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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학교 시스템과 같이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을 집단적으로 가르치는 시스템이 나타난 것은 산업혁명에 의한 산업화의 부산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과거 포스팅에서도 간단히 언급한 바 있습니다.

연관글:  2009/04/28 - 미래의 교육은 가정교육과 개인간 교육이 주도할 것


학교를 왜 보내?  일시켜야 되는데 ...

1800년대 말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당시만 하더라도 아이들도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 가서 일을 할 수 있는 중요한 노동력이기 때문 이었습니다.  그런데, 학교가 힘을 얻게 된 것은 가정에 의한 요구가 아니라,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집단화와 객관적 비인격성 등과 같은 조직의 문화를 아이들에게 세뇌를 하고 근면, 정확, 정리정돈과 같은 미덕을 가르친다면 향후 공장에서 문제를 일으킬 소지도 적고, 생산성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비즈니스맨들이 서로 연합을 해서 공동으로 학교를 설립하고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이민자들에 대한 교육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워낙 다양한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신대륙으로 몰려 들었고, 이들은 문화와 언어가 완저히 달랐기에 당연히 공장에서의 생산성은 최악을 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미국의 지배문화에 동화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학교입니다.


학교는 안정된 정권의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결국 19세기와 20세기 학교의 역할은 청년이 된 이후 대규모 산업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양성소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고, 정부 입장에서도 젊은 혈기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거나 이들에 의해 우발적인 사고 및 범죄 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학교 시스템을 통한 대량생산식 교육은 대세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어리고 젊은 인력이 혹시라도 고용의 안정을 헤칠까 두려워했던 노동조합 역시도 이러한 대중교육과 획일화된 시스템에 동조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학교라는 시스템의 근간이 형성된 것입니다. 

산업시대의 대량생산과 대중교육, 그리고 대중매체와 대중문화 등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고 당연시 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이러한 산업혁명 이후 산업사회의 몰개성적인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인터넷과 "웹 2.0" 철학이 가져오고 있는 변화의 물결은 단순히 몇몇 회사들의 위기와 미디어의 변화 정도 만으로 바라볼 수 없는 심각한 근본적인 화두를 담고 있습니다. 


이제는 개인의 역량이 중요한 시대 ...

미래의 세계에는 창의적인 인재를 필요로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시도를 해 보아야 합니다.  현재의 학교 시스템과 사교육 열풍에 의해 공장형으로 똑같은 인재상을 찍어내는 풍토가 얼마나 갈까요?  결국 20년 뒤에 어떤 사람들이 더 성공했고, 본인들이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는지에 의해서 결론이 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들부터 공부를 해야하고 동시에 아이들의 재능을 파악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유심히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재능이 파악되었다면 이를 어떻게 키워줄 수 있으며, 과연 아이들이 커서 어떻게 자신들의 경제적인 안정과 행복한 생활을 모두 거머쥐면서 살아가게 될지를 먼저 고민해야 될 것입니다.  이제는 정보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아이들의 재능을 꽃 피우게 할 방법과 이렇게 가지게 된 재능을 어떤 방식으로 생업(?)으로 연결시킬 것인지에 대해 부모도 같이 고민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생업과 직업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아이가 좋아하는 분야와 해당 재능만으로는 안될 것입니다.  소통능력이나 사회관계, 경제에 대한 개념, 또는 과학이나 수학 같은 것들이 필요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아이들은 자신들의 꿈을 위해 공부를 해야하는 당위성을 파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공교육 시스템이 필요없고, 이를 무너뜨리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학교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이러한 의도에 의해 시스템화 되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창의성과 능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이들 스스로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와 시간, 그리고 부모를 위시한 주변사람들, 그리고 앞으로는 인터넷에서 만나게 될 소셜 네트워크의 친구들입니다.  이들에게 보다 큰 자유와 자유로운 미래상을 그리도록 허영해 주는 것이, 무조건적인 공부를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아이들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 아닌지 고민해 봅니다. 

P.S.  그래도 저도 학교에서 아들래미가 안 좋은 성적표를 들고오면, 버럭 화를 내게 되더군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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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18세기 까지만 하더라도 명실공히 세계를 지배하던 나라였습니다.  영토를 모두 관할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미국처럼 언어와 문화, 정치와 경제 모든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국가였습니다.  그러던, 영국의 위세가 19세기부터 조금씩 꺾이더니 20세기에는 미국에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국가의 지위를 넘겨주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물론 전세계를 놓고 패권대결을 벌이던 상황에서의 여러 차례의 전쟁이 물론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860년대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과 러시아는 1815년 비인회의(Congress of Wien) 이후 세계의 양대 최강국으로서 세계 곳곳에서 패권 대결을 벌였습니다.  러시아는 어떻게든 남하하려 하고 영국은 그때마다 이를 극력 저지하는 현상이 발칸반도․중앙아시아 등에서 전개되었지요.  크림전쟁(Crimean War, 1853~1856) 당시 러시아와의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영국은 국면전환을 위해 1854년 8월 29일 프랑스를 끌어 들여 오호츠크해와 베링해 사이에 있는 캄차카반도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를 기습하였고, 이로 인해 영․러간의 세계적 대결이 동아시아로까지 확대됩니다.  그런데 태평천국운동(1851~1864)을 통해 중국 민중의 거대한 파워를 확인한 영국과 러시아는 1860년대부터 동아시아에서의 상호 대결을 자제하였고, 이로 인해 동아시아에서는 ‘힘의 공백’ 상태가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당대 최강국들인 영국-러시아가 상호 대결을 자제하는 틈을 타서 일본․프랑스․독일․미국․중국 등이 동아시아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개시하였는데, 프랑스가 병인양요(1866)를 일으킨 것도, 미국이 신미양요를 일으킨 것도(1871), 일본이 운요호사건(1875)을 도발하고 오키나와를 합병(1878)한 것도, 청나라와 일본이 임오군란(1882)에 개입한 것도, 프랑스가 베트남을 장악(1885)한 것도 모두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른 힘의 공백기에 가장 빠르게 성장한 미국이 2차례의 세계대전의 막판에 결정적인 승기를 잡는 역할을 하면서 세계패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해석이 일종의 외부적 요인에 따른 이유라는 시각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시각이 바로 미국과 유럽국가들의 기술자들에 대한 대우와 사회적 지위에 대한 차이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가 그의 저서 "Next Society"에서도 간단하게 기술한 적이 있습니다.

19세기 후반은 산업혁명에 의한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가 급속도로 세계를 재편하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1850년 정도가 되면서 영국은 미국과 독일에 강대국으로서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영국이 이렇게 뒤쳐지기 시작한 이유는 경제적인 것도 기술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영국은 1차 세계대전까지 강대국의 지위를 지켰으며, 기술적으로도 19세기 동안 우월적 위치를 지켰습니다.  합성연료나 증기터빈과 같이 세계적인 발명품도 여전히 영국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사회적으로 기술자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으며 기술자들은 결코 신사(gentleman)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영국인들은 인도에 최고의 산업기술과 관련한 학교를 세웠지만, 정작 영국에는 그렇게 좋은 학교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물리학이나 화학과 같은 기초과학에 대해서는 입장이 달랐습니다.  순수학문을 숭배하고, 이를 연구하는 사람들과 기술자들을 차별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쉽게 시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영국에서 기술자라는 것은 단지 이론적 기초를 주물럭거려서 돈이나 버는 '장사꾼'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장사꾼'으로 비즈니스맨을 폄하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자체가 더 문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국은 벤처 캐피털리스트를 양성하지도 않았습니다.  증명이 안된 사업에 투자할 자본도 없고, 이를 집행할 자본가들도 없었기 때문에 후퇴만 거듭하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J. P. 모건이 벤처 캐피털리스트를 제도화하고,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데 큰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과 대조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지요 ...

이러한 영국의 사회적 분위기와 행보가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영국의 지위를 끌어내린 것입니다. 

이제는 지식혁명과 인터넷 혁명이 산업혁명의 뒤를 이어 세계를 변혁하는 견인차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 영국에서와 같이 과거의 경험에 매몰되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행보를 보인다면 21세기를 주도하는 힘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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