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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혁신과 관련하여 많은 비전과 실험을 하고 있는 켄 로빈슨(Sir Ken Robinson)은 그의 저서인 <Element>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이 있는 장소와 당신이 잘하는 것은 같이 연결이 되며, 이것이 개인의 행복과 궁극적인 성공에 핵심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자아와 목표, 그리고 행복에 근본적인 요소들을 연결시켜야 하며, 이것들이 학생들이 성장하고, 성취하며,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커다란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들의 능력이나 관심사를 제대로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다. 교육은 개인들이 타고난 능력을 발전시키고, 그것이 세상에서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어야 하는데, 현재의 교육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미래의 교육에 필요한 중요한 함의가 숨어있다. 열정과 재능을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개인의 열정과 재능은 동료들을 만나고,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며,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쉽게 사그라들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을 연결시키고 관계를 맺도록 하여 열정을 유지시키고, 이런 행복과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엮어내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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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학교에서 담당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교과시스템과는 무관한 활동이 필요하다. 학교가 담당해야 할 일은 이런 활동이 일어나는데 방해가 되는 인위적인 장애물을 제거하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서 그들의 열정을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선생님이 될 수가 있고, 반대로 선생님도 학생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모두가 배우고,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을 연결시키고 관계를 만드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실제로 이를 위해서 조직된 것이 2012년 시카고의 한 고등학교에서 진행된 "Spartan Connect"라는 1일 워크샵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세간의 걱정과는 달리 이 프로그램은 정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프로그램에는 커리큘럼도 없고, 수업도 없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자신들의 관심과 취미, 그리고 열정에 따라 프로그램을 같이 준비하고, 관계를 맺고 필요한 작업을 하기 위해 공간과 자원들을 같이 활용하였다. 이를 통해 서로의 열정을 확인하고, 새로운 열정을 가지는 학생들이 등장하고, 관심사를 공유하는 멋진 경험을 했다는 평가이다.

학생들이 자신들이 사랑하고, 정말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전시킬 수 있는 학습을 한다면, 공부가 어찌 즐겁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교육의 요체는 이런 열정을 발견하고, 열정이 타오를 수 있도록 불을 붙이고, 이런 공유하고 같이 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이 워크샵에 참여했던 한 학생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소감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이 프로그램은 정말로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 이 워크샵은 학생들이 평상시에는 할 수 없었지만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들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고, 어떤 학생들은 새로운 열정을 가질 수 있게 되었어요 ... 저는 우리 학교가 이런 것을 했다는 것이 너무나 흥분되고, 미래가 기대됩니다.


Students, staff share their passions during Spartans Connect day at Glenbrook North

Spartans Conn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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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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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로 뻗은 복도와 여기에 연결된 교실들, 그리고 간혹 보이는 공용공간에는 라커들이 있는 건물. 우리들이 너무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학교'라는 것의 형상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모습이 좀 바뀌어도 되지 않을까? 보다 외부와의 연결이 쉽고,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고, 놀이와 창의성이 학습의 중심에 있는 그런 공간으로 학교가 재탄생하기에는 현재의 학교가 가진 겉모습은 너무나 칙칙하다.


공간의 형태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세계 최고의 디자인 회사인 IDEO, 언제나 최고의 창의적인 창작 애니메이션 작품의 세계를 선보이는 스튜디오인 픽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들의 일터는 창의적인 생각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들로 가득하다. 이런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한 번 둘러보는 것이 어쩌면 공간이 가지고 있는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찾아내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찾아낸 원칙들을 접목한다면 미래의 학교는 조금이나마 미래의 인재에 적합한 장소로 탈바꿈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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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O는 개방형 컨셉의 레이아웃을 잡는 것을 중시한다. 이런 레이아웃은 협업을 촉진하기 쉽다. 또한,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들도 보통 오픈 스튜디오의 개념으로 디자이너와 비즈니스 전략가, 프로그래머 등이 같이 일하기 쉽도록 설계하였다. 또한, 카페나 포럼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나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워크샵 공작실, 커뮤니티 정원 등을 이용해서 지나치게 일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픽사의 공간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소 느낌이 다르다. 픽사의 스튜디오는 마치 환상적인 동화의 공간과 비슷한  느낌을 연출하고 있는데, 예술과 과학, 디지털과 아날로그, 일과 놀이가 만나는 묘한 공간이다. 투명하면서도 언제나 놀이가 있고, 동시에 기술이 공존하는 곳이 픽사의 스튜디오인 것이다. 그렇지만, 스티브 잡스가 픽사의 스튜디오를 디자인할 때 가장 신경을 쓴 것은 레이아웃에서 사람들이 우연한 기회에 최대한 우연하게라도 만날 수 있도록 신경을 쓴 점이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융합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전공을 가진 사람들이 쉽게 협업을 하고, 창의적인 디자인 씽킹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학교 교육에 접목한다면 어떤 의미를 가질까? 기본적으로 언제나 특정 과목의 공부를 하는 칸막이식 학습이 아니라,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마치 디자이너들처럼 새로운 것을 만들고 협업을 하는 프로젝트 기반의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남부 캘리포니아의 대안학교인 HTH(High Tech High)에서는 실생활에서 필요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협업과 비판적 사고와 학문적인 지식을 접목하는 프로젝트 기반의 교육을 진행시킨다. 이를 위해서 건물과 시설 디자인에 신경을 썼는데, 전통적인 학교라기 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협업하기 좋은 일터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철학이다. IDEO나 픽사, 그리고 최근 가장 혁신적인 IT기업으로 불리우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의 공간은 대체로 어렸을 때의 창의력을 동경하면서 가장 놀기도 좋고, 역동적인 환경으로 일터를 꾸며놓은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우리들의 학교는 놀이의 힘과 창의적인 예술을 힘을 발휘하기 보다는 그런 철학을 잃어버렸다. 이제는 학교에 새로운 철학을 심을 때이다.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찾아주지 못한다면 우리 아이들의 얼굴에서도 새로운 미래의 희망을 찾아보기 어려울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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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자라서 자기 앞가림을 어느 정도 하는 나이가 되면 초등학교에 가고, 그 다음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서 대학교를 간다.  누구나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이 과정에 대해서 우리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일까?  그 과정에 우리들의 아이들이 배우는 학습과정이나 교과에 대한 가르치는 방법 등은 모두 표준화가 진행이 되었으며, 시험을 보고 성적을 매기는 것도 어디에나 똑같이 적용하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심지어는 교과시간도 정확하게 1분 1초도 틀리지 않고 표준화되어 있다.  아이들의 개별적인 능력이나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

최근 이렇게 천편일률적인 교육방식에 도전하는 실험적인 시도가 전 세계 교육현장에서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IT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형태의 소프트웨어와 온라인 콘텐츠들이 등장하면서 과거의 선생님들의 역할을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미 선생님들이 지식전달자의 역할을 하지 않더라도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서 선생님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이제는 보다 인간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아이들의 멘토나 코치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강의보다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이끌 수 있는 카운셀러의 역할, 그리고 사회와의 화합을 위한 준비과정으로서의 학교를 그려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시기는 성인이 되어 독자적으로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사회와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우고, 천변만화가 있는 사회에서 적응할 수 있는 내성을 키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의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협업을 하는 연습, 그리고 선생님을 통해 사회에 대한 비판적이면서도 독자적인 시각을 갖추고 자신을 계발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아이들이 독자적으로, 그러나 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연습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학습의 측면에서는 자기주도 학습이 중요하며, 단순히 교육 콘텐츠를 보고, 읽고, 외우고, 시험을 받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를 선생님과 친구들이 같이 공유하고 새롭게 가치를 창출하는 연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학습이나 어떤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간단하게 댓글의 형태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통해서 이야기 한다거나, 학습에 도움이 되는 좋은 콘텐츠들을 서로 발견해서 나누고 공유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활동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새로운 개념들을 기존의 전통적인 교육방식에 접목하는 것이 간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이라고 할 수도 없다.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해당 연령대에 필요한 교육목표와 요구사항을 알려주고, 이들이 교과서나 비디오 콘텐츠, 실험, 시뮬레이션이나 교육용 게임 등을 활용해서 각자 알아서 공부를 하고 배움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다양한 쌍방향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 잘 만들어진 자신이 직접 도전할 수 있는 테스트 방법과 페이스북 등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언제라도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협업과 코칭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방식을 개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새로운 교육의 철학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게임의 역학을 활용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많은 부모들이 "게임"이라고 하면 일단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이를 달리 바라보면 "게임"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좋은 도구로 생각할 수도 있다.  뉴욕의 한 공립 중학교의 교사는 실제로 이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모든 과목은 아니지만 일부 과목에 대해 선생님이 교육을 한 성과를 성적표가 아니라 정기적인 레벨을 정해주는데, 아직 실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초보자(novice)" 그리고 이미 모든 학습목표를 깨우친 아이들인 "마스터(master)"의 칭호를 준다.  이는 작지만 큰 변화이다.  같은 교육을 수행하고 시험을 보고, 이에 대한 등급을 매긴다는 것은 사람을 분류하는 의미가 크지만, "초보자" 나 "마스터"와 같은 레벨을 부여한다는 것은 아직 경험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훨씬 동기부여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  심지어는 아예 게임을 교육과정에 도입하는 학교도 있다.  뉴욕의 중학교에서는 "Quest to Learn" 이라는 과목을 개설한 학교가 있다.  디지털 게임을 아예 아이들의 지적 탐험의 가장 중요한 도구로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서 선생님은 직접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역할보다는 길잡이와 도움을 주는 가이드와 비슷한 역할을 많이 하게 된다.  이런 접근방법을 이용한다면, 학습과정은 레슨(lesson)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퀘스트(quest)로 생각될 수 있다.  그래서 교육과정의 이름이 "Quest to Learn"이 된 것이다.  게임을 진행하면, 매일 밤 읽어야 하는 읽을거리와 매주 이해도를 측정하는 미션 등이 날아오며, 이 중의 상당 수는 연필과 종이로 무엇인가를 풀어서 제출해야 되는 미션이다.  이런 형태의 게임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은 자신들의 동영상을 제작하고, 비디오를 편집하기도 하며, 해당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는 등의 소셜 활동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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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감안해야 하는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협력을 통해서 많은 것을 서로에게 배우고 성장한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인도의 "Hole in the Wall" 프로젝트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  일단 자발적인 동기부여가 된 아이들은 선생님이 없어도 알아서 서로를 가르치고 알아낸 것을 공유하면서 3개월도 안된 시간 동안에 벽 속에 있는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의 조작법은 물론이고 기초적인 외국어와 설치되어 있는 소프트웨어의 매뉴얼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서로에게 가르치고 배우는 것도 되려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에 비해 더 잘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다.

이와 같이 새로운 기술과 사회의 변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학교와 선생님들의 역할, 그리고 교육의 철학을 바꾸어 놓을 수 밖에 없다.  이런 변화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으며, 더욱 넓게는 교육과 학교라는 것의 역할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주도하는 혁신적인 교육혁신가들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미래를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칸 아카데미를 통해 전 세계적인 온라인 교육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살만 칸이나 스탠포드 대학의 정년보장이라는 조건을 뿌리치고 전 세계 대학교육의 혁신을 일으키고 있는 유다시티(Udacity)의 세바스찬 스런 교수같은 선구자들의 등장, 그리고 이런 변화를 읽고 새로운 강의시스템을 완전한 개방형으로 공짜로 운영하기 시작한 하버드 대학과 MIT의 edx 프로그램의 탄생은 이제 큰 변화의 시작에 불과하다.  교육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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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방황을 하고, 앞으로 할 일이 없어서 걱정하며 좌절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선진국들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으며, 아시아의 국가들도 유사한 걱정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와중에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가 인도네시아에서 성공적으로 정착이 되고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2005년 World Education의 도움으로 인도네시아의 젊은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TLF(The Learning Farm)이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도시에서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서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교육과 함께 이들에게 농업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인데, 도시에서 빈민층으로 전락해서 갖은 범죄의 유혹에 노출되고 차별대우를 받으면서 인생을 살아가기 보다는 보다 평화로운 환경에서 자신들이 먹고사는 것을 해결하면서 자신 만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해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이 배움의 농업학교에서는 유기농으로 다양한 채소와 곡물을 재배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와 함께, 인도네시아의 유수의 호텔 체인들과 레스토랑과의 연계를 통해서 이렇게 재배된 고급의 채소와 곡물들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지속가능하게 운영되면서 농사를 짓는 젊은이들이 많이 늘어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이 학교는 2005년 비행청소년들 중에서 과거를 잊고, 새로운 미래의 직업을 원하는 아이들 50명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벌레와 같은 생명체도 존중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함께, 자연과 함께 하는 채소아 곡물을 재배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이를 팔아서 실제로 자신들의 삶을 영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이 학교는 크게 성공을 하게 되었다. 이 농업학교를 설립한 Pumama 씨는 앞으로 자신들의 성공을 바탕으로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비슷한 모델의 움직임이 활성화되어서,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길거리를 배회하는 집없는 청소년의 수가 10,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수는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을 설득해서 농사를 짓게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한다. 설립자인 Pumama 씨는 FastCompany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과 일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원래 시골 출신의 농부들이 아니거든요. 또한, 과거 전력으로 마약이나 비행을 저질렀던 아이들이기 때문에 더욱 세심한 배려가 필요했습니다. 우리들이 부모의 역할도 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로 하여금 청소도 하고, 밥도 짓게 하면서 자신들이 직접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농사를 짓는 것을 자신들이 하는 일의 전부로 하지 않게 한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농사일 이외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삶에 유기농을 접목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의 성공은 이제 유기농에서 그치지 않았다. 손기술이 있는 친구들을 중심으로 공예품을 만들어서 납품하는 사업도 시작했고, 수년 간의 트레이닝을 통해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된 학생들은 새로 들어온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역할을 하면서 외부로 이런 활동이 확산될 수 있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선임자가 된 학생들은 농사를 짓는 방식 뿐만 아니라, 마케팅을 하고, 포장을 해서 납품을 하는 전체적인 가치연쇄를 만들어내는 작업에도 참여를 하면서 지역의 농부들과 함께 지역사회의 발전과 유기농법의 보급에도 앞장을 서고 있다고 한다. 한때 도시에서 비행청소년으로 살았던 시절과 비교한다면 정말 하늘과 땅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그 중에서 3명의 학생들은 전체 생산을 관장하는 매니저와 마케팅 총괄, 그리고 학교를 책임지는 매니저 수준까지 올라가서 이미 교장선생님과 함께 이 학교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멤버들이 되었다.

이런 놀라운 발전이 지속되자,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PwC(PricewaterhouseCoopers)에서 기부금과 함께 회사의 숙련된 관리자들을 파견해서 혁신과 경영,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 등과 같은 고급스러운 교육도 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통해 학교는 순조롭게 확장을 할 수 있었고, 이제는 16~24에 이르는 학생 215명이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1단계를 졸업한 학생들을 70% 정도로, 이 중에서 90%는 상급학교로 진학하거나 자신들의 가족들에게 돌아가서 자신들이 익힌 기술과 인맥을 바탕으로 열심히 자신들의 삶을 일구고 있다고 한다. 이들 중에서 60%는 유기능과 관련한 공부나 일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이런 멋진 성공사례가 바로 우리나라에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효율적인 농업과 과학, 그리고 좋은 프로그램과 네트워크 등이 결합된다면 하늘에서 내려주는 태양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숭고한 생산활동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참고자료

Learning Farm 홈페이지
Indonesia's Organic "Learning Farm" Offers Street Kids a Path Toward Jo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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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퀸즈 대학의 석좌교수인 앤드류 해커(Andrew Hacker)와 뉴욕타임즈의 클라우디아 드레퍼스(Claudia Dreifus)가 최근 "Higher Education? How Colleges Are Wasting Our Money and Failing Our Kids---and What We Can Do About It" 라는 논란의 중심이 되는 책을 내놓았다. 제목을 해석하자면 "고등교육? 어떻게 대학이 우리의 돈을 낭비하고 아이들을 실패자로 만드는가 --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정도가 되는데, 제목자체가 상당히 논란거리이다.

두 공저자는 이 책을 통해 대학의 존재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대학이 "고등교육"의 전당이라고 하지만, 두 단어인 "고등(higher)"과 "교육(education)" 모두가 제대로 동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의 시스템이 가르치는 것과 인문학 중심의 소양교육을 포함한 수련보다는 모든 교수 인력들을 연구중심으로 몰고 가고 있는데, 어떤 교수가 가르치는 것을 중심에 두고 고민을 할 것인가?에 대한 비판이다. 또한 그는 테뉴어(tenure)라고 불리는 정년보장에 대한 시스템에도 반기를 든다. 물론 이 제도가 지식과 지성에 대한 자유를 지켜주며, 교수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좋은 취지를 가진 것이지만,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현재의 대학 시스템은 교수들이 제대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소홀히 할 수 밖에 없고, 이렇게 시간을 덜 쓰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수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더 높은 등록금을 낼 수 밖에 없으며, 결국에는 대학에서 별로 배우지도 못하고 사회에 커다란 기여도 하고 있지 못하며, 시간만 축내고 있다고 저자들은 말하고 있다.  언론들도 칼텍이나 MIT, 스탠포드 대학 등의 교수들이 내놓은 연구논문이나 그들의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초점을 맞출 뿐, 학부생이나 대학원 생들에 대한 교육의 질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 그리고 학생들의 고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대학을 왜 갈까?

학생들이 대학을 가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이름있는 대학을 가서 내가 어디를 졸업했다는 권위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인데, 이것은 일종의 개인 브랜드의 강화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정말 좋은 교육을 받고 싶어서 일 것이다.  첫 번째 목표를 가진 학생들은 사실 교육의 질이 떨어져도 어느 정도 감내가 될 것이다.  어쩌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다니는 또는 졸업한 학교의 브랜드가 올라갈 수 있는 다양한 연구가 많이 발표되고 랭킹만 올라가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두 번째 목표를 가진 학생들의 입장은 다르다. 정말로 좋은 교육을 하는 대학을 원할 것이다.  

오레곤 주에 있는 린필드 대학(Linfiedl College)이라는 곳이 있다.  이 학교는 매우 작은 도시에 위치하였지만, 이곳의 교수들은 학생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정말 좋은 교육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밖에도 교육이 정말 좋은 몇몇 작은 대학교들이 있다. 이 학교의 교수들은 도대체 뭐가 다르길래 이렇게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하는 것일까?  이들 학교의 공통점은 대학에서 교수들에게 연구에 대한 부담을 전혀 지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에 대한 부담을 덜어버리고,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어떤 교수들은 자신의 시간을 거의 대부분 연구를 하는데 소모하면서, 학생들의 교육은 뒷전이다.  이런 경우에 학생들의 등록금은 결국 교수들의 연구지원을 하는데 쓰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연구소를 만들어야지 어째서 대학에서 이런 것을 지원해야 하는가?  이것은 어찌보면 핵심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연구중심의 풍토가 지나친 연구로 이어지고, 사회의 효율에 대해서 그다지 생각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브랜드를 연구성과 위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있으니, 대학들은 지속적으로 연구성과만 강요하고, 교수들은 여기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논문들이 나오고 있으니, 다른 학교 교수들보다 더 많은 논문을 써야하고, 이런 부담의 악순환은 미국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학시스템과 교수들도 병들게 만들고 있다.  과연 그렇게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인가?  실제로 사회에서 필요로 하고, 정말 학문적인 열정을 가지고 수행하는 연구의 적정선은 어디인가?  현재의 시스템은 대학이라는 곳 전체의 사회적 가치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테뉴어와 논문, 그리고 교육의 상관관계

대학교수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인생에 있어서의 관문으로 테뉴어 (우리말로는 영년교수직) 심사라는 것이 있다.  한 마디로 교수의 정년을 보장하는 것인데, 보통 우수한 논문을 많이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이다.  대학마다 차이는 있지만 교수임용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이 심사를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탈락하면 매해 평가를 받아야 하는 압박을 받게 된다.  그러다 보니, 테뉴어 심사 이전의 젊은 교수들이 유수의 논문지에 논문을 내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을 수 밖에 없다.  결국 젊은 교수들은 이미 자발성을 잃은 셈이다.  모든 것은 테뉴어를 통과하기 위한 실적 쌓기에 집중하라고 시스템은 요구하고 있고, 이는 지성의 자유를 억압한다.  상아탑의 자율성을 위해 도입한 테뉴어 제도가 되려 젊고 유능한 교수들의 가장 황금과 같은 시기를 자율성을 억압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테뉴어를 획득한 교수들은 어떤가?  이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개혁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뻔한 일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수들도 많지만, 일반적인 정서는 그렇게 흐를 수 밖에 없다.  인지상정이니까 ... 특히 이런 지위를 확보한 교수들은 대학 시스템의 변화에 결사적으로 막을 것이고, 이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다보니 언강생심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쉽지 않다.  최근과 같이 급격한 변화가 있는 시기에, 대학은 날이 갈수록 노쇠화하고, 가장 보수적이고 새로운 피의 수혈은 되지 않는 시스템이 이어진다면, 과연 대학이라는 곳이 얼마나 경쟁력을 가지게 될까?  대학의 시스템이 아닌 다른 "고등교육" 시스템에 의해 무너질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과장이 될까?
  
가르치는 것과 연구는 또 별개다. 대학에서 연구를 중시하는 이유는 어찌보면 브랜드 파워이다. 어떤 교수가 어떤 유명한 논문을 냈다는 것은 뉴스가 될 수 있고, 사회적으로 브랜드를 인지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지만,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좋은 제자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가치를 만드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직접적인 효과의 측정이 어렵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일종의 산업으로 본다면 대학에서는 브랜드에 도움이 되는 연구활동에 방점을 찍어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연구실적이 우수한 교수들은 가능하면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어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연구는 열심히 해도 가르치는 것에는 별로 소질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가르치는 것에 대한 가치와 인문학

이제는 작고했지만, 코넬 대학에는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던 칼 세이건(Carl Sagan)이라는 교수가 있었다.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 시절, 그가 관여한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코스모스(Cosmos)와 동명의 책을 사서 탐독을 하면서 과학자로의 꿈을 키우기도 하였다. 그는 연구자라기 보다는 바깥 세상과의 연결을 통해 학생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문분야와 지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퍼뜨리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그는 매우 유쾌하고, 자신의 지식을 쉽게 설명하는 기술이 있었으며, 풍부한 상상력으로 다양한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가 얼마나 많은 논문을 쓰고, 연구영역에서도 탁월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쌓은 사회적인 가치는 우수한 논문을 많이 낸 교수들의 그것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대학에서의 인문학과 교양에 대한 강의 및 수련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취업을 우선시하다 보니, 모두가 전공과목과 당장 사회에 나가서 써먹을 수 있는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여기에 맞춰서 자꾸 변신을 하고, 취업률을 또 하나의 평가잣대로 삼아 열심히 홍보를 한다.  소위 일류대학이 아니라면, 여기가 공략대상이 된다.  그러나, 대학이라는 곳에서 처음으로 학생들이 수련을 해야 하는 것은 알량한 몇가지 전문지식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특정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사고하며, 사회를 고민하고, 본질적인 가치를 찾아내는 연습과 전체적인 시각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런 훈련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문적인 지식만 쌓는 사람들이 양산되는 것이 과연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대학 1~2학년 시절의 인문학을 중심으로 하는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사회에 대한 적응력 및 변화를 느끼는 작업이 무척 중요한데도 이런 부분은 최근 너무나 쉽게 무시되고 있다.


인생은 길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제는 쉽게 90세까지 살 것이고, 어쩌면 젊은 친구들은 100세까지 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생에 대한 디자인도 해봐야 한다.  무척이나 급한 것 같지만, 뭐든지 건너뛴 것이 있으면 결국 그만큼 가치의 손실이 있는 법이다.  대학시절 다양한 경험과 아르바이트, 그리고 사회에 대한 고민과 친구들과의 우정, 열정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들과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언제 그 일을 해볼 것인가?  우리는 대학에 대한 사회에서의 가치를 너무나 단편적으로 해석하고, 여기에 모든 것을 맞추려고 한 것은 아닌가 반성해봐야 할 일이다.

확실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대학이라는 고등교육의 성지는 너무나 비싸기도 하고, 쉽게 접근할 수도 없는 벽과도 같다. 부모들이 이런 부담을 진다고 해도, 결국 이것은 개인의 부담이나 마찬가지이다. 갈수록 벽을 높게 치고, 여기에서 양육된 브랜드를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장악하며, 이를 통해 사회의 세습을 지속적으로 이어간다면 소위 우리가 매일같이 욕하는 저 북쪽의 지배자 가족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대학도, 학생들도, 그리고 교수들도 모두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들도 사회적 책임(Personal Social Responsibility, PSR)이 있다.  이런 여러 가지를 감안하면 우리의 고등교육 체계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혁신이 있어야 한다.  내부혁신이 없다면, 외부에서의 새로운 시스템이라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교육과 대학에도 개방형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지나친 규제위주의 정책은 완화하되 사회적 책임은 높일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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