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웹은 여러 가지 변화를 끌어내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숨어있던 열정적인 사람들을 전면으로 끌어내어 이들이 서로 연대하고, 실제 세계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더욱 커다란 의미가 있다.  비록 형태는 온라인에서 경험을 공유하고, 관계를 확장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기저에는 저마다 가지고 있는 실제 세계에서의 철학과 오프라인에서의 역량 및 생각이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런 측면에서 2011년에 있었던 중동의 쟈스민 혁명과 월스트릿을 중심으로 전 세계로 들불처럼 퍼졌던 “월스트릿을 점령하라 (Occupy Wall Street)” 운동에 대해서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쇠고기 파동 때에 있었던 촛불시위 등에 대해서도 단순히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비이성적인 행위로 매도하기 보다는, 어째서 이런 운동이 있게 되고,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는지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지고 앞으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다면 제 2, 제 3의 촛불시위는 언제든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중동의 쟈스민 혁명에서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는 이들 민중들의 억압된 마음을 연결하는 일종의 신경계처럼 작동을 하였다.   작은 그룹이 조직되고, 이들이 행동에 나서고, 또한 이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연결고리에 의해서 운동의 크기는 삽시간에 나라 전체로 확산이 되었고, 결국 이런 실제적인 움직임이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의 혁명으로 끝을 맺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이들 소셜 웹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심장부인 월스트릿에서 이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부패하고, 탐욕스런 금융산업과 치솟는 실업율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99%가 1%의 상류층의 거리를 점령한다는 의미의 시위가 뉴욕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들의 운동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나지 않아서, 전 세계 82개 국가의 95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이 되었다.  이 운동은 캐나다의 행동주의 그룹인 애드버스터스(Adbusters)에 의해 시작되어 “99% 대 1%”라는 어찌보면 단순명료한 슬로건을 전 세계에 퍼뜨리는데 성공하였고, 쟈스민 혁명과 같은 명확한 끝맺음을 하지는 못했지만, 각국 정부와 사회, 그리고 기업들로 하여금 보다 많은 일자리와 수익의 분배에 대한 문제점, 금융산업의 변화, 그리고 검은 돈이 정치를 좌우하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시스템과 철학에 대한 대책을 논의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이런 움직임은 민주주의가 구호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풀뿌리에서 선출한 정치인들이나 자신들이 먹여살리고 있는 기업들로 하여금 민초들의 입장을 생각하고, 이들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변화를 위해 싸울 수 있다는 힘을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운동을 “비이성적”으로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트위터의 140자라는 짧은 문장에 어떤 실체적 진실을 담기에는 너무나 미약하며, 그에 비해 퍼져나가는 속도는 광속과도 같으니 이것이 커다란 문제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물론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140자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성과 그들의 분노를 퍼뜨리는 것에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글자의 수이다.  최소한 많은 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경고메시지를 던지기에는 충분한 효과를 보였다.   소셜 웹은 쟈스민 혁명이나 월스트릿을 점령하라 시위에서 사람들이 경험과 감성을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동작하였다.   단순히 소셜 웹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어떤 비전이 중요하고, 무엇인가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어떤 이야기를 해야하는 지에 대한 메시지와 감성이 이들의 변화를 이끌었다.  운동에 불을 붙인 것은 억압과 불평등, 불공정, 그리고 비전과 희망에 대한 의문이었다.   기술은 이런 근본적인 의문에 대하여 소셜, 모바일, 실시간의 이름으로 약간의 도구적인 도움을 준 것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소셜 웹에 대한 보다 진지한 성찰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 도구는 사람들이 뭉치게 할 수 있고, 동시다발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을 도와준다.   그러나, 혁명의 중심에는 변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불타오르는 감성이 있었다.   사람들이 경험을 공유하고, 공통적인 열망을 가지지 않았다면 이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가 공동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서로를 지지하며,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선순환의 고리를 통한 변화를 경험한다.  이런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비젼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비전을 공유하고, 한사람 한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 자신들을 따르게 하는 물결이 나타날 때 이런 변화의 동력이 발생한다.   이런 변화가 지속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만들어져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하는 일하는 환경과 인프라의 변화, 서로가 상부상조하며 도울 수 있는 그런 프로세스와 목표가 있어야 한다.  

사회와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고객들이나 이해당사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열망에서 시작하여, 이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감성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준다.  공유된 경험은 집단적인 새로운 의사결정을 유도하고, 이런 사회적인 과정을 통해 비즈니스나 사회현상도 변화해 나간다.  이것은 현재 일반적인 브랜드와 대중매체 등을 중심으로 하는 마케팅, PR, 영업전략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의미있고 공유가능한 경험을 미리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이들의 질문에 답을 하며, 같이 문제를 풀어내고, 적극적인 지지자들의 지원을 받는 것이 좋다.  또한, 네트워크의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배우고, 이렇게 배운 내용을 프로세스를 변경하거나 제품, 서비스 등에 접목한다면 소셜의 철학이 사회변화나 비즈니스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철학을 숙지하고 실천에 옮긴 대표적인 인물이 스타벅스의 CEO인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이다. 그는 2011년 11월 CNN 머니와의 인터뷰에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그가 특정회사의 CEO로서의 역할 이외에 변화를 위한 또다른 역할을 한다고 말한바 있다. 그의 인터뷰의 일부를 옮겨 보았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신뢰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워싱턴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제가 생각하기에 기업들과 비즈니스의 리더들이 우리들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는 워싱턴이 무엇인가를 하도록 기다릴 수 없습니다

하워드 슐츠는 2011년 10월 미국 전역에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작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비즈니스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미국 전역에 있는 6,800개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수천 만명에 이르는 고객들이 “미국의 일자리만들기(Create Jobs for USA)” 프로그램에 기부할 수 있으며, 스타벅스가 재단을 통해 먼저 500만 달러를 기부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금을 이용해서 작은 일자리들이 만들어진다.   5달러를 기부하면 빨간색, 하얀색, 파란색이 섞인 띠에 ”나눌수없음(Indivisible)” 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손목밴드를 받을 수 있다.  이 손목밴드는 우리 사회가 서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공동체의식을 고취하게 만든다.   이런 공유된 열정은 사회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하워드 슐츠와 같은 리더가 움직인다면 이런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 대기업에는 그와 같은 철학을 표방하는 리더들이 어째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안타깝다.  우리 모두는 더이상 방관자가 아니다.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행동가이다. 이것이 소셜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철학이다.


참고자료:

Create Jobs for USA 홈페이지
Get Your Starbucks, Create A Job” by Catherine Clif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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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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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led Garden Blueprints
Walled Garden Blueprints by Anne Helmond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사회적 경험은 놀이다. 개인뿐 아니라 주변 친구들과 역할 분담하면서 롤 플레이하고 소꿉놀이 한 기억, 집안에서 가족과 함께 한 놀이였다. 사회에서 부대끼며 살다가 보니 자연스럽게 경계도 지어졌다. 만나는 사람도 뻔해지고 소위 말하는 가족과 나, 나와 직장 좀 더 넓게는 국가를 포함한 범위 안에서 경험하는 사회적 경험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모든 것이 내가 속한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 기억에 남는 사회적 경험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학연 지연을 찾고 업무를 통해 통상적으로 넓어지는 인맥 정도 ...

여기에 윤활유처럼 새로운 소통의 파도가 일었다. 소위 커뮤니케이션 파도라고 부르는 것. 이를 이끈 것이 페이스북, 트위터,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이고, 이들은 과거보다 쉽게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사람들과의 네트워크가 일상적인 인터넷과 다른 점은 인터넷은 정보의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지식의 접근성, 활용성을 높일지는 몰라도 그것으로 인해 인생이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에 비해 사회적인 네트워크의 경우, 보통 네트워크에서 사람들의 동기가 모이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액션인 사회적 활동으로 이어진다. 나의 네트워크에서 만난 첫 사회적 경험은 PC 통신 동호회였다. 1990년을 전후 인기를 끌던 PC통신 서비스인 케텔과 PC서브(이후의 천리안)에는 다양한 동호회들이 개설되고 이들이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나는 PC서브의 ‘셈틀소리’라는 미디, 컴퓨터 음악 동호회에 가입해서 미디 음악을 작곡하고 기계를 구매하였고, 동호회에서 만난 여러분들과 스튜디오에서 녹음도 하는 등 재미있는 사회활동을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왠만한 경험이 쌓이고 인연을 만나기 전에는 혼자서는 이런 액션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만약 PC통신 동호회라는 것이 없었다면 말이다.

최근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그 범위를 더욱 확대했다. 누구나 개인적인 페르소나, 사회적 존재를 가상공간에 소유하고 사람들과 연결할 수 있다. 특히, 간단한 도구들과 연관된 서비스들이 많이 생기면서 무수한 사람이 소셜에서 다양한 행동패턴을 경험하고 있다.


디지털 인프라가 만든 환경

무엇보다 디지털 인프라를 갖추게 된 것이 고무적이다. 사회적 경험은 삶의 일부로 스며들어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행복한 경험을 할 가능성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에 다양한 변화 요소가 생겼다. 과거에는 생각만 있고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으나, 이젠 뜻이 맞는 사람 몇몇이 모여 다양한 액션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 차원에서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사회적으로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개인의 영향력이 커졌다. 개인이 미디어가 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실제 집단행동이라든지 모여서 뭔가 할 기회도 많아졌다. 자선활동, 캠페인이 좋은 사례다. 아직은 과도기지만, 시간이 지나 움직임이 커지면 분명 활발한 활동가와 비활동가들이 생기고, 초기에 상처받고 떠난 사람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페이스북만 해도 우리나라 사용자는 500만 명을 넘어 600만 명을 바라보고 있으며, 올해에는 1000만을 넘게 될 것이다.

개중에는 자연스럽게 문제점도 나타날 텐데, 시스템 측면에서도 이런 부작용을 제거하기 위한 업데이트가 있을 것이고, 사람들도 부작용에 대해 인지하고 그에 맞추어 대응하는 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인간 사회가 늘 그렇듯 커다란 변화에 따른 부작용은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 간의 규칙과 윤리에 대한 자연스러운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이런 새로운 생태계는 안정궤도에 오르게 될 것이다.


연결지성과 사회적 경험

관계를 통해 연결한 연결지성이나 소셜 네트워크는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고,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단, 스스로 힘을 가지려면 네트워크에는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과도한 집단성이다. 다양성을 바탕으로 전반적인 이슈를 포괄해야 하는데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다른 의견은 배척하는 성향이 많이 보인다. 이는 소셜네트워크 본연의 자정능력을 해치는 행위다. 비판적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며, 소셜네트워크의 문맥을 이해하고, 소셜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진정한 사회적 경험은 오픈 마인드에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마음을 열고 최대한 많은 사람의 생각을 듣고 그들과 함께 가치를 만들려는 노력,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균형과 유연성이 필요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제 사회적 경험은 기업, 마케팅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운동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월간 w.e.b. 2012년 1월호에 인터뷰 형식으로 나간 기사입니다. 
정리해주신 박수연 기자님께 감사드려요. 약간 잘못 받아적으신 부분 등이 있는데, 그런 부분 수정해서 다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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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Blue Chrome Rain Social Media Icons
154 Blue Chrome Rain Social Media Icons by webtreats 저작자 표시

지난 수년 간 우리들이 온라인에서 친구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소통하는 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사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인터넷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 보게 되는 낯선 사람들이고, 이들의 글을 서로 읽고 답변을 하면서 불특정 다수들을 대상으로 소통을 하였다. 우리들이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전히 오프라인에만 존재하였고, 인터넷은 정보와 지식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지만 친구라고 할만한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수년 간 열풍처럼 번져 간 소셜 네트워크에 의해 온라인에도 많은 새로운 친구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되었고, 이들과 여러가지 소식을 나누고는 한다. 이런 온라인 친구들과의 친밀감은 새로운 컨텐츠를 찾아내거나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것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일부는 이를 이용하여 마케팅이나 홍보활동에 활용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우리와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고, 공통적인 경험을 온라인을 통해 향유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면서,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같은 서비스들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급속도로 커지게 되었다. 이들 서비스의 영향으로 오프라인에서 가지고 있었던 친구들보다 훨씬 많은 친구 네트워크를 가지게 된 사람도 많아졌고, 가는 곳마다 이런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경험도 드물지 않다. 온라인 공간에서 공유하는 경험은 많은 친구들과 연결이 될 때 더욱 증폭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일부는 많은 사람들과의 연결이라는 점에 다소 집착하는 성향도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떨까?

온라인에서 연결되는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그들 각각에게 쏟는 시간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트위터의 경우만 하더라도 초기에 연결된 사람의 수가 적었던 얼리어답터들의 시기에는 서로가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하고, 누가 누구인지도 명확하게 기억하였다. 연결된 사람들의 수가 적었을 때에는 타임라인에 뜨는 글을 모두 읽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남긴 트윗에 반응을 하고 대화를 하는 것도 가능하였다. 그렇지만, 네트워크의 연결이 커지면서, 사람들은 수백 명 이상읜 연결을 경험하게 되고, 결국에는 모든 트윗을 읽게 되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해, 지나치게 친구가 많아진다면 그들에게 실제로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실제로 친구를 중심으로 하는 "소셜"이라는 요소보다는 개인의 관심을 중심으로 하는 서비스들이 더욱 주목을 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플립보드(Flipboard)라는 앱은 친구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신문처럼 엮어서 보여주기 시작하였고, 페이스북도 과거보다 똑똑해진 피드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우리들의 연결관계를 중심으로 분석한 뉴스를 보여주지만, 이를 달리 필요하면 개개인들의 연결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알고리즘에 의존하여 "나"에게 관심있는 글들을 보여주는 셈이다. 어찌 보면 친구라기보다는, 너무 많아지고 거대해진 네트워크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나 지식을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걸러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결국 과거의 낯선 사람들이 쏟아낸 정보를 찾아내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하던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팅에서도 다룬 바 있으니 이를 참고하기 바란다.

연관글:
2011/12/08 -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단상


여기에 소셜 네트워크의 패러독스가 존재한다. 네트워크의 크기가 커질수록, 실제로 우리의 "소셜"한 능력은 퇴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테크크런치에 재미있는 칼럼이 실린 것이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원문은 참고자료의 링크를 따라가면 읽어볼 수 있다.

네트워크나 정보 역시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른다. 네트워크를 통해 들어오는 비트나 사진, 링크의 수가 증가하면 공급이 과포화가 되는 것이므로 자연스럽게 이들 각각의 가치는 저하된다. 처음에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이 서비스를 사용할 때에는 각각이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끼게 되고, 이런 멋진 경험들이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기 쉽다. 특히나, 과거에는 없던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런 느낌은 더할 것이다. 트위터나 포스퀘어 등의 서비스가 초기에 열광적인 매니아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결국 인간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지의 한계에 봉착한다. 친구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한계를 경험하게 되는데, 던바의 수 150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고, 서비스의 특성에 따라 변화는 있겠지만, 일정한 수를 넘은 친구를 가지게 되면 모든 댓글들은 불특정 다수가 남긴 댓글이나 별로 다르지 않은 느낌을 선사한다.

이런 단계에 이르게 되면, 소셜의 성격은 매우 퇴보한 것이 아닐까? 결국 네트워크를 타고 흐르는 것은 정보가 된다. 그래서인지, 트위터는 최근 자신의 정체를 "정보의 네트워크(Information Network)"로 규정하기도 하였다. 이런 네트워크가 정말 커뮤니티처럼 느껴지는 시기는 일정한 크기를 넘지 않았을 때가 아니었을까?

인간의 한계를 감안한다면, 결국 커뮤니티라는 것은 일정한 수 이상으로 증가해서는 개개인이 모두 존재감을 느끼고 동질감을 가지기 어렵다. 그러므로, 커다란 네트워크가 존재하더라도 커뮤니티라는 느낌을 가지기 위해서는 일정한 멤버십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경계가 필요하다.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실세계에서는 가족과 친척들, 주변의 이웃들과 직장의 동료들과 같은 어찌보면 명확한 경계를 가진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이런 경계가 디지털 세계에서는 잘 존재하지 않으며, 설사 이런 경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뭔가 어색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커뮤니티에서는 청중이 존재하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에게 이야기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다. 이것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안다는 것은 그들과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칙이다.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그냥 이야기하는 것은 "소통"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소셜을 이론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공유된 경험"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나누고 싶은 경험이 있고, 이것을 공유하고자 하더라도, 실제로 같이 공유하는 경험을 서로가 인지하는 가운데 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공유된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면서, 과거보다 훨씬 강렬한 감성적인 공감의 파도타기나 비슷한 동질의식 등을 느끼기 쉬워진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자체로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회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세계를 연결하는 대형 소셜 네트워크의 부작용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소셜 네트워크가 실제로는 소셜하지 않은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단순히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독백을 하거나, 미디어로 활용하는 그런 네트워크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커뮤니티를 자연스럽게 만들고 소수의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내놓고, 대화를 하며, 경험을 공유하고, 보다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의미있는 관계를 엮어나갈 수 있는 그런 조금은 더욱 "소셜"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도 등장한다면 훨씬 더 좋지 않을까? 어쩌면, 이런 네트워크는 우리의 실제 삶과 관계된 커뮤니티에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모바일 시대가 오더라도 이것을 활용하는 것은 인간이고, 인간은 인간의 인지의 한계와 원하는 각자의 가치라는 것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The Social Network Parad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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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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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기반의 운영체제, 클라우드 컴퓨팅의 기본개념은 이미 10년전 NC(Network Computer)라는 개념으로 소개되었던 적이 있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접근 방법이다.  특히 구글의 전 CEO인 에릭 슈미트가 과거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CTO 시절에 이를 처음으로 주창했던 사람이라는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에는 많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10년 전과 지금이 무엇이 달라졌을까? 바로 네트워크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스마트 폰이 들어오면서 유무선 네트워크, 심지어는 3G/4G로 일컬어지는 음성/데이터 통신 네트워크 통합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국내 스마트 폰들도 무선 인터넷 뿐만 아니라, 와이브로, 3G 네트워크를 마음대로 선택해서 연결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고 있으며, 그 가격도 무척 저렴해지고 있다. 스마트 폰은 기본적으로 무조건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 연결이 안되면 쓸 수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태블릿이나 넷북 역시 마찬가지이다. 주변에 Wi-Fi가 있으면 이를 자동으로 잡아 쓰고, 와이브로 지역에서는 와이브로를, 아니면 3G/4G 네트워크를 잡아쓰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터넷 불통지역이 없어지는 것이고, 통합요금제가 활성화되면서 이런 환경이 자연스럽게 구축될 것이다.


구글이 바라보는 웹 운영체제의 미래

구글은 이러한 환경변화를 염두에 두고, 5~10년 뒤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패러다임 변화를 이끄는 운영체제와 새로운 디지털 컨버전스 기기들을 이끌어가는 선봉의 역할을 하기 위해 운영체제 및 클라우드를 만들고 있다. 초기 1~2년 간 아마도 실망스러운 모습도 많이 보이게 될 것이고, 클라우드에 있는 웹 앱들의 완성도도 떨어져 보일 것이다. 하지만 HTML5를 구현한 브라우저 기술들이 점점 발전하고, 개방형 웹 앱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하게 될 3~4년 후의 환경을 지금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래는 도도한 흐름을 읽고 이를 준비하는 자에게 돌아간다. 구글이 유튜브를 거액에 인수하고, 수년 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감내하고 추가적인 투자를 할 때, 주변에서는 구글이 정말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고 하면서 수근거렸다. 그렇지만, 결국 콘텐츠의 중심이 동영상으로 옮겨가고 있다. 2011년 유튜브는 드디어 흑자를 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2009년 에릭 슈미트는 향후 5년 간을 전망하면서 유튜브가 구글의 가장 중요한 수익원이 될 것이라고 밝힌 적도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혁신의 키워드는 "쉽고 싼 혁신 (Cheap and Easy Innovation)" 이다.  구글이 노리는 혁신도 역시 "쉽고 싼 혁신"이 중심이 될 것이다. 앞으로 다양한 태블릿들이 $150 달러가 안 되는 가격으로 출시될 것이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이 정도 가격에 인터넷이 가능한 7인치 이상의 크기를 가진 기기를 쓰게 되리라 상상해 보았는가?  이런 것이 현실화 되면서 이를 응용한 다양한 디지털 컨버전스 기기들이 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구글이 일으키는 혁신의 방향은 애플이 취하고 있는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10년 아니, 5년 뒤 정도만 바라보자.  구글의 전략에는 도도한 흐름이 있다.  이러한 세상의 흐름에 맞추어 클라우드 컴퓨팅과 관련한 모든 것들을 준비해온 회사이다. 이들의 도전은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고, 그 결과는 5년 뒤가 되면 나타날 것이다. 이제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도 전체의 흐름을 읽고 하나의 전쟁에서 맞서 있다.  여기에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 인프라를 이끄는 회사들도 있다. 이들 중에서 단기간의 성공에 눈이 어두워서 이런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혁신을 하지 않으면, 과거 무너져간 거대한 공룡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될 것이다. 

구글은 어쩌면 이렇게 원대한 꿈을 실현에 옮기면서 모든 것을 공짜로 제공하는 모델을 이용했기 때문에, 언젠가 현재의 광고수익 모델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가 급격하게 위험에 빠질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구축한 클라우드 클러스터와 서비스들, 그리고 혁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구글이라는 회사가 망할 수는 있어도, 이들의 혁신은 결국 IT 역사의 발전에 있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정보화 사회, 결국 주권은 바뀌지 않았다.

20세기 중반이 되면서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방과 학술, 금융과 같은 산업에 주로 엄청난 비용의 대형 컴퓨터들이 보급되면서 컴퓨터를 이용해서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복잡한 일을 해내는 등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애플 II 를 위시로 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열리면서 사무자동화(Office Automation)라는 용어가 유행을 하게 되었고, 적용되는 산업의 영역이 중소기업까지 확대가 되면서, 컴퓨터를 이용한 새로운 정보화 사회라는 시대인식이 이후 IBM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끄는 1980~90년대까지 가장 주된 시각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런데, 이를 잘 뜯어보면,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결국 기존의 산업에 대한 생명주기(life-cycle) 전반에 걸쳐서 적용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산업 자체를 바꾸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생산성의 차이를 가져왔기 때문에, 정보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생산성 혁신을 이룬 곳은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지만 과거의 방식으로 혁신을 하지 못하고 생산성에서 밀리는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고 사라져 갔다.  과거보다 영속하는 기업의 수는 줄고, 글로벌 산업화까지 진행이 되면서 훨씬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자본의 측면에서는 과거에는 도저히 컨트롤할 수 없었던 복잡한 계산이 가능해 지면서, 자본은 거대화를 하게 되고, 일부 다국적 금융세력들의 경우에는 그 덩치를 계속 키워갈 수 있었다.

정보화 사회와 정보화 기술은 기업이 거대해지면, 내부의 모순이 강화되어 무너지는 경영 상의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기업이 보다 쉽게 거대화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였고, 지식경영까지 도입되면서 각 개인의 지식으로 남아있었던 암묵지를 기업의 자산으로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형식지로 전환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구성원인 종업원들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막강한 경영정보 시스템을 활용한 내부모순의 감소는 '규모의 경제'에 의한 외부효과의 상대적인 이득에 비해 훨씬 크기가 작았기 때문에, 일부기업은 그 덩치를 계속 키워 나갔고, 경쟁에서 승리를 하면서 현재의 다국적 대기업 지배체제를 잉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지배체제에서는 특화되고, 전문가적인 작은 기업들 또는 집단은 거대한 기업들에 의존적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대기업 체제에 반하는 형태의 혁신은 저해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다시 말해, 정보시스템과 정보화 혁신이 중앙집중화를 가속화 시킨 주범이 된 것이다.  누가 정보와 네트워크의 접근을 통제하며, 어떻게 관리할까?  누가 정보의 종류를 제어하고, 법적으로 소유할까?  기업에서의 개인의 활동과 통제를 통한 인간소외 현상은 더욱 심화된 것은 아닐까?


소셜 웹 사회, 주도권이 개인으로 넘어온다.

소셜 웹 혁신은 무엇이 다를까?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기본 인프라가 바뀌지는 않았다.  바뀐 것은 정보화가 회사 단위나 비즈니스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개개인의 네트워크와 관계, 그리고 관심사 등을 바탕으로 회사와 비즈니스의 경계를 넘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셜 웹 사회에서의 준거집단과 집단행동은 회사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판단에 의해 휴먼 에너지가 모이는 양상에 따라 이루어진다.  트위터와 페이스 북은 이런 소셜 웹 네트워킹을 전 세계 수준에서 완전히 개방된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였고, 스마트 폰은 컴퓨팅 환경의 개인화로 이어지면서 이를 가속화하였다.  이런 변화는 결국 회사와 집단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밖에 없고, 개인의 네트워크를 통한 혁신사례가 많이 나오면서 회사가 가지고 있는 내부모순이 부각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런 변화는 산업혁명 이후 소위 말하는 '회사'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개인'으로 넘어오는 초석이 되고 있으며, 이것은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고 표현할 수 있는 사회 전체의 중대한 변화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개인의 힘이 집단의 힘보다 강한 것은 아니다.  다만 '회사'로 표현되는 폐쇄형 집단보다는, 개인이 자신의 휴먼 에너지를 바탕으로 동적으로 결합하는 개방형 집단의 힘이 더욱 강하게 발현될 가능성이 많아진 것이다.  이런 개방형 집단의 힘은 결국 개개인의 힘에서 나오게 되며, 각 개인이 역량을 강화하고 창의적인 혁신을 많이 일으키는 집단이 훨씬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것이다.

소셜 웹 중심의 혁신이 수십 년간의 정보화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이런 것이다.  기존의 회사들도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고, 회사 조직원들이 그들의 창의력과 혁신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열린 집단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이런 혁신을 일으키는 다른 혁신 조직들에 의해 결국 경쟁에 의해 도태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엄청난 시대의 변화의 시작점에 와 있다.


(다음 편에 계속 ...)

P.S. 이 시리즈는 이미 완결되어 출간이 되었으며, 전체 내용을 일괄적으로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광고된 도서를 구입하시면 보다 충실하고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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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통적인 자본주의에서의 일반적인 프레임을 깨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에서 감지된다. 그 중의 하나로 개개인의 개성이 중시되는 현상을 들 수 있는데, 과거 포드가 일으켰던 대량생산 패러다임을 통해 소수만 가질 수 있었던 프리미엄 상품들이 일반 대중들에게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던 변화의 방향을 거스르는 변화도 여기 저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량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상품이나 서비스들 중에서 개인의 개성이 중시되는 형태의 새로운 소비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생활이 풍요로워지며, 과거보다 훨씬 오래살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각 개인의 개별적인 욕구도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개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소셜 커넥션도 하면서 소비의 형태가 제품이나 서비스에서 소셜 웹과 같은 상호작용과 관련한 다양한 기술들의 발전과 함께 도구나 관계로 급속히 이전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다양한 기업들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곳들이 아마존, 애플, 이베이, 구글 등의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변화를 조금은 거시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면, 대량생산은 과거 가내수공업과 마을의 동네상점이 주도하던 경제체계를 거대한 공장과 대형 유통업체가 주도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만들었다. 동시에 규모의 경제가 중시되며, 자산의 심화 및 집중, 그리고 중앙에서 완벽한 통제가 가능한 일사분란한 조직을 가진 곳들이 생산성을 높이면서 일취월장하는 구조였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개성이 중시되고, 개인의 의견이 부각되는 패러다임은 과거의 대량생산 패러다임을 다시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량생산 체계가 붕괴하고 커다란 대규모 공장 및 유통업체 들이 망할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현재도 담보하고 있는 낮은 가격에도 비교적 질좋은 상품 들을 만들어내는 부분의 역할은 여전히 지대하며, 앞으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다만, 과거보다는 개인적인 소비의 규모가 좀더 커지게 될 것이라는 트렌드를 말하고 싶다. 이런 다양화된 사회에 대한 욕구는 새로운 비즈니스 프레임웍이 나타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단일 기업이 모든 것을 쥐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많은 기업들이 협업을 하고 연합을 하면서, 여러 가치의 공유 및 목표들을 설정하고 소비자들 개개인에게 적합한 가치있는 자산(서비스나 제품) 등을 적절한 시기와 방법으로 배포할 수 있는 체계(시스템)이 앞으로 매우 중요하게 될 것이다.  이런 변화의 바람은 기존의 철저하게 벽이 쳐져 있었던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던 산업 들의 경계를 허물게 될 것이며, 특히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게 될 것이다.  최근 급격히 부상하는 소셜 소비자나 소셜 커머스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음악산업과 신문산업이 이런 변화를 무시했다가 급속하게 기존의 강자들이 몰락하고 새로운 세력들이 헤게모니를 쥐게 된 가장 대표적인 산업이라고 하겠다.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변화의 물결을 애써 부정하는 기업의 미래는 없다. 개인들의 힘이 강해지고, 개인들의 판단을 도와주되, 이익률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이에 따른 비용의 절감이 수반된 변화를 수행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결국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아직은 공룡들과 새로운 시대의 진화된 DNA를 갖춘 기업들이 공존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결국 세상의 변화가 어느 쪽을 선택하게 될 것인지는 거의 명확하다. 다만 그 시기가 문제일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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