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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이야기가 "경제성"과 "생산성"이 아닌가 싶다.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지다보니, 시장에서 수입을 수요자들로부터 어떻게 벌어들일까에 대한 질문과 공급에서의 비용적인 측면에서 효율성을 따질 때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에 대한 이슈가 제일 중시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 중에서 "생산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생산성은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생산의 효율성에 대한 지표로 산출량을 생산에 필요한 투입량으로 나눈 비율, 총투입량 한 단위당 총산출량 등으로 정의된다. 어쨌든 자본주의에서 생산성 만큼이나 중요하게 취급되는 용어도 없는 듯하다. 생산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정말 다양한 연구와 방법론이 나왔고, 기업에서도 어떻게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무수한 노력을 기울여온 것이 사실이다. 시간은 곧 돈이었고, 직원들을 최대한 쥐어짜서 조금이라도 투입량을 줄이는 것이 기업의 불문율이었던 시대였기에 이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노동관계 법률 등도 나왔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좌우 이데올로기의 분화도 기업의 이윤동기를 최대한 보호하는 시장의 기능을 극대화하려는 경향과 생산성을 위해 희생되는 수많은 노동자들에 대한 권익보호와 인간소외 현상에 대한 반발에 의해 태동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어느 쪽이 이기느냐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욱 근본적인 변화는 자본과 이익 및 생산성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의 경영원칙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의 변화가 있을 때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이다. 기업의 CEO를 비롯한 경영자들이 이런 변화를 느끼고 실천할 때, 우리 사회는 포스트 자본주의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

생산성에 대한 집착이 오늘날의 풍요로움을 가져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보다 적은 사람들이 보다 적은 자원을 가지고, 더 많은 산출량을 만들어 냈기에 여력이라는 것이 생겼으며 우리는 인류역사의 과거 어느 때보다 풍성한 물질적인 혜택을 누리고 있다. 비록 양극화라는 괴물이 탄생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생산성을 극한으로 밀어부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면 시장과 경제도 같은 속도로 증가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개개인에 대한 생산성이 증가하므로 시장과 경제가 커진다면 이들은 여전히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생산성의 증가가 개인의 일자리를 필요없게 만들고, 자본의 논리에 따라서 같은 규모의 기업의 일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그러므로, 모든 경제의 시스템이 성장에 올인할 수 밖에 없다. 생산성의 증가만큼 성장하지 못하면, 기업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필요로하지 않으며, 강제적인 재배치가 없고 시장에 의존하는 이상 총량적으로 보았을 때 필요로 하는 노동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성장전략을 선택해서 생산성과 시장과 경제가 확대되는 게임의 룰에 의해 과소비가 될 정도로 풍요로운 삶과 일자리도 유지되고, 시장체제도 칭송받는 평화로운 수십 년을 보냈다. 그런데, 최근 이런 평화체제가 붕괴될 조짐이 명확해지고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그동안 실제보다 과도한 성장이라는 거품의 붕괴에 의한 것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의 거품과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 등을 이야기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는 원래 그렇게 성장할 수 없는 것을 성장시키기게 만든 사회적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여기에 과도한 생산성을 통해 낭비된 지구의 자원이 슬슬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정확히는 절대적인 바닥이라기 보다는 소모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서, 지구의 재생능력을 지나치게 훼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옳겠다)하면서 석유를 비롯한 다양한 자원들의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과도한 성장일변도의 패러다임이 지구의 기후변화와 삼림훼손, 생태계 다양성까지 해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성장"과 "생산성"이라는 사이좋은 커플이 더 이상 우리 사회를 쌍끌이로 낙원으로 끌고가는 마차가 아님이 명확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성"에 대해서 생각하면 그 의미가 달라보인다. 지나친 생산성은 고용의 안정성을 해치며, 우리 사회와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안되는 압력으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일단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일하는 양을 줄이자는 것이다. 이 방법은 이미 유럽에서 많이 채용되고 있고, 일자리 나누기와 근로시간 줄이기 등의 정책으로 도입되고 있기도 하다. 미국에서도 대공황 당시 이와 관련한 다양한 정책들이 있었는데, 이런 정책이 중요한 이유는 시장의 경쟁 때문에 모두가 같이 내려놓지 않으면 결국 기업의 이윤과 생존을 위해 개별기업이 이런 정책을 알아서 채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공조와 발맞춤이 필요한 것이 그런 이유이다. 영국의 씽크탱크 중의 하나인 신경제재단(New Economics Foundation)은 일주일에 21시간 일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또다른 전략으로는 수요에 기반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원하지 않는 생산을 하기 보다는 여유를 가지다가 수요자가 필요로 할 때 생산을 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딜로이트의 존 하겔 3세 등은 공급자 중심의 푸시 패러다임(Push Paradigm)에 대응한  "풀 패러다임 (Pull Paradigm)"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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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와 같이 효율과 생산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주당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수요에 기반한 노동을 한다고 가정하면 개인들에게 주어지는 잉여시간은 그만큼 많아진다. 이를 통해 되려 지나친 성장의 가속페달을 놓고 저성장 기조에서 우리 사회가 견딜 수 있는 적응력을 키우고 지속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성장이라는 마약에 중독된 우리 사회를 구원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되지 않을까? 얼핏 생각하기에는 말도 안된다고 느낄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이미 생산성과 성장의 신화와 전혀 관계없이 돌아가는 산업들은 많다. 예를 들어 보육, 의료, 교육 등의 산업은 생산성과 성장보다는 사회의 필요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비용의 측면에서 전 세계에서 다양한 방식의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는 산업들이다. 일단 이와 같이 성장에서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필요성을 만족시키는 것을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다면, 일하는 시간이 결국 우리의 삶의 총체적인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시간이 된다. 또한, 이렇게 발생한 잉여시간과 인지잉여(Cognitive Surplus, <많아지면 달라진다>라는 클레이 셔키의 책에서 소개한 개념)는 창조성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생산자의 시대를 열 수 있다. 문화산업도 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자신들의 창조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연습하고, 갈고 닦아서 표현할 것이고, 이를 서로가 나눌 것이다. 음악과 예술, 그리고 다양한 놀이의 중요성은 그래서 미래사회를 이야기할 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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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2 - 생산자 사회로의 변화가 미래를 이끈다



낮은 생산성보다 얼마나 의미있는 일을 하고, 그것이 우리의 지역사회에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사회적 가치가 생산된다면 이를 통해 사람들은 헌신을 위한 노동을 하게 되며, 의미를 이해하고 보다 참을성이 많아진다. 경쟁을 중심으로 하는 패러다임과 가치관 및 철학을 바꾸지 않고, 어떠한 정책을 들이밀더라도 그것은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다. 이것이 결코 쉬운작업은 아니다. 수많은 상품의 풍요로움 속에서 생산된 물품들을 탐욕스럽게 가져갈 수 있었던 기회를 제공하는 "수퍼마켓 경제" 속에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단련되고 빠져서 살았다. 그렇지만,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 인간을 이해하고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면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등 행복에 대한 추구의 방식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희망이다. 

거대한 생산성과 효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소비자 중심의 과소비 사회가 종말을 맞이하려고 한다. 과소비를 통해 외형이 성장하고, 이를 맞추기 위한 생산성의 독려와 일자리를 유지했던 성장의 순환사이클이 그 동력을 잃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이와 같은 거시적인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사회에 대한 과도한 충격을 흡수하면서, 미래사회로의 이전을 흔들림없이 꾸준히 추진하는 것에 달려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대선을 바라보자. 어느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이야기는 굳이 쓰고 싶지 않다.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사회의 철학과 방향성을 꼼꼼히 살펴본다면 어떤 것이 미래를 위한 선택인지는 굉장히 명확해지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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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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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Ben Heine's photostream at Flickr


뉴욕에 소재하는 벤처 캐피탈리스트이면서 동시에 블로거로 활동 중인 Fred Wilson은 그의 블로그에 최근의 경제위기에 대한 그만의 시각을 기술한 "Bits of destruction."이라는 포스트에서 다음과 같이 이번 경제위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번의 경제위기는 산업시대(industrial era)의 기반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비즈니스 모델들이 정보시대(information age)의 주역들에 의해 결국에는 주저앉는 역사적인 하강국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창조적파괴(creative destruction)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직업들과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변화는 결국 막을 수 없는 것이며, 대항해서 싸울 수도 없다.  기술과 정보의 힘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진 않든 세상을 새롭게 재편할 것이다."


코즈의 정리 (Coase's Theorem)

한쪽에서는 엄청난 고난과 파괴가 있따르고 있지만, 반대편에서는 새로운 창조와 에너지가 넘치는 디커플링(decoupling) 이론은 원래 BRIC(Brazil, Russia, India, China) 이라는 신흥경제를 주도하는 나라들의 성장과 관련한 것 이었습니다.  신흥경제국들은 크게 성장하지만, 여기에는 전통적인 서방국가들의 수출이 저하되고 GDP 성장이 둔화되는 현상을 동반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최근의 경제위기는 워낙에 경제시스템이 전세계에 걸쳐서 강하게 연계가 되어 있기에 이들 신흥국가들 역시 위험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경제시스템이 인터넷처럼 느슨하게 연계된 구조를 가졌다면 아마도 양상이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커플링이 강했던 것이죠 ...

이런 와중에도 미국의 새로운 벤처회사들은 경기불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곳들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번 포스팅에서도 언급한 바 있습니다.

2009/03/05 - [글로벌경제/경영/기업 이야기] - 세계적 불황속 잘 나가는 기업들

어떤 이론이 현재와 같이 미국에 있는 수많은 작은 벤처회사들은 비교적 견조한 상승세를 보여주는데, 커다란 회사들과 대부분의 나라의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을 설명해 줄까요?   이와 같이 커다란 비즈니스에서 작은 비즈니스로 권력이 이동하는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의 일부가 1991년 노벨경제학상에 빛나는 코즈의 정리 (Coase's Theorem)에 남아 있습니다.  원래 이 이론은 외부효과에 대한 접근방법을 설명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일부 핵심적인 내용은 최근의 신경제현상을 설명하는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외부와의 교역에 있어 트랜잭션에 대한 비용이 전혀 없다면 처음에 재산권을 어떻게 설정해 놓았든지 상관없이 결국 최적의 결과가 나오도록 거래가 이루어진다."

인터넷은 이 정리에서 언급하는 이상적인 트랜잭션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시키고 있습니다.  보통 협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덩치가 크고 영향력을 크게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인터넷을 통한 신경제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아도 되고, 수직적통합을 이룰 필요가 없습니다.  이 변화가 가지고 있는 함의는 무척 큽니다.  현재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회사라는 것의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라는 것이 있어야 자금의 지원이 되고, 이를 이용한 협상력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그리고, 그 덩치가 커지고 자본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내부의 모순 또는 정치적 부담이 커지는 문제는 있지만, 이를 능가하는 구매와 관련한 협상력의 크기 및 자본조달의 용이성과 같은 외부비용이 내부비용의 증가를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은 외부비용의 극적인 감소와 협상력을 유지시켜 줍니다.  사실 코즈의 정리를 적용하여 회사들의 구조변화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웃소싱이나 핵심역량에 집중하는 전략, 분사 등의 전략이 모두 외부와 내부의 비용차이를 최적화하기 위한 것이지요.  인터넷은 개인의 핵심역량을 극대화하면서 여러가지 사업이 직접적으로 가능하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회사라는 것 자체의 변화에 대해서는 따로 다루어볼 기회를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야만인이냐?  로마인이냐?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


너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고 느끼시나요?  그렇다면 아래의 회사들을 비교해 봅시다.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쓰러져가는 공룡들입니까 아니면 미래를 위한 기업들인가요?  미래형 기업들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더욱 자세한 공부를 해볼 생각입니다만, 저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미래를 위한 기업들에게 투자를 하겠습니다.

  • 미국의 빅3 자동차 회사 (GM/Ford/Chrysler) vs. ZennCars와 같은 작고 유망한 전기자동차 벤처
  • 시티/뱅크오브아메리카/웰즈파고와 같은 거대은행 vs.  Virgin Money과 같은 신흥은행
  • 오라클/SAP와 같은 전통 IT 회사 vs. 37 Signals, Zoho 등과 같은 SaaS 벤처회사

아마도 의견이 다른 분들도 많겠지요 ...  그렇지만 지금의 시점은 로마인으로 남아있기 보다는 야만인이 되어야 하는 시점이고, 방어보다는 공격을 통해 판도를 바꾸려는 시도를 해야하는 것 아닌지요?  이런 시도는 경제불황기에 정상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뛰어난 첨단벤처 회사들이 연일 좋은 소식을 전해주고, 거대한 회사들이 일관되게 죽을 쑤는 현상은 그리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닙니다.

현재의 움직임은 엘빈토플러가 부의 미래(Revolutionary wealth)에서 언급한 부와 권력의 이동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아닐까요?  현재의 경제상황을 단순히 과거 대공황이나 글로벌 경제위기의 재판으로 보기에는 커다란 무리가 따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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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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