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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국지, 지난 번 포스팅에 이어 오늘도 델(DELL) 컴퓨터 창업자인 마이클 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용팔이의 전설

필자도 개인적으로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많은 수의 컴퓨터를 조립하고는 했습니다.  당시에는 대기업 제품이 비쌌기 때문에 세운상가나 용산전자상가에서 조립 컴퓨터를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부품을 사다가 필자처럼 집에서 조립을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솜씨가 좋은 사람들은 주변 친구들이나 친척들의 컴퓨터도 직접 조립해주기도 하였지요 ...  이렇게 용산전자상가에 주로 있으면서 조립 컴퓨터를 제작하거나,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은 통칭 '용팔이'라고 하였는데 근래에는 사람에 따라 가격을 마음대로 고무줄처럼 적용한다고 하여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꽤나 잘 나가던 용팔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마이클 델은 용팔이들의 롤 모델이라고 할만 합니다.  처음에는 용팔이와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시작했지만, 전화와 인터넷을 통한 조립모델로 과거 일본의 토요타(Toyota) 자동차가 이룩한 효과적인 관리 및 SCM(Supply Chain Management, 공급체인관리)을 통해 극도의 효율성을 끌어내고, 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비해 우수한 하드웨어를 제공하면서 델 컴퓨터는 급속도로 성장하였습니다.

델의 기술개발은 다른 회사들과는 달리 주로 생산방식과 관련한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최신의 IT 기술을 가장 먼저 도입해서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제품을 값싸게 제공하는데 모든 노력을 집중하였습니다.  고객들의 생활과 소비패턴을 분석하고, 이를 통한 판매와 영업,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데 필요한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과 제품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생산과 관련한 자재와 부품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재고는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SCM 등의 시스템을 업계에서 가장 먼저 도입하였고, 그 밖에 회사의 노동력과 같은 자원들에 대한 효과적인 관리를 위해서 ERP 역시 선도적으로 개발하여 적용하여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어 나갔습니다.


빌 게이츠, 그리고 스티브 잡스와의 애증관계

마이클 델은 주로 IBM-PC 호환기종을 생산하면서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가장 강력한 우군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마이클 델은 윈도우의 라이벌에도 많은 투자를 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픈소스 운영체제인 리눅스(Linux)의 가장 대표적인 상업화 패키지 개발회사였던 레드햇(Red Hat)에 $1억 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하였고, 또한 애플을 접촉해서는 맥 운영체제(Mac OS)를 델 컴퓨터에 이용할 수 있도록 라이센스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이는 마이클 델이 비록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를 이용해서 회사를 키워왔지만, 언제까지나 마이크로소프트에 의존하고 싶어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HP가 최근 팜(Palm)을 인수하고 WebOS 라는 운영체제를 손에 넣고, 또한 윈도우 7을 버리고 2010년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인 스티브 발머가 키노트 연설에서 자랑스럽게 시연까지한 슬레이트(Slate)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대신 안드로이드와 WebOS를 선택하는 결정을 내린 것도 이러한 종속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열망이 크게 작용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이클 델이 스티브 잡스와 사이가 좋았던 것도 결코 아니었습니다.  특히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임시 CEO 로 복귀한 1997년에 마이클 델은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애플은 곧 파산하게 될테니, 회사의 문을 닫고 남는 자산을 매각해서 주주들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최선일 것" 이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들었지만, 당시 애플의 상황은 정말 최악이었기에 스티브 잡스는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하고 꾹 참았지만 마음 속에 응어리는 많이 남았던 모양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하고 아이팟의 성공과 함께 애플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면서 2006년 애플의 시가 총액은 720억 달러를 돌파하며 델의 시가총액을 넘어서는데, 스티브 잡스는 이날을 기념하며 전직원에게 이메일로 "오늘로 애플은 델의 시가총액을 돌파했습니다.  델은 틀렸고 우리가 옳았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증명하였습니다" 라는 말로 10년 만의 반격을 하였습니다.


마이클 델은 사생활도 매우 모범적인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매우 가정적이어서 1989년 결혼한 수잔 리버만과 결혼식을 올리고, 4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철인 3종 경기를 취미로 하는 강인한 여성이었고, 마이클 델 역시 매일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운동을 하고, 아이들을 직접 모두 학교에 보내었으며 저녁 6시가 되면 어김없이 집으로 퇴근을 해서, 밤 9시에는 손수 동화책을 읽어 아이들을 모두 재우는 정말 모범적인 가장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많은 미국의 부자들이 그렇지만 많은 기부활동을 통해 빈곤층 자녀들의 건강과 교육문제에 집중적인 지원을 합니다.  특히 델의 본사가 있는 텍사스 주의 공교육 강화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컴퓨터 하드웨어 생산의 효율화를 통한 회사의 가치를 증진하는 델의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매출과 수익은 많이 냈지만, 경쟁사인 HP에 비해 연구비는 20%도 안되는 투자를 하였고 세상을 바꿀만한 핵심기술을 가지지 못했기에 결국에는 세상의 주도권을 한 차례도 쥐지 못하였습니다.  최근의 델 컴퓨터는 과거의 비교우위를 많이 상실하였는데, 이는 초창기 델이 주도한 생산의 효율화와 고객만족이라는 기본적인 전략은 이미 모든 회사들이 다같이 따르는 순간에 그다지 커다란 비교우위의 상태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델이 최근 부진에 헤메이고 있는 상황을 우리나라 업체들은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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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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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에 이어 마크 앤드리센과 함께 본격적으로 구글의 영지인 인터넷 세상의 역사와 관련한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마이크로소프트와 PC 영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출한 장수를 한명 오늘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세계 최대의 PC 메이커 중의 하나인 델(DELL)의 창업자인 마이클 델(Michael Dell) 입니다.  배울 것도 많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은 인물이기 때문에 2번에 나누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인물이고, 인생사도 저와 유사한 부분들이 있는 분이라 외전처럼 조금 길게 다루고 싶네요 ...


사업가의 피를 타고난 사나이

델(DELL)은 비록 이제는 HP에게 세계 최대의 PC 메이커 자리도 내놓았고, 2위 자리마저 대만의 회사들에게 빼앗기고 있는 형국이지만, 한동안 부동의 하드웨어 제조회사로 자리를 굳건히 했던 신화적인 회사입니다.  이 회사를 창업한 마이클 델은 1965년 생으로 텍사스 휴스턴 출신입니다.  치과의사인 아버지와 증권중개인인 어머니, 그리고 전형적인 유태인 집안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도전과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기는 사업가의 기질을 끊임없이 보여주는데, 12살 때에는 우표와 관련한 사업으로 2천 달러나 벌어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랬지만 1970년대 후반 우표수집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우표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과 우표거래를 할 때 중개인들의 수수료가 비싸다는 점에 착안하여 우표판매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사업을 구상합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우표를 구입하고, 넉살좋게 이웃사람들과 아는 사람들을 만나서 우표를 팔 때 중개인에게 넘기지 말고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부탁을 하고 다닙니다.  일단 판매할 우표를 확보한 뒤에는 제품 카탈로그와 우표수집가들이 흔히 보는 잡지에 광고를 하였는데, 단순히 광고를 하지 않고 우표마다 우표값 변동사항을 체크하여 가격이 오르는 시즌에 맞추어 광고와 주력 우표를 선정하는 치밀함을 보여주면서 어린 나이에 짭짤한 소득을 올립니다.

16살 여름방학 시절에는 텍사스 지역신문에서 구독과 관련한 영업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신문구독을 권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사람들의 신문구독 패턴을 연구해서 집중적인 영업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이사를 하는 사람들이 새로 신문을 구독하거나 교체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휴스턴의 16개 법원에서 최근 결혼신고를 한 사람들의 명단을 입수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집중 마케팅을 합니다.  결혼을 하고 보통 새 집으로 이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집을 구입할 때 은행융자를 받을 것이라는 것도 감안하여, 은행에서 융자받은 사람들의 연락처를 알아내서 이들에게도 집중영업을 하면서 2만 달러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입니다.   오늘날이라면 개인정보에 대한 제한이 심하기 때문에 생각하기 어려운 방식이지만, 30년 전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마이클 델, 애플 II 에 빠지다.

이렇게 사업가 기질로 충만한 영리한 소년이 어느날 애플 II 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가 자주 드나들던 전자제품이나 키트 판매체인인 레디오쉑(RadioShack, 오늘날까지도 건재한 전통의 전기/전자관련 로컬 스토어)에 전시된 애플 II에 대한 동경으로 몸살을 앓았던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부모를 졸라서 결국에는 15살 생일선물로 애플 II를 받습니다.  저 역시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인근 백화점 최고층에 전시된 한 대의 애플 II 컴퓨터를 만지기 위해 학교가 끝나면 부리나케 달려가서 BASIC 으로 게임을 만들기 위해 연필로 수없이 코딩을 하고, 이를 쳐넣고 실행하기를 거듭하면서 게임을 완성시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몇년을 매일같이 하는 것을 보던 부모님이 제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생일에 애플 II를 사주셨고, 그 다음부터 마음껏 컴퓨터를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마이클 델과 묘하게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는 사업가의 재능이 없었지요 ...

애플 II 를 가지고 컴퓨터 잡지를 탐독하면서 분해와 조립, 그리고 여러가지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마이클 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선택한 길은 뜻 밖에도 의과대학에 진학해서 의사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치과의사인 아버지의 뜻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는 1983년 텍사스 대학 의과대학에 진학을 하였지만, 컴퓨터는 좋아도 의학이라는 학문을 좋아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 와서도 컴퓨터를 조립하는 것에 커다란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부품을 모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컴퓨터를 조립해주고 대기업 제품보다 월등히 싼가격에 더 나은 하드웨어를 만들어 주었기에 텍사스 대학의 '세운상가 조립상(?)'으로 그 명성을 날리게 됩니다.  부모들은 그의 이런 외도가 못마땅하였고, 기숙사를 찾아가서 호된 꾸지람을 하고 그의 마음을 돌려놓기도 하지만, 결국 그는 컴퓨터 사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학교를 뛰쳐나옵니다.


소비자가 직접 주문하는 판매모델을 만들다.

컴퓨터를 조립해서 팔면서 컴퓨터에 들어가는 부품원가는 전체의 20~30% 밖에 되지 않으며, 매장주인의 마진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그는 동시에 컴퓨터 업계와 대리점이 가지고 있었던 재고의 위험성에 주목을 합니다.  신제품을 출시하면 기존 제품은 잘 팔리지 않기에, 재고 소진을 감안하여 제품을 출시하게 되고 이는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과 이익을 제한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유통의 함정'을 파악한 그는 직접마케팅(direct marketing)이라는 개념을 창안합니다.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1984년 5월 단돈 천달러로 텍사스 주에 델 컴퓨터가 설립됩니다.  그리고, 텍사스의 컴퓨터 대리점들을 돌아다니면서 공급초과로 팔리지 않는 구형컴퓨터를 싼 값에 모두 구입을 한 뒤에, 부품을 회수하고 소비자들의 원하는 조합으로 다시 재조립하거나 업그레이드를 해주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합니다.  

1984년 설립 첫해 델 컴퓨터는 $18만 달러라는 매출을 올렸지만, 1985년에는 $3천만 달러, 1986년에는 $6천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특히 1986년 컴덱스에서 "세계 최고 성능의 IBM 호환기종"이라는 2장짜리 광고가 최고의 화제가 되면서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회사로 급성장하게 되는데, 당시 출시된 IBM-PC 와 호환기종 중에서 가장 빠른 286 12MHz CPU 를 채택하고 (당시 IBM 286 PC는 대부분 6MHz), 가격은 절반이라는 컨셉이 화제가 되면서 당시 최고의 PC 잡지였던 PC WEEK의 표지까지 장식합니다.  또한, 델을 공격하던 A/S 문제에 대해서는 24시간 수신자부담 전화서비스와 3년 무상서비스 등의 공격적인 정책을 채택하는데, 이런 정책은 우리나라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에서도 많이 이용하였던 방식이지만 컴퓨터 업계에서는 획기적이고 공격적인 정책들 이었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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