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GUI 운영체제를 구현한 Xerox Star Workstation from Wikipedia.org


오늘은 GUI 를 둘러싼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제록스의 치열한 법정다툼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1980년대만 하더라도 비록 마이크로소프트가 MS-DOS 로 IBM-PC 시장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었지만, 경쟁관계로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애플은 매킨토시라는 하드웨어를 생산하면서 GUI(Graphic User Interface)를 무기로 데스크탑 출판 시장을 장악하고 그래픽 소프트웨어들을 무기로 확실한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MS-DOS 기반의 비즈니스 솔루션 위주로 사업을 풀어간 IBM-PC 호환기종과는 상당히 다른 시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를 고소하다.

그렇지만, 한눈에 GUI가 세상을 바꿀 것을 직감한 빌 게이츠는 애플에게 GUI 의 일부분을 라이센스할 수 있도록 요청을 하였고, 애플은 이를 허용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MS-DOS 기반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 1.0 을 제작해서 출시하는데, 이 때만 하더라도 매킨토시의 GUI와 비교하지 못할 수준이었으며, 버그도 많고 느렸기 때문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윈도 2.0 에서는 윈도우가 중첩이 될 수 있는 것을 포함하여 매킨토시 GUI와 유사한 다른 부분들을 포함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애당초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합의한 수준의 라이센스를 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지적재산권 침해로 고소를 하게 됩니다.

애플이 고소를 한 내용은 매킨토시 운영체제의 "룩엔팰(look and feel)"을 윈도우가 그대로 복제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윈도우의 모양이나 나타나는 패턴, 사라지는 패턴, 중첩되는 형태와 타이틀 바 등, GUI 의 요소기술 189가지를 애플이 열거하였습니다.  


제록스, 애플을 고소하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심리를 거쳐 189개의 요소 중에서 179개의 요소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1.0 을 제작할 당시 애플과 합의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나머지 10개는 지적재산권의 보호범위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립니다.  고소가 진행되는 와중에, 세계 최초로 GUI 를 개발했던 제록스(Xerox)는 애플을 상대로 지적재산권 침해소송을 냅니다.  이미 이 시리즈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애플이 매킨토시와 리사에 적용된 GUI 운영체제를 개발하게 된 것은 제록스 파크(Xerox PARC) 연구소를 들렀다가, 이들이 개발하고 있던 GUI를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당시 제록스는 애플에 현물투자를 하고 애플의 주식을 일부 받은 기념으로 매킨토시 디자인 팀을 초청했던 것인데, 이것이 매킨토시 탄생의 기폭제가 되었던 것이고, 매킨토시는 윈도우의 탄생을 도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록스의 소송은 관련된 사건이 일어난지 3년이 넘어서 제기를 하였다는 이유로 기각되고 맙니다.


전체적인 느낌 vs. 세부요소

이 소송은 그 이면에 있는 세 회사들 사이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판례라는 측면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남깁니다.  애플은 전체적인 "룩앤필(Look and Feel)"에 대한 침해를 인정받고 싶어하였고, 이를 그대로 베낀다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법원에서는 전체적인 느낌을 지적재산권 침해의 대상으로는 판정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립니다.

대신 구체적인 아이템들은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다고 하였는데, 예를 들어 윈도 모양, 아이콘 이미지나 각각의 메뉴들, 그리고 객체들을 열고 닫는 방식과 같이 세부적인 요소들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이들 각각은 대부분 애플이 자신들의 원천성을 주장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고, 애플이 주장하는 많은 구성요소를 하나로 합친 "전체적인 느낌"에 대한 소유권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992년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내려진 이후 5년 뒤인 1997년,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GUI 문제와 함께 애플의 퀵타임(QuickTime) 기술에 대한 지적재산권 침해문제를 포괄하여 합의를 통한 분쟁해결에 이르게 됩니다.  이 때에는 이미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 95를 통해 애플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상태로 커진 뒤였고, 애플도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피스를 더 이상 애플을 위해 개발하지 않겠다는 으름장을 놓으면서 애플을 압박하였기에 당시의 애플로서는 상당히 굴욕적인 합의를 하게 됩니다.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를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 대신 자사의 디폴트 브라우저로 채택하기로 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에게 마이크로소프프 오피스 제품군을 계속 개발해서 최소 향후 5년간 공급하며, 애플의 주식을 $1억 5천만 달러를 투자하여 사들이게 되면서 동시에 상당수 특허 크로스-라이센싱을 하는데 합의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후에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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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컴퓨터 하드웨어가 가장 커다란 주목을 받았지만, 누가 뭐래도 컴퓨터를 우리 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잡게 만든 것은 소프트웨어 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무실 환경에서 반드시 필요한 워드프로세서와 스프레드시트, 그리고 데이터베이스 관련 소프트웨어가 사실 상 주류 컴퓨터와 운영체제 환경의 승부를 갈랐다고 말할 수 있을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과거 삼국지 관련 포스트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애플 II 를 그렇게 빅 히트작품으로 만든 킬러 소프트웨어는 다름아닌 비지캘크(VisiCalc)라는 스프레드시트 였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 시장을 마이크로소프트가 완전히 장악하면서 오피스 제품군이 세상을 지배하였고, 여기에 구글이 구글독스를 앞세워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형국이지만, IBM-PC 와 MS-DOS 의 초창기 시절만 하더라도 이러한 오피스 제품 시장을 둘러싼 치열한 전쟁이 있었습니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성공배경에는 엑셀(Excel)과 워드(Word)라는 강력한 오피스 제품의 뒷받침이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제는 만들었지만, 다른 응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는 그렇게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번 스프레드 시트에 이어 오늘은 워드프로세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통의 워드스타, 떠오르는 신성 워드퍼펙

윈도우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가 세상을 장악하기 이전, DOS 시절에는 잘 나가는 워드 프로세서 듀오가 있었으니,  워드스타(WordStar)와 워드퍼펙(WordPerfect) 가 그것입니다.  

워드스타는 MicroPro International 이라는 회사에서 제작한 소프트웨어로 처음에는 8비트용 운영체제인 CP/M 용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회사의 소유주는 Seymour I. Rubinstein 이었는데, 워드스타의 초기 버전들은 Rob Barnaby 라는 엔지니어가 혼자서 작성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워드스타가 처음 CP/M 용으로 개발되어 세상에 빛을 본 시기는 애플 II 가 인기를 끌던 1978년 입니다.  당시에 워드스타는 쉬우면서도 강력한 기능으로 무장을 하고 사실 상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였습니다.  

CP/M 용으로 개발되었지만, IBM-PC의 출시와 함께 IBM-PC 시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로 여겨졌던 워드스타는 3.0 버젼을 DOS 용으로 1982년에 출시합니다.  기존 CP/M 용 버젼의 기능을 거의 그대로 가져가면서 DOS 용으로 출시했기에 8비트 컴퓨터 사용자들이 쉽게 옮겨갈 수 있었고, 문서 양식으로 저장하지 않고 텍스트 파일로 저장하기 쉽도록 하였기 때문에 프로그래머들이 코드를 입력할 때에도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런 인기를 보여주듯, IBM-PC 호환기종이 전시된 곳에는 언제나 데모 프로그램으로 워드스타가 설치되어 동작하고 있을 정도로 대표적인 소프트웨어로 인정받았습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워드스타는 IBM-PC 호환기종용 DOS 워드 프로세서 시장에서 가장 커다란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렇게 잘 나가던 워드스타는 "워드스타 2000"의 실패로 시장에서 워드퍼펙의 추격을 허용합니다.  IBM이 자사의 워드 프로세서 프로그램인 DisplayWrite 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발표하면서, 이와 경쟁하고 호환도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발표한 소프트웨어였지만, 정작 자사의 기존 워드스타 파일 포맷 및 키보드 이용방법의 호환성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IBM 이라는 회사에 대해 너무 겁을 먹고 그것에 대비하다가 정작 가장 중요했던 자사제품 사용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들어주지 못한 것입니다.

이틈을 타서 워드퍼펙이 급격하게 부상을 하였습니다.  워드퍼펙은 1979년 브리검영대학(Brigham Young University, BYU) 대학원생이었던 Bruce Bastian 이 설립하고, BYU 컴퓨터과학과 교수였던 Dr. Alan Ashton이 합류해서 미니컴퓨터 시스템용 워드 프로세서를 만들기 시작한 Satellite Systems International, Inc. 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 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1982년 IBM PC 용으로 포팅이 되어 "워드퍼펙 2.20"이 발표되면서 DOS 용 워드프로세서 시장에 뛰어듭니다.  초창기에는 워드스타의 아성에 밀려서 그렇게 큰 빛을 보지 못했지만, 1986년 출시한 워드퍼펙 4.2 버젼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기가 있었던 자동단락 넘버링 기능, 긴 주석의 자동나눔 기능 등과 같은 독특하고 편리한 기능들과 워드스타의 부진이 같이 맞물리면서 인기 소프트웨어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1989년에는 워드퍼펙 5.1 을 출시한느데, 이 소프트웨어는 처음으로 매킨토시 스타일의 풀다운 메뉴를 구현하고, 스프레드시트와 유사한 강력한 표 기능을 지원하면서 명실상부한 워드프로세서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발표된 워드퍼펙 5.1 버젼의 데이터 포맷은 한동안 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 포맷으로 군림하게 되며, 이후 개발되는 다른 회사의 워드프로세서 대부분도 이 포맷을 읽어들이는 것은 필수가 되었습니다. 

워드퍼펙은 미니컴퓨터용 소프트웨어에서 출발했으며, IBM-PC 호환기종 이외에도 매킨토시 OS, 리눅스, 애플 IIe, 각종 Unix, VMS, System/370, AmigaOS, Atari ST, OS/2와 같은 무수한 운영체제를 지원했고, 심지어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나와서 설립한 NeXTSTEP 용으로도 출시가 되었습니다.


윈도우 세상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를 당할자 누구?

그러나, 이렇게 잘 나가던 워드스타와 워드퍼펙 모두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3.0 운영체제의 인기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 워드(Word)의 윈도우 친화적인 환경과의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윈도우 버젼에서는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면서 워드에게 왕좌를 내주었습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PC를 제조하는 제조업체와의 협상을 통해 윈도우를 OEM으로 싸게 공급하면서, 워드까지 같이 저렴하게 끼워주는 프로모션이 주효하면서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서 워드스타는 사실 상 업그레이드도 포기하고 버려진 소프트웨어로 남게 되었고, 워드퍼펙은 그래도 워낙 많은 변호사 사무실과 대학에서 사용을 해왔기 때문에 그러한 사용자 기반을 믿고 당시 그래픽 패키지로 큰 인기를 끌던 코렐(Corel)이 인수를 하게 됩니다.  

코렐은 워드퍼펙을 중심으로 윈도우용 오피스 제품군을 구성해서 꾸준히 시장에 출시는 하고 있습니다.  2010년 3월에도 워드퍼펙 오피스 X5 스위트 제품군이 출시되었습니다.  이 제품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2007 및 PDF 파일과의 호환성, 그리고 XML 지원 및 마이크로소프트 SharePoint 와의 통합 등의 기능을 가지고 주로 워드퍼펙을 꾸준히 이용해온 미국 정부나 회사에 판매가 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나라 아래아 한글이 명맥을 유지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이찬진 대표를 주축으로 서울대에서 창업한 한글과 컴퓨터의 아래아한글이 DOS 용으로 인기를 끌면서 정말 잘 나갔지만, 결국 윈도우 세상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를 당할 수 없었던 역사가 워드퍼펙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그대로 스쳐지나갑니다.  어쩌면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가 여러 사람들에게 (특히 소프트웨어 회사들)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역사는 윈도우와 워드/엑셀에서 시작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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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PC AT

애플 II 와 IBM-PC 의 출시, 그리고 1984년 1월 매킨토시의 등장까지 숨가쁘게 이어지던 애플과 IBM의 대결, 그리고 IBM과 IBM 호환기종의 성장과 함께 급부상하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대결은 1984년 이후 IBM 진영의 완승으로 귀결이 되면서 전세계 컴퓨팅 환경이 마이크로소프트와 IBM 호환기종 하드웨어 및 강력한 주변기기 회사들이 약진하게 됩니다.  오늘은 그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IBM-PC 의 진화, AT 의 등장과 MS-DOS 3.0

IBM-PC가 등장하면서 초기에는 상당한 고전을 합니다.  기존의 8비트 시장의 강자들이 많았고, 아직은 IBM이 파고들어갈 여지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XT 로 명명된 인텔 8088 CPU 를 기반으로한 컴퓨터와 호환기종들이 대규모 마케팅을 무기로 시장에 안착을 하면서 점점 IBM-PC 호환기종들이 컴퓨터 세상을 장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IBM-PC 계열이 다른 컴퓨터들을 제치고 독주체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84년 출시된 AT(Advanced Technology) 컴퓨터 부터입니다.  연초에 매킨토시가 출시되고, 초반 판매에 호조를 보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AT가 출시되면서 승부의 추는 기울기 시작합니다.

AT 컴퓨터에는 인텔의 차세대 CPU 인 6MHz 80286 CPU가 장착되었고, 1MB의 메모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AT 컴퓨터를 지원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MS-DOS 의 3.0 버전을 내놓게 되는데, 이 때부터 MS-DOS 도 안정성이나 기능성 측면에서 많은 진보를 한 것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5.25 인치 1.2MB 플로피 디스켓을 이용할 수 있었고, 20MB 하드디스크를 지원하였습니다.  같은 해 업그레이드 된 MS-DOS 3.1 은 네트워크 환경을 지원하였고, 1986년 발표된 MS-DOS 3.2는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지원하기 시작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출시

그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GUI 를 보고 그대로 흉내를 낸 윈도우즈 1.0 을 1985년 선을 보였습니다.  윈도우즈 1.0은 글자 그대로 마우스를 지원하는 초보적인 포인팅과 클릭만을 지원하는 수준으로 매킨토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 였습니다.  MS-DOS 3.0 위에서 동작하는 일종의 응용 소프트웨어의 형태였으며, 시장에서는 느리고, 무겁고, 버그가 많다는 혹평을 받으며 별다른 반응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의 역사의 시작은 1981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의 프로젝트 이름은 "Interface Manager" 라고 했다가, 1983년 11월 10일 외부에 해당 프로젝트를 공개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Microsoft Windows)"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했는데, 당시 내놓은 형태는 정말 매킨토시와 거의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이런 이유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가 예상보다 늦게 시장에 나온 원인이 되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에 대한 마이너 업그레이드를 계속 진행을 하면서, 시장의 반응을 떠보다가 1987년 2.0 버전을 내놓습니다.  윈도우즈는 멀티 태스킹을 지원하지만, 윈도우즈에서 동작하는 새로운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이 얼마나 만들어지느냐가 중요한 소프트웨어 였습니다.  그래서, 기존 DOS 용으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를 모두 재작성해야 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용되지 않았기에 초기 시장에서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과거 MS-DOS 시절에 프로그래밍을 할 때에는 MS-DOS 가 비디오나 그래픽 부분을 지원하는 것이 빈약했기 때문에, 보통 직접 비디오 메모리에 접근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마우스나 키보드 등의 주변기기도 직접 접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와 관련한 노우하우가 중요했고, 중요한 소프트웨어 기술이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윈도우에서는 자체적인 디바이스 드라이버를 이용해서 비디오 카드나 마우스, 키보드 등의 주변기기를 제어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더욱 편리한 프로그래밍 환경이라고 할 수 있지만, 워낙 느린 성능 때문에 초반에는 많은 엔지니어들에게 외면을 받았습니다.  


HP, 잉크젯과 레어저 프린터의 깃발을 올리다.

1984년 또 하나의 혁신은 HP가 일으킵니다.  당시의 컴퓨팅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프린터는 주로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가 주를 이루고 있었고, EPSON 과 같은 회사가 가장 큰 시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HP가 처음으로 잉크젯 방식의 프린터를 상용화하면서 프린터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잉크젯 프린터 기술자체는 1970년대에 개발되었는데, 상용화는 매우 늦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이 잉크를 분사하는 기술과 잉크 노즐 등과 같은 미세한 기술들이 불량이 많아서 실용화에 애를 먹었던 것인데 HP가 이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면서 프린터 시장의 혁신을 가져옵니다.  동시에 레이저 프린터도 내놓으면서 최고의 프린터 회사로 급부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레이저 프린터의 경우도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복사기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했던 제록스가 우위에 있었지만, 언제나와 같이 PC 시장의 선수를 HP에게 빼앗기면서 결국 기술의 우위를 지키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후속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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