조사 자료를 보면 아이들은 뭐니뭐니해도 게임에 가장 관심이 많습니다.  놀랄 일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생각보다 창작(creation)과 디자인(design)에 대한 요구도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웹 사이트나 게임, 비디오나 어떤 실질적인 물건 등을 만드는 것과 관련한 도구나 플랫폼을 제안한 비율이 31%나 된다는 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것을 저희 아이들을 통해서도 직접 느끼고 있는데, 아이패드를 아이들에게 주고나서, 이들이 가장 즐기는 것이 물론 게임과 웹 서핑도 있지만 상당한 시간을 창작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앱들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아래 링크는 저희 아이들이 좋아하는 앱들을 소개한 포스트들입니다.


연관글:


이는 예술적인 창작과 디자인이 아이들의 기술과 관련한 개념에 상당히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3D 게임 디자이너가 되기를 원하고, 어떤 아이들은 웹 디자인, 패션 디자인, 풍경 디자인, 산업 디자인 등과 같은 다양한 창작활동에 참여하고 싶어합니다.  물론 전통적인 음악가나 미술에 대한 욕구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무엇인가를 자신이 직접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대단히 큰 것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잘 키우고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이렇게 창작욕구가 큰데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아이들의 이런 창의적인 표현을 하고 싶다는 것을 알고 있거나 이를 돕는 비율이 매우 낮다고 합니다.  이 연구에 참여한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의 컴퓨터 활동으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조사한 결과, 뭔가 창작하고 디자인하는 것에 대한 답변을 한 경우는 단 7%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70%에 이르는 부모들이 게임을 선택해서 컴퓨터와 인터넷과 게임을 동일시하는 현상이 있음을 (적어도 아이들은 게임하러 컴퓨터를 한다고 인식)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결과를 모아보면 아래 그림과 같이 예술과 디자인에 대한 것이 게임에 근접할 정도로 높습니다.




아이들의 소셜에 대한 생각

소셜 웹 서비스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세상에서는 어떨까요?  아이들도 특히 10~12세 그룹의 경우에는 소셜 네트워킹이 중요한 이슈의 하나입니다.  이 그룹에서는 56%가 소셜과 연관된 혁신에 대한 표현을 그림에 녹여 내었습니다.  그 중에 일부는 가족과 친구를 넘어서는 수준의 지구나 전세계 인류를 연결하는 것과 관련한 중요한 비젼을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7살 된 Emma 라는 여자아이는 "서로 다른 언어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이들의 비디오를 찍을 수 있는 컴퓨터"를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있어서 잘 모르는 사람들과의 연결은 이제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등을 통해 어떤 종류의 정보도 바로 인터넷에 접근하면 알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필요하면 자신들이 찾아서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기성세대에게는 엄청나게 크게 느껴지는 세계가, 아이들에게는 굉장히 작게 느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쉽게 전세계 아이들과 채팅도 하고, 게임을 통해서 의견도 나누고, Skype 등을 통해 대화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  


중요한 추가적인 메시지 

  • 디지털이 물리적인 것을 만난다.
38% 의 아이들은 보다 체험의 힘이 강렬한 것을 원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강렬한 3D 효과나 디지털 공간과 실제 물리적 공간의 통합 (예를 들어 실체를 가진 물건들과의 연계성이나 스포츠와 같은 실제 행동 들)에 대한 요구가 강합니다. 

  • 직관적인 상호작용과 인터페이스 혁신
또 한가지 매우 중요한 메시지는 훨씬 더 직관적인 상호작용을 요구합니다 (83%).  예를 들어 우리의 행동을 쉽게 알아서 반응하는 가상의 공간과 같은 것들이나 제스처 인식 등입니다.  앞으로의 기술개발에 있어 UI/UX가 계속 중요한 부분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고 하겠습니다.

이와 관련되어 37% 는 전통적인 키보드나 마우스 인터페이스가 사라진 컴퓨터를 그려냅니다.  눈으로 움지이면 자연스럽게 동작시킬 수 있는 인터페이스, 터치스크린 기능이 강화된 경우(이와 관련한 개념을 그린 아이들이 12%), 비주얼 컨트롤을 그린 아이들이 8%, 텔레파시를 구현하는 것을 생각한 아이들이 4%에 이르는 등 UI/UX 기술의 발전에 관심들이 무척 많습니다. 


디지털(인터넷)과 현실세계가 만나는 세대가 될 것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이런 아이들이 자라나서 미래를 그려나가기 시작할 때에는 현재의 디지털(인터넷) 세상과 현실세계가 만나는 것과 관련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것입니다.  이미 온라인 게임에서의 가상화폐(virtual currency)가 이런 접목지점에서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날이 갈수록 이 두 세상의 만남 및 이를 소통시키는 기술과 응용이 갈수록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정보만으로는 부족한 세상입니다.  무엇인가 현실세계와의 연관성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을 하는 회사들에게 많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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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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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NCSA의 모자이크(Mosaic)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이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마크 앤드리센(Marc Andreessen)은 아르바이트 학생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주력 개발팀으로 뽑아주지도 않자, 시카고를 떠나 실리콘 밸리로 갈 것을 결심합니다.  처음 자리를 잡은 회사는 Enterprise Integration Technologies 라는 회사였는데, 이 회사는 주로 보안과 관련한 일을 하는 회사로 인터넷 브라우저와는 거리가 먼 사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 회사에 재직하던 시절에 일생일대의 귀인이 되는 짐 클라크(Jim Clark)를 만나게 됩니다.


쥬라기 공원을 탄생시킨 3D 컴퓨터

짐 클라크는 텍사스 출신으로 결손가정에 학교에서는 문제만 일으켰던 문제아로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퇴학을 당한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생계를 위해 선택한 해군입대를 통해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이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쓸만한 군인을 만들기 위해 수학을 가르쳤던 해군선생님들은 오래지 않아 짐 클라크에게 해군들의 수학강의를 맡길 정도로 신뢰를 하게 되었고, 군의 적극적인 권유로 야간대학에 진학을 하면서 만학도의 꿈을 키웁니다.  그는 물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유타대학에서는 컴퓨터 과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79년에는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가 됩니다.  그의 뛰어난 수학적 재능과 컴퓨터 과학에 대한 이해는 특히 3D 그래픽 부분에서 빛을 발하게 되는데, 학생들과 함께 3D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 그래픽 전용칩을 개발하고, 개발한 칩을 판매하기 위해 IBM이나 HP와 같은 회사들을 접촉하였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새로운 미래에 대해 보수적인 전망만 하는 대기업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하고 결국 창업을 결심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1982년 실리콘밸리에 탄생한 된 회사가 바로 3D 그래픽 전용 워크스테이션으로 명성을 높였던 실리콘 그래픽스(Silicon Graphics, sgi) 입니다.  초기 실리콘 그래픽스는 2년 가까운 개발기간을 거쳐 처음으로 1984년에 워크스테이션을 내놓게 되는데, 컴퓨터의 가격이 7만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고가였고 범용 소프트웨어가 부족했기 때문이 시장의 냉대를 받게 됩니다.  또한, 그 동안 개발비로 대부분의 창업자금을 소진하고 회사의 존폐를 걱정할 무렵에  뜻밖의 기회를 잡게 되는데, 바로 스타워즈의 아버지 조지 루카스가 지원을 한 것입니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와 같은 SF 영화를 제작하면서, 특수효과의 중요성을 깨닿고 이를 위한 특수효과팀인 ILM 을 운영했습니다.  특히, 영화에 3D 그래픽을 입혀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실감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었던 그에게 마이클 크라이튼 원작의 쥬라기공원(Jurassic Park) 영화화는 최고의 3D 그래픽 기술을 가진 컴퓨터를 요구하였고, 당시 최고의 3D 그래픽 전용 워크스테이션으로 개발된 실리콘 그래픽스의 컴퓨터는 사실 상 유일한 대안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조지 루카스의 결단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감독, 그리고 실리콘 그래픽스 컴퓨터의 컴퓨팅 파워가 어우러진 3D 특수효과는 쥬라기 공원을 세계적인 히트작으로 만드는데 성공하면서 실리콘 그래픽스 역시 안정된 성장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투자자와 당돌한 젊은이의 만남

그러나, 회사창업 초기 2년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벤처투자자에게 너무나 많은 지분을 양도했던 짐 클라크는 실리콘 그래픽스를 실권을 쥐고 가기 어려웠고, 그 역시도 그 회사를 운영하는 것보다는 가지고 있는 돈을 활용한 새로운 투자를 하는 일을 더 매력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마크 앤드리센과 짐 클라크의 만남은 실리콘 그래픽스의 동료였던 빌 포스(Bill Foss)가 주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짐 클라크는 처음 만남에서 바로 미래의 컴퓨터 환경이 웹과 웹 브라우저 기반의 산업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것이라는 확신을 얻고 마크 앤드리센에게 모든 창업자금을 댈테니 창업을 하라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마크 앤드리센은 짐 클라크에게 440만 달러의 자금을 받아서 실리콘 밸리의 마운틴밸리에 회사를 설립하는데, 이 회사가 Mosaic Communication Corporation 입니다.  창업을 한 마크 앤드리센은 과거 모자이크를 같이 만들었던 NCSA 의 동료들을 불러들여서 새로운 웹 브라우저 개발에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Mosaic 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과 개발인원을 데려간 것, 그리고 이에 따른 특허침해에 대해 모교인 일리노이 대학과 NCSA 의 항의를 받게 되자, 회사 이름을 Netscape Communications 라고 바꾸게 되고, 합의금으로 300만 달러에 이르는 돈을 지불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합니다.  이 회사가 바로 초기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는 조타수의 역할을 해준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Netscape Navigator)를 탄생시킨 장본인입니다.  

회사를 창업하고 개발에 매진할 결과,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 첫 버전이 1994년 10월에 공개가 됩니다.  이 프로그램은 그해 10~12월까지 3개월이 안되는 기간 동안 200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급격하게 AOL(America Online)이라는 전화선 접속서비스와 함께 다양한 PC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던 시장을 인터넷 위주의 시장을 재편시키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네비게이터가 나오기 전까지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화접속 서비스를 제공하던 케텔(KETEL, KT에 인수되어 이후 하이텔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 피시서브(PC-Serve, 이후 천리안으로 통합) 등의 PC 통신 서비스를 끼워팔기와 비슷하게 이용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가장 유명했던 접속단말 소프트웨어가 트위터에서 @taeuk 이라는 이름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신 황태욱님이 포함된 경북대학교 하늘소라는 동아리에서 만든 '이야기' 입니다.  네비게이터의 탄생과 웹 서버의 대중화로 인한 인터넷의 폭발의 가장 커다란 직격탄을 맞은 곳들이 바로 이러한 PC 통신 서비스 업체들과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들이 되었습니다.


인터넷, 세상의 관심을 독점하다

오늘날 인터넷의 성공은 사실상 네비게이터의 성공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 인터넷에 접소할 수 있게 만들었고, 컴퓨터의 용도가 업무용에서 인터넷을 서핑(surfing)하기 위한 것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95년 8월, 짐 클라크는 아무런 수익도 없었던 넷스케이프사를 IPO(기업공개)하는 모험을 시도하는데, 당시 "인터넷=네비게이터"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펼쳐내고 있었던 시절이라 '미래의 가치'라는 단 하나의 무기로 나스닥(NASDAQ)에 상장을 도전합니다.  주간사들이 비교적 낙관적으로 '미래의 가치'를 계산해서 주당 28달러에 상장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이것도 처음에는 14달러 정도가 적정하다고 조언을 하였지만, 마지막 순간에 2배인 28달러로 결정해서 올린 것이었습니다.  이제 일반인들이 이 가치를 믿고 사줄 것인가?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려있는 1995년 8월 9일, 넷스케이프사의 주식은 첫날 무려 75달러까지 치솟게 됩니다.  물론 장이 끝나는 시점에는 58달러 정도로 다시 낮아지기는 했지만, 넷스케이프의 주식공개는 인터넷에 대한 미래와 사람들의 기대감을 표현한 첫번 째 신호탄이었고, 달리 말하면 이날이 바로 '닷컴버블(dotcom bubble)'의 시작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날로 24세의 젊은 청년 마크 앤드리센은 세계적인 스타가 되면서,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고 빌 게이츠와 쌍벽을 이루는 아이콘을 부상합니다.  결국에는 빌 게이츠에 의해 넷스케이프가 처절하게 실패를 하게 되는 운명을 맞게 될 줄은 이 때만 하더라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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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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