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뉴스나 신문 등을 보고 있으면 어떤 과학적 발견이나 기술로 인해 혜택을 받은 감동적인 스토리가 간혹 소개된다. 예를 들어, "첨단의 새로운 진단기술이 개발되었는데, 이 기술을 이용해서 과거라면 몰랐을 우리 어머니의 조기암을 진단하는데 성공해서 생명을 구하게 되었다"거나 과거라면 치료가 불가능했을 질병을 첨단 의료기기의 도움으로 치료를 하게 되었다는 것 등의 이야기 등이다.

과학에서는 이와 같은 하나하나의 사건을 일회성 증거(anecdotal evidence)라고 해서, 하나의 사건 자체는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 이런 증거가 모여서 일종의 시리즈가 되고, 여기에 객관성을 갖추기 위한 다양한 제어기법이 들어가면서 그 증거수준이 점점 올라가게 되며, 최종적으로는 많은 데이터를 이용한 통계적 분석을 이용해서 객관적인 결론을 도출하고자 노력한다. 과학적 연구방법론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주관적일 수 있는 일회성 증거보다는 객관성을 갖춘 높은 수준의 객관적인 증거들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과학연구의 본질과도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오늘은 객관적인 과학적인 증거만 중요시한 나머지 지나치게 스토리와 감성, 그리고 사회의 반응을 무시하는 과학적 태도가 반드시 좋지는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과학과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필자는 그래서 항상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과 기술이 비록 매우 메마르고 딱딱한 특징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를 표현하고 사회와 호흡하는 것과 관련한 부분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과학기술에서 희망을 가지는 것도, 특정 과학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인 효과 등에 대해서 사회가 이해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과 같은 사회와의 소통은 무척이나 과학기술의 미래에 있어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의사들을 포함하여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둔감한 듯하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이런 노력에 대하여 부정적이다 못해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례도 있었다. 그런 폐쇄성이 어쩌면 과학기술이 다른 학문들과 본질적인 융합을 시도하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JAMA(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2011년 11월 9일판에는 Zachary Meisel과 Jason Karlawish의 "Narrative vs Evidence-Based Medicine—And, Not Or"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실렸다. 이 에세이에서 저자들은 "스토리가 어떻게 개개인들이 증거를 이해하고 사용하는지에 대해 핵심적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저자들이 스토리가 얼마나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으며,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증거만 매우 딱딱한 어조로 제시하고, 진짜 사람들의 감성과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하는 과학기술은 그 찬란할 수도 있는 업적을 어쩌면 너무 퇴색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디자인을 입히지 않은 기술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듯 말이다.
 
강한 스토리는 객관적인 과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학기술의 최대 약점은 그것이 발표되는 순간 인간들의 행동변화를 일으켜서 실제로 그 때까지는 옳았던 진실조차도 변경할 수 있다는 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의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행동패턴을 포함한 가정이 객관적인 검증의 도구를 이용해서 객관화가 되었을 때 이것이 진실의 가능성이 높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그 사실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행동패턴에 변화를 주거나, 과학적으로 발견한 사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정을 무너뜨리는 예상치 못한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에 과학은 무력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스토리는 사람들의 생각과 감성에 영향을 주고, 이를 통해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기술을 이용하여 조기검진을 통해 암을 극복한 사례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이것이 사람들의 조기검진에 대한 다양한 태도변화를 일으킨다면 상당히 많은 연구결과의 예측치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연구방법론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딱딱함과 메마름을 너무 찬양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한 도구가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과학기술의 UX에 대한 과소평가도 한 마디 하고 싶다. 예를 들어, 의학의 진단기술이 발전하여 비침습적인 신기술이 바늘을 찔러서 생검을 하는 것과 유사하거나 조금 못한 결과가 나온 경우가 있다고 하자. 생검이 주는 고통과 스트레스는 쉽게 정량화를 하기 어렵지만, 사람들에게 주는 부정적인 사회심리학적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사실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없는데, 이에 대한 가중치는 얼마나 줄 것인가? 그리고, 비침습적인 신기술이 기존에 잘 알려진 방법에 비해 조금 못한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우리는 이를 배척할 수 있는 것일까? 나 자신, 그리고 우리 부모님들을 포함한 일반 사람들이 이 두 가지를 경험하고 어떤 선택을 하려고 할까? 과연 이들의 선택에 앞서 메마르고 딱딱한 감성을 지닌 과학자들이 "객관적 증거"를 앞세워 모든 결론을 내리는 행위는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 

우리가 믿고 있는 과학기술 연구방법론과 과학기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 그리고 그 신화적인 믿음에 대해서 한 번쯤은 뒤돌아보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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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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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머크(Merck)가 또 한번의 대단한 결정을 내렸군요.  개인적으로 세계적 제약회사들 중에 좋아하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만, 경영적인 측면에서 머크의 담대한 결정에 언제나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이 회사의 경영진에게는 다른 회사들과 비교할 수 없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올해 초에 포스팅했던 글에서 자칫 특허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 있었던 인간 유전자를 이용한 신약개발과 관련한 문제점을 머크와 워싱턴 대학이 공동으로 헤쳐나간 이야기를 썼던 적이 있습니다.

2009/01/02 - [수술공학/의공학] - 인간유전자 전쟁의 역사: 인간유전자 프로젝트의 역사적 의미


1980넌대 초 유전정보에 대한 특허권을 허용한 미국 법원의 판결에 따라, 영리와 비영리를 가리지 않고 수 많은 회사와 학교, 연구소 등이 유전자 특허 출원에 열을 올렸습니다.  이렇게 무분별하게 출원된 유전자 서열 특허는 미국과 유럽에 각각 수만 건에 이르게 되었으며, 수 많은 특허분쟁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미 인간 염색체 중의 약 20% 정도가 사기업이 소유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C형 간염이나 당뇨병 관련 유전자와 같은 중요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특허를 소유한 측에서는 이 분야의 연구를 독점적으로 수행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사적으로 소유된 유전자 정보가 실제로 중요한 질병의 치료에 쓰이는 치료제 개발에 시간적으로나 비용적인 손실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신약을 개발할 능력은 안되지만 일단 질병의 목표가 되는 유전자의 서열만 찾아낸 수 많은 연구자들 및 벤처기업이 이를 지적재산권으로만 묶어놓고, 실제 신약개발을 할 수 있는 제약회사들과의 타협에 실패를 하면서 전체적인 공익이 후퇴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특허가 폭증함에 따라, R&D 예산 역시 비능률적으로 증가하게 되었으며 이는 결국 신약개발에 대한 부담이 소비자로 넘어오는 과정을 거쳐, 최종 소비자인 환자들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사이클이 형성되었습니다.  즉, 황금을 찾아나선 모든 이들에게 돈을 지불하려다 보니, 황금의 가격이 너무나 올라서 사줄 사람이 없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된 것입니다.


머크와 워싱턴 의대의 활약

이렇게 유전자를 기반으로한 신약개발에 있어서의 유전정보 특허문제와 비용문제로 신약개발이 지지부진한 상황을 반전시킨 주인공은 뜻밖에도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머크(Merck Pharmaceuticals)와 워싱턴 의대 유전자 센터입니다.  1995년 이들은 공동으로 머크 유전자색인(Merck Gene Index)이 라는 유전자 염기서열 데이터베이스를 과감하게 공개합니다.  여기에는 1만 5천개의 유전자 염기서열이 포함되어 있었고, 향후에도 발견되는 유전자 염기서열을 지속적으로 공개할 것임을 약속합니다.  3년 동안의 작업이 더욱 진행되어 1998년에는 80만 개가 넘는 염기서열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이 전략을 통해 많은 유전자 염기서열 특허공세가 무력화 되었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성공을 하였습니다.

당시 수백 만불 이상이 투자되었던 머크의 프로젝트는, 머크의 최상위 경영진의 결단에 의해서 진행이 되었는데 그 의도는 상당히 명확했습니다.  어차피 바이오 기업이 아니라 신약을 개발해서 승부를 해야하는 머크의 입장에서는 유전자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이를 이용한 후속 연구들이 특허침해에 대한 걱정없이 대학이나 여러 연구소들에서 수행이 될 수 있으며 그 중에서 성과가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질병에 대한 치료방법이 나타난다면 이를 제빨리 제품화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제약회사의 입장에서는 유전자 염기서열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신약이 되는 것은 아니고, 가장 원시적인 원료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염기서열로 발목을 잡혀있을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습니다. 

이 전략은 상당히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킵니다.  머크가 선봉에 서자 여러 제약회사들이 거들고 나선 것입니다.  1999년 11개 제약회사들과 비영리단체 하나, IT 기업 두군데가 협력하여 SNP 컨소시엄이 발족합니다.  SNP 컨소시엄은 수십 만개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되는 단일염기의 차이에 대한 정보(SNP)를 찾아내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2001년 1차 프로젝트 종료시 이들이 찾아낸 SNP는 무려 180만개로 목표의 6배 정도가 되었으며, 일단 찾아낸 것은 특허 출원을 한 뒤에 특허가 등록되면 이를 공개로 풀어버림으로서, 혹시 있을 수 있는 개인이나 연구소, 학계의 방해공작을 차단하였습니다.

SNP 컨소시엄의 이러한 공개방식에 의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회사들은 미래형 유전자 기업으로 불리우며 승승장구하던 인사이트(Incyte), 밀레니엄(Millenium Pharmaceuticals), 젠세트(Genset) 등이었습니다.  이들은 유전자 정보를 해독하고, 인력과 장비를 SNP를 찾아내는 것에만 집중을 하면서 자사의 독점적인 SNP 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지적재산권으로 묶는 작업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던 기업들입니다 (이를 유전자 사냥이라고 부릅니다).  이륻 회사는 SNP 관련 특허 개당 최소 5천만 달러에서 1억 달러의 수익을 예상하고 있었다고 하니, SNP 컨소시엄에서 얼마나 커다란 타격을 입었는지 상상이 됩니다.


머크의 또 하나의 혁신, Sage

14년전 이런 엄청난 결단을 내렸던 머크가, 2009년 3월 또 하나의 엄청난 결단을 내렸습니다.  1995년의 결단이 유전자 정보에 국한된 것이었다면, 올해의 결단은 신약개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세계적 제약회사의 자원을 전세계의 연구자들에게 개방하는 선언으로 그 의미와 파장이 엄청날 것으로 보입니다.  

머크는 이러한 목적으로 비영리 의학연구기관인 Sage를 올해 설립하고, 그 모습을 드디어 드러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역사적인 사건으로 후대에 기록될 것으로 봅니다.   Sage의 웹 사이트에 현재는 별다른 것들이 없고, 공동연구를 원하는 곳들이 연구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양식과 프로젝트의 의미와 뉴스 정도로 구성되어 있지만 앞으로 커다란 발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개방형 의학연구단체 - Sage 링크

대문에 보이는 CCA(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라이센스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머크가 이야기하는 Sage의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 혁신적인 새로운 질병모델을 만들기 위한 개방형 데이터베이스 및 플랫폼의 구축
  • 전세계의 과학자들이 서로연계하여 공헌하고 동시에 서로 발전하며, 동시에 생물학적 데이터를 통합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


머크는 어째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말은 쉽지만 세계 최고의 연구인력과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머크같은 회사에서 이렇게 엄청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머크는 14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담대한 결정을 내린 적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지요.  Sage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회사나 연구소가 자신들의 자원을 모두 써서 신약을 개발하기 보다는 전세계의 협업을 통해서 연구가 진척될 때 훨씬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미 머크의 자회사이자 생명과학 연구부분에 있어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회사인 로제타(Rosetta Inpharmatics)의 경영방식에서 이와 유사한 접근방식을 통해 상당한 자신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머크가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지적재산권 자원들을 아낌없이 Sage의 성장을 위한 밑거름으로 제공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며, 단순히 이런 지식을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개방형 플랫폼을 개발하는데에도 투자를 할 것 같습니다.

이  플랫폼은 누구나 쉽게 인간의 질병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해 전세계의 과학자들의 두뇌를 모으는 장이 될 것이고, 동시에 공유와 참여라는 웹 2.0 시대의 철학을 그대로 계승하는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이런 일에 총대를 메고 거액의 지재권과 자금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머크라는 회사의 경영진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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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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