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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컴퓨터 하드웨어가 가장 커다란 주목을 받았지만, 누가 뭐래도 컴퓨터를 우리 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잡게 만든 것은 소프트웨어 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무실 환경에서 반드시 필요한 워드프로세서와 스프레드시트, 그리고 데이터베이스 관련 소프트웨어가 사실 상 주류 컴퓨터와 운영체제 환경의 승부를 갈랐다고 말할 수 있을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과거 삼국지 관련 포스트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애플 II 를 그렇게 빅 히트작품으로 만든 킬러 소프트웨어는 다름아닌 비지캘크(VisiCalc)라는 스프레드시트 였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 시장을 마이크로소프트가 완전히 장악하면서 오피스 제품군이 세상을 지배하였고, 여기에 구글이 구글독스를 앞세워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형국이지만, IBM-PC 와 MS-DOS 의 초창기 시절만 하더라도 이러한 오피스 제품 시장을 둘러싼 치열한 전쟁이 있었습니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성공배경에는 엑셀(Excel)과 워드(Word)라는 강력한 오피스 제품의 뒷받침이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제는 만들었지만, 다른 응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는 그렇게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번 스프레드 시트에 이어 오늘은 워드프로세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통의 워드스타, 떠오르는 신성 워드퍼펙

윈도우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가 세상을 장악하기 이전, DOS 시절에는 잘 나가는 워드 프로세서 듀오가 있었으니,  워드스타(WordStar)와 워드퍼펙(WordPerfect) 가 그것입니다.  

워드스타는 MicroPro International 이라는 회사에서 제작한 소프트웨어로 처음에는 8비트용 운영체제인 CP/M 용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회사의 소유주는 Seymour I. Rubinstein 이었는데, 워드스타의 초기 버전들은 Rob Barnaby 라는 엔지니어가 혼자서 작성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워드스타가 처음 CP/M 용으로 개발되어 세상에 빛을 본 시기는 애플 II 가 인기를 끌던 1978년 입니다.  당시에 워드스타는 쉬우면서도 강력한 기능으로 무장을 하고 사실 상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였습니다.  

CP/M 용으로 개발되었지만, IBM-PC의 출시와 함께 IBM-PC 시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로 여겨졌던 워드스타는 3.0 버젼을 DOS 용으로 1982년에 출시합니다.  기존 CP/M 용 버젼의 기능을 거의 그대로 가져가면서 DOS 용으로 출시했기에 8비트 컴퓨터 사용자들이 쉽게 옮겨갈 수 있었고, 문서 양식으로 저장하지 않고 텍스트 파일로 저장하기 쉽도록 하였기 때문에 프로그래머들이 코드를 입력할 때에도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런 인기를 보여주듯, IBM-PC 호환기종이 전시된 곳에는 언제나 데모 프로그램으로 워드스타가 설치되어 동작하고 있을 정도로 대표적인 소프트웨어로 인정받았습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워드스타는 IBM-PC 호환기종용 DOS 워드 프로세서 시장에서 가장 커다란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렇게 잘 나가던 워드스타는 "워드스타 2000"의 실패로 시장에서 워드퍼펙의 추격을 허용합니다.  IBM이 자사의 워드 프로세서 프로그램인 DisplayWrite 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발표하면서, 이와 경쟁하고 호환도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발표한 소프트웨어였지만, 정작 자사의 기존 워드스타 파일 포맷 및 키보드 이용방법의 호환성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IBM 이라는 회사에 대해 너무 겁을 먹고 그것에 대비하다가 정작 가장 중요했던 자사제품 사용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들어주지 못한 것입니다.

이틈을 타서 워드퍼펙이 급격하게 부상을 하였습니다.  워드퍼펙은 1979년 브리검영대학(Brigham Young University, BYU) 대학원생이었던 Bruce Bastian 이 설립하고, BYU 컴퓨터과학과 교수였던 Dr. Alan Ashton이 합류해서 미니컴퓨터 시스템용 워드 프로세서를 만들기 시작한 Satellite Systems International, Inc. 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 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1982년 IBM PC 용으로 포팅이 되어 "워드퍼펙 2.20"이 발표되면서 DOS 용 워드프로세서 시장에 뛰어듭니다.  초창기에는 워드스타의 아성에 밀려서 그렇게 큰 빛을 보지 못했지만, 1986년 출시한 워드퍼펙 4.2 버젼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기가 있었던 자동단락 넘버링 기능, 긴 주석의 자동나눔 기능 등과 같은 독특하고 편리한 기능들과 워드스타의 부진이 같이 맞물리면서 인기 소프트웨어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1989년에는 워드퍼펙 5.1 을 출시한느데, 이 소프트웨어는 처음으로 매킨토시 스타일의 풀다운 메뉴를 구현하고, 스프레드시트와 유사한 강력한 표 기능을 지원하면서 명실상부한 워드프로세서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발표된 워드퍼펙 5.1 버젼의 데이터 포맷은 한동안 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 포맷으로 군림하게 되며, 이후 개발되는 다른 회사의 워드프로세서 대부분도 이 포맷을 읽어들이는 것은 필수가 되었습니다. 

워드퍼펙은 미니컴퓨터용 소프트웨어에서 출발했으며, IBM-PC 호환기종 이외에도 매킨토시 OS, 리눅스, 애플 IIe, 각종 Unix, VMS, System/370, AmigaOS, Atari ST, OS/2와 같은 무수한 운영체제를 지원했고, 심지어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나와서 설립한 NeXTSTEP 용으로도 출시가 되었습니다.


윈도우 세상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를 당할자 누구?

그러나, 이렇게 잘 나가던 워드스타와 워드퍼펙 모두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3.0 운영체제의 인기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 워드(Word)의 윈도우 친화적인 환경과의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윈도우 버젼에서는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면서 워드에게 왕좌를 내주었습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PC를 제조하는 제조업체와의 협상을 통해 윈도우를 OEM으로 싸게 공급하면서, 워드까지 같이 저렴하게 끼워주는 프로모션이 주효하면서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서 워드스타는 사실 상 업그레이드도 포기하고 버려진 소프트웨어로 남게 되었고, 워드퍼펙은 그래도 워낙 많은 변호사 사무실과 대학에서 사용을 해왔기 때문에 그러한 사용자 기반을 믿고 당시 그래픽 패키지로 큰 인기를 끌던 코렐(Corel)이 인수를 하게 됩니다.  

코렐은 워드퍼펙을 중심으로 윈도우용 오피스 제품군을 구성해서 꾸준히 시장에 출시는 하고 있습니다.  2010년 3월에도 워드퍼펙 오피스 X5 스위트 제품군이 출시되었습니다.  이 제품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2007 및 PDF 파일과의 호환성, 그리고 XML 지원 및 마이크로소프트 SharePoint 와의 통합 등의 기능을 가지고 주로 워드퍼펙을 꾸준히 이용해온 미국 정부나 회사에 판매가 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나라 아래아 한글이 명맥을 유지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이찬진 대표를 주축으로 서울대에서 창업한 한글과 컴퓨터의 아래아한글이 DOS 용으로 인기를 끌면서 정말 잘 나갔지만, 결국 윈도우 세상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를 당할 수 없었던 역사가 워드퍼펙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그대로 스쳐지나갑니다.  어쩌면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가 여러 사람들에게 (특히 소프트웨어 회사들)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역사는 윈도우와 워드/엑셀에서 시작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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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II, 새로운 세상을 열다.

스티브 잡스의 직관과 추진력, 스티브 워즈니액이라는 걸출한 엔지니어, 그리고 마이크 마큘라라는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볼 줄 알았던 젊은 엔젤 투자자와 경영능력, 마지막으로 레지스 매키너라는 당대 최고의 마케터가 같이 뭉친 애플 II 는 세상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당대 최고의 컴퓨터 회사였던 IBM의 CEO인 토머스 왓슨(Thomas Watson)은 전 세계에서 새로운 컴퓨터를 필요로 하는 수요는 매년 5대 정도면 충분하다는 논리를 폈고, Altair 8800 이 나오면서 개인용 컴퓨터가 가능성을 비추면서 젊은 사업가들이 세상이 바꿀 것이라는 인식을 하기 시작할 때에도 찻잔 속의 태풍 정도로 여겼습니다.  또한, IBM과 함께 대형 컴퓨터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DEC의 CEO인 켄 올슨(Ken Olsen) 같은 사람은 가정에 어째서 컴퓨터가 필요하냐고 반문하면서 PC 사업을 쓸데없는 사업 정도로 여겼습니다.  애플을 비롯한 다른 어떤 회사보다도 나은 기술인력과 네트워크, 자본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들은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했습니다.  결국 애플 II 의 대성공으로 세상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IBM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DEC는 결국 이런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결국에는 회사가 매각되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애플 컴퓨터 역시 스티브 잡스가 아닌 스티브 워즈니액의 기획의 전권을 쥔 엔지니어 마인드로 접근했다면 비슷한 결과를 나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은 아타리 컴퓨터에서 여러 작업을 하면서 컴퓨터가 인생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요소가 있으며, 게임을 비롯한 여러가지 용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사용하기 편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애를 썼으며, 마이크 마큘라나 레지스 매키너와 같은 동료들도 그런 점을 강조하면서 다른 컴퓨터 회사들과 차별화를 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런 사용자 편의적이고 즐거운 인생에 도움을 주는 도구라는 개념은 애플의 역사를 타고 도도히 이어져서 현재의 애플 컴퓨터가 만드는 제품들도 잘 살펴보면 개인의 인생과 생활을 풍요롭고 즐겁게 만들기 위한 다양한 철학들이 담겨져 있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애플 II의 성공을 이끈 킬러앱, 비지캘크(VIsiCalc)

애플 II의 성공에는 물론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이라는 천재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또다른 숨은 장본인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으로 댄 브리클린(Dan Bricklin)을 꼽을 수 있습니다.  댄 브리클린과 밥 프랭크스톤(Bob Frankston)이 공동 개발한 비지캘크(VisiCalc)는 컴퓨터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소프트웨어 입니다.  이 소프트웨어 하나로 애플 II는 단순한 가정용 컴퓨터 기기를 너머서 기업에서도 꼭 필요한 컴퓨터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Picture from Wikipedia


1978년 하버드 MBA 과정에 있던 댄 브리클린은 전통적인 종이 스프레드 쉬트를 이용하여 교수가 강의를 할 때, 교수가 하나의 셀에서 실수를 한 것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모든 셀의 값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서 이를 컴퓨터를 이용한다면 훨씬 생산적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뭐든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실행력이 있어야 하는 법 ...  브리클린은 베테랑 프로그래머인 밥 프랭스턴을 고용합니다.  당시 컴퓨터가 구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에서 컴퓨터를 가진 사람들을 수소문하는데, 이 때 간신히 구할 수 있었던 컴퓨터가 바로 애플 II 였습니다.  애플 II에는 당시 정수베이직(Integer Basic)이 구현되어 있었는데, 밥 프랭스턴은 이 언어를 이용해서 데모 프로그램을 구현합니다. 

브리클린에게 애플 II를 빌려준 사람은 Personal Software사의 댄 필스트라(Dan Fylstra) 였습니다.  그 역시 애플 II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그 컴퓨터가 좋아서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에게 자사의 체스 프로그램을 애플 II 용으로 포팅하겠다고 하고 매우 싸게 애플 II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비지캘크가 애플 II용으로 개발된 것에는 이렇게 대단한 행운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댄 필스트라는 브리클린과 밥 프랭스턴이 구현한 데모를 보고 즉시 제품개발 계약을 맺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회사가 바로 비지캘크를 발표한 Software Arts 입니다.  

비지캘크는 소프트웨어 역사에 "최초"라는 수식어를 많이 기록한 제품입니다.  역사상 최초의 "킬러 애플리케이션(Killer Application)"이자 최초의 스프레드 쉬트입니다.  비지캘크가 정형화한 스프레드 쉬트의 형태는 현재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애플 II는 하드웨어 사양에 있어, 폭으로 글자를 40자(40 컬럼)만 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좌우폭의 한계 때문에, 비지캘크를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있었는데, 애플에서는 이를 80컬럼으로 늘리는 주변장치 카드도 판매하였는데 이 카드의 판매량도 비지캘크로 인해 엄청나게 증가하였습니다.  

비지캘크는 1979년 11월부터 판매에 들어갔는데, 100 달러라는 비교적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판매고를 올립니다.  소프트웨어의 판매가 급성장하자, 애플 II도 번들 전략을 이용해서 같이 성장하였습니다.  수십 만대의 애플 II 컴퓨터들이 단지 비지캘크를 사용하기 위해서 팔리게 됩니다.  

비지캘크의 성공은 또다른 업무영 소프트웨어들의 발전을 자극하는데, 그 유명한 애쉬턴테이트사의 업무용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인 디베이스(dBase)와 워드 프로세서인 워드스타(WordStar) 등이 PC 용으로 개발되어 판매가 되었고, PC가 바야흐로 사무자동화(OA, Office Automation)의 첨병으로 대접받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최초의 성공자, 그러나 최후의 승자가 되지는 못한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댄 브리클린은 아담 오즈본(Adam Osborne)의 White Elephant 상을 수상받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비지캘크의 성공신화는  IBM PC의 등장과 함께 로터스의 1-2-3가 나오면서 저물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더해 동업자였던 Personal Software에서 1983년 법적 분쟁까지 겪으면서 결국 Software Arts는 로터스에 매각이 되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소프트웨어 특허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현재도 소프트웨어 부분의 특허는 쉽지가 않습니다). 

비지캘크는 사무혁명을 일으킨 소프트웨어이자, 기업의 OA(Office Automation)라는 것을 처음으로 대중화하는 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컴퓨터를 일종의 기계로 바라보던 관점을 완전히 변화시킨 것도 비지캘크의 공입니다.  애플 II는 비지캘크를 무기로 당시 난립하고 있던 가정용 PC 시장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쥐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바라본다면, 애플도 대단히 운이 좋다고 하겠습니다.  댄 브리클린이 비지캘크를 개발할 때, 애플 II 컴퓨터가 아니라 당시 경쟁을 하고 있는 라디오쉑(RadioShack)의 TRS-80이나 코머도어 같은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다면 PC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을 테니까요 ...

그런데, IBM PC의 등장과 함께 시장을 지배하던 로터스 1-2-3 역시 시장을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셀에게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시장을 지배하고 있더라도, 그리고 현재 잘 나가고 있더라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미래를 미리 내다보고, 변화에 대한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매일같이 혁신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래는 긴 성공을 약속하지 않는 법입니다.


애플 II의 또 하나의 성공전략, 게임과 교육

애플 II의 성공에 직장에서는 비지캘크가 큰 역할을 했다면, 가정에 보급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게임과 교육입니다.  스티브 잡스도 게임회사에 다녔고, 스티브 워즈니액은 자신이 개발한 정수 BASIC을 게임 BASIC이라고 부를 정도로 게임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해상도 그래픽을 지원하는데 총력을 기울였고, 당시 경쟁대상이었던 어떤 컴퓨터 보다도 게임을 지원하기 위한 여건이 뛰어났습니다.

특히, 애플 II 는 다른 컴퓨터와는 달리 RF 모듈레이터라는 것이 있어서 컬러 TV에 연결이 가능해서 컬러로 게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필자 역시 처음 애플 II+ 컴퓨터를 구매했을 때, 전용 모니터를 사지않고 TV를 연결해서 이용했었는데, 컬러 TV에 연결해서 즐기던 게임들은 다른 어떤 PC들보다 우수하고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비지캘크를 통해 사무실을 장악한 애플 II가 또 하나의 거대한 바람을 일으킨 시장은 교육시장이었습니다.  애플 II는 아이들의 학습도구로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대규모 캠페인을 이용해서 학생들이 미래를 위해 컴퓨터 한대 정도는 집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성공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특히 캘리포니아주 모든 학겨에 애플 II 컴퓨터를 한 대씩 무료로 기증하는 과감한 행보와 함께, 광고로 애플 II 컴퓨터로 학교 리포트를 작성하거나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면서 부모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컴퓨터 교육과정이 정규과정으로 편성이 되면서, 학생들과 부모들에게 더욱 익숙했던 애플 II는 자연스럽게 다른 경쟁 컴퓨터들을 제치고 부모들이 당시로서는 거액의 돈을 주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집에 컴퓨터를 한 대씩 장만하는 투자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렇게 애플 II 가 급속도로 가정으로 보급되면서, 당시 큰 인기를 끌던 가정용 게임기가 우수한 컴퓨터 게임 소프트웨어를 통해 붕괴되는등 만만치 않은 산업적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컴퓨터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프린터도 판매가 되면서 EPSON 등과 같은 라인 프린터 회사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고, 또한 애플 II 의 성공에 자극받아서 많은 수의 개인용 컴퓨터 제조사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코모도어 64라는 제품을 앞세웠던 코모도어사는 1700~2500만대 정도의 컴퓨터를 판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결국 IBM 이라는 거인이 PC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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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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