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포스팅을 하고자 합니다. 일이 오늘 손에 잡히지가 않네요.

스티브 잡스가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왠만한 나라의 대통령이 갑자기 물러나도 이렇게 커다란 뉴스가 되지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그만큼 그가 우리 인류에게 미쳤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경쟁사에 계신 분들도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고, 그가 이룩했던 많은 자산들은 이미 전설이 되어 버렸습니다. 

1977년 애플 II를 발표하면서 세계 최초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개인용 컴퓨터, PC의 시대를 열면서 약관 23세의 나이로 세계를 호령했으며, IBM의 PC 시장 참전과 그들의 공격적인 개방형 전략에 밀리면서 1986년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던 1기와 픽사와 넥스트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면서, 디즈니와 합병을 통해 미디어와 콘텐츠 업계에서도 이 시대 최고의 전설적인 기업의 개인 최대주주의 자리에도 올랐던 2기. 그리고, 다시 애플에 복귀하여 망해가는 애플을 PC중심의 업체에서 아이팟과 아이폰 등을 위시로 개인의 생활을 지배하는 최고의 기기와 이를 지원하는 생태계를 디자인하고 구현하여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부활시킨 3기에 이르기까지 그가 이룩한 업적은 하나의 글로 옮기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그의 사망을 두고, 구글의 두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도 구글+에 직접 올린 글에서 스티브 잡스가 이룩한 업적과 그의 비전과 리더십이 자신들에게도 커다란 형향을 미쳤다고 글을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단순히 컴퓨터를 전문가나 몇몇 산업에서나 사용하는 특별한 기계가 아닌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대를 창조하였고, 전화기가 단순한 통신용도의 기기가 아니라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범용기기인 스마트폰으로 자리잡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컨텐츠 제작과 유통에 있어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면서 더 이상 IT기기와 산업이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으로 거듭날 수 있는 토대와 융합을 이끌어내는 방향성을 제시하였죠.

스티브 잡스는 뛰어난 경영자이자 꿈을 창조하는 비저너리, 현실에 기반한 강력한 실행주의자, 최고의 아이콘이면서 동시에 사상과 개념을 전파하는 에반젤리스트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거인의 명복을 빕니다.

Rest In Peace ... Steve Jobs. He was i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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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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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사와 관련한 포스팅은 잘 하지 않는데, 오늘도 도저히 글을 올릴 수 없는 사건이 있었네요. 최근 잘 아는 IT 기자분이 IT 기자가 아니라 사회부 기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납니다.

스티브 잡스가 공식적으로 애플의 CEO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왠만한 나라의 대통령이 갑자기 물러나도 이렇게 커다란 뉴스가 되지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그만큼 그가 우리 인류에게 미쳤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경쟁사에 계신 분들도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고, 그가 이룩했던 많은 자산들은 이미 전설이 되어 버렸습니다. 

1977년 애플 II를 발표하면서 세계 최초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개인용 컴퓨터, PC의 시대를 열면서 약관 26세의 나이로 세계를 호령했으며, IBM의 PC 시장 참전과 그들의 공격적인 개방형 전략에 밀리면서 1986년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던 1기와 픽사와 넥스트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면서, 디즈니와 합병을 통해 미디어와 콘텐츠 업계에서도 이 시대 최고의 전설적인 기업의 개인 최대주주의 자리에도 올랐던 2기. 그리고, 다시 애플에 복귀하여 망해가는 애플을 PC중심의 업체에서 아이팟과 아이폰 등을 위시로 개인의 생활을 지배하는 최고의 기기와 이를 지원하는 생태계를 디자인하고 구현하여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부활시킨 3기에 이르기까지 그가 이룩한 업적은 하나의 글로 옮기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그가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애플의 차세대를 뒤에서 조언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ZDNet에서 그가 CEO로 활약했던 시기를 셋으로 구분을 하면서 제작한 비디오입니다. 비록 자막은 없지만, 영상만으로도 그의 업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군가 자막작업을 해 주시면 좋겠네요.




 
그의 뒤를 이어 애플의 선장을 맡을 주인공은 그동안 애플의 COO를 맡았던 팀 쿡입니다. 팀 쿡은 알라바마 출신으로 1960년생이나 스티브 잡스보다 5살 아래입니다. 남부의 명문인 듀크대학 MBA 출신으로 12년간 IBM의 PC 부분에서 일을 했고, 그 후에는 세계적인 PC 제조업체인 컴팩에서 재료부분의 부사장을 맡고 있다가, 스티브 잡스에 의해 스카웃되어 애플에 입성하였습니다.

팀 쿡이 애플에 입사해서 맡은 일이 바로 SCM(Supply Chain Management) 이었습니다. 팀 쿡이 입사해서 애플의 공급체계를 확인하니 무려 100개가 넘는 업체에서 부품을 구매하고 있었습니다. 팀 쿡은 이를 정리해서 대부분의 부품을 아일랜드와 중국,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가져오고 조립은 중국 본토에서 하도록 일원화하면서 부품 공급업체의 수를 20여개로 줄였습니다. 그리고, 부품 공급업체와 애플의 조립공장이 지리적으로도 매우 가깝게 위치하도록 해서 부품이 들어오면 거의 바로 조립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조의 효율화를 이루어냅니다.  이런 개혁조치를 통해 애플이 가지고 있던 70일치가 넘던 재고물량이 팀 쿡이 입사한지 2년 만에 10일 이하로 줄어들었는데, 이 때 확립된 체계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2007년 시장조사 기관이 AMR 리서치는 노키아에 이어 애플의 SCM 관리 및 활용능력을 세계 2위로 평가했습니다. 당시 세계최고의 PC 제조업체로 애플의 라이벌로 여겨졌던 델은 리스트에도 오르지 못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효과적인 애플의 제조생산 능력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뛰어난 관리능력을 가진 팀 쿡을 언제나 자신을 대신할 예비 CEO로서 준비시키고 있었고, 그가 건강에 문제로 애플을 떠날 때마다 그에게 CEO 역할을 맡기면서 꾸준히 후계를 맡을 준비를 시켜왔습니다.

쿡와 잡스가 여러 모로 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 역시 잡스만큼이나 자기 일에 대한 고집이 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CNN Money의 팀 쿡에 대한 글에 따르면 애플의 형편없는 생산, 유통, 공급 상태를 해결하기 위한 회의에서 팀 쿡이 아시아에 특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상황이 정말 안좋아요. 누군가 중국에 가줘야 겠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회의가 30분 정도 진행되고 있었는데, 팀 쿡은 갑자기 주요한 임원 중의 한 명이었던 사빈 칸(Sabih Khan)을 돌아보면서, "아니 당신 왜 아직까지 여기 있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칸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으로 달려가고, 옷도 안바꿔 입은 채, 돌아올 날짜도 정해지지 않은 중국행 표를 예약하고 떠났다고 합니다. 이것이 감정을 잘 드러내지는 않지만, 만만치 않은 쿡의 진면목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조용하지만 무서운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인물입니다.

2005년 스티브 잡스는 팀 쿡을 COO에 임명합니다.  현재 그는 기존의 관리와 SCM 및 운영에 대한 부분 뿐만 아니라, 51개국에 걸친 통신사들과의 협상 및 아이폰의 판매와 운영까지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국내 회사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고, 우리나라도 자주 방문하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앞으로 한국 회사들과는 좀더 대화를 하는데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있지만, COO로서 SCM을 담당했을 때와 CEO로서 회사를 끌고나갈 때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애플의 변화에 대해서는 좀더 두고봐야 될 것 같습니다.

운동중독자이기도 한 그는 팀원들에게 새벽 4:30에 이메일을 돌리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할 때도 있으며, 국제전화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걸려오고, 일요일 저녁 회의까지 주재할 정도라고 합니다. 평생 독신으로 산 그는 아직도 팔로알토에 있는 임대 주택에 살고 있으며, 휴가를 얻어도 캘리포니아의 국립공원 같은 곳에 하이킹을 하러 떠나고, 부자티를 전혀 내지 않게 검소하며, 사무실에는 제일 먼저 출근해서 제일 늦게 나간다고 합니다. 해외출장 일정도 거의 슈퍼맨 수준으로 잡고,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헬스클럽을 들르거나 하이킹을 합니다. 주변에서 보면 무슨 재미로 살까? 싶을 정도이지요 ...  어찌보면 가장 나쁜 상사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팀 쿡의 시대가 되더라도 이미 애플에서는 스티브 잡스 이후를 상정하여 많은 준비가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애플은 앞으로 몇 년 정도는 충분히 현재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많은 라인업과 로드맵이 있으며, 스티브 잡스가 비전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이사회 의장으로서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위상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팀 쿡이 자신의 스티브 잡스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 만의 색깔을 애플이라는 회사에 입히기에는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애플의 미래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이 시대의 거인의 퇴장에 박수를 보내는데 좀더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뛰어난 경영자이자 꿈을 창조하는 비저너리, 현실에 기반한 강력한 실행주의자, 최고의 아이콘이면서 동시에 사상과 개념을 전파하는 에반젤리스트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거인의 퇴진에 경의를 표합니다.


참고자료

The genius behind Steve from CNN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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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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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배포사진: 오바마 좌측에 스티브 잡스의 뒷모습이 보인다.


췌장암을 앓았던 스티브 잡스가 이번이 세 번째 병가 중이다. 얼마 전 내셔녈 인콰이어러라는 주간지에서 6주 밖에 못산다는 이야기와 함께 사진을 공개한 것이 의문을 증폭시켰는데, 사실 해당 매체가 원래 선정적이고 과장이 많은 편이라 이를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그래서인지, 지난 19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에릭 슈미트, 마크 저커버그 등의 유명 IT CEO들과 저녁을 함께하는 사진이 공개되기도 하였는데, 사진은 뒷모습만 나왔지만 머리카락 등의 상태로 보았을 때 건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스티브 잡스의 건강은 항상 애플의 주가와 관련이 많았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잡스가 병가를 떠난다는 사실이 공개된 후 첫 거래일인 지난 1월 18일, 주가가 348달러에서 326달러로 하락했지만, 그 이후 잡스의 모습이 실리콘 밸리에서 보인다는 말들과 함께 금방 주가를 회복했다. 그 다음이 이번 내셔널 인콰이어러의 보도인데, 역시 하루 동안 14.83달러, 1.33% 떨어지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애플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애플에는 사실 뛰어난 인물들이 많다. 세기의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조너던 아이브도 있고, 현재 스티브 잡스를 대신하여 CEO 역할을 대신하는 팀 쿡 역시도 애플의 복잡한 라인업을 정리해서 정말 효율적인 제조업체로 만드는데 일등공신이 된 살림꾼으로서의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다. 또한, 유명한 유통체인인 타겟의 매장 디자인을 맡았다가, 스티브 잡스가 스카웃하여 전 세계의 제조사의 소매매장으로서 신화적인 성공을 이어가고 있는 애플 스토어를 만들어낸 론 존슨 등도 대단한 인물이다. 그렇지만, 스티브 잡스처럼 비전을 불어넣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사용자 경험과 콘텐츠 등에 이르는 모든 것들을 아울러서 전체를 파악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아이콘과 같은 인물들은 아니다. 모두들 하나의 장점은 있지만, 애플을 대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애플의 대부분의 제품들이 스티브 잡스의 영혼이 담겨있다고 할 정도로 지금까지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사실 스티브 잡스처럼 IT 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도 없다. 1976년 약관 22세의 나이로 애플 II 라는 개인용 컴퓨터를 발표하면서, 당대 최고의 기업이었던 IBM 의 회장이 ‘전 세계에 컴퓨터는 5대만 있으면 된다’라는 말을 뒤집고 세계를 PC 열풍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으로 화려하게 세상에 알려졌지만, 절치부심한 IBM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협공에 따른 후속 제품들의 판매부진으로 자신이 직접 영입한 펩시콜라 출신의 존 스컬리에 의해 애플에서 1986년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그러나, 이 때 가지고 있던 현금을 가지고 당대 최고의 3D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이기도 하고, 디즈니를 인수까지 하게 되는 픽사라는 회사를 조지 루카스에게서 사서 키우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오늘날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에 들어가는 운영체제의 기틀을 세우가 되는 넥스트라는 회사도 설립하였다. 이후 1997년 다시 침몰하는 애플이라는 난파선에 합류하면서,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로 이어지는 새로운 스마드 모바일 디바이스의 혁신적인 변화와 아이튠즈와 앱스토어라는 콘텐츠를 가진 곳들과 개발자들의 생태계를 엮어내면서 PC에 이은 또 한번의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를 만들어 냈다.

엔지니어라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열정을 전파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예술적인 감각과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능력 등을 갖추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해 나가는 그의 창조적인 능력은 오늘날 꼭 필요한 미래형 인재의 롤모델로 부족함이 없다.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지만 `창조적 카리스마 리더십'이라는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창조적 사고, 팀원들을 이끄는 열정, 능력 있는 인재의 발굴, 고난에도 흔들림 없는 집중력을 중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리더십이 아이폰과 아이패드와 같은 게임을 바꾸는 디바이스를 탄생시킨 일등공신이라는 분석에 필자도 동의한다. 그와 함께, 그 자신이 크게 변신한 사람이라는 것도 중요하다. 앞서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애플에서 쫓겨나던 시절의 스티브 잡스만 하더라도 협업이라는 것을 모르는 매우 독선적인 사람으로 평가되었는데, 애플로 복귀할 때에는 정말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창조적인 리더십 이외에도 협력과 대화와 설득의 리더십, 그리고 소비자들이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도록 언제나 일관된 주장을 한 것도 높이 평가해야 될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회사에는 항상 큰 위험요인이 바로 그 사람 자신이다. 얼마전 뉴스위크에서는 커버스토리로 이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기도 하였는데, 일부 사람들의 열정과 재능 덕분에 기업이 금방 성장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재능과 열정 때문에 이들이 떠나고 없을 때에는 지속적인 발전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특히 이번 애플의 경우도 그런 대표적인 경우가 되는데, 아까도 언급한 바와 같이 애플에 인재는 상당히 많이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서로 어떻게 협력하는지는 물론, 단지 주요인물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스티브 잡스 이외에 부각된 사람들이 없다. 다시 말해 후계구도에 대한 준비가 너무 지나치게 안되어 있었다고 하겠다. 창의적인 천재들은 기업을 성장시키는데 중요하지만, 이들이 떠난 뒤에도 번창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천재 창업자들이 떠난 뒤에 회사가 무너진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팬암이라고 불렸던 팬아메리칸 항공이나 켄 올슨이라는 위대한 창업자가 떠난 뒤 급작스럽게 무너진 디지털 이큅먼트 등이 대표적이다.

23일 캘리포니아 현지시간으로 오전 10시에는 애플 본사에서 주주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스티브 잡스가 주주총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멋진 연설을 보여주고는 했는데, 이번에 나타날 수 있을지도 궁금하고, 주주들 역시도 이번 만큼은 “애플의 경영 승계 계획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등 후계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한국판 스티브 잡스' 무엇이 문제인가?

작년도에 스타브 잡스는 우리의 교육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보여주었다. 소위 "스티브 잡스 육성사업"이 그것인데, 과거처럼 천편일률적인 형태의 전문가를 양성하기 보다는 기술기업의 전략을 책임질 수 있는 실무능력과 전문성 등에 필요한 교육과정을 기술경영 전문대학원 등의 고등교육을 통해 인재양성을 한다는 취지로 국내 유수의 대학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 자체로도 나름의 의의는 있지만, 개인적으로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은 육성한다고 길러진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 보다는 창의적인 인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기업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치고 올라올 수 있으며,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왕따를 당하거나 불이익만 당하지 않도록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즉, 육성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과 분위기, 철학의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과거와는 다른 융합적이고, 기술경영에 필요한 고등교육 과정이 이런 변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모두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의 대성공은 우리나라 기업과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은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나 제조업을 중심으로 기본적으로 근면한 국민성과 높은 교육수준을 바탕으로 대기업이 앞장서고 중소기업들이 뒤를 받치는 형태의 경제성장을 굉장히 단기간에 이루어 냈다. 그러다보니, 지나치게 사고방식이나 철학, 경영과 사회분위기가 모두 생산수단의 소유와 자본집중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는데, 이런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고 앞으로 미래를 읽어내는 창조적인 인재와 이런 인재들이 커갈 수 있는 환경을 갖추지 못한다면 결국 미래를 주도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안겨준 것은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미래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본다. 

다소 엉뚱하고, 독특한 사람들을 보듬어 안고, 그들의 성공을 도와주며, 여러 기업체와 사람들의 협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문화를 하루 빨리 받아들여서, 기존의 우리나라의 발전을 이끌어낸 장점과 융화를 시키는 노력을 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머지 않아 세계적인 혁신기업이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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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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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IT의 역사, 지난 포스팅에서 안드로이드의 공식적인 발표와 함께 구글과 애플의 밀월관계가 깨지기 시작하였다는 언급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구글과 애플이 밀월관계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부터 깨지기까지의 과정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2006년 스티브 잡스의 집에서 로맨스가 시작되다.

구글과 애플의 로맨스는 스티브 잡스가 에릭 슈미트를 2006년 자신의 집에 초대하면서 시작됩니다.  두 명의 거물 CEO 는 스티브 잡스의 집 거실 테이블에서 바닐라 컵케이크와 차를 같이 하면서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2007년 출시할 예정인 아이폰의 성공을 위해 구글의 강력한 서비스들이 필요하였고, 구글은 차후 일전을 치르게 될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클라우드 서비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협력에 합의한 두 회사는 아이폰의 성공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을 경주하기 시작합니다.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될 때에 맞추어 아이폰 전용으로 만든 구글지도(Google Maps), 검색, 메일 등의 앱들을 제공하는 것으로 협력이 시작됩니다.  구글은 여러 인력을 투입하여 구글 최고의 서비스들을 아이폰에 이식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고, 애플은 아이폰의 가장 중요한 앱으로 구글의 서비스들을 낙점하는 배려를 하면서 협력은 순항을 합니다.  유튜브도 아이폰에 올라가도록 애플이 신경을 써주자, 구글은 유튜브에 애플의 퀵타임이 쉽게 올라올 수 있도록 모든 비디오를 플래시가 아닌 H.264 표준으로 동작할 수 있도록 하였고 심지어 모든 웹 앱들이 애플 아이폰에 최적화가 되도록 추가적인 작업까지 수행하였습니다.

아이폰은 애플의 뛰어난 운영체제와 하드웨어, 그리고 앱 스토어도 빛났지만, 구글이 제공한 최고의 킬러 웹 서비스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최고의 성공을 만들어 내었고, 서로가 가지지 못한 영역을 메꾸어주는 파트너로서 외부에서 보기에도 최고의 찰떡궁합으로 보였습니다.


아이폰의 대성공, 구글의 고민

아이폰의 대성공은 PC 중심의 컴퓨팅 환경이 드디어 모바일 중심으로 옮겨가면서 소비자 중심의 컴퓨팅이라는 구글이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환경으로의 변화를 앞당기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구글의 고민은 이런 대성공과 함께 커져갑니다.  구글은 모바일 컴퓨팅의 시대가 되면 가장 적합한 광고를 찾아서 전달하는 서비스의 중심이 되고 싶었지만, 아이폰이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면 구글의 이러한 계획은 결국 애플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야만 한다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구글은 이미 2005년 안드로이드를 인수하면서 그와 관련한 작업을 진행할 인력과 자원을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아이폰의 성공을 보면서, 구글은 비밀리에 안드로이드 프로젝트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더 이상 아이폰이 세상을 장악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가는 안된다는 판단이 섰던 것입니다.  구글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지배하는 세상보다는 모바일 환경에서도 웹이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 자신들을 위해서 낫다고 판단했고, 애플은 가능하면 아이폰을 포함한 디바이스 수준에서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2007년 11월, 구글은 안드로이드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발표합니다.  그것도 오픈소스이고, 휴대폰 제조업체나 이동통신사들이 마음대로 변형을 할 수 있는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에게 있어서는 정말 과거 매킨토시와 윈도우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데 충분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때 구글에 대해 "배신감"을 느겼다고 표현하였고, 실제로 구글이 프로젝트를 발표하는데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로맨스는 끝나고 최고의 경쟁자로 돌아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쟁의 심화

이때부터, 스티브 잡스는 구글과 안드로이드를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구글의 모토인 "사악해지지 말자 (Don't Be Evil)" 은 정말로 "x같은 소리(It's bullshit)"라는 강도높은 말을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면서 구글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도 애플의 이사회에는 에릭 슈미트가 앉아 있었고, 에릭 슈미트는 점점 고립이 되었습니다.  에릭 슈미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애플과 구글은 둘다 세콰이어 캐피탈이라는 실리콘 밸리 최고의 벤쳐 캐피탈이 대주주로 있었고, 정말 형제처럼 이사회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구글의 안드로이드 프로젝트가 회사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기 시작하자 더 이상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으며, 애플이든 구글이든 선택을 해야하는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 슈미트는 2009년 8월까지 애플 이사회의 멤버 자리를 유지합니다.  에릭 슈미트에 따르면 그 때까지도 애플의 발전에 자신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였다고 하였고, 실제로 아이폰 최고의 앱과 서비스들은 구글이 제공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구글이 애플이 거의 인수할 뻔했던 최대의 모바일 광고회사인 애드몹(AdMob)을 중간에 가로채듯이 인수하면서 완전히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넙니다.  에릭 슈미트는 애플 이사회에서 사임을 하였고, 애플은 애드몹을 뺏긴 것이 분했지만 2위 업체인 쿼트로 와이어리스(Quattro Wireless)를 인수하면서 일전을 준비합니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눈독을 들이고 인수하려고 작업을 하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라라(Lala)를 전격적으로 인수하면서 애드몹을 빼앗긴 사건에 대한 복수(?)를 하게 됩니다.  또한, 구글의 성장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고, 실제로 초창기 에릭 슈미트가 구글에 안착을 하고 창업자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끌어가는데 최고의 공헌을 했던 '코치' 캠벨을 반대로 구글과의 관계를 정리합니다.  이유는 형제와 다름 없었던 스티브 잡스가 있는 애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구글과 애플의 싸움은 앞으로 계속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아이폰 최고의 서비스 중의 하나인 구글 지도 역시 애플의 입장에서는 눈의 가시로 여겨지고 있어, 애플이 지도회사를 인수하고 독자적인 지도 서비스를 내놓는 순간 퇴출의 길을 걸어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아이폰 4 부터는 검색을 구글에서 공동의 적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빙(Bing)으로 교체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들의 적대의식이 얼마나 심화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애플은 아이폰을 구글에게서 완전히 독립시키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마치 구글이 아이폰에게서 그랬던 것처럼 ...


(후속편에 계속 ...)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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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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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IT의 역사에 있어 또 하나의 가장 커다란 사건이 펼쳐집니다.  스티브 잡스의 복귀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함에 일방적으로 밀리던 애플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올려 놓았지만, 판도를 바꿀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되려 구글이라는 새롭게 떠오르는 신성이 인터넷 영토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를 바짝 위협하던 2000년 대의 판도에 뒤흔든 이 사건은 바로 애플의 '아이폰' 출시입니다.


스티브 잡스, 아이폰 제작을 지시하다.

아이팟의 성공과 함께, 스티브 잡스는 비밀리에 애플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아이폰의 개발을 지시합니다.  아이폰의 성공에는 새로운 UI 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던 스티브 잡스는 특히 터치스크린과 관련한 기술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통화가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디바이스를 창조하고자 하였습니다.  전화와 관련한 기술이 없었던 스티브 잡스가 선택한 방법은 미국 통신사들 중에서 부동의 1위인 버라이존을 따라잡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통신사인 AT&T 모빌리티 - 협상 당시에는 싱귤러 와이어리스 (Cingular Wireless) - 와의 비밀 협력 이었습니다.  대신 아이폰이 발매될 경우 상당기간의 독점권을 주기로 약속을 합니다.

아이폰은 2007년 1월 9일에 일반에게 공개되지만, 이 제품의 개발에는 무려 30개월 간의 비밀 프로젝트로서의 개발기간이 투입되었고, 개발비로 약 $1억 5천만 달러 정도가 소요된 것으로 추정되는 애플의 미래를 건 프로젝트 였으며, 이런 필사적인 노력은 오늘날 애플이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최고의 시가총액을 가진 기업으로 부상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만듭니다.  스티브 잡스가 당시의 싱귤러 와이러리스에게 요구한 것은 아이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반에 대한 자유(liberty)였습니다.  간단하고 단순한 요구인 것 같았지만, 이는 이동통신사의 재량권에 따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반이 휘둘리던 당시까지의 관행을 송두리째 바꾸는 요구였고, 싱귤러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아이폰을 탄생시키는 산파의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2007년 1월, 아이폰의 등장

이렇게 애플의 사운을 걸고 제작된 아이폰은 2007년 1월 9일 맥월드에서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강연을 통해 일반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미 개발이 완료된 상황이었지만, 아이팟과는 달리 휴대폰은 보다 엄격한 규제를 받는 품목이었기 때문에 미국 FCC(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연방통신위원회)의 허가를 필요로 하였고, 이를 위해 수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결국 2007년 6월 29일 역사적인 판매를 시작합니다.

아이폰이 판매되는 당일 미국 전역의 애플 스토어에는 텐트를 치고 아이폰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으며, 뒤를 이어 11월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의 국가에 발매가 되면서 전세계적인 히트상품으로 자리잡는데 성공합니다.  2008년 7월 11일에는 아이폰 3G가 22개 국가에 발매가 되며, 2009년에는 3GS, 그리고 2010년 아이폰 4 가 발매가 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애플은 제일 처음 발매된 아이폰을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610만대 정도를 판매하였으며, 2009년 말을 기준으로 할 때 전체적으로 3375만대라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기록합니다.  2008년 4분기 판매량이 당시까지 스마트 폰의 대명사로 불렸던 캐나다 RIM(Research In Motion) 사의 블랙베리를 넘어서면서 세계 최고의 스마트 폰의 자리를 차지하였고, 그 기세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을 극복하다

아이폰이 정식 발매되기 1년 전이 2006년 가을만 하더라도, 200명이 넘는 애플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만든 아이폰 프로토타입은 정말 버그 투성이의 재앙(disaster)라고 말할 정도로 형편없는 물건이었다고 합니다.  전화는 계속 끊어지기 일수였고, 배터리는 완전히 충전이 되지 않았는데도 더 이상 충전을 하지 않았으며, 데이터와 애플리케이션도 계속 날아가거나 작동을 멈추는 등 시행착오를 거듭했습니다.  고쳐야 할 버그 리스트는 정말 산더비 같았습니다.  데모를 지켜보던 스티브 잡스에게서 보통의 경우라면 불호령이 떨어졌겠지만, 이 때에는 되려 평온한 태도를 유지했다고 하는데, 애플의 엔지니어들은 이런 그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 더욱 무서웠다고 합니다.  2007년 1월 맥월드에서 아이폰은 무조건 발표가 되어야 했으며, 이 프로젝트가 실패한다면 애플의 앞날은 장담하기 어려운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애플이라는 회사의 야심작 만은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휴대폰 비즈니스가 통신사업자 주도에서 제조사와 개발자, 그리고 소비자들이 우위에 설 수 있도록 만드는 권력이동이라는 커다란 화두를 담고 있었기에, 아이폰이 실패한다면 일종의 권력구도를 다시 쓰는 시도가 물거품으로 돌아가면서 휴대폰 관련 통신산업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한동안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싱귤러 와이어리스의 결정은 어쩌면 두고두고 통신사업자들의 입지를 후퇴시킨 결정으로, 그들에게는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 때의 잘못된 결정으로 생각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소비자 중심의 세계로 진화하고 있는 상화에서 언젠가 어떤 사업자든 한번 쯤은 내렸을 결정이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엄청난 성공으로 연결시키면서 패러다임 시프트를 만들어낸 것은 애플의 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애플의 엔지니어들은 정말 모두들 사력을 다해 버그를 잡고 안정화를 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좌절과 절망을 경험하는 등의 고난을 겪기도 하였지만 이들은 결국 2006년 12월 중순, 싱귤러가 합병된 AT&T 의 CEO 에게 스티브 잡스가 데모를 할 때에는 자신이 보았던 그 어떤 휴대폰보다 뛰어난 물건으로 변신시키는데 성공합니다.  


아이폰의 진정한 의미

애플 아이폰은 단순히 애플이라는 회사를 세계적인 신데렐라로 만들어 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휴대폰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사업을 시작한이래,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휴대폰을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사용자들에게 던지는 일종의 미끼 정도로 취급을 하였습니다.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하며, 얼마나 비용이 들고, 자신들의 서비스나 네트워크와 어떻게 묶이는 것이 좋을지 모두 그들이 결정하였습니다.  대체로 휴대폰은 싸고, 보조금 등을 통해 대량으로 풀리면서 영업과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들을 끌어오는 가장 훌륭한 보조수단 정도로 여겨졌고, 이를 통해 사용자들로 하여금 일단 이동통신 사업자들에게 수년 간의 사용계약을 맺게 만든 뒤에는 쉽게 사용자들이 떠날 수 없는 전략을 펼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조사들 입장에서 적극적인 혁신을 시도할 동기부여가 되지 않게 되며, 결국 이동통신사들 비유를 맞추면서 대량의 물량을 선택받는 유착관계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폰은 이런 관행을 처음으로 깨기 시작한 제품입니다.  제조사가 자사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심지어는 서비스까지 제공하면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직접 끌어내고, 소비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조합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늘려줌으로써 혁신이 일어나야 하는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비록 현재는 아이폰이 앞서 있지만, 많은 제조사들과 소프트웨어 제조업체, 그리고 개발자들과 구글과 같이 인터넷 서비스를 하는 기업까지도 어떤 협업이나 혁신을 통해 소비자들의 가치를 극대화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스마트 폰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경쟁은 더 나은 총체적인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며, 이것이 아이폰이 이끌어낸 가장 커다란 사회적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후속편에 계속 ...)
 

참고문헌



P.S. 이 시리즈는 이미 완결되어 출간이 되었으며, 전체 내용을 일괄적으로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광고된 도서를 구입하시면 보다 충실하고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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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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