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급격한 변화는 단지 일부의 기술적 변화가 아니라는 사인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의심하지 않았던 원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것이 가장 커다란 패러다임 시프트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우리들은 생산수단(자본, 시설, 인력, 지식 등)의 소유 여부가 가장 중요한 가치생산의 원천이라고 믿어왔으며, 최근들어 지식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얼마나 많은 지적자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를 활용하는지 여부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이와 관련하여 HBR 에 John Hagel III 과 John Seely Brown 이 2009년 1월에 기고했던 "Abandon Stocks, Embrace Flows" 라는 글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았다.  원문은 이 포스트 하단에 링크하였으며, 내용을 참고하여 필자의 의견을 많이 넣어서 글을 재구성하였다.


굳건한 전통적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확신

우리들은 지식을 포함한 생산수단의 소유여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 중에서도 최근에는 지식자산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어떤 생산수단이나 지식자산이 있고, 이것이 사회적인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는 비즈니스의 성공을 담보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장벽을 치고(특허 등), 이를 효과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로 개발해서 내놓는 것이 비즈니스의 요체였다.  이런 근본적인 비즈니스 성공방식의 개념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기에, 이를 언급하는 것조차 촌스럽게 생각될 정도이다.  기업들은 이런 기본적인 전제를 공유하는 가운데, 가능한 많은 가치를 여기에서 뽑아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조직을 만들고, 운영을 한다. 

이런 모델은 단지 기업이나 조직에만 적용된 것은 아니다. 개인들도 우리가 배우고 익힌 기술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의 커리어를 쌓고, 일을 하게 되면 새로운 지식을 더욱 많이 습득되면 이것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런 모델이 도전을 받는다면 어떨까?  이런 생산수단이나 지식의 소유보다 더 강력한 가치를 가지는 원천이 있다면?  최근의 변화는 이런 모델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지식의 자산에서 지식의 흐름으로 ...

최근 발달되고 있는 디지털 인프라와 인터넷, 모바일과 소셜 웹 등은 이런 변화를 실제로 유도하고 있다.  세상의 변화속도가 빨라지고, 그 확산이 광범위 해지면서 지식 자산의 가치는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제조업에서의 제품의 생명주기는 날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가장 성공한 제품조차도 새로운 세대의 제품이 점점 빨리 쫓아옴에 따라 비교우위를 지키는 기간이 매우 짧아졌다.  과거에는 일단 한번 크게 성공을 한 다음에 후발주자들이 쫓아오는 시간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서 새로운 지식을 쌓고, 달아날 시간을 버는 것이 용이했지만, 이제는 그런 경우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지금 너무나 잘 나가는 듯한 애플의 경우에도,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따라잡히고 있으며, 이들의 비교우위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이런 빠른 변화의 시대에서 성공을 하려면 지식 자산을 매우 빠른 속도로 업데이트하고 진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의 흐름에 노출하고, 여기에 발전이 일어날 수 있도록 촉진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John Hagel III 와 John Seely Brown 은 아래의 2가지 극복해야할 문제들을 지적하였다.


  • 지식은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지식은 쉽게 흐름이 될 수 없다.  특히, 그 형태가 명시적인 것이 아니라 노하우 정도의 암묵지라면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뇌수술을 한다고 했을 때, 수술하는 책을 찾아본다면 책은 명시적인 형태의 지식으로 지식을 전달하지만, 실제 수술하는 방법은 수술에 같이 참여해서 손으로 익혀보지 않으면 쉽게 습득할 수가 없다.  이 과정 속에 스승이나 동료로부터 여러가지 이야기와 요령을 듣고, 소통을 하며, 동시에 수술의 일부 과정에 조금씩 참여해서 연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전달이 된다.  이런 종류의 지식습득은 매우 오랜 시간 신뢰를 기반으로한 관계를 요구한다.  그런데, 최근과 같이 변화가 빠른 시기에는 이렇게 익힐 수 있는 암묵지 형태의 지식이 훨씬 가치가 높다.  이런 형태의 지식을 가장 최신의 것으로 익히고, 빠르게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의 변화양상에 대처하는데 익숙해진다면 보다 나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 지식의 흐름에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어렵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런 지식의 흐름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참여를 위해서는 보통 어떤 기여를 해야 하는데, 서로 주고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발전하고, 사람들과 기업들이 서로가 선순환의 고리를 이어가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지 못한다면 이런 흐름에 참여하기도 어렵고, 흐름이 잘 일어나지 않는 네트워크는 결국 존재의 가치를 잃게 된다. 많은 기업들이나 개인들이 이런 새로운 네트워크의 원칙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내놓기 보다는 모든 것을 지키는 것에 익숙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가려고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기업이나 사람들은 네트워크에 참여하기도 어렵고, 참여해도 적응할 수가 없다.


지식 흐름의 네트워크에 동참하는 방법

이런 변화에 적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비교적 위험성이 덜한 지식 자산부터 내놓고, 조금씩 신뢰를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흐름의 네트워크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당 지식 자산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을 관찰하면 이런 새로운 흐름의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  네트워크의 신뢰도가 올라가고, 참여자들도 보다 많은 것들을 내놓기 시작하면 이 네트워크는 선순환의 고리를 돌기 시작할 것이다.  보다 높은 가치가 있는 지식이 공유되고, 이들이 결합을 하여 더 높은 부가가치를 가진 형태로 변신을 한다면 점진적 혁신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한단계 업그레이드한 지식자산은 또 다시 공유되면서 새로운 발전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이런 지식 흐름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다면, 급속한 변화에 따라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  물론, 지적재산권을 고집하는 경우가 나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에 따른 빠른 대처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지적재산권을 고집할 때 얻을 수 있는 가치는 떨어지고, 공유를 통해 얻게 되는 보상의 크기는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다.  이를 잘 판단하는 것이 또 하나의 중요한 의사결정이다.


사람들의 이동을 주목하라

최근 출간한 '거의 모든 IT의 역사' 라는 책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이런 지식의 흐름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사람의 이동이다.  전 세계 기업에 있는 주요한 인물들이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지 잘 보아야 한다.  암묵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런 사람들이 이동하고, 이들이 정착한 회사에서 얼마나 잘 적응하고 커 나갈 수 있는 환경이 되는지가 기업의 흥망성쇠를 크게 좌우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실리콘밸리가 지속적인 혁신의 원천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런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서 이들의 재능이 서로 섞이는 문화가 있고, 이를 북돋아주는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자산보다 중요한 사람들의 이동과 이들이 재능과 지식을 흘러갈 수 있고, 동시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한 연관글도 참고하기 바란다.


연관글:

같은 이유로 중국의 심천이나 인도의 방갈로, 그리고 우리나라의 서울도 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어떤 나라보다도 강렬한 휴먼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지식과 열정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여기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면 제 2의 실리콘밸리는 한국에서 나올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려면, 외국에 뛰어난 사람들이 쉽게 서울에서 일을 하고, 원격 컨퍼런스 등을 통해 회의도 하며, 웹으로 우리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등의 지식의 흐름을 증폭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통과 언어의 중요성은 여기에서도 강조될 수 밖에 없으며,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내어놓고 나누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소셜 웹은 그런 측면에서 지식의 흐름을 증폭시키는 훌륭한 인프라이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앞으로 오프라인에서의 만남과 공동의 노력을 통한 성과의 창출과 같은 보다 단기적 또는 때때로 이어지는 밀접한 관계를 통한 새로운 지식의 흐름을 만드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 젊은 창업자들의 만남과 이들을 도와주는 신생미디어의 등장, 그리고 장을 만들어주기 위해 대기업 등에서 보다 생태계에 초점을 맞춘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결국 미래의 가치는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흘러가는 것'에 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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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zdnet.com


버닝맨(Burning Man) 이라는 이벤트가 있다.  구글의 두 창업자들이 면접을 할 때, 버닝맨 참여자라면 일단 인센티브가 주어진다고도 알려져있는 이 독특한 이벤트와 실리콘 밸리의 문화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저널리스트인 톰 포렘스키(Tom Foremski)가 ZDNet 블로그에 게재한 글에서 일정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실리콘 밸리를 기업과 제품, 그리고 비즈니스로 이해하는 접근방법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사람과 문화로 접근하는 시각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포스트에서는 버닝맨 문화와 실리콘 밸리에 대해 파헤쳐 보기로 했다.


버닝맨이란?

버닝맨이라는 이벤트는 사막 한가운데서 열린다. 블랙락(Black Rock) 사막에 수많은 차량들이 집결하며, 차에서 잠을 자거나 인근 가장 싼 모텔인 모텔 6 등에서 잠을 청하고 이 행사를 위해 모여드는 것이다.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들면 사막은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변해버린다.  사람들로 인하여 ...

이곳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상당히 별난 사람들이 많다.  특히 학교를 다니면서 이상한 아이로 취급받거나, 직장 등에서도 사이코로 불렸던 사람들도 여기에서 만큼은 모두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로 느껴진다.  예술가들과 창의력이 넘치는 사람, 정열적인 음악가와 엔지니어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사막에 모여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사막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사람이 있고, 이 사람은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고 즉석에서 모여든 커뮤니티를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생판 처음만나지만 자신들의 열정을 나누는 것이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는 몸을 혹사시키고, 계속 물을 먹어야 할 정도로 힘이 들며 선블록을 듬뿍 바르고, 충분한 음식과 물, 그리고 자신을 열사의 태양으로 부터 대피시킬 피난처 등을 직접 확보해야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이곳으로 모여든다.  왜?

이들은 모여서 함께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버닝맨 참가자의 누구도 관객이 아니다.  모두 참가자들이며, 새로운 월드를 같이 만든다.  피난처도 같이 만들고, 필요한 물품들을 즉석에서 구하기도 하고, 차량을 장식해서 예술활동에 동참하기도 한다.  짚으로 된 모자를 쓰고, 처음으로 치마를 입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모두들 같이 버닝맨을 위해 즉석에서 만들어진 라디오 방송국의 방송을 듣는다.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눈을 감고 마음껏 몰아보기도 하고, 치즈 샌드위치를 그릴에 구워먹는 것과 같이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을 맛본다.  어떤 경우에는 이상형이 되는 이성을 만나기도 하며, 잘 아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가서 관계를 보다 돈독하게 만들기도 한다.  

토요일 밤이 되면 사막 한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맞아준 커다란 사람을 불태운다.  그러면, 이 불타는 사람을 중심으로 거대한 원을 그리고 거대한 캠프 파이어의 경험을 하게 된다.  개인에게도 엄청난 경험이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새롭게 하나가 되는 커다란 경험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이 버닝맨이라는 행사이다.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이 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며칠 동안 같이 만든 모든 것을 다시 부수고, 태우고, 소모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일부 자원봉사자들이 남아서 몇 주간 완전히 이전의 사막과 똑같은 상태로 복원을 하고 돌아가는 것으로 이 행사가 완전히 끝이 난다.

그렇지만, 버닝맨의 기억과 이 행사에서 맺어진 인연과 네트워크는 계속 발전한다.  새로운 세상을 같이 만들어본 사람들과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를 버닝맨 커뮤니티라고 한다.

버닝맨은 1986년 샌프란시스코의 해변 파티에서 기원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네바다의 가장 깊숙한 사막으로 장소를 옮겨가게 되었는데, 초기에는 최근이 버닝맨 행사보다 훨씬 거칠었다고 한다.  규칙도 없었고, 차를 타고 가면서 총을 쏘는 것과 같은 위험한 상항도 많았고, 무법천지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안전과 질서를 위한 많은 장치들과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안정화가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개방성의 정신은 그대로 남아있다.  여전히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탓에 불행한 죽음 등의 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이들은 이 행사를 멈추지 않는다.


실리콘 밸리와 버닝맨

버닝맨 주간이 되면,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 밸리 지역의 인구가 줄어든 것을 느낀다고 한다.  과거보다 차량도 적고, 주차장 공간도 비교적 여유가 있다.  버닝맨 이벤트를 즐기러 많은 사람들이 떠나버린 것이다.  

버닝맨이 열리는 블랙락 사막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몇 시간 정도 달리면 나오는 네바다의 리노(Reno)라는 도시에서 약 2시간 정도 더 가면 있다.  이 사막의 버닝맨이 있는 주변 지역은 1주일 동안은 네바다 주에서 가장 커다란 도시가 된다.  그리고나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를 블랙락 시티라고 하는데, 1주일 동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대단한 빌딩과 설치가 이루어진다.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창의성과 머리 속에 들어있던 야망을 불태우는 것이다.  이런 활동에 상업적인 회사의 입김은 얼음과 커피를 사는 것 이외에는 전혀 들어올 수 없다.

일주일 동안 몇 개의 신문사와 수십 개의 라디오 방송국이 생기며, 테마 캠프가 수백 개가 즉석에서 만들어지는데, 원하는 곳에 참여를 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이곳에는 실리콘 밸리의 무수한 회사들의 직원들이 참가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작업을 같이하고 있으며, 이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몸속 깊이 체험하는 것이다.

버닝맨의 문화는 개방(openness)과 창조성(creativity), 자기조직(self-organization), 공유(sharing), 그리고 혁신(innovation)이라는 실리콘 밸리의 가장 중요한 문화와 그 맥이 닿아 있으며, 서로에게 셀 수 없을 정도의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커져 갔다.  실리콘 밸리의 오픈소스 운동의 아이디어는 버닝맨의 개방형 협업에서 기원을 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버닝맨은 실리콘 밸리 신화의 가장 중요한 숨겨진 요체의 하나이다.  에릭 슈미트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낙점을 받게 된 가장 커다란 연결고리 역시 버닝맨 이었다는 것 역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거대한 플라야(playa, 광장)는 방대한 인터넷과도 같이 느껴지는데, 다른 의미로는 엄청나게 커다란 캔버스이자 사람들의 창의력을 발산시키는 플랫폼이다.  

실리콘 밸리의 성공은 버닝맨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 개인적인 느낌이다.  우리에게도 이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새로운 창의성을 주입하고 모두가 같이 공유하고 개방하며, 나누는 어떤 문화적인 이벤트가 필요하지 않을까?  세상은 언제나 공부하고 비즈니스만을 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며, 살아가는 의미도 그런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새로운 문화의 활력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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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wlett and Packard (from Wikipedia)


IT 삼국지, 1984년 이후의 상황은 애플보다는 마이크로소프트와 IBM-PC 호환기종의 독주로 들어가게 되며, 구글은 아직 등장하지 않는 시점이기에 이들 간의 치열한 경쟁보다는 주변기기를 중심으로 한 중견 회사들의 약진이 더욱 눈에 띕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IT 삼국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는 못했지만, 역사로는 3개 회사보다 더 오래되었고, 현재도 세계 최대의 PC 메이커 중의 하나로 군림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오늘날의 IT 기술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에 일조를 한 HP(Hewlett-Packard)를 주인공으로 소개할까 합니다.


실리콘 밸리 벤처의 원조

HP의 공동 창업자인 빌 휴렛(Bill Hewlett)과 데이브 패커드(Dave Packard) 는 1935년 스탠포드 대학의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자신들의 은사였던 프레데릭 터만(Frederick Terman)과 함께 1939년 데이브 패커드의 집 차고에서 회사를 시작합니다.  이 때 초기 자본금이라고는 딸랑 $538 에 불과하였습니다.  HP는 1947년 8월 18일 주식회사가 된 이후, 1957년 11월 상장을 하며 오늘날 IT를 대표하는 회사로 성장하게 됩니다.

HP는 초기에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전자관련 부품 및 장비들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각종 테스터기와 전자계산기가 특히 유명하였습니다.  초기에 가장 유명했던 제품은 오디오 오실레이터라는 장비였는데,이 장비는 월트 디즈니가 구매를 해서 영화 판타지아(Fantasia)를 상영할 영화관의 음향 시스템을 점검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렇지만, HP 가 실리콘 밸리의 상징으로서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1960년대 입니다.  실리콘 밸리의 실리콘은 반도체의 원료이며, 이와 가장 부합되는 회사는 1957년 설립된 페어차일드(Fairchild) 반도체 였습니다.  HP는 1960년 이렇게 개발되는 반도체 칩을 이용해서 새로운 장비를 만드는 일을 내부적으로 처음 시작합니다.  기존의 진공관을 이용하던 장비에도 사용했지만, 계산기도 개발하였습니다.  또한, HP는 1960년대에는 일본의 소니(Sony)와 요코가와전기(Yokogawa Electric)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재미있는 제품들을 몇 가지 만들어 내기도 하였습니다. 

HP 가 독자적으로 컴퓨터 산업에 뛰어든 것은 1966년 입니다.  HP는 DEC(Digital Equipment Corporation)의 미니컴퓨터를 가지고 몇 차례 실험을 하다가, 독자적인 컴퓨터를 만들기로 하고 만든 컴퓨터가 HP 2100 / HP 1000 미니컴퓨터 시리즈입니다.  대형 히트작은 아니지만, 이 시리즈는 20년간 제작이 됩니다.  그 이후 미니컴퓨터와 비즈니스 컴퓨터 서버를 중심으로 한 컴퓨터 시장에서 꾸준한 제품을 선보이던 HP는 작은 내장형 디스플레이 위주의 터미널 컴퓨터를 통해 가스펌프와 은행의 ATM 기기 등에 널리 쓰이는 기종을 판매하기도 하였는데, 이 컴퓨터는 비록 내장된 것이기 때문에 독자적인 이름을 날릴수는 없었지만, 놀랍게도 세계최대의 컴퓨터 벤더였던 IBM을 판매수량 면에서 추월하기도 하였습니다.  


세계 최초의 양산형 개인용 PC, HP 9100A

이와 같이 최고의 컴퓨터 기업 중의 하나로 성장한 HP는 Wired 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세계 최초로 양산형 개인용 PC를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HP 9100A 입니다.  1968년에 소개된 이 제품은 고객이 컴퓨터는 IBM라는 인식이 강했던 탓에, PC라는 이름 대신에 데스크탑 계산기(desktop calculator)로 분류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기술적으로는 CRT 디스플레이와 CPU와 보드, 마그네틱 카드 저장장치와 프린터 등을 갖춘 개인용 컴퓨터였고 가격은 $5,000 달러 정도로 다소 비쌌습니다.  

이렇게 앞서나가는 기술력을 가진 HP 였기에, 애플의 공동창업자였던 스티브 워즈니액이 이 회사를 사랑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티브 워즈니액은 HP와 일을 하면서 스티브 잡스와 창업을 한 뒤에 애플 I 을 만들고, HP에 들고 가서 이 컴퓨터를 팔아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지만 HP에서 자신들은 과학과 비즈니스, 산업시장에 있는 회사라 아직은 개인용 컴퓨터는 생산해서 판매할 생각이 없다고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HP는 특히 세계 최고의 과학용 계산기 회사로 유명했습니다.  수많은 모델 들이 있었는데,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고급기종들의 경우 많은 과학자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HP는 마치 과학자와 공학자들의 친구와도 같은 회사였고, 회사의 임직원들도 그런 평가를 즐거워 하였습니다.  


컴퓨터의 가장 중요한 친구들을 만드는 회사

1984년 HP는 데스크탑용 컴퓨터를 위한 잉크젯과 레이저 프린터를 최초로 상용화 합니다.  이 당시는 IBM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컴퓨터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던 시기로, 무수한 IBM-PC 호환기종들이 출시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스캐너 기술도 개발을 해서 최초로 상용화를 하였고, 팩스와 복사기 기능이 통합된 복합기라는 개념을 도입한 제품도 세계최초로 내놓게 됩니다.  현재도 HP는 이와 같은 컴퓨터의 친구에 해당하는 무수한 주변기기들에 있어 세계최고의 회사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과거 계산기와 공학용 테스터로 시작한 HP가 이제는 세계 최대의 PC 메이커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1990년대 들어 컴퓨터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HP는 1989년 아폴로 컴퓨터, 1995년 콘벡스 컴퓨터를 합병합니다.  1999년에는 HP의 컴퓨터 관련기기와 저장장치, 영상장치 등의 사업부분을 제외한 모든 사업부분을 떼어내서 Agilent 라는 회사로 분사를 시키는데, 이 분사는 실리콘 밸리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분사였습니다.  Agilent 역시 3만명의 종업원이 일하는 거대한 회사로 과학기기와 반도체, 광학네트웍 장비와 테스트 장비, 무선사업과 관련한 R&D 제조능력을 갖춘 회사입니다.

1999년 7월 HP는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를 CEO로 선임합니다.  칼리 피오리나는 2002년 당시 최대의 PC 제조업체 중 하나였던 컴팩(Compaq)을 인수하는 등의 공격적인 행보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닷컴 버블의 붕괴와 함께 HP의 실적이 악화되고 많은 종업원들을 해고하게 되면서 2005년 HP에서 퇴출되는 불운한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이러한 부침에도 불구하고, 현재 HP는 2009년 델(Dell)을 밀어내고 세계 최대의 PC 메이커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컴퓨터 관련 주변기기들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비록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중심에 서있지는 못했지만, HP는 오늘날 IT 세상을 만들어낸 가장 커다란 거인 중의 하나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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