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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화에서도 언급했지만, 빈트 서프와 밥 멧칼프는 인터넷의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들로 꼽힌다. 인터넷의 근간을 이루는 TCP/IP 프로토콜을 개발한 빈트 서프는 밥 칸과 함께 공식적으로 '인터넷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인터넷을 네트워크간의 네트워크라는 개념에서 바라본 것으로 이 프로토콜을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가 즐기고 있는 다양한 인터넷의 세상이 열렸으므로 빈트 서프와 밥 칸을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해도 지나침은 없다.


인터넷의 아버지, 빈트 서프

빈트 서프는 2005년 10월 구글에 입사하여 현재는 부사장겸 인터넷 전도의 책임을 맡고 있다. 그는 인터넷 기반의 다양한 첨단기술이 접목된 제품과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구글에 합류하기 전에는 MCI(현재의 월드콤)의 기술전략담당 부사장으로 재직했다. 스탠포드에서 DARPA와 함께 TCP/IP를 고안한 빈트 서프는 1976년 DARPA에 합류해서 인터넷과 인터넷 기반의 패킷 데이터와 보안과 관련한 다양한 기술개발을 주도했는데, 1982년 DARPA를 떠나 MCI의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다음에는 MCI 메일이라는 인터넷에 연결된 세계 최초의 상업용 이메일 서비스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빈트 서프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1965년 수학을 전공하고, IBM에서 2년 동안 일을 한 뒤에 UCLA에서 컴퓨터 과학으로 1972년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는데, 어쩌면 억세게 운이 좋은 경우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내막은 다음과 같다.


1962년 MIT의 J.C.R. 리크리더(Licklider)는 '은하네트워크(Galactic Network)'라는 메모를 발표했는데, 이것이 모든 컴퓨터를 엮는 글로벌 네트워크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이다. 같은 해 리크리더는 DARPA의 초대 컴퓨터 연구단의 책임자로 임명된다. 1965년에는 MIT의 연구자였던 로렌스 로버츠(Lawrence Roberts)와 토마스 메릴(Thomas Merrill)이 전화선에서 데이터의 패킷으로 컴퓨터간에 주의 경계를 넘어서 통신하는 실험에 성공하는데, 로렌스 로버츠는 이후 DARPA에 합류하여 리크리더의 꿈을 실현하는 역할을 맡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1967년 탄생한 프로젝트가 ARPANET 프로젝트이다. 로렌스 로버츠가 실험했던 방식은 1961년 당시 MIT의 대학원생이었던 레오나드 클라인락(Leonard Kleinrock)의 데이터 패킷을 이용한 스위칭 이론과 관련한 논문에 바탕을 두었는데, 레오나드 클라인락은 박사학위를 마치고 UCLA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는 밥 칸과 함께 DARPA의 원대한 꿈을 같이 이끌어나가기로 합의하고 UCLA의 실험실이 ARPANET의 첫 번째 노드가 되도록 하였다. ARPANET의 두 번째 노드로는 SRI가 선정되었고 1969년 이 두 노드 사이의 역사적인 첫 번째 데이터 통신이 시도된다. 이 때 실무를 담당한 것이 바로 빈트 서프였다. 그는 이 두 호스트 사이의 통신 프로토콜이었던 NCP를 구현하였다. 1972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빈트 서프는 스탠포드로 자리를 옮기는데, NCP의 개선이 ARPANET 프로젝트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밥 칸이 1973년 빈트 서프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들의 세계를 바꾼 프로토콜의 발명이 시작되었다.


그는 또한 국제활동도 활발하게 한 인물이다. 향후에 좀더 자세하게 언급하겠지만, 인터넷을 편리하고 쉽게 이용하게 하기 위해  문자로 된 주소체계가 만들어지자 이런 주소를 관리하는 조직이 필요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 ICANN(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이라는 민간단체가 설립되는데, 빈트 서프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 8년 간 이 단체의 의장을 맡아서 인터넷의 대표적인 얼굴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인터넷과 관련한 가장 중요한 결사체인 인터넷 소사이어티(Internet Society)를 1992년 공동으로 창립하였다. 그 밖에도 청력장애인과 관련한 많은 국제 단체의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로컬 네트워크의 아버지, 밥 멧칼프


밥 칸과 빈트 서프를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밥 멧칼프는 '로컬 네트워크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멧칼프는 1946년 뉴욕 브루클린 출신으로 MIT에서 전자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하였다.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응용수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컴퓨터 과학으로 박사학위 공부를 하면서 MIT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었는데, 그 일자리가 바로 ARPANET 프로젝트에서 MIT에 의뢰한 하드웨어를 만드는 것이었다.


1972년 ARPANET 컨퍼런스에서 그는 ARPANET을 이용한 19가지 시나리오를 담은 팸플릿과 데모를 하였다. 이 때 AT&T에서 온 10명의 전문가들 앞에서 기술과 시나리오를 실제로 시연하였는데, 팸플릿에 적은 것처럼 동작하지 못하고 시스템이 죽어버렸다. 당시로서는 기술이 완벽한 것이 아니었고, 데모 프로그램에도 문제가 있었던 탓이었겠지만, 멧칼프에 따르면 이 때의 데모 실패가 당시 통신을 독점하고 있었던 AT&T에게는 패킷을 이용한 데이터 통신 방식이 전화에서 이용되는 회선전환 방식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어쨌든 ARPANET 프로젝트는 멧칼프의 인생을 바꾸어놓게 되는데,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버드 대학에서 그의 논문이 '충분히 이론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학위논문으로 인정하지 않자, 이에 분노하여 반발하였다. 대학 측에서는 그를 진정시키기 보다는 되려 더욱 권위적으로 그를 압박하였고, 하버드 대학과 멧칼프는 크게 사이가 나빠지게 되었다. 이 때 그의 탁월한 능력을 알아본 제록스 PARC 연구소에서 그에게 일자리를 제안했고,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PARC 연구소에 입사하였다.


그의 새로운 박사학위 논문의 아이디어는 하와이 대학에서 연구되던 ALOHA 네트워크에 대한 논문에서 나오게 되는데, 이 네트워크는 데이터 전송을 위해 전화선을 이용하지 않고 전파를 이용하였다. 그런데, 전파는 동시에 데이터 패킷이 두 군데에서 같은 채널을 통해 전송될 경우 서로가 간섭을 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와이 대학에서는 컴퓨터가 전송할 데이터가 있을 때 언제든 데이터를 전송하도록 허용하고, 목적지 컴퓨터에서 패킷이 도착했다고 알려줄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을 이용하였디. 패킷이 충돌하거나 도착알림이 없으면 기다리는 시간을 매우 짧게 랜덤으로 기다리게 한 뒤에 이를 넘을 경우 재전송을 하게 했는데, 이를 통해 같은 데이터가 계속 충돌하지 않도록 하였다. 이를 랜덤접근(random access) 방법이라고 한다. 멧칼프는 이 방식의 문제점을 파악했는데, 잘못하면 지나치게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점을 개선하여 데이터 트래픽에 따라 기다리는 시간을 역시 랜덤이기는 하지만 조절하여 데이터 전송효율을 매우 높였다. 그제서야 그의 학문적 성취를 인정한 하버드 대학에서 멧칼프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제록스 PARC에서 그는 개인용 PC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하드웨어와 통신방식을 고안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전 세계에 LAN 열풍을 일으킨 이더넷(Ethernet) 기술이다. 이더넷은 제록스 PARC의 기념비적인 컴퓨터인 알토(Alto)에 구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게 되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앞선 연재를 통해 수 차례 언급한 바 있으므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그는 이더넷을 단순히 개인이나 특정 연구소의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연결하는 기술로 널리 보급되기를 원했고, 이를 위해 오늘날까지 전 세계 네트워크 기술을 대표하는 회사인 3Com(Computers, Communications, Compatibility - 컴퓨터, 통신, 호환성을 의미)을 1979년 공동창업하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는 그의 기술을 한 회사에 종속시키지 않고, 산업계 표준으로 공개하면서 여러 회사들이 제품을 저렴하게 내놓고 네트워크의 잇점을 수 많은 사람들에게 누릴 수 있게 한 점이다. 그의 의도대로 1980년대 들어 LAN(Local Area Network)이 널리 보급되었으며, 대학이나 기업 등에 도입되면서 인터넷의 중요성을 높이는 동시에, 기술의 판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멧칼프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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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멧칼프는 이더넷을 만들고, 3Com 이라는 회사를 창업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무어의 법칙(Moore's law), 코즈의 정리(Coase theorem)와 함께 인터넷 경제의 3원칙으로 불리는 멧칼프의 법칙(Metcalfe's law)으로 더욱 많이 알려졌다. 그가 처음 이야기한 것은 통신에서의 네트워크 효용성에 대한 것으로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던 전화나 팩스에 비해, 이더넷을 이용한 네트워크의 효용성이 훨씬 크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현재는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더 나아가서는 경제와 비즈니스 경영 등의 영역에도 널리 활용되는 일반적인 법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인용하고 있다.


내용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그는 '하나의 네트워크의 효용성은 그 네트워크 사용자 숫자의 제곱' 이라고 하였다. 예를 들어 하나의 전화는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러나 두 개가 연결되면 유용하며, 백만 개가 연결되었다면 그 효용성이나 가치는 백만의 제곱이라는 것이다. 이 법칙은 네트워크의 노드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가능한 연결의 갯수를 수학적으로 계산한 것에서 도출되었는데, 정확하게는 수학에서의 조합으로 보아야 하므로  노드의 수를 n으로 보았을 때 2개의 노드의 연결의 수는 'n(n-1)/2'로 표현할 수 있다.


멧칼프의 법칙은 많은 함의를 가지고 있다. 사용자 수의 제곱에 의해 네트워크 효과가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것은 네트워크가 누군가의 소유로 있을 때보다 널리 이용되어 사용자가 늘어날 때 효용성이 급격히 증가하는 사회적인 특징을 가진다는 것이고, 멧칼프는 이런 교훈을 자신의 비즈니스에도 충실하게 접목해서 기술을 개방하고 네트워크를 설치한 PC의 수가 늘어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3Com을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시켰다. 인터넷이 저렴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될 때 그 가치가 급격히 늘어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저렴한 초고속인터넷 통신망의 보급에서도 증명된 바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어떤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면 그 가치가 크게 늘어난다는 것을 이제는 더 이상 의심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다음 회에 계속 ...)



참고자료:


Vinton Cerf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Vinton Cerf ICANN 소개

MIT Inventor of the Week Archive: Vinton Cerf

Robert Metcalfe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Internet Pioneers: Bob Metcalfe

Metcalfe's law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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